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지하철에서 읽은 책] <냉정과 열정 사이-Blu>

퇴근 무렵이나 금요일 저녁이면, 주변에 사람들이 주섬주섬 모여듭니다. "뭐 읽을 책좀 없어요?" 퇴근길 지하철이나 주말에 집에서 뒹굴거리며 읽는 책을 찾는 게지요. 각자의 취향에 따라 딱 맞는 책을 권해주......지는 물론 못하고(흐흐;) 그 주에 나온 책 중 적당한 책을 몇권 골라 건네주곤 합니다.

직업상 하루에도 여러 권의 책을 훑어보지만,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시간만은 온전히 제것입니다. 회사에서 집까지-지하철에서 50분을 보내야하는 저에게 책과 CDP는 필수. 너무 두껍지 않은 소설을 선택하는데(무기같은 책들은 팔이 아프거든요. ^^;), 내용의 경중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략 200여 페이지 가량을 봅니다. (사실 지하철만큼 집중해서 책읽기 좋은 장소가 없지요.)

어제는 미루고 미뤄두었던 <냉정과 열정 사이-Blu>를 읽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이 베스트셀러를 아직도 안 읽고 있었거든요.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베스트셀러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남아있었나 봅니다. 읽기 전에 사람들에게 Blu를 먼저 읽어야 해, Rosso를 먼저 읽어야 해? 물었습니다. 의외로 의견이 분분, 그냥 내키는 대로 Blu 편을 먼저 펴들었습니다.

* 이미 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는 하나의 스토리를 한 남자작가와 여자작가가 반씩 나누어쓰는, '릴레이 합작'이라는 특이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소설입니다. 츠지 히토나리는 <냉정과 열정사이 Blu>에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에쿠니 가오리는 에서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실은 소설속 남녀는 같은 이야기 속의 두 주인공인 것이지요.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남편이기도 한 츠지 히토나리가 쓴 <Blu>편에 대해선 사실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전에 읽은 그의 다른 작품이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첫장부터 눈길을 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얼마전 피렌체에 여행을 다녀와서일 수도 있지요. 소설 속의 쥰세이가 아오이를 생각하며 걸었던 거리와 다리, 두오모의 묘사가 더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아, 저긴 내가 갔던 거기잖아. 하지만 그보다 저를 더 강하게 사로잡은 건 쥰세이의 마음-부름이었습니다. 조용한 생활, 조용한 호흡 속에 가득 묻어나는 그리움과 외로움, 끊임없이 '아오이'의 이름을 부르는 쥰세이의 간절함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소설 속의 쥰세이는 두오모에 올라 아오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씻고 컴퓨터를 켜고,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는 건 조금 미루어 두었습니다. 아오이가 올지 안 올지, 두 사람의 다음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쉽게 결말을 읽기가 아쉬웠어요. 가끔 그런 책들이 있지요. 끝이 다가올수록 페이지 한장 한장 넘기기가 너무 아까운 책. 어쩌면 겁이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H2> 완결을 보았을 때, 이후 몇일간 마음이 안 좋았던 것처럼 그럴까봐요. 쥰세이와 같은 마음으로, 저도 두오모에 올라 아오이를 기다린 것이지요.(이후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스포일러이니 생략합니다. ^^;)

<Blu>를 다 읽은 저는 오늘 지하철에서 <Rosso>를 읽을 예정입니다. 오늘 아침 회사에 와서 그 책 재미있더라 말했더니 "어, 그 책은 두 권을 번갈아 보는 건데"라는 말을 듣고 좌절하긴 했지만. ㅠ.ㅠ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읽어버린 걸. 피렌체의 쥰세이가 그렇게 지내는 동안, 밀라노의 아오이는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사람의 감정-특히 헤어짐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에쿠니 가오리는 아오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기대되네요.(주변에선 Rosso가 재밌다는 사람이 조금 더 많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신간 브리핑] 2004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2004년 일본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로 2명의 젊은 작가 와탸아 리사(19세)와 가네하라 히토미( 20세)가 선정되어, 우리나라에까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은 의외로 정말 탄탄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역시 2명이군요. 한명은 68년생, 한 명은 77년생, 둘 다 여성작가네요.

두 작품은 서로 아주 다릅니다. 한 작품을 선택/배제하지 못하고, 공동수상을 선택한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이해됩니다. 심사평을 한번 볼까요?

* <공허의 1/4> - 한수영

오늘날의 기성 작가들 속에서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역량, 특히 단 한 군데서도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확고한 안정감을 보여준다. 소설의 자연스럽고 균형 잡힌 구도에 있어서나 언어의 원숙미에 있어서나 단연 발군의 작품이다. - 김화영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삶의 신산스러움에 대한 이해도 깊고, 문장도 정확하고, 문학적인 재능도 보이고, 구성력도 뛰어나다. 현실에 철저하되, 상상력으로 현실을 입체화하는 능력도 있다. 자칫 상투적 감상에 빠질 수 잇는 대목에서도 해이해짐이 없다. - 이남호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웰 메이드' 작품의 계열에 속하면서 녹록치 않은 삶의 연륜과 완벽에 가까운 언어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 - 김미현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 <피터팬 죽이기> - 김주희

이 소설의 참다운 매력은 언어의 질감과 목소리, 그리고 이따금 행간에 드러나는 '낯설음'에 있다. 젊음의 에너지와 고뇌와 그 특유의 '이상함'에 바치는 찬가인 <피터팬 죽이기> 덕분에 오늘의 세대는 그들 특유의 삶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적절한 언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 김화영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젊은 신인만이 그려낼 수 있는 세계를 이만한 수준의 언어적 공간에 담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문학적 사건이다. - 이남호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지하철도 999"에 갇힌 "무명 세대"들의, "내 영혼이 주눅 들었던 날들"에 대한 기록인 <피터팬 죽이기>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피터팬 증후군과, 거기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는 피터팬들의 유서이자 묘비명을 문제 삼고 있다. - 김미현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공허의 1/4>을 읽고 정말 놀랐습니다. 이게 신인 작가의 첫 장편이 맞단 말이야? 심사위원들 말대로 신인답지 않은 자제력과 안정감이 단연 돋보입니다. 차분하고 정확한 서술과 인물 묘사, 튀지도 진부하지도 않은 상상력이 이 작품의 커다란 미덕이지요. '답답'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성실성과 정직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신인다운 치기나 패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잘 쓴 소설임에 틀림없습니다.

<피터팬 죽이기>는 이와 반대의 평을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설익고 덜 다듬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자체로 젊은날의 고민과 방황을 그려내기에 적절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과거와 현재, 알 수 없는 미래 사이에 갇힌 20대, 영원히 학교를 졸업하고 싶지 않았던 '피터팬'들의 심리와 일상을 제대로 잡아낸 소설입니다. 대학시절을 실감나게 그려낸 '대학(원)생 소설'이라 부를 수도 있을듯. 읽기에 꺼끌꺼끌하지만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판매가 적다는 인문도서보다도 문학이 덜 팔린다고 걱정하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덜 읽히고 또 눈에 띄는 작가도 드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두 권의 책을 대하니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취향에 따라 재미가 없거나 별로라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 잘 씌여진 소설들을 만나 기분이 좋습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건, 새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기쁜 일이니까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라딘 편집팀 서재에 올라가는 제 페이퍼를 동시 등록하는 카테고리입니다. 리플은 가급적 편집팀 서재에 달아주셔요. ^^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digitalwave 2004-06-1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 내 맘이지! 쳇쳇쳇

zooey 2004-06-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리씨, 미워. ㅠ.ㅠ

skytosea 2004-06-1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시러~ ㅋㅋ....

zooey 2004-06-1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사람들이!!! ㅠ.ㅠ

레이저휙휙 2004-06-1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거들까?

zooey 2004-06-1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digitalwave 2004-06-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헤헤헤. 근데 나같은 경우만 해도 편집팀 공간에 글 남기긴 뭣 하단말이지...
미안~ 농담 함 했더니, 저렇게들 거들어 줄 줄이야 ㅋㅋㅋ

▶◀소굼 2004-06-2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이거 웃긴데요;;;

ugg boots sale 2009-12-0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출처 : 쿠 > 회사동료

2004.6.3


<김팀장님,정옥씨>



<진화,은경,영란씨>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zooey 2004-06-09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회사 웹팀 사람들. 사실 나는 편집팀이 아니라 웹팀인지도. 으흐흐.;;;

레이저휙휙 2004-06-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악.. 안경쓰고 온 날이라 사진 찍는 걸 요리저리 피했건만!!! 저렇게 배경으로 나오다니 ㅠ_ㅠ

zooey 2004-06-0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나른해 보이오. 하하.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내맘대로 좋은 책 6월!


"진실된 거짓말쟁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글방
 
내가 2003년 읽은 책 중 최고의 소설! 오랫동안 절판상태여서 정말 어렵게 구해 읽었다. 문장은 극히 간결하고 무감정하다. 3권에선 조금 느슨해지지만 1, 2권을 읽어보라. 주인공들의 고통을, 아픔을, 외로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단어는 한마디도 없다. 다만 이런 식이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했다.
-개자식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마녀의 새끼들! 망할 자식들!
...
우리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귀가 윙윙거리고, 눈이 따갑고, 무릎이 후들거린다.
우리는 더이상 얼굴을 붉히거나 떨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런 모욕적인 말들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우리는 부엌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런 말들을 되는 대로 지껄여댔다. 점점 심한 말을.
하나가 말한다.
-더러운 놈! 똥같은 놈!
다른 하나가 말한다.
-얼간이! 추잡한 놈!
우리는 더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게 될 때까지 계속했다.
우리는 매일 30분씩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하고 나서 거리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도록 행동하고는, 우리가 정말 끄떡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옛날에 듣던 말들이 생각났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내 행복! 금쪽같은 내 새끼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떠올릴 적마다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런 말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은 우리가 간직하기에 너무 힘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훈련을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말했다.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 ...너희가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아아, 약해서 또 약해서 껍질 속에 숨어버린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버림받고 갇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누구에게나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만으로 아쉬운 분께는 그녀의 다른 작품 <어제>를 추천.
 
p.s. 이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만 나오면 된다. ^^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zooey 2004-06-01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프로필 사진 바꾸고 싶다. 저게 언제적이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