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시작할 계획이던 쓰기는 한 달 미루고 내일 시작. 

올해 4월 1일은 잊지 못할 날이 될 거 같다. 잃어버렸지만 잃어버렸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책을 

영끌해서 산 날쯤 되면 잊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 10년 쯤 뒤, 그래도 그런 날도 잊히더라.... 하지 않을 거 같다. 

22년 4월 1일. 독보적, 마일리지, 적립금 탈탈 털어 또 샀다, 집에 없을 수가 없는 그 책을. 그랬던 날 4월 1일.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38세에 썼다. 

38세. 오래 산 나이로 보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 박완서의 40세 등단. 40세가 까마득하고 

내게는 오지 않을 나이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40세? 새댁;. 라로님 서재에서, 박완서가 <나목> 회고하면서 쓴 글들을 읽었는데, <나목> 이후 몇 년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고 <나목> 때 이미 4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이 데뷔작이 첫사랑의 순정 같은 작품이다보니 그 시절은 맑고 풋풋했던 나로 기억하게 되고 몇 년 지나지도 않은 그 때의 글쓰기는 이미 기성 작가의... : 이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40세... 너무 어려요. 진짜 풋풋해요. 이제 40세는 어린 나이인 걸로 정착시킵시다.)  


38세에 <도리언 그레이> 쓰고 나서 와일드가 했던 말 중 "나는 이 소설을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썼다."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썼다. 이것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말이다. 

작년, 재작년, 최근 몇 년 어느 시점부터 이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관점이 심지어는 논문에도 ㅎㅎㅎㅎㅎ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관점이 최고의 관점은 아닐지라도, 장르 불문 글쓰기를 성사시킬 (동력을 제공할) 힘을 갖는 관점이 아닌가 하게 된다. 와일드가 38세에 온전히 그의 삶의 방식으로 알고 실천하던 것을 나는... 그보다 10년은 늦게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네. 하긴 이런 걸로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도르노는 21세에 (21세에!) 박사 학위 논문을 썼는데 후설 현상학이 주제였다. 후설 현상학. 나는 "현상학"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10년쯤 걸렸지. 


즐거움이 구해지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나를 위해" 쓴다는 것. 내가 알아야겠고 아는 것이 내 삶을 더 풍요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쓴다는 것. (.....) 


등등. 등등. 이런 이유로 

회고록이 유행하게 되기를 다시 바라게 됩니다. 

동지들, ;;;; 우리 회고록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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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4-01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2022-04-08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정말이지 몰리 님이 좋습니다. ㅠㅠ

몰리 2022-04-08 15:32   좋아요 0 | URL
어휴.. 다부장님, 저는 그저 다부장님 날개 밑으로... ㅎㅎㅎㅎㅎ 품어 줍줍. ;;;;
 



미학 이론. 이것은 불어판 표지. 

뭔가 마음에 든다. 영어판보다는 1만-2만배는 더 마음에 든다. 

영어판은 이러하여. 





20년 전과 비교해 읽을 수 있는 책이 되긴 했지만 

한 번에 많이는 못 읽는다. 이건 독한 술. 조금씩만. 간격을 두고. 



"현대 예술의 진지함은, (그것이 대면하는 사회, 그 사회의 문제의) 객관성, 그 객관성의 파토스." 

따옴표 쳤어도 그대로 인용은 아니고 (번역이, 안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내용에 충실하게, 저런 대목이 책 앞부분에 있다. 이 책으로 처음 철학, 혹은 미학을 접하더라도 저런 말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저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을 자기 삶에서 살고 있는 학부생이, 상상되기도 한다. 예술이 다루는 현실이란 무엇이냐. 작가는 어떻게 현실, 현실의 모순과 대적하는가. 등등. 로버트 훌롯-켄터는 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이 책을 체험하는 심지어 학부생들도 있겠다 인정. 


나는 아니었고 

이 책 처음 읽을 때 머리 뜯던 그 느낌, 지금 그대로 언제나 다시 불러올 수 있다. 


3월 1일부터 열라, 준내 (쥰내) 페이퍼를 쓸 작정이었다. 

아도르노 주제인데 새로 작정하고 그의 책들 읽지 않아도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페이퍼 쓰는 사람들 예외없이 영겁회귀로 체험하는) 쓰기 미루고 읽기 하다 보니 이제 곧 4월. 그런데 그의 책들 읽으면서 느끼는 것 하나는, 삶의 문제들... 그런 게 있다고 할 때 그것들에 대한 이 한시도 느긋해짐없이 집요한 (집요하고 부정적인) 파고들기가 


이상하게도 참 위안이 된다는 것. 

"인생 별거없지" 아도르노가 이 말 들었다면 진저리를 쳤거나, 아니 아예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이 집요하고 부정적인 파고들기가 그 자체로 인생을 "ennoble"하는 면모도 있다. 이 중요하고 좋은 걸 나도 살아봤구나, ㅎㅎㅎㅎ 이런 느낌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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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책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가능성 희박하고 혹시 나중 발견되더라도 책은 바로 필요하니까 4월 1일, 퀴즈 적립금, 앱접속 적립금 2천원 받고 독보적, 마일리지 영끌해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판정하긴 했지만, 이 책이 이 집 안에 없다, 없어졌다.... 고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부하는 방에 중요한 (자주 꺼내는) 책들이 있고 

거실과 기타 구석들에 중요하지 않은 책들이 있다. 이 책은 이 방 안을 나간 적도 없는 것인 책. 

이 책이 주로 꽂혀 있던 자리가 있다. 거기서 꺼내 와서 책상 위에 두었다는 게 이 책의 마지막 기억. 

............. 그 자리 근처 어디서 나올 거 같다, 아직도. 4월 1일 새로 사고, 새로 산 것에 사연을 적어둬야지. 

옛책이 찾아지면 거기에도 사연을 적어둬야지. 



사실 무서운 건 

지금도 책이 없어지고 있는 건 아니냐는. 

아니 이렇게 눈 앞에 선하고 바로 잡힐 거 같은 책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면 

그게 그 책만 그러겠느냐. 이미 사라진 책들이 있고 사라지고 있는 책들이 있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책들엔 '트래커'라는 그걸 달아둬야 하지 않나 잠시 진지하게 생각함. 



이제 정말 거의 20년전, 아주 오래전 수업에서 아도르노 <미학이론>이 리딩 리스트에 있었다. 

........... 아무도 읽지 못했던 책. 다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으로 시작 아무말하다 끝.  

그리스어 라틴어 불어, 수시로 등장하고 문학, 음악, 미술, (예술에 포함될 장르라면 무엇이든) 총망라. 

내가 경험한 책 중 가장 어려웠던 책. 그런데 지금 보는 이 책은 꽤 다르다. (.....) 존버, 존버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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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22-03-28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개는 그 마지막 기억이 맞더라고요. ˝책상 위에 두었다˝ 책상은 그 방에만 있는 거죠? 설혹 그 책이 잠깐 시간여행 중이라고 해도 아마 돌아올 때 좌표는 ˝책상 위˝일 것 같습니다. 그 책의 행방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꼭 알려주세요! 정말 궁금해요.

(혹시 모르니까 다른 장소의 ˝책상 위˝도 함 봐 보세요.)

몰리 2022-03-29 07:47   좋아요 1 | URL
아주 얇은 책이었으면, 분명히 있지만 찾지 못한다, 다른 책 안에 끼워졌거나 책장 뒤로 넘어갔고 이사갈 때 나온다, 체념이자 안심(?) 했을 거 같은데 이 정도 두께 무게인 책이 사라지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귀신이 곡하다... 이 표현을 계속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어요. 이 세상엔 없는 나도 이 세상에 없어선 안될 것 앞에서 통곡한다.... 그런 뜻인가?

곧 구입할 새 책과 별 개로 옛 책도 계속 생각하고 있으려고 해요. 책상 위로 돌아와라, 다시. ㅎㅎㅎ

라파엘 2022-03-29 0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찾고 있는 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답답하지만, 덕분에 책에 사연을 적어두는 일은 뭔가 멋지네요. 나의 사연이 적혀있는 책이라면, 그 책은 나의 기억과 감정이 묻어있는 단 하나의 책이 되겠군요 ㅎㅎ

몰리 2022-03-29 07:50   좋아요 3 | URL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했는데, 이 책이 자기를 다시 생각하라는 요청을 이렇게 표한 것인가... ;;;; 나의 가치를 몰랐던 너님, 다시 생각해! 이런 거였나.

그러고 앉아있었. 넋이 빠져서.
구입한 책이 오게 되면 아주 모든 문장을 남김없이 빨아들일 기세로 보고 있게 될 거 같기도 해요.
 



아도르노는 발자크를 사랑했다. 


"소년, 소년을 ..." 로 이어져야 할 거 같은. ;;;;; 

<문학 노트>에 발자크 주제 에세이들이 있는데, 그 중 <잃어버린 환상> 본격 탐구에 바쳐진 글을 그는 아내 그레텔에게 헌정했다. 내용이, 발자크가 천재적으로 증언한 바 자본주의의 야수성 이런 게 핵심인데 아내에게 헌정함. 


이들은 과연 범상하지 않은 세계에 살았던 것이긴 한 것이, 아도르노가 그레텔과 결혼할 때 호르크하이머는 결혼 선물로 사드 후작의 책 ㅎㅎㅎㅎㅎ <줄리엣>을 이 커플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발자크 주제 에세이도 그렇고 

아도르노가 맑스에 대해 쓴 글들도, 은밀하게 유혹적인 면들이 있습니다. 

....... 네가 나와 같다면.... ㅎㅎㅎㅎㅎ 이걸 깔고 말하는 글들. 

네가 나와 같다면, 너도 이들을 사랑할 것이다. 어떻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발자크도 그렇지만 

맑스. 오오오오. 하지 않을 수 없. 

아도르노가 전해주는 맑스는 한 번도 소문으로도 만난 적이 없는 인물.  

진짜야? ;;;;; 더 알고 싶어지지만 영어 번역, 한국어 번역 다 미흡하니 아직은 더 만날 수 없는, 아도르노가 전해주는 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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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2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읽었는데 제가 워낙 평전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책은 정말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발자크 책도 읽어야 하는데 생각만하고 있;;;
몰리님 덕분에 찾아서 읽어야겠다요.^^;

몰리 2022-03-28 17:33   좋아요 1 | URL
파친코 이민진 작가였나요, 자기가 아는 아주 똑똑한 중년 남성이 있는데 그의 은퇴후 계획이 발자크 소설 하나씩 전부 읽기라고, 90권쯤 되니까 은퇴후 계획으로 아주 좋은 계획이라고, 그런 얘기 했었어요.

아니 근데 그 계획 진짜 좋은 계획이다. 이 세계의 현실을 알수록 더 진짜로 인생을 살았던 거 같아지니까. (.....)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진짜로 이 세계 현실을 알게 하는 것들에 끌리는 거 같아요.
 



이 분, <미학 이론> 영어 번역하신 Robert Hullot-Kentor. 


이 분이 쓰신 아도르노 연구서도 있다. 제목이, 무슨 이런 제목이? 아리송한 느낌 주는 Things beyond Resemblance. 이 책에 프레드릭 제임슨이 쓴 아도르노 연구서 Late Marxism, 비판하는 에세이가 있는데 


완전 최고입니다. 

이 주제에 당신이 관심이 있었다면 꼭 당장 지금 바로 망설임 없이 찾아 보아야 할 에세이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비판이 이런 비판이야. 

설령 그가 틀리더라도 (그럴 리가, 그럴 수가, 없지만) 심지어는 그 틀림으로도 그는 옳음을 증명하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그가 본 그것을 말할 때, 덕분에 너도 나도 내가 본 그것을 말할 수 있게 되니까. (....) : 대충 이런 내용의 감격이 밀려 듭니다. 그가 그것을, 그 골수까지 파고 들며 말할 때. 


네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너는 너에게 유리한 것을 보고 그에 따라 너의 삶을 조직할 수 있다. : 무려 인문학자들이 이런 걸 지혜라고 전할 때, 야 좀. 그만 해. 그러려고 공부했? (......) 이러는 분이 한 사람만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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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3-27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찜해놓을게요 몰리님 감사해요

몰리 2022-03-28 03:16   좋아요 1 | URL
제임슨을 가혹하게 비판하는데, 그걸 조롱으로 보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조롱이 아니고 꼭 필요했던 (그런데 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비판.

이런 비판이 있어야
인종차별도 더 본격적으로 비판할 수 있고.... 등등 독자인 나의 내면에서 뭔가 해방되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