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전쟁처럼,별하나>

 

1. 신화 ---> 사람은 얼마나 취약한가? 열광하고 분위기 맞고,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허위-진실)에 관계없이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기-맘속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적절한 단계만 거치면 어느새 자기 것이 되어 이질적인 요소를 되받아들이기가 지극히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집단적 열광은 자기 몸안에 성찰의 싹을 키우지 않으면 후유증처럼, 레드컴플렉스처럼 지극히 삶을 혼돈스럽고 일그러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2. 아이러브황우석 회원 11만인지? 12만인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취약한 이미지 조작의 시대에 살고 있어, 언제 어떻게 용도 전용될지 모르는 것은 아닐까?  광고에 마음뺏겨 삶의 스타일마저 버리듯-드라마를 일상으로 가져와 제것과 남의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은 아닐까?

3. 1장에 기자들의 생활이 나온다. 수직적위계계열이 유난히 강한 조선-동아-, 상대적으로 수평적이거나 권한의 분산의 시스템이 조금있는 한국과 중앙이 상대적으로 나았다고... 퍽퍽한 일상과 IMF를 겪고,늘어난 지면에 더더 경쟁에 시달리는 일터구성원이 너-나 다름없다. 사익만 추구하는 언론시스템 역시 말단기자-중견기자의 서러움이 베여있지만 집단의 사고는 최소한의 윤리의식도 없는 파괴적 노동자로 자멸하고 있는 듯하다. 열심히 일하는 평기자들의 노력보단,  유연하지고 들으려고하지도 않는 시스템을 보면 안스럽기 그지 없다.  공해문제로 시달린 것도, 원재료를 속여 시달린 것도 없으니 오죽할까하지만,  시달리기만 하는 대중이 늘어나는 이상, 불감증은 여전히 커질 듯하다.

 4. 도 아니면 모인 일터분위기, 죽도록 일하거나 잘리거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상층-협박논리는 결국 돈도 안되고, 평기자도 모두 힘들게 한다는 것을 제대로 느껴져야 할텐데. 우리사회는 한번도 그 협박으로 달리는 상층에 대해 사회적 제어를 하지 않는다. 그 지질이 불쌍한 간부와 일터성원과, 사회에 대한 사투로만 내몰리는 분위기가 서로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묵시록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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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근대적 화폐구성체의 요소, 즉 근대 화폐의 발생과정에 관여한 네 가지 요소로 근대의 시장, 국가, 사회, 과학에 주목한다. 이 네가지 요소를 저자는 각각 화폐거래네트워크, 화폐주권, 화폐공동체, 화폐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화폐는 이 네 가지 요소가 빚어낸 '마법의 사중주'를 통해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말한다.(by 책소개)


우리 차를 찬양한 책으로 유명한 것은 1839년 초의선사가 지은 '동다송'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보다 1000여년 앞선 760년 육우가 '다경'이란 다서를 펴냈다. 일종의 차 입문서이자 종합서다. 태어난 곳이 알려지지 않은 육우는 오랫동안 중국 남쪽 차 산지를 돌면서 차나무의 생김새와 차의 종류, 차를 만드는 방법, 다구, 차의 내력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거쳐 책을 펴냈다.

그는 차를 마심으로써 정신과 도덕에 미치는 효과를 강조하고, 다구를 갖추어서 차를 달여 마시는 의식 등 모든 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오죽했으면 '육우의 다경이 있고서야 진정한 의미의 차문화가 생겼다'는 말이 나왔을까. 번역은 김봉건 동의대 대학원 철학과 다도전공 지도교수가 맡았다(by 수암님)

1. 291쪽 " 우리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두 개의 중요한 장벽이 허물어지고, 매끄러운 하나의 평면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두 장벽 중 하나는 공동체의 안과 밖을 가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르고 있었다. 두 영역이 혼동되고 뒤섞이면서 하나의 균질적인 평면이 드러났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화폐공동체'라 부른 근대 '사회'이다.

근대 '사회'의 탄생은 한편으로 공동체 외부에서 발달한 질서가 "공동체 내부로 침투해서 공동체에 해체적인 영향을 미치는"과정이고, 다른 한편으로 사적 가계의 활동이 "가정의 어두운 내부로부터 공론 영역의 밝은 곳으로 이전되는"과정이다. 우리는 근대적 화폐구성체의 성립과정에서 '외적인 것의 내부로의 침투'와 '사적인 것의 공적 진출'이라는 두 측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뱀발 01.  무심코 살아있는 나뭇가지에 올려놓은 가벼운 돌멩이때문에 그 나무는 시간의 흐름에 그 돌멩이를 피해 안간힘을 쓰며 에둘러 자란다. 별 것 아닌 것이 공동체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횟대질하거나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고나 있는 것은 아닐까? 지역통화나 분권은 사라진 관계들을 조금은 회복시킬 수 있을까? 공동체나 공적영역과 관계의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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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위에 떨다>,<직선을 버린다>,<부드러운 직선>

 

 

 

 

1. (뱀발) 일터일로 금강을 넌지시 보며 다녀오는 길, 뜬금없는 생각질이다. (ㄱ)에서 (ㄹ)로 이어 품어본다.

2.  (기역)  수평선에 (극좌)----(좌)---(중도)---(우)--(극우)를 넣어보았다. 아무래도  인텔리 냄새가 많이 풍긴다. 

직선의 바탕에      ------------------------------------------------

                                           (머리의 그늘)이라 넣고 싶다.

 

2. (니은)  (기역)의 수평선을 세워보았다.   수직선 옆에 물살을 넣었다.

              !                                             

              !!

              !!!

              !!!!!

             !!! !!!
            !!!    !!!!

         !!(좌-진보)!!

    !!(보수)(보수)(보 수)!!

!!(극좌((우)(우)(우)(극좌)!!

   !(수구)(극우)(수구)(좌)!

      !(극우)(수구)(극우)!

           !(수구)(꼴통)!  

              !(꼴통)!
----------------------------------------

      ( 몸 의   그  늘 )

제일 앞에 물살을 가르는 거슬러 올라가는 진보를 넣어보았다. 세상은 그나마 보수도 없는 듯하다. 좋았던 것이나 좋은 것은 지켜야할 것은 아닌가? 어쩌면 지키는 방법도 지켜야될 의지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 탓하며 진보의 그늘에서 숨쉬려하는 것은 아닐까? 앞선 물살을 먼저 만나 온몸으로 부딪는 덕에 보수의 영역은 더욱 더 커지는지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지키려는 사람은 없고 물살에 떠밀려가는 (우) 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진보와 보수)에 영원한 덕을 보고 있는 (수구)와 (꼴통)들이 세상흘러가는 것과 상관없이 물살에 대한 감마저도 없지 제 짓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디귿)  (니은)을 옆에서 보았다. 그리고 오른쪽 좌표를 시간축으로 하고 사선의 아랫여백을 자본주의라 넣어보았다.   자본주의란 경사는 시간이 갈수록 급해지는 것은 아닐까? 바지런히 움직여도 자본주의의 경사도는 심해 (진보)와 (진보-상식)의 물살은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

그리고 밑엔 [(몸)과 (몸-마음)의 그늘]이라고 가두어 두었다.

4. (리을)  (디귿)이 너무도 퍽퍽하고 맛이 없어  시간의 좌표에  시이소오의 받침대를 두어봤다. [(몸)과 (몸-마음)의 그늘]로 (좌-진보)와(진보-보수),(진보-상식)의 무게중심이 더 더욱 커지면 [(자본주의)의 그늘]이 와르르 사그러들 것 같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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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3-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과 들엔 봄풀이 파릇하고
나뭇가지엔 연초록의 새순이 앙증맞게 움트고 있다.
무딘 가슴에도 봄바람이 스며든다.
가끔씩 오르는 산, 그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풍경이 조금은 낯설다.
사람들은 봄 철쭉, 가을 단풍을 좋아하지만,
난 겨울 산이 좋다.
드러난 계곡의 장엄함과
벌거벗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오묘한 자태의 나무들의 아름다운 굴곡을 보노라면
왜 사람들이 겨울 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 했는지 알 것 같다.
산의 깊이를 맛보려면 겨울 산행이 적격이다.
어느 책에선가 이런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산을 오르려고만 하기 때문에 “등산(登山)”한다고 한다.
그러나 산을 찾는 참맛을 알려면 “입산(入山)”의 겸허함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아마도 중이 되려는 사람들은 “입산한다”고 하나보다.

문자메시지와 인터넷게시판이 어지러운 것을 보니
또 선거철이 되었나 보다.
평소에는 없는 듯 지내던 사람들이 공직에 출마한다고
깍듯이 머리 숙여 겸손한 어투로 장문의 출마의 변을 늘어놓는 꼴이란.
변죽만 울리는 그러한 행태들이 제법 기성정치인 티가 난다.
이빨도 많이 늘었고, 썰도 제법 그럴듯하게 푼다.
자주와 평등은 NL과 PD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진'은 '노동자의 힘'을 결집하지 못한다.
누구의 말처럼, 운동이 관찰-판단-실천-성찰의 연결고리를 잃은 지 오래다.
자신이 만든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실수에 기댄 투쟁을 전개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미래를 찾을 수 없다.
자칭 “좌파”라는 집단은 뛰어난 대갈빡과 쌈박한 문건 만드는 재주를 소유했지만,
번번이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조직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오만과 편견의 결과는 아닌지, 한 번쯤은 냉철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나 같은 주변인과 심적 동조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좌파는 운동을 너무 머리로만 하려고 한다.
속칭, 짱구를 많이 굴린다는 말이다.
그들이 객체화하고,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저 따스한 가슴을 소유한 사람일 뿐이다.
거창한 이론(담론)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그릇으로 자유롭게 흐르는 물을 가두려 하지 말라.
그러면 물은 분명히 그것을 거부한다.
역류(逆流)하는 물은 사나와진다.
반드시 새로운 물꼬를 트고야 만다.
평등사회를 지향하며 전진하는 활동가들이여,
진정 그대들이 전진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펌 fron 날세동)

 

1. 아이들도 다 약속이 잡혀, 막내녀석과 안해와 앞산 산책, 연신 숨도 쉬지 않고 쫑알거리는 녀석은 힘들다면서 연신 달음질이다. 목련이며 개나리며 봄내음이 한창이다. 대학 연못에도 들르고, 떡볶기집도 들르고 아이스크림 32cm짜리며, 동네버스까지 구경시켜주었더니 좋아라 한다. 돌아오는 길 큰녀석들의 시샘도 한옹큼이다.

2. 안해의 선거 구설에 며칠 신경이 쓰이고 술로 이어지더니 몸이 피곤하다. 저녁 무렵 동네 한바퀴 달려주다. 돌아와 손님이 찾아와 또 선거이야기에 아침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3. 출근 길, 목련들이 개나리분위기에 앞서 도열해 있다. 봄은 올해도 여전히 푹 익어간다.

4. 산책 5k, 조깅 5k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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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2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 5k...가장 부럽군요.
물론, 사랑하는 분과 산책하는 안해분이 가장 부럽지만요^^

여울 2006-03-28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녀석인데 지나친 사랑을 받아 버릇이 없어지고 있죠. 콩콩거리며, 쫑알거리며 돌아다니고, 3보이상 구보를 생활습관으로 하고 있는 놈이기도 합니다. 나에겐 조르바?같은 넘이기도 합니다. 사고패턴이 신기할 정도죠.




파란여우 2006-03-2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요? 창의력이 탁월한거잖아요. 조르바처럼 춤도 잘 출래나요?^^

여울 2006-03-3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연한데다가, 내일이 기다려져 자다가도 이것해야 되는데로 늘 들떠있죠. 뒤로 넘어갈 듯이 깔깔거리고 웃고, 가끔은 엽기행각까지 주저함이 없죠. 그나마 춤은 양념이지요. ㅎㅎ
 

 

 060325 23:00-익일04:30 넷->셋->둘

 만나기 힘든 o형으로부터 연락이다. 갑작스런 전화에 놀라기도 했지만, 가까운 지척이라, 잠시 뒤 ㅎ형과 함께 우마시란 집에 도착했다. 이미 술이 얼콰한 ㄱ전처장이 낮에 경기한 야구시합으로 들떠있었고, 늘 뜨겁고 남생각 먼저하는 좋은 마음씨를 보인다. 뭔가 할 이야기가 ㅇ형과 있었던 듯. 하지만 접고 일어선다.  사기로 만든 컵에 나온 따듯한 정종은 첫 맛이 생각보다 독하단 느낌이 들었다. **연맹일이며, 학교이야기며 서로 내놓고 섞인다. 불감증과 피해자의식에 휩싸인 자기그룹 중심성, 노동자의식인지 시민의식인지? 공공성을 털끝만치도 비치지 않으면서 역시 지상 선은 이익인 듯. 일말의 양심과 상식은 여지없이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익'의 영역에 사로잡힌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퇴행현상인가? 유아기로 돌아가려는... ...

'내가 이렇게 하면 아무도 모를거야. 설마 누가 알겠어' 하지만, 모두 부모님 손바닥안이듯. 공공성보다 양심과 상식의 상실로 점점 퇴행의 속도를 덧붙이는 것은 아닐까?

03:00쯤 헤어졌다. 만나기 힘든 ㅎ형, 가는 길 주말 포장마차도 어둠에 잠겨있다. 한집 해뜰때까지 하는 소주집은 새벽으로 가는 우리같은 손님들을 많이 태우고 있다. 그래도 중심을 잡으려, 현실의식을 놓치지 않으려하는 모임이라 여기는데, 여전히 수동성은 세월의 결에 점점 빛에 바래는 것 같다. 세파에 그저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는 듯하다. 어쩌면 바르게**회류로, 계모임으로... ...그래도 연어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친구들이 보기 힘들다. 어쩌면 더 세파에 영합하려하고 안주하려는 듯. 그러다보면 결국 모임에 얻으려고 했거나 얻으려는 것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러다보면 보수만 남고, 보수의 말미엔 수구만 넘치고, 진보는 물살을 가르기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모르는 것일까?

새벽이 성큼 오기전 돌아오다.  그래도 목련등은 눈부시다. 목련꽃침은 맞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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