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의 저자 최준식 교수가 음식학자 정혜경 교수와 함께 이런 의문을 풀어간다. 1부 '한식의 문화사'에서는 역사를 3시기로 구분, 시기별 음식문화의 맥락과 실체를 찾는다. 밥을 중심으로 장문화가 정착되는 고대에서부터 육식전통이 부활한 고려시대, 고추가 들어오면서 오늘날 한식문화의 전형이 완성된 조선 시대를 두루 살핀다. 이후 2부 '원리로 본 한식의 세계'에서는 갖가지 음식을 사례로, 그 속에 담긴 조상들의 숨은 지혜를 찾아본다.<책소개에서>

[메모]
정수일의 시야와 이어령의 시야는 어떻게 나뉘는가?
정수일, 이슬람, 국제적
이어령, 한중일, 유교적

두번째, 세계 속의 한국 문화를 볼 때에 무엇이 기준이 되는가?
그것이 한국의 대표성인가 상징성인가?

세번째, 민중의 삶과 관계는 어떠한가?
네번째,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엮은이의 세계관, 갇힌 세계관

어쩌다 시골길을 지나다가 바위틈이나 벼랑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를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열린사회의 적으로부터>

 

 



 

 

 


SXE.. 이 뒤바뀜, 알파벳의 꼬인 자세가 에로틱하다. 성에 대한 종교, 예술, 문화 전반에 걸쳐 고대부터 현대의 포르노까지 춘화까지 결들이며 충만하게 꾸며진 듯 하다. 그냥 생리적인 호기심만이 아니라 그것을 좀 더 미지근한 지적 시각으로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 우리나라의 성은 어떤 음침함과 어둠속에서 묘하게 엉키는 심리보다는 해학과 자연과 교감하는 건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성 숭배문화>은 이러한 한국인, 한국문화의 성을 그래도 전문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보이는데,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전에 <악마의 정원>를 봤었는데, <식탁 위의 쾌락>도 그런 엇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 같다.

카마수트라.. 이 책은 그 야릇한 명성에 비해서 그렇게 야한 책은 아니다. 아니 야하기 보다는 차라리 진지한 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인도인에게서 남자와 여자는 소우주의 각기 다른 씨앗이고 해와 달을 상징하는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세속적으로 보면, 건강의 차원이고 좀 더 시각을 넓히면 우주 에너지 교감의 활성화의 차원에서 이러한 남녀의 자세들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TexTan으로부터)

 뱀꼬리 들.

읽은 책 <한국인에게 밥은 무엇인가>

읽는 책 <소나무>

읽을 책 <한국의 성숭배문화>  익숙한 책들을 대여해서 보고 있다. 값도 제법하기에, 생각보다 <소나무>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적이 불과 십년을 넘어서지 않는 것 같은데. 알듯말듯, 우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것, 생각타래도 풀 겸 편하게 골라 본다.

허겁지겁-가족과 온전히 밥한끼 먹을 시간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밥벌이를 사기치지 않고 온전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점심시간 늘리기, 친환경만이 아니라 우리음식-오행 제대로 먹기, 일주일에 하루 음식해서 함께먹기 등  제대로 먹자는 운동도 있어야 될 듯 싶다.) 

밥한끼 가족들과 친지들과 허리띠 풀고 먹을 여유가 있어야 할텐데. 그래도 잘 살 수 있을텐데. 박물관에 박제처럼 전시해 놓은 듯, 연중행사다. 어찌 이리 되었는가?

다들, 밥한끼 제대로 느긋하게 잘 드셨는지? 오붓한 한끼 나누는 한주되시길... ...

일상에서 포르노만 떼어서 삶과 마치 다른 놈처럼 돌아다니는 성 아니 포르노도 매한가지는 아닐까?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허겁지겁 해치워야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상에서 다 떼어내어 전시하는 것...이제 나머지 영혼도 떼어내어 전시하거나 팔거나 해야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가 건강한 것은 잘 먹고, 잘 누고, 잘 싸다니는 것은 아닐까? 아이처럼 건강한 나날 되시길... ...(물론 저한테 하는 소리군요...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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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모임가는길,도서관가는길 - 때론 술취한 주인장때문에 엄한데 묶여 하루를 보냈지만 어김없이 찾아주고 아껴줘서 슬어버린 녹이 슬며시 벗겨진다. 덕분에 출근시간도 당겨졌고, 산소품은 아침바람에 숙취도 일찍 풀렸다. 약속이나 한 듯, 가을바람과 가을하늘, 그리고 우수마발이 짬짜미를 한 듯, 다 내것이다.  071006-071012 6번 80km, 출근 25'-35', 퇴근 35'-40' (그림은 진보넷 antiorder블로그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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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10-1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의 그림중 처음 보는 그림이네요. '역시 천재야 천재...어떻게 저렇게 그릴 생각을 했을까' 감탄.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이지요 ^ ^

여울 2007-10-13 12:06   좋아요 0 | URL
천재예요.ㅎㅎ 대단한 상상력이지요... 잘 지내시죠. 날씨가 넘 좋습니다...늘 좋은 나날 되세여 ㅁ.
 

 

 나흘 연속, 피로가 몰려온다. 어제 아**미 몇분의 숙원사업이었던, 박**교수님과 기획 겸 운영기조에 대한 논의를 한 날이다. 나를 포함 ㅂㄴㅇ 교수님, ㅅㅁㅅ,ㄱㅇㅎ,ㅂㅈㄱ,민주노총 조직국장 ㅇㅅㅎ, 술을 드시지 못한다는 정보와 달리, 교수님은 기분좋게 마음을 열고 술잔을 기울이고 많은 말씀을 내놓으셨다.

 

꼭지 


- 세계일주(두아이를 데리고 2년동안? 세계일주를 한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하는데...)

 

 

 

 

 

 

 

 


- 이현상평전 등 평전 저자들과 만남 추진(ㅇㅅㅎ 간절함이 배인 제언)

 

 

 

 

 

 

 

 

- 공산당선언 원문 강독(박*영교수): 회원-청소년인문강좌(역사-개념어의 역사, 기본소양 높이기, 교수님 제언)

- ‘왜 맑스를 다시 데려와야 하나‘ 학교 개설 7-8강

   운영방법: 회비, 조별과제(현실 적용), 입학-수료식 (ㅂㅈㅂ제언)

   20-30명

- 활동가 교육(근무시간 - 주4시간)시스템 구축: 문화-호흡의 차이, 저렇게 살고, 돈 많이 받지 않아도 저렇게 재미있고 알차게 일할 수 있구나하는 느낌이 주변에 배이도록 하는 일(3-4년, 체득되도록) 

 

- 이주노동자: 원도심에 식당들이 생기고 있음. 2세 소외, 투표권...

 

대전 조폭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는데, 의외로 대전 보스들이 한탕하고서 중국등지로 튄 상황이라, 와해 상태라 한다. 행동대장급들이 신규아이템을 모색하는 상황이란다.


 

 

 

 

 

 

뱀발.

 

조금 피곤하다. 그래도 할말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몇분이 오래전부터 품어온 일이라, 그 시작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점이 설레임을 만든다. 설레일 때가 제일 행복한 것인지 지난 뒤에 어김없이 증명되지만 말이다. 열정이 들키고, 뿜어나오는 열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들. 피곤함을 가시게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군데군데 열정을 훔쳐본다.?

 

* 지역 민**총 선거에 대한 이야기/사회단체, 문캠프에 뜨뜻미지근한 참여에 대한 이야기들이 비켜서지 않을 정도로 나눈다. 제도 안-곁-밖과 올인, 기다림...무엇일까? 거시-미시-일상의 뜨거움-선순환의 인입방법...무엇일까?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머문다.  그리고 한가지 끄적임에 대한 반성. 글쓰기에 대한 되돌아봄(타임지의 문체-쓰기방법 생생함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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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재 1%안만 들어가는

 동네 대학(ICU)이 문을 닫게 생겼다한다

  아무도 사립대학이어서 어떻게 될지 알려고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안해가 코디일을 한다

  백만원넘게 받는다 하는데 일가에 깔린

  다단계같은 돈덩어리 할부금과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니 남는 것이 별반없다

  누구도 코디를 특수고용노동자라고 알려주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일하여 왔지만, 노동자라고

 파업은 다른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알았다

 누구도 파업의 권리가 있다고, 노동자임을 알려고도 알려주지도 않는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뱀발. 그림자처럼 싸움은 늘 곁에 있어도 정작 나만은 전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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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돈'은 밝히는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방식이 유별나긴 하지만 -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라고 묻자 동구에 있는 나무에 발가벗고 매달려서 그 나무를 놓치않는다면, 그렇게 해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긴 하지만 - 사람관계까지, 아니 이젠 너무도 당연하여 얼마나 덜 손해보느냐?로 행동을 옮긴다. 철저하게 돈만 밝히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된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런  돈을 중심에 놓은 이해타산이 좀더 더, 오랫동안 벌기위해 쓰는 몸짓이 이타심이다. 수전노-구두쇠에서 전후좌우를 살피고 시간과 때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까지 고려하도록 진화를 하고 있다. 내가 잘되고 좀더 벌기 위해서 문화를 고려하거나 배경에 관심, 이타심까지 철저하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2.

정치란 무엇인가?  언듯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추악하다.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한자리해 먹으려는 명예욕으로 떡칠을 한 모습. 돈으로 그 힘과 권력을 사려는 무리들만 연상작용으로 떠오르는 모습. 추악함. 가까이해서는 안될 것들. 누가 해보았자 다 똑같은 것. 이 상식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인식에서 출발한 이상적인 정치란 어이없게도, 물론 반작용의 산물이겠지만 뭔가 이상적인 것을 그려놓고(그것을 이데올로기이든, 이념이든, 진리라고 생각하는 가치이든, 도덕이라고 하든, 무소유라고 하든) 그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정치는 진리이다. 정치는 도덕이다. 진리나 도덕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들은 전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현실은 아닐까? 아니면 이상적인 상을 그려놓고 그것에 근접하지 못하는 것은 전부 쓸데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면은 아닐까? 정치의 실종 이면에는 끈끈이처럼 붙어있는 것이 진리이거나 도덕이거나, 나의 머리속 틀로 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실종된 이면의 현실은 아닐까?

-1.

(-3)에서 언급한 '돈'이나 '이해타산'을 지금보다 더 나아진 모습, 결과로 놓자. '이익'이라고 하자. 사적 이익, 공적 이익 줄여서 사익, 공익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니 좀더 수월한 것 같다. 이 세상에 두사람만 있다면 (나-너)의 이익이 시이소오가 된다. 내가 많이 취하면, 너가 부족하고, 너가 많이 취하면 내것이 줄어든다. 그러면 셋이면 좋겠다. 셋이상의 관계에서는 공익이 생겨난다. 그 공익을 위해, 제한된 것(힘,자원,역량)을 공정하고, 효율성 있게 써서 지금보다  더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0.1

 이것을 정치라 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방법을 그대로  '돈'이나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해라. 셋이면 을 위해서 넷이면 의 최대이익을 위해서 하라. 그것이 정치다.

0.2

 그러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끼고, 더 공부하고,  더 쓰고 하는 일은 정치와 무관한 일이다.  도를 닦는 일도, 이 다음에 그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 하겠다는 일은 모두 정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다. 내 식성에 맞추라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먹으라고 하는 일은 더 더구나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다.

0.3

힘이 적다고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힘을 키우기 위해 하는 일이 정치이다. ,  나의, 우리의, 정파의, 정당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에 복속시키려는 행위가 정치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 수준에 대한 합의, 한계에 대해 명백히 인식하고, 그 보다 낫게 만들기 위해 힘을 만들어내고, 연결망을 만들고, 한번 더 생각을 나누게 하고, 고민을 섞게하고, 한발자욱 딛게 하는 것이 정치이지 않을까? 맞다고 확신하는 것에 규합을 시키지만, 늘 그 사람 그 범위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면, 10년내내 만나는 사람과 접촉점만 있다면 그동안 정치적인 행위는 하나도, 아니 퇴행을 시키는 행위를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0.4

뭔가 정리가 되어야만 움직이는 습속들과 행위들은 여전히 비정치적인 행위를 양산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중과 유리되고, 조합원과 만나지 않고, 끌어당기려고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는 아닐까? 정파가 달라 만나지 조차 않고, 일도 하지 않는 행위는 유아적 행동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퇴행자임을 공개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0.5

제도권에 진입을 하고도, 가지고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힐난하는 행위도 그 퇴행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까? 눈높이를 대중에 맞추지 못하고, 우리가 겨우 가지고 있는 힘높이에 맞추지 못한다면, 그 곳에서 출발하지 못한다면 그 끊임없는 행위는 우리는 정치도 모르는 바보입니다를 반복적으로 자임하는 꼴은 아닐까? 모임성원의 현상태에서 더하기 일을 하는 행동은 없고 사고만 있는 행태도 마찬가지는 아닐까?

1.0

 마키아밸리가 의도한 전제,  '공익 한점' 보태기는 사라지고, 기교만 아니 술수만 가져가서 응용하는 현실 정치는, 정치를 실종시킨 원흉은 아닐까? 정치라는 로망도 살해하고, 정치가 마치 이념을 주입하는 것인냥, 사상을 공부시키는 것인냥, 정치가 도를 닦거나 도덕인 것처럼 머리 속에 주입한 결과, 숨도 쉬지 못하고, 호흡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사회단체는 어쩌다 대행기관이 되어버리고, 혼 마저도 위임과 위탁하는데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1.1

돈을 벌 듯 하는 모든 행위를 공익을 위해, 우리가 합의하는 역량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는 일은, 사칙연산 가운데 불과 덧셈을 만드는 일은 아닐까? 손해가 되면 분노하고 흥분하는 것처럼, 손해가 예상된다면 가장 적은 손해를 보기위해 노력하는 행위, 봉우리를 일단 올라가고 다음 봉우리를 향하자고 하는 일, 저 높은 산 정상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지치고 힘들지만 올라온 봉우리와 주변의 친구들을 냉정히 살펴보는 일, 다음 봉우리를 향하기 위해, 날강도같은 놈들의 트럭이라도 올라타거나, 차비를 얻으려고 길거리공연이라도 하는 일들, 사라진 일상을 복원하는 일은 어떨까?

1.2

,뒷골목에 외롭다고 뜨거운 눈물만 뚝뚝 흘릴 것이 아니라, 점선같은 관계망들을 만들어가는 일, 더하기 일을 위해 함께하는 것, 상상의 발칙함들... 일상적인 행위가 사라진 지금, 일상적인 뜨거움조차 소멸해버린 것일까? 복원가능한 일일까? 블로그란 공간에 자신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업도 훌륭하지만, 일상의 뜨거움과 아무런 힘도 없을 것같은 한점을 사회에 던지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은 아닐까? 복원을 전제로 한다면...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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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와 진리
    from 木筆 2007-10-16 15:17 
    (생각품기) 정치와 진리, 책세상문고, 한나아렌트 정치라는 말에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물리지요? 이 단어를 쓰면 저 자신도 물립니다. 현 시류와 겹쳐져 기분도 별반 좋지 않군요. 정치하면 흔히들 떠올리시겠지만 저도 마키아벨리를 떠올립니다. 군대 근무중 불침번을 서면서 진중문고판을 읽고 무슨 이야기인지? 서양사에 무지한 나로서 이해하기도 곤란하였답니다. 그 무지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 궤적을 읽으며 느낌이 달라졌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