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같은 생각낱장을 올려놓는다.  회비라는 것이 혹세무민-장삼이사가 좋아할 수 있는 쩐을 포함하되, 몇가지 생각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보다 더 알게되었다거나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유무형의 것을 말한다고 하자. 그런데 지켜야 될 약속은 그렇게 쩐을 포함하여 얻게된 관계와 작업을 통해 얻은 것은 혼자 꿀꺽하면 암튼 그날부로 제명되거나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거꾸로 그렇게 얻게된 앎이나 관계나, 행동이나, 맥락이나, 상황들은 삶 속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족보. 언제 그 사람과 어디서 논쟁하다 얻은 생각씨인데, 그 생각은 내 속에 들어와 이렇게 증폭되어 이렇게 쓰이거나 표현되었다라는 추상도 괜찮고, 정말 아끼던 시집인데, 그 시집이 선물로 보내져, 장마비 내리는 어느날 심금을 울렸던 적이 있는 것이었는데, 그 시집은 누구누구를 거쳐 누구의 선물로 있다. 거나 똑같은 천원이 아니라, 몇끼를 굶은 상황에서 사랑하는 님을 위하여 아낀 천원은 마음이 굶주리던 차에 시집이나 차 한잔을 마시기 위해 쓰여졌다하고 하는 관계의 내력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회비란 애초의 흔한 생각에 몇가지 덧칠을 해본다. 꼬치도 끼워보고, 꽁짜로 얻은 것 같은 것은 절대 혼자 인마이포켓하면 안되고, 드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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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91012 죽음, 자유 그리고 사회
    from 木筆 2009-10-13 14:34 
    [칼 폴라니로 가는 여러 산책길에 대한 소묘]란 주제로 텍스트 [초국적자본주의인가 지역적계획경제인가]에 다른 색깔들을 배경삼아 자료를 만들어본다. 가장 잘배우고 알게하는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란 말을 실감한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책들이 섞여 어디에 기록했는지도 깜박한다. 어쩌면 하고싶은 이야기는 산책길에 나서기전 준비사항에 있다. 경제인이란, 이분법에 의한 근대인, 직선적인 시간관이나 발전관에 녹아있는 우리는 다른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블로그의
  2. 마음과 사람의 거래를 주장하며
    from 木筆 2010-01-12 09:15 
    폴라니의 경제인류학의 한 장면 가운데 그러한 구절이 있다.  "   "   100112 관계를 통해 얻게된 유무형의 것의 내력을 말하거나 남기는 것은 단순한 돈이나 이익의 관점을 넘어선다. 열정같은 뜨거움, 이성의 날카로움, 그리고 밋밋한 일상에 다른 사람의 향기가 배이게 만드는 새로움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무형의 것을 복식부기처럼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자본이 그러한 모
 
 
 

 

 만일 어느 블로거가 이미 얻은 권리들을 포기하고 생계마저 막연한 마을로 돌아갔다고 치자. 그리고 그 블로거의 마음이나 삶과 고민이 배여나는 글들과 생활을 고스란히 느낀다고 치자. 가장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고 그런 삶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겠지만, 숲과 현실에서 겪는 아픔과 슬픔, 기쁨을 귀동냥 마음동냥할 수 있다면, 한번쯤 아니 사회단체에 후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서툰 생각은 그(녀)의 삶에 회비 한점내는 것은 어떨까? 

슬그머니 회비라는 것이 그 파릇파릇 노릇노릇한 것이 아니라 - 최저생계가 환산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 조금 더 다른 관계의 시도는 어떨까? 밋밋하거나 그 줄타는 경계가 아니라, 당당한 밥 한점은 어떤가?  삶에 후원계좌를 만드는 일은 어떤가? 그렇다면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어 앵벌이하는 일도 생길까? 어떤 세상인데 가당찮은 생각을 하느냐구 핀잔을 받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호혜일까? 간섭일까? 의도된 삶으로 살아질 우려는 없는가? 현실은 그 조건에 맞게 어떻게되든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일가? 어렵고 힘든 삶이 하나 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경중이나 논리에 맞는 것이냐구 핀잔을 또 받는 일이 될까? 그러면 기간이 정해진 삶은 어떨까? (무슨 기획서도 아니고 삶을 흥정하다니??!!), 아니 순수한 의도를 좀더 넓혀보자. 이렇게 살아볼테니, 나의 삶에 후원을 하자고 한번 당당해볼 수 있을까? 당당한 삶의 경로와 맥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니, 그 삶의 숲에 딸린 떳떳함의 그늘을 함께 나누자고, 비단 돈만이 아니라 표시나지 않는 선물, 생활의 경계선은 만족시킨다는 가정하에 진도는 나가볼 수 없을까? 

모든 물건이 서로의 관계로 물들일 때, 그 선물이 맥락을 온전히 함유한 채, 다른 삶의 자원자에게 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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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한 사랑

 

양손에 무얼 들고
내려놓으려는데 자리를 못 찾아
허둥대는 사람은 중얼거리지
오목한 것, 오목한 것 하고 중얼거리지

저절로 오목한 건 흔치 않아
그릇을 빚고 둥지를 짓고
두 손 오므리거나 팔 벌려 껴안거나
오목한 것은 그래서 그릇이 아니라
씀씀이 같은 것

나를 들고 있는 시간이 오래되면
고인 물처럼 악취가 나지
나를 내려놓고 툴툴 털고 싶을 때
퉁퉁 부운 마음 내려놓고 싶을 때
오목한 것

내손을 떠나서도 내가 빗물처럼 흩어지지 않게
정갈하게 받아두었다가
지친 걸음으로 돌아오면
옛 시간을 말갛게 빨아 개어두는
무의식 같은
눈동자 같은
오목한 나의 사랑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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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07-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퍼갑니다.

여울 2009-07-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ㅂ.
 

 

     
 

사무실에 애기잠자리가 자태를 드러내며 앉아 있다. 인기척이 있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물끄러미 보다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은 날개에 손을 댄다.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은 정도의 가벼움. 작은 꼬리엔 하늘을 물에 담은 하늘색 한점.  

조심조심 사무실을 나와 흐린 하늘, 손가락의 무게를 주지 않고 날려보낸다. 스르르 스르르. 엄청난 속도의 잠자리가  손안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바람보다 빠르게 날개짓하여 날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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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은 있는데 헌신은 없다구!!" 

며칠내내 책이 읽히지 않는다. 마음이 증발되어서인지 일터의 바쁜 상황들 때문인지 마음을 식히던 도자기 책들에 시선을 올려놓기도 마뜩하지 않다. 비는 요란하게 몰아쳐가고 중부권을 올라갔던 비는 다시 흩날리기 시작한다. 지난 주말의 느낌을 몰아쉬지도 못했는데, 한밤의 전주곡을 음미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일주일이 횡하니 화살처럼 속력을 더한다. 

곧 5주년 기념 강연. 참* 운*위, 뒷풀이를 인근에 두고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묻어났다. 애정의 깊이 - 헌신의 강도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토로, 자책감-그것이 아니라 모색의 방법에 대한 진지함. 밤은 깊고, 까칠함은 현실을 밀고가길 재촉한다. 서슴지 않는 발언들이 또다른 애정으로만 꽂힐까? 또 다른 헌신과 추진력으로 나아갈까? 애정만으로는 현실을 밀고갈 수 없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역으로 전부의 책임이다. 애정도 분산되면 아무 것도 태울 수 없다. 현실은 그렇게 무지막지 하다. 애정이 모아지고 더 뜨거워지면 헌신으로 불타오를 수 있을까? 

마음은 그 자리를 배회한다. 그곳에 머물러있다. 이야기의 느낌, 톤, 강도 바라보는 시선은 완급과 부드러움, 아쉬움의 변주로 흐른다. 빠른 박동의 새김. 드러나고 표현되었던 애정을 나의 입출고장치로 들어가 편집되는 일은 없겠지. 무엇을 주저해야되는지? 무엇을 해야되는지? [앞끝만 있는 사람들]과 [뒤끝있는 사람들]이 앞끝과 뒤끝으로 이어져서 해보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행동의 연대, 행위의 연대는 다섯살이 되어도 서툴 수밖에 없겠지만 별반 주저할 일은 없지 않을까? 

행동의 교집합으로도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이기에 별반 주저할 일은 없지 않을까? 

뱀발. 물론 이것은 내생각이다. 송위원은 뒤풀이에 늦게 합류하여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고, 시간을 정지시킨 채 논의와 열정을 이어간 분들의 충고와 애정에 데이기도 베이기도 했겠지. 스스로 핑계를 대며 일들을 놓치고 있는 책임도 돌아오고, 그래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겠지. 또 다른 이는 반복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되풀이되는 일상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행위와 움직임을 지렛대 삼아 달라지거나 쏠쏠한 재미의 불씨가 살아나길 바래본다. 결혼과 가사, 일터일로 만만치 않겠지만 겪어왔던 지난 사무국의 지칠줄 모르는 저력을 상기시켜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다 지금을 위해 그렇게 밤낮없이 논의와 논쟁으로 길을 걸어왔던 것은 아닐까? 아무 것도 없던 한점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놓쳐버리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울 것 같다. 내가 아니라 나-너로 무게중심을 아주 조금만 함께 이동했으면 좋겠다. 시이소오 중심으로 조금만 더, 함께. 

090703 참* 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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