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적인 사회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해방은 개인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다. 사회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들인 에너지는 개인에게서 자유를 향한 힘을 빼앗아버린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볼 경우 개인이란 아주 생생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할 경우 개인이란 관념은 단순한 추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지 않는 그 어떤 내용도 갖고 있지 않다. 즉 개인이, 사회가 그 자체의 상황을 넘어서는 데 조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저 사회를 넘어서려는 충동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201


 

반짝 1. 개인이 사회를 넘어서려는 충동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개인의 해방은 해가 된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보면 개인은 아주 생생한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설정할 경우 개인은 추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막스 슈티리너는 유일자로서 개인을 상정하고 실제 그렇게 살았다. 자유라는 것이 공유-소유라는 실뿌리같은 곁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홀로 설 수 없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엄청난 일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후기자본주의 삶 아래에서 자유라는 것은 살림살이의 편차와 왜곡된 삶에 대한 상상력이 뿌리내리지 않는 이상, 그 자유와 사랑은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자본이 삶의 결을 나누며 만들어낸 그물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들에게만 자유를 하사한다. 개인이 사회를 안을 수밖에 없고, 그 운신의 폭이 너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을 인지하지 시작할 때 조금은 그 공간이 넓어지는 것이다.

 


비변증법적 사유 - 벤야민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긴 과제는, '낯설게 하는' 사유의 수수께끼 형상들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무의도적인 것을 개념의 왕국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즉 변증법적이면서 비변증법적으로 사유할 필요성이다. 203 - 벤야민이 역사는 지금까지 승자의 관점에서 씌어왔지만 이제는 패자의 관점에서 씌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무언가가 덧붙여질 수 있다면 그것은, 즉 인식은 일련의 승리와 패배로 점철된 역사의 불행한 직선적 성격을 재현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런 역동적 관계에서 빠져나간 것, 길가에 제쳐둔 것, 다시 말해 변증법에서 빠져나간 눈먼 지점들이나 폐기물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지배적인 사회를 넘어서는 것은 단지 그것이 발전시킨 잠재력뿐만 아니라 역사의 운동 법칙에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이다. 이론은 비스듬한 것, 불투명한 것, 붙잡히지 않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2


반짝 2. 진보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자칭 진보의 시선에서 보면 유행의 흐름을 되짚을 이유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힐링과 치유, 나꼼수를 비롯한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 김용옥의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 강신주의 인문의 세련된 소비....유행이 있고 그 꼬리표에 한계역시 점철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보가 힐링과 치유를, 정치에 대한 각성을 이리 대중적으로, 인문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앞서서 같이 못한 것도 인정을 해야한다. 소비와 세련된 소비, 개인에게 국한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이나믹 코리아에 되풀이 되는 또 다른 시공간의 계기는 또 있지 않을까 싶다.

 


순수성이 순수하지 못한 까닭은, 교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순수성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데서 비롯된다.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순수성의 사제들이 이런 순환의 메커니즘을 통달하게 되자 이 순환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돈의 베일을 쓴 춤을 추게 된다. 208


반짝 3. 개인이 발라져 나온 뒤, 수많은 철학자들이 개인의 순수성을 가정하고 되짚었다고 아도르노는 말한다. 순수하다는 사유자체가 이 사회에서는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말이다. 세속에 물들려고 하면 할수록 어쩌면 순수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진실된 사회는 발전을 식상해하면서 무언가에 쫓기듯이 낯선 별을 정복하러 돌진하기보다, 가능성들을 다 쓰지 않은 채 남겨둘 것이다. 더 이상 곤경을 모르는 인류는, 곤경에 벗어나기 위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장치, 그렇지만 풍요로움과 함께 곤경을 확대 재생산해왔던 그 모든 장치가 미친 짓이었으며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사실에 희미하게나마 생각이 미칠 것이다 즐김자체도 이러한 정황에 따라 바뀔 것이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즐김의 도식이 바쁘게 쫓아다니기, 계획만들기, 의지를 세우는 것, 정복하기에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짐승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물위에 누워 평화롭게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더 어떤 규정할 것이나 실현할 것도 없이...' - 해방된 사회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질 경우 사람들은 '인간적 가능성의 실현'이나 '풍요로운 삶'과 같은 답변을 듣게 된다.....그러한 의기양양한 대답이 역겹게 느껴지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 209


반짝 4.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뭉뚱그리거나 대표해서 사회를 표현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로 퉁칠 것은 어떠한 것도 없다고 가정하는 편이 낫다. 현실은 버젖이 헌법에 있는 생존권도, 노동권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사문화시켰다. 이순간에도 죽음을 택하는 이들로 사회적 타살로 피가 흥건하다. 노동권을 주장한 합법적인 상황에도 손해배상을 들이대며 희희낙낙하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끼리끼리의 사회다. 그래서 삶도 들여다볼 수 없으며 보이지 않기에 아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10번째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랑하고 자유, 올곧게 서는 살아가는 개인들이 느껴야 하는 것은 소유와 공유, 살림살이의 비교로 이어지는 형평에 대한 감각이다. 세속의 벌이와 쓰임에 대한 공유에서 비롯된 절절함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공허한 자유, 쇼윈도우에 전시된 자유와 사랑이 될 확율이 크다.

 

 

뱀발.

 

느낌을 붙잡으려 직접 쓰다가 날라가버렸다. 임시저장이 되었다고 여겼는데 웬일인지 조급을 감지한 듯, 피시는 그렇게 응답한다. 곰곰발님이 지적한 강신주는 세련된 자본주의 사용설명서가 되었고 세련된 소비를 하고자하는 소비자들이 있어 순환된다는 말에 부분적으로 수긍하지만, 강신주현상에 대해서는 진지하지 않기 때문에 전적인 긍정이 아니다. 살림살이와 삶의 제한된 동선, 그룹핑되어 다른 삶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우리들에 대한 고민으로 번지는 또 다른 유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원래 유행을 믿지 않는 편이지만, 역동적으로 왜곡된 공간이라 꼭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다.

 

마립간님의 거시적인 자본주의의 경로를 생각해본다. 그것이 또 다른 자본주의여도 파국이어도 할말이 없다. 하지만 나를 한국, 중국, 유럽, 미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의 한곳에 냉혹하게 떨어뜨려보는 상상력이 오히려 지금여기를 그래도 낫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위무해본다. 자본주의도 없다. 신자유주의도 없다. 안개가 짙다. 나만이 아니라 같이 빠져나가야 한다. 만들어가야 한다. 답은 저기에 없다. 여기에서 만들어야 한다. 세속의 철학인 살림살이에 푹 적신 상처받은 말과 삶이 순수하고 예쁘기만 한 말과 사람들을 너머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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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1-2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언을 하자면, 과학의 큰 발전 예로 들어 뉴턴 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은 매년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체의 사고의 축적이 충분히 되어 창발의 동력이 발생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철학이나 사회제도도 지적 축적과 사회적 동인이 축적된 상태에서 폭발적인 창발이 가능하죠. 어쩌면 김용옥씨나 강신주씨는 그런 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에서는 방향성이 있다고 추정되는데, 철학과 사회제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약간은 자아라는 의식meme이 확장이 있었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과 정확히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대하기는 지금 여기에서 답을 찾고 싶은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울 2014-01-23 08:14   좋아요 0 | URL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추천 드리고 싶군요. 인간은 자연과학과 달리 봐야한다는 관점이지요. 오늘도 즐독 되시구요. 감사합니다.
 
미니마 모랄리아 -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4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김유동 옮김 / 길(도서출판)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속에서만 오히려 지양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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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09 동치미에서 강신주의 [당당한 인문학]을 2회에 걸쳐 세미나를 한다. 두번째 모임 발제와 책수다를 참견할 시간을 갖게된다. 미흡한 부분은 다음날 다시 보며 채운다. 책의 말미 사랑과 자유에 대한 에필로그가 잔상처럼 남는다. 발제한 분들의 여운도 함께 말이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는다.

 

사랑과 자유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그는 책 속 [자본주의에 맞서라]는 편에 대해 과연 청춘들이나 사람들 반응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청춘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되묻다. 수긍하고 잔잔한 반향이 있는 것 같다고 답한다. 대중성을 갖는다는 것, 스타로서 역할은 무척 큰 것이다. 진보가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을 성큼성큼 해낸다는 것에 대해서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다. 철학하는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시와 철학을 연결시키고, 김수영을 되불러낸 것도 김수영을 새기고 있는 나로서도 반갑고 기쁜 일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경계를 문지르고 새로운 이를 다가서게 하는 것도 반갑다. 막스 슈티르너를 비롯해 아나키즘의 인물들을 불러내는 것도 반갑다.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꼭 되물어야 하는 물음을 진지해줘서 고마워하고 있는 편이다. 철학과 시, 인문, 음악...자유와 사랑을 어루만지고 살아지는 이들에게 살아갈 중심을 준다는데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기독교에 대한 거침없는 도발도 말이다.

 

세미나를 하면서 말미 불안하다. 냉장고드립이라고도 표현하던데, 그 표현을 보고 김종철샘이 자본주의의 배에서 뛰어내려라라는 문구가 겹친다. 뛰어내리면 어떡하라구. 가장자리 가장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흔들릴텐데.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을까라는 예전의 기억이 되새겨진다. 냉장고를 없애라의 의미를 넘어선 과잉이 느껴진 때문이기도 하다.

 

말미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자유, 안전, 소유...그리고 형평을 다룬다고 같이 토론해보면 좋겠다는 말을 건넨다. 그에게서 느낀, 불안의 요소가 뭘까 고민해본다. 철학, 인문의 울타리에서 넘어서거나 너머 서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중적인 스타로서 그가 할 일과 하고싶은 일들이 많겠지만, 형평과 공평의 입장에서 경제, 소유에 대한 부분을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경제와 경영의 디테일을 형평이라는 삶의 잣대로 세세히 다루지 못한다면 철학과 인문의 문턱에 걸린 그의 주장은 비현실성때문에 거꾸로 인문과 철학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실을 지고가는 숱한 사람들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또 다른 마음의 위무로 그칠 확율이 높아보인다. 자유와 사랑은 소유의 디테일과 연결에서 다시 말해져야 한다.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의도적인 방점만이 아니라 세속의 철학인 경제, 자본주의의 속살, 현실의 속살에 치밀해지지 않으면 그가 닦아놓은 길...덧셈까지도 폄훼될 지 모른다.

 

지식인들이란 제일 질투가 많은 법이다. 이땅의 지식인의 역사를 모르는가? 두손 두발 다들 때까지 가만있지 않는다. 망가지고 망가져서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 이땅의 지식인들의 생리이지 않는가? 책도 덜 새겨 읽고, 잘한 부분에 대한 언급도 인색하면서 과잉...필연적인 오류를 수반하는 일들에 벌떼처럼 모이지 않는가? 그의 역할과 또 다른 대중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뱀발.

 

1.  생각이나 느낌을 따로 정리해볼까 하다가 서투르게 흔적을 남긴다. 이견을 반긴다. 좀더 얘기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다. 과잉도 있다. 논란을 위해서라도...

 

2.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한다. 편의상 나의 행복에 대해서만 말하겠다고..내가 기대고선 너와 사회의 측면에서는 따로 다루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고 이영희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근성에 대해서 말한다. 밟고  밟고 또 밟고....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시민이 서구의 합리성을 몸에 담고 있어 무엇을 해도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노회찬이 유들유들 오히려 우리 근성에 맞는다고 강신주는 흔적이 남는다.  솔직하게 털면 어떨까? 공부 좀 더하겠다고...

 

3. 안타깝다. 페북을 비롯한 회자되는 곳곳에 전자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담화들만 있는 건 아닐까? 알라디너들이 되짚어보면 어떨까 싶다. 그냥...안타까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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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1-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여울마당님, 댓글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 이견보다 저의 의견을 남깁니다.

저는 과거의 세상의 일들은 균형점을 찾아가기보다, 과잉과 거품을 포함한 기승전결의 과정을 거치며 파국을 거친 이후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이 과정을 (최소한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무한이 반복할지, 그 끝에는 균형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자본주의는 파국으로 가리라 예상합니다.

여울 2014-01-22 08:4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샛길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은 없는 것이라고 숙연하고 처연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고... ... 그래도 물에 빠진 사람이 바닥이 어디쯤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마립간님, 과잉과 거품같이 소멸하는 경우가 태반이죠. 개인이든 인류 역사든 말에요. 의견 고맙습니다.

쉽싸리 2014-01-2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고종석 선생의 트위터에서 처음 문제의 칼럼과 그 의견을 접했는데요. 그 칼럼만 놓고보면 비유와 논지전개가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 칼럼이 상식이 결여 되었다는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구요. 그래서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지 싶어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이리저리 너무 크게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문제이지 싶어요. 강신주 선생의 일종의 '공'?도 있다고 생각해요.
강신주 선생이 어떤 식으라도 의견을 냈으면 하는데요. 이건 뭐 오로지 제 개인생각입니다. ^^

여울 2014-01-21 19:0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트위터 의견들 모아놓은 것도 봤습니다. 수치심, 냉장고 칼럼이 과하죠. 제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공공연히 잘나가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거나, 읽어보지 않았지만 스타일로 봐서 조직생활 하지 않은 자유주의자라서 문제다. 읽어보지 않았지만 문제의 칼럼으로 봐서 인간이 되어먹지 않았다라는 평들이 많지 않나싶어요. 정말 자유주의자라면 현실에 있어 개선의 여지 나 역할이 많은 것이죠. ... ... 잘나가는 지식인이니 그거 쌤통이다가 아니라 냉정하게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어요. 나의 노선이 맞다가 아니라 유행의 와중이라도 그 결들을 세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떤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뱀발.  일터 일을 보고 잠시 별별 미술관을 혹시나 하구 들르다. 시간의 비늘이란 주제였는데 다소 미흡하다는 느낌. 어제는 일터동료들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얘기를 시작해서 늦은 밤까지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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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집은 새롭고 신선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 집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모든 가구와 창문과 램프가 일깨웠을 의무가 잊혀졌다는 것은 집에 안식일과 같은 평화를 가져다준다. 처음 몇 분 동안, 단 한 번만 존재하는 방과 구석이나 복도 안에 있는 듯이 느끼며, 이러한 느낌은 그곳에서의 나머지 삶이 거짓말처럼 보이게 만든다. 세상이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다면, 세상은 지금과 다르지 않고 별로 변한 것이 없지만 나날이 축제 같을 것이며, 휴가에서 집에 돌아온 아이처럼 의무는 휴가 때 놀이만큼 가벼울 것이다.  153

 

반짝 1. 시선이 따듯하다. 우리집에 돌아온 몇 분의 행복이 세상이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다면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축제 같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후기 자본주의에 살아지는 우리는 그 쳇바퀴같은 일상을 반복한다고 하지 않는가? 노동의 법칙 아래 있지 않게 하려면... ...


좌파 낙관주의는 '사람들은 악마를 벽에 그려서는 안 되며 밝은 면만을 보아야 한다'는 음흉한 시민적 미신을 되풀이한다. "이 세계가 그 신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구요? 그럼 그는 더 나은 세계를 찾아야겠군요." 이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일상어이다.  정통 노선 이탈  156

 

반짝 2. 난 좌파 낙관주의자다. 유토피아를 꿈꾸고 더 나은 세계를 자꾸 찾으려한다. 그 이면을, 아니 다면을 살피려하지 않는 우둔함이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애써 있으려 한다. 아도르노는 여기서 노동과 계급의 문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좌파 낙관주의, 그대 세상은 흘러가고 놓치거나 만들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쓸데없는 낙관이 가리고 있는 그림자들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기나 한 것인가 되묻고 있다.


어떤 손님이 아무리 오래 기다렸더라도 그 사람을 담당하는 종업원이 다른 일로 바쁜 경우 다른 종업원이 주제넘게 나서지 않는다. 제도 자체를 신경 쓰는 일-이런 것은 감옥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이 병원에서처럼 사람을 배려하는 일보다 앞서게 되며 주체는 단지 객체로 관리될 뿐이다. 159

 

반짝 3. 후기자본주의는 제도에 갇힌 일상을 드러내고 있다. 손님은 늘 객체다. 마음도 살피지 못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그저 처분만 하는 구조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불편을 모아 나름 종합적으로 대접을 한다고 하나, 그 노회한 장사꾼의 본심은 조금 거리를 두자마자 드러난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그때그때 가장 새로운 방식을 소비하려는 열광은 최신의 방식에 의해 무엇이 제공되었는가보다는 최신의 방식 자체를 중요시하며 쓰레기더미로 변한 정체 물량과 계산된 백치 행태를 조장한다. 이런 백치 상태는 포장만 조금 고친 낡은 조악품을 최신품으로 간주한다. 기술적 발달의 고마운 조력자는 더 이상 수요가 없는 재고품을 사지 않으며 고삐 풀린 생산 과정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한심한 소망이다.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의식, 구름처럼 몰려가기, 장사진에 한 다리 끼기 등이 사방에서 일어나 어느 정도 합리적이고자 하는 욕구를 밀어낸다. 161..사람들은 개봉한 지 벌써 석 달이나 지난 영화보다 방금 나온 영화를 기를 쓰고 더 좋아할 것이며-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석 달이나 지난 영화에 대한 혐오감은 아주 현대적이고 급진적인 작곡에 대한 혐오감 못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광적인 사랑에는 무숙자의 감정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 그 근본에 깔려있는 것은 시민들이 부당하게 '자기에게서 도피', '내적 공허에서 도피'라고 부르는 것이다. 함께하려는 사람은 달라서는 안되는 것이다. 심리적 공허감은 사회가 개인을 부당하게 흡수해버린 결과이다. 사람들이 도망가고 싶어하는 '지루함'은 오래전에 시작된 도망 과정을 재투영한다. 그 때문에 오직 괴물같은 유흥장치들이 더 번창하고 있지만 누구도 거기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188

 

반짝 4. 소비, 소비, 소비 그 뒤에는 쌍으로 건망, 건망, 건망...이 시공간에는 합리적인 욕구가 없다. 신상이나 새로나온 영화에만 열광 속에 아둔함은 없어보이는가? 끊임없이 잊기 위해 해소하는 그 일상이 보이지 않는가? 나만 빠질 수 없다는 의식, 그 위축.......뭔가 이상해보이지 않는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쇼윈도우에 갇힌 우리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가? 아 저기 내가 보인다. 쇼윈도우 속에 넋이 빠져...도통 세상이 왜 틀어졌는가 궁금하지도 않는 내가 새책을 보며 처박아두는 모습이 보인다.

 

상상력은 무의식의 소관으로 넘겨지고 인식 이론에서는 판단력이 결여된 유치한 퇴화된 기관으로 배척되지만, 오직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판단의 절대적 원천인 대상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상상력이 추방되면 진정한 인식 행위인 '판단'도 추방되는 것이다. 지각으로 하여금 갈망이나 예상을 못 하게 막는 통제 장치가 '지각'이라는 것을 아예 거세시켜버리면 지각은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는 쳇바퀴 속에 갇히게 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성의 희생을 초래한다. 고삐 풀린 생산 과정이 최우선시되고 '무엇을 위하여'를 묻는 이성이 사라지고는 이성이 스스로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지면서 외부의 권력에 굴복하게 됨에 따라, 이성 자체는 도구로 전락하고 그것을 다루는 기능인들의 사유 장치는 사유를 막는 목적에만 사용되며 이성 또한 이러한 기능인들과 유사하게 된다. 167

 

개성을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 사람들은 사회가 그들에게 언도한 판결을 스스로의 판단인 양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당한 불의를 객관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들은 사회의 보편적 퇴행을 사적인 퇴행으로 축소 재생산하며, 그들이 목청을 높여 저항하는 것조차 대개는 약자의 노회한 적응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183

 

반짝 5. 상상력이 추방되면 판단도 추방된다. 지각을 거세시켜버리면 이미 알려진 것을 무력하게 반복하게 된다. 무엇을 위하여... ...일터에 다니고 다른 정당에 대한 입장을 갖고 바뀌지 않으며 진자가 반복되어 움직인다. 왜 생각하지 않는가? 사유라는 것은 창고에 폐기된 것처럼 살아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가?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진보를 떠나 일상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은 상상하려 하지 않았다. 더 너머서려고 조차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평범성은 또 비슷한 박자를 타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실증주의는, 현실 자체에서 더 이상 용인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사유의 거리를 다시 한 번 깎아내린다. 위축된 사유가 자신이 파악한 사실들을 요약하는 임시 처방 이상이 되려 하지 않을 때, 현실에 대한 사유의 자율성과 함께 현실을 꿰뚫고 들어갈 수 있는 사유의 힘도 사라진다. 삶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때에만 사유의 삶은 전개되며 경험계에 제대로 관여할 수 있다. 사유가 사실과 관계를 맺고 그에 대한 비판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동안 사유의 운동은 적지 않게 '차이'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171

 

반짝 6. 삶에 대해 거리를 유지할 때만 사유의 삶은 전개된다. '차이'에 대한 감각에 의존한다. 실증주의, 데이터, 객관을 가장한 이야기들 속에 삶이 없다.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거리를 유지할 때다. 그래야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뒤따르는 것이다. 살고 있는 일상을 끊임없이 새겨보고 다시 보려하는 감각, 그래야만 최소한의 올바른 삶들이 기웃거릴 수 있다.

 

관심사를 추구하고, 실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소위 실천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는 접촉 인물들이 자동적으로 친구와 적으로 변한다...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기능으로 보지 않고 인물 자체로 보는 능력, 생산적인 대립 관계로 만들 능력, 자기와 모순되는 것을 포용함으로써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위축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은 판단적인 인간 지식으로 대체되는 바, 이런 지식에서는 결국 가장 좋은 사람은 더 적은 악이 되며, 가장 나쁜 사람도 최고악이 되지는 않는다. 177

 

반짝 7. 친구를 가려서 사는 사람들, 관심사를 밀어붙이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 의욕과 목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드러낸다. 그들의 무지를 탓한다. 인물자체를 보는 능력, 생산적인 대립관계를 만드는 능력, 모순을 포용하는 능력을 애써 보지 못한다. 자본주의 속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너도 ..... 나도...  늘 나에 머물러 있다. 너가 되지 못한다. 한번도 나-너는 되어보지 못하면서 살아진다.

 

 

 

 

 

 

 

 

뱀발. 천천히 보다. 우울과 허무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허무와 우울이 이 기름기를 띄우고 있는 물같은 바닥이기 때문이다. 바닥을 치고서야 이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실체가 보인다. 버스와 비행기로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추체험이다. 오롯이 겪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 블로거의 리뷰를 본다. 아도르노가 왜 우울과 허무를 캐내려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숲을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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