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행운을 받는다는 제주 엉또폭포(from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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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오가는데 하늘은 달빛도 쪽빛도 비추인다. 여름꽃들이 고개를 바짝 든다. 미루나무도 살랑인다. 속절없이... ... 바람도 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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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일터 회식. 밤두시 인근 - 새벽이 너무 멀리 있는 밤. 밤도 짙은 검정이 아니라 이렇게 어정쩡한 색깔이 되면, 지난 늦밤도 아리고 다가올 새벽도 어쩌지 못하는 시간이다. 여행객같은 밤. 바람도 없어 적요한 밤. 소음도 없어 빗소리 그리는 밤. 이렇게 밤은 익어 깨어있는 이 기다리는 밤. 여름의 밤은 웃자라 이슬도 풀잎도 발끝에 걸려 새벽이 촉촉해질까 조바심이다. 어쩌지 못하는 밤. 참 뾰족한 시간이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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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예술과 종교처럼 "사회적 세계를 부정하는 최고의 장소"이다. 그리고 예술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낭만적 사랑은 세계를 초월하거나 전복하는 주장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토대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감정, 문화, 경제의 연관관계를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는가? '감정'은 생리적 각성, 지각 메커니즘, 해석 과정의 복잡한 결합물이다. 따라서 감정은 비문화적인 것들이 문화 속에서 부호화되고, 육체화 인지 그리고 문화가 수렴하여 융합되는 경계에 위치한다. 그리하여 나의 문화적 관행으로서의 낭만적 사랑은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이라는 쌍둥이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관행들과는 달리 낭만적 사랑은 직접적인 육체적 경험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20-21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랑은 '허위의식'으로 또는 사람들의 욕망을 보충하는 것으로 상정되는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쉽게 환원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오히려 낭만적 사랑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성스러운 것의 경험과 강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뒤르케임이 주장했듯이 그러한 경험은 세속 사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종교 본연으로부터 문화의 다른 영역으로 이주했다. 낭만적 사랑은 이러한 대체 장소 중의 하나이다. 28

 

낭만적 사랑에 대한 문화적 이상은 열정과 성적 매력의 강렬함에 더 많은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그러한 이상은 애인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또 로맨스에 대한 자전적 서술을 단일한 평생의 서사('위대한 사랑')에 포섭시킴으로써 가능한 파트너의 수를 제한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서사는 결코 편안함의 서사가 되지는 못한다. 사랑의 서사는 열정의 우위를 단언하기 때문에 보통 이별 또는 연인의 죽음으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탈근대적 문화는 한평생을 포괄하는 낭만적 서사의 붕괴를 목도해왔는데, 거기서 낭만적 서사는 더 짧고 반복적인 형태의 정사로 압축되었다. 297


낭만적 정사의 문화적 부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섹슈얼리티가 겪은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이 기간 동안 섹스는 그 자체로 점차 정당화되었으며, 여성해방과 게이 해방의 정치 담론에 의해 더욱 부추겨졌다. 이 과정은 소비 영역의 강력한 문화적 관용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정사는 그 본질적 덧없음과 쾌락, 새로움, 흥분에 대한 긍정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탈근대적 경험이며, 소비 여역이 조장한 감정 및 문화적 가치와 (막스 베버의 의미에서) 친화성을 갖는 '감정 구조'를 포함한다. 298


베버가 목적 합리성이라고 칭한 실제적 영역에서 "개인은 수단과 목적을 숙려하여 주어진 행위의 예상되는 결과를 평가한다." 인지적 합리화는 과학과 기술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반면, 실제적 합리화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 관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제에서 실제적 합리성의 목적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인 반면, 인지적 합리성은 우리가 추상적이고 공식적인 사고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것을 돕는다. 베버와 그의 계승자들이 볼 때 '합리화' - 즉 자본주의의 문화논리 - 는 단지 조직 구조만이 아니라 퍼스낼리티 구조까지 지도 계산, 통제, 예측 가능성을 지향하게 만든다. 323


자본주의의 가치들이 문화와 사랑에 침투한 것은 개인 간 관계뿐만 아니라 자아도 합리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잭슨 리어스는 19세기 말에 "상호 의존적 시장에서 파편화된 자아는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사적 이익을 위해 조합되고 조작되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리어스는 계속해서 "우리의 내적 삶의 합리화는 합리화의 다른 교묘한 형태들, 즉 19세기 말에 출현한 법인 체계에 반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응하는 형태를 촉진시켰다."고 제시한다. 따라서 근대적 사랑 담론은 자본주의 생산 영역 위에, 외부에, 또는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기는커녕 그 영역에서 파생된 자립심, 개인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 있다.

 

 베버의 용어로 표현하면 이들 잡지가 조성한 낭만주의 윤리는 자본주의 기업가의 형성에서 도구적이었던 윤리와 유사하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처럼 낭만주의 윤리는 낭만적 관계를 여러 계획된 통제 절차의 체계적 실행을 통해 달성되는 하나의 목표로 봄으로써 감정적 또는 가치 함축적 합리성보다는 도구적 합리성을 고무했다. '낭만주의 윤리'는 관계들이 사업 세계를 지배하는 것과 동일한 수익과 손실의 논리를 가지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자본가의 신조와 완전히 일치한다.  336

 

낭만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경제적 이해 관심에 대한 비난은 사회적 지위가 불안전하고 하강 이동을 두려워하고 또 동일한 여성을 놓고 더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남성과 경쟁하는 남성들이 제기하는 평등주의적 교환의 도덕 속에서 표현된다... 이것은 이를테면 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자신들의 선택에서 사리 추구를 더 시인하고 합리적 거래의 논리를 더 상용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 즉 여성들이 여전히 남성들보다 더 불확실한 경제적 지위에 있고 또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결혼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합리적인 문화적 사랑 레퍼토리에 의존함으로써 그러한 관계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더욱 관리하고자 할 가능성이 크다.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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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몸이 탈색이 되도록 이야기하고 나눈다.  이야기도, 지난 만남를  더듬자 지금이 옛일 같다. Y친구들, 활동가들과 고민도 섞지 못해, 만남도 별반 다르고 진한 것이 없어 미안하다. 금요일은 약속이 겹쳐있고, 미리 나눈 얘기들로 가볍다. 하지만 마음의 잔상이나 몸은 이물감을 느끼는 듯 편치 않다. 마음들이 몇 순배돌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피곤한 몸은 신호를 보낸다. 소주에서 맥주로 바꾸는 순간 느티나무길 골목의 바람이 졸았나보다. 하루의 끝은 바램보다도 사람들의 만남에 밀려가버린 듯하다.

 

이틀


밀려난 몸이 일찍 깨어났다. 머리의 취기는 아직 있는 듯한데 어제 읽던 책의 여운이 찌릿하게 다시 온다. 책을 집어든다. 읽어낸다. 절망도 희망도 버티어내는 지금에서 주춤거린다. 마음이 놀라다. 평론가의 글을 보지 않을까 하다 그만 본다. 평론의 몫을 해낸듯 비평의 시선이 은근히 들어온다. 그렇게 한때가 지난다. 식구들과 새로생긴 큰길식당에 가서 묶은 요기를 하듯 정신없이 몸을 채운다. 식구들이 무슨 아픔과 일의 무게가 버티고 있는지 가늠한다. 청소를 하지 않은 막내 방에서 책을 다시 권한다. 그렇게 책을 껍질을 벗고 저녁이 밀려온다. 밤이 밀려오는 주막에서 어스름을 맞아 막걸리를 나눈다. 만나는 이들을 건네고, 모임의 마음을 잔에 기울여 보낸다. 또 만날 이들을 이야기하고, 건네고 싶은 속내를 펼쳐본다. 미루나무가 있는 한희원의 그림을 기억하다보니 잎이 반짝거린다. 바람이 까르르 웃으며 밤 뒤로 숨는다. 허리 춤에 느낌을 차고, 많이 숨이 죽은 분위기를 차고 집으로 향하는 언덕을 넘는다. 벗의 문자로 꼬리에 채였다. 호기를 가장해 치킨에 맥주를 시켜 웃음과 애정을 섞는다. 아이들은 맛만보고 음식을 물린다. 아까워 한점 더 베어 문다.

 

사흘


끝이 나지 않는 다른 책의 중동을 물었다. 물다보니 아린 즙이 배여나왔다. 끌려간 위안부만이 아니라 150만의 노동자라. 절반도 되지 않는 월급에다 반강제 삶을 살게 한 이들의 배후가 버티고 서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 여운이 채 식기도 전에 전해오는 책의 말씀은 버겁다. 졸음에 피곤도 책장도 찰랑이게 놓고 싶다. 바람에 쓸려가도록 깜박 졸음에 잊고 싶다. 어제 언덕 넘어오다 만난 문자가 걸린다. 다시 연락이 와 어디서 보자고 한다.  버스 안에서 더 책 속에 파묻히다보니 깜박 정거장을 지나친 듯 싶다. 내려보니 한 정류장 먼저 내렸다. 흐린 하늘 속 찬찬히 걷다. 익숙한 골목과 식당들 선화동을 거닐다가보니 약속한 곳. 쉬는 날이다.

 

자전거를 타고 온 이와 자리를 옮긴다. 어제 봤다는 한무리의 중후년 양반들이 친구를 반갑게 맞는다. 민작분들이라는 소개다. 밤을 꼴닥새우고 이야기나누다 헤어지는 길이란다. 김*기 시강좌가 생각나 건넨다. 마음을 섞고 부여잡고 시린 속을 달랜 이들의 지난 밤이 읽히는 듯싶다. 벗이 묻는다. 작정을 한 듯 말이다. 어제도 그제도 다른 친구에게 물어봤던 말이다.  나는 없다고, 나에 기댄 학문도 그러하다고 한다. 어렵다고 한다. 한 시인이 말한 질량과 공간도 어려웠다고 한다. 몸말을 듣고 싶은 듯하여 이것 저것 게워낸다. 어떻게 살고 싶은데. 가깝다고 한다. 좋은 삶은, 서사적인 나도, 너-나도 족쇄에 풀려났다고 말한다. 벗은 자꾸 그말이 꿈에 가깝다고 했다. 너의 꿈이 뭐냐고 반복하여 말한다. 그러다가 어제 물러난 어둠이 흐린날 주점에 다시 찾아온다. 사흘의 이야기를 불러 앉히고 꾸짖는다.  기억이 어둠에 잡아먹혔다. 어둠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주섬주섬 챙겨 도시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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