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701

분열.대립.갈등.중상모략 - 4.19후, 80년 '서울의 봄'이후....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분열...

이 생각나던 중 <대화> 234-235쪽에서 이영희선생님의 견해를 듣는다.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이조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의 퇴행적 형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조선인의 민족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어. 냉정하게 제3자적인 시각으로 현대까지의 우리 민족사를 볼 때, 이런 달갑지 않은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어요.

굳이 '민족심리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의 이 같은 특성은 프로이트적인 해석보다는 오히려 카를 융의 '집단적 생존의 역사적 유전론'으로 더 잘 이해될 것 같아....... 생물로서의 진화의 누적이 생물학적으로 계승되는 것과 같이, 개체의 문화사적 의식면에서 과거를 무의식중에 보전하고 있다는 거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간절하지만, 너무도 정확하게 너무도 여러 번 되풀이되는 비극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구요.

 

노신이나 프란츠파농은 당시의 중국 인민대중의 무지.나태.우매.탐욕.교활.갈등.분열.약육강식 등등의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미화하거나 은폐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는 따위의 값싼 '과잉 민족지상주의'를 거부해요. 그 모든 약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그것을 중국 인민대중의 눈앞에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던져 보여주었어. 노신이 의도하는 바는 그런 자신의 약점들을 인식하지 못학나 또는 인식한다 하더라도 민족적 편애심 때문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거요.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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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30-060701 참*  창립2주년기념식 및 모꼬지

따로 따로 이야길 나누었다. 생태, 통일, 노운, 과기노*, 그리고 한타 해고자 신**. 담날 아침 참터이야기까지-사무*장의 방향이 상황에 따라 변하고 있는 것, 현실에서 출발하지 못하는 것, 관계에 있어 문제점등을 제대로 인지 못하고 있는 점들.  단정적인 모습, 방향에 대해 아니다 싶은 생각들이 든다. 무엇일까? 그때그때 이슈를 만들어 움직이려는 성향때문일까? 되짚거나 진도나갈 일이나 차근차근한 맛이 없다. 약간의 위험스러움.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

심화시킬 일들, 무화시키는 언변들, 부문운동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단정 - 염홍철이 싫어 한나라당에게 투표했다는 것등. 조금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과도한 단정들. 현실화의 우려. 할 일들을 묶고 강조해내지 않으면 또 다시 산만해지며 방향을 못잡을까 우려스럽다.

* 주부회원들과 소통의 문제 * 자원활동학생들의 성과 평가 * 집중해야할 일 * 시민단체에 대한 피상적평가와 단정적 방향, 모두 문제를 담아오고 채우며 가는 일들이다. 활동의 폭을 줄이게 해야 되는가? 단정으로 인한 재편집 - 이슈와 방향던짐 - 일의 연속성이 떨어짐 등이 반복되는 고리이다. 활동력의 고리, 물꼬를 분산-다시 만들어야 한다.  앞만 보고 돌아볼 염두나 시간이 없고 바쁘다. 던지는 멧세지의 뜻의 이해를 자꾸 빗나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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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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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시인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러한 나의 시야좁음에 많이 부끄러웠다.시인이 보여주는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성실성에 대한 환기는 그 어떤 바늘끝보다도 아팠지만 동시에 묵은 피를 씻기우듯 환한 느낌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시를 읽는내내 마음이 참 편안하고 푸근해졌다.시인이 도란도란 가만히 말을 거는것처럼 시어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깊숙히 와닿는 것이었고,행간행간에는 시인의 따뜻하고도 섬세한 배려가 숨어있었다.그것이 시인의 말대로 몸으로 살아온 흔적들이었기에 더욱더 진실되게 다가온다(by 흑백TV)




직장생활 2년차의 친구들은 말한다, 돈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지고 있다고. 결혼을 한 선배들은 말한다, 이제 처자식 때문에 직장을 때려 치우지도 못한다고. 청년 실업자인 친구들도 말한다, 대학 나오고도 오라는데가 없다고. 아직 학생인 나는, 어떤 비전도 없이 아직도 공부만 하고 있는 내 신세를 한탄한다. 술자리에서 우리들은 서로의 신세가 가장 막막하다고,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경쟁이나 하듯 앞다투어 말한다.

언제 부터 였을까.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참으로 변변찮은 것으로 평가절하하기 시작한 것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고,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놓고,, 우리는 무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확대해 나간다. 그리고 어느날 무심하게 펼쳐놓은 일상이 자신보다 더 비대해진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다만 부인하며 벗어나려고만 한다.(by 별아저씨)


임금인상

 

여섯 자리 자동차 번호판 중 어떤 건

등 서늘해지도록 몇년째 내 임금과 닮았다 그러나

체념을 모르는 나는 스스로 임금인상을 결행한다

아침 일찍 출발해 산길 십리쯤 걸어 출근하고 건강관리비 십만원

돌아와 초등학교 오학년 아이 학습 도와주고 자녀교육비 십만원

구내식당 보일러 손봐주고 점심 제공 받으니 식대 오만원

누가 일년 단위 계약직 보일러공의 임금을 물어오면 짐짓 그렇게

상기의 금액을 덧붙여보기도 하는 것이다.


060630

어느날 어떤 사람은 돈경제가 보이지 않는 그림자때문에 지탱하는 것이라 한다. 안해(옆지기든 상관없으리라, 맞벌이면 또 빈공간을 메우는 흔적들)의 아이들의 끊임없는 값을 매기지 않는 경제행위때문이라한다. 그 간극이 너무도 켜져 시선도 돌리지 않고 있는데. 그렇게  지불하지 않는 비용으로 치자면 나는 적자인생이다.  아이들이 타주는 커피한잔, 녹차한잔, 팥빙수에, 매일매일 모텔비에 식대를 동일하게 지불함에도 그렇지 않다. (어쩌면 벌어들이는 돈으로 턱도 없을지 모른다. 단 값을 매기지 않다뿐이다. 그 희생으로 인한 고리가 자본주의를 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은  대단하지 않은가? 또 불온하지 않은가?) 

이 사실이 안해와 아이들에게 알려질까 두렵다. 내가 지불하거나 지불해야 할 비용-권력을 빙자해 행사한 불합리는 적자일 것이다.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액수라면 어찌하랴.  어쩌면 불필요한 돈벌이로 서로를 축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로 내몰리고 건강의 반대편으로 내몰리고, 쉬지 못해 내몰리고... .. 지불하지 않는 비용으로 돈을 벌어봄직도 하다. 가족모두 풍성하게 돈벌 일이 많음에도 남돈(일터)만 벌어줘 서로 축내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모든 행위를 돈으로 환산해야 맞는 것이리라. 그림자라고 당연한 듯,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관계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서로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몸소 알고 있음에도, 중독된 몸은 익숙한 것으로 발걸음한다.

공용의 가치 회복을 위한 노력은 나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미친 듯 달려가는 자본을 위해서도 아직까진 좋은 일은 아닐까

* 독서 흔적 0512  32권, 0601-0606 9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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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쌍

 

육체는 아프지 않다

정신은 직유적인 기교로 고함친다

 

분화구가 비명을 질렀다

역겨움은 진지함

역겨움에도 운율이 있다

미학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육체는 싸우지 않는다

함께 나서지 않겠다고 두 다리가

협정한 방식으로 삶을 견딘다

정신은 보조형용사 "싶다"로 옥신각신한다

 

모래가 얼굴을 뭉갰다

아픔은 조롱

아픔에도 격조가 있다

고전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육체는 독이 없다

정신은 통일되지 않은 플롯으로 수없이 죽는다

 

눈물이 행방을 감춘다

견딤은 암장

견딤에도 풍자가 있다

시대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060629  오후 친구 부친상 소식이다. 몇몇 약속은 취소하였고, 조금 일찍 나서 버스를 타려하니 막 출발하고 만다.  남은 시간 40여분, 물과 요깃거리,  좀 돌아다녀 피곤한데, 딱딱한 책만 가방에 들어있다. 덥고 습한 여름,  상가 2층에 서점이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발견해낸다.  시집 한,두권이면 몸도 꿀꿀한데 일용할 양식은 되겠다싶다.

좌석에 기대어보지만 넘기는 시편 들 속에 졸음이 떨어진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계만큼. 그렇게 몇차례 병원을 잘못 찾아 헤매며 상가에 도착해 친구들과 밀린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문득 그런 생각들을 한다. 세파에 시달려가며 세상의 독을 제몸에 발라 제것으로 만든는 것이 너무들 원색적이어서, 여러 가치의 공유가 불가하다고 자신을 다그치는 모습들이 들어온다.

(역겨움- 아픔- 견딤)만 남아, 세상과 손가락질 하는 놈으로 더 광분하는 일상에, (운율-격조-풍자) 하나 잃고, 제 몸에 그것이 덕지덕지 붙어있음도 몰라, 돈많은 천박함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상가집에 이야길 나누다  막차타고 있는 그때쯤,  친구넘은 '넘 차카게 살지 말라'는 충고다. 그리고 막차타는 동네 후배들을 만났다. 돌아오니 비는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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