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많은 철학자들을 동네 친구처럼 불러내어, 이야기 하는 현인?들의 능력에 현기증과 어지럼증이 섞인다.현실 속에 지난 일들을 지난 학자들의 시선으로 새롭게 녹여내는 모습에도 정신이 없다. 따라가기는 커녕 그 심연에 가슴이 막혀 막막하기도 하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새롭게 열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파헤쳐지고, 재정립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2. 무지렁이의 생각이 다른 곳을 쳐다본다.  그 학문은 욕망이 없는 것일까? 당대의 내놓으라는 대가들은 다른 학자의 시선으로 완결구조를 만들고 서열화시키려는 욕구는 없는 것일까?  사문화된 학자를 되살려내고, 지금에서 활보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경외만 해도 되는 것일까?

3. 아는 것을 전제로, 새로운 개념이든 아니든, 그 아래 무수한 정합을 만들어 완결판을 만들려는 지적요구. 지금에 당대를 풍미했던 대가들을 불러내어, 십년이든 이십년이든 삶의 경험과 정보가 녹아 이 세상을 다시 본다면 어떻게 바라볼까? 아리스토텔레스든, 헤겔이든, 칸트든, 맑스든...공자든 맹자든....

4. 세상을 다르게 보고 느낀다는 것은 많은 시선차이에 의한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그런데 그 합목적적인 공간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총괄하거나 전일적 해석을 해야된다면, 시선에 빗겨나거나 보이지 않던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5. 우리의 학문의 풍토는 유행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자중심성이 충만해 다른 정합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구태가 몸에 배인 것은 아닌가?  새로움에 충만해, 익숙해지는 것은 곧 낡은 것이되고 새로운 것에 전도되어 비평,평론으로 시각차이만큼 약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지식인들에게 옮겨지다 색이 너무 쉽게 바래지는 것은 아닌가? 학문은 상아탑에서만 쌓여지고 논쟁하고, 구심력에 익숙해져 그룹핑되어 소통은 없고, 아성을 지키기 위한 피나는 잠깐의 쟁점만 있는 것은 아닐까? 

6. 노마디즘은 안녕한가? 미시권력은 안녕한가? 묵자는 잘 살고 있는가? 구조주의는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었을까? 일상의 파시즘은? 포스트 모더니즘은? 정리당할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약발이 떨어져 새로움에 시선이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6. 삶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사는 일상들. 욕지기와 악다구니는 어쩔 수 없는 원심력이다. 상호연결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일상이기에 친구이름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 그들의 이름이 박혀있다. 사람 수 만큼 철학이 있고 표현하지 못하는 역사와 세계가 있다. 다만 소통되지 않고 살 뿐.

7. 왜 학문은 하방을 해서 바닥을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바닥에 주저않지 못하는 것일까? 녹아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8. 유행처럼 왔다가 학계를 떠돌다 지식인 곁이나 자본과 바람나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일까? 단 한마디라도 내려온다면 삶이란 것이 세상이란 것이 마음을 울리고 살아지는 일상을 멋진 선생님 만나듯 삶을 지탱해나간다면,,,, 구심이 아니라 원심이 삶인 우리에겐 큰 울림일텐데. 학문의 세계와 <상계동아이들>,<장석조네 사람들> 사이엔 소통하는 실낱같은 통로가 있을까? 끊임없이 보내는 에스오에스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까?

9. 개념에서 출발하는 학문의 욕망과 정합성을 기본으로 하는 논리, 삶을 전제로 한 지식의 체계, 그 단수명은 몸과 관계, 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는 건강하지 못하지만 건강함에 짧지만 끊이지 않는 수명. 인식이 역으로 삶을 규정할 수도 있다면, 우리 인문학은 너무 비루하며 유행을 따르며 자중심적이며,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지식을 가지고 생활하거나 노는 사람도 일방적이다. 그런 점에서 별반 나도 다른 점이 없어, 이 기회로 되돌아 본다.

 

11. 한 평생, 몸의 사유지만, 칸트처럼, 니체처럼, 들뢰즈로, 헤겔로, 맑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산개해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리만을 적셔, 염색물이 들 듯,  염색물이 빠지면 다른 물을 들이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것은 거의 바란채로 삶을 희석화시키고 관점만 재정립시키는 것은 아닐까? 사유가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고, 언어란 곳으로부터 개념을 만들지 않고,  삶의 이력-몸의 경로는 전달되거나 남는 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무지렁이로 살다가는 것은 그냥 묶어서 한덩어리로만 취급될 수 밖에 없는가?

12. 061221. 유사한 생각이 담겨있어 놀란다. 서언부분 k-1에 대한 접근은 놀라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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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르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 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뱀발. 난독의 시대, 짧은 궤적으로 이름짓고, 지어진 이름으로 전부를 견디기 힘들다. 상처나거나 길을 잘못들어섯거나, 공연한 발저림들로 책망하고 있는 우리들.  인연이 닿는다면 지난 중동말고, 거나하게 부서진 마음들 모아 아래목에 지지고 싶다. 무릇무릇 오르도록..


꿈꾸는 당신

 

내가 채워주지 못한 것을

당신은 어디서 구해 빈 터를 채우는가.

내가 덮어주지 못한 곳을

당신은 어떻게 탄탄히 메워

떨리는 오한을 이겨내는가.

 

헤매며 한정없이 찾고 있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곳에 있기에

당신은 돌아눕고 돌아눕고 하는가.

어느 날쯤 불안한 당신 속에 들어가

늘 깊이 숨은 것을 찾아주고 싶다.

 

밤새 조용히 신음하는 어깨여.

시고 매운 세월이 얼마나 길었으면

약 바르지 못한 온몸의 피멍을

이불만 덮은 채로 참아내는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새벽 침상.

아무리 인연의 끈이 질기다 해도

어차피 서로를 다 채워줄 수는 없는 것

아는지, 빈 가슴 감춘 채 멀리 떠나며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


뱀발.  당신은 꿈꾸는가?  마음길들은 안개처럼 자욱하고, 신열처럼 들뜬 마음가지만 잔바람에 쓸려 나뒹굴어진 것은 아닌가? 허기에 지쳐 이젠 꿈꾸어야 할 시대는 아닌가?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꿈불두덩이 맘 속에 넣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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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23 일터-경력사원 환영모임

+ :

 

061024 아**미.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소설을 보는 시각-작위,경험과 상상력의 빈곤, 전*도-안되는 것에 연연. 줄때는 다. 선이 굵지못함. 지역색.ㅂㅇㅅ.ㅎㅅㅁ. 판타지의 유의미성

-: 분담보다 개인에 의존. ㅇㅇ의 ㅇㅎ에 대한 우려. 지나침

*:  자동차 매물(민*당, 관리사각지대 차량판매시 계파간 접근-논쟁), 노스탈쟈로 살아가는 사람들(운*권의 그늘, 일-관계를 구분 못하고 현재화시킴, 먹고살 일은 뒷전, 과거 관계망에 침잠, 벗어나지 못함)-학연/지연/혈연과 다른 점은 무엇? . 남쪽으로튀어보다 우리의 현실을 소설화하면 안될까? 활*권이 내문제로, 인식으로 가져가지 않으면?

/:  사회단체 재정문제, 당장의 인건비 ---> 우리 문제로 가져오는 논의의 터치는 언제?./우리에 대한 면밀한 성찰. 일상에 대한 해부/ ㅇㅎ:성향에 갇혀 하지 못하는 것(한계를 벗어나는 방법)-인식: 일-관계를 극복,노력과 도움..단체가 자리잡지 못함 


** 지역시민사회와 대학간 협력에 관한 토론회

+:  협력범위가 학과, 단과대별, 제도화의 수준 폭 확대(봉사에서 18학점으로..). 활동가의 재생산구조 해결방안. 블루오션: 기본권 보장과 평균임금보다 파격적 처우구조 만들기. 사회단체 회원으로 교수의 역할 논의

-: 민*협 주체의 움직임은 없다. 사회대학만이다. 형식화로 흐를 우려. 기득권간의 접합은 아닌가? 시민은 있는가? 지금까지 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끼워넣기는 아닌가? 언론-대외 평가의 한 방편으로... 전문가주의

*: 순발력-현실화-깊이-예민함에 대한 재고. 논리보다 말하고자하는 바에 치우쳐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정*학회..현실성있는 논문의 체계적 수집

/:(ngo학과 개설-협약체결-학점위주운영)-자체변화보다 수단으로 전락할때 남는 것은 없음-원점,,,


** 주부** 사례발표대회

+: 주부교실과 관계, 회원발표(100여명), 상,학생참여

-:  참터보다 개인에 치중할 경우

*: 공통사안 및 유대. 연계성....

/: 학생개인의 성과-발표자 개인소유욕-참터의 홍보효과 모두 따로놀 경우.기획의도-진행사항공유-학생활동결과물의 재공유라는 취지-의도 재확인: 출발의도가 정확히 드러나도록, 누구나 알 수 있도록.. . 학생들의 사유의 결과물로 하려는 의식 변환토록 하는 구조 필요.

 

개인 메모수준이라 죄송...점점 편한 것만 찾는 것 같군  덧셈:+ 뺄셈:- 곱셈:* -덧셈의 질적변환: 나눗셈:/ 뺄셈의 질적하락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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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10-2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구 어렵네요.
 

 

 1. 가을비가 재촉한다. 포도에 착근한 검붉은 낙엽들. 싱싱한 생선처럼 더욱 또렷해지는 가을나무들.  일터로 향하는 길. 라디오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클래식도 어울릴 것 같은 빗방울소리들. 높아지는 볼륨. 하이든 교향곡 0 번....바이올린 리듬이 가슴박동과 공진한다. 매체와 담을 쌓은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오랜 가뭄처럼, 투박한 산행길에  날리는 흙먼지 같은 제모습들.

2. 산행꾼들과 계룡산 상신리에서 수정봉 - 금잔디고개, 상신리입구로 내려오는 코스.  너무나 편안한 복장으로 함께 했다.  한,두시간쯤으로 갔다와 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으나, 깔개와 깔판, 정성이 담긴 도시락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들이다. 전날 20k를 달려 마실삼아 몸도 풀 생각이었는데 어찌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대장님의 완숙함이 없더라면 꽤나 고생하였을 것 같았는데, 적절한 휴식, 농담, 간이토론, 주제마다 사람마다 고개 하나씩 바뀌어, 맛 본 술의 종류만큼 달콤하고 향긋하다.

3. 그렇게 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길, 막걸리 한잔과 고소한 두부 한모. 대전으로 돌아와 산행만큼의 뒤풀이다. 서서히 고개 하나씩 넘듯이 뒤풀이객들이 하나씩 모여 짙은 농과 색깔을 뿜어낸다. 당진에서 온 느릿한 말솜씨의 ㅅ. 해남을 거쳐 산행이 마친 뒤 훨씬 지난 시간에 온 ㅈ. 빠르고 거친 톤의 도목수. 사람마다 관계가 제각각이다. 정신 못차릴 듯. 웃고, 배꼽잡고, 격없는 조언....마치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장단이 잘 맞는다.

4. 너무 재미를 잊고 산 듯 싶고, 멀리 떨어져 산 듯 싶다. 그 산행이 이어질 듯싶다. 뒤풀이도. 객적은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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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몸을 감당해내지 못해, 부산스런 일들과 저녁까지 만남을 헤치우고 거실 한자리에서 졸음을 견딘다. 요란스런 뉴스 자막과 소리는 잠결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닌다. 마음 먹은 책 한절음은 마시지 못할 듯하다. 횡한 마음과 졸음이 버거워 잠을 청한다. 꽤나 깊은 잠. 새벽쯤 미동이라도 하려니 여겼지만, 몸은 늦은 아침까지 침대에 가둬둔다.

가을햇살, 한 침, 한 침 뜨끔거리면서 꽂힌다.

어제 만난 민이 친구 고*이와  만면에 미소와 장난기를 품고 있는 대*이, 할머니를 생각해낸다. 돌아가신 젊은 엄마의 손맵시의 공백이 아이들 옷차림에 묻어난다. 또박또박 리*센스 잡지 음식기사에서 엄마의 손길을 찾아내는 즈문동이.


그 아빠를 우연히 치과에서 만났다.  지나는 시간이 불쑥 불쑥 고인의 자취를 한 토막씩 꺼내놓는 것이 얄밉다. 내가 낯선 것이 더 얄밉다. 없다는 것은 전제로 쳐다보는 마음이 괴롭다. 브이자를 그리며 손전화 앞에 서는 대*이의 천진함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생각이 나, 빈틈을 찾고 있는 어른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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