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본의 증식을 조건으로 놓고 사고하는 것과 사회적 자본?의 진화를 놓고 사고하는 것

                                                                                               심리적 자본

1.

자본 증식의 막다른 길은 미리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계산이 늘 보이는 곳까지이다.

자본의 천민성은 수전노에 가까운 듯, 돈을 버는 것이다. 갈취에 가깝다.

조금 나은 것이 이것 저것 관계를 생각한다는 것인데,

일차적으로 직접적으로 손해가 되는 것에 방패막을 쌓는다는 것이다.

법이든, 제도이든, 환경이든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

그러다 보니, 경쟁과 위협에서 예방하는 기능은 현저히 떨어지고, 손익시스템에서 무형의 것은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거나 비중은 작아진다. 

틀 안에서 최대한 효율성과 영역의 확대를 가장하지만, 자본은 속성상 야생성을 몸에 지닐 수밖에

없다.

 

2.

자본의 천민성과 야생성은 무형의 것이나 사회적 관계-의식을 체화하지 않으면 2차성장이 곤란하다.

사회적자본과 공생단계를 가정하지 않으면, 사회적관계-시장밖에 있는 시장을 가정하지 않으면 성장

이 곤란하다.

사회적자본은 야생적-경제적 자본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흡수하며 진화할 수 있을까? 진화의 생산력을

담보로 야생적자본을 포위할 수 있을까?  주체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으며 얼마나 자신을 확장할 수 있

을까?사회적자본으로 체계를 다시만들고 야생적 자본을 고립시킬 수 있을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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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데이비드 하비, 『새로운 제국주의』
제국주의 개념을 둘러싼 논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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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오늘날 부시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신보수주의자들, 이른바 ‘네오콘’들은 2000년 9월 『미국 국방의 재건: 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 전력 그리고 자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이 제안한 전면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진주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에서…. 2001년 9월 12일, 콘돌리자 라이스는 동료들에게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도날드 럼즈펠드는 즉각적인 이라크 침공을 주장한다.1)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차례로 침공한 후, 지배계급들 사이에서조차 제국이나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다. 미국이 더 이상 제국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든, 미국이 이제 제국(주의)로 전락해 버렸다고 탄식하는 것이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레닌 이래 ‘제국주의’ 분석의 적자로 자타가 공인하던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는 1990년대 들어 이 개념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현실사회주의 붕괴 등의 정세로 인한 마르크스주의의 침체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국주의론 자체의 이론적 난점에도 있었다. 본래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 것은, 첫째 수평적 통합을 통한 국가독점적 자본주의의 출현, 둘째 자본주의적 관계의 식민지로의 확대, 셋째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열강 간 경쟁의 격화 및 세계전쟁의 발발이었다. 레닌이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 최후의 단계’라고 명명한 것은 이상의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자본주의 중심으로 떠오른 미국자본주의의 특성과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1945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재건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현실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후 세계 정세의 특성 및 모순(‘새로운 제국주의’)을 분석할 수 있도록 제국주의론을 개조하려 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시도는 제국주의 개념의 유효성을 한층 악화시킬 뿐이었다. 1978년에 『제국주의의 기하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제국주의 개념에 내재한 혼란을 치밀하게 분석한 바 있는 지오반니 아리기는 “1970년대 초반 그것이 한창 꽃피울 때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모든 것을 의미했고 그리하여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2) ‘바벨탑’이 되어 버렸다고 회고한다. 제국주의 개념의 이론적 쇄신이 지체되면서 그 현실 설명력은 점점 더 떨어졌고, 이제 제국주의는 다만 선동적인 가치 이상의 어떤 이론적 유효성도 갖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2000년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의 『제국』이 출간되면서 제국주의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재개된다. 이들은 전통적인 제국주의 개념으로는 미국이 재건한 1945년 이후의 세계 자본주의 체계를 분석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들에 따르면 1945년 이후의 세계 정세는 미국에서 발명된 ‘제국적’ 원리가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진화론적·목적론적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주류적인 세계화 예찬론의 무비판적 수용, 구체적 분석 및 풍부한 논거의 결여, 이 같은 공백을 감추기 위한 허구적 수사의 과도한 사용 등 심각한 문제점을 갖는다. 또한 9·11을 기화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자 ‘미국이 제국의 합법성에 반하는 쿠데타’를 감행했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목적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3)
하지만 이들의 제국론이 이처럼 취약하다고 해서 전통적 제국주의론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행히도 알렉스 캘리니코스나 로버트 브레너 같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이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누리던 생산성이 저하되면서 유럽이나 일본과의 제국주의적 ‘대항’(rivalry)이 다시 치열해지며, 이 때문에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동일하게 반복하는 이 같은 주장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한 세기 전과 현재의 세계 정세 사이의 차별성을 인식하는 데 중대한 장애물로 작용한다.4)
요컨대 제국주의 개념을 둘러싼 논쟁이 ‘제국이냐 제국주의냐’라는 식으로 부활한 것은 현재의 세계 정세를 분석하는 데 많은 해악적 효과를 낳았다. 이 같은 불모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제국주의 논쟁을 일진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지난 2004년 출간된 『사회주의 연감(Socialist Register) 2004: 새로운 제국주의 도전』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 책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에너지/생태/지리 등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제국주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는 그 자체로 큰 장점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 논쟁에 개입하는 이들의 태세다. 이들은 오늘날의 제국주의의 본질을 분석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가 부족한 것이 오늘날 사회주의 사상이 위기에 처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총론 격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미 제국」에서 레오 파니치·샘 긴딘은 “좌파는 제국주의를 새롭게 이론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제국주의 간 대항이라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의 ‘단계’ 이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시에 단일한 비공식적 미 제국의 형성을 불러온 역사적 요인들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과연 미국이 어떻게 끝내 그 자본주의적 대항자들을 흡수하고 ‘세계화’ ― 즉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세계 구석구석에까지 퍼뜨리는 것 ― 를 감독·단속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말한다.5) 문제는 제국주의 개념을 고수하느냐 폐기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쇄신하는 데 있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제국주의론의 기초를 이루는 과거 마르크스주의를 평가하고, 1945년 이후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재건을 미국의 ‘비공식적 제국’ 형성의 맥락에서 고찰하며, 이상의 맥락에서 오늘날 제국주의적 대항이 억압되는 원인과 오늘날 세계화가 나타나는 종별성을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제국주의 논쟁을 상속받는 보다 유력한 길을 열어 준다.
당시 이 책에 「새로운 제국주의: 강탈을 통한 축적」이라는 글을 수록한 데이비드 하비는 이후 당시의 논의를 좀 더 확대하여 『새로운 제국주의』6)라는 책을 출판한다. 아래에서 우리는 그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하비를 선택한 것은 한편으로 그가 오늘날 세계 정세를 분석하기 위한 몇 가지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의 논의에서 나타나는 난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 오늘날 세계 정세를 적합하게 사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비의 기본 개념들
“나의 목적은 세계 자본주의의 현재 조건과 그 속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이다. ‘장기 지속’의 관점과 내가 역사-지리적 유물론이라고 명명한 학문적 렌즈를 통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1장의 첫 문장에서 하비는 자신의 기획을 축약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그는 세계 자본주의의 현재 조건 속에서 ‘새로운 제국주의’를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에게서 세계 자본주의와 ‘새로운 제국주의’는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그렇다고 양자가 분리된 것 또한 아닌데, 양자의 관계를 사고하는 데 실마리가 되는 개념은 ‘장기 지속’이다. 즉 제국주의를 사고하려면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그 전개 과정의 특정한 계기로서 제국주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여기에 하비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추가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역사-지리적 유물론’이라고 부른 것이다. 즉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 지속 안에서 현재와 같은 제국주의가 나타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통찰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와 관련하여 그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공간-시간적 조정’(spatial-temporal fix, 이하 ‘조정’)이다.
아래에서는 우리는 그가 ‘지리적 유물론’이라고 부르는 문제설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한편, 그의 자본주의 개념 특히 위기 개념을 고찰한 후, 이에 입각하여 그가 제시하는 오늘날 제국주의의 특성을 살펴보고,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문제들에 대해 평가해 볼 생각이다.

1) 자본주의의 지리적 동역학과 공간경제의 생산

하비는 1982년에 출판한 『자본의 한계』에서 자본주의에 고유한 지리적 동역학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것의 기본 틀은 『새로운 제국주의』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우선 초과이윤을 획득하려는 경쟁에 의해 자본가들이 기술적 이점을 취하려 들고 이 과정에서 (고정)자본소비적이고 노동절약적인 편향적 기술진보가 발생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동역학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여기에 그가 추가하는 것은 기술적 이점의 상쇄 요인으로서 입지적 이점이다. 즉 자본은 기술적 이점뿐만 아니라 입지적 이점도 취하려 한다는 것, 즉 일종의 ‘지대’적 성격의 초과이윤 역시 획득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술적 이점을 점하지 못하는 자본의 경우 이를 벌충하기 위해 보다 유리한 입지로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린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활동들의 공간적 분포의 지속적인 변동과 만성적인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지리적 불균등발전’이 발생한다.
그런데 공간체계 내에서의 경쟁은 기본적으로 독점 경쟁이다. 이는 공간적 입지에 고유한 배제적 속성 때문에 발생한다. 자본은 이 같은 독점력을 창출하고 보호하기 위한 공간적 전략들을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사용해 왔다. 여기서 주요 전략적 입지들 또는 자원 복합체들에 대한 통제가 핵심이다. 이로써 경쟁적 이윤 추구 때문에 생겨나는 공간적 역동성의 경향은 공간에서 독점력들의 결합에 의해 저지된다. 지리적 관성과 지리적 역동성 사이의 모순이 전개되는 것이다.
하비는 이 모순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교통 및 통신 산업을 든다. 이들은 공간을 ‘넘나드는’ 유동적 이동을 가능케 하지만, 이를 위해서 공간 ‘안에 속한’ 어떤 물리적 하부구조에 고정되어야 한다. 철도, 도로, 공항, 항구시설, 케이블 네트워크, 광섬유체계, 송전망, 상수 및 하수체계, 파이프라인 등 ‘토지에 체현된 고정자본’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막대한 이동성과 모순되게도, 자본주의적 활동의 지리적 전환과 재입지에 대한 상당한 저항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쟁과 독점 간, 집적과 분산 간, 집중화와 탈 집중화 간, 고정성과 이동성 간, 역동성과 관성 간, 활동의 상이한 규모들 간의 긴장들이 생겨나고, 이는 끝없는 자본축적과 끊임없는 이윤추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체계의 일반적 팽창 논리에 휘말리게 된다.

2) 과잉축적과 공간-시간적 조정(spatial-temporal fix)

하지만 하비는 이상의 설명이 아직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사태를 더 구체적으로 고찰하려면, 과잉축적이라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위기 메커니즘을 추가해야 한다. 하비는 유효수요의 부족(이나 유휴노동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는 과소소비론을 명시적으로 비판하면서, 문제는 이윤 창출이 가능한 투자 기회의 결핍 특히 유휴자본의 잉여에 있다고 말한다.
하비는 이 같은 자본주의에 고유한 위기에 대응하는 지리적 해법 중 하나로 ‘조정’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즉 이러한 잉여들을, 첫째 자본 가치가 미래의 순환에 재투입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장기적 자본 프로젝트에의 투자 또는 (교육 및 연구와 같은) 사회적 지출을 통한 일시적 치환, 둘째 새로운 시장, 새로운 생산설비 그리고 새로운 자원, 기타 사회적 잠재력과 노동의 잠재력 등의 개방, 셋째 첫째와 둘째의 특정한 결합을 통해 잠재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들 모두는 신용을 창출하고 제공하는, 즉 ‘의제 자본’을 만드는 권력을 지닌 금융제도 및 국가제도의 결정적인 매개 역할에 좌우된다.
그런데 이 같은 조정 역시 앞서 살펴본 자본주의의 지리적 모순 안에서 작동한다. 하비에 따르면 이는 ‘조정’(fix)이라는 개념 자체에 이 같은 모순이 관통한다. 한편으로 총자본의 일정 부분이나 공공교육 같은 사회적 지출은 비교적 장기적인 물리적 형태로 토지에 ‘고정’(fix)된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위기들은 시간적 지연과 지리적 팽창 같은 특정한 방식을 통해 ‘수선’(fix)된다.
양자는 과잉축적 상황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과잉축적 때문에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가 주어진 영토 안에서 흡수될 수 없다면, 이들은 ‘감가’(devaluation, 가치저하)를 피하기 위해 이윤 창출 가능성이 실현되는 새로운 지형을 찾아 이동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이동은 기존의 ‘토지에 체현된 고정자본’에 내재한 미처 실현되지 않은 가치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동에 대한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애시당초 이동의 압력이 과잉축적 때문에 초래된 것이니만큼 마냥 이동하지 않을 수도 없는 모순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또한 여기에 ‘조정’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금융/국가의 신용체계 때문에 발생하는 모순이 겹쳐질 수 있다. 신용체계는 과잉축적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고, 또한 투기 성향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비는 이 같은 모순이 어떻게 작동되느냐에 따라 조정은 상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그는 1930년대 미국 뉴딜이나 1945년 이후 마샬 플랜의 경우 과잉축적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진 사례라고 말한다. 또한 영국 헤게모니에서 미국 헤게모니로 이행할 때처럼, 유휴자본이 조정을 통해 새로운 생산의 중심과 결합하게 되면 새로운 헤게모니가 탄생할 수도 있다. 반면 1~2차 세계전쟁은 자본주의 중심국들에서 조정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면서 이를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대응한 결과 생겨난 것이다. 하비는 이를 ‘강탈을 통한 축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제국주의, 그리고 ‘새로운 제국주의’로서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직결된다. 아래에서 이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3) 강탈을 통한 축적과 제국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

하비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과소소비론을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는 그 자신을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그 자신의 바깥에’ 무엇인가를 영구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고 말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하비는, 자본축적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분석한 ‘원시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주목한다. 즉 원시적 축적은 확대재생산 곧 ‘정상적’인 자본축적과 구별되지만 동시에 분리할 수 없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하비는 이를 ‘강탈을 통한 축적’(이하 강탈)이라는 개념으로 재정식화한다.
하비의 강탈 개념은 ‘공유재’(the common)의 상품화/사유화, 결국 기존의 생산요소 및 생산관계들을 시장질서 안으로 폭력적으로 (재)포섭하는 것, 금융화 특히 소유권 이전을 통해 축적을 지속하는 것, 국가 및 공적 기관을 매개로 자산을 재분배하는 것, 그리고 이 모두를 국가 및 공적 권력의 (불)법적 강제력으로 지지하는 것 등을 포괄한다. 하비는 이 같은 강탈이 전면화되는 데 특히 반동적 계급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과잉축적으로 인해 조정의 모순이 발생하고 ‘사회의 자기-방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국의 사회적 개혁을 통해 내적으로 과잉축적을 흡수하기를 정치적으로 기피할 때 강탈이 전면화된다는 것이다.
하비는 강탈이 제국주의의 핵심이라고 설명하고,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부정할 수 없는 제국주의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강탈적 제국주의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이다. 한편으로 이는 특허권, 허가법, 그리고 지적소유권을 통해 중심부의 기술적 우위를 보호하려는 탐욕스러운 시도다. 이 같은 첨단기술을 비롯 생산의 핵심 분야를 중심의 독과점이 통제하는 상황에서의 시장 개방은, ‘자유무역’이나 ‘자유경쟁’이 아니라 오직 독점 권력들이 증식할 수 있는 기회들을 창출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종자를 비롯한 인민들의 ‘공유재’마저 상품화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뿐더러, 이를 체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소농적 생산관계를 파괴하거나 또는 차라리 실질적으로 포섭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금융화는, 금융을 매개로 한 소유권 이전을 통해 (반)주변부 경제를 파괴하는 한편, 미국 및 다른 핵심 국가들로 정치·경제적 권력이 재집중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 같은 강탈은 국가 및 제도에 의해 체계적으로 지지된다.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재무부 금융 체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세계 금융기관들을 통제하고, 신용조작 및 부채관리를 실행함으로써 보다 취약한 많은 외국 경제들을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게 시장 개방을 강제하고 여타 신자유주의적 실행을 부가한다. 이렇듯 신자유주의는 중심부의 금융화된 ‘자유기업’의 이윤과 지대를 확대하기 위한 강탈을 통한 축적 그 자체다.
한편 자본운동이 강탈로 변화함에 따라, 이에 맞선 투쟁의 성격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하비는 기존의 사회운동이 확대재생산 국면에 조응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강탈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운동이 출현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광범위한 반세계화·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비는 이런 운동이 흔히 말하듯 ‘포스트모던’적이라기보다는, 영국의 1640~1680년, 프랑스의 1830~18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적 투쟁들과 깊은 연속성을 갖고 있으며, 특히 ‘공유재 복원’이라는 주제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하비는 사회운동에 관한 중요한 쟁점을 제기한다. 우선 강탈로 자본운동의 지배적 경향이 바뀐 상황에서 확대재생산에 조응하는 기존의 사회운동, 특히 기존의 노동자운동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운동은 혁신을 강제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강탈에 맞선 투쟁이 곧바로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닌데, 이 안에는 매우 상이한 경향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여기에는 미국의 시민권운동이나 인종적 폐쇄집단들의 반이민자적 감정도 있다. 즉 잃어버린 것을 향한 향수의 정치나 배타적인 국지성의 정치의 위험이 있다. 물론 운동의 혁신과 관련하여 많은 계발적 요소를 제시하는 그 반대의 경향도 존재한다. 바로 이런 양면성 때문에, 하트와 네그리 식으로 이 투쟁을 ‘지구를 물려받기 위해 마법적으로 봉기한 다중’이라는 식으로 낭만화해도 안 되며, 동시에 많은 전통적 사회주의자들처럼 새로운 운동들을 배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연약하고 자기파괴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하비는 양자 사이에 변증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제조건으로, 앞으로의 계급투쟁이 어떻게 구축되어야만 하는가를 판단하는 준거로서 강탈을 통한 축적이 근본적인 정치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강탈에 맞선 투쟁들은 그들이 쉽게 빠지는 향수의 추구에서 벗어나 보다 보편화하고 정치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라도 사회운동은 강탈에 저항하는 주민들 안에 존재하는 다중적 정체화(계급, 성, 국지성, 문화 등에 기반을 둔)의 유의미성, 즉 자본주의의 침투에 대응하여 그들 자신을 만들어가는 방식들에서 도출되는 역사와 전통의 흔적들을 인정하는 방법들을 발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비는 두 가지 투쟁 형태 간의 연계성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IMF와 WTO 등, 국가권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금융제도들의 편제들에 저항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 오늘날 세계 정세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뉴딜’

하비는 『새로운 제국주의』에서 「‘새로운’ 제국주의: 강탈을 통한 축적」을 보충하는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한다. 미 헤게모니를 전후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역사, 이라크전을 전후로 한 ‘신보수주의’의 전면화에 대한 분석, 그리고 앞으로의 정세에 대한 예견 및 자신의 대안 등이다. 하비는 앞서 약속한 ‘장기 지속’의 맥락에서 미국 헤게모니를 전후한 시기의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대해 분석한다. 하지만 뒤에서 자세히 다룰 것처럼, 이 분석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내적 모순 때문에 신보수주의가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하비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단절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지만, 동시에 신보수주의의 출현은 신자유주의가 상당한 위기에 빠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하비는 현 상황에 대한 대안 중 하나로 ‘새로운 뉴딜’을 제안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규칙들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일시적이고 유일한 해법은 세계적 영향력을 가지는 새로운 뉴딜 같은 것이다. 이 점은 자본 순환과 축적의 논리를 신자유주의적 사슬로부터 해방시킴을 의미하며, 국가권력을 훨씬 더 개입주의적이고 재분배적인 노선을 재구축하고, 금융자본의 투기적 힘을 제어하고, 그리고 국제무역의 조건에서부터 우리가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 듣고 읽게 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과점 및 독점의 압도적 권력(특히 군산복합체의 극악한 영향)을 탈 중심화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 효과는 보다 시혜적인 ‘뉴딜’ 제국주의로의 복귀로, 되도록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연합과 같은 것을 통해 카우츠키가 오래 전에 예견했던 것에 도달하는 것이다.”
요컨대 하비는 현재의 과잉축적 위기를, 국내에 거대한 사회적 투자를 하는 한편, 강대국들 간의 합의를 통해 유휴자본을 (예컨대 중국 등) 새로운 생산적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조정하여 일종의 헤게모니 이행을 도모하자고 제안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마지막에 다룰 것이다.

평가와 비판

1) 자본의 금융화와 지대추구

주지하듯 자본주의 동역학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초과이윤의 원천으로서 기술적 이점을 획득하려는 경쟁 때문에 발생하는 (고정)자본소비적이고 노동절약적인 편향적 기술진보다. 하비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 동역학을 과잉결정하는 공간적·지리적 조건을 분석의 대상으로 추가한다. 실제로 입지 또는 지정학적 요인 등이 갖는 물질적 규정력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추가는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하비의 설명은 편향적 기술진보 때문에 자본이 과잉축적 위기를 겪을 때, 자본이 지대추구적인 성격을 점차 강화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강탈을 통한 축적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것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하비가 엄밀한 설명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다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이윤율 저하의 위기에 처할 때, 자본은 이윤의 생산에 중점을 두는 ‘집적’에서 이윤의 (재)분배에 중점을 두는 ‘집중’으로 대응한다는 마르크스 자신의 분석이나, 금융세계화 국면이 되면 산업그룹 안에서 이윤과 지대가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프랑수아 셰네의 분석 등이 그것이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보충한다면, 하비의 설명은 불황기에 관한 몇 가지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다. 특히 불황기에 부동산 활황 등을 비롯하여 고정자본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에 미혹되어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착시 현상을 교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의 주된 목적이 이윤의 생산이 아니라 분배, 그리고 지대 추구 따위의 투기에 있고, 따라서 장기적인 성장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기 때문이다.

2) 과잉축적 개념의 모순 -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의 혼동

하비는 과잉축적 개념을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휴자본이 있다’는 현상을 지시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개념 정의는 매우 잘못된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마샬 플랜을 과잉축적에 대한 대응책으로 본다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판로를 개척하지 못했다면 결국 과잉축적 상태에 처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과잉축적이라는 개념은 기술진보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투자가 활성화되는 가운데 더 많은 잉여가 재생산되는 상황과, 기술진보가 제약을 겪고 투자가 침체되면서 잉여가 생겨나는 상황 모두를 지시할 것이다. 이는 결국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7)
이는 자연히 과잉축적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조정 개념의 문제로 이어진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구조적 위기 상황에서도 예컨대 뉴딜과 같은 조정이 순조롭게 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하비는 이를 위해서는 뉴딜 당시와 같은 ‘계급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오늘날에도 그런 계급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 계급관계는 은연중에 정치적 결정 차원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자칫 주의주의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즉 이런 식의 계급관계가 구축될 수 있게 한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뉴딜을 보자. 주지하듯 1930년대 이전 미국 자본주의에서는 ‘관리자혁명’이라 불리는 2차 산업혁명이 벌어진다. 즉 고정자본의 소비를 절약하고 노동강도를 높임으로써 이윤율을 상승시킬 수 있는 역사적 ‘제도’들이 구축된 것이다. 또한 1930년대 공황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금융시장에서의 투기 때문에 금융 자본의 정치적·사회적 발언권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조건들이 결합되면서 산업적 분파가 자본 안에서 대표 세력의 지위를 굳힐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당시가 러시아 혁명으로 대표되는 계급투쟁과 노동자운동의 시대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제를 위협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일정한 양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앞서 살펴 본 법인자본의 발전은 이를 가능케 해 주는 물질적 토대였다. 이른바 ‘뉴딜’이 가능했고 또한 요구되었던 것은 이 같은 조건 하에서였다.8)
즉 뉴딜이나 케인즈주의의 핵심은 과잉축적된 유휴자본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한 데 있다기보다는, 금융에 대한 통제를 통해 산업 자본과 노동자 간의 타협을 만들어내고 거시경제정책의 기반을 확립한 데 있다. 그리고 자본 분파 안에서 금융 자본이 억압되고 산업 자본이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1930년대 미국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또한 그것 없이 설명할 수 없다. 당시 정부가 시행한 사회간접자본에의 투자는 그것이 당시 성장하는 산업 자본을 조력하는 한에서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생산적 중심이 없었다면 정부 주도의 투자는 위기를 잠시 지연시켰을 뿐, 결국 폭력적인 감가가 이어졌을 것이다. 하비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가 순조로운 조정의 또 다른 사례로 제시하는 헤게모니 이행 역시 문제다. 그는 지난 세기 영국 자본주의에서 미국 자본주의로의 헤게모니 이행을 현재의 상황에 유비한다. 당시 자본의 금융화가 철도 건설 등 미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생산적 토대와 결합하여 헤게모니 이행을 초래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세계 자본 분파 안에서 합의를 이뤄냄으로써 중국과 같은 새로운 생산적 중심지와 유휴자본을 결합해 헤게모니 이행을 기획하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지난 세기 금융과 새로운 생산적 토대의 결합에 대해 살펴보자. 해외 자본이 미국의 철도 등에 투자되어 교통혁명이 벌어진 시기는 1850~60년대다. 그런데 이 시기는 1870~80년대 대불황에 앞서는 대호황의 시기다. 대호황 시기에는 산업 자본의 이윤율이 높고, 이 때문에 여기에 투자하기 위한 금융 자본들 간의 경쟁이 격렬하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산업 자본이 우위에 설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산업 자본의 이윤율이 낮아지고 이 때문에 금융 자본들이 더 이상 산업 자본에 투자하지 않거나 투자하더라도 엄격한 규율을 요청하는 등 산업 자본의 우위에 서는 상황이 되면, 사태는 사뭇 달라진다. 전반적으로 산업 자본에서 금융 자본으로의 부의 이전이 훨씬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통혁명이 본격화된 1850~60년대의 상황을 ‘금융화와 새로운 생산적 토대의 결합’이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비가 이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은 우리가 앞서 지적한 바 있는 ‘유휴자본’ 및 ‘과잉축적’ 개념의 모호성 때문이다.
또한 그가 새로운 생산 중심지 후보로 거론하는 중국 자본주의는 한 세기 전 미국에 비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 않다.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편향적 기술진보로 인한 고정자본의 로지스틱 성장에 있다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자본형태와 국가정책 등의 제도가 있어야 한다. 한 세기 전 미국 자본주의에서는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지만, 오늘날 중국 자본주의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중국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 영국 헤게모니의 위기 후 국면과 오늘날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 후 국면을 형식적으로 유비할 수 없다. 양자 사이에 분명한 차별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세기 전과 달리 새로운 축적체계의 중심점이 형성되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의 금융이 미국에 집중되면서 잠재적 경합지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여타 세계는 오히려 미국시장과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군사력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미국의 세계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은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다. 제국주의 간 ‘대항’보다는 ‘공동지배’나 ‘통치성’ 등의 개념이 오늘날의 상황을 분석하는 데 더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 세계의 역사를 가름했던 노동자운동과 식민지민족해방운동 등 조직된 사회운동의 출현이 지체되고 있다.9)
이와 같은 차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영국 중심의 세계체계 형성과 미국 중심의 세계체계 형성이 매우 달랐던 데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비가 오늘날 미국 헤게모니 위기의 종별성을 사고하지 못하는 것은 1945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잉축적 및 그와 상관적인 조정 개념의 문제는, 과거 및 특히 현재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 장애물이 될뿐더러, 전혀 현실성 없는 대안이 마치 대안인양 인식하게 할 위험을 낳는다. 이는 그가 자본주의의 동역학과 역사를 충분히 분석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3) 강탈을 통한 축적

강탈을 통한 축적에 관해서도 앞서와 유사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하비는 강탈을 통한 축적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고, 계급관계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일종의 ‘전술’이라고 말한다. 그는 계급관계를 정치적 결정에 의해 바꿀 수 있고 그에 따라 제국주의적 ‘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현재와 같은 계급관계는, 적어도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산업 자본의 이윤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 자본의 발언권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욱이 오늘날엔 산업 자본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금융화의 주체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안에 금융화에 저항하는 유력한 분파는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그 같은 계급관계에 따라 금융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강탈을 통한 축적이 진행되는 것 역시 가장 현실적인 자본주의의 대안이다.
한편 강탈 개념과 관련하여 흔히 제기되는 비판은 그가 ‘경제외적’ 폭력을 지나치게 부각하며,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에 고유한 ‘경제적’ 폭력 개념을 상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읽힐 여지가 없지 않다. 좀 더 치밀한 경제학적 분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비가 지적하려고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마르크스가 원시적 축적이라 부른, 경제를 구축하는 과정 자체로서의 폭력이 먼 과거의 얘기가 된 것이 아니라는 점,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는 그것을 (재)구축하려는 적나라한 폭력을 다시 우리의 눈앞에 돌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가 이런 폭력에 맞서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를 제기한 것은,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중요한 질문임에 틀림없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서 기존의 타협체계가 해체된다는 점, 이에 기반을 둔 운동이 무기력에 빠지는 동시에 강탈에 맞선 새로운 운동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 운동이 자명하게 진보적이지는 않다는 점 등에 관한 그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고, 중요한 논점을 제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 그리고 ‘새로운 뉴딜’의 불가능성

앞서 지적했듯 하비는 신자유주의의 내적 모순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분석한다. 이는 미국 경제의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브레너 등의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소 과장된 주장이다. 이에 대해 파니치와 긴딘은 금융 우위의 세계적 축적구조가 상당한 안정성을 갖고 재생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 역시 과장된 주장일 수 있지만, 파니치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제국주의 간 대항 개념으로는 오늘날의 제국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10)
또한 신보수주의에 관한 하비의 분석은 현재의 정세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신보수주의의 토대가 군산복합체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금융화를 주도하던 금융 자본과 군산복합체 간에 갈등이 있다는 식의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립 구도는 사실과 다르다. 우선 군산복합체 자신이 금융세계화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또 이 과정에서 미국경제에서 군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하락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군사적 관리라는 기획은 금융세계화를 관리하기 위한 무장한 세계화의 맥락에서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11)
또한 하비가 제안하는 ‘새로운 뉴딜’은 과거 뉴딜을 가능케 해 준 물질적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없다. 우선 과거처럼 산업자본이 새로운 생산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이들 스스로 금융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금융화 자체에 반하는 자본 내 유력 분파가 거의 없는 데다, 1930년대와 같은 유력한 대중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한에서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타협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또한 한 세기 전의 헤게모니 이행과 현재 상황을 유비하려는 그의 시도는 다만 유비일 뿐, 두 시기 사이의 차별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결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근본적 한계를 갖는다.

하비의 모순들과 우리의 과제

오늘날 세계 정세를 분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하비는 ‘새로운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을 살려 지리적 통찰을 마르크스주의와 연결시키려 노력한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바로 ‘새로운 제국주의’라고 비판하면서, 그것의 핵심이 ‘강탈을 통한 축적’에 있다고 지적한다. 강탈의 전면화는 강탈에 맞서는 운동을 탄생시키며, 이는 기존 사회운동의 혁신에 관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상과 같은 하비의 논의는, 아직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와 통찰을 제공한다.
하지만 하비의 ‘과잉축적’ 개념은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충분히 밝혀주지 못한다. 또한 그는 원래 약속한 자본주의의 ‘장기 지속’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 특히 미국 헤게모니 및 그에 의해 재건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종별성을 공백으로 남겨 둔다. 이 때문에 그는 오늘날 세계 정세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분석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한 세기 전과의 무리한 유비를 통해 ‘새로운 뉴딜’이나 ‘헤게모니 이행’과 같은 비현실적 대안을 제시한다.
결국 우리는 다시 자본주의 동역학에 관한 이론적 정교화와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는 정언명령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오늘 다시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말한다. “여기가 로두스다, 뛰어라!”


1) 아이자즈 아흐마드, 「우리 시대의 제국주의」 p. 116, 레오 파닛치·콜린 레이스 엮음,『새로운 제국의 도전』, 2005, 한울.본문으로

2) 레오 파니치·샘 긴딘,「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미 제국」, 위의 책, 각주 8에서 재인용.본문으로

3) 네그리·하트의 논의에 관한 상세한 분석과 비판은 백승욱, 「‘제국’과 미국 헤게모니, 세계화: 세계체계 분석을 통한 『제국』 읽기」, 백승욱 편저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 2005, 그린비.본문으로

4) 하지만 최근 들어 캘리니코스는 아리기의 논의를 명시적으로 수용하면서, 제국주의 간 대항이라는 관점을 상대화하고 미국 헤게모니 쇠퇴의 이례성을 강조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책갈피. 본문으로

5) 레오 파니치·샘 긴딘, 앞의 글, pp. 25~26. 본문으로

6)국역본은 데이비드 하비, 『신제국주의』, 2005, 한울.본문으로

7) 따라서 우리는 과잉축적 개념을 보다 엄밀히 하면서 이를 구조적 위기 차원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가장 유력한 시도는, 과잉축적의 문제를 편향적 기술진보에 의한 고정자본의 로지스틱 성장의 차원에서 개념화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윤소영, 「역사동역학과 역사적 자본주의론」『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2006, 공감 을 참고하라. 또한 차라리 아리기처럼 과잉축적의 문제를 물질적 확장에서 금융적 팽창으로 이행하는 결정적 계기로 규정할 수도 있다. 아리기의 역사적 자본주의론을 개괄하려면 백승욱, 「역사적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 ― 세계체계 분석을 중심으로」, 위의 책을 참고하라.본문으로

8) 미국 법인자본주의의 형성에 관해서는 윤소영, 앞의 책, pp. 194~220 와 김숙경, 「마르크스주의 위기이론과 이윤율의 경제학」 pp. 224~232, 김석진 엮음, 『자본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공감 을 참고하라.

9)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가 취하는 종별적 형태에 관해서는 백승욱, 「미국헤게모니의 쇠퇴와 ‘제국’」, 『세계정치』 26집 1호, 2005와 백승욱, 「미국 신보수파 주도 아래의 새로운 세계질서」, pp. 137~138, 앞의 책 를 참고하라.본문으로

10)레오 파니치·샘 긴딘, 위의 글.본문으로

11) 물론 9·11 이후 신보수주의의 전면화는 고유한 난점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백승욱, 위의 글.본문으로
2006년08월01일 11: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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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롭게도 선잠을 자다 참터에 가서 간단한 회의를 하고 돌아와  티브를 만지작거리다. 토론 2곳을 엇갈아가며 독서하였다. 하나는 ebs 한국의 진보와 보수란 주제로 김기식,진중권..교수 몇분,미래구상 사무총장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하나는 엠비씨 손석희의 토론이었는데, 연예계 자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였다.

내눈에 들어온 꼭지는 대선, 그리고 총선이 지나면 정국이 한나라당 일색일텐데, 진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대중은 어떠하며, 진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주제였다. 정세인식은 별반 새로운 것이 없었고, 김기식총장의 설명에 귀가 솔깃해졌다. 우리 대중, 국민은 경제성장과정과 미국이란 강대국의 반경밖에 어떤 경험을 한 적도 없고, 그 안에서만 상상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정치라 비전과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업인데, 지금 어느 집단도 사회-복지분야-경제분야를 위주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고,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런 시야를 갖게되도록 해야한다. 그런면에서 주체가 무엇을 할 것이고, 어떻게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반한나라당으로 모이는 것은 퇴행이다.

옆에서 진중권은 거들었다. 다 같은 쓰레기가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채널을 돌려 연예계 자살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는데, 토론자는 최불암, 현진영,심현섭(개그맨), 대중문화평론가?이자 기획사 이사, 방송작가이자 기획사이사, 심리학과 교수 이런 구도였다.

소명의식, 기획사의 시스템, 제작자-방송국, 연예지망생과 부모의 수준, 사회적 분위기, 다른 나라의 시스템 등등 나올만한 이야기는 모두 나온 것 같다.

그러면서도 관심있는 꼭지는 연예계 시스템에 대한 이해, 대중의 선정적 접근, 먹이사슬과 관행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거꾸로 기획사나 연예인들에게 강제나 개선점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수많은 정보의 유통을 좀더 공익적인 측면으로 물꼬를 내어 연예인의 처우, 기획사의 전근대적 행태를 조절하거나, 연예인에 대한 무차별의 환상을 조금 깨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고리타분한 생각들.

연예인에 대한 관심만큼, 연예인을 지탱하는 시스템에도 관심을 보여 거꾸로 단명하는 대중과 연예인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는 없을까? 지각있는 대중의 의식으로 방송사도 제작자도 흔들거나, 자본이란 것도 그렇게 해야만 장수하면서 벌 수 있는 것이라고 거꾸로 이야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연예야생시스템이 자라는 청소년의 꿈과 희망이 아니라, 부모의 의식까지 좀 먹고 있다면, 이러한 사실을 적확하게 알리고 교육하고 토론하는 것이, 사회의 구조를 알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정말 스타를 아낀다면, 시청자가 그 주변을 지탱하고 있는 구조, 이해, 그 시스템의 바꾸려는 사회적 중재는 인터넷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토론에 빨려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덧이 나며 들어온다.

연예인-제작자-방송사의 천박함은 너무나 비지니스적으로 생각한 결과일 수 있다는 심리학과 교수의 지적이나, 노크도 없이 안방에 들어가는 연예인으로서 책임과 소명을 알아야 단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최불암씨의 지적은 동일하게 연예인을 연애인으로만 보는 우리 시청자의 단선적 사고, 주체의 문제도 많다고 본다.

일견 해결책이 없어보이는 연예계 문제는 공론화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해결의 많은 고리를 가지고 있는 시청자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연예계(연예인-제작사-방송사) 사회에 대한 재계약을 통해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구조와 시스템, 책임 그리고 돈, 돈에 철학과 예술이 스며들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가 가진 정보는 몰지각한 기획사들의 구조나 시스템을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노예계약을 버젓이 하고, 그것이 요구되어 쉴시간도, 사생활도 없는 인권도 권리도 없는 연예인에 정신나간 듯, 혼을 바치는 우리 대중에겐 너무도 많은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인기가 떨어지면 생계도 막막한, 우리네 삶하고 다른 것이 무엇일까? 약자들의 최소한의 방패막이가 없는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많은 자살자들로, 야생성은 오늘도 자살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 직시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보다 의료계를 재정립하는 것보다 야생의 첨단에 시달리고 있는 이런 상황이 우리 수준에 맞는 사회-재계약이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들의 사생활은 인권을 보장하기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의 이면과 시스템을 알리는 것, 사실에 대한 공감이, 그 구조에 대한 집단적 행동이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선을 맡는 우리는 너무나 정답을 잘 알고 있다. 혼재되고 뒤섞여있어 혼란스러울 뿐인지도 모른다. 정답으로 가는 질문과 요구와 상상력, 이런 길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거나 묵묵히 해내는 것이 고스란히 우리 몫일수도 있다. 한나라당 지지성원의 70%는 복지분야의 지원을 요구한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의 시청자는 연예인이 자실하지 않기를 바라고 공평하게 인권과 그들의 사생활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북하다면 일상에서 사진 덜 찍고 싸인 덜 받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이다. 똑같은 호흡과 희망으로 함께하기 바라지, 그들이 착취와 기획사의 노예가되어 돈벌어주는 기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악플러의 마음은 현실에서 조금씩 수정될 수 있다. 사회적 토양과 공감에서 그나마 댓글의 수준을 달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토론자의 지적처럼 놀곳과 노는 방법에 대해 아무런 토론과 논의가 없고 밀실만 있는 우리에게 악플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악플러는 일상의 스트레스을 풀 장소를 오늘도 물색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있다. 사실에 대한 정보의 수준과 질 ,양을 늘려가는 연습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날린 화살이 한바퀴돌아 늘 내 등에 꽂히는 세상이기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청소년이 잘되기를 바라는 심정은 모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도합 8시간공부와 쉴 시간의 인권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나머지 시간 공부할 교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뛰어놀 자유와 상상력이 발휘되는 공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렇게 밀실에 갇힌 우리의 아이들은 연예인을 선망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연예인으로 키워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중, 우리...우리 사회의 수준, 개선점....어쩌면 개선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여주는 사회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


스타에 열광하는 팬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취향과 취미 못지 않게, 그르 옥죄고 있는 시스템과 이미지의 간극, 사생활에 대한 욕망....소명의식...돈이 흐르는 구조... 조연자..그리고 묵묵히 그것을 지탱하는 시스템...


 

0. 연예기획사의 현황-운영실태에 필요한 자료: 300개이상이라고 하는데, 대형 기획사의 점유율과 계약 현황

1. 일본(월급형식으로 운영, 적게받는 것은 우리보다 많고, 많은 받는 것은 우리보다 작고), 다른 나라 운영실태

2. 연예인- 인권현황, 최저생계비 외, 연예계 현황

3. 독점적 계약과 과다한 스케쥴 관리가 건강, 연예인 재충전

4. 시청자들의 연예계에 대한 일반 의식과 인식, 연예인의 인권에 대한 의식은?

5. 연예인의 소명의식, 사회적 요구에 대한 현황, 교육실태...

6. 시청자의 요구가, 인터넷의 평가가 기획사가 문제라면 그 구조로 집중하였을 때, 기획사의 연예인의

처우개선은 어느 정도가능하며, 1년 뒤 재조사하여 현황파악

7. 개선된 처우, 개선된 시청자의 의식이 시청률이 아니라 다릇 잣대로 전환 가능성

8. 시청거부운동....이 미디어 프로그램 개선에 미칠 영향은...

9. 철학적 예술성을 가미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증진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교육프로그램 기획, 그것이 매체에 대해 이해를 개선시키는 것

10. 시청자의 인식과 연예인 인권개선 소통망과 개선된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국가이미지와 한류스타의 인기유지기간에 대한 비교

11. 국가에서 연예계 장기 종사자에 대한 최저생계비 지원 및 확대 대책

12


070221

사회 재계약 운동? - 연예인분과에 사회활동가들이 진출해 모둠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식, 의식을 모아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을 할 수 없을까?  모둠의 각양각색의 주제을 모으고, 활동 지평, 소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풀어내는 제안부터 할 수 없을까? 인권에 대한 문제,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 처우...등등 기본적인 권리 외에 한류에 대한 접근 의식까지 다양하게 사고하고 조건개선 여부를 열어둘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삶의 편향된 접근을 배제하고, 조건에 대해 고스란히, 투명하게 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청소년들이 사회의 구조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도 담당해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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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2-1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한번 읽고, 다시 들어와 또 한번 읽고 갑니다.

여울 2007-02-16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만해서 읽기 힘드실텐데 요. 보기쉽게 정리하고 싶은 맘이 들어야할터인데. 미안하군요. 새해 잘 보내시구요.
 

아카뎀 소위원회-총회준비..


합리적 소비, 자본의 전복을 위한 시도, life style에 대한 연구, 비교대안, 합리적 소비기준에 대한 의식 높이기. 속도-경견-아무것도 볼 수 없다. 자본에 예술과 철학을?. 거꾸로. 합리적? 삶이란...다양한 삶의 비교연구 . 의식바꾸기 역순...자본의 증식에 대한 브레이크...

소비에 대한 10가지 역발상...합의하는 소비로 악덕기업주 길들이기, 함의된 소비로 자본이 다른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함의된 공동구매로 자본 전략 흔들기.

카탈로니아 찬가..

자유주의 테제가 아니라 노모스, 머리가 아니라 몸. 머리로 경도된 진보..몸에 대한 시도....

소통채널의 분산...분권...보험영업-분권 아는 네트웤으로 승부, 와이-영역넓히기...주체의 반경?


후기

1.  짧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생각의 진도가 빨리나가고 섞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생각이 들고, 들으면서 새로운 느낌, 말하고 정리되고 받는다는 느낌...

2.  소그룹핑, 모둠간 질적 소통력 강화, 테제가 아니라 노모스로, 주체의 확산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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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09  인천 차이나타운 - 기술자, 갑의 행태, 을의 습속, 병의 행태

 070210 ㅈㅇㄱ,윤ㅅ,기ㄷ,ㅅㅈ - 386 ;  나무와꽃 이야기

 070211 저녁만찬 - 연두모,부

 070212 군위 상가  조문- 학운위 이야기

 070213 일터 손님회식 - 학운위,아카뎀 세미나 불참


하나 -2

프레시안 : 386정치인들의 조로화(早老化)에 대한 지적인 셈인데, 원인이 뭐라고 보나.
  
  한홍구 : 정치인들이 동세대와 함께 자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했다.
나무가 같이 자라야 하는데 꽃만 따다 놓으니 금세 시들어버린 격이다.
  
  우리가 그때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고 노래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지금 어떤가. 사실 나도 그렇지만 그때 함께 노래하던 이들이 지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다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 말고 정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386들'을 봐야 한다. 운동 차원에서 노동현장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생활 차원에서 노동현장을 근근이 지키는 이들 말이다. 386정치인들은 이들과 너무 멀어져버렸다.


하나-1

신영복 : 그렇습니다. '나무야 나무야'라는 기행글을 실은 책, 그리고 해외기행인 '더불어 숲'은 연작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거기 보면 서간체 형식이구요, 서간체기 때문에 수신인이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글 속의 존재가 설정돼서 그 '당신'에게 부치는 편지고, '당신'을 나무로 상징하고 있는데, 그 나무에 특별히 많은 의미를 붙이기는 외람되지만 사람도 나무라고 생각해요. 이건 일종의.. 사람은 전혀 글로벌하지 않다는 함의도 담고 있습니다. 나무를 옮기는 것은 나무로서는 엄청난 고통, 또 다시 뿌리내리는 데는 굉장한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는 땅,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기의 잎과 꽃을 피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 그리고 숲은, 사실은 나무가 개별적 존재일 수는 없고 숲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더불어 숲이라는 얘길 했는데, 나무의 완성이 숲이다. 그래서 나무와 숲을 책 제목으로 삼기도 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자연과 역사와 문화와의 관계성을 우리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함의도 들어 있구요, 나무가 나무를 만나서 함께 지켜나가는 숲의 이미지. 이게 오늘날의 글로벌한 세계주의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 담론도 그 속에서 이끌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

(전략) 언젠가 같이 일하던 친구가 내게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했다.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라서 어리둥절했다.처음 들어본 말이어서 꽤 지났는데도 아직 기억한다.아메리카(미국)에 그닥 애정을 갖지 않고 있는 나로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결국 그 친구의 평가는 내가 '한국의 때거리'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걸 가지고 자꾸 딴지건다는 거로 정리할 수 있다.그 친구가 말한 나의 특징이란 것은 '조직보다 개인중심', '직장보다 가족중심' 그런 특징들이다.또 한가지 첨부하자면 어울렁 더울렁 노느니 혼자 노는게 낫다는 개인주의-요즘은 그걸 글루미족 이라고 하더군-... 그것이 나를 '아메리칸 스타일'로 규정한 근거다.이러한 요소를 아메리칸 스타일로 정의내릴 수 밖에 없는 너무나 '토종 한국인'인 그 친구의 어휘능력과 표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차라리 '유러피안 스타일'이 낫지 않았나? 그거나 그거나 매 한가지인가?(중략)

"위계를 짓는 데 사용되는 원칙 중의 하나가 연령이다.....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술자리에 가면 흔히들 잔을 돌린다.나는 개념이 없어서 인지 술자리에 가도 그냥 옆에 있는 사람부터 따라준다.그리고 후배가 먼저 잔을 받아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그런데 회사 회식 자리가면 술잔 돌리는게 위계확인하는 장소가 된다.마치 원숭이들이 서열 정하듯이.병권을 쥔 사람이 먼저 본부장을 따라 준다.그리고 그 밑에 부장...그리고 차장...그 다음은 선배....이제 내 차례다.아..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동기가 세명이다.^^어떻게 할까?  때에 따라 다른데...주로 이런다. "야..생일 누가 빨라? ""야..사원증 입사번호 누가 빨라?" ..그 때까지 다들 술들고 기다린다.다 받으면 그 때 본부장 한 말씀 하시고 원샷...

나도 조직의 술문화에 좀 익숙해져서 따라한다.그러나 내가 대장일 때는 아무렇게나 마신다.그냥 알아서 따라먹기도 하고 일부러 무시하고 옆에 있는 후배부터 준다.그럼 그 때 그 후배들이 뭐라하느냐? " 저..00선배부터 주시지요." .."싫다.내 맘이다.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준다.왜? " ...

술자리문화가 별개 아닌 듯 보이지만  진중권의 말처럼 수직적 위계의 강조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그리고 경험적으로 사실이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59728


 

둘.

 (전략) 12월 말 방학 직전에는 보충수업시수, 부교재채택 등을 주요 안건으로 하는 학운위가 있다. 학급문집에 대한 안건을 대충 만들어 우선 행정과장님께 예산이 어떤지 여쭤보았다. 당겨서 쓸 수 있는 다른 예산이 있다시면서 50만원 정도는 학운위 안건으로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셨다. 단순한 나는 '그럼 나도 편하지~'하는 생각으로 교감샘께 갔다. 교감샘 역시 별무리는 없을 듯하다시며 교장샘께 여쭤보라는 말뿐. 나는 방학식 바로 다음날 여행일정이 잡혀있어서 교장샘께 여쭙는 건 다른 한 분 샘께 부탁했다. 우리 둘 다 교장샘은 敵도 아닌 賊으로 보시는 것 같지만 이건 뭐 공적인 일이고 마구 버려지는 교지 대신에 학급문집을 만들면 좋겠다는 당신 의사를 학년 초부터 다른 선생님들을 통해서 은근히 전하신 바가 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 싶었다.

그러나 열흘 남짓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 샘께서 전해준 교장샘의 대답은 '학교 인쇄소를 통해서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 샘이나 나나 기가 찼다. '학교 교육계획서는 왜 인쇄서에서 만들지 않느냐'고 쏘아주고 나왔다고 했다. 에휴.. 그래도 조금의 기대는 했었는데... (중략)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샘의 전화를 받았다. 교장샘께서는 학습동아리 문집은  교육청에서 주어진 예산 안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므로 만들어 줄 수 없으시단다. 그리고 우리 반 문집도 반 정도 지원해줄 수 있단다. 기가 막힌다. 그래봤자 10만원 남짓. 그 돈은 내가 부담할 수도 있다. 내가 무슨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교사가 정당한 교육적인 활동을 하겠다는데 그걸 학교장이 지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이게 무슨 흥정꺼리인가 반을 깎고 말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그럼 도대체 왜 교지 대신 문집을 만들자고 했었던 걸까? 문집의 '교육적 가치'를 아시는 걸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다.(후략)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59906



 셋.

(전략) 이제는 누군가가 자살했다고 해도 아무도 이에 대해 관심갖지 않는다. 어제 동시에 지하철 계단을 오르던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더라. 자살이 유행인가보지. 그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타인의 죽음이 나와 상관없음을 의미한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건, 이제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티비와 신문에서 자살 소식을 너무나 많이 접해, 자살에 무뎌졌기 때문이다. 아무도 타인의 죽음 앞에 냉담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

  누군가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주변인의 관심이지 않을까 싶다. 작년 자살한 친구가 가끔씩 전화해 울면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을 때, 직장 생활에서의 갈등과 연애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 징후가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그저 마음 여리고 감수성 많은 친구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 생각했고, 점차 나아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쉴러는 말했다. 인생은 한번, 죽음도 한번, 태어남도 한번, 소멸도 한번뿐이다, 라고. 죽음도 소멸도 한번이지만 태어남도 인생도 한번뿐이다. 한번인 인생 좀 더 소중하게 살아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자살자에게나, 그들의 주변인에게나, 삶은 소중하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61029


넷.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1059880

 

다섯. 

(전략)몇년 전 국내 모 대학에서 투고를 위해 논문을 작성하고 있던 중, 그 논문과 아무 상관없는 교수들의 이름까지 모두 저자로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영문 없어 하며, 위의 영국에서의 경험담을 얘기했더니 그럴려면 영국에 가서 살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최소한 연구활동과 더불어 '교육'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라는 사회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자의 양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피땀 흘려 이룬 일을 관심있는 이들과 공유할수 있도록 발표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하고 존중할 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세상이 그렇게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되는 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일 더하기 일은 이 라는 진리를 지키며 사는,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나라에 많지 않은 것이 유감일뿐이다.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60367


 


0. 무례하게 알라디너 몇분의 글을 옮겨왔다. 일상이 묻어나서인데 양해를 바랍니다.ㅇ( 혹 맘의 짐이 되면 거두어들이겠습니다. ㅇ) 즐찾인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구(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글을 자주 올리시면 늘 제외의 대상이다. 호, 불호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게으름으로 여러분들 일상을 볼 수 없기에 아쉽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아두고 싶은 느낌이 며칠 전 들었다.

1. 070210 토요일 일터일로 밤이 되어서야 자리를 파하고 정해논 모임시간을 한시간반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1차를 마치고 2차로 장소를 이동. 맥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다. 아카뎀일로 몇번 만나고 이야길 나눈 ㅇㅅ 이란 친구와 . 나무 이야기를 했고 호흡이 맞는 느낌을 받았다. 사무국장과 기 ㄷ, 모두 88학번 동기니 전형적인 386인 셈이다. 그리고 일상을 나누다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못한 386들'이지만 묵묵히 나무를 키워내고 있음에 맘이 흔들렸다. 

2. 070212 학운위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박**위원 부친상이어서 함께 다녀오다. 학운위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 3, 여성 1분.. 조직적으로 들어가고 2년의 활동을 하면서, 되짚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부분, 어떻게 참여하고 후임자를 만들어낼 것인지? 다른 활동과 공간에 어떤 연계를 두어야 할 것인지?가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자리를 마련하여 나누기로 하다.

3. 일상에서 변화시키는 것과 바꾸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외롭고 허전하고, 차라리 전선이 보이면 좋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죽음마저 무감각해지는 일상들. 조직에 갇혀 보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구태들.  일상을 바꿔내는 전사!들의 흔적을 빌어온다. 격려와 갖은 마음의 소통과 증폭을 위해 따듯한 맘들을 보내주었으면 한다.

4. 나무와 숲.. 숲이야기는 다음에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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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이란 것, 우리 일이란?

1. 기능적 관점, 도구적 관점 - 돈이란 심장박동에 맞춰 뻠뿌질하는 일들. 나의 명예와 권력,,힘 등에 예속된 일 들.. ...

2. 일이란 이렇게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관점만으론 해석도 헛헛하다. 그나저나 무미건조하게 다룰 수 없는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이란 넘이 때로 궁지에 몰리고,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을 보면, 제한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유독 맘과 몸을 준 일들은(유독 그런 작업들은 컴이 다운되고 난리부르스인가?)

3.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일이라면? 너무나 애가 타, 맘이 촉박하기 그지없는데 부지불식간 허사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 일이라는 것이 묘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4. 그래서, 일을 이 기계부속품 같은 생각에서 떼어내 보자.

5. 일이란 놈이 배와 배아가 있어야, 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마음도 섞이고, 생각도 섞이고 정성도 섞여야 발아를 한다고 해보자.

6. 우리의 일이란 것이 그렇다고 해보자. 모든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일이라고 해보자. 그 시선이 응축되어 모아진 일은 그 과도한 관심때문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으리라. 그 일은 그 관심에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고, 그 관심을 피해가려 안간힘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7. 일이란 것에 중립성이 있다고 해보자. 돈되는 일도, 내가 원하는 일도, 남이 원하는 일도, 나-너가 원하는 일도, 우리가 원하는 일도 같은 출발선상에 평등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8. 쉽게 이야기해서, 생물이라거나 생태?란. 아니 그건 넘이라고 해보자. 오래 살아남는 일에 대해 생각해봐도 되고, 이리저리 요리저리 한번 뜯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장독에서 내는 장맛이어도 좋고, 아니면 바꾸고 싶은 나의 한모습이어도 좋고, 그런데 가급적 나와 사회로 환원되는 덩그러니 야생성에 노출된 일이 아니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

9. 뭔가 마음도 모으고, 생각도 모으고...혼자 할 수 없는 그런 류의, 중국고대사전의 분류기준에 따라 파리?처럼 보이는 부류일 수도 있다.

10. 왜? 도대체 그런 일들은 더 어려운 것일까? 나란 놈 맘을 끄집어내기도 힘든데, 너란 놈의 마음이 사회란 시선이 팽팽해 도저히 눈길 한번 얻을 수 없는 세상인데...어떻게... ...

11. 그런 허접?한 생각은 잘 하라고 내버려두고, 그래도 나-너, 우리에 맘 열려둔 사람에게 기대어보자. 돈에 몸 준 사람에게까지 애정의 손길을 보낸다는 것은 지난한 고난의 행군이 될 수도 있기때문이다.

12. 각설하고.


꽃과 문장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워 줄기를 안정시킨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이에 꽃이 피어난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를 북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킨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한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는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양덕인 변지의에게 주는 말[爲陽德人邊知意贈言]〉 7-309


人之有文章, 猶草木之有榮華耳. 種樹之人, 方其種之也, 培其根安其幹已矣. 旣而行其津液, 旉其條葉, 而榮華於是乎發焉. 榮華不可以襲取之也. 誠意正心以培其根, 篤行修身以安其幹, 窮經研禮以行其津液, 博聞游藝以旉其條葉. 於是類其所覺, 以之爲蓄, 宣其所蓄. 以之爲文, 則人之見之者, 見以爲文章. 斯之謂文章, 文章不可以襲取之也.


화단에 초목을 심어 꽃 한송이를 보려면 드는 품이 만만치 않다. 잘 심어 뿌리를 안정시키고, 땅에서 양분을 끌어올려 가지와 잎을 틔운다.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주며, 때로 버팀목도 세워주어야 한다. 꽃은 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바른 마음과 도타운 행실은 초목의 뿌리요 줄기다. 이것이 든든해야 힘을 받는다. 고전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뿌리를 통해 줄기로 양분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가지 끝까지 양분이 전달되어야 꽃망울이 부퍼서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 문장은 바로 이렇게 해서 피워낸 꽃송이다. 바탕 공부 없이 꽃만 피우려들지 마라. 세상에 가장 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안 된 글쟁이다.       

- 다산 어록중에서


라딘마을에서 퍼온 글로 생각 좀 해보자.  꽃과 문장이 아니라, 꽃과 일이어도 괜찮다 싶다.

13. 우리의 일도 생태의 시선으로 보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씨앗에 싹을 틔우는 것, 묘목을 자라게 하는 것, 과실이나 고목으로 분류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하고 싶은 일들을, 어쩌면 파리처럼 보이는 일들을 세밀히 들여다 보자.  그것이 자판기처럼 해결되거나, 나 혼자 품어서 될 일이라는 만용은 팽개쳐보자. 일이란 것이 내 마음 속의 고민과 번민, 똑 같은 시선으로 고민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의 마음들로, 그런 눈빛이 만나 주변에 모아진 마음들을 만나, 따듯하게 온도가 올라갈 때에서야 사회적 '싹'을 틔우게 될지 모른다.

14. 그렇게해서야 틔운 '싹'은? 맞다. 그대로 '싹'일 뿐이다. 그곳에서야 작은 시작점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저절로 크는 일은 없다. 아쉽게도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니까?

15. 혼자 생각은 구만리 창공을 나를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사회적 '일'이란 현실은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돌담길처럼 엇나가듯, 비껴나간다. 이제부터라도 비껴나가는 돈의 그물망에 빠져나가는 사회적 '일'들의 마음을 머리에 가둬보자. 내머리가 아니고, 나-너의 머리, 아니 '우리'의 가슴에 말이다.

16.


 

후기

다산어록을 퍼 올렸기에 생각이 겹쳐져 끄적거린다. 군의 상가집에서 늦게 돌아와 밖이 밝아올 무렵. 다시 잠을 청하다 생각이 뭉쳐져 녹을까봐, 스러질까봐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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