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20개 상황에서 "예"라는 대답이 4개 이하이면 당신은 책이나 활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당신이 이 블로그에 오게 된 것은 우연 또는 사고였을 것이다. 5-12개 나오면 당신은 정상이다. 안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살아 가면 된다. 13개 이상 나오면 당신은 활자중독증이다. 그런 분들은 필히 이 게시판에 족적을 남겨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16개 이상 나오면 당신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중증이다.




1. 화장실에 갈 때는 아무리 급해도 신문이나 잡지나 책을 꼭 챙긴다. 나올 때는 다리에 감각이 없다. 
YES

2. 피치 못해 화장실에 읽을거리를 챙겨가지 못했을때는, 볼일을 보면서 주변에 보이는 활자들을 꼼꼼이 읽는다. [공중화장실일 경우] 벽의 낙서(예:저는 밤마다 *려요. 01x-xxx-xxxx로 전화해 주세요) , 광고스티커(예:무모증으로 고민하십니까?) [집 화장실일 경우] 염색약 사용설명서, 샴푸 뒷면(예:xx삼푸는 발삼향을 추출하여 윤기있고 아름다운 머릿결을 유지해 드립니다. xx샴푸는 xx린스와 함께 쓰시면 더욱 효과가 좋습니다.) 
YES


3. 시골에 내려갔을때 마땅히 읽을 게 없어 "축산신문"이나 농약 사용설명서를 20분 이상 읽어본 적이 있다.
YES


4. 신문을 광고(와 신문 사이에 끼여있는 광고지)와 주식시세를 포함해서 1면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적이 있다.
NO


5. 대형서점에 한번 가면 평균 3시간 이상 서 있는다.
NO


6. 책냄새를 좋아하고 5가지 이상의 책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NO


7.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때는 주로 신문이나 잡지나 책을 읽는다. 지하철을 탔을 때를 위해 따로 준비해 두는 읽을거리가 있다.
YES

8. 집을 떠나게 되면(예:피서갈 때, MT갈 때) 꼭 책이나 잡지 한권 이상을 가방에 챙긴다.
YES

9. 책값이 비싸서 망설여본 적이 없다. 책값은 아무리 비싸도 아깝지 않다.
NO


10. 나는 서핑 중독증세도 있다.
NO

11. 하지만 채팅보다는 주로 눈팅을 선호한다.

YES

12. 책을 도저히 놓을 수 없어 약속시간에 늦을 때가 종종 있다.
 NO.


13.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YES

14. 학교 도서관 사서선생님과 알고 지냈다. 단 학교도서관이 없었던, 또는 사서선생님이 없었던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공공도서관 사서나 서점 주인도 됨.
 YES

15. 맞춤법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찌개"를 "찌게"라고 쓴 식당에 들어가면 불편해진다.
 YES


16. 혼자 식사할 때는, 책이나 신문을 보면서 밥을 먹는다. 결국 찌개는 식고 밥은 딱딱해진다.
 YES

17. 밤에 불빛이 밖으로 새 나가지 못하게 이불을 둘러쓰고 몰래 책을 본 적이 있다.
 NO

18. 고3때는 집에서 나 때문에 신문을 끊었다. (논술세대는 제외)
 NO

19. 시험 전날 딴 책을 보느라 밤을 새거나, 책을 읽느라 숙제를 못해간 적이 있다.
NO

20. 플랫폼에 걸린 지하철 노선도는 아무리 오래 봐도 재미있다.
YES

11개, 휴우~ .  다행~ .. 퍼오고 퍼온 것이라 출처모름.  한번 해보삼. 알라디너분들 만만치 않을 듯~.  중독증이라면 어쩌라구~... 자중하셔야지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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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활자중독증 자가진단-조선인 편
    from 조선인과 마로, 그리고 해람 2007-08-16 13:38 
    다음 20개 상황에서 "예"라는 대답이 4개 이하이면 당신은 책이나 활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당신이 이 블로그에 오게 된 것은 우연 또는 사고였을 것이다. 5-12개 나오면 당신은 정상이다. 안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살아 가면 된다. 13개 이상 나오면 당신은 활자중독증이다. 그런 분들은 필히 이 게시판에 족적을 남겨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16개 이상 나오면 당신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중증이다. 1. 화장실에 갈 때
 
 
가을산 2007-08-1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13개네요. 전반부는 부진: 2,3,7,8 후반부는 거의다: 10,11,12,13,14,15,16,17,19. (20번은 책이 없을 때만 봄. ^^;;)

여울 2007-08-16 13:45   좋아요 0 | URL
ㅎㅎ.
6번 질문--책냄새가 5가지 이상이라... 제 후각에 문제있나요.
10부터 질문은 가중점을 두어야겠는데요. ㅎㅎ

조선인 2007-08-1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3,7,8,10,11,12,13,14,15,16,17,19
음, 살짝 중독증이긴 하군요. 쩝.
그런데 여울마당님이 12,17,19를 No라고 대답한 건 거짓말 같아요.
에, 또, 가을산님이 1번을 No라고 한 건 직업 탓일까요?

여울 2007-08-16 13:43   좋아요 0 | URL
ㅎㅎ. 답변드리죠. 범생이예요.ㅁ ㅎㅎ. 12,17,19. 이해 되시죠.그런데 일을 못하네요. 이러다 짤릴 것 같아요. 바꿔놓고 생각해도.. 알라딘 증거 충분함-일을 하지 않고 딴짓만 한다아... 일터책에 보고싶은 책 끼워놓고 본다.... 조선인님, 사알짝 중독이네여. 저두 살짝 안중독...

마노아 2007-08-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상 범주네요. 화장실에 오래 있을 적 시절에는 꼭 들고 갔는데 지금은 금방 나올 수 있어서 안 들고 가요. 내가 아끼는 책 남이 화장실 들고 가면 막 화나요^^;;;

여울 2007-08-16 15:53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부럽군요. 부러워요. ㅎㅎ. 음. 사시는대로 사시면 되네여 ㅁ.ㅎㅎ.
 
[코멘트]<디 워> 광팬들, 집단행패 그만해라(진중권)


[한겨레] 060317  고전 다시읽기/빌헬름 라이히 <파시즘의 대중심리>

월드컵, 장갑차, 노무현, 황우석의 공통점은? 그렇다. 모두 대중과, 대중적인 운동 내지 대중적인 흐름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적극적인 지지나 반대의 의사를 표현하면서 하나의 흐름이, 대중이 되어 커다란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것. 사실 이런 식으로 대중에 대해 말하면, 어느새 87년 6월항쟁이나 7~8월의 ‘노동자대투쟁’ 혹은 광주항쟁 등을 떠올릴 것이다. 대중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 만들어낸 사건들은 대개 이처럼 혁명이나 항쟁, 저항의 양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에 관심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중을 혁명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지금은 잠재되어 드러나지 않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솟구쳐오를 혁명적 존재로. 이런 관념 속에 있는 한 2002년 월드컵의 대중이나 황우석 사건의 대중은 안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1930년대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으로 미친 듯이 몰려갔던 대중 또한 안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전세계 인민들의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시를 밀어주고 블레어를 밀어주는 대중, 혹은 지금은 천황이나 야스쿠니로 상징되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노선을 지지하는 대중들은 보이지 않을 게 틀림없다.

라이히가 이 책을 쓰던 시기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확실히 그랬다. 노동자를 포함해 인민대중들이 미친 듯이 히틀러와 나치에 열광하며 지지했지만, 그것은 모두 원래는 선한 그들이 ‘나쁜 넘들’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간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거짓’을 폭로하면, 진실을 알려주면 대중이 혁명적인 본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쓸 당시 라이히는 마르크스주의였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대중은 나치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나치가 말하고 행동한 것을 욕망했던 것이고, 총통에게 속은 게 아니라 총통에게 복종하기를 열망했던 것이다. 자신을 해방시키기는커녕 억압할 게 분명한 것을 욕망했던 것이다. 마치 그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진정으로 혁명을 꿈꾸는 사람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대중은 왜 그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도 되는 양, 자신에 대한 억압을 욕망하는가? 혁명적이어야 마땅한 계급의 대중조차 어째서 혁명이 아니라 반동을 지지하거나 욕망하는 것일까? 이 질문이 라이히로 하여금 바로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밀려가지 않는 위대한 저작들의 대열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다.

라이히는 흔한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대중은 본래 혁명적이지만 속아서 저런 거라는 식으로 당혹스런 사태에 눈감지 않으며, 그렇다고 하이데거나 고상한 철학자들처럼 대중이란 속물적인 욕망, 복종적인 태도로 사는 ‘世人(세인)’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대중이 갖는 그 노예적이고 속물적이며 때론 반동적이기도 한 태도를 냉정하게 직시하며, 그것이 야기하는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대중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욕망이나 태도를 전환시켜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과 해방을 위해 일어서게 만들 수 있을지,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지를 탐색한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진정으로 혁명을 꿈꾸는 자였음을 확신한다. 진정 혁명을 꿈꾸는 자에겐, 어떤 계급이나 대중이 혁명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의당 혁명적이어야 할 그들이 혁명적이지 못한 이유를 찾는 게, 그들이 권위에 쉽게 복종하면서 또한 다른 이들을 복종시키길 욕망하게 되는 이유를 찾는 게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뢰즈/가타리는 라이히의 이 질문이야말로 혁명을 꿈꾸는 모든 정치학이 대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했던 것일 게다.

마르크스주의자인 동시에 프로이트가 아끼는 제자기도 했던 그는 정신분석학을 이용해서 이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물론 그것은 자신이 변형시킨, 생물학적 욕망과 오르가즘 능력이 강조된 정신분석학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욕망과 성격구조다. 그에 따르면, 대중이 혁명적이지 못한 것은 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지배하려고 하지만 강한 자들 앞에선 굴종하려는 ‘권위주의적 성격구조’ 때문이다. 그러한 성격구조는 성적인 억압 때문에 발생한다.

아버지에 복종…성적억압의 산물


물질적 착취나 억압은 그에 대한 반역을 야기하지만, 성적 억압은 복종을 야기한다. 성적 억압은 “네가 원하는 건 네 엄마지?”라고 다그치며 욕망을 수치심으로 몰아넣는 한편, “계속 그러면 잘라버릴 거야!”라며 위협하며 욕망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억압은 오르가즘에 대한 공포를 낳고, 그것은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이러한 억압은 성을 아버지가 독점하는 가부장제와 더불어 작동한다. 총통에 대한 선망, 총통에 대한 복종,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복종을 야기하는 이 성적 억압의 산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아버지로, 총통으로 대체하게 하는 이러한 억압은 또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도록, 아버지나 총통, 국가로 떠넘기게 만든다. 이것이 파시즘으로 몰려갔던 대중들의 심리, 요컨대 ‘파시즘의 대중심리’다.

그렇다면 권위주의적 성격구조를 혁파하고 해방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욕구의 충족이나 쾌락, 기쁨이나 즐거움을 죄악시하거나 적대시하는 금욕적 체제를 넘어서서 노동과 즐거움이 서로 합치하고 노동과 욕구의 충족이 서로 나란히 공존하는 그런 체제를 만듦으로써 가능하다. 노동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 되게 하고, 일이 싫어도 참고 하는 의무가 아니라 좋아서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으로 만드는 것. 이러한 체제를 그는 ‘노동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술과 예술이 하나였던 장인적 생산체제로 돌아가길 꿈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라이히는 노스탤지어를 먹고 사는 낭만적 몽상가가 아니다. 거꾸로 그는 기계적 합리화나 분업을 유지하면서 노동이 즐거운 활동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를 위해선 노동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작업 자체를 일하는 노동자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실행하며 관리하는 작업장 자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것을 통해 노동자 자신이 작업은 물론 경영 전체를, 나아가 집단의 활동 자체를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기-책임(자율주의)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한 때 소련의 사회주의혁명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그는 노동민주주의를 향해 거대한 일보를 내디뎠던 이 혁명이 30년대 들어가면서 또 하나의 권위주의적 국가체제로 후퇴했음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예컨대 노동자의 자주관리는 중앙에서의 결정이 집행되는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국가장치와 국가적 통치자로 대체되고, 자발적인 노동은 성과급이나 5개년 계획기간 동안 직장을 고정하는 제도(그는 이를 ‘자물쇠’라고 부른다)에 의해 의무가 된다; 게으른 노동자와 성실한 노동자를 게시하는 제도를 통해 한편에선 수치심과 열등감, 질투심과 증오심을 유발하고 다른 한편에선 승리감과 공명심, 야심과 자만심을 배양하는 권위적 성격구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스타하노프 운동 식의 노동경쟁체제로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적대가 발생하고 심화된다 등등. 대다수 대중을 무능력하게 만드는 이런 요소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사회주의 소련의 붕괴를 목도한 이후의 어떤 책들보다도 더 예리하고 현실적이다.

공산당과 정신분석협회서 쫓겨나


이 탁월한 책이 제대로 된 독자를 발견했던 것은 혁명과 사랑, 혁명과 욕망을 연결하고자 했던 1968년에 이르러서였다. 니체 말처럼 그는 너무 빨리 왔던 것일까? 그러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늦게 왔던 것일까? 어쨌건 그의 책이 갖는 이 '반시대성‘으로 인해 그는 혁명을 하고자 했지만 공산당에서 쫓겨났고, 성과 욕망, 무의식에 대해 연구했지만 정신분석협회에서 쫓겨났으며, 나중엔 정신과의사들의 집요한 로비로 미 식품의약청에 의해 체포·투옥되어 옥사했다. 그의 시간이 오기 이전인 1957년에. 그러나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그랬듯이, 그를 죽인 사람들은 이미 누구도 기억되지 못하지만, 이 책은 이후에도 오랜 시간 살아서 그의 시간을 지켜볼 것이다.


서평자 추천 도서


파시즘의 대중심리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그린비 펴냄(2006)

(독일어 초고로 새로 번역된 책)


오르가즘의 기능

빌헬름 라이히 지음, 윤수종 옮김.

그린비 펴냄(2005)

(라이히의 성격분석기법이나 성 과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책)


빌헬름 라이히

마이런 섀라프 지음, 이미선 옮김

양문 펴냄(2005)

(라이히의 ‘환자’이자 제자였던, 지금은 하버드대 의대 교수인 정신의학자가 쓴 라이히 전기)



50자 서평

◇ 한 30대 독자 “파시즘이라는 유령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이때 이 책은 파시즘적, 외디푸스적, 가족주의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한다. 사랑하라. 일하라. 자유롭게!”

◇ 김상운(인터넷서점 알라딘 독자) “‘운동’으로서의 파시즘을 분해함으로써 오늘날 신자유주의와 신우익의 발호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들어 주는 파시즘과 국가주의 연구의 살아 있는 고전.”

◇ 김민규(회사원) “수십 년 전에 있었던 비극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 없는 비극들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시대의 역작.”

◇ 김희진(인터넷서점 예스24 회원) “가장 강력한 반동적 정치를 만들어내는 건 스스로 비정치적이라 느끼는 사람들의 예의바름과 신비주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파시즘을 우려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 다음주 이후 고전 <나는 고발한다>, <노자>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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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쟈 - 사회적 독서

바람구두

파란여우

배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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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최고의 반전을 선사한 책

 

요즘 라이히에 빠져있다. 동네 인문강좌가 시발이 되어 논문 몇편이 관심을 끌었는데, 님의 모호한 답변이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허접하게 반복하는 스스로 되비추는 모습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라이히 덕에 무더운 여름을 머리카락 쭈빗하도록 서늘하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젊은 청년 라이히는 여러모로 매력이 많다. 세상바꾸기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끊임없는 연구,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공학,의학을 넘나드는 연구 또한 그러하다. 아니 연구가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확증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발표를 미루는 마음가짐, 그리고 그의 마음을 가득채우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조금이라도 나은 삶, 변화, 사랑이다.

20년, 30년쯤 학습열풍 사이에 이런 소책자 하나 끼어들었으면 어떨까 싶다. 뿔뿔이 흩어져있는 사랑, 노동, 지식을 관통하게 만들고, 살아있어, 일상으로 가지고 싶어하게 만드는 '그'가 살아숨쉬었다면 어떨까? 물론 여전히, 지금도, 20년뒤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그렇게 마음에 불을 당기는 사람들이 가져간다면 다른 일이 되겠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100년 뒤든, 200년 뒤든, 항상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당대의 호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시작하고 품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그는 지금의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점이 청년 라이히의 고민이었을게다. 그는 밥벌이의 비루함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력의 선결조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력이란 것이 늘 진실을 빗겨나가기에 오히려 떨어져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함이 더욱 더 대중을 미워하고 짝사랑하는 문제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느낄 것을 요구한다.

똑 같이 살아가는 '우리', 늘 나눌 수 있는 '우리', 같이 웃고,고민하는 '우리'에 대한 덧셈으로 이끈다.

청년 라이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그의 고민과 열정 속으로, 부단한 사고의 폭을 넓혀가고, 끊임없이 실천하는 '그'를 보면, 당대의 천재로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행간을 따라다니다 보면, 아 그렇지. 다 알고 있는 것이었는데, 서로 연관을 왜 시키지 못했던가?. 아 이런 아쉬움, 이런 문제가 있구나를 느끼게 된다. <그>는 낯설지 않다. 옆집 형아처럼, 오빠처럼 끊임없는 새로움에 어제의 생각을 접어야 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여전히 놀랍고, 신기하고,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열이면 아홉이 곡해할 <성정치학>, <오르가즘>, 그리고 곡해한 경험이 있는 68혁명의 실험들이 있어왔지만, 겉만 핥지 않는다면, 성방탕과 구별할 수 있다면, <신비주의>와 <권위주의>를 혐오했던 그를 조금이나 이해하는 지름길로 가지 않나 싶다.

그런 그가 친숙하다. 권위와 신비, 하지만, <가족>에 머무르는 시선, 나이가 듦에 따라 점점 갑옷을 입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지만...

그를 자취를 조금 쫓아다니다 보니, 맑스를 아버지로 프로이트를 어머니로 태어난, 학문의 시발점, 청년 라이히가 고민한 연구결과는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다. 어쩌면, 지젝이나 고진이 출발하고 있는 전제나, 문제점에 대해서도 발화지점을 살핀다면, 훨씬 사고-실천을 폭을 넓히는데 유용한 발화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더, 사회 활동가들이 단순히 양적인 확대수준에서 회원확장에 머물고 있다면, 양적인 당원확대에 집착하고 있다면, 밥벌이의 비루함과 삶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다면 한번 청년 라이히와 친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폭염의 시대에 조금이라도 냉정히 자신과 우리를 돌아보고 싶다면, 뭔가 새로운 접근을 갈망하고 있다면 정녕 추천해드리고 싶다.

우리에게 최고의 반전을 선사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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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잘코군님의 "<디 워> 광팬들, 집단행패 그만해라(진중권)"

청계천,월드컵,황우석,디워 - 점점 격해지는 경쟁, 힘듦,양쪽으로 벌어짐, 앞날에 대한 가속화되는 불안 - k1에 대한 증폭되는 매료, 성적강박 - 선취하여 증폭시키는 대중매체의 반복된 틀. 삶의 허기는 스타, 환상으로 채워진다. 반복적인 신호를 보낸다. 대중은 단순 명료한 신호를 계속보내고 있다. 현란한, 복잡한 대응을 바라지 않는다. 이미 <디워>로 갈증은 채워졌다. 신랄한 비판이 마음에 울리지 않는다. 현실이 암담하다. 또 세상은 퍽퍽하다. <화려한 휴가>로 울음을 터뜨린다. 위로받고 싶거나, 더 어려운 처지에 울음보를 터뜨린다. 꼬리를 물다보니 ... 그렇다면 '누리꾼'들 정신차려라 보다 다른 무엇이 필요할 듯 하네요. 정신차리고 있지 못하고, 그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을수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헤어지지 말라고 해도...그럼 어떻게 하죠??(처음 댓글 남기는 것 같군요. 평소 잘 보고, 놀고 간답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

 

0. 황우석에 대한 반추. -  마음에 들어간 분들과 평소 이야기를 나누지만, 한번도 논리적인 납득은 된 것 같은데, 정녕 그것이 아니었다. 일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첫사랑에 대한 미련처럼 아니다. 재개해야 한다. 그가 준 몸과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논리적인 반응은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만, 미약한 파동으로 그칠 확율이 높다.

1. 월드컵에 대한 반추 - 어린이와 여성, 청소년들을 광장으로 끌어내다. 삶의 허기 - 잔치의 충족으로 보아야 한다. 살만했다. 민족-자부심에 대한 증폭이 우리에 대한 가치를 좁게한 측면이 있다. 자부심, 우리에 대한 과도한 확신, 할 수 있다는 좀더 요구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증폭시킨 것이 또 있군요. 근거 빈약한 사극 유행...)

2. 만들어진 가치관-증폭되어버린 가치관과 구석으로 밀려나는 '현실'의 간극.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연인처럼,  현실을 너무 모르는 낭만적인 사랑이야, 제발 정신차려야 한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반대를 하면 할수록, 서로를 갈라놓으면 갈라놓을수록 견고해지는 마음, 변치 않는 사랑.

3. 일상의 회복, 군자같은 이야기다. 어떻게~. 낭만적인 사랑이 밥먹여주냐, 너의 현실을 봐. 단칸방, 살림살이 가재도구도 없다구. 어떻게 먹고살려구... 어떻게... 마음에 대한 분석이 많았으면 좋겠다. 썰렁한 진**을 제외한 제말만 어렵게 뱉고 마는 나같은? 넘은 사고력고 분석력도 현실을 바꾸는 어떠한 말도 고갈되었다. 어떠한지...어떠해야되는지? 반복되는 불빛과 신호가 너무 위험스럽지 않은가?

4. 왜 그러한지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고, 논쟁이 되면 좋겠다. ... ...

5. <디워>--<화려한 휴가>의 진폭이 전혀 다른 대상이 아니라, 같은 목소리임을 주지해야 할 것 같군요. 따로따로 해석만 하는 것보다, 같은 울림임에 귀기울여야, 그것도 달라진 사람들이 아니고 시간의 축에서 증폭된 <우리>이지 않을까싶군요. 약침은 되겠지만, 마음을 흔들지는 못할 것 같군요. 그런면에서 평론-비평가, 지식인그룹이 전부 제 관점에서 해석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파시즘과 축제를 번갈아가는 것, 꽁무니를 쫓아가는 해설에서 그나마 진중권씨의 약침은 대단한 것 같군요. 일상의 파시즘-애국주의-공감 등 자기위주의 해석은 더이상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군요. 괜히 심란하게 해 드리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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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워, 거대한 소란의 속살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7686 뱀발. 아직도 끝나지 않았군요. 대중에 대한 시선의 엇갈림이 <다시보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 시각 차이, 시선의 차이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문국현 현실>을 자신의 일상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의탁할 위험성이 고스란히 도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면 기쁨은 아픔과 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