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점점 가늘어지고 넓어져
파란 하늘에 닿는다

파란여백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점점 단단하고 틈실해져
땅 속으로 힘차게 치고간다

하늘을 담는 방법은 저리도
다른지, 다기한 뿌리들은
제 모습대로 하늘에 뿌리를 두고

땅을 뚫는다


땅의 저편은 어쩌면
꽃을 피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뿌리의 깊이보다 더 높이 유려한 꽃들이 망울져 있을 것이다.

꽃들은 그렇게 이어져 있고
망울들은 슬픔을 그렇게 나누고
겨울과 봄,여름을 거꾸로 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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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앎의 나무>   정상에서 물방울을 데굴데굴 굴린다. 정상과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내려와서 지금의 바닥면까지 흘러왔다. 중간에 끊긴 것도 있고, 계통을 달리하여 정착한 것들이 있다. 다양한 종이 산의 입구에 있다. 영장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 곤충이 많다. 개미, 벌, 영양, 비비원숭이, 펭귄, 새. 그 내부관계를 살펴보면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가 기본이다. 종이 살아가기 위해 이기주의는 별반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이타주의를 위한 이기주의이다.

이렇게 보면, 종은 우열도 없고, 선택받을 일도 없다. 유유히 산정상에서 줄기줄기 내려왔을 뿐이다. 좀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하였을 뿐,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생물학의 역사는 역시 사회학의 역사이다. 새들의 지저귐, 벌들의 동선, 개미들의 분화. 뉴런과 신경계, 뇌의발전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된 것이 아니다.  언어역시 그러하다.  알기 위해 언어가 생긴 것이 아니다. 삶이 앎이다. 문화의 표류가 그런 문화를 갖기위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종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 구사하는 언어를 바탕에 둔 앎이란 것이 있던 것은 아니다. 종이 시간이란 축의 나뭇가지를 길게 오래 가지려고 하면, 틀에 갇혀 있는 그물의 경계에 흔들리고 넘어서야 한다. 의사소통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한다. 정보가 많다고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관을 통해 받아 들여지는 것이다. 받는 사람의 수용여부에 따라 달린 일이라 한다. 의사소통은 그런 것이라한다.

그것이 문화의 표류일지, 자본에 영혼을 팔은 언어란 한계에 흔들리며 자멸할 수밖에 없는 종에 대한 이기주의일지 모르겠지만, 안다는 것의 한계를 알지 못하면, 그 새로운 앎에서 출발하여 표류와 다른 세계에 대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비단 영장류라는 종의 말살이 아니라, 숱하게 말살 당한 종의 괴멸을 스스로 저지를 수 있는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앎이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앎의 앎에서 출발한 소통이 '나만'과  진리를 가장한 '객관적진리'의 사이를 꿰뚫고 가는 중간길이라 한다

꼬리. 윈의 진화론에서 선택론에서 의식을 구해낸다. 극히 제한적인 이론인 적자생존에서도 구해핸다. 언어로 출발하고 앞의 것에 가세하여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대해 다시보게 한다. 생물학과 사회학적 역사 사이엔 간극이 없다. 마치 정신이나 의식이, 독립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무의식의 세계가 사회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처럼 돌아다닌다고 인식한다면... 학문간의 경계는 애초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 구별을 지어 만나지 못하게 했을뿐. 정신분석학도 지극히 생물학적이다. 문제의식에 있어 두 권의 책이 겹친다.

 

<말들의 풍경> 이오덕 민중언어주의, 프랑스 NAP의 친자본 친구구분법(섬뜩하였다. 자본의 그림자를 투영하여 친구의 관계를 지칭하는 언어가 남다르다.- 친구(거의 모르는 사람), 좋은 친구(친구), 사적인 친구(주치의,전담변호사, 회계사), 절친한 사이(밥한번 먹는 사이), 검소하다(극도로 인색하다), 먹고살 만하다(매우 부유하다) 그 친구는 자식 복이 없어(그 친구 아이가 마약을 해) 걔들 문제가 많아(걔들 이혼했어)- 강남이 이럴까? 자본에 의해 이렇게 언어마저 구획되고 고정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니 이미 친구란 규정이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아닌 것처럼 생각을 부여잡고 있는 것인가? 다양한 모습으로 보는 우리말들의 풍경이 무척 다채롭다. 새삼 누리꾼들이 쓰는 용어의 풍경도 잘 잡힌다. 

<원교와 창암글씨에 미치다>, <완당평전>에서 스친 기억들이 되살아나다. 원교를 높이친 것 같지 않던데, 그 사람 맞는가? 읽다보니 그 노친네였다. 왕희지-구양순 매니아를 추사가 몹시도 경멸했던 것 같던데, 말년 제주도 유배에서 돌아오는 길 그를 찾았으나 이미 숨을 거두었고 묘소에 찾아가 묘비를 적었다는 기억이 난다. 원교는 밋밋하였다. 창암은 다시보게 되는 것 같다. 추사가 귀족적이라면, 창암은 민중적? 글씨의 울림이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추사가 비단이나 종이 먹을 까탈스럽게 골랐다면, 창암은 있는 어느 것이나 쓰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했다고 한다. 호남의 두 명필의 글씨의 울림을 느껴볼 수 있도록 세밀히 썼다. 통사에는 미치지 못하여 맛이 떨어진다. 세분의 글씨가 함께 있다는 해남 대흥사에 가보고 싶다. 배경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사도세자의 고백>, <완당평전>을 보시면 좋겠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설명서> 보시면, 돈 벌 수 있다. 지난 영수증과 홈페이지 들어가는 수고만 하시면, 연말에 기쁜 소식 아닌가? 그렇게 보시다가 현실에 마음 한번 주시길. 기부에 대해 세밀히 고민해보자. 펀드에 너무 많이 투자하지 마시고 사회에 투자 한번 지대로 해보자. 맘먹고 지대로 아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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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우성의 봄(作)
    from 木筆 2008-01-28 14:11 
            1. 한편의 유전자조작 관련 영상에서 시작한 책 설핏읽기는 몸가는대로 맛을 본다. 하지만 씁쓸한 맛은 더 신경을 곧추세우게 만든다. 시간과 공간, 시공간의 함수는 의도하지 않는 사실들을 그들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생산해낸다. 그런 사실들은 점점 잔뿌리를 내리며 보이지 않던 곳을 서서히 드러내보인다. 원하는 사실 외의 다른 것들이 원하는 사실을 덮어버리고 이해를 원점에서 출발시킨다.
 
 
 

   

 0. 저녁 약속이 있었다. 놓친 메모가 일터에 있어 할 수 없이 도서관의 책읽기를 그만두었다. 페달을 밟고 제법 찬바람이 섞인 강을 따라 일터에 도착하였다.  짧은 시간, 다른 책과 견주다 이책을 접어 들었다.

 

1. 료자본은 권력와 합심한 대표적인 분야란 생각이 책장을 넘길수록 더 든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분야에서 느끼는 것과 바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가, 법조계만큼 차이가 크다. 환자라고 칭하는 것도 정보의 소통구조도, 내부적인 인력의 수급도, 선망하여 공급되는 구조도 그 간극에 유난히 열망하는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2. 으로 그 차이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 문턱만큼 당연하다고 여기는 심리의 장벽도 있을 것이다.  일이백원에 분개하던 소비자들이 이 곳에서 유독 작아지고, 절망만 남는 이유는 제도안, 곁, 밖에서 잠잠한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연유도 있겠지만, 또 다른 선망이 공존하고, 이 벽이 너무 탄탄하다고 지레 겁을 먹는 이유때문에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3. 장을 넘길수록 범접하기 어려운 직선은 울퉁불퉁 곡선으로 변해간다. 제도안에 요구한 것도 지레 겁을 먹고 하지 못한 것이나, 목숨을 버린 흔적들을 통해 제도라는 해안선이 굴곡을 갖게 된 것이나, 제도밖의 흐름이 다른 자양분으로 근본틀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부질있는 생각도 해본다.

4. 문성이란 핑계로 우리는 그토록 많은 것을 양보해왔을까? 무수한 생명을 바치면서도, 절대로 그 직선은 직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고도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은 아닐까?

5. 료라는 탑이 함당한 권위와 합의, 공공역할에 기인하여 쌓아진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응집력때문에 곳곳에 제도적인 헛점과 윤리적 균열들이 산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오로지 수익만 생각하는 천박한 자본의 쏠림까지 덧보태어지며, 의료수요자와 충분히 합의하며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민간보험자본의 축적에 혈안되어 다가서는 모습의 백분의 일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도 건강보험이란 공공성 확대와 사적 불안을 줄일 수는 없었던 것일까?

6. 지불식간에 선택하고 당연하다라고 여기고 있는 새로운 상식, 보험자본의 성장과정과 의식내면화과정, 의료사고, 불법에 대한 불감증.이런 과정에 대한..세밀한 추적과 공론화의 장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의료수요자, 의료계, 과다한 보험료지출로 인한 내적피폐, 선정보도식의 눈물짜내기 ARS에 함께 의문을 품을 것을 요구한다. 비교하지 않고, 다른 방법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정신없이 재생산구조에 동참한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가져오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7.  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일련의 흐름을 추적하여 드러내고 비교하고,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아닐까? 감성적 대응을 넘어서 지금의 의료탑을 받치고 있는 기둥의 근거없음, 근거부족에 대한 논리적 접근, 상식에 근접하는 소비와 서비스, 건강을 볼모로 한 과도한 자본의 접근금지와 공적공간으로 물길을 돌리는 일, 이런 의료수요자와 의료-건강부문의 상식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만들어내는 일은 먼나라 일일까? 쏠림으로 기우뚱거리고 몰상식이란 퇴행을 저지르는 지금은 합당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모조리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되는 것은 아닐까? 

 

뱀꼬리.

0.1 서문을 읽다가 말미 울컥하였다. 고인이 된 두분의 흔적, 그리고 직선처럼 밋밋해보이던 그의 굴곡을 따라가면서 이 세상이 서러운 것이 몸으로 밀려왔다. 얼마나 잔인한 세상인지? 제단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새삼스러울 것도 아니지만 목숨의 값은 자본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앞에서면, 이렇게 초라해지는 환자, 점점 당당해지는 의료자본을 보면 정말 검찰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온다. 잘 잘못을 떠나, 상식이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뒤틀어지고 이렇게 인식의 차이가 극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법의 사이를 횡횡하여 돌아다니는 관행, 권리는 의사, 환자, 약사 모두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구나란 생각. 내부적인 시각만이 아니라 다른 부문과 섞어서 상식을 나눌 수는 없을까? ...세상이 각박하다 못해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세상이니 점점 윤리나 의무나 권리는 늘 뒷전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겹쳐든다.

0.2 사회적 대타협도 좋겠지만, 상식이 쳐박힌 사회에서 부문간 최소한의 사회재계약란 말도 꺼내기 힘든 것이 현실일까? 권리와 의무, 소비자의 권리, 생산자의 윤리, 상식의 원심력이 생명을 볼모로 강하여 주장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인가? 그렇다면, 강대표는 죽음과 목숨, 일분일초의 고통을 삼아 그 제도안-곁-밖의 담합과 상식같지 않은 인식과 현실을 균열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 가슴을 울리는 균열이 없는자, 가난한자, 있는자의 목숨을 매년 수천,수만 구하고 있는 분일지도 모른다.

0.3 세상은 어찌 대선이라하여 한미FTA라는 다가올 일상은 아예 잠잠한지 도통 알 길이 없다. 바라는 것과 현실의 간극은 늘 절망으로 더욱 멀어지는데, 바라는 것에만 관심이 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그 파고에 이런 생각들은 부질도 없고, 수십년을 거스르는 퇴행을 보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 ... 합쳐지지만 별개의 사안?!!

 

환자를 속이는 병원들의 실태와 올바른 의료 이용을 위한 지침  
 

요즘 병원이 문제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면서 병원의 각종 부도덕한 통계 자료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시민단체 등에서 그동안 개혁을 촉구하면서 알린 내용들이 대부분이긴 하나 병원들은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잘 몰라 발생하는 통계”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통계들을 외면하기엔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서 실제 환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지 오히려 병원은 더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는 병원이 환자를 어떻게 속이고 폭리를 취하는지 그 과정을 폭로하고, 올바른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인 강주성 씨다. 그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동생의 골수 기증으로 살아났고, 2001년부터 3년 동안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약가 인하 싸움을 이끌었다. 현재 이 글리벡은 보험이 적용되어 약값의 10퍼센트만을 환자들이 부담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선택진료비(예전의 특진료)의 경우, 이 책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병원이 불법 청구를 하고 있다”며 “주로 병원들은 최초 선택한 의사(선택진료)를 통해 다른 의사들에게 각종 검사를 받게 하는데, 이 진료비조차 선택진료비로 청구하는 등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5000억 원의 선택진료비 시장에서 약 절반은 불법 청구된 금액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현재 불법 청구된 선택진료비와 진료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02-705-6144, www.hira.or.kr)을 통해 심사 후 되돌려 받을 수 있지만, 병원들이 환자들에게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이를 취하케 하는 등 신고가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저자는 “올바른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환자들이 진료비 심사 청구를 하는 등 제도 개혁 차원에서라도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의료계의 블루오션이라 일컬어진 비급여 부담금의 경우에도 병원들이 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항목들을 만들어내(일부는 의학적 근거도 없는 각종 불법적 시술들을 비급여 항목으로 하고 있다. 또한 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조차 비급여로 거짓말해 환자를 속이고 있다) 환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며 비급여 항목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부 보험이 적용되는 MRI의 경우 2005년 이전에는 40만 원~120만 원에 이르기까지 했었고, 산부인과의 초음파 역시 2만 원에서 7만 원까지 다양한데 그 가격 기준도 없을 뿐더러 모두 비급여라면서, 건강보험공단에 신고가 되지 않아 매출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비급여는 절세(엄밀한 의미에서는 탈세다) 효과를 누리는 것은 기본이고 신고를 안 하니 심사에도 삭감 당할 우려가 없다고 한다. 저자는 “비급여를 없애지 못하면 민간보험의 성장과 그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저자는 “병원과 싸우면 거의 백전백패”라며 “과실 여부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이상한 법 때문에 환자들의 고통이 크다”고 말한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보듯 병원들의 인위적 진료 기록 조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해, 의료사고가 의심되면 발 빠르게 진료기록부를 확보해야 한다며 그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밖에도 이 책에서는 입원보증금(가톨릭여의도성모병원은 공증까지 요구한다) 이야기, 치료비보다 더 많이 나오는 병실료 이야기, 엄연히 진료비 항목에 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고 불법 청구하는 병원 물품비 이야기, 의료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영리 법인 이야기,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를 다룬 약값 이야기 등 그동안 병원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진실들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또한 최소한의 환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불법 청구된 진료비 되찾는 법, 우리 동네 좋은 약국 찾기, 올바른 병원 이용법, 응급실 제대로 알고 이용하기 등도 소개해 지침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책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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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문화 57호 겨울호를 짬독하다가...

 

 


문예운동으로서 연극, 현재와 소통이 가능한가
-임은혜-


학로에는 무수한 공연이 산재해 있다. 물론 일본이나 다른 나라보다 부족하다고 들었다. 문화라는 것이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이상 재생산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철처히 몸에 기반한 분야다. 몸으로 하고 몸으로 체험해야 재생산되는 구조라는 이야기같다. 그 대학로는 문화자본이 점유한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점점 생산되는 것이라곤 개콘류의 짜릿함만 제공하는 버전의 난무라고 한다.

의 씻김이란 공간, 소통방식에 자본이란 돌덩이가 덜컥 들어앉아 흐름이 왜곡된 것이리라. 향유하고 소비하면서 열에 아홉 아무것도 돌아볼 수 없고, 현실을 관통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이라 한다. 지나친 쏠림, 자판기같은 연극이 복제되어 생산될 뿐은 아닌가? 몸으로 하고 몸으로 체험해야 하는 연극은 지극히 분권적이다. 한 동네, 한 마을의 응어리를 맺고 풀고 내고 달릴 수 있는 틀이 되지 않고서, 급조한 것이 아니라 가슴을 치는 제의같은 느낌과 노력이 배이지 않고 그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미 가슴과 몸을 떠나 눈으로 자본으로 소비만 하는 연극과 문화가 난무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소리는 변두리의 자조인가?  저자는 교감과 복원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어디에 서있는지, 팔아버린 영혼을 회복하는 공간과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똑 같은 연극을 일렬로 세워본다. 1번부터 99번까지. 오른쪽끝에 영혼을 판 고급자본의 공연부터....왼쪽 직접 만들고 소통, 공유되고 영혼의 정화까지 담는 1번까지

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일까? 효도품목으로 어른 모시는 일은 어디쯤있을까? 아이에게 기념으로 큰 돈 들여 쏘는 공연은 어디쯤일까? 푼돈을 모아 심금을 만들고 소통하는 공연은 또 어디쯤일까? 찬반과 흑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향유와 누림, 함께 함은 어디쯤에 서 있는가? 우리는 옆에 벌어지는 연극을 모두 같은 색깔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색깔이 있음을 분별해낼 수 있을까?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 교감하는 과정, 소통하는 과정과 다시 가슴에 들어왔다가는지 눈에 스쳐지나가는지, 구별법도 나름 자신의 선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시작이지 않을까?

저자의 마음꼭지 몇쪽을 옮긴다.
   
  연극이 지역 공동체에 물과 공기이자 숲이 되게 하고 지역 주민들 스스로 맑은 물과 공기와 숲을 누리고 지역 공동체 문화를 일구어낸다면 지역 이기주의나 자본의 욕망이 아니라 소외와 억압이 없어야 한다는 소망이 그 마을을 끌고 갈 것이다.  333쪽  
   
   
  단순한 문화예술 교육사업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주의를 심화하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항하는 지역운동의 그물망으로 어떻게 엮을 수 있을까? 335쪽
 
   
   
  나는 연극이 자본의 환상과 뒤틀린 삶을 걷어내고 우리의 깊숙한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인 꿈을 회복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338쪽  
   


북한학의 현황과 전망

-정영철-


한학은 80년대 이전, 80-90년대 북한바로알기, 2000년대 3기로 대별해볼 수 있다 한다. 특히 2000년 이후 불과 7-8년사이 논문은 양과 질적으로도 보기에 이전 50년과 맞먹는다고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생긴 북한관련 대학연구소를 필두로 한 연구의 발전이 맺은 결실이라 할 수 있다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동향은 정치-경제-이데올로기적이 측면, 정세에 맞춰 생산가공되는 공학적인 연구가 위주여서 타 부문과 기초적인 연구가 절실히 부족한 실정이라 한다. 저자는 지금의 현실이 여전히 공학적 연구로 다가설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학, 중동학, 미국학의 지역연구라는 관점도 필요하지만, 한국학의 나머지 반쪽으로 접근을 희망하고 있다. 한반도학으로서 절반의 결합은 더욱 진실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 한다.

공계 학문이나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시장과 실용의 물결 속에 공학적, 기술적 연구와 분석이 과대해지지만, 심층적 연구가 부족해 결국 그 발목을 잡는 형국이랄까? 저자 약력을 보니 공대를 나오고 사회학과를 나온 친구다. 이채로운 것이 아니라 당연히 여겨지는 것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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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며칠 전, 연예인들뿐만이 아니라, 성형중독에 대한 사실은 일상에 까지 깊숙이 자리를 잡은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문득 드는 생각은 닮고자 하는 인물이 너무나 유사하여, 이러다가 성형기술이 발달하고 비용이 낮아지면(그럴 확율은 더 높아지고 현실화되겠지) 지금도 그러하지만, 모두 비슷해지겠다 싶다. 유행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사람마음도 이내 물려버릴 가능성도 동시에 있을 것 같다. 그런면에서 물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미안?도 예민해져, 아닌 성형지식의 확산으로 이내 다른 형식을 원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천연을 가장한 천연미가 되겠지만, 그 개념을 가장해 또 다시 다른 접근 경로로 사업이 번창할 수 있겠지만, 가까운 시일에 결코 좋아만 하지 않은 유행의 시간이 짧아져 그러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

0.2 오늘은 점심을 먹는데 부위를 달리하여 [종아리] 성형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신경만이 아니라 걷지도 못하고, 하이힐을 신지 않으면 보행을 할 수 없는 일까지 말이다. 이미 인식의 급류는 성형을 하고 말고의 수준을 떠나있다. 생일선물로, 입학기념으로, 졸업기념으로 해주지 않으면 안될 의례의 수준으로 일상에 들어와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다가는 격오지에 유배될 각오를 해야한다.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성형유행의 비교연구] 물론 없다. [성행유행] 국가지식포털은 0건으로 나온다. [얼굴성형]하니 사출성형이 나온다

0.3 우리나라 여성이 화장을 많이 하는 것과 모두 비슷하게 하여 똑같이 예쁘게 보인다는 것도 다 아는 이야기다. 똑같이 얼마나 예뻐질까? 남자도 화장을 한다. 청춘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구조화의 길로 접어든 것도 오래되었다. 기본을 하기 위해 그만큼 지출도 구조화된 셈이다. 돈이 옛날보다 훨씬 더든다. 성형-연예-외모관련 사업의 기하학적 팽창의 결과, 자본의 세팅과 일상의 사고를 바꿔버릴 정도로 의식을 점령했다. 점령당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안해주면, 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할 것처럼 일상에 내면화되었다는 것이다.

0.3.1 저녁 동료의 재촉으로 중동에 끊고 다시 대선토론회가 지날 즈음 다시 잇는다. 퇴근 뒤 술자리를 피했고, 도서를 반납하고 동네 한바퀴를 달려주었다. 검색하다보니 국회도서관에 묵혀진 논문 서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논문의 이야기를 몇명이나 들춰보게 될까? 저자의 고민이나 하고싶은 이야기가 삶의 자양분으로 얼마나 소통되고 유통될까? 저자의 숙고와 연구조사 결과와 고민이 우리의 의식을 비집고 들어와, 현실의 다양한 관점으로 전화될 계기는 정녕 없는 것일까?

0.4 뻐지는데 왠 투정이냐?구 하면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돈 덜들이고 인식의 점유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떨까? 자본의 흐름에 맡겨 정작 중요한 선택의 기회나 다양한 방법이 가능했음에도 모두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지금의 의식변화 사회적 변화가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말 미의 기준이 바뀌어 무의식 가운데 우리의 욕망이 그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아니면 피해자는 너무 운이 없어 그럴뿐 나와는 무관한 일이니 개입할수도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체념에 가깝다는 것에 사회적 의식과 관행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0.5 년 오년 사이, 여학생들이 필수라고 여기는 화장품과 그 비용은 가지수와 비용에 있어서는 어떻게 변해왔는가? 성형을 하는 이유의 큰 변화는 없는가? 그 이유 가운데 중요 순위에는 변함이 없는가? 변했다면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가? 남성도 화장을 해야된다는 의식은 성형이나 화장처럼 당연해지는 것은 아닌가? 당연하다는 인식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우리의 의식과 습관, 문화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확율이 큰 것일까?

0.6 장품을 사용한다면 말하는 것처럼 피부보호에 좋은 것인가? 피부에 좋다면 얼마나 어떻게, 좋아진 것에 대해 지출하는 비용은 얼마나 변화가 있는가? 구매의 폭, 선택은 어떠한가? 좋다고 한 화장품이 피부에 문제가 된 경우는 없는가? 문제가 되었다면 미용자본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피부에 좋은 천연화장품은 없는가? 과연 선택할 수 있는 기회나 만들어 소통할 가능성은 닫혀있는가? 싼 비용으로 피부에 좋은 화장품은 있는가? 있다면 소비자가 구매의 폭이나 외연을 넓힐 가능성은 있는가?

질문만 잔뜩 나열해본다. 외모에 대한 평가, 외모를 가꾸기 위한 노력, 사회적인 분위기의 변화 자식들에게 은연중에 나누거나 해주는 행위, 개인의 선택, 여러 지출 가운데 외모에 쓰는 비용들, 외국 학생들의 사례, 그들의 선택, 그들의 의식 비교가 알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0.7 어쩌면, 용,연예,의료 광고의 말할 필요가 없는 자본의 궤적을 따라, 우리가 방목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방목되어 의사결정하거나 나눌 단계를 놓쳐, 배경같이 반복적으로 본 무의식이 경계를 넘어 우리의 의식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여학생의 외모, 성형의 원인변화 - 자본의 추이 분석으로 겉넘어버린 의식의 변화단계를 천천히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어떤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여학생, 주부들의 의식을 넘나들고, 똑 같은 미의식으로, 자본을 더 많이 출혈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복제되는지 볼 수 없는 것일까? 그 변화의 와중에 과연 자본은 모르고 있었나? 알면서도 자본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무수한 미끼와 낚시질을 한 것은 아닐까? 어린 10대가 기초화장은 필수라고 강변하게 된 것은 아닐까?

0.8 자가 이런 고민의 틈바구니에서 연구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사장되어버린 도서관에 침묵해있는 언어들이 유통될 공간은 없는 것일까? 당연하다고 여기는 변질되어버린 상식을 원점에서 지금과 누구나 알 수 있게 비교할 수는 없을까? 부대비용으로 정작 사회기여를 할 수 있는 소비구조의 틈새를 되돌아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펀드나 적립금보다 함께하면 안전한 사회투자를 할 수 있다는 공론과 현실의 공간은 만들 수 없는 것일까?

문득, 논문 하나의 틈새와 의식, 말할 필요가 없는 권력투성이 자본과 연관짓다보니 질문만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다. 미용?자본이 등대처럼 비추인 곳, 의식을 몽매하거나 취해버리게 만든 것은 없는가? 부지불식간에 차리거나 성형도 하지 않은 것을 예의없거나, 덜 떨어진 것으로 여겨버리는 의식과 지불되거나 지불하고 있는 비용관계를 의심해볼 필요는 없는 것일까?

0.9 학생의 대부분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한다고 한다. 의식과 현실은 과연 그런가? 다른 나라는 덜하거나 그러지 않는데 더 심한 것은, 일상이기때문에 개인적인 일이기에 관계없는 것일까? 이렇게 짓궂은 질문을 하다보니, 기초화장과 색조화장도 구분못하는 문외한이 객적은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데, 물정모르는 소리한다고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젊고 예쁜 것 좋아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거짓부렁을 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예쁘고 젊은 것에 대해 한번 의심해보자고 하는 것이니, 지출하거나 앞으로 지출하게될 개연성에 대해서 되돌아보자는 것이니 사람과 글을 한몸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논문내용을 더 보고싶으시면(말미 제품개발과 마케팅을 위해서 연구되었다는군요. 참고문헌을 보니 2003년 이후로 부쩍 관련 연구가 많아졌네요.) - 접기로 달려다가 포기예요. 원문으로 들어가셔서 요약과결론을 보시길..(.말미에 흐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생활습관, 소비의 재성찰을 위해 연구되었다, 토론 공간에서 많은 활용이 있으면 좋겠다로 연구논문의 용도가 다양해지면 .안될까요..)

 

1.  광고 카피 . "감출수록 드러나는 그녀","나이의 흔적을 지워줍니다""어는 순간 여자들 사이에서 촉촉함이 차이 나기 시작했다""시간조차 숨죽이는 아름다움""시간이 멈춘 피부""50cm쯤 그녀의 얼굴이 다가왔을 때 차이가 느껴졌다""소녀, 입술하다"

  녀남을 불문하고 이 카피에 마음이 넘어간 적이 없으랴. 그 회수만큼 불감하고 당연해지는 것이겠지만, 의식은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뭘 믿고 화장도 하지 않는거야"라는 의식의 고속도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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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12-06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저는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티도 안나요. 코같은데는 보면 대략 알겠는데 다른데는 했는지 안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진짜보다 더 자연스럽게 잘도 하나봐요. 그냥 운동해서 만들지, 가르고 피를 보려는지... 보드리야르의 시물라시옹이 생각나는군요.

여울 2007-12-06 22:52   좋아요 0 | URL
저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미 물든 것인가봐요. ㅎㅎ 그렇게 서로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성형전문가가 된 것이겠죠. 그 다음 성형자본은 보이지 않는 곳을 노릴 수밖에 없죠. 어느 덧 모든 신체가 탐욕의 부위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닌지? 갑자기 안심,등심...그림생각이 나는군요. 아니 그 돈맛을 본 자본의 생리는 이미 구획해놓고 부위를 옮기는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성형중독자의 마지막 한방울의 돈까지 갈취할 요량으로...이야기하다보니 넘 섬뜩하군요. 오늘 [종아리]성형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답니다.

잠못드는밤 2007-12-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학생들을 봤는데 거의 다 화장을 했더군요.
그 나이엔 피지분비도 왕성해서 화장을하면 더 피부가 나빠질텐데 하는 걱정과,
저 나이는 갖고싶어도 가질수 없는 젊음이란 강력한 무기가 그들을 예쁘게 해주는데
뭐가 부족해서 화장을 할까...하는 늙은이같은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군요.ㅎㅎ
저는 요즘 여성 연예인들 얼굴 구분이 잘 안돼요. 정말 늙나봐요.
아이구, 참, 책 잘 받았습니다. 알라딘이 빠른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올 줄이야...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가 시험기간이라 볼까봐 몰래 숨겨두고 잘난체하며 꺼내줄 생각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여울 2007-12-08 13:17   좋아요 0 | URL
중학생이요. 더 피부에 좋지 않을텐데. ... 아이가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 저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