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치적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는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듯이 보이지만, 그 경계밖을 고려하지 않는다. 경기장안에서의 합리와 평등을 집요하게 합리화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보다는 경기장에 올라오기 위한 권력이 난무하는 현장의 요소가 태반이다. 경기장에 올라오기 위한 힘의 관계, 영역을 면밀히 보아야 한다.  정치적인 것으로 귀환을 이야기한다.

1. 무페가 여자인지도 최근에 알았다. 라클라우-무페라고 신사회운동이 바람이 불 때 일견식한 것 같은데, 이렇게 복습까지 하게 될 줄 몰랐다. 일찍 일어나 새롭다고 하는 마지막장과 후기를 읽고나서야 아~ 그렇구나라고 상기하게 된다.

2. 정치철학에 한 무식한 나에게도 이렇게 쉬운?말로 해제를 해주어 고맙다. 읽어나가며 학문에 대해 생각해본다. 공간에 머물러 완결성을 가지려고 하는 노력과 집요함은 시간에 대해 열려있지 않다.  공간에 너무 집착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의 축으로 볼 때, 남발한 학문은 얼마나 많은가?  의식이라는 것이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지금의 완결성에 집착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런면에서 양쪽을 열어두는 무페의 정치철학의 학문이 열려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실에도 연동되지 않나 싶다.(고인 물은 더이상 흐르는 물이 아니다)

3. 민*당 논쟁, 논쟁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경기장 밖을 보지 못하고, 논의의 반열에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정파?적 이념 역시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가올 것, 무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올려놓으려는 노력도 시선도 마음도 없는 사고의 경직성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닌가 싶다.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중을 보려고도 보이지 않는 것을 살피려고도, 인터넷 논쟁의 축소판으로 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간의 축을 가져와서 반성적 자신을 대입시켜보거나 또는 사고를 열어두거나, 개인의 마음으로 가져가는 노력도 부족한 것 같다. 평론이나 관점이 맞는 것이 없나 하는 식으로 상품을 고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4. <물질과 기억>을 같이 올려놓는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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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일상으로 녹여내는 일,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윤에 굶주린 자들><미친기후를 이해하는 짧지만 충분한 보고서>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는 이 땅에서 배부른 소리 좀 하려고 합니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 무슨 남 걱정할 일이냐라구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노동운동도 하기 힘든데, 사회운동하기에도 정신없는데, 과학기술자운동까지 신경써야 하는 거야구. 도대체 당신들은 마음 편하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거냐구 말입니다.

도대체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다고 지구의 기후까지 신경써야 되는지?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석유까지 신경써야 되는 것인지?

금융과 자본은 세계화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정치는 세계화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꿈도 꾸지 못하죠. 세계무역기구는 있어도 세계환경기구나 세계윤리기구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불감증에 걸린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을 아프지 않는 것으로 등치시킵니다. 북에서 몇백만이 홍수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지?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삶이 내동댕이쳐지는지 보이지 않기에 아파할 틈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상하고 연결시키지도 않습니다.

아픔이란 것이 세계화되지 못할 때, 그렇게 앎이라는 것이 뉴스처럼 보도만 될 때, 우리의 불감증은 더욱 더 강도가 세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소비라는 행위를 동시에 합니다. 을의 처지에서 졸지에 갑의 처지로 바뀌기도 하지요. 한편 사회활동을 하는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이기도 합니다.  교육운동-농민운동-여성운동-환경운동-농민운동-학생운동-과기운동-이주노동자-빈민운동-분권운동 같은 운동의 구성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가 아파하는 것이 더욱 크다라는 사고는, 내가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므로 알아줘라! 내 주위로 모여야한다고 은연중에 말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픔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는 노력으로 아픔을 서열화하려는 허튼 짓은 아닌가요? 동시에 아파하지 않을 때, 같은 아픔에 대해 서로 모색하려하지 않을 때, 정신없이 속도에 취해 온 것처럼 그냥 휩쓸려가지 않을까 합니다.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하고, 학교에 급식이 되도록 제도화하는 일, 사회단체를 통해 관리 감시하는 일과 만들어가는 일이 노동운동과 별개일까요? 교육운동과 별개일까요? 여성운동과 별개일까요? 과기운동과 별개일까요? 비정규직을 남발하는 대형마트나 자본과 기업을 속속들이 밝혀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가슴에 가져가도록 하는 일, 구매를 조직적으로 하는 일이 합쳐지면 아무 의미가 없을까요? 슈퍼와 벼룩시장을 살리고,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 옵션을 두거나, 할인마트 운영시간을 줄이는 일이 시답지 않은 일인가요? 학원자본을 키우는 학원의 먹거리와 학습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이 교육운동이나 침체를 걷고 있는 노동운동과 관계없는 소시민의 일일까요? 열악한 근로환경과 작업환경을 비교하도록 데이터를 내고, 비교가능하도록 노력하는 일은 쾌쾌묵은 일들을 하는 것일까요?

석유생산의 정점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현재화되고 있으며 , 곡물 역시 우리의 식탁을 점령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건강과 삶이 담보잡힌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기후온난화가 아니라, 양극화되어 가뭄과 폭우, 한쪽엔 긴 장마로 고착화되었습니다. 어김없이 자본의 양극화와 기후의 양극화로 세계인구의 1/6이 버젓이 굶어죽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친 기후라고도 하니 말입니다. 그대로 살면 좋을텐데. 안다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일이죠. 외면도 습관이 될 수 있을텐데. 찾아서 알아낸다는 것이 무척 불편한 일입니다.

일상의 절반이 석유중독으로 점유되어 있고, 먹거리의 절반이 곡물자본으로, 너무도 익숙한 것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내 자식만,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게하려고 하여도 지혜있는 앎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익숙한 것과 다음세대는 분명히 결별하여야 될 것 같고, 지금 이 세대는 결별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아픔은 고스란히 증폭되어 대물림될 것입니다.

없는 살림에 더 줄이라니 야속하지 않나요? 있는 놈이나 줄여야지 내가 뭘 기여한다고 줄이라니? 매일 먹는 먹거리도 의심하라구요? 그 판에 박힌 에너지 절약을 해야된다구요? 쇼핑중독인데, 그 사는 것 하나하나 신경써보라구요? 없는 살림에 더 비싼 유기농을 먹으라구요? 먹고 살기 바쁜데 농민들 걱정까지 하라구요?

줄이고 남기고 아낀 앎들은 어디에 쓰나요? 당신의 지난 일년 바뀐 삶이었나요? 일상은 다양해졌나요? 다르게 해보신 것 얼마나 되시죠? 다양한 삶의 가지수에 대해 논의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젠 여러분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답을 주셔야 할 때입니다. 

눈발, 참* 분들에게 보내는 뉴스레터 한 꼭지로 ... ... 분야에서 일가견하시는 분들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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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0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선 오히려 살만하신 분들이 더 무관심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곱씹어 읽어 봅니다.

여울 2008-01-03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그런 면에서 저도 살만한 분?!인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줄이고 남기고 좋은 데 쓰겠습니다.

파란여우 2008-01-0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제 별장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그곳도 덧글은 남기지 않지만 은근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 널리 질문을 던져 놓고 싶군요.
허락해줘요^^*

여울 2008-01-05 12:08   좋아요 0 | URL
어여 가져가세요. 카피더레프트입니다. 찢고 늘리고 볶고해도 상관없습니다요. 이미 제 소유임을 떠났습니다. ㅎㅎ
 

 

 대*림 송년회, N =40-50, 식사를 하고 모임운영에 대해 몇분이 이야기를 꺼낸다. 이대로 아쉬움이 밀려와, 재차 다시 논의를 재촉하며 올려놓는다. 풍물모임이니 어떻게 하는 것까지는 좋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배제된 채로 결정되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 만약 한다면 과외나 지금하는 것 한가지씩 줄이고 한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버린다. 아이들을 너무 못살게 굴지 않나하는 야박한 심사와 반가족과 반주민인 남자어른들, 주부와 교감엔 이미 선과 정보에 차이가 있다.

섞고 흔들고, 생각과 행동이 섞이게 만들 수 있을까,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을까? 아이들은 덜 과로하고 덜 긴장하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자리잡으니 한편 측은하기도 하다. 막아서는 양반들에 끌려 들어온 것이 새벽 네시쯤이다.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 함께 움직이는 합이 늘 제자리이거나 음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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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구수하게 내린다. 주지육림에 건져올린 듯, 송년잔치는 어김없이 과잉이다. 가는 해를 이렇게 지나치게 잡아도 되는 것인지? 지가 싫으면 그만둘 일이지만, 습관처럼 굳은 굳은 살은 여전히 관행이다. 버티어준 몸이 고마울 지경이다. 아침에 가벼운 눈발을 맞으며 땀기운을 온몸에 나누어준다.  나간 정신과 신체가 제 집을 찾아오는 듯 싶다.

딱지처럼 단단히 붙어있는 습관에 딴지를 걸자. 관행처럼 가기만하는 모임습관에 말을 걸자. 충분히 힘든 일들을 연례행사처럼 치르기만 하는지 말이다. 버젓이 늘어나기만 하는 살림살이에도 생각을 걸자. 훨씬 가볍고 서로 기분좋은 만남,씀씀이,습관의 하루가 있지는 않을까 싶다. 만족도를 높이면서 일상을 다이어트해보는 것도 낫지 않을까 싶다.

모임에 의탁하는 정도가 과했던 것은 아닌가? 반중독 상태로 몸이 끌려갔던 것은 아닐까? 모임의 만족도나 일상에 대한 감별의 결과가 바닥에 기었던 지난 해는 아니었을까? 사분지 일 줄이기(반경)- 사분지 일 늘리기(깊이), 타협의 지점을 생각해본다. 일터도 먹고자고마시고하는일도 삶을 꾸려나가는 관계된 일들도 말이다. 삶은 아니더라도 행동의 선택지를 여럿으로 분기해서 앞에 표지판을 만드는 일도 몸의 학대를 줄이면서 해볼 일은 아닌가싶다.

년휴 몰아서 읽은 읽힌 책들이 보내는 신호들은 한결같다. 위기론과 음모같은 부류는 유난히 저어하지만,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보아도 달라질 것이 별반없다는 사실에 우울하다. 인식과 앎에 이르는 길도 지나치게 사변과 어찌하면 모르게 할까나, 서로 관계없는 것으로 떼어놓기에만 열을 올린 것은 아닌가 싶다.

양지는 이미 녹아있고, 음지는 알맞게 눈들이 쌓인다. 얕게 내리는 눈발이 고마운데, 전라도는 이미 정도를 넘어선 것 같아 불안하다. 자연을 낭만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 조차 어려워진 것 같다. 순식간에 선을 넘어서는 자연은 여백이 아니라 불안으로 들어선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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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행동주의
- 이런 추세가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일까? 공정 거래된 커피와 '아동 노동에 의해 생산되지 않은' 축구공 때문에 비싼 값을 기꺼이 치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구매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까? 아니면 우리가 거창한 대의명분 때문에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일까? 1960, 70년대나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진지한 소비자 행동은 여전히 소수를 위한 대의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일요일 아침, 나는 런던 중심가에 있는 집에서 지난밤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를 느끼며 잠에서 깬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빨래를 하고, 에코버(세계 최초로 환경 보호 원칙에 입각해 생태학적 공장을 지은 벨기에 기업)에서 만든 음료수의 병마게를 딴 다음, 어젯밤에 먹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아닌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피자 접시 위에 생물 분해 성분이 있는 세재를 뿌린다. 그리고 페어트레이드 (1989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공정 무역 운동, 커피 값을 더 내는 대신 제3세계 농민들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합당한 수익을 보장받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인증 마크가 찍힌 커피를 붓고, 좁은 닭장에서 가둬놓고 기른 것이 아니라 놓아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삶는다. 그리고 러시(런던에 있는 무공해 비누가게)에서 산 '동물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거품 비누로 샤워를 한 다음, '아동 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리복 운동화에 '노종자 전원이 노동조합원으로 가입한' 리바이스 청바지, '모피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 클로에 티셔츠를 입는다. 머리에는 오존 파괴 물질이 함유되어 있지 않은 웰라 스프레이를 뿌린다. 그리고 신문을 들고 최근 벌어진 맥도날드 불매운동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재활용지 위에 메모를 하면서, 다음 번 시위 때는 시위 팸플릿을 한 장 집어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보디숍 매장에 들러서는 '공정 거래된' 모이스처라이저를 구입하고, '윤리적인 회사에만 투자하는' 코퍼레이티브 뱅크의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는 동안 매장에 놓인 세계화를 다룬 홍보물을 읽는다. 집으로 가는 동안에는 차를 잠시 세워 무연 휘발유를 주유한다. 도로 양쪽에는 주유소가 두 곳 있다. 두집은 가격도 같고, 기름의 종류와 질도 같다. 하지만 왼쪽 주유소 회사는 나이지리아에서 기름 유출 사고를 낸 적이 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차를 오른쪽으로 돌린다. 집에 가서는 컴퓨터를 켜고 AOL에서 보낸 '우리는 사회적인 이슈를 우선시합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체크한다. 그러고는 맥도날드가 아르헨티나에서 저지른 처사에 항의하는 이메일을 보낸다. 유엔의 기아 사이트에 들어가서는 마우스를 클릭하여 그날 쌀과 옥수수를 기부한 아메리칸익스프레스에 대한 고마움을 말없이 표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아마존에서 나무를 베지 않는다'는 벤 & 제리의 아이스크림을 내내 핥아먹는다. 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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