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080105 아**미, 저녁함께 하다. 팔팔넷. 섞어마셔 취했다. 지난한해 고생들 정말 많았는데, 도움에 감사할 따름, 올해, 쌓은 것에 보태어 마음들을 조급하지 않게 모아서 올려놓았으면 좋겠다 싶다. 후유증으로 맘고생들 하는 듯...

 1. 080106 참*, 서울서 전 사무국장이 내려와, 여친을 소개시키러 왔다. 저녁 함께하고, 부인이 출산예정일인 현 사무국장과 몇분 맥주 한잔을 하다. 과*** 이야기, 민*당 내홍이야기, 공동모색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오늘 순산을 했다고 한다. 주변이 2세들 풍년이다. 일터는 작년이 셋, 곧 이어 둘... ... 아이들만 보면 기쁘다. 까르르 까르르

 2. 머리진보는 유행처럼 가져온 이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추종하는 몸진보는 경직된 이론과 정세를 주입당해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반복된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머리도 몸도 열리고 움직이고 마음-가슴진보로 결실을 맺으면 좋으련만, 평론의 시대라 머리도 가슴도 마음도, 몸도 발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상상속의 진보, 무섭지 않은 진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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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부제가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이다.  작년 흔적을 보니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읽고 손이 가지 않은 책이다.  작은 제목에 이끌려 다시 보게 된다. 기업사회라는 표현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여연대의 주주운동의 성격으로 예단을 해서 일까? 87년체제 이후의 관점을 철저히 자본이데올로기의 일상화와 점유로 다시 볼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87년체제 평가나 토론에서 김교수의 발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으로 대신해서 일까?

1. 총과 칼이 아니라 생산성, 효율성을 명분으로/구금,체포,고문,학살이 아니라 명퇴,분사,비정규직화,해고,비연고지근무를/반공포스터는 CEO라는 레토릭으로/천박한 자본의 무노조주의는 독재시절 무노조주의와 겹친다. 그런 당당함은 정부 공무원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재교육을 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114종의 경제교과서의 446곳의 수정을 요구하는 행위까지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사실에 숨이 막힐 지경이지 않는가?

2. 지난 20년의 평가의 관점이 정치-대통령-국가에 치우쳐있어 정작 중요한 자본의 동선으로 본 것이 적었던 것은 아닐까? 엄한 곳에 표적을 두고 실현되지 않는 구호만 외쳤던 것은 아닐까? 그러는 사이, 대중은 자발적 동의와 헌신으로, 운동권들도 대거 깃발들고 투항하는 사이, 천박한, 아니 양아치같은 자본(기업사회)은 사회-정치영역을, 시장이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라고, 자본에 의한 사회의 식민화를 차곡차곡 했던 것은 아닐까?

3. 운동의 방향과 전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그럴 여력도 없는 노동운동은 정책과 운동방향이 전제된 노선투쟁이 아니라 노조 권력 장악을 위한 노선투쟁이 대신하였다고 한다.(117쪽,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 글자그대로 요즘 유행하는 실용을 표방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자본은 1인 1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소유한 자본만큼 권리를 행사하려한다. 더 악랄하고 무서운 파쇼다. 미국보다 더한 기세로 완장을 찬 듯, 사회를 시장의 식민상태로 도탄에 빠지게 하는 행태는 어이할 것인가?

4. 대기업 정규직의 노조는 자본의 구심력으로 변방으로 떨어져나가는 비정규직의 소리없는 주검과 더 많은 구속자와, 해고에 일관되게 행한 것은 무엇일까? 방향과 전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관료화에 익숙해져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지금에서 보이지 않는 것,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했을지 모르는 이것에 대해 객토하는 심정으로 물밀듯이 내려온 사회를 재해석해내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우리 모두는 정치경제 현장에서도 종업원 혹은 소비자로 호명되고 있지만, 소비자는 결코 시민이 아니며 주체가 아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할 존엄한 인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모든 이가 피해자인 동시에 어떤 점에서는 가해자이기도 한 이 기업사회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처지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새로운 페다고지(pedagogy)가 요청된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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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양산업 운하’를 벤치마킹하나


[한겨레] ‘한반도 대운하’ 사업 중에 어느 정도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경부운하를 들여다보면 문제투성이다. 서울~부산 간의 그 넓은 바닷길도 실제 운항해 본 회사가 수지가 맞지 않아서 문을 닫았는데 수많은 댐을 만들고 다리를 허물고 산에 터널을 뚫어야 하는 운하가 무슨 경제성이 있겠는가? 서울에서 나가는 화물은 87%가 인천과 경기도로 가는 화물이고 부산에서 나가는 화물도 비슷하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화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배에 실을 화물은 주로 석탄이나 철광석이나 시멘트같이 부피가 큰 것들인데 그런 화물이 경부 간에는 거의 없다.

운하는 세계적으로 사양산업이다. 미국의 운하도시 세인트루이스는 19세기 말까지 중서부 제일의 도시로서 미국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박람회를 개최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지금은 다니는 배도 별로 없는 심심한 도시로 전락했다. 경부운하가 본보기로 삼고 있다는 독일의 아르엠디(RMD) 운하도 부두들은 다 텅텅 비어 있다. 한반도 대운하와 닮은 꼴의 사업이 바로 미국의 플로리다 운하다. (1) 플로리다는 반도의 구석구석을 다 운하로 연결하는 토목공사를 했다. 그러나 1928년에 공사가 끝나자마자 홍수로 범람하여 2000여명이 죽는 참사를 빚었다. 운하에는 물을 채워놓아야 하니 홍수 때에 범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수로를 따라 높은 둑을 죽 쌓아 올렸다. 지금 운하에 배는 거의 볼 수 없고 생태계 파괴로 인한 후유증만 심각하게 나타나 하천복원공사를 하고 있는데 복원공사비가 운하공사비의 10배나 들고 있다.

낙동강의 위천 상류는 갈수기에 평균 수심이 54㎝밖에 안 된다. 이런 강의 수심을 6m 이상으로 올려놓으면 물이 흐르지를 않고, 열흘 정도면 바다로 빠지던 물이 100일 이상 수로에 고이게 된다. 지금 중국의 태호가 녹조로 뒤덮이면서 수돗물에서 역겨운 비린내가 나고 양쯔강 하류에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낙동호’도 이럴 가능성은 너무나 충분하다. (2) 강이라는 것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흐르면서 웅덩이와 여울이 생기고 물살이 빠른 데와 느린 데, 돌과 자갈과 모래와 펄이 깔린 곳과 수초가 자라는 곳이 따로 있고 그에 따라 각종 수중생물들이 제각기 살 곳을 찾고 물도 정화된다. 그런데 이 모든 구간을 깊은 웅덩이로 만들어 놓으면 많은 생물들은 살 수가 없고 물은 썩는다.

또 이 운하는 큰 홍수 피해를 일으킬 것이다. (3) 지금 한강이나 낙동강 본류에는 댐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다 만들었다. 만들지 않은 곳은 홍수 범람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운하의 수심을 6m 이상으로 유지하자면 댐의 하류 부분은 수심이 12m 이상 되는데 강의 수위가 오른 만큼 홍수는 범람하기 마련이다. 홍수가 오기 전에 물을 미리 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를 미리 알려줄 만한 용한 예언가가 우리나라에 아직 없다.

지금까지 행복도시다, 혁신도시다, 기업도시다, 첨단산업단지다 하는 개발사업들이 다 땅값을 크게 올려놓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땅값이 공시지가로 2천조원을 돌파하여 캐나다를 5개, 프랑스는 8개, 미국은 절반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우리 국민들은 열심히 일할 생각들은 접은 지 이미 오래다. 무슨 개발사업이 일어나 땅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앉아 있다. 한반도 대운하는 전국의 땅값을 한정 없이 더 올려놓을 것이다. 땅값이 오르면 기업하기 나빠지고 국가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국민들은 투기에 몰두하고 국운은 쇠퇴할 것이다.

국토는 대통령의 소유가 아니다. 이런 정당성이 없는 사업에 온 국력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지식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차원 높은 발전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김정욱/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한겨레(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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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식] 금강순례단
    from 木筆 2008-01-22 14:42 
    금강운하 저지 금강순례단이 보내온 메일의 사진을 옮겨온다. 추운날씨 1/14일부터 1/21까지 고생하셨단다. 함께하지 못해 사진으로 마음을 달랜다.
 
 
여울 2008-01-0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박정부>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올 여름이면 증명될테니,조급증에 막힌 귀라?? 아니 우리동네 땅값은 들썩거려 외려 좋아할까? 서로 바보이거나 멍청이이거나. 바보들아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펀집증의 논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 덥다.

누리꾼 한반도 대운하 잇기 국토순례나 하면 어떨까 싶다. 자발적으로 낙동강 하구부터 오밀조밀, 말랑말랑 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서 홍천, 강화도까지 운하길을 따라 살고 있는 모든 것을. 그 가운데 살고 있는 곡선의 작은 길들을 크게 보여주면 어떨까 싶다.

인근 신동엽 시인의 <금강> 무지렁이들이나 찍어 두어야겠다. 운하길에 모두 내어줘야 할 지도 모르니 말이다.

마노아 2008-01-0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지지한다는 것 자체에 x팔려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 절단날 이 땅과 환경은 막막합니다.ㅜ.ㅜ
 

1.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남쪽에서 온 선물. 티벳의 파랑 하늘과 하늘까지 잇닿은 길과 뼛속까지 스미는 바람까지. 30km-70km의 바다를 들어올린 호수를 바라보며, 오감의 상상력이 닿지 않을 곳을 대면했을 때 어떠할까? 모두 감각은 정지한 듯 고요할까?

걸인이 반이며,  호수 사진을 찍어도 돈의 강압이 오는 곳.  문화혁명 파고에 스러지듯 남은, 지금은 자본의 때와 국물로 일상이 점거되어 버린 곳은 아닐까? 

 자본화의 속도에서 인 욕망은 어김없이 삶을 도려낸다. 일상을 낱낱이 돈으로 귀속시켜버린다. 경계로 가면 갈수록 날개짓은 바투 일고 세다.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영혼을 훔쳤다고 보상하라고 하면 보상하겠지만, 손을 벌리고 돈을 요구하는 일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고요의 나라는 더 이상 지구상엔 없는 것은 아닐까? 영혼을 망쳐버린 관광객의 욕망으로 그들은 이미 얼룩진 것은 아닐까? 왜? 그토록 자본의 변방은 삶이 복제되는 것일까?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저자가 사*맹 일원이었다고, 보길도를 단식으로 지켜내었다는 흔적을 보았다. 그로 인해 이렇게 티벳을 빨려들어갔다 나온다. 씁쓸하고 아리다.

자본의 때가 묻지 않는 고원을 상상해본다. 자본의 때가 묻지 않은 오체투지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시작을 상상해본다. 뼛 속까지 스미는 바람과 파랑, 하늘에 놓인 길을 가슴에 넣고 걷고 싶다. 감사

 2.

<나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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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1-0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무식함을 좀 어떻게 해보려고 문학책만 아홉권을 주문하고 들어왔슴다.
그랬더니, 구미 당기는 티벳 얘기가 턱하니 기다리고 있구려.
일단 보관함에 담고 새해는 희망이 날아갔어도 잘 견뎌보자고 안부 묻고 갑니다.

여울 2008-01-05 12:18   좋아요 0 | URL
여우님의 문학탑이 높게 쌓이는 것 만큼, 알량하기 그지 없는 제 것이 초라해보입니다. ㅎㅎ. 티벳책, 사진이 아름답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이유로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인들이 있다. 한때 '천재 라고까지 일컬어지며 시를 썼지만 이들은 불치의 병으로, 불의의 사고로, 혹은 생활고를 비관하여 음독 자살로 생을 서둘러 마감했다. 뛰어난 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시인 모두 요절했다는 이유로 '묻혀버린 시인', '잊혀진 시인'이 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찍 세상을 떴다는 것만 해도 억울한 일일터인데 이들 시인은 지금껏 문단의 조명을 받은바 없다.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된 적도 없으며 독자의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 지인들의 회고담은 남아 있지만 논문의 거의 없다. 살아가기가 팍팍했던 시절에 일상을 등진 이들을 위해 초혼제를 올리는 심정으로 시전집을 낸다.(출판사책소개에서)

 

김우창전집에 [서민의 살림, 서민의 시 -임홍재의 시],라는 비평이 있어서 거꾸로 들어와본다. 가슴이 아리고 뜨겁다.




춥고 가난한 겨울을 위해

남들은 다 버리는 무우청을 엮는다.

갈수록 쓰임새와 먹새가 늘어

가계부는 붉게 얼룩져도

아내는 부끄럼을 감추고

이웃집 것까지 거둬 모은다.

배추, 무우값이 똥값인데

요즘도 시래길 다 먹느냐며

수입식품만 먹는

기름진 이웃들 틈에서

우리는 자꾸만 난장이가 된다.

주눅이 들면 안된다고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뛴다.

구수한 황토 냄새

고향 맛을 그대로 간직한 시래기가

진귀한 듯 진귀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 곁에서

나는 허리끈을 졸라매듯

매듭을 꼭꼭 조여 맨다.

내일, 내일, 내일……

아내와 내가 믿는 내일은

따습고 밝을 것인가

시래기국처럼 구수할 것인가

생각하며 무우청을 엮는다   (1980)

2.

 지렁이 울음 소리 - 임홍재

달밝은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노래나 부르며 살았으면 하던

그 어린 시절

나는 왜 그토록 지렁이 울음 소리를 싫어했던가.

찌르르 찌르르르

신경의 올과 날을 물어 뜯으며

끊어졌다 이어지는

가냘픈 소리를

왜 사랑하지 못했던가.

밟히며 짓밟히며 수렁창에서

끈질기게 살아도

달밝은 가을밤

청명한 귀뚜라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지렁이 울음소리가 나를 물고

밤을 새운다.

섬돌 밑이나 돌담가에서

꿈틀대며 꿈틀대며

징그럽게 사는 꼬락서니가 싫어

발로 짓뭉개거나 두 동강을 내던

어린 시절의 그 지렁이가.

이제는 아예 내 몸속에 자리하고

청명한 가을밤

귀뚜라미처럼 귀뚜라미처럼

한세상 노래부르며

끗발 좋게 살자던 꿈은

다 어디 갔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지렁이처럼 숨 죽여 우는 것일까.

아 나는 왜 지렁이가 되어

밤마다 우는 것일까.

<청보리의 노래, 문학세계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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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1-0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강화도의 함시인이 생각나누만요.......추운데 잘 지내시나..쩝

여울 2008-01-0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강열한 듯, 사서 보게되면 몇 편 더 올리지요. ㅎㅎ

파란여우 2008-01-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때는 제가 시적 감수성이 없다는 사실, 시인을 잘 모른다는 사실, 시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무엇보다 시어의 함의를 짚지 못한다는 사실이 제일 불만입니다.ㅎㅎㅎ

여울 2008-01-05 12:15   좋아요 0 | URL
여우님이 시적 감수성 운운하시면, 다른 분들은 어이하시라고 망언?을 서슴지 않으십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ㅎㅎ 임홍재 시인은 정말 가려진 시인같습니다. 갇힌 시인이 많은 것은 어찌보면 행복은 아닐까 합니다. 빨리 품에 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