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남겨야지 하면서도 못남겼는데, 밤이라 명암처리를 하고나서야 조금 건진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어제 시립도서관에서 본 야경 하나 더. 유달산의 불빛을 살리려고 했으나 그라지 못혔다. 



뱀발. <추석전야> 1925.1월 한페이지를 넣으면 어울릴 듯 한데. 디카가 말썽이다. 담에 넣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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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03-0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란 불빛, 쓸쓸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정박해 있는 배의 모습이 좋아요.ㅎㅎ

여울 2009-03-10 11:42   좋아요 0 | URL
접힌 글에 나오는 장면. 보세요. ㅎㅎ. 그곳의 목포부청이 목포문화원, 2층엔 저자 박화성문학관이 있는데, 현재는 보수공사중이랍니다. 그 장면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는 소설의 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노란불빛. 노랑의 언어도 괜찮죠. 정박해있는 배처럼 말임다.
 

꿈이 무어냐? 무엇을 하고싶으냐는 질문이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한 고찰, 그리고 깨우침이 갖고 있는 오류에 대하여(지적 깨우침의 환원성에 대해... ...)


1. 운영할 때 머리만, 가슴만으로 이끌뿐  몸의 동선에 대해 눈여겨보는 것인지? 오히려 머리만, 시각만 비대하거나 단맛만 느끼려고 해 청각과 촉각, 쓴맛-신맛들을 숨죽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 깨우침이 다른 분들이 [해온 것]과 [하고싶은 것]의 마음을 통과한 것인지? 그것이 가슴으로 몸으로 전달되어 우러나오는 것인지?

2. (도시에서) 농사짓는활동 (또는 귀농) - (농사를 짓자는) 대안에 대한 고민의 결(하고싶은 것)이 삶으로 스며들게 하기(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인가 곡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선언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몇몇이 농사짓는다고 귀농과 다른 대안의 모습이겠지만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단순화의 오류? 표준말처럼 표준적인 전형을 설정해놓고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능력이 부족한 장삼이사의 사회적 약자가 취할 수 있는 것? 관심도가 떨어지는 사람이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없을까요? 선택의 폭을 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계층이나 아비투스, 나이 차이에 따라 접근경로가 달라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삶의 결을 세세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생각의 영역조차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기에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는 사람이 농사짓는다는 말과 행동을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의 도시사람들이 별반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머리로서야 당위성이야 선전처럼 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더 낫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논의되지 않거나 실제 해보지 않을 때, 생기는 성원들의 실천무력감이나 예상되는 무기력, 숙의되지 않았으므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예민해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말입니다.

2.1 개인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나가고 실천하는 것에 대해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자체로라도 그 어려움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입니다. 활동하거나 운동하는 분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면 부모님 세대들의 경험, 선택의 폭에 대한 논의들, 그 쓴소리들, 단소리들이 섞일 수 있는 결이 전혀없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산다. 이렇게 간다라는 선명성도 좋겠지만, 그 선명성으로 인해, 그 직선으로 인해, 나-너는 이렇게 갈 수도 있다. 나-너-나가 이렇게 가보면 해볼만 하다. 그것도 한번 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도 괜찮겠구나. 그 삶의 결은 전혀 사회적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대학졸업 지식인, 활동해본 사람만의 독자적인 선택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런저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시도해볼 수 있다. 단계적으로 과정의 오아시스를 만든다면 한 십년이면 아쉽지만 시도해볼 수 있겠다 는 같지만 다른 생각과 고민의 영역이 도마위에, 안주거리로 회자되면 좋겠다 싶군요.

3. 꿈을 꾸어야 한다는 말. 이제 무엇을 해야한다는 고민을 담는 말 역시 처세-자기개발서 같이 근거없는 꿈과 나는 로또가 될 수 있다는 착각의 영역만 키우는 것처럼, 행여 간접적인 폭력...결혼적령기인데 결혼하지 않느냐는 말처럼 들린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가],[나],[다] 라는 소질과 하고자하는 [마]가 있고, [라],[사],[아]에 배움을 더하거나 연결되면 이런 것을 더 잘할 수 있으므로 , 이런 저런 취미를 하거나...a-b-c라는 사람의 네트워크, 이런저런 고생을 해보면 이런저런 아픔을 느낄 수 있으므로...[a]라는 모임에 이러저런한 것을 만들거나 도움주게 되면 모임과 교집합이 증폭될 수 있다.....라는 이상적 상황사이 예스나 노라는 극단의 선택이 아니라 가능한 과정의 경로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좀더 세밀하게 들어가 같은 시선에서 생각의 높이, 배려의 높이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3.1

4. 여러사람들이 조금씩 서로 나눠 만들고 있는 모임이라면, 나는 깨우쳤어, 이렇게 하면 될 것이야? 라는 깨우침이나 느낌을 숙성시킬  생각의 결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군요. 모임의 방향이 흔들린다면, 가슴과 몸의 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속도. 그 속력으로 생기는  위험에 대해서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깨우침과 현실의 간극, 간격에 대해서 머리만의 기울기로, 열정만의 기울기로 이전하려하지말고, 이미 해왔던 무수한 능력에 대해 곰곰, 알게 된 것, 느끼게 된 것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만드는 과정에 대해 더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천천히 몸을 끌며왔으므로 더디 간다고 달라질 것도 별반 없으므로... ... 

뱀발.   

1. 뒤풀이 자리 090220, 090228 스친생각들을 이제서야 남깁니다. 말하는 재주도 하고싶은 재주도 없으니 손발이 고생입니다. 날 것이기에 행여 마음 다치지 마시구요. 제 생각역시 다듬고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이겠죠. 

2. 어젠 박화성작가의 <추석전야>와 <하수도공사>의 단편,중편을 봤습니다. 이곳의 행간에 비친 것이 남자작가인 줄 알았는데, 여류작가이고 처음으로 문학관이 생긴 곳이 이곳이네요. 20권의 전집이 나와있고, 80년전쯤으로 돌아가 유달산 아래 전경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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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03-0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알 익혀 먹을게요.ㅎㅎ

여울 2009-03-05 14:14   좋아요 0 | URL
날 것이라...가시도 발라내고, 조심하시구 요리 잘해서 드세요. 요리하시다 아니다싶으면 가차없이 반품하셔도 상관없구요. ㅎㅎ
 

 

 골 목  

 날이날마다 드나드는 이 골목./이른 아침에 홀로 나와서/해지면 흥얼흥얼 돌아가는 이 골목. 

 가난하고 외롭고 이즈러진 사람들이/웅크리고 땅 보며 오고 가는 이 골목. 

 서럽지도 아니한 푸른 하늘이/홑이불처럼 이 골목을 덮어,/하이얀 박꽃 지붕에 피고 

 이 골목은 금시라도 날어갈 듯이/구석구석 쓸쓸함이 물밀듯 사무쳐서,/바람불면 흔들리는 오막살이뿐이다. 

 장돌뱅이 팔만이와 복동이의 사는 골목./내 늙도록 이 골목을 사랑하고/이 골목에서 살다 가리라. 

 

 혁 명 

  

 조개껍질의 붉고 푸른 무늬는/몇천년을 혼자서 용솟음치든/바다의 바다의 소망이리라

 가지가 찢어지게 열리는 은/날이날마다 여기 와 소곤대던/바람의 바람의 소망이리라

 아! 이 검붉은 징역의 땅 위에/홍수와 같이 몰여오는 혁명은/오랜 하늘의 소망이리다. 

 

 뱀발.  

1. 누구의 시 같은가요? 아침 눈길을 끄는 46쪽과 47쪽에 이어져 있네요. [골목과 혁명]이라 ... ...조개껍질의 무늬가 바다의 소망이라, 가지가 찢어지게 열리는 꽃은 날마다 소곤대던 바람의 소망이라...그리고 홍수같이 밀려오는 하늘의 소망은...  그리고, 골목, 이 골목이라... ...

2. 아침 문득 [바위에 계란치기][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생각이 스며들더군요. 그런데 왜 막고서고 있는 그것을 바위라 생각할까요? 혹 그것이 빙벽이라면, 혹 그것이 바람을 잔뜩 넣고있는 풍선이라면...계란으로 바위를 그래도 쳐야한다가 아니라 우리의 온도를 조금만 올린다면...우리의 따듯한 삶을 보듬는다면..그리고 조금만 더 바람의 소망을 불어넣는다면...바위라고 생각하던 것이 스르르 스르르 녹거나...그저 부웅 날라올라가거나....하지 않을까 하는 허튼 생각을 해봅니다. 

3. 누구의 시 같은가요? 누구의 시가 중요한가요?!!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 당신의 치우침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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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28_0301 (ing)


 







지난 일요일 꽃이 궁금하여 갔더니 만개를 하였다. 햇수로 네해, 다섯해쯤 되는 모양이다. 이름도 헛갈렸는데, 봄을 맞는 꽃 영춘화 꽃그늘 아래는 야생화 봄맞이꽃이 함께 피었다. 붉은 자주색 꽃순사이로 번지는 노랑이 곱다. 지난 길 열차편에 흔적이 아쉬워 다시 남긴다. 벽에 길게 드리운 꽃가지가 예쁜데, 아직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 같다. 화학연구원정문과 엘지연구원 사이 담장이다. 

hnine님 사진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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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3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3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우리의 분열증, 우울, 막막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F4든 신파든 지금의 우울함을 기댈 곳이 없어 이중적 해소를 하는 것. 분열증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가? 좌절감-열패감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기력함과 더불어 극단적 근육과 살의 만남. 그것에 대한 일회적 해소의 습관화는 아닐까?

2. 보수, 수구만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똑같이 무능력하다. IMF란 기회가 있었으나 우리는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고, 앞으로 지자체와 국회의원선거로 이어지는 국면은 여전히 대동단결론의 빠질 확율이 크다.

3. 집단무의식은 부족사회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의 맥락과 더불어 집단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면, 식민지 근대화 100년의 식민지성은 뿌리깊게 우리사이를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혼자만으로만 아득바득하거나, 남들이 어떠하든 푸고 마시고 즐기고 하는 습속이나 태반의 무관심이 일상화되는 일들이 그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닌 것일까?

4. 지난 20년, 50년의 열망과 절망은 누구든지 알고 있다. 집단지성의 화려함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성찰과 집단반성은 도대체 하려고도 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불구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만들었던 상황에 대해, 빠졌던 도그마를 벗어나려는 시도. 우리의 반복되는 집단무기력(혼자 세상을 거머쥐려는 것이 아니라)에 대해 동전의 양면처럼 진지해져야 한다. 불과 6개월을 주기로 반복되는 조-울에 대해 나눠야 한다.

5. 제대로 된 반성과 공감이 없다면 더 이상 준거집단으로 가능성도, 활동의 운동의 주체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지 모른다. 더 이상 새로운 지평을 함께 고민하려고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운동과 활동에 있어 자기고백이 따르는 반성과 공감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정치가 권력을 얻어내거나 차지해서 제도를 바꿔내는 것이라면, 운동과 활동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과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면서 생산해내는 것은 아닐까? 그런면에서 정치와 활동은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며 경제와 개인으로 귀결하는 종교와도 다른 것일 것이다.

6. 우리들의 삶.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경계에 대해, 지평에 대해 나눌 시간이 많지 않다. 도덕으로 활동이나 운동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윤리와 사유, 삶의 공간을 삶과 행위, 고민의 울타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또 다른 몫은 아닐까?

7. 상황이 만들어내는 간극은 여전히 저기-여기사이를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서로 딱딱하기만한 우리가 서로 기댈 수 있을까?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태도, 문화, 주체의 영역은 넓어지고 유연해질 수 있을까? 저 멀리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까운 여기서, 기대고 고민의 경계를 섞는다면, 아주 작지만 서로 만들 수 있다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막힌 것을 아주 작지만 뿌듯하게 푸는 것은 아닐까? 위기라는 말은 옘비도 쓰지만 현재의 시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기회는 아닐까? 신파에 젖지 않는다면 서로에 기댈 수 있다면... 생각시공간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 마음으로 공유할 기회에 조금 여유를 내어준다면... ...
 

뱀발.  

1. 참* 총회에 ㅅ대표님이 작은강연을 해주셨다. 그 메모를(의견이 가필된 곳이 있다.) 거칠게 남겨본다.(곡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뒤풀이자리에서 전적인 공감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현재의 역할이 너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 줄기에 대해서 논제가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상황과 속도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위험하고 어렵다. 어쩌면 우리도 늘 그 속도에 휩쓸려가기에 늘 그 모양이거나 그 나물에 그밥은 아니었던가. 표면만 분칠한 얼굴만 살짝 반성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한 치부에 대해 울림이 커지지 않으면, 또 역시 불과 일년이 지나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거나, 주체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사분오열되어 소멸될지도 모를 일이다. 절박함의 깊이와 넓이, 그 많지 않은 기회. 렌즈를 들이대고 느린 동작의 분석, 그토록 많은 빠름을 지나친 습속을 보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삶이 안주거리가 된다면, 고민에 삶을 가져와 섞을 수 있다면, 각개격파의 개인 이념만이 아니라 다른 우수마발을 가져와 녹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운명은 아주 작은 미소를 지을지 모르겠다. 운명은 늘 노력하고 고민한 자들에게 확율이 높다는 마키아밸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우리는 바닥까지 열심히 함께 고민이라도 해본 적이 있던가? 나 역시... ... 하지만 언제든지 너의 고민을 받거나 빨려들어가 태도는 되어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너-나의 고민...

2. 제목이 오해를 살 것 같다. 집단공감이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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