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차창가로 흐르는 녹음속에 여러 생각이 든다. 시국이라는 것 - 맺히고 푸는 점이, 생각을 앞서 달린다. 아~. 골목길에 다다랐다고 하면, 그렇게 막혔다고 생각하면, 생각의 월담조차 하고 있지 못하는 지점. 생각의 꽃들은 현실을 밀고나가는 화려한? 행진은 이미 저만큼 내달리고 있다. 막히고 달리고 지치고, 또 막히고 지치고, 또 저기 무엇이 있다면 그리로 내달려가는 청룡열차같은 일상이란, 아~ 생각의 혼수상태란 이런 것일까? 생각이 너무 내달려 숨이 막히는 것이 이런 것인가? 벌써 그(녀)들은 그 잘난 생각꼬리들을 휘휘감고, 저쪽에서 웃고 있다. 아~ 우리는 여기있지롱. 너희가 어제 저기있다고 도장 꽉 찍었는데, 너네가 말하는 우리는 벌써 여기로 성큼왔지. 그래 바보들아. 머저리 몸치들아~.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는 걸. 타고 넘거나 보듬고 넘어왔는 걸. 네가 하려는 것이 뭔지 알아하구 조롱반 농담반 섞인 듯.


너희들 생각이란 것이 바늘끝처럼 뾰족하게 하는 것만 알지 그 나머지는 젠병인 걸 알아. 그래서 우리는 늘 너희들을 믿지 않아. 내 그림자처럼 너에게 달라붙어 있거나 네가 기어갈 동안, 뾰족한 바늘에 침잠할 때, 우리는 휑하니 가슴의 결실과 방법을 알지. 눈물한점의 연대를 익히 알거든. 아` 그것이 가르쳐주는 것인지 가르쳐준다고 아는 것인지의 문제일까? 기회는 늘 있었지. 네 몸의 그림자처럼 똑같이 보고 있었지. 네가 시선을 저기에 응시할 때, 이슥한 밤이 되면 우리 그림자들은 뭉치고 넘는 연습을 하지, 너희들이 시선에 목마를 때, 어느새 너와 너의 그림자가 합치고, 담합을 했는지조차 모르지. 그래 모를 것이야.

어쩌면, 삶의 힌트란 것이,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란, 그저 느슨하기만 한 점선같은 유대도 주체도 최소한의 공약수마저 실천하지 못한 몽매에 툭, 툭 던져지는지도 몰라. 삶의 힌트가 톡톡 던져져도 늘 우리는 몰려가는 저쪽만을 보고, 그 방향이 어디로 던져질까만 걱정하는 걱정바보는 아닐까? 곳곳에 점선 투성이인 매듭을 이어보거나 울타리에 있는 점선들이 무엇이 있는 것일까? 타 넘고 웃고 있는 것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라고 늘 골목길을 따라 쫓아가면 숨던 그것이 무엇인지...늘 쫓아가기만 하지 말라고....말야.

설핏설핏 보여주는 그 그림자들이 어디에 웅성거리는지, 어디에 모여있는지? 그 슬픔이 배여있는 눈물의 샘이 어디서부터 솟아날는지 저어기, 저어기 광장으로 가봐야 하는 것은 아니겠어. 점선같은 점점 실선으로 돋아나는, 저어기 샘, 계곡깊고, 산들이 모여있는 그 곳으로 가보는 것은 어떻겠어. 여기 골목길 모아지는 저기 마당같은 곳에 모여보면 어떻겠어. 여기 네 사슬같은 족쇄들을 끊어보고 살아보면 어떻겠어. 연대의 실선이 살아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면 어떻겠어. 여어기, 여어기, 족쇄들이 사실은 다 삮아서 조금만 힘만주면 우수수 벗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야. 삶의 족쇄들이 사실을 그런 것이 아니라구. 그렇게 컴잉아웃하면 그 잘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삶의 족쇄에 얽매여 삶을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아둔함의 늪이란 것을 말야.

기획이란 것이, 고민을 담고 섞는다는 것이 자꾸 가짜만 건들다보면, 정작 진짜에 둔감해져 건들 수 조차없어진다는 것. 주변만, 변죽만 건들지 말고, 그래 단도직입으로 갈 필요도 있다는 것을. 기획이란 것도, 기회라는 것도 별반 자주오지 않고, 첫사랑을 놓치듯 훌쩍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살아진 것과 살아갈 것. 살아진 삶과 살아만들어갈 삶. 거기에 삶을 붙쳐가는 일. 삶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

뱀발. 

1. 말미에 다음을 주저한다. - 날카로운 첫키스 추억. 삶은 아련한 것이 아니라 삶은... 독을 뭍힌 화살같은 생각촉. 여름의 햇살은 표독하다. 은 제 운명을 갈라놓고서...한용운의 님의침묵이 자꾸 맴돈다. 날카로운 키스은 추억은 잊지말라는 듯 잊어져서는 되지않는다면서 간절히 다가선 다. 올해도 어김없이 담장에 붙은 장미는 저리도 붉고, 그 향은 입술을 다가가게 하지만, [제 곡조을 이기지 못하는 사랑노래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에 맴돈다. 뒷걸음치기만 하는, 늘 사랑노래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우려다.  독이 될지 약이 될지. 키스의 기억은 아련할는지 되풀이되는 첫키스는 반복되기만 하는 것인지. 에 맴돈다. 생각이 맴돈다. 님들의 침묵에...그 침묵의 덫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너무도 많은 너무도 강렬한 추억만 화사하게 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두렵다 점점 더워지고 높아지는 햇살에 발린 화살처럼 내리쬐는 생각 촉은...마음을 뚫을 수 있을까? 몸을, 가슴을 관통하여 머리로 전해질까? 손과 발로 감전될 수 있을까? 또 침묵의 늪으로 잠잠해지는 것일까? 또 관조의 늪으로 수몰하는 것일까? 아니라면...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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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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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하루, 아이들과 만남들 사이. 나는 어디쯤 있을까 손을 잡고 품에 안으면 점점 녀석들의 몸속에 피시처럼 딱딱한 것이 들어앉아있는 것 같다. 텔레비전이 녀석들을 꼬옥 껴안고 있는 것 같아. 그녀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마음의 여백이 점점 점점 좁아드는 느낌이다. 그 녀석들의 마음의 오솔길로 내 마음을 살며시 놓고 싶지만, 피시에 텔레비젼에 주고 딱딱해진 마음이 모서리처럼 매만져진다. 말랑말랑한 마음들이 그렇게 땀 속에 비친 맑은 눈망울이 테레비와 피시에 안겨 좀처럼 품을 내주지 않는다. 그녀석들을 닮아가는 품은 낯설다. 마음을 비추일 곳, 녀석들에 네 마음 속에 노닐던 그 그늘을 다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래서 싫다 그렇지 않았던, 피시를 닮은 네 품과 텔레비젼을 닮은 네 눈동자가 싫지 않다던... ... 네 마음들의 그늘에 쉬도록 네 따듯한 품이 그립도록 네 청량한 샘물이 그리워지도록 말이야. 그렇게 네모난 녀석들의 품을 너무 좋아하지 말념. 네 마음이 그 녀석들을 닮아가면 서운하고 아픈단다. 어른들의 그 네모난 모서리 마음에 지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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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녀석 이름이 뭐드라. 열매을 먹은 기억이 한해를 바래서인가 이름이 가물거린다. 요녀석의 흔적을 쫓다나니 잎새의 몸통에 난 더듬이가 끌린다. 어디를 부여잡으려고, 예민한 촉수는 곤충들의, 나비들의 그것같다. 이어 그리다보니 참 이상한 것이, 잡을 곳을 잊은 녀석들은 어김없이 낙엽색으로 말라 있다. 먼저 자리를 잡지 못한 세상의 끈을 잡지 못한 기억을 과감히 중동내버린다. 그리고 그 예민함의 힘을 앞의 새로운 더듬이에게 보탠다. 그렇게 덩굴을 잇고 견디고 타넘곤 하는 것이다.

뱀발. 청미래덩굴을 그리다보니, 덩굴잎이 나는 곳에 어김없이 천사날개같은 더듬이가 춤을 춘다. 그 춤을 왜추는 것인지 무엇을 부여잡으려는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도 않지만, 불쑥 커버린 청미래덩굴은 어김없이 더듬이로 부여잡길 갈망한다. 그렇게 더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종태님도 이땅에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며 퇴색하는 빗바랜 더늠이의 안타까움이 아린다. 끝단으로 내동댕이치는 현실에서 우리가 타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부여잡고하는 것인지? 불쑥 마음한점, 손한점 내밀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척 덥다. 가신 님들을 위해 애도의 마음을 간직해본다. 

그 마음들이 [ㅁ ㅏ ㅇ ㅡ ㅁ] 들이 쌓여 멀리멀리 흘러갔으면 한다. 목련꽃같은 그대들에게 그렇게 홀연히 투욱 마감한 아픈 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져본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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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선 어쩌면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바보스러운 일이다. 바보들, 바보들. 그 바보들이 너무도 없기에 세상은 늘, 바보같지 않은 놈들로 인해 점점 바보같아지는지 모른다. 진흙탕에 연꽃을 피우듯, 그 힘을 주체못하는 저 교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의 틈속으로 그래 그 바보들이 녹아든다. 사이사이. 그래 우리 바보들이 피울 수 있는 것이란, 너희들을 자양분으로 뿌리채 그래. 저 한점 화사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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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미끌어지듯 차창은 아늑한 소리만을 담고 달립니다. 밤새 다가온 격한 감정의 물결과 애틋한 아린 상처같은 마음들. 진록으로 향하는 여름은 무장무장하기만 합니다.  문득문득 주류의 공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하나. 점점 침침해지는 눈. 점점 소통의 끝이라도 잡으려는 몸부림. 늘 비주류의 공간을 경험하지 못한 아둔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빗장걸고 소통조차 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가, 너가 그 아둔함으로 인해 끼치는 어리석음의 끝은 어디일까? 하고 말입니다. 

글을 쓰고, 보태고, 활자화된 공간에 노닐지 못하거나, 노닐 수 없는 접근금지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노약자가 아니라, 정말 눈보다 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까? 그들의 심금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주말 참* 모임에서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평균적 참*회원이라는 것이 인터넷을 하고, 인터넷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하고, 활자화된 글의 문맥을 활자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스스로 문턱을 높이 만들어 놓아 스스로 공간을 편집해놓은 무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는 반영되는 것일까요? 투병 중인 사람들의 의견을 개진할 할 수 있는 틈조차 없는 사람들. 중산층의 서울사람들이 쓰는 언어처럼, 표준어에 밀려난 언어들이 살아숨쉬는 일상들의 비주류에 대해 마음을 걸어봅니다. 게시판의 공간에 마음을 나누고 걸고, 그 편린에 대해 당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만한 자신감이 과연 자신감이 될 수 있는가? 입으로 말할 수 있는 표현들이 얼마나 몸의 말과 구체성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걸쇠에 주춤서는 스스로를 봅니다. 

그렇게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주류는 극히 비주류를 배제하며 급속히 얇고 폭이 좁아집니다. 모아지지 않으며 절규를 외치는 마지막 목소리들은 주류에 한점이나 미미한 물결의 파동도 만들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끊임없이 서로 멀어지는 소통의 질곡만 남습니다. 씨앗이 될 수 없는, 자극이 될 수 없는 명멸하는 외침만 주류의 바깥을 수놓을 뿐입니다. 

밀려나는 사람들의 아규와 최소한의 그물망도 갈갈이 찢기는 현실 속에서 님들의 마음 행간을 보며 다독입니다.   

090523 몇분의 노** 분들과 함께했습니다. 심려가 느껴지고 어루만질 다독임이 간절하기도 하겠지요. 090524 지인과 갑*에서 지인의 노래와 마음을 들었습니다. 김광석,날마다날마다.눈깔.벽.절망.미친놈 부분부분 듣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품평의 자리까지 마련한 친구의 마음과 단란함이 들어오더군요.  

2. 

그래요. 제 몸뚱아리가 얼마나 주류에 거꾸로 머리박고 사는지, 다른 표현수단하나 만들지 못하는 백치의 나날을 통과시키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말로만 비주류인지?  치라는 표현이 맹이라는 표현에 걸려 넘어지기만 하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그런 불감 속에서 간신히 느끼는 감각이란 것이 소소함의 폄하로 이어지는 것인지? 상처받은 마음들, 저질렀던 마음들의 책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인식의 얕고 좁음에 대해 돌아봅니다. 

비주류의 나락의 경계에 선 분들의 절박에 대해, 비주류인 분들에게, 행여 비주류의 폭격을 맞은 절망을 감싸안은 그대에게, 손한번 내밀지 못하는 무능에 대해 자책하면서 부디 세상과 절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부디 상처난 마음과 상처난 우울을 서로 보듬고 기대길 바래봅니다. 혼자 올린 심연을 늘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므로, 마음한점 그대에게 던져봅니다. 늘 기댈 것은 당신의 따듯한 품이었고 따듯한 세상을 나누고자 하는 당신들의 열정이었으므로, 벽에 스러지지말길 바랍니다.  

주류의 안온함에 대해 불신해봅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 흠집을 내봅니다. 그대의 경계로 흘러들어가고, 그대의 아픔과 슬픔과 절망이 스며나오도록 애써봅니다. 아마 아마 조금은 서로 따듯해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시선은 더 단련될 수 있을까요? 위태로운 현실에 서서 삶을 극한으로 밀어내는 일들이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힘잃는 눈빛을 피하지 말고 따듯한 포옹 한번 힘껏 해드리면 좋겠습니다. 서슬퍼런 벼랑에 선 우리들에게 따사로운 마음의 포옹 한번, 말한번 들어드리면, 소주 한잔 이웃 테이블에 건네드리면 좋겠습니다. 모르는 이웃이라도 맥주한잔 소주한잔 건네드리면, 담배 한대 건네드리면 좋겠습니다.  

모진 마음 더 먹지 않도록, 모진 마음의 결을 조금이라도, 따듯한 목소리 한점, 온기한점 서로 그 결에 불어넣어주면 좋겠습니다. 악다구니 같은 세상,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말 한점, 그저 건넸으면 좋겠습니다. 

아...제발 숨막히는 일들 벌어지지 않고, 마음 깊이깊이 다독일 수 있는 한주가 새롭게 시작하길 바래봅니다. 우리는 정말정말 많은 물꼬를 터뜨릴 수 있을 겁니다. 절망의 벽만 넘어선다면..간절한 마음들이 스며든다면... 어렵지만 따듯하게 안아드리며, 술 한잔 담배한대 건네며 넘어섰으면 합니다. 무심히 끊기는 전화 한통화의 여운을 마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정말, 아니 무시무시한 시대를 건너고 있으며 더욱 눈과 마음을 감고 있는지 모릅니다. 불감을 깨뜨리려는 마지막 기회를 외줄로 타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더이상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분기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더이상 밀려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나의 작은 포옹, 마음의 포옹이, 그렇게 온기를 부여잡고 건넜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운 눈망울, 눈물한점 피하지 말고 보듬고 넘어섰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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