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어느 블로거가 이미 얻은 권리들을 포기하고 생계마저 막연한 마을로 돌아갔다고 치자. 그리고 그 블로거의 마음이나 삶과 고민이 배여나는 글들과 생활을 고스란히 느낀다고 치자. 가장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고 그런 삶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겠지만, 숲과 현실에서 겪는 아픔과 슬픔, 기쁨을 귀동냥 마음동냥할 수 있다면, 한번쯤 아니 사회단체에 후원하는 것도 좋겠지만, 서툰 생각은 그(녀)의 삶에 회비 한점내는 것은 어떨까? 

슬그머니 회비라는 것이 그 파릇파릇 노릇노릇한 것이 아니라 - 최저생계가 환산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 조금 더 다른 관계의 시도는 어떨까? 밋밋하거나 그 줄타는 경계가 아니라, 당당한 밥 한점은 어떤가?  삶에 후원계좌를 만드는 일은 어떤가? 그렇다면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어 앵벌이하는 일도 생길까? 어떤 세상인데 가당찮은 생각을 하느냐구 핀잔을 받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호혜일까? 간섭일까? 의도된 삶으로 살아질 우려는 없는가? 현실은 그 조건에 맞게 어떻게되든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일가? 어렵고 힘든 삶이 하나 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경중이나 논리에 맞는 것이냐구 핀잔을 또 받는 일이 될까? 그러면 기간이 정해진 삶은 어떨까? (무슨 기획서도 아니고 삶을 흥정하다니??!!), 아니 순수한 의도를 좀더 넓혀보자. 이렇게 살아볼테니, 나의 삶에 후원을 하자고 한번 당당해볼 수 있을까? 당당한 삶의 경로와 맥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니, 그 삶의 숲에 딸린 떳떳함의 그늘을 함께 나누자고, 비단 돈만이 아니라 표시나지 않는 선물, 생활의 경계선은 만족시킨다는 가정하에 진도는 나가볼 수 없을까? 

모든 물건이 서로의 관계로 물들일 때, 그 선물이 맥락을 온전히 함유한 채, 다른 삶의 자원자에게 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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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한 사랑

 

양손에 무얼 들고
내려놓으려는데 자리를 못 찾아
허둥대는 사람은 중얼거리지
오목한 것, 오목한 것 하고 중얼거리지

저절로 오목한 건 흔치 않아
그릇을 빚고 둥지를 짓고
두 손 오므리거나 팔 벌려 껴안거나
오목한 것은 그래서 그릇이 아니라
씀씀이 같은 것

나를 들고 있는 시간이 오래되면
고인 물처럼 악취가 나지
나를 내려놓고 툴툴 털고 싶을 때
퉁퉁 부운 마음 내려놓고 싶을 때
오목한 것

내손을 떠나서도 내가 빗물처럼 흩어지지 않게
정갈하게 받아두었다가
지친 걸음으로 돌아오면
옛 시간을 말갛게 빨아 개어두는
무의식 같은
눈동자 같은
오목한 나의 사랑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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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07-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퍼갑니다.

여울 2009-07-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ㅂ.
 

 

     
 

사무실에 애기잠자리가 자태를 드러내며 앉아 있다. 인기척이 있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참을 물끄러미 보다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은 날개에 손을 댄다.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은 정도의 가벼움. 작은 꼬리엔 하늘을 물에 담은 하늘색 한점.  

조심조심 사무실을 나와 흐린 하늘, 손가락의 무게를 주지 않고 날려보낸다. 스르르 스르르. 엄청난 속도의 잠자리가  손안에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바람보다 빠르게 날개짓하여 날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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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은 있는데 헌신은 없다구!!" 

며칠내내 책이 읽히지 않는다. 마음이 증발되어서인지 일터의 바쁜 상황들 때문인지 마음을 식히던 도자기 책들에 시선을 올려놓기도 마뜩하지 않다. 비는 요란하게 몰아쳐가고 중부권을 올라갔던 비는 다시 흩날리기 시작한다. 지난 주말의 느낌을 몰아쉬지도 못했는데, 한밤의 전주곡을 음미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일주일이 횡하니 화살처럼 속력을 더한다. 

곧 5주년 기념 강연. 참* 운*위, 뒷풀이를 인근에 두고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묻어났다. 애정의 깊이 - 헌신의 강도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토로, 자책감-그것이 아니라 모색의 방법에 대한 진지함. 밤은 깊고, 까칠함은 현실을 밀고가길 재촉한다. 서슴지 않는 발언들이 또다른 애정으로만 꽂힐까? 또 다른 헌신과 추진력으로 나아갈까? 애정만으로는 현실을 밀고갈 수 없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역으로 전부의 책임이다. 애정도 분산되면 아무 것도 태울 수 없다. 현실은 그렇게 무지막지 하다. 애정이 모아지고 더 뜨거워지면 헌신으로 불타오를 수 있을까? 

마음은 그 자리를 배회한다. 그곳에 머물러있다. 이야기의 느낌, 톤, 강도 바라보는 시선은 완급과 부드러움, 아쉬움의 변주로 흐른다. 빠른 박동의 새김. 드러나고 표현되었던 애정을 나의 입출고장치로 들어가 편집되는 일은 없겠지. 무엇을 주저해야되는지? 무엇을 해야되는지? [앞끝만 있는 사람들]과 [뒤끝있는 사람들]이 앞끝과 뒤끝으로 이어져서 해보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 행동의 연대, 행위의 연대는 다섯살이 되어도 서툴 수밖에 없겠지만 별반 주저할 일은 없지 않을까? 

행동의 교집합으로도 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 것이기에 별반 주저할 일은 없지 않을까? 

뱀발. 물론 이것은 내생각이다. 송위원은 뒤풀이에 늦게 합류하여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고, 시간을 정지시킨 채 논의와 열정을 이어간 분들의 충고와 애정에 데이기도 베이기도 했겠지. 스스로 핑계를 대며 일들을 놓치고 있는 책임도 돌아오고, 그래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겠지. 또 다른 이는 반복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되풀이되는 일상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행위와 움직임을 지렛대 삼아 달라지거나 쏠쏠한 재미의 불씨가 살아나길 바래본다. 결혼과 가사, 일터일로 만만치 않겠지만 겪어왔던 지난 사무국의 지칠줄 모르는 저력을 상기시켜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다 지금을 위해 그렇게 밤낮없이 논의와 논쟁으로 길을 걸어왔던 것은 아닐까? 아무 것도 없던 한점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놓쳐버리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울 것 같다. 내가 아니라 나-너로 무게중심을 아주 조금만 함께 이동했으면 좋겠다. 시이소오 중심으로 조금만 더, 함께. 

090703 참* 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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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 공원에서 만난 대전근대역사의 파편들  090704

나란 친구를 돌이켜보면 가끔 불쑥 낯선 나를 만난다. 머리의 언어만 대해 예민한 것 같지만 가슴과 몸의언어가 어색하게 섞여있지는 않을까? 가슴과 몸의 언어, 손과 발의 언어에 무척이나 둔감한데, 열정에 예민한 것은 아닐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늘 혼자있지 않거나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늘 혼자있는 것. 어디쯤 있을까? 가끔 그것이 모호하다. 현실은 각기 다른 언어에 예민하지 않다. 좋아하는 양식일 수도 있겠지만,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굳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던가? 가슴의 언어로 통하지 않으면 역시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손과발의 언어로 교감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겠지. 그런면에서 스스로  어디에 걸려있는지 난감하다. 그렇게 걸릴 수 있는 것인지도 말이다. 아마 머리중심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약간 가슴중심주의에 경도된... ...  

1. 

어찌어찌하다보면 그렇듯이 뒤풀이 자리를 말미까지 지키는 경우가 많다. 아마 거의 이십대를 맞으며 시작된 버릇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때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들이 썰물처럼 밀려가거나 밀물처럼 밀려들어올 때, 삶의 행간을 비추이다가 가끔 술에 이기지 못한 가슴의 말이 울려나오거나,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눈물이나, 아련한 추억들이 다가오고서고 하는 모습들이 재미있기도 하다.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말들이 그들 자신을 비집고 나오는 지점, 반짝거리는 마음들이 보이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경계를 넘어서는 나란 놈들도 약간 봐주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가슴이나 손과 발, 마음의 언어구사능력이 늘었으면 하는데, 종종 머리에 얽매여 기동하지 않는 다른 언어가 박약한 스스로 밉기도 하다. 이 미련을 조금 가지고 가본다. 이 흔적의 말미까지 말이다. 

십여년이 훨씬 지나 찾은 보문산은 남다르다. 신도심과 새로운 위락시설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곳은 철학원들과 보살들이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빈한함과 어려움이 그렇게 버무려져 있다는 사실은 70-80년대 건물과 슬레이트지붕을 안고 서있는 붉은 깃발과 운명을 가름할 것 같은 붉은 글씨의 선명함에 녹록치 않는 삶의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졌을까? 일제시대의 건물의 흔적도 종종 배여있다. 아무도 눈길을 온전히 받지 못한 채.

 2. 

느낌을 살리기가 쉽지 않군요. 중동난 글을 잇는다는 것.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힌다는 일. 경계를 이쪽부터 저쪽까지 넓혀본다는 일. 그것이 머리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며, 손과발만의 영역만도 아니겠지. 어쩌면 제가 가진 언어가 구체적이지도 않고, 얕은 머리맡의 앎이 두렵기도 하다. 더구나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 오로지 나의 편의적인 관점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미사여구를 대는 것도, 뼈아프게 남기는 것도 늘 더 풍부한 일상을 제대로 잡아낼 수 없고 편의적인 기억으로 남기때문에 조심스럽다.  각인된 근대를 넘어서야하는 당위, 이런 것은 아닌데, 그렇게 해야한다는 사명감도 없는데, 엉거주춤한 자세가  문제를 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변두리 느낌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야할 것 같다. 선생님의 발굴한 역사와 노고에 감사. 행운을 함께하고 나눈 분들에게도 감사. 반나절 답사가 가져온 주저하고 있는 머리속 앎도 이 보문산 자락에 붙어있는 현실의 흔적과 삶의 소리는 손과 발부터 시작하여 가슴을 울리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 일그러진 근대와 , 속속들이 들러붙어 있는 삶의 흔적들을 흔들지만 불안한 흔들림이 아니라 그래도 행복한 흔들림을 얻었다고 소회를 붙이며 땜방 몇조각. 

3. 

가끔 아니 드물게 사람을 만나다보면 얼굴보다 이름이 익숙한 경우가 있다. 이름이 회자 되어 그 이름이 또렷하지만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생기는데, 소나기를 가르며 돌아온 길. 대면한 뒤 수인사가 처음이라 이름을 먼저 전하니, "아~ ~" 하신다. 그리고 명함을 건네받으니 "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회지 책소개를 번갈아 했는데 정작 얼굴을 몰랐던 셈. 관심이 깊고, 책까지 준비하고 있다한다. 이렇게 내공 깊은 분들이 산재하고 있다니, 관심외한인 나와 달리 역사에 대한 관심의 깊이와 일상에 침윤된 깊이가 놀랍다.  

4.  

보문산 전망대를 내려오는 길. 멀리 검은 먹구름을 의심하긴 하였지만, 갑자기 장대비로 변한 소나기 처럼, 하얀 햇살과 막걸리에 대한 유혹이 걸음을 재촉하였지만 온몸으로 맛는 소나기 같은 보문산 공원에서 만난 근대역사의 편린들은, 바쁜 핑계로 밀어낸 예상과 달리, 온몸으로 맞는 소나기같다. 그 소나기에서 낭만을 찾아낼런지, 신열을 앓게될지, 두고두고 상기되는 아름다운 추억, 아픈 추억으로 가는 길목이 될는지 모르지만 판단은 유보한 채로 온몸으로 기억하기로 한다. - 고스란히 남아있는 좌우익의 톱?질(형무소의 비극, 산내, 임시수도 20일의 대전), 끊임없이 문화재를 받아내야하는 비극. 일제시대의 풍경들. 해방의 기억들.

5. 

그리고 뒤풀이. 풍경은 정지한 듯. 파도소리 은은한 바닷가의 엠티 분위기다. 순한 억지를 부린 듯, 술도 노래도 일순배하는 도시 속의 풍경은 도시같지 않다. 은은한 기타소리와 노래 소리. 그리고 번지는 웃음과 미소. 19살 등푸른 학생의 노래소리와 이야기. 청춘의 기억이 섞인다. 선생님과 학생의 위계도, 나이를 잣대로 하는 금기도 없고, 욕심을 드러낼 수 없는 한자리의 시공간도 정지한채로 둔다. 경험의 공유가 몸의 흔적에 대한 공유의 장면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따듯하게 안고 가보기로 한다. 머리의 기억으로 흡인하지도 않은 채, 희석하지 않은채, 온전히 몸의 기억으로 가져가기로 한다. 

뱀발. ... 

근대를 산책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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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대사 답사_전쟁과 평화
    from 木筆 2010-05-30 10:37 
      답사. 지난 보문산을 우회한 반나절답사. 전쟁의 이면을 몸으로 체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그렇게 될까 두려워 발 담그길 저어하는 일. 소나기내린 그날의 기억 말미 형무소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일그러진 전쟁의 기억이 옷을 적신다. 그리고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오늘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웹알림지도 일정이 다가오는 것이 편치 않았다.   어제의 기억이 온전히 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