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돌아서자마자 더위는 보라는 듯 시위한다. 어제 본 탐스런 포도를 보다가 사진을 훔쳐돈 포도나무잎이 가물거린다. 다시나가 살펴보니 나무의 아랫부분만 잎새사이 매끈한 홈이 파져있을 뿐 올라온 잎들은 큰 잎들도 그렇지 않다. 꼼지락거리며 흔적을 더듬고 있는데, 꼼지락거리는 물잠자리 녀석이 포도나무 줄기를 부여잡고 쉬고 있다. 책이 더위에 막히듯 막히고 있다. 문외한을 자처하는 살림살이 책들을 보노라니, 잠깐 왔다갔다해도 마음에 짐들이다. 헤치우자.  

그리고 폴라니 

 

 

 

 

 

와 노신. 그리고 보니 더위에 주제가 무척이나 덥다 싶다.  말복이네요. 삼계탕이라도 드시죠. 전 점심때 동료들과 함께... ... 맛나게 드시길. 이크 챙기지도 못했네. 

 뱀발. 아***  경제세미나 준비커리들이기도 한데 먼저 맛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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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비가 잣다. 장대비도 아닌 것이 그래도 많은 양을 흩뿌리고 사라진다. 내리는 빗줄기를 이에 두고 우산없이 오간다. 몸이 독이 올라 입안도, 혀끝돌기도 아린다. 경제서적 몇권을 넣고아지트로 향한다. 그런데 오늘은 잡히는 책이 엉뚱하다. 지난번 한차례 본 이곳 땅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목포대 지방자치연구소에서 2003년, 2005년 2차례에 걸쳐 시민들의 의식과 사회운동 참여, 현안들에 대해 말이다. 물론 이곳은 많은 시민단체들1)이 있다. 활동의 흔적을 들여다보니 분야분야별로 광역시 단위의 꺼리들이 논의되고 진척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일반시민의 요구는 경제의 활성화로 전도되어 있다. 바라보는 의식도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과 연대로 이어진 경제의 활성화가 아닌 듯 싶다. 강한 형님-아우의식은 묘하게 민주당의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근대를 살리려는 노력이나 사라진 흔적때문에 애를 먹고 있으며, 기껏 살리려는 근대가 목포의 눈물같은 상혼의 촉수가 버무려져 있다. 땅이름의 연원2)에 대해 최근에 발간된 책도, 목포에 대한 이름하나에도 일제의 흔적과 매도, 여러가지 설이 최근에서야 논문을 통해 정리된 듯 싶다. 어쩌면 그대로 경제의 활성화를 제일로 삼는 먼지같은 의식에 덮혀 벗겨지지도, 설령 벗겨지더라도 또 다시 경제제일주의로 발라져 아무런 연계성이 없을 듯 싶다. 또 다시 역사는 역사의 뒤켠으로, 문화는 문화만은 자리로, 삶의 흔적은 오도가도 하지 않은 채, 돈의 분칠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마을만들기 등 작은 시도가 이어지나 사회단체의 고질적 문제제기는 여전히 명망가 중심이다. 원하는 것, 채워주고 싶은 것의 간극은 여전하고, 원하는 것의 다양성은 차단되어있다. 자원활동이라는 것도 여전히 몸쓰는 것에 대한 것이나 봉사란 장벽에 멈춰있다. 시민의식과 명망가, 다양한 시도는 버무려지거나 섞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위한 열림도 부족하다란 자체 비판은 이 땅 다른 지역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충청에 김갑순이 있다면, 거의 유사한 인물 정병조3)가 이곳에 있다. 부동산투기의 1호이자 권력욕은 일제를 대상으로 섬은 물론이며 유달산을 세번이나 팔아먹었다 할 정도로 간이 컸다한다. 재산욕과 권력욕은 어찌나 그렇게 행보가 똑같은 것인지 의아스럽기까지 한다. 아직까지도 그의 후손에 의해 재산권이 보장되고 있다한다. 1920-30년대 사회운동에 관심을 둔다면 김철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과 현해탄에서 자살한 젊은 오빠 김우진의 동생이다. 그리고 빨치산 화가 양수아, 박석규를 비롯한 이곳의 화맥에 대해서도 관심가져볼 만하다. 최초의 여류소설가 박화성의 작품을 비롯해서 근대를 꼽씹어보는 것 또한 지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근거가 아닐까 싶다.

1) 목포경실련, 목포ymca, 목포ywca, 소비자연맹목포지부,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목포여성의전화,목포지방자치시민연대,목포환경운동연합,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목포문화연대, 목포민예총, 전교조지부. 금속노조 

뱀발. 지역사회단체이름은 메모를 해두었는데 메모수첩이 없어 정확치 않다. 며칠전 올린 온금동(다순구미)은 중급규모의 선채가 진도 조도에서 생활의 어려움으로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한다. 그리고 정병조는 아들을 국회의원을 시키려했고(정병소), 일본 총독에게 금명함을 뿌렸다는 설도 있다. 어찌 김갑순(유성호텔..충남도청....공주...)과 유사한지 모르겠다. 목포문화연대에서 집필한 땅이름에 관한 책은 찾을 수가 없다. 목포근대역사에 대해서는 목포KYC남도문화사업단 홈피를 참조하시면 조금 도움이 될 듯.cafe.naver.com/mpkyc 

목포문화원이 자료가 더 많군요. 홈피 참조 0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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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하동과 남도자락을 다니다 보면 배롱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곳들이 있다. 하지만 흐드러지도록 만개를 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어제 점심먹으로 갔다오는 길.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장면을 목도한다. 이렇게 분홍과 붉음으로 폭열을 할 수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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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철거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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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박이틀을 가미한 30분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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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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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챙기지 못한 사진들이 남다. 1. 이곳엔 멋진 철거민탑. 정겹고 탑들도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여 보기에 마음이 든다. 주변 춘란(중,일,한)과 란과 자생식물을 구경할 수 있다. 2. 미녀와 야수??!! 막걸리집 주인장이 분위기 너무 좋아 같이하고 싶다는 말을 뒤로 한채, 우리의 전사는 취기에 어지럼이다. 저기 기차가 올 무렵 아*** 간사님이 야수? 사이 아무도 앉지 않는데 대비가 무척이나.....그리고 또 한분 무박이틀의 여독을 참지못하고 잠시 취침중이다. 3. 어젠 가벼운 달림을 해주다. 접힌 안쪽엔 갈매기들이 앉아있는데 솟대가 따로 없다 싶다. 계요등인줄 알고 가보니 다른 꽃이다. 별잎에별꽃. 그럼 별잎별꽃이라할까? 이름이 궁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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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똑바로 뜨고 본다는 것

1. 앎이란 싸움용이 아니라  거미줄같은 그물촉이다. 승전의 효과를 보려면 각진 앎과 싸움용 화살이 풍부해야한다. 순간의 선택이 당장을 좌우하므로 예민하고 적절한 앎의 구사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못지 않는 정확성과 수사력도 동원해야 되리다. 하지만 변변치 못한 앎, 갈수록 희미해지고 엷어지는 앎이 두렵기도 하다. 하나 하나 그물촉을 만드는 일, 실낱같은 아지랭이 같은 것들이 조금 조금 희미함을 넘어서는 일들. 앎을 가두지 않고 열어두는 일. 쌈닭의 쇳줄같은 강인한 용도의 앎과 진함이 싫다. 그럴수록 약한 자의 변명같지만 앎을 막지 않고 열어두는 일. 가급적 점선으로 배치하는 일. 뒤돌아서서 잊을 지라도 다시금 만나면 실가닥을 진하게 하는 일. 저쪽과 신호를 보내고 있는 일.

2. 아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 부족분을 담기위해 앎이 강직해진다. 앎을 끌어대야 하므로, 고갈이된 앎이란 더욱 딱딱해져야 한다. 그래서 그 앎들이란 화살촉이 되고, 다른 앎은 섞여서 되살아나지 않고 소진하게 된다. 앎은 그 순간부터 본색을 보이며 돌진한다. 그 앎은 여유가 없어지고 다른 앎들과 사교할 시간도 없다. 그 모래위의 작은 성은 모래바위의 휩쓸림에 여지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또 작은 성을 찾아나선다. 앎소매상의 탄생은 그래서 부질없다. 만들 수 없는 빈약함과 만들어지지 않는 앎이란 그래서 험담투성이다.

3. 앎이 두렵다. 앎을 넘어설 수 없으므로 앎에 포위된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앎이 나를 가둘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래도 앎이 희미하게 아지랑이 같이 저기를 비춰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으므로. 앎이 이렇게 마음을 채근하고 저미게 될지 몰랐으므로. 앎이 이렇게 철저히 내가 딛고 선 이 자리의 허위를 성토하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으므로. 그것이 그럴까. 몸의 절망과 유사한 것이라고, 삶의 절망과 유사한 것이라고. 그래도 그 절망을 끌고 가는 것에 비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뱀발. 두렵다. 책의 언저리에도 가지 않고 있다. 그가 서성거려 그 문의 초입에 들어서면 온전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자신만만 했는데 책의 초입부터 두다리가 후들거린다. 사립문을 잡을 용기가 서지 않는다. 지난 주말. 잠깐 깬시간을 빼고 서른여시간을 잤다. 잠을 자도 편치 않았지만, 몸도 편치 않았겠지만 기차안에서도, 돌아와 식사시간을 빼곤 잠에 취했다. 두려움인 것 같다. 용기를 내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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