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역 분향소를 다녀오다. 빗발이 얇은 듯 그친다. 서명하고 받아든 근조리본, 국화한송이. 기다리다 어린아이 둘. 가족과 나란히 서서 분향하다. 지역방송사가 인동초의 삶과 꿈이란 대형화면 방영을 하고  취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가고 오는 길. 시집의 행간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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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릅시다]

1.

일터일을 마친 뒤 선술집에서 한잔하며 분위기가 익으면,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되지 않은 일이 있으면 일의 틈사이 배후로 들어가 그 사람을 밀쳐내야 한다고 한다. 툭, 툭. 그렇게 벼랑으로 몰아내는 모의실험들을 한다.

2.

늘 주인이 되어 모의시험을 하는데, 그 [짜른다]라는 뿌리를 비집고 들어가다보면 살점을 뼈에서 발라내는 것처럼 고민의 경중을 확인한 것 같지 않다. 그저 몸에 붙어 세상의 지표처럼 눈에 들지 않는 모든 것을 모아 그것으로 색칠하지 않나싶다.

3.

그렇게 되면 해결될까? 그 흥건한 피투성이로 일터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줄 생각이나 해본 적 있을까? 그 피로인해 더 쳇바퀴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늘 생기는 문제의 벼랑끝에 서서 겨우 생각한다는 것이 앞에 상대를 두고 칼을 겨누는 것 밖에 없다. 내 차례는 영원히 오지 않을 듯 서슴없이 짜른다라는 표현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다.

4.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의 빈도는 서로에게 향해 있으므로, 그 시선에 짜릅시다라는 시선이 동시에 겹쳐 겨눠져 있으므로, 당신들은 서로 한번도 예외가 되어본 적이 없다. 예외가 될 수 없다. 십중팔구 총은 서로에게 겨누어져 있고, 로또의 심리처럼 나는 아닐 것이다라구 그 팍팍한 현실의 시루를 비켜서려 할 뿐이다.

5.

[짜릅시다]는 잠복근무 중이다. 언제 어디서 불심검문을 할지 모른다. 신분증을 내어 보시죠.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지 불심검문을 한다. 불심검문엔 우열이 없다. 모두가 경찰이다. 어쩌다 이런 생활신화가 생활신조가 탄생한지 모르겠지만, 시뻘건 피를 뚝 뚝 흘리며 숨소리 가득한 곳이면 어김없이 횡행한다.

6.

[짜릅시다]를 몰아내지 않으면, 쳐부수지 않고 내몸에 네몸에 덕지덕지 붙어 꿈과 일상에 늘 점거시위를 하고 있는 그녀석을 발라내지 않으면,

7.

그 일터란 곳이 노약자도 약자도 장애우도 없는 순수혈통 경쟁자만 득실거리는 야생정글로 만들어가는 이유로 당신이 잡아먹힐 확율도 더 높아지고, 정글에 수명이 짧아질 뿐, 또 다른 포획자에게 당신을 넘겨야 한다.

8.

[짜릅시다]의 칼날끝에 당신이 겨눈 그 창끝끝엔 늙은 노모와 멸시와 천대를 받는 장애우와 먹여살릴 식솔이 칭칭 붙어있다. 당신이 얼마나 그 삶에 붙어있는 뼈와 근육사이의 관계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불감인지. 그 불감의 살점덩어리를 보라.

9.

당신이 무심코 던진 그 칼끝에 그 사람이 삶이 맺고 있던 칡넝쿨같은 뿌리들이, 그 자양분으로 삶을 꾸려가던, 사회를 만들어 가던 꽃들이 시들어지고 떨어지는지 상상해야 한다.

10.

당신이 던진, 내가 던지 그 비수로 오늘도 얼마나 많은 이가 신음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이상 , 늘 삶의 단두대에 처분한 이력으로 인해, 당신은 온몸엔, 나의 온몸엔 살육의 문신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1.

돈 한점의 무게와 그 삶 한점, 그(녀)가 뿌리내리는 사회속의 한점의 무게를 달면 늘 돈 한점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현실감각이 무지에 가까운지도 아파해야 한다.

12.

자르고 자르고 자르면 자를수록 서서히 당신도 당신의 식구도 잘리고 잘리고 잘린다는 사실의 눈도 볼 수 없는 당신의 우매함과 세뇌로 인한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공산당이 싫어요 처럼, 빨갱이라는 색칠을 한 수위를 넘어 당신의 일상을 연좌시위하고 있는 당신의 마음 속을 몸 속을 손발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 때를 벗겨내야 한다.

13.

[짜릅시다], 자본의 나팔수가 되어 저자거리를 선동하고 있다. 저 무시무시한 구호를 수감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 속에 당신의 몸 속에 검거해서 폐기처분해야 한다. 재활용이 아니라 소각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충실한 나팔수가 되어 또 다시 당신의 머리 속을 점거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뇌해내어 또 다른 녀석을 제조해내어 당신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돈한점의 무게때문에 당신은 사라져야 한다고 총을 겨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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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간

   
 

-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160쪽  


- 학대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어요. 신체적 학대, 즉 폭력이 대표적이고. 성적 학대, 감정적 학대. 그리고....방치.... 방치가 있죠. 말하자면 배고플 때 밥을 안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할 때 갈아주지 않고, 안아주어야 할 때 전혀 신체적 접촉을 해주지 않는.....그리고 감정적인 학대.....말하자면 싸늘하게 대하는 거, 사랑을 주지 않는 거.....다  학대예요.... 170쪽

-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크로포트킨

-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248쪽

 
   


요약.

아무것도 아니야=아는 것 < 깨닫는 것 <-- 아픔 <--바라봐야 - 느껴야 - 이해 <= 연민 <--이해 <-- 관심 = 사랑 <---> 모른다. 그건 난 몰라. 

뱀발.  

누가 땡쓰투를 했길래 어떤 것인가 보니 새롭다. 벌써 그 위에 덧칠이 되어 나의 흔적이 낯설다. 메모를 찬찬히 보다나니 도식이 그려지고 몇가지 생각이 겹친다. 안다고 하지만 깨닫지 못한다. 단 한번도 단단한 알밖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일터도 그렇고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과거을 얼려놓고 그 추억속에 사는 것 같다. 그들을 만나면 만날 삶의 경계도 사는 것도 어느 것 하나 겹치기가 요원하다. 그 요원함은 활동을 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조금은 낫지만 얼음처럼 차거워진 추억이나 불꽃같은 삶을 얼려놓고 그 근거에 연신 뿌리를 붙이려 노력할 뿐이다. 아는 것은 점점 많아질지 모르지만 그 경계를 서성거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부단히 그 틀을 깨려고, 그 알에서 깨어나길 고대하던 불면의 밤과 고민들도 그(녀)를 녹이지 못했다. 잠시 아파하는 듯하지만 어김없이 아침이 되면 그 자리로 돌아가곤 한다. 취중은 자신을 알아달라는 연민을 팔지만, 정작 고민이나 이해를, 관심을 스스로 위무하는데 쓸 뿐 깨닫는데는 쓰질 않는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나는 나를 모른다고 할 뿐이었다. 그(녀)의 경계밖을 나서고 있음에도 나는 아니야. "나는 우물안이 편해"하고 다시 들어갈 뿐인 것이다. 

나르시즘의 포로가 되어, 얼마나 이해하려하고 연민을 갖고 바라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그 아픔을 옳게 깨닫는데 쓰지 못하는 아둔함이란. 

이런 생각들이 빵 한조각으로 싸울 때 다른 여유가진 자의 고상한 사치라고 하면 달게 받겠다. 하지만 사치는 나의 것이지, 깨달음을 가져가는 것은 너의 것이므로 별개의 문제다. 나의 사치가 당신이 앎을 넘어서는 것 하고 별개의 것이고, 정작 별개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사치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되새김하며 정작 걸리는 대목은  " 감정적인 학대, 싸늘하게 대하는 거, 사랑을 주지 않는 거 다 학대예요."에선 정말 내 문제로 뜨끔거리는 것이다. 사치도 아니고 정말 그런 것이 아닌지 섬뜩해지는 것이다. 나는 싸늘한 학대를 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가 붉어지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정작 하려던 말. 나는 모른다. [몰라]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나를 칭칭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고 싶어 회피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결국 깨닫는 것은 내문제로 다가서는 것이다. 관심갖고 이해하고 연민, 아파하는 고리를 밟지 않으면 그 껍찔을 깰 수 없다는 점이다.  

뱀발 둘. 조금이라도 책 사신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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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마지막 만남이 될지 몰라. 쓴 흔적이 왜 이리 후회가 되는지. 하의도 다녀오는 길. 목포에서 만남. 그 정정하던 눈빛은 서울 청춘의 선거유세 만남과 같이 또렷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접어야 하나. 후배의 문자로 소식을 접한 뒤 답답하다. 엊그제 한해에 두분의 대통령을 보낼 수 있다는 농담아닌 농담들이 현실로 되는 것도 그렇구. 짧은 정치책임자들에 과도한 기대를 투사하는 일. 그 짓만 숱하게 해온 마음들이 속절없이 작아보인다. 삶과 마음, 아픔으로 가져가 서로 모으지 못한다면 그렇게 가슴 아파할 나날들만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닐까. 먹먹하고 답답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쓴 오월의 기억이 가기도 전에 가을이 다가서기에 앞서 이렇게 생전의 모습을 되새기게 되다니.  더 반갑게 인사라도 해줄 것을.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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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08-18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814 상가가 있어 조금 일찍 올라오다. 동행이 있어 표를 끊어주었더니 무화과를 한가득 건네주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올라오다나니 해가 찌를 듯 익는다. 짐도있고 가게에 들어가 잔돈을 바꾸려 일회용면도기를 한다스 집어들었더니 천냥이다. 아주머니가 무화과상자를 보신듯 말을 건네, 무화과를 맛보라고 드렸더니 함박웃음이다. [맨정신은 말못해] 모임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지난주의 업보도 있고, 곧이어질 번개선약도 있는지라 무화과만 챙기고 사무실을 나선다. 해는 이즐어져 있다. 

동동주에 저녁 한점. 아이들은 자전거 엠티. 그렇게 나누다가 일년만에 귀국한 멤버.(개*** 그룹으로 울타리짓고 있다.) 생각도, 이야기도 나누고 간간이 만남의 횟수는 누적되어가지만 왜 몇년전으로 정지해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깊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머리 속-느낌들만 변하지 않게 방부처리한 것일까? 몸이나 새로운 삶이나 고민을 번지는 힘, 서로를 물들이지 못한다. 그대로 서로의 경계는 선명한 듯. 삶의 교집합이나 접촉점은 고민의 힘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향수를 되먹고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텐데. 위로받을 수도 있지만 몸도 마음도 주춤거리고 한발짝도 다른 곳으로 딛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러고보니 뉴스에 언듯 창당소식이 들리는 듯하다. 비치는 불빛만 보려할 뿐 고개를 들어 무수히 쏟아졌던 쏟아지는 불빛은 정말 보려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0815 오랜만이라. 아*** 청소년 모꼬지를 느지막히 친구를 볼 겸 찾아간다. 프로그램없이 내하고싶은 것 하기란다. 녀석들은 만화책을 잔뜩빌려가더니 나오질 않고, 각기 각각의 장소에서 삼매에 빠져있다. 주최측도 말이다. 오기전 벌써 한차례 공연이 있었다는데, 식사뒤 주인장의 공연이 되자 앞서 몇몇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빼거나 주춤거리는 것이 없는, 표현하는 것의 경계도 없는 듯 글도 말도 노래도 자연스럽다. 모닥불피우고 흘러나오는 노래가 불빛과 별빛에 흐른다 싶다. 깔깔거리고 호호거리고 감자며 옥수수며 게임에 별은 총총스며들고 달은 솟아오른다. [달이 차오른다]란 장기하노래데뷔도 어른거린다. 아침 봉숭아와 개망초...넝쿨....들 그림첩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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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6 저녁 참*회의가 잡혔다. 홍**님 답문자도 오고 회의 끝날 무렵 만나면 되겠다 싶은데.- 주말 동네 SSM입점 반대 대책위 경과를 건네 듣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동네 활*가들의 영향이 외롭게 함께해있다. 성명도 홍보도 대책도 그들의 몫이 컸다. 주부들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행정명령이 나더라도 승산이 미미할텐데. 소비자의 선택권만 주장하는 얄팍함을 뚫고 넘어설 수 있을까? 간담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다 섞이지 않고 턱을 넘다말다한다. 밤은 이슥해지고 정작 만나려는 친구는 먼저가고 애꿎은 나만 마지막을 나누었다. 강물을 어김없이 흘러가는데 때를 쥐어잡지 못한다. 이번에도 여전히 실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대책위의 몫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동네촛불의 모둠만으로 큰강물에 쓸려내려가는 것은 아닐까? 쓸려내려가고 단돈 십원싼 편리가 나에게 움켜쥐어지므로 '몰라라'가 동네를 배회하고 있다. 장마비를 저기 아파트 산위에서 구경들 하고 있다. 떠내려가는 돼지를 잡으려하고 있고... ... 아~~!!! 

-참* 회의다. - 어제 그만한 시간. 사람생각이 오른다. 다음날이라도 만나고 싶은가보다. 강주성님 이야기도 듣고, 편하게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 좋을 듯한데, 사람이 여럿이라 아쉽기만 하다. 회의도 조금 늦어지고, 사실 참* 고민에 나날이 생각을 무척이나 많이 담그고 있다. 생각만, 머리에 있는 것만 되는 것이 모임이 아니라 몸으로 서로를 품는 만큼, 단체끼리 점을 선으로 만드려는 몸의 연대만이 겨우 머리의 연대를 가슴이나 손과 발로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만 납덩이처럼 무거워진다. 마음도 의욕도 사라진 친구를 너무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역할이 바뀌지 않으면, 관계가 너무 눅눅해지고 지리해지는 것 같아 더위만큼 고문인 듯 싶기도 하다. 

새벽. 어둠은 창문밖에서 점점 산과 논이 넓어지며 환하다. 서*로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니 제법 운전이 느긋하게 전세내어 타는 듯한 기분도 괜찮다. 모처럼 광*코스를 밟아보았는데 역시 도시에 다가서자 마자 호흡이 막힌다. 왜 이리로 왔는지 싶다.- 낮에 조금 졸다.- 한바퀴 바닷내음 적시는 산책을 마치고 흔적 남긴다. 음 그리고 무화과의 동선은 결국 저기 나무카페까지 갔다. 가을 새벽 이슬이 내릴때 잠많던 누이도 먼저 일어나 따먹는다는 그 무화과의 맛을 한* 사람은 전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3년을 꾸준히 복용한다면 효과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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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1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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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14: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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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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