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수성의 혁명]: 시대로 인해 자신의 글이 빛났다고 한다. 전혀 다른 시대를 만났다면 이상한 개인주의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외삼촌과 형님부근의 감수성에 대한 궁금증은 묘하게 다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고, 나름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이 책으로 인해 조각나 있던 인상들의 흐름들이 생긴다 싶다. 물론 나에 대한 부분도 그러하다. '한글세대'-소설,라디오,영화, 텔레비전,주간지,여성지의 등장과 대중이 생성되는 시기는 서울의 증폭과 맞물려있다. 250만에서 500만이 되는데 불과 10년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 끌어오르는 60년대의 시작은 이 젊은이들에게 김지하와 김수영과 김승옥이 겹친다. 김수영을 거꾸로 올라가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4.19와 김지하와 시대의 상황과 암울은 다른 경로를 걷게 만든다. 신경숙님을 매혹하게 만든 [무진기행], [1964년 10월...]의 단편들이 보고싶다. 그래서 아*** 도서관을 들러 [사상계] 원본을 보려한다. 좀더 색다르게 그 시대와 삼촌의 시대를 느껴보고 싶다. 바짝 건조하고 타들어가는 이념의 앙상한 뼈만 남은 80년대와 많이 다르다. 문사철이 그래도 대학생 10만 이하의 상아탑은 무엇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던 시대다. 꼼지락거리던 마음들과 고민을 만날 수 있다면 조금은 풍부해질 수도 있다는 어리석은 계산이기도 하다. 늘 고전을 강독하지 못한 존재로서 건조함과 부족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나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2. 

성철스님의 백여일 강연록을 녹취 및 학문적 고증을 거쳐 수십년만에 완성한 책이라 한다. 강연을 하고 계신 무애거사님이 강연비를 털어 수강생들에게 배부한 책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피시에 온라인하기에 앞서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는 책이다. 일전 모대표님이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인도를 거쳐온 장소와 시간을 버티어낸 내력의 스케일은 형언할 수 없을 조차이다. 서양학문의 건조증에 비하면 보고있는 광활하다. 이분법에 손쉽게 바래는 학문과 철학의 근거에 대면 삼분을 넘어선 광분이나 기껏 오감의 회복을 바라는 서양학문의 흐름에 비해 세밀하고 광활하다. 역사적맥락 아래서 읽는 것이나 따로 세세히 읽어내는 것이나 흐름을 잡기에 좋다. 진작 볼 수 있었다면 단편적인 조각으로 덜 헛갈려했을 것이다. 좀더 세세히 강독하기로 마음먹는다. 오늘 종강의 기운이나 단편적인 앎에 대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강연 말미를 참관하려 한다. 떨어져 있는 것이 아쉬움이 묻혀나는 것은 이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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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제도 일터손님으로 인해 저녁을 함께 한다. 한 술하는지라 피곤하지만서도. 어려운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원칙과 친화력은 늘 대단하다. 너무 위계에 서열을 매기는 일상이 늘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스쳐 지나간 해를 돌이켜보면 내려다보려는 오만으로 인해, 생동하거나 풍부함을 보지 못하고 알 수 없던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자주든다. 그래서 늘 배울 것은 한두가지가 아닌 듯 넓고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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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방 뜨자(作)
모임과 참여자의 공진화를 향한 발걸음(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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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걸리는 지점이 있다. 연緣의 그늘이 강하다보면 사私적인 것과 공公적인 것의 경계가 희미해져 그 구분을 못한다는 것이다. 내것, 네것, 기획아이디어가 발원된 곳에 대한 배려도 사라져 그것이 어느새 내것이 되어, 우리의 것으로 되고자 한 의도조차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한다. 소유의 개념이 없다는 것도 별반 좋은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뭉뚱그려 좋은일로 버무려지거나 [하면좋지]가 되어 좀더 세밀하게 구체화될 여유를 잃거나 조금 더 풍성해져 현실에 맛날 기회가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사私적이란 것은 모둠도 모임도 마찬가지다. 우리모임私에 집착해서 공공재로 올라온 안건들도 모임의 사私적 소유로 그쳐, 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맥을 끊기게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여러번 느끼는 것이지만 [수면위로 올라오려는 것]에 대한 임신, 알을 품는 노력이 중요한데 반복되는 것을 보니 늘 올라오기만 하면 처리하는 습속만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2. 

그러니 기획도 어느 개인의 것이 되고 나-너의 것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조급증까지 버무려지니 일인들 제대로 되겠는지 의심스럽다. [수면위로 올라오려는 것]은 대부분 현실적응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냥 하면되기도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품어야 한다. 의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시간에 약하고 쫓기는 모습이 비일비재한데, 그 습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별반 달라질 일이 없다. 기껏 비대위나 준비위로 꾸려지는 것에 게으름까지 더해져 또다시 성질급한 몇몇의 기획으로 그치는 것이 비참에 일조한다.

3. 

[수면위로 올라오려는 것]은 서로 눈치를 볼 것 없이 마음으로 채어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르게 품을 수 있는가이다. 다른 친구보다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사유를 전개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한번은 데리다처럼 끈질기게 명사 사이를 해부해보는 것도 필요하며, 한번은 집행하는 입장에서, 한번은 한국화를 보는 것처럼 입체감있게 보려는 것도, 또 한번은 원근법의 소실점을 달리해보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한번은 처절히 몸의 기억으로 반추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아주 조금 논의가 제법 생동감이 있고, 미처 볼 수 없었던 다른 시각에서 [수면위로 올라오려는 것]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보고 아주 조금 출산의 기미가 보일 수 있는 것이다.


4.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퇴행이다. 어쩌면 더 큰 퇴행을 온몸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다익선. 좋은 일은 많으면 좋긴하지만서도 정말 좋기만 한 일인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모임들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교육을 하고 기획을 하곤 하지만, 기획이 왜 필요한가? 기획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교육에만 관심이 몰려있을 뿐, 근저에 있는 물음에 대해선, 어떤 물음을 공유해야하는지 부족해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5. 

[고민]을 좀더 오래, 새롭게 하고 싶다면 [수면위로 올라오려는 것]에 제발 딴지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발의자를 넘어서고 혼자만의 기획을 넘어설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그거좋네]로 받아들이지 말고, 온몸의 기억을 반추해서 다르게 틀어야 한다. 그래서야 비로소 나의 기획을 넘어 겨우 너-나의 기획으로 접어들 수 있다. [고민]을 낚아채지 못한다면 회원당신들도 영원히 대행업소의 대행병에 걸려 아주 작은 고민조차 행동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집행하는 일만, 색깔없는 같은 색의 일만 처리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6.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우리가 왜하는거지? 왜 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도 없고, 그 물음에 대한 공유도 없는 것이 실*자 연대의 시류가 아닌가 한다. 지역 흐름의 모임동선을 보다보면, 겉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크지만. 보태는 것이 보태지 않는 것보다 고민되게 하겠기에.


뱀발. 먼댓글을 이어봅니다. 벌써 한해가 지난 일이군요.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위안을 삼아보지만, 나란 우물은 우리의 우물은 여전히 깊고 좁은 것은 아닐까 합니다. 우물밖을 나서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여전히 우물 안을 오르고 있고, 생각도 맴돌고 있다는 의혹이 듭니다. 아니 봉우리를 오르고 있나요. 한틈 쉬어갈까요. 너무 바쁜 듯이 올라왔는지도 모르겠군요. 쉬엄쉬엄 쉬멍오르멍 해야겠네요. 마음은 상하지 마시고, 땀 좀 식히면서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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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9 23: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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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0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웃니 미

1. 

뉴욕의 부러울 것이 없는 엘리트들은 일주일에 이삼일 정신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자아에 대한 심리상담과 치료를 함께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내기 힘들다 한다. 물론 진료비는 작은 액수가 아니란다. 의사의 스케쥴에 맞춰 휴가도 간단다.

2. 

예술을 하는 사람은 순수해야 한다고 한다. 순수병에 걸린 이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왜 예술을 하는지조차 순수하게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순진이 무지몽매를 낳은 것이다.

3. 

텔레비전은 말한다. 국회활동하는 정치인이 순수하지 못하게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정치인이 정치를 하지 말라는 소리인지 순수가 정치를 납치한 것인지 모르겠다.

4. 

원하는 것을 얻고나면 공허해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기껏 원하는 것이 돈이나 사랑이나 로또같은 유행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돈만 사랑만 로또만이기때문에 더욱 문제다. 그렇게 유행만 원하기에 돈도 사랑도 로또도 얻을 수 없다. 쾌락은 부나비처럼 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파내야만 흘러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래를 담보잡혀 그들 사이엔 불행하다는 공통점밖엔 없다.

5. 

학문하는 사람은 말한다. 그것은 제 전공이 아니기에 감히 말씀드릴 수 없다고, 아니면 아는 것이 없다고, 겸손인지 겸양인지 무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학문했다는 사실은 기껏 처세나 존재의 근거를 확신시켜줄 뿐 문턱만 넘어서면 모르지가 된다.학교만 넘어서면 그 잔뿌리는 흔적조차 사라진다.

6. 

기초의원도 단체장도 국회의원도 공무원들도 모두 성장해야 한다고 한다. 돈되게 하지 못하면 표떨어지므로 그 문턱을 넘을 수 없다. 표심을 잡고 발전하려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탐해야 한다. 어느새 신파의 딜레마에 빠졌는데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상인도 동네도 지역도 더 성장해야 내몫이 많아진다는 행복은 충족될 수 없다. 쓴맛이 얼마나 당신주위를 점거했는지 냉정해지지 않는 이상.

7. 

경제인들은 이야기한다. 돈을 수중에 넣게 된 것은 모두 내가 잘해서 된 것이라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아이디어에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룰을 만든 것은, 그 룰 가운데 하나만 삐걱거렸어도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룰마저 갈아치우자고 한다. 버릇이 없는 것은 그 룰이 아니라 룰도 지키지 않는 파렴치한 근성이다. 그 근성때문에 사회공헌이란 마음이 싹튼다는 것은 어렵다. 마음에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기때문이다.

그런데 더 더욱 허탈한 것은 남의 눈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 눈은 그 파렴치한의 돈이 마치 제것인냥 부러워만 한다는 것이다.

8. 

사람들은 제 발딛는 곳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책도 읽지 않지만 나쁜 신문은 열독하며, 열마디 가운데 아홉마디를 돈만 이야기하므로 늘 현실이란 문화는 그 모양 그 꼴이다. 아마 열에 아홉은 문화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저 지껄여보는 소리다.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 수수방관자일 뿐이다. 고루하다는 욕을 쳐먹지 않는 이상 뜨끔거리지도 않는다.

9. 

아이를 키우다보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애지중지는 희석이 되기 마련이다. 과잉기대가 너나들이로 바뀌는데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따지고 보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애지중지했기 때문이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새끼가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한명의 사회인으로 대접을 할 생각이 없고 소유만 하려하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어차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해보는 연습과 사회인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상, 자식은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과잉투사를 감당할 수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몸을 가지고 있지 부모의 몸과 경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땅의 부모들이 자식의 삶을 대신살려고 아둥바둥거리는 이상.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질 않는다.


10. 

공공연히 부모가 빨리돌아가시길 바라는 놈들을 본다. 공공연히 물려받을 돈때문이다. 그리고 돈을 움켜쥐어야 자식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출처나 재산을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그런데 더 끔직한 일은 제 처자식은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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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해둔 코스로 가다. 산책 겸 가다 소화도 되고 몸도 가벼워져 달림을 하다보니 불빛도 달빛도 곱다. 달님은 어제보다 살이 올라 칠석으로 향한다. 4k 부*산 산책로는 샘이 날 정도로 좋다. 돌아와 나머지를 보다. 120' 12k

  

 

 

 

 

 

 

 

 어제 프레시안 기사가 눈에 띄어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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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2. 중간 모임이야기도 있는데, 그 생각이 책의 흔적에 묘하게 겹치게 된다. 미묘한 문제들이긴 하지만 참 다르다 싶다. 다름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남자의 시선이기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생각이 하나같지 않은 뿐만 아니라... 

3. 국장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천천히 생각을 모아보기로 한다. 60-70년대에 겪은 것이 아니라 다시보는 것도 필요한 듯싶다. 영자의 전성시대와 그 이전, 오발탄....대학생에 대한 변화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듯싶다. 접힌 내용은 내일 좀더 보태고 다시 갈피를 잡아놓을 참이다. 밤이 많이 이슥하다. 

blog.ohmynews.com/booking/rmfdurrl/240014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택이나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생각해놓지 않으면 안된다. 정작 행위를 하게 될 때 그 행위의 여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선택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선택으로 인한 행위를 뒤덮으려는 합리화의 나락으로 급속히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선택으로 여러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미 몸은 반대편에 서있게 되는 경우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2. 궁극적인 선택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짓을 하고 있는가? - 인생의 주된 목적을 달성하게 되자마자 금방 슬픔과 허전함과 상실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모두가 가치 의식과 목적을 상실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31

Derek Parfit [이성과 인간 Reasons and Persons] - 아주 최근까지 윤리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종교적인 틀 안에서 수행되어 왔다. 비종교적인 사람으로서 윤리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온 사람은 놀랄 만큼 적다. 그런 인물로 부처, 공자, 데이비드 흄, 빅토리아 시대의 공리주의 철학자 Henry Sidgwick을 들 수 있다.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여러 신들에 대한 믿음이 도덕적 사유의 자유로운 발달을 저해해 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대단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은 그 자체가 아주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비종교적인 윤리학은 아주 초기상태에 있다. 따라서 윤리학에서는 수학과 같은 분야처럼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종교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윤리에 까지 확장시키는 경향이 있어, 윤리 영역을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시대에 중요한 도덕적 문제는 낙태나 동성애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가들은 이것을 물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말리아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가는 이때 보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우리들의 의무는 무엇인가...보다 개명한 기독교인들은 교회가 성(sex)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적인 과실이 다른 과실보다 '더 중요한'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는" 잘못을 범했다고 인정한다. 오히려 가난과 같은 보다 포괄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9

우리 시대를 주도하는 정치-경제적 모델은 시민이 자신의 사익을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생각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반성하지 않고 살아간다. 과거에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실패했다고 해서 가치가 우리의 삶에서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지 이론적인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동시에 윤리적인 실천도 동반돼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요구된다. 우리의 삶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대한 편협한 물질적 이해방식을 거부한다면, 보다 넓고 보다 중요한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함으로써 상호간의 신뢰감을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들도 유권자에게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정책보다는 근본적으로 나은 정책을 지지할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41

윤리와 자기이익

일반적인 윤리와 자기이익에 대한 생각은 윤리가 우리와 떨어져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우리의 이익에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런 생각은 의외로 문화 깊숙이 사고방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는 옳은 생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그른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을 약속한다. 그러나 보상과 처벌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두어 그것을 현세적인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현대 경제학 근저에도 물질적인 성공만을 진정한 성공인 양 방송하고 만들어버린다.


090822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이의 문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단 한번도 되묻지 않는다. 학생을 삶을 대신 사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만 생각할 뿐 그 울타리 밖은 안중에 없다. 그곳에서 개선의 여지나 또 다른 출발점이라 여기지 않는다. 또 다른 관계를 찾아나서기만 할뿐.( 여자들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상황에 대한 여성의 생각은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좌우된다. 277

마이더스의 손 - 황금으로 변해서 굶어죽었다.

칼뱅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종교와 일상 생활을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일상 업무를 보다 잘 수행하면 할수록, 신의 영광을 위해 보다 많은 일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윤리와 일상을 하나가 되게 만든다면, 삶의 가치나 선택이 다시 복권될 수 있을 여지가 있는가? 회자될 수 있는가? 삶이 좀더 가치로 나올 수 있는가?)

윤리적인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는 내 친구의 이익뿐만 아니라 내 적의 이익도, 내 가족의 이익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의 이익도 고려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의 이익과 선호를 완전히 고려하고 나서도 행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 중 그 행위가 가장 좋은 것이라는 판단이 들 경우에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세계를 보다 총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273-4

윤리의 최고 원리를 공유하는 두 집단간의 이견이 아니라, 윤리적인 원리에 헌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투쟁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돈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평한 배려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며 후자는 자기 자신의 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347

윤리를 정치보다 우선시 할 경우, 사람들은 누구를 이해 투표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길 원하는지에 따라 평가되기보다는 지금 당장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당신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자원 배분 상태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리고 당신이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윤리적인 삶은 사는 것은 단지 올바른 태도를 갖고 올바른 견해를 표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348-9 
 
 -----------------------------------------------------------------------------------

부모가 남의 아이보다 자기 아이를 더 사랑하며, 따라서 남의 사정을 살피기 전에 자기 아이의 서정을 살피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다(- 내새끼를 사랑하기 마련이다-)는 점을 도외시한 책임의 원칙은 널리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가 남의 기초적인 어려움을 외면하면서 자기 아이에게 사치품을 사주는 일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 이상적인 부모가 되는 일과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일 사이에는 절실하고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

가르치는 학생의 부모가 매년 고액을 들여 명문대에 다니도록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만한 돈을 들여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일은, 그것이 자녀의 이익만이 아니라 미래사회의 이익을 위한 투자일 때에만 정당화된다고 대답한다.

우리 대부분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 특히 자식에 대한 의무를 가장 우선시한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옳은 행동으로 보인다. 신장 기증으로 죽을 확율은 4천분의 1인 신장기증하는 크라빈스키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가족을 신성시하는 것은 모든 욕망과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내가 담배회사에서 일하는 건 돈이 좋아서야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죠.' '잘 알겠지만,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하기 싫어. 하지만 애들을 돌봐야 한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게 그런 식으로 변명되죠" 신장을 그대로 갖고 있는 일은 남의 생명보다 자신의 생명을  4천 배 더 중시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부분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칭찬을 받거나, 못된 일을 하고 비난을 받거나 둘 중 하나라고만 여긴다. 그러나 윤리적인 삶은 그보다는 더 미묘하다...공공의 도덕 코드에 맞춰 행동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 이상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윤리 문화를 일굴 필요가 있다.

국제공정분배 fair share international  5.10.5.10(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 장애인들을 위해 연 총소득의 5퍼센트를 기부한다.
- 환경적으로 유해한 소비를 매년 10퍼센트씩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때까지 한다.
- 소속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시간의 5퍼센트를 쓴다
- 매년 최소한 10차례씩 민주주의적 정치 활동을 한다. 가령 자신의 지역구 의원과 접촉하는 일 등.

자선의 황금 사다리 golden ladder of charity - maimondides

(1) 가장 낮은 차원의 자선은 [망설이면서 주는 것]
(2) 즐거운 마음으로 주지만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의 필요에 적당한 만큼 주지 않는 것
(3) 적당량을 즐겁게 주지만, 요청했을 때만 주는 것
(4) 적당량을 즐겁게 아무런 요청이 없어도 주지만, 선물을 가난한 사람의 손에 쥐여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
(5) 선물을 주된 자신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반면 받는 사람은 누가 자신을 도와주는지 아는 경우
(6) 주는 사람은 누가 도움을 받는지 알지만 도움 받는 사람은 누가 돕는지 모르는 경우
(7) 선물을 주되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누가 누구를 돕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
(8)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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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ing)
    from 木筆 2009-09-01 17:35 
    >> 접힌 부분 펼치기 >>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