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톡!)--


1) 현대의 국가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곳에서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 관계들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 부르주아 계급은 상전의 지위를 타고난 이들에게 사람들을 묶어놓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뜯어 버렸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거벗은 이해관계와 냉혹한 "현금계산" 외에는 아무런 끈도 남겨놓지 않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경건한 광신, 기사의 열광, 속물적 감상의 신성한 전율을 2) 이해타산이라고 하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에 빠뜨려 버렸다. 부르주아 계급은 인격적 존엄성을 교환가치로 해소시켜 버렸으며, 문서로 인증되고 정당하게 얻어진 자유를 단 하나의 3) 양심없는 상업적 자유로 바꾸어 놓았다. 한마디로 부르주아 계급은 종교적 정치적 환상 속에 숨어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건조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지금까지 존경받았고 사람들이 경건하게 바라보던 모든 활동에서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 계급은 의사, 법률가, 시인, 학자를 4)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

5) 부르주아 계급은 가족관계에서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장막을 찢어 버리고 그것을 순전한 화폐관계로 환원시켰다. 11-13

[공산당선언] 이론과 실천, [꿈꿀 권리] 가스통 바슐라르,[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김산환
 

 

 

 

 

 


   
 

움직이는 물은 그 물 속에 꽃의 두근거림을 지니고 있다. 꽃 한송이가 더 피어나는 것만으로 냇물 전체가 술렁대는 것이다. 한그루의 갈대가 꼿꼿하게 서 있으면 그럴수록 잔물결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뒤얽혀 우거진 수련의 초록빛을 꿰뚫고 나온 저 생생한 물의 붓꽃, 그 놀랄 만한 승리를 화가는 곧장 우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붓꽃은 모든 칼을 빼어 잎사귀들을 날카롭게 세워서, 상처를 입힐 것 같은 아이러니 속에, 물결 위로 아주 높이 유황빛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있다.  - 붓꽃과 수련의 변증법, 수초의 변증법, 수직과 수평

 
   

 

뱀발.  지난 일요일, 이곳을 내려오는 길 [선언]이 책가방 속에 있는 것을 깜박하다. 뒤늦게 보기 시작해 좀더 시간을 늘려 읽다. 따로 메모할 길이 없어 오늘 반납할 겸 남긴다. 흔적을 남기다보니 저자의 읽기와 겹친다. 160년전의 흔적이 이렇게 명료할 수 없다. 아마 선언의 의미대로 수사가 날렵한 듯 싶은데 해석이 그다지 빨아들일 정도로 읽히지는 않는다.  수련에 대한 모네의 그림, 샤갈의 그림읽기, 고흐의 그림 읽기 등 옛날 책으로 읽어 그림도 조금 아쉬웠는데 책을 달다보니 신판이 열화당, 동문선에 모두 나와있다. 위 인용문은 수련 잎을 닦을 정도였던 모네의 수련정원의 묘사가 무척이나 깊숙하고 세밀하다. 샤갈에 대한 이야기보다 먼저 서있는 성서의 흔적의 손길을 쫓는 묘사도 그러하고... ...그리고 마지막 책은 해남 두륜산의 대흥사 가는길의 묘미. 이른 새벽길을 추천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대를 위한 변명

[이야기] 쳐다보는 것과 만든다는 것의 차이.-동심원이 퍼진다는 것. 동심원이 울려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맞는 것도 괜찮겠지만, 흘러가는 것보다 동심원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편하고 즐거울 수 있다. 물론 부담도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기적 출발이 아니라면 마음에 맞는 일들을 뭉쳐 물방울 한점 톡! 던져보는 것이 반향이나 파고, 저 맑은 물가의 되돌이킴이 보일지도 모르니 마음과 일들을 버무려 맑은 엑기스 토옥 던져보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 늘 시즌처럼 선거는 다가오고, 선거가 말로만 장이되고 뭐가되고 하니 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되지 않게하는 것인지 하나씩 지워나가는 일도 차일, 차차일을 기약한다면 꼭 해봐야 될 흔적들 일 것이다. 아프면 아플수록 상처는 커지겠지만 제대로 아물면, 그 상처를 기억한다면 되돌아가는 길을 설명하기 전에 아는 수도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090912


[백만원]의 연대가 할 수 있는 활동의 비교.-활동가 기금?마련. 활동가가 꽃피지 않으면 사회도 꽃필 수 없다. 활동가가 즐겁지 않으면 사회도 즐거울 수 없다. 활동가가 사유하지 않으면 사유
할 수 없다. 활동가들이 섞일 수 없다면 모임의 연대는 불가능하다. 활동가들이 품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사회는 아무것도 품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질문의 화두는 삶도 되고,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이 겹치게 할 수 있는가? 좀더 진중한 고민과 전망의 자리로 섞여야 된다. 면접의 질의응답이 꼼꼼하게 단체를 아우르는 시간과 꿈, 여건들이 점점 논의의 중심으로 오는 버릇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090912


[중년남자들] 불안-돈에 노출된 강박이 만드는 일상. [불안한 삶-돈이 해결할 수 있다]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은 다른 출구를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볼 수 있는 것은 제한된 시각안으로 침몰시킨다. 불안에 강요된 몸이 할 수 있는 것은 돈독이 올른 뱀의 혀와 기껏 이야기하는 화제의 주제가 골프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담보잡힌 아이의 교육과 과외, 팔 수 없는 집값이 허덕거림이 쳇바퀴처럼 삶을 담보잡힌 채, 그런 비참과 배부름을 동시에 배설하고만 마는 것이다.

[루저]- 엄친아, 양주에 차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양주맛의 감별에 차별이 다가선다. 철학에 무덤덤하지만 철학하는 이가 일상에 있다면 그 미묘한 차이때문에 흔들린다. 엄친아는 욕망의 반영일 뿐 그 이상이 아니란 현실을 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루저는 연대할 수 있는가? 경제단위가 없는 루저의 공간과 삶은 만들어질 수 없다. 철저히 살림살이에 예속되기 때문이다. 얇지만 만명의 루저가 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얇아 표시나지 않은 공간을 부풀릴 수 있다면, 가능성마저 없는 지방대의 현실은 인식의 바깥이고 부풀릴 현실의 표피마저 없는 날현실 그대로이다. 현실을 비참하게 느끼는 것마저도 '특권'이다. 그 경계에 서있을 수 있기에 생기는 감각이다..."비참함을 지각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신보다 아래의 '부속품'들의 삶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090913

[기득권] - 가질 것에 대한 생각에 볼모잡혀 가진 것에 대해 불감하는 사회. 불안을 핑계로 지금의 사유와 현실을 나누지 못하는 몽매. 한통계를 보면 기부를 하는 비율이 가난한 하위층위가 더 많이 한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많은 현실의 부대낌의 어려움은 처지를 넘긴다. 그런데 이땅의 386의 허위는 그룹핑을 하더라도 미래의 불안이 엄습하겠지만, 그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만 백번 양보한다하더라도 [지금]으로 처지를 사고하지 않는다. 기득권의 과실이 당신의 삶을 달콤하게 녹이고 그 단맛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한다. 말은 80년대로 결빙되었다면, 그 시선으로 당신의 [지금]을 보는 눈이 생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말로만이다. 뻔뻔스러움과 가증스러움이 말과 당신의 두어깨에 훈장처럼 쌓여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집 한채있고, 과외시키기에 허덕거려 남을 위해 품을 기부 한점할 여유조차 없다고 그러니 그냥 살게 내버려두라고 이야기하라. 세상 핑계대지 말구. 090912



뱀발. 1. 20대의 글을 보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생각의 깊이. 그리고 생각과 현실의 결들을 세세히 겹쳐 읽을 무렵 이 친구가 이십대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십대도, 이십대도 서로 보듬어나갈 친구라는데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십대에 대한 느낌도 또한 다르다. 가까이-멀리서 볼 수 있음 느낌의 나눔이 별반 새로울 것도, 세대의 경계도 없을 수 있다. 서로를 그리고 이사회를 얼마나 절감할 수 있느냐에 따라 친구와 기득권을 번갈아 선다. 제발 더 움켜쥘려 하지말고, 움킨 것을 놓고, 시선을 당신의 이십대로 십대말미로 내려놓는 연습이 절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이다. 

2. 주말 십년이 더된 지난 일터동료들을 만났다. 채 한시간이 넘어서자 나오는 이야기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말이다.[루저]의 글이 20대의 이야기다. 

3. 아침 나서니 닭의장풀의 색이 곱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임옥상, 1954년 8월 오카모토 타로, 그리고 학자들의 학문간의 경계를 섞기위한 4권의 모색 가운데 하나. 속도의 예술은 비엔날레와 블록버스터의 전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 일반 예술가, 아니 일반인들의 선입견들.은 대조적이다. 임옥상님의 자전적 그림평, 근황들이 적혀있어 그가 고민하고 있는 관점에 대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면에서 타로의 아방가르드의 그림들의 맥락을 살펴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예술이 할 역할에 대해 짚어준다. 하지만 역시 그다지 읽을 거리가 없는 예술가여..와 속도의 예술은 상식적으로 자본에 무릎꿇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반 없다는 점이다. 그 틀을 깨지 않는 이상. 맥락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는 이상. 반룬의 예술사는 오래된 책이란다. 사진 위주로 훑어보니 건축관련하여 볼만하겠다 싶다. 

돌아오는 길. 구름에 가린 반달이 무척이나 크게 보인다. 가을은 머리의 흰머리처럼 슬그머니 톡톡 가벼운 터치를 해놓았다. 산과 달, 가을의 무늬가 바람결에 번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_9 내맘대로 독서 편린 결산 (1) (ing)

-그런데--


14-1. 다시 니클라스 루만으로 가본다. 노신의 쇠로 된 방이 나름대로 코드로 둘러싸여 프로그래밍된 궤도를 돌고있는, 종언에 휘말려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문학,예술, 자본, 법, 교육, 과학이라고 해보자.  스스로 나르시즘의 퇴행에 갇혀 끊임없이 복제품만 낳는 강철로 된 방이라고 하자.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자본의 충실한 시녀가 되어 있다고 하자. 그 단단하기만한 쇠방은 서서히 삶을 조여오고, 더 이상 숨쉴,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함을 칠 수 있는가? 고진은 맑스를 다시 읽는다. 그 자본의 고리를 끊으려면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고, 소비의 고리를 물고 있는 자본의 머리 턱의 이빨은 그렇게 끊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문학은 퇴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14-2. 지젝은 헤겔과 레닌을 불러들인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다시 총체성을 이야기한다. 무페와 랑시에르는 정치적인 것으로의 귀환을 명한다. 정치의 영역 그 가장자리를 다시 자리매김할 것을 권면한다. 


14-2-1.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순환고리에서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는 말한다 혁명이 가능하다고 헤겔과 칸트가 다시 필요하다고, 누구는 말한다. 프로이트는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과학은 거기에서 토대를 쌓았으므로 무효하고. 누구는 말한다. 겨우존재하는자는 말할 수 없다고, 그 전유로 인해, 여전히 겨우존재하는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반없다고. 그리고 삼중고-사중고로 응축되는 지점을 응시해야된다고. 누구는 말한다 나는 안다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정식에서 출발한 어떤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생산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14-3. 다시 맥루언으로 들어가본다. 고대인,중세인,근대인의 차이점으로 몸에 배인 현대인들이 전지구적인 앎의 토대를 허물었으므로 중세인의 열정과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머리가 통일되었으므로 가슴과 손, 발, 마음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이는 소비로, 어떤이는 생산으로, 어떤이는 ...일리는 있으면서도 없다. 

14-4.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문명교류사라든가 접목된 사실들을 보는 다른 관점은 지금을 되돌아보는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사로 환원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경제인류학자인 폴라니의 관점은 맑스의 경제사를 보는 관점과 다르다. 다른 시선 아래에서 펼쳐지는 사유는 또 다른 경로를 만들 수밖에 없다. 교차하기도 하지만, 보지 못했던 다른 공백을 볼 수 있기때문이다. 북친의 관점에서 보는 것, 그리고 마이크 데이비스의 기후-기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시야를 확보하게 합니다. 시대의 한계로 본질적으로 갖는 제한된 시야를 열어주는 또 다른 사실들을 접목시키는 것이 현실의 바다를 조금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닐런지요.

너에게 가는 길

14-5. 김우창은 시적 삶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강팍한 현실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이데올로기의 삶이 아니라 예술이 이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상의 예술화. 시적언어도 시적동선도 부족한 건조증에 걸린 일상들은 정작 사회운동의 장에 열려야 하나, 현실은 더욱 더 메마르다. 여유가 집나간 무한궤도 상의 나날이다. 더 열심히 돌면 돌수록 소진된다.

14-6. 하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현실이라는 것이 조각조각 모여 총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핵폭탄에 의해 깡그리 소멸되며 다시 장을 여는 국면이 오히려 우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헤겔이 말하고 있는 그 전제에 대한 일갈은 맑스의 머리를 거꾸로 쳐박고 있다는 표현과 맥이 닿은 것일까?  

14-7

 

사회

14-13. 부르디외는 상징자본, 문화자본을 이야기한다. 계급이 다른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문화의 이전이 존재한다. 환원의 사유는 차제하더라도 열외의 세상은 여전하다. 그래서 스피박 호비바바는 이야기한다. 열외자가 과연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암묵지보다 더 견고해서 지금 사회의 틀로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열외자는 생성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상식으론, 지금의 주류문화로 건질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미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제2회 노작문학상 수상작   

 

 

 

 

 

거미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전집'(민음사. 2003)
 

뱀발.  이면우님 시를 얻다. [간이역에 이는 시노을]이란 카페에서 복사해오다. [생의북쪽] 12편의 시가 모두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두부 2009-09-09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성우씨의 '거미'도 생각나네요.....쩝

여울 2009-09-09 16:18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백석의 거미도 떠오르네..빈방의 거미모녀?. 그러고보니 거미도 각박한 세파를 닮아 점점 그로테스크해져가는 듯...쯔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