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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게으름반-강진다산초당의 대회 참관으로 늦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기한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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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삶 앞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ing
    from 木筆 2010-12-09 17:19 
    1.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느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60     2.
 
 
 

 연구실의 과학자에게 당신이 연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정치와 관련이 있습니까? 사회적인 이해관계와 관련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할까? 제가 하는 연구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되묻는 것은 아닐까? 순수한 연구에 밤낮을 불문하고 몰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황우석이 아니라도 연구원이나 과학기술자들의 행위는 정녕 순수한가? 만약 과속방지턱이 있다고 하면 그것에 관계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 교통경찰의 역할, 법규, 운전자의 습관, 동네의 담론, 서건,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이권 등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과학이란 것에 기술이란 것에 사회가 뭍어있을 것이다. 마치 순수한 것인냥 주장을 할 수 있겠지만 연결고리를 물고 들어가면 순수한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관계에 무관하다고, 세상과 무관하다는 실험실의 연구원을 저기 태평양 섬의 한 부족이나, 저기 아프리카나 아마존 정글의 부족처럼 정체를 파악하기위해 인류학적으로 접근이 가능할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똑같이 접근이 가능하고 그렇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부족처럼 실험실 인간을 연구한다면, 그 근대인이 얼마나 우스꽝스런 존재인지?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얼마나 자신을 맹신하는지에 대한 구멍숭숭뚫린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과학도, 문학도, 예술도, 정치도, 경제도, 법도, 철학도 제 잘난 맛에 가고 있지만 역으로 시인부족이나 정치인부족이나 법학부족이나 말도 되지 않는 뿌리없는 존재의 맹점을 까발릴 수 있으리라. 우리가 딛고 있는 바닥, 생각이 딛고 있는 바닥, 고정관념이 딛고 있는 바닥들, 그 전제에 대한 고찰로부터 우린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만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씁쓸하게 자본주의를 뱉어낸 인간과 맥락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 바닥들이 얼음처럼 이젠 다 녹아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 헤엄쳐야만 할지도 모른다. 서로 손을 내밀어야 겨우...저만큼... ...이미 늦은 일일까?  그게 아니다라고 하는 이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봐야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치의 절반은 과학과 기술에 의해 구축된 것이다. 자연의 다른 반쪽은 사회에서 구축된 것이다. 이 두 쪽을 다시 이어서 맞추고 나면 정치적 과제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1.

브뤼노 라투르는 프랑스 출신의 과학기술학자이다. 대학에서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현대과학기술에 관한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복잡한 행위자-연결망이론으로 이론적 성과가 외화되어 있는 듯하다.   

지금에 대해 아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는다.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고 자연과 사회를 나누는 분기점으로 시선을 다시 돌릴 것을 제안한다. 대상을 정화시키고 분할하며 분리시킨 뒤, 익숙하게 재가공하는 모든 행위는 대상을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고, 그것을 증식시킨다. 자연으로 환원시키는 것, 사회로 환원시키는 것. 과학과 기술에 얻은 것을 그대로 정치에 적용하는 것이나 그렇게 따로따로 가져가는 것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혁명의 기관차는 더욱 더 지칠줄 모르고 달려왔다. 

   
 

"우리가 냉동 배아, 전문가 시스템, 디지털 기기, 센서 기반 로봇, 이종교배 옥수수, 데이터베이스, 향정신성 의약품, 레이더 신호기가 부착된 고래, 유전자 합성기기, 청중 분석 장치 등등에 둘러사이게 된다면, 이 키메라들이 대상이나 주체 그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못한다면 분명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

 
   
 
 2.  
 
그런데, 구획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나돌아 다닌다. 자연이라고 할지? 사회로 나눠야 할지?  자연법칙이나 정치적인 문제로 나누는 것이 더 이상 해결책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헌법이라는 것이 더 이상 자연의 편이든 사회의 편이든 그것을 받치고 있던 골간(사물의 법칙과 주체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지탱되지 못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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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환원이나 이분법의 편식은 대상을 편취함에 따라 급속히 사건들을 증폭시킬 가능성을 갖는다. 어쩌면 그것이 혁명적인 학문의 분류나 진전을 가져왔을 수 있다. 그렇게 대상과 주체를 도와 모로 나뉘게 됨에 따라, 이분의 칼날에 배여나간 개,걸,윷의 비참은 목소리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2. 어쩌면 대상이나 앎의 편식의 방법론적 취약함이 결정적인지 모른다. 여기에 보태 직선적인 시간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역사주의는 과거와 미래를 나누게 되고 지난 사실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나선형의 시간관을 갖는 것만으로도 여러 맥락과 사건들, 사실들을 관통하여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수많은 사실들을 지난 시간에서 현재화시킬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오만이 근대인을 근대인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이런 시간관에 벗어나기만 해도 전근대인, 중세인, 고대인을 저기 역사의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선으로 인해 보다 더 다름을 이곳으로 채울 수 있기도 하다.

3. 라투르는 인간의 의회, 주체의 의회가 아니라 사물의 의회를 열어야 할지 모른다고 한다. 사물이 배태하고 있는, 사물에 딸려있는 여파가 고스란히 인간에 전해지기도 하지만 인간-비인간의 구획도 그렇게 신뢰할 만한 일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며 버렸던 개-걸-윷의 관심을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복원해내거나,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인간에 귀속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붙어있는 수많은 관계들에 의한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되는 것이라 한다. 

4. 탈근대의 커다란 맹점은 근대를 해체시키지만, 정작 방식이나 저변의 그것은 근대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5. 이러한 설명들은 몇권의 저작을 기초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사회적 맥락 속의 홉스와 보일로 돌아가 그 분기점의 논의가 놓치고 있는 다른 매개들을 설명해낼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방식이 여러 논의로부터 조금은 덧셈을 할 수 있으리라 말한다. 그런 면에서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으며, 세계는 아직 유아기에 불과하다라고 한다. 인간을 비인간과 나누고 인권이란 광폭에 비인간, 자연을 그들로 전락시킨 책임을 고스란히 지고 있는 지금를 사는 사람들은 곱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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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0813
    from 木筆 2010-08-14 16:20 
     과속방지턱을 베고 눕다를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물리학 전공과 시인의 거리는 이공계와 인문학의 사이만큼이나 멀다. 이과생을 만나면 숨이 턱턱 막힐때가 있고, 그 단순함이 답답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낳은 거리감으로 인한다. 물밑 소통도 없는 것을 보면, 참* 모임을 하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친한 거간역할을 한분들이 있었는데, 그런 거리감만큼이나 술한잔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촛불로 대*역 광장에서 짧게 만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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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 가을볕이 너무 강열해 참* 삼실이 한참을 환기시킨 뒤에서야 그나마 앉아있을 만하다. 명절맞이 잔소리 경계경보가 어젯밤의 언약들과 달리 하나 둘 사라지고 모두 약속을 잡아 자신의 시간을 간다. 그 틈을 비집고 밀린 생각도 모아둘 겸 책들도 볼겸 겸사겸사 자리잡는다. 벽은 페인트칠로 산뜻해지고, 한잔의 커피와 선풍기의 환기 소리는 나뭇잎들을 날린다. 

2. 점심  조금 일찍 들어오자 막내만 있다. 시험본 녀석은 장보러같이 가자던 약속도 간데없고 영화보러 갔단다. 조금 분부대로 머슴역할을 이것저것 하고 그래도 명할 일이 있으시온지 확인하니, 없단다. 낮의 해도 들어가고 완보로 공원과 산책로를 음미하며 걷다. 인근 학교의 조각전시품이 눈에 들어와 둘러보니 마음이 동하는 작품들이 그리없다. 

3. 저녁  올해부터 제사를 가져왔다. 아니나 다를까 봄철 모친의 입원으로 무리한다 하시면 걱정이 앞선다. 챙기지 말라고 하셔도 무엇을 하신겐지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동생들이 걱정이겠다.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한다. 그리 늘은 책도 없지만 여기저기 박혀있는 책들이나 색깔이나 한통속인 것들을 모아 깔끔하게 놓고, 유니책장에 볼 만한 책들도 옮긴다. 조금 볼만한 책들은 손길이 더가는 곳에 두다. 

4.   1  [맑스주의 향연]의 문체나 글들이 좋았는데 다시보다 마지막장 [공산당 선언]에 대한 해제를 본다. [성경]보다 무덤에 더 많이 가져가고 싶다는 노동자의 바램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일까? 좌파들도 내용에 대한 인지도 형편없다한다. 담고있는 내용들이 지난 번 책갈피한 것들과 겹치기도 하는데 술술 잘 읽히고 마음이 아린다. 

5. 밤  2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의 읽지 못한 부분을 보고 있다. 루쉰의 민족주의자나 애국자의 입장에서 보려는 시선이 문제가 있다고, 철저히 무에서 시작하는 것에 관심들을 기울이지 않아 제대로 보고있지 못하다는 지적의 근거를 달고 있다. 그가 느낀 [적막]이란 것, 그리고 그 [적막]에 서슬을 들이대고 견디고 숨죽여 그래도 없음보다 낫게 만드는 과정에 대한 지적이 읽힌다. 

6. 한가위. 안해가 제수를 마련하기 위해 갔는데 유난히 손님들이 없다한다. 명절이라 하지만 왕래도 쉽지 않은 분들의 마음이 다독거려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 한가위 잘 보내시길 바래요.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유효하기나 한 것인지? 총각들 처녀들 시집가고 장가가란 식상한 말도 줄어들고, 그래도 따듯한 이야기나 온기들 느끼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군요.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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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저기 불갑사에 꽃소식을 들었건만, 야생식물관 근처에 꽃무릇이 벌써 녹아내리고 있다. 꽃잎보다 꽃수술이 꽃잎처럼 마음을 헝클고 잎처럼 꽃잎들을 보듬고 있다. 그러다 햇살에 마음도 몸도 타들어가 꽃잎몇장 남는다. 

비가온뒤 유*산 죽교동의 산길은 철거민의 골목을 안고 있다. 그렇게 삶의 자욱에 녹아내렸던 골목길들이 산사이로 어디로든지 이어져있다. 그렇게 골목길을 가다 달*사에 접한다. -색이 잘나오질 않는다. 다른 곳에 한번 더 남겨야겠다. 

상사화-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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