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함박 핀 눈, 함박안은 눈, 날카로운 키스처럼 뺨에 부딪는 눈들. 아침 눈들이 서성인다. 지나치는 차의 속력에 맞춰 눈들은 음표를 달고 날린다. 그렇게 모든 음표를 붙인다. 하나 둘. 굵고 작은 변주들. 부유하는 음표들의 현란함. 느티나무 가지들 사이로 내리는 화음. 솔잎 사이로 바람을 밀어 부딪는 음들의 잔치. 후박나무 오동나무 댓잎 숲들의 반주. 강물을 반음을 끊임없이 적시는 노래... 한참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음에 취해 혼미하지만 그래도 도돌이표를 넘어서는 반주에 흠뻑 취하다. 어제도 그러했다. 날카로운 새벽은 되돌이표를 넘어선 생각이나 고민의 성찬으로 가득하다.0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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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9-12-18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눈~ 이다 요~~ 이만~~~한.ㅎㅎ

여울 2009-12-1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출근하느라 애~ 먹었습니다. 아니 식겁했슴다. 빙판길에...에공. 제가 그때그때 잊어버리니...조금있다 눈오면 또 좋아하겠죠. ㅎㅎ. 아직도 다른 분들은 출근 전입니다. ㅎㅎ

조심 조심. 폭설에 대비하시구...
 
블로거의 인문(酌)

알라딘서재나 블로그에 대한 생각

#1. 내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블로그와 실재 그 인물과의 유격때문이다. 사실 블로그의 정보보다 오프의 만남에서 정보가 훨씬 풍부하기때문이다. 기껏 시각의 활자로 대면하는 것보다, 사람을 볼 수 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 던 다른 면을 느낄 수 있기때문이다. 설명으로 부족한 무엇들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오프모임의 만남이 친하다는 주례사 기조의 격려로 흐른다면 이것 역시 혈연이나 지연에 버금가는 습속일 것이다. 그 짧은 만남을 통해 조금은 더 그 사람에 대해 입문할 수 있으리라 여기기때문이다. 많은 왜곡된 관점이 수정되거나 너무 확대해서 보았던 부분, 아니면 눈치채지 못했던 다른 끼들도 드러날 수 있기때문이다. 활자보다 생각, 마음의 결, 고민, 처지는 아주 조금 읽힐 수 있다.

#2. 장사라는 것. 자본주의 아래서 장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야생성을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가끔 인문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더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알라딘서재와 알라딘 운영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서재에 가벼운 지적만 있던 것 같은데 서재의 메인화면이나 틀을 만드는 것에 의외로 서재인들이 예민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당연한 것. 어쩌면 그 틀이 이곳 서재민주주의의 많은 요소를 없애버리고 있지 않을 것일까? 책이 화면에서 커지고 화재의 서재글이나 인기도 순으로 서열이 매겨진 것. 테마카페가 있으나 활용도가 빈약하기 밖에 없는 상황. 서재운영과 손익에 얼마만한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서재인들이 활용도를 높이고, 주관하고자 하거나, 아니면 서재를 통해 매출의 연계성도 높이겠다는 알라딘의 바램이나 욕구가 있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 같이 동행할 길이 있을까? 이곳의 민주주의를 얘기해볼 수 있을까? 서재가  매출과 연계성으로만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북적이는 공간으로 그래서 그 틀이나 구성이 말랑말랑해서 수렴하고 확인하고 시험해보고 변신해보는 것으로 구성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3. 알라딘을 살리자고 책 몇권을 구매하겠다는 서재인들의 옛 기억?도, 버전 업에 대한 감수성도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서재인들의 구조에 대한 접근의 빈약함,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꺼리에 대한 제안들, 돈냄새가 너무 물씬 풍기는 것은 아닐까? 사람냄새가 나거나 다양함으로 연결되어 서재인들의 특색있는 공간이 가미되어 좀더 수평적이거나 가변적인 틀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뱀발. 

1. 저자와 대화가 있고나서 서재인 몇분과 식사겸 인사를 나누다. 문서로 된 논쟁의 편협함도 출판인쇄업의 구조도 먹이사슬에 얽힌 갑을관계도, 서재인들의 일상이나 직업에 대한 소식도 듣는다. 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불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다.  

2. 몇주전 모임 뒤풀이. 한분이 식당 종업원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그 뒤 종업원에게 주문의 당당함은 줄어든다. 그리고 나의 태도변화에 신경쓰고 있었다. 예전엔, 지금도 강한편은 아니지만 식당에 가면 난 고객으로 당당하지 않다. 반찬 더 달라는 소리는 거의 없거나 불편에 대해 주장하지 않는 편이다. 그 당당함이 한편으로 일상에서 위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 언질로 시선은 그 넓은 식당에 혼자 감당을 해내는 조선족 종업원에게 시선이 갔다. 그 사실로 난 나의 불감이 무척이나 자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장부터 말단까지의 처지와 고통은 느끼지 못했지만, 종업원에게 고객의 떳떳한 주장이 종업원에 대한 고통이나 애틋함과 교차하지 않고 있음을 다시 느꼈다. 

3. 서재에 불매활동이 일고 있다. 비를 같이 맞자는 말이 마음에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법을 따지고 있었고, 다소 과도한 요구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버티고 있었다.  현실에 있어 불감이 나를 막고 설 수도 있구나. 불감의 경계가 의외로 약하구나란 자괴감도 함께 들게 되었다.

4. 고객은 왕인가? 손님은 왕인가? 언젠가 나는 쫄병이었는데 어느사이엔가 말년 병장이 된다. 어느 사이에 감수성과 불감의 경계에 마음의 실선이 자란다. 말단이자 사장, 고객이자 서비스제공자이다. 비를 더맞으면 불감은 좀더 줄 수 있을까? 더 감수성을 자라게 하고, 민주주의의 시선을 더 확장시킬 수는 없을까? 책을 사보는 나의 불감은 어떨까? 작은 책방, 외진 헌책방, 공공도서관, 인터넷 서점, 일터에 몸담고 있는 동료들, 저자, 출판사 모두 좋은 일은 없을까? 책한권 볼 수 없는 저 낯선 나라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아픔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느냐? 그 아픔을 얼마나 저편의 앎까지 확장시키느냐는 고통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끊임없는 갑-을-갑-을의 순환고리에 대한 생리, 앎의 선순환은 그려볼 수 없을까? 

5. 서재가 돈도 되고 민주주의 마을로 한발다가설 수 있을까? 고객팀이라는 선명한 실선이 서재와 점선의 경계로 말랑말랑해질 수 없을까? 내지갑의 편리나 주장에서 너의 빈지갑이나 감수할 불편이 늘어날 수 있을까? 고객만의 당당함이 제공자의 노고에 조금은 가 닿을 수 있을까? 활동의 선언에 가린 그늘의 어려움을 살필 수 있을까? 

6. 서재에 대한 제안은 많이 표출된 것 같다. 이참에 대폭 권한이나 운영, 직접민주주의방식을 실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좀더 놀고 싶고, 사귀고 싶고, 아픔을 나누고 싶고, 제공하는 이곳도 돈도 되었으면 좋겠다. 고객을 불편하게 하거나 열어두게 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되는 것은 아닌가? 

7. 내 회사도 아닌데 왜이리 걱정이람. 쯔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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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접습니다
    from 木筆 2010-01-08 11:44 
    1) 김종호씨의 거취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2)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공식 입장 표명 이였습니다. 그리고 곁가지 문제는 3) '알라디너들 사이의 싸움' 이었습니다 - 드팀전/바람구두...외 제가 제일 관심있는 문제는 3)입니다. 블로거들 사이의 문제- 블로거 인문의 문제, 관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2), 1)의 문제가 우선인 것 같아 의견도 미루고 서재를 접습니다. 신밧드님의 마음 아픔도 이해하지만
 
 
파란여우 2009-12-1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먹으면서도 말씀 드렸듯이 알라딘 회사측의 다양한 기획컨셉 부재가 아쉽고 불매운동을 유발하도록 만든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부족도 아쉽고 그렇습니다. 그러게 이렇게 애정을 가진 고객들이 인터넷 서점 어느 곳에 있을까요.

여울 2009-12-16 10:29   좋아요 0 | URL
아프겠지만 서로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시선의 차이를 녹일 수 있으면 합니다. 다시 출발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지요. 여우님도 맘고생 많으겠습니다.

나무처럼 2009-12-16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 서재라는 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돈과 민주주의 사이 어딘가에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있지나 않을지요? 저는 걱정까지는 아니지만, 솔직히 제 직장의 미래보다 서재의 미래가 요즘 더욱 궁금해집니다. 거기에 직접민주주의는 참 좋은 화두인 듯도 하다는...

여울 2009-12-16 10:34   좋아요 0 | URL
발화과정에 시선이 모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가져갈 방법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봅니다. 여운이 있더라도 처리와 처분이 아니라 서로 만들어갈 수 있는 공유의 길로 접어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저두 서재의 미래가 많이 궁금해집니다. ㅎㅎ
 



서울.

#1. 아트** 토즈. 이름이 입에 붙지 않는다. 간혹 기억에도 붙지 않고 입에도 겉도는 낱말들이 세상이 나돈다. 아침 결혼식장의 이름도 필요한 시간만 기억해내고 아예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무용한 것이다. 몇년 전 짬을 내어 후배를 만나러 가는데 촌닭이 되어버린 나는 그 공간과 사람의 동선, 소리에 넋을 빼앗겨버려 멍한 상태가 몇분이나 지속된 경험의 공간이다. 간혹 드물게 접하는 서울은 이렇게 정신을 날치기해 간다.

#2. 단편이 되어버린 공간들이지만, 이곳 소극장. 카페들. 그리고 연애도 시위의 흔적이 있던 곳들이다. 인파에 압도되어 서툰 걸음걸이가 그 흐름과 박자가 맞지 않는 곳. 몸상태가 평온한 '미'의 상태가 아니라 들뜬 '쏠'의 상태로 되게 하는 곳. 시간이 조금 넉넉할 것 같았는데 토요일 말미는 오고가는 사람들로 지하철이 북적이고 느려 시간이 별로 남질 않는다. 돌아오는 길. 굴다리 인근 [오늘의 책]도 없고 여전히 휘황한 신촌네거리 불빛들 속에 예전의 나,너들이 들뜬 '쏠'의 상태로 떠돌아다닌다.

#3. 몸은 용케도 옛 기억을 살려낸다. 친밀감보다는 낯섬이 밀고 들어오는 공간들. 이렇게 낯선 공간들은 지울 수 없다. 그틀로 압박해 불현듯 밀려오는 기억과 느낌들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지만 친숙한 어떤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녹아 있는 서울말투, 논조, 불특정 공간, 시골보다 짧은 여운없는 인사. 무덤덤함.

#4. 아*** 토즈도 찰싹 달라붙지 않는 공간이다. 애써 무덤덤해지는 공간. 서울이란 도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간막이의 공간들처럼 느껴진다. 그저 필요에 의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강의실같다. 마음을 잡기보다는 필요한 것만 편취해내기만 하는 공간들로 여겨진다. 진행도 낯설고 자리도 어색하기만 하고 저자와 만남을 밀어내는 듯한 ..너를 위한 점선들이 없다. 저자에게 필요한 영양분만 가져가기만 해라라는 어색함이 깔려있다. 농담이나 훈훈함이 그것의 절반을 덜어내기까지는 한참이란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야 했다.

#5. 이 마을에 많이 서재 마실을 다니지 않는다. 서울 촌사람들처럼 필요한 것만 빼어먹는데 익숙한 사람이기에, 사소한 관계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흔적을 잡아넣는 곳의 용도로 소통의 공간에 대한 과잉기대는 하지 않는 곳이다. 관계를 부여잡을 엄두도 나지 않지만 관계를 만들어갈 열정도 없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이 나만큼 바쁘고 바쁘다. 그래서 할 것이 별반 많지 않다.

#6. 사람을 글로 판단하거나 소문으로 판단하지 않는 편이다. 가급적 만나서 직접 대면하는 것이 그래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평들을 신뢰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서야 느낌들을 가다듬는다. 부드럽고 수수하고 소탈하신 santa님은 지조와 강직함이 드문드문 비춰보였고, 쟈니님은 상황을 보는 날카로움은 단련되어있는 듯했고 , 하얀마녀님의 명료하고 단박한 즐거움이 몸에 배여 이런저런 상황을 크게 재거나 하지 않을 것 같다. 여우님은 디테일의 힘과 수다의 힘을 갖는 재원이다.(무슨 잡지 인물 소개 타이틀같다.) 웬디양은 얼굴은 더 오목조목 키는 더 훤출하시었다. 물론 명랑은 말할 것도 없이. 마립간님 같은데 날카롭지만 무척 부드러워 보였다.(잘못봤을 수도. 왼쪽 앞줄로 기억하고 있지만...) 

 

 

 

뱀발.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오전까지 사촌여동생 결혼식.집안 행사.저자와 대화. 바삐 돌아다니다. 느긋하게 즐기지 못해 아쉬움만 가득하다. 생각같아선 밤샘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호출로 꾹꾹 참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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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12-1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당님의 온화한 배려에 따듯했던 저녁이었습니다. 저도 좀 더 많은 시간을 나눌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습니다만, 잘 내려가셔서 다행입니다. 먼 길 와 주시고, 또한 신촌의 밤거리를 함께 걸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여울 2009-12-17 14:09   좋아요 0 | URL
따듯한 분들을 만나뵙게 되어 좋았습니다. 많이 아쉬웠지만 좋은 분들 소개시켜주어 감사드립니다. ㅎㅎ
 







겨울이 익어가는 것일까? 햇살은 아니오라구 한다. 그늘은 냉기를 품고 있지만 그래도 따듯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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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의 비늘] 그녀를 바라보려해도 바라볼 수가 없다. 그와 시선을 피한지가 오래되었고, 그녀를 만나도 도통 눈빛 한번 줄 수가 없다. 그녀가 꼬리를 감출 무렵에서야 그의 여운을 바라볼 뿐, 아니면 그녀가 다가 올 무렵에야 그쪽을 응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그녀의 금빛 향香을 받아 안는다. 그녀가 준 햇분粉을 볼에 바른다. 반짝이는 만개의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 안는다. 

 



#2. [달의 비늘] 달과 사귄지도 아마 이천여일이 되었을게다. 그런데 난 지금에서야 그 녀석이 저렇게 둥둥 떠있는 것이 아니라 저기 저렇게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 시냇물처럼 흐를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걸린다. 바스락거리기도 하고, 파르르 떨리기도 하고, 부서져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상상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바닷가에 호수에 저혼자 천개의 비늘로 멱을 감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아마 난 그녀가 너무 가까이 있어 늘 그려러니 했을 것이다. 

 

뱀발. 퇴근길 보름이 가깝다. 달이 많은 도시. 호수를 지날 무렵 비친 달은 잔물결에 흐느낀다. 밝은 조명등아래 도시인들은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난 시인이 필요했고, 저기 달에게 말한번 건네줄 이가 가까이 있으면 했다. 가까이 함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이 이렇게 몸의 유격에서야만 발견해내는 어리석음에 곡한다. 해가 많은 도시.섬으로 돌아서는 노을에 비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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