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휘소식] 돌을 던져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함께 보자 - 유행처럼 휩쓸려가는 것들에 딴지를 건다. 생협, 협동조합, 인문학 그저 뭉뚱그려 좋은 것, 당연한 것들의 미세한 결을 살펴 통찰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고의 범위를 좁혀 나눠보자. 이곳에 함께하는 사람망을 중심으로 인물을 설정하고 단편으로 그려내어 서사를 미리 갖고, 그 서사를 흘러다니게 만드는 것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네가지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마음만은 진짜 사랑하니까란 이면이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온도가 오르내리고, 정작 비등점까지 순간적으로 넘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필진이 구성이되고 현실감을 문학의 구조로 터치해보는 재미가 솔솔하지 않겠는가? 천명발송, 천오백발송, 모니터링-확인, 차별화된 컨텐츠.

 

2.[실험/시도] 예민함에 대한 예민 -  최초의 만찬, 안도현이 시가 자맥질을 하는 이유, 안도현 그는 왜 조지오웰에게 배워야 하는가,  머리로 쓰는 시는 힘이 미력한가, 안철수-문재인-박근혜-김두관, 대중정치의 공약은 금융공황의 여파를 비껴갈 수 있나, 대선과 생필품가격폭등, 시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쓴다. 잘쓰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 몸에 갇혀 달라지지 않는다. 복수혈전을 낭독해준다. 복수는 가고, 혈전으로 응어리만 남는갸. 완벽하려고 하면 할수록 시간에 강하지 못하다. 여백이 그 시간과 시선을 채워준다. 천국에서 배운다 - 케인즈, 마리아, 조지오웰, 니체, 예수,부처, 마호멧

 

3.[금기] - 소모임과 토론, [동화독법]을 보고 논하다가 토론이 아동포르노를 시작으로 금기를 향해 달린다. 주례사와 책과 저자가 처놓은 울타리가 아니라, 저자와 책에 물을 쏟아붓는다. 칙칙하고 극단으로 밀어부치려는 노력, 이 자리에서 만큼은  윤리, 터부, 금기의 금줄을 내려놓고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김두식이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각자의 작은방이 필요하듯 비밀의 방,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너머, 무엇이든 얘기해도 될 수 있는 것, 발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소모임의 진정성은 아닌가? 물론 이 이야기는 러셀이 자신의 토론모임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장삼이사가 이렇게 공간을 만들어간다고 이상할 것이 있는가? 자고로 모임은 그러해야 한다는데... 얘기의 살을 좀더 덧붙여 보았다.

 

4. [상상] 문화공간을 어떻게 채울까? 문화공간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5. [책얘기-잘라라,그 기도하는 손을] 신은 죽었다, 국가는 죽었다라고 누가 이야기한다. 하지 지식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니 않을 것이다. 괜히 말섞다가 필화를 당하거나 자신의 계보를 타고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참다보면  정막한 정적만이 감돌고 침묵으로 변한다. 내가 다루고 다룰 수 있는 것만, 계보에 도움이나 책임을 질 수 있는 것만 다루게 된다. 지식인의 유행은 기껏 여기까지이다. 삶을 건들고, 통찰의 범위가 커지면 잠잠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석가도 예수도 마호멧도 다 죽었다. 그들만이 세상을 바꿨다. 그들을 믿는이들은 세상을 숨겼다. 자꾸 자주 집요하게...그래서 종교를 다시 죽여야 한다. 라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할 것이다. 심각하게 죽여야한다고 하면....원인을 되묻기도 전에 물러설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자신을 위해하는 섬뜩한 일이기에 논란으로 가져가는 일을 본능적으로 피한다. 세상은....가끔 고요의 씨를 알 것도 같다. 만약 지금여기 진보는 죽었다라고 말한다면, 진보는 시작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 손가락질부터 할 것이다. 우리는 지식인이라고 자부하고, 남들보다 낫다라는 신념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6. [책얘기-니체극장] 고명섭기자의 책을 폭염과 열대야의 고점부근에서 읽다가 美 치는 줄 알았다. 왜 8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맘속으로 도전!!이라고 했는지 말이다. 선악의저편에서, 우상의 황혼, 니체가 병으로 눕기전의 상황부터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책을 볼 수 없었다. 이러다가 우울이 한꺼번에 물밀듯 쓰나미처럼 덥치면 어쩌나 하구 말이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가을바람의 기미를 빌미삼아 흔적을 남기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그에게로 가려면 고르기우스의 칼이 아니라 아드리아네의 실을 준비하라고 한다. 자칫 니체에게 다가서다 길을 잃기 십상이고, 괴물에게 물려 괴물이 될 수도 있고, 빠져나오기도 만만치 않으니 단단히 각오를 하라고 한다.

 

7. 니체든, 사사키 아타루든 깔대기를 들이대는 인물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유의 폭을 넓게 쓰는 이가 많아서 해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마르크스든, 오웰이든, 모리스든, .....사상의 세상은 너무도 좁아졌고, 시간도 응축되어 보거나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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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뱀발. 반시간정도 짬을 내어  행여 볼만한 그림이 있을까 여겨 가보다. 이한우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어 뭉클하다. 마음 속으로 그려도 보고, 덧칠도 해본다. 임립미술관-국전작가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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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독, 톡, 툭.... 빗소리에  잠이 사라진다. 조금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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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 읽는다는 것... ...

 

루터가 말했습니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이고 명상이고 시련이다."  또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어버리면 니체가 말한 대로 '회임'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루터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되풀이해서 읽으라고 충고하고나서 그는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그러나 이에 질려 한 번도, 두 번도 이미 충분히 읽었고 들었고 말했다. 뭐든지 근저에서부터 알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런 생각을 갖는 자는, 때 아닌 때에 열매를 맺는 과일 같은 것으로, 절반도 익지 않은 채 떨어져버릴 것이다.'  80

 

종말론이란 유아사고 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역사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결정적인 끝이나 시작을 살고 있다, 그런 게 아니면 싫다. 이 얼마나 유치한 사고입니까? (중략)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게 세계는 계속됩니다. 세계는 넓습니다. 그 세계는 더욱 넓습니다. 세계는 계속됩니다. 그 세계는 더욱 오래 계속됩니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세계는 변합니다. 163

 

국가와 세계혁명

 

국가의 본질은 '번식을 보증하는' 것이다. -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국가의 형식이야 말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하고, 우리가 오랫동안 말해온 의미에서 '문학'의 혁명에 의해 전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혁명은 아이의 삶을 '수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185

 

세계국가나 세계정부는 등장하지 않는 걸까요? 유엔에는 아이가 없습니다.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로서의 지위, 자신이 태어났다는 법적 인격을 부여받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재생산하는 원리, 아이를 낳고 기르는 원리, 즉 '계보원리'를 맡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엔은 계속해서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정부라는 구상은 늘 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유엔을 개편하려고 하는 자도, 그렇지 않은 자도 말이지요.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기분 좋게 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국가라는 구상은 늘 어딘가 망상적입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의 생생함을 떠맡는다는 데서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88

 

텍스트의 세계

 

중세 해석자 혁명은 '공통법'인 교회법을 고쳐 쓴 것이며 텍스트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읽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법은 세례, 교육, 구빈, 혼인, 가족, 성범죄, 고아,과부,병자, 노인의 보호 등을 통괄하는 '삶의 규칙', '재생산의 법'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189

 

르장드르에게 '텍스트'라는 것은 흑인의 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화를, '법'을 춤추고 있는 셈입니다. "독서란 묘석과의 열광적인 춤이다."라고 모리스 블랑쇼가 말했는데, 르장드르는 "이렇게 하여 그들은 법과 춤추러 찾아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독서란 춤이고 사람은 법과 춤춥니다. 자신의 신체에 법과 신화를 걸친 그들의 행동거지, 힘껏 내밟는 일보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심신에 새기게 한 규칙, 시, 문장을 소리 내고, 흔들고,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창의를 덧붙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읽고, 고쳐 읽고, 쓰고, 고쳐쓰는, '문학'행위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춤'은 그대로 그들에게 법적, 규범적, 철학적, 문학적인 '사고'인 것입니다. 그들은 사고하고, 그들은 읽고, 그들은 쓰고 있습니다.-깊게, 깊게, 춤을 추면서.  203

 

텍스트는 넓습니다. 그것은 좀 더 넓습니다. 자신의 신체라는 종이 위에 신의 행위를 나타내는 춤으로 써도 됩니다. 자신의 혀라는 종이에 신의 말이 스며든 꿀로 써도 됩니다. 무엇에 무엇을 썼다면 그것은 '규칙'일까요? 이것은 방대한 비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문학'이라 부르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에 무엇을 써도 그것은 문학인 것입니다.  205

 

폭력이 아닌 혁명

 

폭력혁명이 혁명의 '모든 것'이 된 것은 이 '중세 정보 기술 혁명'의 효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세 해석자 혁명이 행한 것, 그것은 '통치의 정보화'입니다. '모든 것'은 정보가 됩니다. 그 조작의 이물로서 '한데 묶여 나오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폭력입니다. 정보와 폭력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결탁해 있습니다. 요컨대 통치의 정보화와 폭력화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정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폭력이 됩니다. 따라서 혁명도 '폭력혁명'이 되어갑니다. 800년에서 850년 동안 우리는 정보와 폭력의 바다에 빠져 있습니다. 209

 

법전을 비롯한 규범에 관련된 것으로서의 '정보', 정보는 아니지만 정보와 결부된 형태로 권력 안에 포함되는 '폭력'. 그리고 아무래도 거기에서 잔여로서 석출되는 사랑과 동경의 절대적 대상으로서의 '주권=국가'. 정보와 폭력과 주권의 삼각형으로 구성되는 '세계', 제도적인 것의 세계는 유럽의 한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따라서 혁명이란 정보도 폭력도 주권 탈취도 아닙니다.  213

 

혁명의 장소

 

한 행을 쓸 때 자신은 그것을 정말 믿는 것일까요? 한 행을 지울 때 자신은 그것이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것일까요? 믿지 않는다면 고쳐 쓸 수 없지만,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과 불신의 이분법은 다같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거기에 무한한 회색의 투쟁 공간이 출현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습니다. "최후에는 고독한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것은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혁명의 장소입니다. 혁명의 시간입니다. 이 시공은 끝나지 않습니다. 정의상,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216

 

예술이란 수태의 예술입니다. '잉태된 것 concept'을 위한 기예 art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예술이 끝났다든가, 문학이 끝났다든가, 그것들이 위기에 처했다든가, 오락이나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는가, 잡담과 사고의 자폐에 굴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223

 

뱀발.

 

1. 읽은지가 좀 된 책이라 접힌 곳을 그러모으니 생경하다.  몇몇 단락에 꼭지를 씌워본다. 종교에 대한 아성을 허물고, 중세 해석자 혁명을 다시 돋구고, 국가에 대한 근본 물음을 다시 재기함으로써 시대가 갖고 있는 모순을 다시 흔든다. 더구나 종말론에 대한 시니컬한 해석과 평론, 지식인의 그물망에 잡혀 있는 인식의 세계가 얼마나 협소한가 하는 비판에 수긍한다. 자본주의 300년에 박자를 두고 사고하는 울타리를 저자는 법과 규칙의 연원이 되는 800년으로 지평을 넓혀준다.

 

2.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한지 백년남짓 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해석자의 세계였다면 이렇게 지금의 국가는 죽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지적재산권 소유의 문제도 아니다. 외치고 주장하고 고민하는 이가 늘어나고 그 스펙트럼이 다양할수록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 통찰력을 필부필녀가 가져가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일인가? 그런면에서는 학자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지극히 보수적인 것은 아닐까 한다. 무엇 무엇의 종언이라는 책들에 부화뇌동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지평을 시간의 자장에서 멀리볼 수 있는 책은 떨리고 설레이고 섬뜩하다.

 

3. 그래서 당분간 이 떨림은 오롯이 가져가기로 한다. 읽기 쓰기, 깊이 읽기, 깊이 쓰기... 살기 살기, 깊이 살기, 깊이 살기... ...

 

4. 과격하다 오독을 해도 상관없으리라. 지금 그렇게 느낀다. 혁명을 되뇌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목백일홍이 피고지고, 지고피고....더운 여름을 가로질러 혁명한다.  아 붉고 흰 혁명, 그 이름난으로도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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