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피티]

ch.gomtv.com/7799/22291/155577

**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란 멘트와 스케이트보드처럼 육체적 어려움의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있다는 말에 여운이 남는다.(영상갈피: 21:35 -- 운동(스포츠)과 예술 - 육체적인 것을 예술로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스케이트보드와 그래피티를 결합한다. 초의 미학이란 점에서 동일성을 갖는다고..)


2. [캘리그래피]
 
ch.gomtv.com/7799/22291/222861


## 스치듯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몇몇 블로그나 작품들이 이것이다. 이렇게 상업친화적인지 몰랐는데 디자인계통에서 일상인 듯 학습효과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본 영상은  타짜나 혈의누 그리고 술의 한글 디자인 등이 이의 작품이다. 글자를 가지고 노는 일이 이렇게 진도를 많이 나갔는지 몰랐다. 그저 혼자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려니 했는데, 너무도 재미있고 성실하게 직업으로 만끽하는 듯하여 영상을 보는 내내 즐겁다. 더구나 비보이를 형상화해달라는 주문에 음악을 듣고 심취하는 모습이나 온몸으로 받아들인 연후에 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반추하며, (우리라는 모둠이) 스스로  얼마나 속좁은지 몸좁은지 새삼느끼게 된다. 아래 홈피를 들어가보는데 냄새가 너무 많이 풍긴다. 그 이상 팔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로 그렇구 글씨예술, 글씨상품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blog.naver.com/howprint/120094972096

3. [움직임을 그리는]


ch.gomtv.com/7799/22291/194316(움직임을 그리는 화가 애니메이션 감독)


[움직임을 그리는 화가]로 소개해달라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움직임을 그리는]으로 불러보니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달리 말해본다. [움직임을 소묘하는-만드는-누리는 사람(들)].

[화가] (영상갈피 9:00 - 12:00) 와 [루미네이트](영상갈피 시작부분)란 작품이 생생하고 좋다. [음악-그림-이야기]를 한몸으로 섞어 생명을 부여하는 재미가 있다한다.  불과 십여분만에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불어넣는 모습(기차안)에서도 볼 수 있고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찰나에 대한 포착(외도로 가는 배)으로 이어진다.

#1. 내 몸은 정지표시처럼 멈춰서있는 경우가 많다. 음악도 그림도, 이야기도, 더구나 일상은 움직임의 동선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어쩌면 단락단락 끊어내는데 익숙해있는지도 모른다. 생명을 불어넣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좀더 생생하려면 내 몸의 중심축을 정지선상에서 아니 아예 모멘텀 사이로 넣어버린다면 따로따로 떨어져있는 이야기도 그림도 음악도, 그리고 일상도 섞이게 될까? 몸을 그 속으로 넣어버리면 바꿀 수 있을까 좀더 생생하게 말이다. 그런 짜투리 생각을 해본다.

#2. 좀더 생각이 밀어붙여 [움직임을 만드는 사람(모임)들]으로 옮겨본다. 디테일도 요구도 원하는 것도 정지화면처럼 떨어져 제 각각 쓰임새만 가지려하는 것은 아닐까. 생생함을 부여한 자연스러움에 가까이 가려한다면, 모임의 몸은 정지한 듯 제각기 떨어져있는 것들의 결합이나 친밀함의 농도를 높여 제몸처럼 움직이는 것의 익숙을 필요로 하겠다 싶다. 아니면 몸을 모멘텀에 두어 단련을 해보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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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홀로지식인의 습속] 지식인들은 자신의 앎을 자장으로 해서 자신의 자장안으로 앎들을 숱하게  끌어들이려 한다. 그 욕망에 못지 않게 그로 인한 보수성은 자칫 그늘들을 만들어 놓지 않거나, 일리의 공간들을 놓아두지 못하는 것과 상통한다. 이 습속은 자칫 연대가 아니라 투쟁의 국면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에 다른 가지나 다른 생성을 지레 소멸시키는 위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앎이란 것도 집중의 강렬한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 자신의 앎의 경직과 다른 자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오히려 생성이 자신의 앎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시간에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여백이 자랄 수 있다면, 자라지 못하고 움찔대는 새순이나 새싹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것을 키우거나 자라게 하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지식인들도 구획이나 편집증에서 조금 벗어나 앎의 연대를 기획할 수 있는 여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을 보면 지식인들이 앎의 향기엔 강한  앎파라치이긴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집과 경직에 대한 성찰의 문은 열려있지 못하다. 그래서 열이면 아홉이 머리는 커지나 몸이 단단히 굳어 더 이상 앎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이비로 전락하는 모양이다.


#2. [삶의 지수] 퇴근길, 매체언론은 출산율이 세계최저라구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구 말이다. 어쩌구저쩌구 통계를 들먹이며, 분석을 들먹이며, 아침에 언론에 나온다는 소리가 기껏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보낸다라구. 귀신신나락먹는 소리인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자살율도 세계최고이고, 삶의 지수도 상대적으로 최악으로 달리고 있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다. 애꿎은 엄마를 볶을 것이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들볶을 것이며...거기에 애국심까지 거들먹거리며 개인의 문제로 가닥을 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삶의 나락이 왜 이렇게 형편없이 떨어졌는지? 아이도 어른도, 노후도 눈에 잡히게 하는 것이 최악의 서사밖에 없다. 그런 나라에서 누가 아이를 낳는단말인가? 형편없는 위정자는 아무걱정없어서 그런가? 그렇게 출산율에 관심이 많다면, 삶의 지수가 왜 이렇게 곤두박질 쳐져 있는지? 다른 사회가 받아들이는 완충장치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노처녀만을 마녀사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인지?  

노후도, 아이들 키우는 것도, 집도 그저 풍족하지 않지만 살만하다면 누가 아이들키우기 싶지 않을 것이며, 일터도 젊은이에게 물려주고 노후를 즐기려할 것이며, 하다못해 집이 투기 목적이 아니라 오붓하게 살 요량을 할 것이다. 하다못해 교육비에 한숨짓겠는가? 엉뚱한데 손가락질하지말고 그 손가락을 네얼굴에 대길 바란다. 위정자도 국가도, 그 녹을 먹고사는 친구들도, 세상사는 일을 연결짓지 못하는 우리들의 아둔함도... ...


#3 [시간의 각질과 훈육된 허물] 훈육된 애벌레, 나를 키워온 30-40년, 이제야 내 생각도 마음도 자라고 키워진 것을 돌아보니 고스란히 훈육된 애벌레란 느낌이 든다. 생각이 자라는 것도 그 훈육의 결과이며 훈육의 울타리 안이며, 생각하고 몸이 기껏 움지기는 동선도 연신 그 안일 수밖에 없다. 자란 근대의 토양도, 식민지의 흔적도, 가족이나 사랑이나 연애나, 욕심이나 욕망이나 일이라는 것도 기껏 먹고 해치운 것이 애벌레의 몸집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감금된 자유란 것도 더 적극적으로 몸을 키우는 작업이었을 뿐. 내몸의 각인, 생각의 상처, 끊임없이 자맥질만 하는 손발의 동선을 벗겨낼 수 있을까?  

몸은 점점 딱딱해지고 한 차례 더뎌지고 굳어지는 몸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 훈육된 허물을 벗길 수 있을까? 벗을 수 있을까? 허물을 벗고 유약한 날개가 점점 펴져 날 수 있을까? 훈육된 울타리는 훈육된 각질은 점점 켜를 쌓는데, 그것도 시간의 함수로 덧칠을 하며 옭아죄는데 10년도 50년도 100년도 500년도... .... 시간의 켜는 말랑말랑해지고 겹쳐지지도 않으며 시공간을 점점 부푼풍선처럼 벌리고 있는데...시간이란 껍질도 겹쳐져 말랑말랑해지거나 유약해지지는 않는걸까?  

시간이 녹아내리고, 그 유약해진 시간의 몸사이로 날개를 내밀어 시간의 각질을 벗겨내고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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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가까이서 산, 바다 섬..., 그리고 추위에 활짝 핀 동백꽃.(고운사진 보여드리지 못해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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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발. 

 1. 번갈아 보고 있다. 13. [생명정치적인 것의 벡터들]은 아리스토텔레스,아렌트,푸코,아감벤,누스바움, 벡터가 번갈아 나와 궁금증들을 일정정도 해갈시켜준다. 15. 자크 랑시에르의[ 미학혁명과 그 결과-자율성과 타율성의 서사만들기]도 그 예술과 삶의 벡터의 겹침과 공간에 대해 서술해서 13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공예의 윌리엄 모리스도 깜짝 등장을 해서 일련의 관심들이 겹쳐진다 싶다.  

2. 리뷰를 잡지보다 책으로 발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의성보다는 진중함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잡지로 읽기보다는 책으로 곰곰히 읽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속도를 게을리하며 말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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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가고 오는 길 마저 읽다. 오롯이 박힌다. 서울의 지명들도 행간도,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함께...... 따로따로 섬처럼 존재했던 앎들도 서로 뿌리내어 엉킨다. 저자의 노고에도 고통에도... 머리 숙이며... 

 

 

 

blog.naver.com/bomnalbam/60029868189 

 

뱀발.  

1. 이관술을 이어 읽고 있다. 경성트로이카를 낸 후 이관술의 딸과 손녀들에게서 연락이 왔다한다. 해후하는 장면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후 울산지역에서 지역조사한 기자와 국사학자의 도움으로 자료를 더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성트로이카에서는 사망이 불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는데, 이 책에선 1946년 5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되고, 1950년 7월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깊숙히 빨려들어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역사의 고랑도 이렇게 거침없이 앞에 다가서는 것인지?  

2. 지난 화면 속에 놓인 [대화] 책의 내력과 박진수 화가, 박진환 조각가의 작품이 보고 싶어진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물끄러미 저 멀리까지 이어지며 다시 스며올라오는 것인지? 보문산을 오르내리며 오던 소나기와 이야기들이 겹친다. [누란]에서 이야기하듯, 고스란히 전수되어 내려오는 것이란 일제의 검경시스템만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맹이는 다 빠져나가고 너도나도 사회주의자 맛을 우려내고 선사하고 있는 것은 자산이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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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04: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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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