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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28 

15돌을 맞는 모임의 나왔데이(홈커밍데이)에 다녀오다. 지난 사진 속엔 콩알같은 딸내미도 있고 고인이 된 벗들. 기억이 겹쳐 뭉클하다. 아끼는 사람들. 모임의 경계로 접어들면 또 다른 느낌이 다가선다. 15년이란 시간은 무엇을 보듬기보다는 무엇을 해내야한다는 강박이 있어 그 경계가 보이려하는 것은 딱딱함은 아닐까. 그러다 좀더 다가서면 좋은 이들과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일상의 관계의 두꺼움이 녹아있지 않음은 무엇때문일까? 란 느낌이 다가선다. 그런데 권위와 세력이란 것이 있다면 그 권세를 누리려하는 보수적 성향이 섞여있는 것이다. 말들 가운데 15살의 권위를 지키려는 것이 지나쳐 보이고 말랑말랑하지 못하는 서먹함도 느껴지는 것이다. 지켜보던 관심이 왜 통하지 않는 것인지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생동감이 느껴지기위해 몸으로 사는 고생도 얼핏 보인다. 

모임을 아끼는 이들. 그렇지만 내것이란 안위가 들어서 모임의 각질을 벗기지 못하는 관성도 함께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서 유연의 관성, 초심의 꿋꿋함이 자라거나 번지지 못하는 힌트도 보여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이들과 몸으로 트지 못해 이렇게 관계가 자라지 못한 후회도 밀려오는 것이다. 어느 모임이나 씨*의 버*치가 있고, 아***의 연*부가 있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고 단단하다. 그런데 왜 그 각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없는 것인가? 할 것만 생각하다보니 발밑의 권세를 누리려는 욕심마저 보이는 것은 아닌가? 대화의 행간을 오르락내리락하다보니 아쉬움만 잔뜩이다.  

사회에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모임에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공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은 아닌지? 회원의 긴장은 없어지고 삶은 이야기되지 않고 하고싶은 이야기는 표피만 왕복할 뿐 수면아래로 내려오려는 기미는 없다. 있어도 없다. 말 안주로 들어갈 틈도 없다. 그 관성을 흔드는 것..모임의 정체를 흔드는 것. 그래서 함께 흔들리는 것. 함께 흔들려 불안하더라도 느낌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모임의 경계가 말랑말랑해져 다른 모임들과 격이 없어지는 것. 그래서 서로가 들낙날락할 수 있는 관계의 융통성이 생각나는거다. 

벗들은 지난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왜?란 질문과 느낌. 왜?를 묻지 못한다면, 왜?를 느끼지 못한다면 모임은 삭고 바래고...간절함이 서로의 벽을 트는 것은 아닐까?  미안함과 아쉬움이 밀려든다. 새벽이 깊다. 

100426 운*위 

이러다가 사람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그 때, 그것은 그때 생각할 일이다. 아직 몸도 트지 못하고 있는 사이들이다. 나의 주춤이 밉다. 경계는 애초 없는 것일텐데. 몸의 각질이 무섭다. 사랑은 뭉클한 것이겠지. 사랑은 판단유보이겠지.  

뱀발 1. 반*역에 차를 두고 지하철로 이동하다가 시간과 타자에 정신을 빼앗겨 한 정거장을 지나치다. 도청 앞 지하상가는 이전의 기억들을 몸으로 토해낸다. 그래 이자리, 이곳, 이 기분. 그리고 그 기운의 차이를 해석해낸다. 시간이란 것이 있어 타자와 공극을 매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삶을 공유할 수 있다면 서로 덜 망가질 수 있겠지. 내 것을 네가 가져간다면 그래도 조금은 위험이 분산되겠지. 네것을 내가 가져온다면 네 마음이 조금더 여유로울 수도 있겠지.

2. 마음의 연서를 남기고 오다. 미안함의 반성문을 남기고 오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의 각서를 남기고 오다. 그렇게 살지마라의 해라체를 남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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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먹구름이 간간히 비친다. 먹구름은 달을 품고 달을 여는 일을 되풀이 한다. 바람의 조짐이 수상하다. 천천히 몸을 연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바람이 몹시 짙은 날. 조금은 두툼하게 챙겨 나선 주로엔 산책나온 이들이 적다. 서녘엔 별이 드러내고 더 감청인 구름들이 더 짙어지고 있다. 몸에 땀의 기운이 번질 때, 하늘은 옅은 주황을 먹고 있다. 하늘의 절반, 검정 먹구름은 간데 없고 옅은 주황의 기미가 완연하다.

약간의 허기를 간직하는 식사처럼 땀의 갈증이 필요한 날들. 몸은 늘 정직하다. 몸은 긴장을 먹고, 웃음을 머금고, 바램을 먹고 물리적 시간에 바래고 여유의 출입증으로 요구한다. 눅눅해지고 축축해진 몸. 그 몸의 혹사가 빚어낸 순환고리들.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솜이불같은 몸에 뽀송한 땀햇살을 넣다. 그래야 물기가 빠지고 땀한잔의 요기는 몸의 호사를 낳는다.

구름과 달의 숨박꼭질을 보다나니 별들은 더 초롱초롱하다. 일용할 땀들이 반짝인다. 마음들의 행간을 살피다가 잠들다. 철학-심리학-뇌-마음-몸의 변주가 즐겁다. 물론 땀의 후유증으로 꾸벅꾸벅 주황으로 졸긴 하였지만 동원된 근대의 그늘을 마저 살피다가 잠든다.  4k 30'
 


뱀발.  끊임없이 소식들은 퇴행을 거듭한다. 구의회, 구의원을 없애겠다는 폭력들은 사대강만큼이나 일상적이다. 마치 유행처럼 폭압들은 일상을 매운다. 꿈 속에 사랑하는 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의 놀라움만큼 일상이 소스라치게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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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0-04-29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도 무척 스산하더군요. 바람에 비에...몹시도 곤혹스런 나날입니다.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여름을 찾아야겠어요.
 

 

 

  

 

 

 

 

 

 

 

  

 

------굳이 볼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굳이 보신다면!-------



죽음, 체념, 포기...우리는 늘 좋은 것만 삶에서 발라내려 한다. 그리고 좋은 것만 얻으려하기에 지금을 살지 못한다. 지금을 살지 못하니 늘 내일에서 그것을 채우려고만 한다. 포기가 얼마나 강렬한 유혹인지? 체념이 얼마나 희망인지? 절망의 바닥이 얼마나 화려한지 조차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삶이 숨쉬는 것만큼 죽음이 숨쉰다. 

공포도 두려움도 그러하단다. 욕망이라는 것도 말이다. 나란 놈이 얼마나 추잡스럽고 번잡스러운지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여기저기 널을 뛰고 있는지? 얼마나 안위만 고집하는 놈인지? 얼마나 자존심만 버리고 있는 것인지? 그런데 애써 추스리면 추스릴수록 추스리기가 어렵다. 나란 정체성이 이렇다고 규정짓는 순간, 나는 달아난다. 한심하구, 하루에도 수백번씩 더하거나 좀더 채우려고 발버둥거릴 뿐. 그대로 가엾게 보질 못한다.   

나는 사람을 가린다. 편애를 하며 겉으로 그렇지 않은 척, 그냥 편애를 한다라구 어쩌라구. 그냥 그뿐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마치 공평한 것처럼. 편애한다. 그렇지만 편애의 농도나 양을 줄이려 한다. 편애가 조금씩 나눠지면 좀더 즐거움이 더 클까?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내 사랑이 뚝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소유할 애정의 몫이 줄어들까봐 걱정한다. 그 세속이 나다. 그런데 어쩌라구.

허기가 시작되자마자 식욕은 생기는 것처럼 나란 놈을 비우면서 너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아닐까? 나의 허접의 빈 그림자를 채우거나 매꿔줄 이가 너란 사실을? 그것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조금씩 너란 끈으로 나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은 온전히 허접같은 나를 빈 구멍 그대로 인정하면서부터는 아닐까? 

그래서 어쩌라구?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이야기한다. 사회적인 문제, 사회와 연루된 인식은 별도로 이야기하자구. 더 할말들이 많지만 그에 앞서 나만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자유라는 나무는 체념과 죽음, 절망을 거름으로 자란다. 체념을 온전히 맞딱드리거나 받아안을 때, 매일 죽음이 맺는 강열함, 포기의 저편에는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지혜를 준다. 두려워하거나 돌아가려하지 말라고 한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삶밖에 없다. 삶의 너머를 이야기하는 것은 전부 거짓이다. 삶의 바깥을 이야기 하는 것은 허위이다. 삶만 생각해보자고 한다. 삶을 그르친 나를 중심에 넣은 사유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지? 삶은 없고 살아지는 삶, 나만 이야기하고 나의 그림자엔 시선조차없는 앎. 그 앎을 불사르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상누각의 탑을 쌓은 기초인 나는 없다. 그 잘난 체 하던 나는 없다. 별볼 일 없는 나만 있다. 별볼 일 없고, 덧칠하지 않는 날것의 나의 바닥을 들여다본 순간. 너가 들어선다. 너의 하루가 궁금하고, 너의 마음이 궁금하다.

뱀발.  

1. 처세나 명상, 그저 배부른 사람들이 말하는 도나 선, 덕으로만 치부한다. 그 책들이, 그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뒤에서야 그 빈자리를 통해 그를 느낀다. 나의 삶에서 그는 없었다. 삶의 안쪽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말이 궁금하여 이것저것을 집어든다. 삶의 바깥만 다루는 앎들을 보다가 삶의 안쪽을 다루는 이야기를 폄하하다가 소스라친다.  

2. 많은 이들이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앎에 얽매여 단 하루도 온전치 못하다. 많은 이들이 혁명을 이야기하지만 단 한시간도 단일초도 혁명하지 않는다. 

3. 도마위에 올리고 싶다. 삶은 계란이니, 장조림을 하든 안주든, 밥반찬으로라도 올리고 싶다. 삶은 양념이 아니니, 아마 거기엔 뭔가 버무려질지 모른다. 이데올로기인지 이념인지 김수영인지 백석인지 ...지식인들은 삶을 발라내고 제 원하는 것만 안주로 올려놓아...그 많던 지식인들이 삶에 잡혀 먹혔는지도 모른다. 김수영의 마누라도 발려내지고, 뜨거운 일상마저 발려내졌는지도 모른다. 삶을 먹고 싶다. 삶은 계란도, 빛바래 말랑말랑해진 삶도 먹히고 싶다. 삶이 횟감처럼 쳐진다면 아마 혁명이란 안주도 꿈틀거릴지 모른다. 크리슈나무르티가 러셀의 나만이 아니라 너도란 책을 읽을지도 모른다. 

4. 어젠 '포기'를 주제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뜨뜻미지근한 모임을 푸념하며 삶의 거죽을 한꺼풀 벗겨내어서 아린, 서로 아린 만남의 될 수는 없는 것이냐고 한다. 결빙이전의 미적지근한 커피같은 관계란 뭥미라며 헛소리를 해본다. 회색으로 삶을 저당잡히지 말고, 있지도 않는 진보를 마중나간다고 하루를 늘 까먹으며 사는 이들. 지난날의 미련을 영광삼아 집요하도록 권력과 명예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이들. 명예와 권력에 삶을 까먹는 이들. 이념에 사로잡혀 단 하루도 즐겁지 않은이들. 

5. 푸념들이 줄을 선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내 마음들이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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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홀로행복이 아닌 서로행복론으로 다가서기??
    from 木筆 2010-05-14 13:42 
    행복한가? 행복에 갇히다보면, 행복의 지침서를 보면 행복의 길이 보이는가? 행복의 길이 나를 열어 젖히는가?  그 행복의 길이 부푼 풍선처럼 머리의 위안만 되는 것은 아닌가? 행복안내서가 한결같이 나를 빵빵하게 만들고, 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기획이 나만의 행복을 전제로 해서 애초 너는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닌가? 행복 지침서는 너를 배제하였으므로 오로지 나에 대한 문건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처음부터 서로행복을 기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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