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생-대체 ] 드레싱의 조력발전과 환경이란 에피타이저.


석탄이나 석유에너지란 말을 쓰지 않고, 대체에너지나 재생에너지를 곁들이면 진보의 향기, 약간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때가 지금일까? 바이오 디젤이 갖는 이미지는 어떠한가? 그리고 그것이 대량유통되는 이미지나 또 한차례 돈을 만드는 배경으로 분칠을 하면 어떤가? 그래도 재생에너지도 대체에너지인데 봐줄만 하지 않는가? 자본과 국가의 정책에 농락당하며 새만금에 백기를 꽂으며 투항한지 얼마되지 않는다. 자본의 공격에 5부능선, 8부능선을 조금씩 함락당하며 마음들도 초심에서 점점 물러나려 하는 것은 아닐까?

미리안이란 과학기술정보의 뉴스레터를 보다가 조력발전이 궁금해진다. 환경과 연계성을 고려한 자료들이 있는지 검색을 해본다. 34만건 가운데 40여편이 나온다. 하지만 조력발전의 근황에 대한 소식일 뿐 환경과 연계성을 염두에둔 리포트는 거의 없어 보인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의 소식 한편만 곁들여 있을 뿐이다. 또 다시 궁금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서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력발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조력발전이 가능한 지역은 연안주변의 낮은 깊이의 바다에서만 포착된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20여개 지역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곳 말이다. 그런데 낮은 깊이의 바다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곳이라고 하면 이 후보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해양 생물체들의 산란지이자 생태학적으로도 예민한 해협이나 어귀부분일 확율이 크다. 경관도 무시못할 것 같다. 네덜란드의 한 곳은 유네스코의 세계 보전 지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대체에너지와 재생에너지에 열광하면서 정작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닌가? 아마존이 바이오디젤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숲이 없어지고 옥수수나 유채, 콩으로 수확장으로 또 다시 무늬만 바꾼 성장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은 아닌가? 뭔가 이것이 아니면 저것으로 쏠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풍력에너지가 좋다고 한곳에 무리를 지어 너도나도 발전기를 세우는 것이 무엇을 닮지 않았는가? 지방자치제마다 축제를 한다고 여기저기 똑같은 잔치가 생각나지 않는가? 너도나도 녹색성장한다고 한다는 빌미로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에 조력발전이란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면 가로림만 조력발전 기사가 나온다. 우리는 서해안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고 있다. 저기 강화에서 저기 남쪽 울돌목까지 공모도 이런 공모가 있을까? 4대강이 문화적 유산, 동물식물의 보고라는 것에 아랑곳없이 그저 고속도로 놓듯 저렇게 새로운 포크레인 어종으로 이식시키는 일은 많이 닮았다. 조력발전 건설에만 연구가 있지, 연관된 해양생태, 철새, 갯벌, 어종, 문화, 역사에 대한 단 몇편의 연구도 보기 힘든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돈벌이를 생각해도 돈만 밝히는 그런 수준은 아닐까? 그렇게 공모하는 무관심의 우리생각이나 대체-재생이라고 하면 마음을 놓는 우리의 수준도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 이렇게 원색적인 돈벌이에 녹색이 끼어 들어왔다. 우리 지역 땅값만 오르면 되지 그것이 내가 돈버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습속이 그것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이분법이 문제를 낳는 것은 아닐까? 늘 좀더 깨끗하고 좀더 청량하고 좋은 곳을 갈망하면서도 왜 일상에서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것일까? 왜 관심은 멈추고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일까?

내일 유네스코에서 우리나라 서해안은 세계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연구논문이 나오면 다들 부화뇌동할까? 이것에 앞서 이런 질문들이 유통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조수가 얕은 바다생명체에게 불필요한 것인가? 조수흐름 변화가 영양분의 공급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다들 좋아하는 손익은 단기간말고 수십년 수백년의 시간함수?

그렇게 유행에 휘둘리는 관심, 돈되는 것만 밝히는 무의식이 여전히 가로림만을 도매금에 넘겨주고 있는 현실을 웅변해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해안을 권력에 상납을 하다시피 하였다. 단기 정권은 대형 국책사업을 기획하고, 성장논리의 순환늪에 빠져 장기적인 기획은 아예 없는 듯 싶다. 저지르고 메꾸는 순환의 논리는 늘 자본의 성찬에 상납한다. 재생에너지와 대체에너지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가? 성장을 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하는가? 그렇게 대형으로 성장해서 당신의 살림살이 나아지셨는가? 간척지의 개간으로, 땅값이 올라 아무 문제없는가? 전국토를 수도권의 향기가 퍼져 행복한가? 마음은 20대인데 몸은 70대인가? 혹시 우리의 감수성은 몸도 70대이고 마음도 70대인 것은 아닐까? 당신의 시선이 철새로, 저기 포말부서지는 파도로, 회향하는 어종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어부로....아프지 않으면 그 불감으로 여전히 콘크리트는 바다 가까이로 향한다. 돈가진이만의 시선이 지배하는 현실로 사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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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10-05-1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업의 CEO 시스템에서 장기적 비전을 바라볼 수 없고, 단기 차익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권 역시 이런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게 되는데. 장기적 비전을 가진이가 대통령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장기적 비전을 실행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게 문제인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강한 권력자의 장기 집권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자본주의는 심각한 자기모순의 시대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해안을 권력에 상납을 하다시피 하였다" => 이말이 참 뼈아픕니다. 2년 전에 새만금, 올해 4대강-대운하 건설을 보니, 개인은 참 무기력하더군요.
 

봄꽃에 취한 눈,
푸른 산의 어깨에 다가서면 풀에 베이듯 마음이 물든다
봄에 먼 눈으로,
풀의 산 가슴에 다가서면 푸른 내음 속삭여 마음도 물든다 

풀으게 물든 마음으로 저 산자락의 손끝을 보면 푸른 맘, 푸른 맘 푸른 멍든다

 

뱀발. 1  산에 시선이 걸리면 어쩔줄 모른다. 어느새 산등성이를 넘고, 어느 새 점령당한 마음은 같은 속도로 색을 뱉어낸다. 꽃의 계절은 어느새 이렇게 멀찌감치 물러서야 하는 때인가 보다.  

 

무리지은 생각들도 유행과 같아서 다른 생각들이 그 속도를 뚫고 뿌리내리거나 다르게 생각할 틈도 얻지 못한다. 속도 경쟁이 이 영역까지 쳐들어왔는가 싶지만 실뿌리가 있는 다른 생각이 자꾸 휩쓸려 가기만 한다. 닻의 무게, 색들인 액체 생각이 절실하다.

 

뱀발 2. 안달일까? 생각의 닻이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 생각들을 깊게하지 못하는 이유가, 생각해야한다는 관념만이 흘러, 정작 고민의 닻이나 생각을 해야할 지점을 놓치거나, 고민해야한다는 흔적만 있을 뿐, 무엇을 다르게 해야하는지란 구체는 없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일까? 생각 한가닥을 올려내어, 다른 생각의 날줄과 섞는다는 것, 그 결합이 얻어내는 아픔이나 서투름, 다툼을 감안해내지 않는 생각들. 고민하는 힘처럼 힘에만 방점이 찍혀...정작 고민은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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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8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9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 그림자가 없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우리는 자본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우고 이땅에 살고있다.
우리는 성장중독의 역사적 숙명을 쓰고 이땅에 살아간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사명을 외우다가 정작 외울것도 못외웠다.
우리는 자본중흥의 사명을 띄우가가 정작 놀것도 못놀았다.
우리는 성장중독의 숙명을 쓰다가 정작 살것도 못산다.
우리는 사명과 숙명을 대물림하다간 이렇게 또다시 민족중흥의 역사적사명을 띤다.

우리는 사명과 숙명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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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릿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노르망디도 연희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초토작전이나
「건 힐의 혈투」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싸일렌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식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다……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
응응…… 응 …… 뭐?
아 그래 …… 그래 그래.

<1960. 4. 3>

>문 - 하나>

뱀발. 

1. 화요일에 하지 않는 화花요曜모임이 있다. 생경한 언어의 집합인 조교수님의 책을 살피다나니 말들이 머리 그물 사이를 빠져나간다. 도망쳐나간 용어들을 다시 붙들어쥐고 씨름을 하다가 몇 놈들이 남는다. 몇 년들이 남는다. 사후약방문인지 모르겠지만, 사전약방문일지 모르겠지만 남는 말들은 모순적 복합성, 헤게모니, 헤게모니의 형성, 균열, 압축적 모순이란 말들이다. 안티진보, 반독재의 그늘엔 진보의 문제가 고스란히 결빙되어 있다. 

2. 시 한편이 들어온다. 개발동원체제로 칭하는 지난 흔적이 사무치도록 맺힌다. 여전히 해동되지 않고 이렇게 입만 살아 나불대는 내가 밉다. 혹시 참고가 될까하여 발제의 흔적을 괄호안에 넣다. 마지막 문을 참조하시면 대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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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사명과 숙명 사이를
    from 木筆 2010-05-07 10:16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우리는 자본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우고 이땅에 살고있다. 우리는 성장중독의 역사적 숙명을 쓰고 이땅에 살아간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사명을 외우다가 정작 외울것도 못외웠다. 우리는 자본중흥의 사명을 띄우가가 정작 놀것도 못놀았다. 우리는 성장중독의 숙명을 쓰다가 정작 살것도 못산다. 우리는 사명과 숙명을 대물림하다간 이렇게 또다시 민족중흥의 역사적사명을 띤다. 우리는 사명과 숙명의 사
 
 
 















꽃도, 녹음도, 도심도 더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더 뜨거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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