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고 있는 책 

 

 

 

 

 

 

 

 

 

 

 

 

 

 

참*, 도*관, 책구입 등 책욕심이 화근이었던 것인지? 책읽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중동난 생각들이 이리저리 접붙지도 못하고 달랑 달랑 제자리에 있거나 뭉게져서 살펴볼 수도 없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을 키우는 것이 나은 것인지? 정교해져야 하는 것인지?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비에 불쑥 자란 잡초들처럼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생경한지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이다. 굵직굵직한 방향을 가진 책들이라 그리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펼치기가 두렵거나, 남겨두어도 염두에 박혀 있다. 날이라도 잡아 무진기행이 아니라 핑계삼아 섬 버스라도 잡아타거나 기차를 타고 눈에 밟히는 남도자락이라도 안주 삼아 책을 봐주어야 할 것 같다. 문득문득 지도를 보다나면 섬들에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스스로 발견하고 멈칫한다. 

2. 읽어야 할 책 

 

 

 

 

 

 

 

장마비처럼 내리는 비는 느티나무 잎새가 가려진다. 밤은 익고, 눅눅한 습기에 잠을 깨는 아침. 점점 짙어가는 초록은 진초록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서야 거꾸로 5.18의 밤을 맞고 있음을 실감한다. 왜 이리 검은 먹지로 덧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이가 없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처럼 일상을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향수에 취한 자들은 기억을 검게 덧칠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일터점심 곁의 정치이야기들이 생경하다. 밀려두며, 읽었거나 읽어야 할 책. 구입해야할 책들...노신의 묵자, 장자, 공자, 노자의 이야기는 단편임에도 그 깊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3. 읽어야 할 사람들 

사람들과 대면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길이 문득문득 난다. 사람이 열고 내고 있는 길들 사이로 들어가 말도 걸고 싶게 생각을 번지게도 하고 싶은데 열길 사람 속으로 향하는 길들을 모르겠다. 불쑥 불쑥 앞에 서있는 사람도, 저기 있거니 했는데 어느새 옆으로 바삐 지나가고, 어느 새 삶을 빨리 들어, 체하기나 한 것은 아닌지? 불쑥 아카시아향과 등나무꽃의 실루엣을 보며, 열정의 깊이만큼 느리게 가지 못함이 안스러워진다. 연두색이 짙어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바쁨이 얄미워지기도 한다.  

 

4. 품에 안고 싶은 나무들, 기대고 싶은 나무들 ...

연두색 잎새엔 쌀밥이 한가득이다. 고봉가득 나무 마다마다 이밥은 천지다. 배부르지만 배고프다. 아카시아향이 묽어졌다. 벌들도 지친 듯, 여기저기 벌들이 사라졌다. 목련 잎에 목련을 품에 안고 싶다. 그 질감과 잎새의 흔들림....갈수록 한촉 한촉 더 피는 느티나무 새순과 그늘에 기대고 싶은 낮...저녁....달콤한 땀 한줌이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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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수신문,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2003)
    from 노는 사람 Play In 2010-05-19 03:37 
    book_title: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subtitle: 現代 韓國의 自生理論 20 editor: 교수신문 cover_design: 김경아 publisher: 생각의 나무 date_issued: 2003-10-17 list_price: 22000 list_price_currency: KRW ISBN: 898498275X (via) 책을 펴내면서 -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의 학문사적 의의, 이영수(교수신문 발행인) 글머리 '..
 
 
2010-05-20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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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공해야 하는 것인가? 

 성장해야 하는 것인가?   

 

2.  

성공해야 한다는 반의식이 끊임없이 성공한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성장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한없이 더 가져야하만 한다는 초조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3. 

 그렇게 강박이나 초조함이 우리 의식의 절반이상을 점유하여 나날을 우일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준도 없는 성공한 자를 만들어내어 자신을 추락시키고, 소수를 위한 성장의 풍선을 만들어내어  점점 비굴을 키우는 일이라면 

  

4. 

 성공하지도, 성장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들이 

 성공해야한다는 사람들의 강박을 다독이고 

 성장해야한다는 사람들의 초조함을 풀어내어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성공과 성장의 수혜란 무게중심을 내려오게 하는 것은 아닐까? 

 

5. 

성공하지 말자. 성장하지 말라라고 외치는 것이 좀더 많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고, 좀더 성공을 저 높은 것이 아니라 좀더 낮은 곳으로 이끌며, 좀더 옆과 아랫 사람들을 안중에 두는 성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6.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제발 성공하지 말자. 제발 성장하지 말라란 기도문을 자본주의 신자에게 내리는/올리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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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부터의 자유

1. 

행복한가? 행복을 밝히다보면, 행복의 지침서를 보면 행복의 길이 보이는가? 행복의 길이 나를 열어 젖히는가?  그 행복의 길이 부푼 풍선처럼 머리의 위안만 되는 것은 아닌가? 쾌락과 현실의 간극처럼 꿈만 부풀리는 것은 아닌가? 행복안내서가 한결같이 나를 빵빵하게 만들고, 나만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의 기획이 홀로 행복을 전제로 해서 애초부터 너는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닌가? 행복 지침서는 너를 배제하였으므로 오로지 나에 대한 문건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처음부터 서로행복을 기획하지 않았으므로 이것 역시 고독의 지침서가 되는 것은 아닌가? 처음부터 어깨동무는 안중에도 없으므로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위안의 약물 복용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없고 그리운 너로인해 내가 있는 것이라면 같이 보고 느끼고 감응하는 우정은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겠지. 같이 다르게 또 풍부하게 전달되고 느낌의 화수분, 고갈되지 않는 시선들. 너와 나의 통로가 어깨동무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

고독의 행복은 저리가버리고, 우정도 사색도 자유도 이루어야할 것이 아니라 당연하거나 한몸이 되는 나-너의 어깨동무 시선으로 시작하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그런 것이 서로 행복이라면, 자유도 사색도 우정도 곱씹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라면, 서로행복할 꺼리는 무엇일까?

그러면 질투, 걱정, 열정, 권태, 죄의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토의 확장이 나만에 갇히지 않고, 환대의 경계가 어디까지 열려있는 것일까? 아픔의 확장이 어디까지 넓혀지는 것인가? 너를 찾는 이들이 너를 찾아 행복했던 과정은 늘 닫힌 [나-너]의 1인칭으로 끝나버렸던 것은 아닐까?

2. 

행복이란 것이 나만의 에세이가 아니라 -나 - 너-의 에세이라면 너로부터 대여받은 나의 행복은 필연으로 너를 확장하는데 있다. 나만으로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너로, 저기 먼너로 넓혀질수록 나는 행복하다. 너의 행복에 민감하므로, 나만의 행복으로 가두는 것은 행복의 몫이 줄어드는 것이다. 머리란 자족의 외피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몸의 확장과 몸의 사유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머리와 몸 경계의 차이와 간극이 될 수 있으면 작아지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행복이 머리에서 배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영역으로 내려오는 일이다. 몸의 행복에 닿아서야 행복을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행복이 나의 머리에 그친다면 끊임없이 또 다른 머리의 행복이란 약을 주입해야 한다. 머리는 또 다른 행복의 자극에 시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독의 철학뿐만 아니라 고독의 행복도 행복을 독점하는 엘리트만 키워내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행복해지는 행복은 홀로행복이 머리 속에 갇히는 것을 경계한다. 나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너를 깨운다. 나는 너로부터 있는 것이기에 너에 붙어있는 모든 것에 민감하다.  나는 없는 것이라거나 깊숙히 판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이 너로부터 채우는 것, 주체에 대한 선입견을 지워버리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징검다리는 아닐까... ...

 

 

뱀발.  작은모임에 부지런히 참석해보다. 일터일로 시간이 겹쳐 저녁 시간에 대기 힘들 줄 알았는데 묘하게도 서울출장부터 몇템포가 바뀌니 행복하게 시간이 난다. 덕분 이렇게 참관과 참석을 번갈아 모임 속을 들어가본다. 보거나 느끼는 시선들이 다를 것이라고 여겼지만 선입견의 그늘은 선명한 듯 싶다. 말과 느낌이 섞이다보니 별반 대별될 것도 없지만 내내 이야기의 전제가 스며든다. 모임에서 서로 나눌 자리가 없다면 이 책도 홀로대면하고 잊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누다보니 당위의 말들을 곱씹어보게 된다. 그리고 한번쯤 생각을 좀더 키우고 싶다는 건넘는 만용도 서는 것이다. 그래서 두서없이 생각의 고삐를 당겨본다. 말들이 어디로 갈는지 모르겠지만, 마음닿는 이가 있다면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삐뚜루한 시선이 들어서면 여름에도 춥고 낮에도 외로움이 칼날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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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님의 침묵의 첫머리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기룬 것에 멈칫하다 여러편을 살피다 그리운 것이겠지라고 해본다. 조금 살펴보니 그리운 것이다. 헌데, 기룬 것이 '기울인'이나 '기른' 것으로 잘못 새겨보고 싶다. 이별과 눈물과 죽음.....그의 말을 쫓다가 지하철을 내린다. 자칫하면 오늘도 지나칠 뻔, 우거질 녹음 사이로 시를 몇편 더 마음에 담아본다. 또각또각 손전화에 열중하는 아가씨의 걸음걸이가 같은 속도로 저녁 어스름을 가른다. 

두 모임 동시에 있다. 그래도 조금 서늘한 모임을 골라본다. 온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준비의 농도가 조금은 약한 것은 아닌지, 청강하는 내내 준비해오지 않은 발제문을 읽는 듯 불안하다. 사전 교감, 문을 들어설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이나 몫이 그래도 제법 길다운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청강 덕에 낙서만 남다. 때를 놓치듯, 모임의 색깔이 바뀌려면 그래도 척은 해야하지 않을까 뜨듯 미지근한 만남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서운함이 밀려온다. 0*과 *0 그리고 나* 100512 

선배의 다리로 오랫만의 바쁜 기*단과 자리를 나누게 되다. 할 얘기 느낌들은 왜 이리 더디게 흐르는 것인지? 사소함의 자리나 연결고리들, 그 몫을 피하거나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만남이 없는 동색은 딴색은 아닐까? 자주 만나고 마음을 풀고, 일로 빈 간극을 채우고 섞이는 과정 뒤의 새로움이 설레이기도 한다. 하고 싶은 얘기, 나눌 꺼리들은 많지만 몸이 움직이고 난 뒤로 잡아 보자. 100511 

바람이 좋은 날은 많지 않다. 로드 카페에서(슈퍼앞 땡땡, 전주 전일슈퍼생각이다.) 한잔 술과 얘기가 곱다. 행복하냐는 질문이랑 이 노친데 여성에 대한 편견과 노망끼까지 언설을 펼치는 재잘거림이 느티나무 잎을 닮다. 기획이란 무엇일까? 못볼 것은 보는 것이겠지. 그리고 곰삭이는 일, 봉우리즈음에서 마음이 막힐 때, 다른 이의 마음의 시선을 빌려보는 것이겠지. 편안히 너를 등에 대고 하늘을 보고 땅을 보게 하는 일. 그런데 우린 참 바쁘다. 어디에서 마음이 막힌 것인지, 그 마음의 골목길엔 관심이 없다. 골목길 넘어만 관심이 있어, 그것을 보기 위해 저리로 바쁜 듯 돌아간다. 막다른 골목길 담벼락을 올라가려는 이도 없지. 그래 미리 못볼 것을 미리 간보는 일인데 손가락을 내밀지 않는다. 마시려고 할 뿐, 메인메뉴만 기다릴 뿐... ... 

모임이 늦어 급한 술과 얘기를 같이 털어놓는다. 취기가 바람결처럼 오르내리고 바람좋은 늦은 봄밤처럼 살랑인다. 늘 이 밤만 같다면, 늘 이 색만 같다면... ...  100510 

 

 

 

 

마음의 손자락에 잡히는 연초록을 모으다보면 연푸르름을 안고 연새록에 눕고 맑은 연두 한방울 우려내어 마셔도 될 듯 눈에 시린 녹음은 다가설수록 길을 잃고 이내 푸른 마음도 찾을 길 없네 

출장길 연초록이 너무 좋아 그리운 이들에게 문자를 넣어본다. 답장이 하루 뒤에 오는 것은 어인 일. 1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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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어린거리는 목련은 여림과 진함을 오가며 흔들린다. 그 바람이 궁금하여 창문을 열고 바람결과 목련잎을 즐기며 깜박이는 잠을 즐긴다. 산들 간들 저 녹음에 누워 산들산들.. ...  산들바람과 산들꽃이 깜박이는 거리를 달리다.  오랫만의 달림. 마음은 반가운데 몸은 그렇지 않은지 그들을 찾으며 한바퀴 달려주다. 몸의 노독은 나비잠도 쪽잠도 부족한 듯, 연신 책을 앞에 놓고 졸음에 곤두박질치는 스스로를 본다.
 

긴 잠을 잔다. 꿈들이 황망하며 짙다.   10k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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