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입구

 

여자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또다른 국면에서는 미늘에 걸린 물고기들이

죽음을 향해 튀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수동 카메라로 여자의 여름을 함께 들여다본 사람

불가능을 사랑했던 시간과 풍랑이 잦았던 마음

잠시 핑, 눈물이 반짝입니다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의 비늘도 반짝입니다

모든 오해는 이해의 다른 비늘입니다

아픈 이마에선 눈물의 비린내가 납니다

생각해보면 천국이 직장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또다른 국면에서는 사랑도 직장처럼 변해갑니다

 

사, 라, 합, 니, 다

이응이 빠진 건 눈물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을 빌려 읽기도 합니다

 

 

 


흑국보고기

 태백

               

쓸쓸하고 퇴락한 나라
서럽고 황폐한 나라
걸인조차 돌아오지 않는
유령의 나라
진폐증을 앓는 검은 뼈들이
화광(火光)아파트 베란다에서
검은 해바라기 꽃으로 피는 나라
아버지의 청춘이 묻힌 나라
어머니가 늙어가는 나라
방문을 향해 놓인
주인 없는 신발들만 사는 나라
주인 없는 신발들만 우는 나라
내 아버지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주항항 광부였고
내 어머니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합숙 밥해주는 아줌마였지만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한번도 대한석탄공사 연탄처럼 활할 타오른 적도 없는

막장 같은 나라
뼈만 아픈 나라
천제단도 있고
발원수도 샘솟지만
무저갱의 검은 피만 쏟아지는 나라
서럽고 황폐한 나라
(태백이 아니라
태백이 아니라)

 

 

 

볕뉘.

 

어느 날, 마음에 먼지가 날 즈음이 되면, 지인들에게 몇권의 책추천을 건네받는다. 한 시인에게서 받은 문자에는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라고 찍혀있었다. 마음에 아마 먼지가 폴폴 날린 날 서점에 들러 시집에 대한 갈증에 허겁지겁 챙겨왔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그러다가 가을도 허겁지겁 도망가는 날, 그 시의 집을 건네들었고 옹알거렸다.

 

시인도 시인의 고향도 잘 몰랐다. 하지만  공간을 공유한 느낌에 참 마음은 묵직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부친이 군인으로 그곳에서 만나 결혼을 한 어머니의 외가 소식을 다 알지는 못한다. 당신들은 말하셨고, 많은 아픈 얘기를 감추셨고, 아직도 다 귀기울여 듣지 못하고 들었던 이야기는 서로 섞이거나 잊혀진 것도 있다. 어린시절이 증명사진처럼 마음에 남아있는 그곳은 지금쯤 함백산 정상은 벌써 눈으로 뒤덮일 것이고, 가을 키큰 해바라기와 낮은 집들 사이 아이들의 소리와 동선을 따라 고추잠자리가 지천으로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거슬러 올라가 여름은 멱감기 좋은 곳들, 하루종일 산으로 돌아다니던 그곳에서 부모님의 삶은 없었다. 시인의 시집에는 마지막 두 구절이 없었다. (태백이 아니라, 태백이 아니라는 빠졌고 제목의 부제로 올라와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의 삶을 자꾸 담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

 

그리고 눈물의 입구라는 시도 소리내어 읽어 보았다. 사,라, 합, 니, 다 하지만 이렇게 이응이라는 눈물이 빠진 곳은 천국도 직장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사랑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눈물을 채울 수 있도록 애틋한 곳이 많이 늘었으면 싶다. 가을은 눈물의 습기가 너무 말라 하늘이 지나치게 푸르른 날이다.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라는 제목의 시도 시집안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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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전은 몇 점 건지지 못하다.

달빛도 좋아 봄밤생각도 어른


 

봄밤

 

안현미

 

 봄이고 밤이다

 목련이 피어오르는 봄밤이다

 

 노천카페 가로등처럼

 덧니를 지닌 처녀들처럼

 노랑껌의 민트향처럼

 모든 게 가짜 같은

 도둑도 고양이도 빨간 장화도

 오늘은 모두 봄이다

 오늘은 모두 밤이다

 

 봄이고 밤이다

 마음이 비상착륙하는 봄밤이다

 

 활주로의 빨간등처럼

 콧수염을 기른 사내들처럼

 눈깔사탕의 불투명처럼

 모든 게 진짜 같은

 

 연두도 분홍도 현기증도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사랑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방인이 될 수

있다

 그해 봄밤 미친 여자가 뛰어와 내 그림자를 자신의 것

이라 주장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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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4-11-0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습니다. 아래 민화 속 봄이 아름답습니다. 보옴처럼 포근하네요..

여울 2014-11-03 16:17   좋아요 0 | URL
포근한 댓글 감사합니다. 11월엔 따듯한 마음들 더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사람들의 따듯한 결은 언제나 봄빛일 것입니다. 추위에도 마음 속 꿀을 따러다니는 나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말 민화전시회가 생각나 들러본다. 궁금하여 물어보니 복지관 민화 수강생들의 작품이란다. 65세 이상 되신 어르신의 작품이라는데 십여년 하신 분들이 많다는 전언이다. 도록을 커피값하신다고 2천원에 파신다. 아마추어티가 팍팍나게 만드셨다. 소일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일 것이다. 식구분들이 가져다 놓은 화환들도 다정스럽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목련을 그리되 목련을 마음에 넣지 않고, 새를 그리되 새가 꽃에 살갑게 다가가지 않았다. 몇분이라도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억들도 넣도록 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은 욕심이겠지.  아무튼 따듯한 그림에 마음이 따듯해져 봄도 님도 다 그리워져, 객지에서 달뜬 마음에 술한잔 부어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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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을 뜨다. 아! 침대가 낯설다. 옷을 입은 채, 어깨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 여기가 아닌데... ...부시시 화장실에서 얼굴을 가다듬고 시계를 보니 예약해둔 열차시간이 지나버렸다. 아~ ㅠㅠ 서둘러 다음 기차 예약을 하고 택시를 집어탔다. 비가 얕게 내렸다. 역앞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기다린다. 건너편에 우산을 쓰지 않은 몸이 불편한 이가 눈에 들어온다. 신호등이 켜지고 그이를 의식하며 지나친다. 그제서야 그는 우산을 편다.

 

 

상상 편집위의 흔적을 돌아보다 신대표는 출판사나 기타 등등은 운영위로 올라와야 할 사항이라고 챙겨둔다. 지난 사업계획을 의식하다가 미진한 일들을 곰곰히 나눈다. 작은 강좌 "너의 목소리가 들려" 택시노동자의 이야기나 외국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실태를 듣고 나누다보면 또 다른 기획꺼리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주문이다.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내년 일꺼리로 연계가 되듯 꼭지들을 나누고 잘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문제의식을 직접 듣고 나누고 하는 자리가 되기도 하고 상상잡지의 베이스 역할도 할 수 있으니 이것저것 물고물리면서 만들어가는데 모두 큰 공감이 쏟아진 듯 싶다. 이예선대표님이 중등교재를 같이 준비하고 있는 배재대 다문화센터의 한분을 섭외해서 가까운 시일내에 물꼬를 트기로 했다.

 

주제가 있는 토론회로 시민대학 진행경과를 보고받다. 토론자 섭외가 아카데미 분들 위주로 되어 있어 바람직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균형감있게 수강자, 시민대학 측을 섭외할 수 있도록 주문한다. 아카데미도 수강해보거나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교육, 정치교육이라는 주문을 하는 기획의도가 조급해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발제자도 정확한 사항을 모르고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카데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월담을 통해서 객관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시의원의 협조를 받으면서 6개월뒤 토론회를 기획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는 의견을 나누면서 격의 없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획하고 고민을 나누고 숙성하는 것에 대해 나누다.  예전에는 술자리 기획이 그래도 통했는데 동맥경화인지 나이브한 것인지 일상적인 것에 치여 기획도 숙성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옥상옥처럼 위원을 선정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 듣는 것도 기획은 되지만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대표단이 오늘처럼 만나 이야기나누고, 사무국은 나름대로 맨토맨으로 만나 기획꺼리 구하고, 운영위도 내년총회까지 하고싶은 꺼리들을 가지고 나눴으면 좋겠다고 하다.

 

 

소모임들도 따로따로 모이지만 주제를 가지고 만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냥 모임별 옷색깔만 코디해서 불쑥 색다른 '색색모임'을 해서 얼굴도 안면도 익히면 좋을 듯 싶다는 말씀들이 있었다.  회의 중간중간 이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회혁신운동이나 한권의 책 어떻게 기획되고, 무슨 의도에서 진행되며 어떤 반향을 일으키게 될지 고민의 맥락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한마디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잘 되기를 바라고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심경은 모두 같을 것이기에 말이다.

 

화로구이에서 친구보다 더 다정한 '고삼 딸'이야기를 듣고, '미리 기획하는 법'도 나누고 싸지 않은 맥주에 남은 마음들, 그리고 깊은 이야기들 마저 나누다가 불쑥 늦었다.

 

초록불이 들어오고 어깨 통증도 가셨는데 그는 왜 우산을 폈을까

 

ㅊ.ㅅ : 기차 끝편으로 옅어지는 사랑하는 이들의 실루엣처럼 *전을 떠나보내는 주말의 시공간은 머리카락이 한움큼 빠지는 듯 아프다. 그렇게 공허를 앓는다. 일터 일도 2%쯤은 매듭을 짓지 못하고 운영위로 달려 막차를 타듯  시월의 마지막날을 채운다. 시름시름 앓은 마음들도 태운다. 오랜만에 참석한 운영위의 마음자락이 선물받은 바바리코트 같다.

 

 

볕뉘.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점멸신호를 모오스 신호처럼 보내도 마음은 볼록 그릇처럼 담기지 못한다. 수신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각자의 패턴과 문양으로 보냈을 것이다. 시집을 건넨 이의 마음을 읽다. 그러고보니 참 고마웠다. 나도 너도 몸을 빌려쓰고 산다.  영혼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몸을 빌려쓰고 사는 이들의 마음을 더 살필 수 있을까? 그(녀)들이 보낸 신호들에 늘 수신 상태가 불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 통닭집 2층에서 닭내장탕을 시킨 어스름,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모시민단체의 얄팍함에 분개했고, 3년동안 물불가리지 않고 일하겠다던 다짐하던 목소리의 떨림과 표정이 가시질 않는다.  아이의 선택과 학교에서 생긴 문제에 당당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어머니의 딱부러지는 모습도 그러했다. 퀼트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어서 인문학과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열정과 셀레임들... 신바람나게 연주를 하다가 마무리 직전의 생기있고 발랄한  표정... " 찰나의 모습들이 마음에 쏙들어와 있다. 

 

멋있다는 말 역시 적절한 때와 온도, 그리고 관계의 농도가 짙어지는 순간 불쑥 체현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멋있고 맛있지 않는 회의를 하는 것은 곤욕스럽다. 혹시 싫어하는 마음들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수신상태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능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몸이 몹시 무거워 책 한줄도 읽지 못하고 멍때리다가 어젯밤을 날렸다. 시집들이 걸려 얕게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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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기계의 설계


 

관료적 조직화는 실상 권력 중심적 문화가 도입한 더 큰 생활 조직화의 일부였다. 상투적 문구가 넌더리 나게 반복되는 피라미드 문서 자체에는, 무엇보다 분명히 단조로움을 참는 굉장한 능력이 나타나 있다. 우리 시대에 절정에 달한, 누구나 어디서나 지루한 앞날을 예상케 하는 능력이다. 말로 하는 이런 강제는, 노동기계를 낳은 체계적인 보편적 강제의 정신적 측면이다. 명령에서 시행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이런 통제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유순한 - 또는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유치한 - 사람들만이 인간기계의 쓸모 있는 단위가 될 수 있었다.  376


잉태도 성장도 결실도 없고 노화도 없는, 고정되고 불임이며 사랑도 목적도 없고 미라 왕처럼 불변의 존재인 '영원한 생명'이라는 관념은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일 뿐이다.....인간의 생명, 실로 모든 유기적 존재라는 견지에서 보면, 이런 절대적 힘의 주장은 심리적 미숙함, 곧 나서 자라고 성장해서 죽는다는 자연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를 고백하는 것이다. 379


문명의 '짐'


어떤 정밀 과학도 또 어떤 공학 기술도 그 체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비합리성을 방지하는 보증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거대기계가 제 아무리 강하고 효율적이라고 해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실수는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피라미드 시대의 붕괴가 입증한 것은, 거대기계의 기초인 인간의 믿음은 무너질 수 있고, 인간의 결정은 잘못될 수 있으며, 사람들의 동의는 그 주술을 불신하게 되면 철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대기계를 구성하는 인간 부품은 본래 기계적으로 불완전하며 결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421


사실상 안식일 제도는 인력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거대기계를 주기적으로 멈추게 하는 고의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작고 밀접하게 결합된 기초단위인 가족과 유대교 회당이 차지하였다. 이것은 실상 거대 권력 복합체에 억눌린 인간 부품들이 다시금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424


작고 별 볼 일 없이 보이는 조직이라도 내적 결속력과 독자적 정신을 갖고 있다면 결국은 어떠한  큰 군사단위보다도 전횡적 권력을 이겨내는 데 효과적임을 보여주곤 했다. 그런 조직을 억누르며 다루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권국가들은 신비주의적 종교, 친교 단체, 교회, 길드, 대학, 노동조합이든 뭐든 그런 조직들을 역사 내내 제약하고 억압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 적개심은 앞으로 현대기계를 제한하고 어느 정도의 합리적 권위와 민주적 통제 아래에 둘 방법을 시사한다. 427


발명과 여러 기술

 

기술적 진보의 방향은 오랫동안 거대기계의 영역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식물 재배와 동물 사육을 시작하여 인류 공동체의 에너지 잠재력을 크게 놓인, 경험적 지식에 기초하여 인간이 폭넓게 경험하고 갈고 닦은 소규모의 진취적 기획들이 이어진 것이었다. 이런 진보는 거대기계의 대규모 건설과 파괴에 비하여 훨씬 볼품이 없었다. 또 그 대부분은 농업처럼 서로의 경험을 모으고 전통을 지키며, 단순히 권력이나 물질적 부를 양적으로 과시하기보다는 자기가 생산한 것의 질과 인간적 가치에 관심을 가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궈낸 결과였다. 433


문명이 시작될 무렵부터 별개의 두 기술이 나란히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민주적'이며 분산되었고, 다른 하나는 전체적이며 집중화되었다. 소규모 수작업에 바탕을 둔 '민주적' 양식은, 성장하는 읍락으로 퍼져 마침내 도시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지만, 농경이나 목축과 함께 협력하면서 수많은 작은 마을 속에서 살아 있었다. 이 경제에는 기능의 전문화와 물물교환, 매매 교환이 필요하였다. 433


양적 조직에 숙달된 권위주의적 기술은 수많은 사람을 다룰 수 있고 교역이나 정복으로 다른 지역을 이용할 수 있으며, 공정한 분배를 확립하기에 충분한 정치적 지성을 지닌 통치자 아래에서는 잉여를 더 잘 생산하고 분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기계는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업장에서도 탐욕과 가학적 착취때문에 그것이 이룬 효율성의 증가분을 갉아먹어버렸다. 436


민주주의의 중추적 원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특질, 욕구, 관심이 어느 특정 조직이나 제도, 집단이 주장하는 것들보다 우선한다는 인식이다. 이것은 타고난 빼어난 재능이나 특별한 지식, 경험, 기술적 기량이라는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민주적인 원시 집단에서조차도 이런 수월성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정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부분보다 전체에 좋은 것, 그리고 혼자 하든 남의 도움을 받아 하든 간에 궁극적으로 살아있는 인간만이 전체를 구현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는 인간의 확대된 그림자이다."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부분적 그림자일 뿐이다.  434


일하는 사람이 자기 뜻대로 도구와 근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노동은 다양하고 율동적이며, 때로는 목적이 뚜렷한 의례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솜씨가 늘면 바로 개인적인 만족감을 안겨주었고, 숙달된 감각은 만들어진 물건으로 확인되었다. 직인에게 일에 대한 주된 보수는 임금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속에서 수행되는 일 자체였다. 이 고대 경제에서는 땀 흘리는 시간과 편안히 쉬는 시간이 있고, 금식의 시간과 잔치의 시간이 있으며, 규율에 따른 노녁의 시간과 홀가분하게 노는 시간이 있었다. 자신을 일과 동일시하고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을 개조하였다. 437


도시의 수많은 직업들이 점점 더 분업화되면서 개인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활동 분야는 축소되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농사일을 하듯이 일을 바꿔가며 할 기회는 멀어졌다. 한때 천국의 표상으로서 고안되었던 도시는 아주 일찍부터 군 부대의 특징들, 곧 구금과 반복되는 훈련, 징벌의 장소라는 성격을 많이 갖게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올해도 내년도 같은 직업, 같은 작업장에 묶이고, 마침내는 일련의 그런 일의 일부에 불과한 단 한 가지 수작업에 묶이게 되는 것, 그것이 일하는 사람의 운명이었다. 441


거대기계 조건이 억압으로 나타나는 암울한 상황에서, 노동 자체가 본질적으로 저주라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사람 손이 닿지 않아도 마법 같은 기계나 로봇이 자기네 힘으로 모든 필요한 동작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생활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게 이상스러운가? 요컨대 모든 명령에 복종하여 모든 일을 하는 기계적 자동화의 착상이 바로 이 감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꿈은 역사 내내 문명에 붙어 다녔다. 마침내 "자동화로 모든 일을 없애자"는 현대의 슬로건으로 나타났다. 이 꿈은 떼로는 또 다른 꿈을 동반하였다. 가난으로부터 인류를 벗어나게 하려는 꿈이었다.....일의 저주는 권위주의적 기술의 통제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통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없애고, 손의 기능을 정신의 상상력 없이 기계로 넘겨 버린다는 발상은 노예의 꿈일 뿐이며, 필사적이지만 상상력이 없는 노예의 바람을 드러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육만이 아니라 정신의 모든 기능을 일체화하는 일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필생의 일을 찾았고 그 보상을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환상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살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442-443


아테네인은 거대기계의 또 다른 필수 요소인 훈련된 영구적 관료 조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해두기로 하자. 아테네인은 행정 기능을 시민권의 자랑스런 표식으로서 보전하였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면, 행정 기능을 전문직에 위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테네인은 행정을 평생의 직무로 만드는 대신, 시민들이 직책을 돌아가며 맡았다. 451


기계에 홀린 우리 시대는, 야채나 과일의 육종을 기계 발명과 동등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소금절임, 훈제, 요리, 양조, 증류에 의한 식품 가공을 다른영역의 발명으로 인정하기를 꺼린다. 맥주 맛이 좋아졌다고 기뻐하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생생한 기록은 다른 부문에서의 비슷한 노력에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한다. 올리브기름을 처음 짠 것이 언제인지 소시지를 처음 만든 것이 언제인지를 꼭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둘은 모두 그리스 고전문학에서 입증된다....이런 구체적인 진보들은 어느 하나도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기계적 정교함이나 생산성과는 다른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55


지금까지 기술사가들이 경시했던 산업적 지체 및 사회적 지체의 큰 원인은 거듭된, 실로 만성적이었다 해도 좋을 전쟁에 의한 파괴와 학살로서, 노예제보다 훨씬 더 중대한 원인이었다. 이 엄청난 부정적인 측면을 수많은 긍정적 발전과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456


대중목욕탕, 체육관, 극장, 공원 등은 모두 진짜 발명이었다. 기계적 영역이 아니라고 해서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동성, 산업 효율, 고속 수송에 몰두한 우리 현대인은, 안정된 용기가 없는 생활은 실제로 지금 급속하게 그렇게 되고 있듯이 우리 자신의 삶을 산산조각 낸다는 사실을 간과했왔다.....지금까지 나는 오늘날의 서구인들이 도구와 기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실제로 발명과 그 응용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만 집중하였다.  458


사회제도나 기술적 전통을 어지럽히지 않고서도 기술 진보가 가능했으리라 여겨지는 여러 지역에서, 설명할 수 없는 지체가 있었다. .....당시에는 종교적 의례, 주술, 문학, 조형예술과 도형 예술 같은 주로 다른 부문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기본적 기술과 간단한 기계들이 일단 확보되면, 그 기술 내에서 주로 기능 증진, 모양 다듬기, 세부의 세련화를 통하여 진보되었다. 생산을 곱으로 늘리고 생산 과정을 서두르기 위해 심미적 발명이나 기능적 '적실성'을 희생한다는 것은, 민주적이든 권위주의적이든 기계화 이전의 모든 문명 체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고대와 현대기술을 조잡하게 비교하기보다는, 이처럼 권위주의적 기술과 민주적 기술 간의 모순을 고려한다면 기술의 발전상을 더 정확하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459-460

 

볕뉘

 

1. 기술이나 발명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지 못하게 한다. 그가 많은 사례를 들며 설명하는 부분이 그 대목이다. 기술이 가치 중립적이지 않고, 발명이라는 것도 기계적이고 거대한 획기적인 것만을 고려하는 현대인에게 선뜻 이해가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야채나 과일의 육종이나 식품 가공, 대중목욕탕, 극장도 당시로서는 생각지 못한 발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기술의 지체로 오해하고 있는 중세나 다른 문명에서 있던 일은 이런 기술적 진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연속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기술을 사회제도나 전통에 다가서서 보게 되면 기술도 권위적인 양태나 민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가기 시작한다.

 

2. 흔히들 고대의 유리기술, 시멘트 기술 기타 여러 생각지도 못한 현대에서 나타난 기술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광범위한 기술이 존재한다. 권위적인 기술로 인한 거대기계는 양과 공간을 좁히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시간을 고려한 효율의 측면에서 지극히 떨어진 것이 역사에서 살펴본 것이라 한다.  기계도 기술도 제도도 인간의 확대된 그림자가 아닌 이상, 그 외화된 결과는 거꾸로 인간을 표적으로 한다는 점은 당혹스럽다. 일만하는 노예기계로서 만들어진 꿈이 자동화라고 쐐기를 박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런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예의 꿈은 여전하다. 자동화가 일의 고역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이다.

 

3 그렇게보면 우리는 심각한 노예이다. 스스로 뒤돌아보지 못하는 앞만보는 맹인이다. 기술을 사회에 접붙여내면서 생각하고, 인간의 모습이 비추는지 헤아리지 못할 때, 불행은 늘 인간의 인류의 몫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몽과 미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녕없는가?  모세의 월드, 모세의 세상을 꿈꾸는 세월호의 작명처럼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기술은 부질없다.  세계 최강국의 조선대국, 인터넷강국이 사람 목숨을 구해내는 민주적인 안전기술의 수준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기술은 무엇인가? 권위적인 기술이 더 필요한가? 걷지도 못하는 수준인 민주적인 기술이 더 필요한가?

 

 

 

 

4. 서민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 내어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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