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업과 신모나돌로지 (소통, 소비, 광고, 가능성의 생산,창조, 자본주의): 저 광고 메시지를 텔레비전 시청자에게 수용시키려면 그들 뇌를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방송은 사람들의 뇌를 활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다 107 기업은 모나드 (소비자와 노동자)와 세계(기업) 사이의 상응과 조합, 교착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109 통제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를 실효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그 조건에 다라서 가치창출을 행한다...자본주의란 생산양식이 아니라 (양식으로서의) 세계의 생산이라고, 결국 자본주의란 일종의 마니에리즘manierisme이다. 110 소비라는 행위는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세계에의 소속과 가맹을 의미한다....그것은 어떤 종류의 장식이고 자세이며, 식사법, 소통 방식, 사는 방식, 이동 방식, 태도 방식, 화술 등을 장려하고 요청하는 것이다. 111 오늘날 표현기계에 대한 투자액은 ‘고용‘과 ‘생활수단‘에의 투자액을 크게 상회한다. 113 비신체적 변형이 생산하고 있는 것은 (혹은 생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감각의 변화이고 가치관의 변화이다. ...광고의 표현은 세계와 우리의 실존을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중합시킨다. 다만 그 ‘가능성‘은 광고에 의해 어느 정도 유혹적인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명령인 것이다..광고는 우리 마음 안에 마치 음악의 변주 주제와 후렴처럼 반향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새 광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114, 115 사람들 사이에는 극단적인 두 개의 주체성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주체성 내부에 정신과 신체의 변조가 명확히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변조는 이미 우리가 말했던 논리, 즉 ‘사치스러운 주체성‘과 ‘쓰레기 같은 주체성‘이라는 두 개의 문법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다....인류의 4분의 3이 비신체적 변형에 용이하게 액세스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신체적 변형에서 배제되고 있다.

[ ]현대 자본주의는 공장에 의해 넓혀지는 것이 아니다. 공장은 현대 자본주의에 종속만 되어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선 언어와 기호, 이미지에 의해 확장된다. 그리고 오늘날 표현기게가 선도하는 것은 이제 공장이 아니라 전쟁이다. 117 현대 자본주의는 수목 모양의 여러 분기점을 수반하고 있다. 상상도 불가능한 다양한 세계가, 현실 세계와 함께 세계 안에서 주름을 펴나가듯이 전개되고 있다....존재하는 것은 차이화하는 것이다. 117 자본주의는 (단수형의) 주체도 객체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변조의 테크놀로지에 의해 관리되고 끊임없는 변조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복수형의) 주체와 객체이다....자본주의가 다양한 주체와 객체의 끊임없는 변용 (뇌의 변조, 즉 기억과 주의력의 포획)을 통해 그 모두를 실행하고 있다....텔레비전이 사람들을 변형시키는 것은 규율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델의 부여에 의해서이고,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방에 의해서라고 말이다. 텔레비전이 부여하고 있는 것은 몸짓의 몸짓이고, 가능한 행위에 관한 행위이다. 118, 119 기업에 의해 표준화된 ‘세계‘를 표현할 ‘가능성‘(상품 혹은 서비스)은 미리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세계와 노동자, 소비자는 사건에 앞서서 존재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들은 사건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다. 120

[ ]규율훈련이 우선인 곳에서는 사건은 부정적인 것으로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예측과 계획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의 표준화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나 기업 활동이 고객과 직접 결부되면, 그 활동은 이제 예측과 계량에 완전히 따르게 될 수 없게 된다. 121 통제란 불확실성과 변화에 관해 이해하는 것이고, 따라서 불안정성에 직면한 활동인 것이며, 모든 것을 ‘소통적‘인 몸짓으로 행하는 것이다....현재 우리는 조작operation의 시대를 지나 작용의 시대로, 집단노동의 시대를 지나 네트워크 활동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122 모든 생산은 서비스 생산이 되었다. 결국 생산은 ˝고객과 이용자와 공중이 장래 어떠한 활동의 성질과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인가를 정하는 조건˝의 생산으로 변형되었다. 그 궁극 목적은 ‘삶의 양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123 기업은 소비자를 위한 세계만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세계도 창조해야 한다. 현대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세계에 속한다는 것, 즉 그 욕망과 믿음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124 샐러리맨은 자유로이 고무줄을 늘일 수 있다. 이제 그는 갇혀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좋을 대로, 자신의 기량에 따라, 자신의 판단에 의해 돌아다니며 일하고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무줄이 그를 끌어당긴다. 그를 정기적으로 되돌리는 힘이 발동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한다....일정표와 마감의 압력이 예전의 타임 테이블에 의한 단순 노동 관리를 대신한다...샐러리맨은 그 통제를 항상 고려해야 한다. 결국 그 통제는 밤낮으로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127 우리가 여론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단 한 종류의 여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항상 적어도 두 종류 이상의 여론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거기에는 항상 복수의 힘이, 복수의 모나드가 존재하고 있다. 131 시장은 공중과 고객을 포섭하는 장, 또는 구성하는 장이라고 생각해도 지장이 없다. 132

[ ] 모든 활동은 그 일부에 발명을 포함하며 또한 재생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활동이라는 개념이다. 어떠한 활동도 이제 도구적 논리에 따르지 않고 사건의 논리에 따르게 되었다. 139 프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는 협동의 힘은 그 ‘협력자들‘의 활동에 수반한 인지적 성질보다도 발명의 시공간을 여는 능력에 더 관련된다. 141 기업은 무엇보다 사회로부터 착취를 행한다. 그것을 위해 사회를 위계화하고 공중과 고객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만들어 내고 창조와 실현을 행하는 가능성의 힘을 사회로부터 탈취하려고 한다. 142 다양한 주체성의 협동에 관하여 우리가 주의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 ‘비물질적‘인 성질이 아니라 그 활동의 윤리적 정치적 형식이고 그 조직의 존재 방식이다. 우리가 여기서 지적하는 사실은, 포스트사회주의 운동에서 단순히 아니야라고 답해서 끝나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들은 우리가 (제도와 경제, 소통에 관계하는) 발명의 공간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인지적이며 비물질적인 노동에 의한 특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어야 한다. 145 상황의 특수성에서 출발할 때, 실험은 다양한 권력관계로부터 이루어진 전체를 횡단하여 질문하고 그 외부로 열리는 행위가 된다...(제약산업)..노동운동의 논리가 이미 실효성을 잃은 것은, 그 운동이 고전적인 조합정치와 그 코드화된 관계들로부터 탈주할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있다. ......맑스의 관점이라면 부의 새로운 기반으로서 ‘노동 그 자체‘를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과 테크놀로지의 진보, ‘사회적인 협동과 유통‘의 발전, 요컨데 ‘사회적인 개인의 발전‘을 생각해야만 한다. 요컨대 ˝교환가치에 기반한 생산은 붕괴했다˝는 것이다. 148

[ ]서로 협동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여러 사물과 사건에 관해 함께 느끼고 서로 ‘영향 받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우정, 친애의 정, 슬픔은 전부 공감 관계의 표현이다. 뇌의 협동의 구성과 역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관계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 대립의 논리의 경우와는 반대로 이질적인 힘을 결합하고 공통으로 생산하고 공통으로 적합하게 만드는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다양한 힘이 공통으로 새로운 관계의 변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내재성의 새로운 평면을 형성하여 ‘서로 이용 가능하기 위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길‘을 발견하는 것에 의해서다. 150, 151 반복에 의한 발명은, 경제학자와 맑스주의자들이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또한 기쁨은 슬픔과 구별되어야 한다..그것은 규격화되는 반복의 비참으로부터 탈주하고, 발명의 기쁨을 증대시켜 노동의 필요성을 줄이며, 협동의 자유를 증대시키기 위해 새로운 길을 탐색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와 같은 발명과 반복의 존재론, 또는 기쁨과 슬픔의 존재론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것이다....뇌의 협동은 스미스적인 또는 맑스적인 공장에서의 협동과는 달리, 공통재를 생산하는 활동이다. 공통재란 인식과 언어, 과학, 예술, 서비스, 정보 등을 말한다..예술작품은 그 반은 예술가의 활동의 결과이지만 다른 반은 공중(감상자, 독자, 청중)의 활동의 결과이다. 153

[ ]공통재는 다양한 주체성의 협동에 의한 공통적 창조와 공통적 실현의 결과이다. 그것은 ˝무상임과 동시에 끝없이 분할 불가능한 것˝이다...(희소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로 확산되고 공유되면서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153, 154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에 관해 생각할 때, 그들은 신앙을 소비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유명한 예술작품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은 예술작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인가? 모든 공통재의 소비는 그대로 새로운 지식과 예술작품의 창조와 연결된다. 이러한 소비는 파괴적인 행위가 아니라 별도의 새로운 지식과 예술작품을 산출하는 창조적인 행위이다. 155 프리 소프트웨어에서 무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도 원코드의 입수, 수정, 배포와 소프트웨어의 개작의 자유를 가져오는 여러 가능성이 중요하다... 프리 소프트웨어의 창조와 배치, 협동은 고객이라는 틀을 파괴하고 활발한 조직생성을 위한 조건의 창조를 커뮤니티에 가져온다.(이것은 뇌의 협동에 의한 논리다) 그와 같은 방식은 의존적이며 수동적인 고객을 구축하려는 기업의 전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별개의 전략을 만들어 낸다...부가 무료라는 것은 그 부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의 측정과 분배의 원칙이 경제학적인 것일 수 없다는 (결국 희소성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58 공통재(문화, 교육, 연구)의 창조와 실현의 본질과 그 창조와 실현에 참여하고 있는 공중(학생, 관객, 환자, 소비자 등)의 협동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문제 삼았다. 결국 그 투쟁들은 (공통적인) 부의 창조와 분배, 그 융자, 새로운 협동에 여러 주체성이 참여하는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그것에 필요한 제도적 테크놀로지적 장치를 문제시했던 것이다 162 활동은 발명과 재생산, 창조자와 이용자,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지적 소유권이라는 제도가 만들어 낸 벽을 파괴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뇌의 협동을 확대하고, 거기에 참가한 다양한 주체를 새로운 민주주의 개념 안으로 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새로운 민주주의는 고객과 이용자, 실업자라는 기존의 틀을 비국가적인 새로운 공공영역에서의 정치적 활동자라는 틀로 변형해야 할 것이다. 164

[ ]기억은 이제 습관도 아니고 무의식의 자동운동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지적 기억이며, 이질적인 것을 모으고 발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로부터 타르드는 ˝노동과 발명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67 기억으로부터 생겨난 행위가 노동과 구별되는 이유는, 전자가 감각에 관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간에 관계된 힘으로서의 차이의 활동(발명)과 반복, 재생산활동(모방)을 혼합하면서 배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기억에 의한 행위는 새로운 것(이미지, 감각, 관념)을 창조할 능력과 함께 그것을 무한하게 반복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그것은 ˝이미지와 감각, 관념의 한없는 연쇄이다˝) 168 자본주의는 일종의 반-생산의 힘이며, 뇌의 협동과 그것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들 - 생물학적 조건도 포함한다-을 파괴하는 힘이 명확해진다. 무엇보다도 우선, 개인적 집단적 특이성을 만들어 내는 재생산의 역능을 파괴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에 의한 차이와 반복이 구성 과정을 계속 측정하기 때문이다...그 상태들은 집단화한 뇌의 협동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 수단은 주체성의 조건인 차이와 반복의 사회적 과정을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172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과 믿음의 방식을 자본가의 가치관이 명하는 주체화 형식에 따르도록 하여 사람들의 주체성을 빈약하고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74

볕뉘.

0. 한 밤의 내장을 뒤흔드는 지진의 여파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행여 면이나 리단위의 지진여파가 궁금하여 검색하다가 다행이다 싶었는데, 여진이 잘개부서져 오지 않고 뜸하다고 했더니, 굵은 여진이 퉁퉁 내장을 두드리고 간다. 구술 녹취를 푸느라 바빴고, 미진한 몸을 가누느라 힘든 여정을 보내다나니 무척 뜸했다 싶다. 읽어놓고 늦게 남기게 된다. 1, 2장은 다음에...이 책의 3장이다.

1. 자본-노동의 관계에 국한시키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와 기업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그 한계를 잘 설명해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한계를 짚으면서 창조의 사회적 개인의 발랄함을 얘기하는 것이 압축되면서도 고루하지 않다. 다른 노트와 함께 보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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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1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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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0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나 해러웨이

빛낱말: 공의존관계, 실매듭으로서 삶, 상황적 지식, 겸손한 목격자, 사이보그, 질병과 죽음

[ ] 믹소트리카 파라독사(Mixotricha paradoxa) 흰개미의 장 속에 서식하며 상호의존적인 다섯 종류의 박테리아가 공생하는 생물체로서, 흰개미가 먹은 나무 조각을 소화시켜 흰개미에게 영양을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중요한 것은 숙주라 불리는 믹소트리카 파라독사와 여기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들이 서로 독립해서는 살지 못하는 공의존관계라는 사실이다. 95

[ ] 해러웨이는 자신의 ‘가르치는 일‘을 ‘실뜨기의 놀이 경험의 구현‘으로 설명한다. 생활 속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연속적으로 맞물려지는 매듭들 속에 연루되는 경험이다...새로운 시간과 교차하는 만남에 계속 귀 기울이고 그들과 엮이며 생산하는 한, 그들과 함께 있는 한 106

[ ] 서양과학의 전반이 남성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서구 인본주의 즉 이성중심주의는 정신과 육체를 이분화해 이성과 정신을 ‘남성적 원칙‘의 기초로, 감성과 육체를 ‘여성적 원칙‘의 기초로 삼았고 후자를 비이성적인 것, 문화활동에 저해가 되는 것으로 금기시해왔다. 107

[ 1 ] 상황적 지식: 서구 과학의 이런 남성중심주의를 ˝죽은 백인 유럽 남성들 dead white european males˝이라는 표현으로 풍자하고..이것이 ‘객관적 지식‘의 전제가 되었다로 폭로한다. ‘상황적 지식‘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그룹)의 비전이 그 사람(그룹)의 시시각각 변하는 정체성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자연의 실재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며,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은 구별할 수 있고,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의 물질적 분석과 이를 둘러싼 문화적 분석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108

[ 2 ] 겸손한 목격자: 상황적 지식이란, 겸손한 목격자의 지식이다. ‘목격‘이란 보는 것이고, 증언하는 것이며, 서서 공공연하게 자신이 보고 기술한 바를 해명하는 것이며, 자신이 보고 기술한 바에 심적으로 상처받는 것이기 때문이다...목격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고, 틀리기 쉬우며,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욕구들과 두려움들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겸손한 목격자는 상황적 지식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겸손한 목격자는 자신의 영향력, 권력 한계를 인식한다....이때 겸손은 자기 소모적인 낮춤이나 무능력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오히려 하나의 특정한 재주인데, 그것은 자신이 처한 위치와 목격 상황이 그 자체로 어떤 유산이자 복합적 구성물임을 인정하면서 이러한 위치성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109

[ ] 여성주의의 지향이 소위 ‘정상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머무르는 한, 여성주의적 성찰은 가부장제의 반담론에 불과하게 된다. 111

[3 ] 사이보그: 사이보그는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비자연적 인공인지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사이보그는 동물과 기계의 합동적 혈연관계를 주장하고 본질적 정체성을 부인한다...111.. 정말 ‘여성‘으로 자연스럽게 묶일 그러한 본질과 범주가 존재하는가?..젠더, 인종, 계급같은 단일한 정체성은 가부장제, 모순된 사회 현실들이라는 끔찍한 역사적 경험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된 성취다.....사이보그에게 묶임이 있다면 이주노동자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 아웃사이더라는 사실일 것이다...페미니스트들은 인간중심주의를 무너뜨리려 노력하고 이 붕괴를 포용해야 한다. 사이보그를 페미니즘의 중요한 성찰로 가져갈 때, 가부장제가 뿌리리박은 불평들을 무너뜨릴 수 있고,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과 접합이라는 자산을 얻을 수 있다.....112,113

[ ] 새로운 생산: 이원론의 설화를 전복하고 시작되는 새로운 신화는 이제 타락 이전 순수의 시절을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생산‘을 여는 신화다...생성과 소멸로, 다신 생산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지향한다...사이보고는 부활을 원하지 않고, 총체성보다는 우리의 경계를 구성하고 다시 해체하는 친밀한 경험 속에서 재생을 희망한다...사이보그의 말은 이교도의 말이자, 이질적이고 다양한 각기 다른 언어로, 복수적으로 복합적으로 다중적으로 말하는 말들이다. 113

[4 ] 질병은 관계다.: 우리가 직면한 사실은 인간은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며, 우리가 병들고 노쇠하는 존재, 생명의 한계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죽음의 긍정이 절대적인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찬미한다는 의미에서의 긍정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죽어야 할 운명이 아니라며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고장은 임무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유대관계를 드러낸다....질병의 위협은 건강의 주요 구성요소들 중 하나다. 115 질병을 관계 맺음으로 이해했을 때, 면역체계는 몸속에서 중요한 세포 체계 간의 의사소통 공간으로 작동한다. 세포 간에도 서로를 인식하고 관계 맺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질병은 관계의 문제이고, 관계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맺어지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117 질병과 싸운다라는 표현 자체의 정치 은유가 문제다.

볕뉘

0. 묵혀 두고 읽지 못한 책인데, 다시 눈에 들어온다. 다른 인물을 모두 읽거나 파고 있는분들이기도 한데, 이 분이 생소해서 펼쳐보았다. 출판 번역된 책은 네 다섯권 정도..그 책들을 살핀 것이다.

1. 건강이 생의 주요한 척도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죽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 문제가 심각하다. 죽음과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만이 예외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회와 닮고, 각박한 세상의 복제품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질병에는 죽음을 스며들어 있다. 그런면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해내고 정상만을 탐하는 사회에 다른 시야와 시선을 가질 수 없다. 죽음과 체념을 통해 그 관계들을 다시 생각해내는 지혜를 통해 삶은 더 성숙해질 수 있다. 나도 병들고 나도 죽기 때문이다. 그 모든 관계들은 삶의 그물에서 출렁이고 서로 매듭으로 맺어지며 살아가야 한다. 서로의 마음과 몸의 시선과 시야 속에 녹아들어야 더 자유롭고 넓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부족하였는데 이렇게 상기시켜주니 다행이다 싶다.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만남들의 출발점을 공유할 수 없음이 늘 안타까웠다.

3. 강박처럼 총체성에 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가?이원론과 이분법을 녹아내리게 하는 방편으로 좀더 깊은 읽기를 해보아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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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성의 미학

1.

[1 ] 경계는 서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문지방이 된다...오히려 이것은 융통성 없는 대립의 극복에 관한 것이고, 역동적인 차이로 이끄는 것이다. 이분법적 개념쌍을 와해시키고, ‘이것 아니면 저것‘ 대신에 ‘이것분 아니라 저것도‘라는 논리를 따르는 수행성의 미학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18세기에 주어진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문지방으로 만들고자 하는 세계의 재마법화에 대한 시도로 간주할 수 있다. 450

[ 2 ] 경계가 법과 연관된다면, 문지방은 마력과 연관된다. 경계가 다른 것을 배척하는 분계선으로 여겨진다면, 문지방은 모든 가능한 것이 발생하는 사이 공간으로 생각된다. 경게가 분리 작업을 진행하는 반면 문지방은 가능성, 권력, 그리고 변신의 장소를 드러낸다.....공연에서 창출되는 자동 형성적 피드백 고리는 무대와 객석, 행위자와 관객, 개인과 공동체, 예술과 삶 사이에 놓인 경계를 문지방으로 변화시킨다. 452

[ 3 ]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변환 과정에 존재하며, 경계선을 넘는 존재로 인식했다....이분법적 개념에 의존해 세계를 기술하고 지배하는 계몽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또한 인간을 체화된 정신으로 나타나게 함으로써 수행성의 미학 그 자체가 ‘새로운 계몽‘임을 입증했다...수행성의 미학은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 및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을,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뿐 아니라 저것도‘에 의해 결정되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을 장려한다. 456

[ ] 예술과 삶: 일반적으로 공연이 예술이라는 제도 하에서 일어나면 예술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공연이 정치나 스포츠, 법, 종교 등의 영역에서 일어나면 비예술적인 것으로 간주된다....예술적 공연이냐 비예술적 공연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제도적 틀이다. 445 공연은 삶 자체일 뿐 아니라, 삶의 모델로 볼 수 있다. 공연이 삶 자체라는 말은 공연이 참여자, 곧 행위자와 관객이 자신의 삶의 시간을 실제로 같이 보내고,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창출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다. 453

2.

[ ] 연극의 근본적 의미는 연극이 사회적 놀이였다는 데 있다. 연극은 모든 이를 위한 모든 이의 놀이다. 그것은 무대 위의 참여자와 관객 모두 참여자인 놀이다. 관객은 놀의 한 구성 요소로 참여한다....연극에는 항상 사회적 집단이 존재한다..62..행위자와 관객의 신체적 공동 현존이란 오히려 공동 주체의 관계다. 63 헤르만의 공연 개념은 작품 개념이 포함하지 않는다. 공연의 예술성 - 즉 미학성- 은 작품에 근거해서 생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수행되는 사건에 근거한다. .공연에서는 일회적이고 반복될 수 없는, 대부분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치거나 조정 가능한 상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관객이 ˝배우의 연기를 다시 한 번 희미하게나마 모사해봄으로써, 표정을 지각할 뿐 아니라 몸의 느낌을 수용함으로써, 같은 동작을 하고 싶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싶은 비밀스런 욕구 속에서˝ ‘창조적‘ 행위성을 창출한다고 보았다. 71 공연을 재현 혹은 그 이전의 것이나 주어진 것의 표현으로 규정하지 않고, 순수한 구성 능력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헤르만의 공연 개념은 수행적이라는 개념과 맞아떨어진다. 73

3.

[ 1 ] 버틀러는 젠더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론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 구성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젠더란 인습화된 행위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적 정체성이다...이러한 행위를 버틀러는 ‘수행적‘이라고 명명하고, ˝수행성은 그 자체로 극적인 것과 비지시적인 것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수행적인 육체의 행위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체성 그 자체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육체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이 부단하고 지속적으로 물질화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몸이 아니라, 짧게 이야기하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몸이다....버틀러에게 ‘수행‘의 의미는 오스틴이 말한 ‘현실 구성적‘이며 ‘자기 지시적‘인 것과 결국 같은 것이다....메를로 퐁티는 육체를 특정한 문화와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상징화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와 반대로 버틀러는 정체성의 수행적 생산 과정을 체현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체현 과정이란 ˝행동 양식이며, 역사적 상황을 극적으로 재생산하는 방법˝이라고 규정한다. 49,50, 51

[2 ] 수행적이란 단어의 의미는 행위하다에서 비롯되었다. 즉 ‘행위를 ‘이행‘하다‘라는 뜻이다...이 발견이란 언어가 사실관계를 묘사하거나 한 가지 사실을 주장할 뿐 아니라 행위를 이행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어는 참과 거짓을 표현할 뿐 아니라 수행적 기능도 한다....발화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며 변환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수행적 성공을 위해서는 언어적 조건뿐 아니라 무엇보다 제도적, 사회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44,45

[ 3] 문학 낭독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읽기와 듣기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데 있다. 일리아스의 1만 8천줄을 교대해가면서 2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낭독했다. 낭독자가 계속 교체되었기 때문에 저마다의 목소리가 개성을 드러냈고,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든 청중에게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이 공연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했다. 22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은 참여자들의 지각 상태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무엇봐 이러한 지각의 변화를 의식하게 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지각의 조건으로, 무엇보다 변화의 조건으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34,35

볕뉘

0. 우리는 말이 필요하다. 권력의 기울기에 바투 올라야 하는 자는 권력을 가진자의 말을 빌려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말을 만들어 써야 한다. 언어는 행위를 이행한다.(3.2) 언어는 수행적 기능을 갖는다고 하면 우리 말의 대기가 이분법의 개념쌍을 가진 언어로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1.1) 그래서 힘이 없는 자는 힘있는 자의 이런 말을 쓰다가 결국 스텝이 꼬이고, 자기 말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 김수영의 애정지둔을 낭독하는 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 편의 시를 열한두분이 자신의 음색과 속도롤 읽어내는 것은 묘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고, 시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3.3) 무려 22시간을 낭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낭독을 하게 되면 언어가 품고 있는 박자를 생각하게 한다. 때로는 거슬러 올라가며, 때로는 호와 흡을 반복하며...사람마다 그 시를 품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오기도 한다. 낭독은 언어가 자신과 글 속에 갇혀 있다가 친구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다. 말로 변화하며, 그 말은 서로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그래서 말로 쓴 글은 언어에 갇힌 글과 미묘하면서도 무척 다르기도 하다.

2. 우리가 이분법의 말에 갇혀있다고 해보자. 선악, 좋다나쁘다로 무의식중에 구별하는 습관들. 이분법의 개념쌍....좋다나쁘다에서 나쁘다만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습관들이라고 해보자. 그렇게 남은 말들을 대부분 권력의 자장을 갖고 있는 것일 것이고, 약자를 제대로 표현하는 말들은 없거나 죽어버렸을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에서 ˝이것 뿐만 아니라 저것도˝라고 가정을 해본다면 조금씩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의식하거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의식하게 된다. 싫어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좋은 장소, 나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장소, 더 좋은 장소로 파악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좋은 것, 싫은 것이 아니라 배경에 있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같이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해보는 것이다. (1.4)

3. 새로운 말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말은 나의 상황, 주변을 둘러싼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행정 용어나 남자의 말들로 둘러싸여 있기게 새로운 숙어를 발견해내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적확한 말을 찾는 것은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생생해야 한다. 내 존재를 온전하게 나타내는 말을 없다라고 가정해보자. 어쩌면 이것은 나의 존재를 바꾸어내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새로운 말이 가슴을 져미고 들어와서 익숙해지고, 그 표현을 나누어 가질 때 우리는 이미 전과 달라져 있는지도 모른다. 가지지 못하고, 힘에 밀려 경계에 있는 처지의 말을 명확히 듣도록, 들릴 수 있도록 귀 기울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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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 ] 지적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자질은 지적 소명을 받는 것이며, 지능이나 총명함은 부차적인 자질에 지나지 않는다...지적인 일이 소명이라는 것은 곧 지성인에게 공부가 삶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14,15

[ ] 많이 읽지 마라: 우리는 지적으로 읽어야지 결코 격정적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건강과 현명한 소비 규칙에 따라 그날 먹을거리를 미리 정한 주부가 시장에 갈 때처럼 책에 다가가야 한다.213 시류에 휩쓸려 공부 역량을 소진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때로 시류는 당신을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게 막는다...다른 이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따르지 말고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214

[ ] 단 한 가지만이 진짜 휴식을 준다. 바로 기쁨이다. 225

[ 1 ] 삶과 맞닿아 있기: 공부는 삶의 활동이어야 하고, 삶에 이바지해야 하며, 삶으로 충만해야 한다. 무언가를 알려고 애쓰는 사람과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 이 두 부류 가운데는 후자가 낫다. 우리가 아는 것은 시작이자 밑그림인 반면, 삶은 완성작이기 때문이다. 233 공부의 목표는 우리 존재를 확장하는 것이다. 공부가 우리를 좁히는 것으로 끝나서는 결코 안 된다. 예술이 자연에 인간을 더한 것이라면, 학문은 인간에 자연을 더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우리는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 334 공부하는 소명에 자신을 바치려는 당신은 공부를 위해 삶의 나머지 영역에 등을 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간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 포기하지 마라. 가장 무거운 것 쪽으로 나머지 모두가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라. 339 지성인은 전공 공부를 철저히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보충하는 넓고 다양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의 정신은 일과를 할 때나 명상을 할 때나 똑같다. 그는 신 앞에서나 동료 앞에서나 하녀 앞에서나 한결같다. 그는 관념과 감정의 세계를 책과 논문에만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내보이고 삶의 길잡이로 삼는다. 340

[ ] 쉬는 요령 알기: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면서 얻는 기쁨이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인이 실은 상대방보다 사랑 그 자체를 더 사랑하는 것과 같다. 343 정신 그 자체는 지치지 않지만, 신체 안에 있는 정신은 지친다....쉬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는 없다. 343 휴식을 거부하는 것은 간접적인 나태인데, 쉬어야 다시 노력할 수 있거니와 과로가 노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휴식을 거부하는 것은 더 은밀한 방식으로 나태다...우리가 여가라 부르는 것은 실은 에너지 전환과정이다. 당신 자신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공부와 휴식을 배분하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지 않고도 회복할 수 있도록 자주 짧게 쉬는 편이 가장 이로울 것이다. 347 집단을 이루게 되면 다른 사람의 휴식을 배려하라. 절대 장난치지 않는 사람, 농담을 웃음으로 넘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이나 기분 전환에 이바지하지 않는 사람은 무뢰한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웃의 짐이다. 348

[2 ] 시련: 가치는 스스로 변호한다. 저술 때문에 호들갑을 떨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당신에게 해롭다. 침묵하고, 신 앞에서 겸손하고, 당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잘못을 바로잡아라.....당신의 평온이 흔하디흔한 성공보다 가치가 높다. 353 시기는 영광, 탁월함, 공부라는 수입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공부는 공부하는 이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공부하는 이는 불평하지 말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354 진리는 조금씩 드러난다. 그늘에서 진리를 꺼낸 사람들이라해도, 진리에게 자신을 위해 후광을 만들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진리를 섬긴다는 것, 그것으로 족한다. 356

볕뉘

0. 우리는 스스로를 형성하고 누군가가 되려고 읽는다. 우리는 특정한 과제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 우리는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고 선한 것에 관한 사랑을 얻으려고 읽는다. 우리는 휴식하려고 읽는다 220

1. 그럴 것이라고 읽었지만, 새겨둘 것들이나 지나친 것들이 있다. 단 한 가지만 휴식을 준다. 바로 기쁨이라고 한다. 쪽 쪽 여기저기 살피면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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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0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214쪽 내용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책에 의존하는 글을 써왔거든요. 책 속에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힘들겠지만, 책 속에 다른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따르는 방식을 줄어야겠어요.

여울 2017-11-02 21:06   좋아요 0 | URL
저도 부끄러운 대목이 많네요. 같이 줄여나가요. 감사요^^
 

[ ] 1990년대 초반 이후 신도시의 아파트에 안착한 30대 여성들 상당수는 어려서부터 남녀평등의 이념을 교육받아온 터라 결혼 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제의 습속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하지만 결혼 후 상황은 바뀐다. ‘남편의 경제적 역할‘과 ‘아내의 정서적 역할‘이라는 핵가족의 기능적 분업화에 적응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46

[ ] 외환위기 이후의 아파트: 1970년대 이후 10년주기로 첫 번째 세대는 근로소득을 능가하는 자본 이득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두 번째 세대는 전세 제도를 지렛대 삼아 아파트 한 채를 더 보유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세 번째 세대는 수도권 일대의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자신들에게는 앞 세대와 같은 자산의 증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시달렸다....흥미로운 것은 이 중산층 아버지들 중 어느 누구도 아파트가 고도성장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를 시세 차익아라는 형태로 그 소유자들에게 배분하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그래서 그들은 이 시스템의 근간인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청약 제도의 설계 의도에 대해 굳이 알려 들지 않았으며, 연간 10퍼센트를 넘나들던 특정 시기의 경제 성장률이 사실상 복지 제도를 대신했던 이 시스템의 에너지원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52

[ ] 청년기의 정치적 경험에 방점을 찍는 세대론이란, 10년 주기로 펼쳐진 ‘정치적 격변, 경제적 호황,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라는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성공적으로 중산층에 진입한 집단 중 일부가 자신의 정치적 발언권을 특권화하며 그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 정체성의 판타지였던 것은 아닐까? 58 ˝아파트와 전자 칩,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린 그 세계에서 청춘의 자아는 ˝지나치게 얄팍˝해 ˝셀로판지 같지만 셀로판지가 아닌˝ ˝셀로판지가 되기엔 너무 두껍고 또 인간이 되기엔 너무 얇은 뭔가˝로 존재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게임의 규칙을 묵묵히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59 나는 인간인 동시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곡선의 평면이다. 화려한 풍경 속에 창백한 백지로 남는, 고선으로 이루어진 어떤 하얀 평면...닳고 닳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셀로판지와 아무것도 그릴 게 없어 휑하게 남겨진 백지라는 은유의 유사성. 김승옥과 달리 김사과 주인공은 가족의 로망스 자체가 시효가 끝난 시점에서 ‘납작한 반투명 주체‘라고 할 수 있다. 60

[ ] 제3막은 그 무대에서 ‘정치‘가 ‘저성장‘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고안해내지 못하고 중산층이 욕망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아파트가 여전히 주인 행세를 계속한다면 세상은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65

[ ] 실제로 저금리를 앞세운 은행의 영업 방침, 금융 자본의 지원 사격을 받는 건설사의 사업 전략, 그리고 경제적 불확실성에 노출된 중산층의 재테크 전략, 이 삼각관계의 역동적인 흐름 안에 바로 ˝그녀의 프리미엄˝ 광고전략이 자리잡고 있었다. 93

[ ] 참여정부 집권 직전 시중의 유동 자금은 이미 400조 원 규모였던 데다가, 집권 이후 가계대출로 시중에 풀린 돈만 200조 원이었고, 국토균형발전정책으로 인해 시중에 풀린 토지보상비의 규모도 2003년부터 2006년가지 70조 원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97

[ ]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정치 개혁의 열망이 자본 소득의 욕망에 패배했음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확실히 두 번째 자각이었다. 대통령 덕분에 2002년에는 ‘중산층 소비자‘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깨어났고, 집권 후반기에는 또다시 ‘참여하는 시민‘에서 ‘자산 투자자‘로 깨어났다. 103

[ ] 1977년부터 자리 잡은 분양가 상한제는 선분양제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이 두 제도 덕분에 정부는 주택 공급시장의 통제력을 거머쥘 수 있었고, 공급자는 상품을 만들기도 전에 금융비용을 들이지 않고 구매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매자는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다. 109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부도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의 요구로 분양가 상한제가 폐기되었지만...선분양제는 고스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아파트는 이전보다 더 기묘한 상품이 되었다. 이전까지는 정부가 공급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조율하는 박리다매의 공동구매 상품이었던 반면, 이제는 공급자가 직접 나서서 주도하는 시세와 동일한 가격의 선 입금 예약 상품으로 둔갑했던 것이다. 110 한국만의 독특한 민간 임대 제도인 전세제도는 호황기에는 부동산 시장의 최전방 공격수인 다주택 보유자에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미드 필더‘로 대활약을 펼쳤다. 일종의 ‘사금융‘이나 다름없던 이 제도는 불황이 닥치자 재빨리 후방으로 되돌아가 ‘최종 수비수‘로 전환한 뒤 가격 하락세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그러니 이런 표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파트 시장의 진정한 ‘리베로‘라고 말이다. 112...그들의 유일한 자산인 아파트 한 채가 담보물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까지는 희망을 버리려고 하지 않으리라.......아파트 하락세와 자영업자의 위기...자녀 세대는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 한 채는 그래도 물려받을 수 있으리나는 기대가 빚더미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13 1960년대 후반부터 외환 위기가 발생한 1990년대 후반까지 약 30년의 시간대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시기였던 것이 아닐까? 115

[ ] 정치학자 전인권은 ˝한 아이가 다른 형태의 아버지, 여러 명의 아버지를 체험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계로 나가는 여러 개의 창문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상을 보는 눈도 여러 개 가지게 되니 그만큼 유연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농경사회에서 성장한 변방의 청년들 대부분은 여러 개의 창문을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창문은 아버지 하나뿐이었다.˝ 141

[ ] 2000년대 초반부터 건설 산업은 강남의 재건축과 강북의 뉴타운 개발을 거치면서 점차 금융 산업과 밀월관계를 맺었다. 이전의 고도성장기에는 정부, 건설업, 중산층이 삼각편대를 구성해 수도권의 창공을 마음껏 활강했던 반면, 이제는 금융업, 건설업, 중산층이 삼위일체의 신성동맹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67

[ ] 마린시티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함께 용인에서 시작된 포스트-강남의 흐름이 2000년대 초반에 주상복합 아파트와 재건축 아파트를 거점으로 삼아 강남으로 입성했다가 다음 행선지를 저울질하기 위해 잠시 송도의 모델하우스를 둘러본 뒤 결국에는 경부선 고속철을 타고 내려와 해운대에 똬리를 튼 것 같은 모양새였다. 170

[ ] 이전의 10년이라는 시간차는 이제 5년 정도로 좁혀졌고, 그 시간차의 발현 양태도 지방 중상류층이 한발 늦게 수도권 부동산에 투자하는 식이 아니라 지방의 부동산 시장이 수도권의 꺼져가는 불씨를 이어받아 군불로 되살리는 식으로 바뀌었다. 174 역세권을 기본으로 하되, 자량보다는 보행자의 이동이 자유로운 곳, 기존의 상권이 등락 없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곳, 토박이들의 텃세가 심하지 않는 곳, 개발 호재 없이도 상권의 확장이 가능해 보이는 곳 등등. 176 1970년 1971년에 백만명 넘게 태어난 2차 베이비붐의 정점을 찍었던 이들은 저성장과 저금리 사이에 낀 채로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와 아파트 가격의 폭등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중산층 진입이 요원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아이를 하나만 낳거나 아예 부모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매우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186 인구 감소의 쓰나미가 닥치는 시점은 이들이 50대에 진입하는 시점 2021년은 아닐까?..그 행선지는 2022년 대통령 선거를 향해 돌진할 것이다... 이 때는 50대가 845만 명, 60대 이상이 1,298만 명이 된다. 결국 대선의 승패는 50대 이상의 유권자에 의해 판가름 날 공산이 매우 높다. 187

[ ] ˝팔자가 갈라지는 대목까지는 운수 놀음이지만 갈라진 다음부터는 현실 놀음˝이라는 점이다. 193

[ ] 나는 사회를 사회로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사회‘를 ‘사회‘답게 만드는 집단적 경험조차 제대로 공유해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194

[ ] 신세대: 로봇 프라모델의 조립 과정을 통해 대상과 밀착된 관계를 맺고 거기에 기대어 자아의 확장과 심미안의 향상을 꾀할 수 있었다...그것은 독특한 이중구속의 구렁텅이로 그 소유자를 밀어넣고 자아의 변형을 강제하기도 했다. 207이런 태도는 결국 ‘단일한 자아‘에 대한 포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도덕적 판단과 미적 판단의 주체가 반드시 동일한 ‘나‘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각의 차원에 최적화된 형태로 사안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자아를 쪼갰던 것이다. 208 일본 에니메이션은 이 세대의 소년들에게 프로트타입 형태의 문화적 인터페이스를 인스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212 신세대 일부는 처음에는 ‘자아의 분열‘로, 그 다음에는 ‘메타 자아의 구성‘으로 두 번에 걸친 이중구속의 상황을 돌파한 소년들이었다. 당연히 이런 경험을 해본 영민한 소년일수록 자기만의 패턴을 체계화하는 데 익숙했고, 자기만의 쾌락을 추출하는 데도 능수능란했다. 213 프라모델이 그들의 자아를 쪼갰다면, 워크맨은 그들의 감각을 쪼갰다. 워크맨은 감각의 재조직화를 통해 당시 청소년이었던 신세대의 문화적 인터페이스를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215 헤비메탈 자체가 이 시기의 중고등학생들이 간단한 패턴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해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실험실이었던 셈이다 217 될 수 있으면 남들이 듣지 않는 희귀한 음악을 찾아들으려고 한다. 219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을 눈여겨볼 만했다. 그것은 일종의 실험실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청춘‘을 말소한 뒤 소년기와 성년기를 바로 이어 붙여 새로운 타입의 인간형을 양산하려는 시도가 거듭되는 실험실 말이다...그들은 제각각의 데이터베이스와 패턴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아돌의 생산 시스템을 운영,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 240 내가 상상한 이 세계가 청춘의 테마파크라고 생각했다. 장기 경기 침체의 덫에 걸린 신세대가 호황의 기억을 소환해 복고와 추억, 자기 위안을 상품 형식으로 소비할 수 있는 테마파크 말이다. 막장극과 버라이어티 쇼와 오디션 프로그램이 판치는 텔레비전 화면의 가상계에 손바닥만 한 빈자리라도 있다면 별 어려움 없이 터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43

[ ] 집으로 향하던 ‘사다리‘가 사라진 이후 큐브는 기존의 거주용 방과 집의 기능을 외부화한 방, 즉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이원화된 방향으로 계속 증식했다.....284.. 서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임대료는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호르몬 주사제나 다름없었다. 만약 다른 지방 도시였다면 큐브 일부는 빠르게 슬럼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대학교가 많은 서울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대학생이나 취업 준비생 같은 산업예비군들이 큐브에 거주하면서 도시의 노화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격랑에 맞서는 인간 방파제라고 할까? 285

볕뉘

0. 이 책을 읽다가 [빚으로 지은 집]이라는 2008년 리먼사태이후의 미국상황을 추적한 책이 떠올랐다. 있는 사람, 부자동네가 아니라 변두리의 삶과 관계가 급속히 망가지는 모습이 기억난다. 말미 가계부채 탕감이란 정책이 오히려 유효하고, 경착륙이 아니라 연착륙이 가능하다 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인상깊게 보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다.

1. 이 책 역시 시도가 엿보인다. 소설의 인용과 소설 작법을 활용하였고, 귀에 쏙쏙 박히기도 한다. 다소 산만한 감은 없지 않지만....

2. 진보란 무엇일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삶을 걸지 않는 이상, 삶이라는 기간의 진보를 한묶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쌓인 보수와 핑계의 무덤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무거운 마음이 들게 했다.

3. 경제란 살림살이를 전면에 세우면서 정치관계를 파헤쳐야 한다. 그런면에서 박해천교수의 진화된 탐색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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