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 ] 만약 몸이 로봇처럼 야무지고 단단해서 어떠한 외부의 영향에도 끄덕하지 않는다면 이웃들은 우리에 대해 염려하거나 걱정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수치감을 느꼈던 몸의 연약함이 우리를 보살핌과 배려를 받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끄떡하면 상처가 나고 병에 잘 걸리는 몸, 그것은 우리가 내부로 단단하게 닫힌 존재가 아니라 타자를 향해서 열린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35

[ ] 로렌스와 사르트르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은 매우 역설적이다. 자유를 원하면 원할수록 자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영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은 육체의 존재를 더욱 고통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육체를 자기의 정체와는 무관한, 아니 자기의 완전성을 위협하는 타자로 만들어야 한다. 43

[ ] 혐오는 심미적 반응으로서의 싫음과 윤리적 반응으로서의 미움으로 구분될 수 있다. 혐오의 대상은 그냥 싫을 수도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미울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하는 대상이 그냥 싫은 것인지 아니면 미운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할 필요가 있다. 물론 미우면서도 동시에 싫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45

[ ] 취향과 감각에도 역사가 있다. 타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국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타자를 향한 혐오의 감정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와 무관한 듯 보이는 음식 취향도 그러하다. 51

[ ] 낙인을 찍는 순간에 ‘나는 개고기를 안 먹는다‘라는 개인적 취향이 ‘모든 사람은 개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라는 명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개념이 되는 것이자 개인적 취향를 보편적인 것으로 입법화하는 것이 된다. 55

[ ] 역사적 시선의 소유자는 본래 혐오스럽게 태어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그것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혐오는 비역사적인 무지의 시선, 맹목적 직관의 시선이 전제된다.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을 보는 그 시선이다. 무지의 시선 말이다. 144

[ ]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06 의 마츠코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작은딸을 사랑하기 위해서 큰딸을 미워했다.. 부모는 사랑에 목말라하는 그녀를 외면하고 병약한 동생만을 끔찍이 보살피고 끔찍이 사랑하였다. 혹시라도 마츠코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렇지 않아도 가엾은 동생이 섭섭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그녀를 무시하였다. 여동생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마츠코를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49

[ ] 여성 혐오를 가부장적 구조로 설명하는 것은 고르디어스의 칼날의 효과를 보여주지만, 이 구조적 설명이 갖는 치명적 단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즉 사회적 변동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배내옷이 파랑과 분홍색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연두색, 커피색, 블랙 화이트 등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이 선을 보이고 있다. 161 유니섹스. 성희롱. 비혼.

[ ] 군 가산점 제도의 폐지는 남성적 특권의 폐지를 의미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여성 혐오에 가담한 많은 남자들은, 여성들이 그러한 특권을 빼앗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자기네들에게 과거와 같은 남성적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여성 혐오의 바닥에 깔린 정서는 남성적 우월감이 아니라 패배감이다....2028년 결혼 적령기 여성 100명당 남성의 수는 120-123명으로 증가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65, 166

[ ] 자기가 여성에 비해서 유리하고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남자들의 인식을 빼놓고 여성 혐오를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지나체게 남자들에게 유리했던 사회적.제도적 조건은 더욱 더 바뀌어야 한다. 그러한 정당성에도 어찌되었든 많은 남자들이 과거에 점유했던 특권적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는 박탈감을 안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167 혐오는 약자의 감정이 아니라 강자의 감정이다. 그것은 열등감과 패배감의 표출이 아니라 우월감과 자만심의 표출이다. 약자는 불의하지만 힘이 센 권력자에 대해서 혐오가 아니라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가진다. 167

[ ] 루저: 여성 혐오는 특정한 여성 개인에 대한 주관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가 집단적으로 반영된 현상이다. ˝이들의 위치가 몇 년 전부터 중요한 문화 코드로 등장한 ‘루저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 한 남자 개인이 아니라 남자 전체가, 한 여자 개인이 아닌 여성 전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정서적 태도인 것이다. 이 점에서 어떤 특정 여성 혐오자가 과연 루저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다.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가 자신을 밀어주지 않는다면 감히 여성 혐오 발언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설혹 가능하더라도 여성 혐오라는 사회적 정동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70

[ ] 키에 대한 루저 발언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혐오가 아니라 분노라고 말해야 옳다. 여러 사회적 상황을 감안하면 나는 여성 혐오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혐오가 아니라 분노나 증오라고 말해야 옳다. 나는 미소지니도 우리말로 여성 혐오가 아니라 여성 비하로 옮기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비하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것이었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구조가 개인의 의식으로 내면화되어 나타난 언행이 여성 비하의 본질이다. 171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과 같이 자신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가부장적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남자들은 여잘ㄹ 비하할 수 있는 특권도 동시에 상실한다. 172

[ ] 우리는 처음 보는 물건을 신기하게 보듯이 낯선 타자를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인격이 아니라 보이는 외모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타자는 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친근한 관계로 접어드는 순간 대상이었던 타자는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즉 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인격적 관계에서 타자는 주체와 동등한 대화 상대가 된다. 지금까지 ‘그‘로 보이던 제삼자가 자신을 ‘나‘라고 칭하는 ‘너‘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질문하면 그는 ˝나는 ..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면 너는?˝하며 나의 의견을 물을 수 있다. 일방적이던 관계가 쌍방적인 관계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모르는 타자만이 대상화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여성이 나에게 성적으로 대상화된다. 175

[ ] 과연 남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다 김치녀라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남자들이 많다. 특히 자신의 무력감을 절감하는 남자들은 그러한 일반화에 기대고 싶어 한다. 그녀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무력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자기를 치고 올라가는 여성들을 김치녀라는 이름으로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자기가 여자들보다 우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우월하지 못하면서 상대 여성을 비난하는 것일까? 우리는 김치녀에 대한 비난에서 남성 우월주의적 유산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남성성의 신화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몰아쉬는 마지막 거친 숨이 아닐까. 182

[ ] 여성 혐오라는 용어가 선동적인 구호에 가깝다면 여성 비하라는 용어는 태도의 전환을 요구하는 윤리적 성격이 강하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감정 가운데 혐오감만큼 거두기 어려운 감정이 없다. 혐오했던 대상이 착각이며 환상이고 오류였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혐오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그것은 지극히 보수적이며 심미적인 감정이다. 반면에 비하는 대상에 대한 즉각적이고 심미적인 반응이 아니라 관찰과 도덕적 판단의 결과다. 판단하지 않으면 비하의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저러한 이유로 비하했던 사람의 진면목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 이전의 비하했던 감정과 태도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했다는 생각에 후회하기도 한다. 심지어 존경심이 생길 수도 있다. 186

[ ] 혐오가 정치적인 이유는, 자기보다 약하고 만만한 상대를 타겟으로 고르기 때문이다. 타자의 몫을 가로채는 전형적인 희생양 만들기와 단물 빨아먹기의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이다. 케이크자르기라는 게임이론이 있다. 욕심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케이크를 자르고 큰 조각을 취한다. 이때 케이크가 생명이며 행복이고 부, 건강, 아름다움리라고, 반면 그 가장자리가 죽음과 불행, 가난, 질병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해보다. 혐오의 기원은 생리적인 기능에 있다. 단 것은 삼키고 쓴 것은 내뱉고, 단물을 빨아먹고 찌꺼기를 내뱉는 동물적 본능이 그것이다. 191

[ ] 혐오는 비민주적이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무시, 다수의 소수에 대한 무시, 즉 이러한 권력의 위계가 없으면 혐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소수의 타자를 혐오함으로써 달콤한 쾌락을 향유하게 되지 않는가. 이 점에서 혐오는 분노의 감정과 다르다. 분노는 불의에 대한 자의식에 머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강력한 의지까지 동반한다. 행동으로도 점화될 수 있다. 194 그렇지만 혐오감은 행동의 가능성을 극히 주관적인 쾌락으로 바꿔버린다. 194

볕뉘

0 . 여기저기 이동하는 틈에 읽다.

1. 저자는 몸문화연구소장으로 있고 영문학전공이다. 사례로 여러 문학이야기가 자연스러워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는 혐오라는 감정을 몸에서 뱉은 침을 다시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은 타자화의 역사이자 인류가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기제라는 것이다. 밖만 아니라 내부의 심연도 그러하다고 하다. 저자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역사의 구조적 설명만으로 지금을 설명해낼 수 없으며, 보다 적확한 용어를 쓰는 것이 현실을 좀더 낫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는 오항영교수가 기존 관점과 달리 역사를 구조-의지-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점에서 곁들여봐도 좋을 듯싶다.

2. 결을 나누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싫다와 밉다. 심미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조금씩 나누다보면 조금씩 보는 시선도 느끼는 마음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쉽게 단정짓지 않고 유예를 두려는 노력이 움직인 것만이 아니라 움직이려는 것,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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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나한테 관대해지는 방법.

[ ]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예술을 한다 9

[ ] 일탈이 필요해요. 우울과 좌절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도전해보는 게 좋아요. 21

[ ] 그 시선은 남을 바라볼 때만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볼 때도 적용되죠. 비교한 후 화내도 되죠...겉으로는 멋져 보여도 뒤에서는 더러운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내가 부풀려서 기대해놓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때 오히려 ‘저 사람도 숨 쉬고 사는구나, 별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나한테도 관대해질 수 있어요. 25

[ ] 다른 사람의 감정 생각하는 거 좋아요, 관심 쏟는 거 좋죠. 하지만 제일 먼저 나를 점검했으면 좋겠어요. 내 기분을 먼저요. ..힘들 땐 무조건 내가 제일 힘든 거예요. 40, 41

[ ] 모든 것을 너무 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감정에 중점을 두는 거죠. ‘아무렴 뭐 어때‘라는 생각이 중요해요. 45

[ ] 자기검열: 눈치를 많이 보니까 그렇죠.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져서 그렇죠. 내 인생은 내 것이잖아요. 내 몸도 내 것이고, 그 책임은 내가 지는 거죠...원인보다 결과물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감정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도 똑같거나 혹은 다르다라고만 평가하는 것이 이유가될 수 잇어요. ...좋게보다는 과도하지 않게? 극단적이지 않게 바꾸는게 중요하죠....56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보다는 내 욕구를 먼저 충족했으면 좋겠어요. 59

[ ] 관계: 애정을 좀 분산시키는게 필요하네요. 많이 희생하다 보면 대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너무 잘해줬으니까, 그만큼의 보상을 못 받는다는 느낌에 상대가 더 빠지게 될 수도 있고요. 66 내 불안감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일 수 있어요. 68 확인에 대한 욕구는 알겠는데,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이 애 같다고 해야 할까? 함께하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면, 단순히 어떤 관계냐가 큰 의미가 있을까요. 69 자기 자신을 특별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해야 해요. ‘좋다, 나쁘다‘만 흑백논리가 아니에요. 71 나를 편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계속 찾는 건 중요해요. 74 늘 부분과 전체를 구분했으면 좋겠어요. 하나가 마음에 든다고 이 사람 전체가 다 마음에 들고,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전체가 싫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좀 다르게 생각하는 시도를 하면 좋겠어요. 84 예전에는 ‘나한테 어울리고 필요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상대를 만나보며 균형이 잡힐 수도 있어요. 90

[ ]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때그때 행동으로 해보는 거예요...그러다보면 나중에 공통적인 부분을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내가 어떤 면에 두려움을 느끼는구나, 어떤 면에 안도감을 느끼는구나‘ 같은 거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어요. 94

[ ] 사람을 사귀거나 안 사귀거나, 아주 친하거나 다시는 보지 않거나, 터뜨리거나 참는 거요. 늘 예스 아니면 노의 선택지만 존재하고, 중간 단계는 아예 없네요. 97 이 문제는 상대를 평가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 잣대가 그대로 되돌아온다는 게 큰 문제예요. 99 지금은 관계가 좁고 삼각형 같아서 마음을 많이 찌르겠지만, 팔각형보다 십육각형이 원에 더 가깝잖아요. 다양하고 깊은 관계가 많아질수록 원처럼 동그랗게 무뎌져서 마음을 덜 찌를 거예요. 102

[ ] 히스테리 성격: 그런 성향이 있죠. 어딜 가든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거요...하나의 유형은 내 매력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 야한 옷을 입거나 근육을 키우는 식지요. 다른 하나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여기면서 자책해요. 119

[ ]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좁고 자기비하적이니까, 넓고 다양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둘 중 하나로 선택해야만 차라리 편한 거죠..끊임없는 이분법적인 사고....밀려나는 걸 두려워하는 거 같아요. 밀려나더라도 한 계단, 두 계단씩 내려올 수 있는 건데, 마치 누군가가 ‘야 너 내려와‘하고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받아들이죠...122, 123

볕뉘

0. 책주문이 있어 구입해서 미리본다.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여러 생각들이 일었다. 자고난 뒤에도 어쩌나 싶을 정도로 ...흔적을 남겨야 할 지도 의문스럽기도 했다.

1. 아들러는 아이들이 첫째, 둘째, 막내....로 자라는 과정에서 그 관계가 여러모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며, 사회적 자아나 사회적 관계 회복을 위해 그런 심리관계를 들여다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릴 적 가정내의 관계 형성이 인정이냐 무시냐의 문제을 떠나 모멸감이나 모욕감이 순환하게 되는 흐름 속에 산다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은 언제나 그 구조 속에 쾌감이나 의존관계 속에 살아지게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

2.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을 번역한 한 평론가는 작중 인물의 대부분이 이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스스로 비극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3. 삶 역시 주어진 정답은 없을 것이다. 마음안의 상처 역시 보듬어 주고, 또 다시 생살이 돋고 하는 과정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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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51

[ ]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은 방해가 되었다.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96

[ ]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 130

[ ] 어슴푸레한 빛은 새벽 햇살 같지도 않고, 저녁 햇살 같지도 않았다. 그 빛은 모든 사물의 윤곽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고 뚜려사게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빛이 나오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도로의 아주 작은 돌맹이까지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그림자들은 모두 제가끔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178

[ ] 그들은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 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 때만 살아 있지. 208

[ ]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210

[ ] 시간은 언제나 거기 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음악 같은 걸 거예요.....하지만 그 음악은 아주 멀리서 들려왔지만, 제 안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렸어요. 어쩌면 시간도 그런건지 몰라요....바람이 불어서 강물에 물결이 이는 거랑 비슷한 건 아닐까요...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여기 ‘언제나 없는 거리‘에 있는 ‘아무 데도 없는 집‘에서 나오는 거란다. 216

[ ]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217

[ ] 네가 보고 들었던 것은 모든 사람의 시간이 아니야. 너 자신의 시간이었을 뿐이지.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네가 막 다녀온 장소와 같은 곳이 있단다. 보통 눈으로는 그곳을 볼 수 없지. .....네 마음 속....우물이란다. 그곳은...225

[ ]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 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으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란을 떠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즐거운 소란이 아니라 미쳐 날뛰는 듯한 고약한 것이었다. 253

[ ] 사람들이란 한갓 자기 안에 있는 시간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거든,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란다. 허나 그들은 사정이 달라. 그들은 훔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지. 그래서 시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몸에서 금세 시간이 빠져나가는 게야. 터진 고무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같지. 풍선은 그래도 터진 조각이라도 남지만,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322

[ ] 시간의 꽃. 그 때 내가 말했잖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갖고 있기에 그런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원에 그들을 들이면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 있게 된단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가슴에서 뽑힌 시간의 꽃은 죽을 수가 없어. 왜냐하면 그 시간은 진짜 흘러간 것이 아니거든. 허나 진짜 주인에게서 떼어 내졌기 때문에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없지. 시간의 꽃은 전심 전력으로 제 진짜 주인에게 돌아가려고 애를 쓴단다. 327

[ ]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360

볕뉘

-1. 4년전 시간의 향기라는 주제로 북콘서트를 가진 적이 있었다. 에둘러 가지만 시간을 이야기하거나 나누지 않고는 어떤 진보도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었지만....욕심이란 걸 눈치채기까지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매여있거나 뭘 해야하거나 시간씨앗 하나도 심을 수 없음을 느끼고, 시간 한포기도 키워낼 수 없음을 미리 깨달아야 했다.

0. 시간을 짓고, 만들고, 피우고....관계를 만들고 짓고 피우고........아주 작은 안내서같은 ㅇㅇ의 시간들을 위한...안 내 서....흔적들... 물론 위의 그 과거의 일은 스스로 되묻는 지적이기도 하다.

1. 시간을 작은 종지에라도 서로 담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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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1.

[ ] 당신 잘못을 버리고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마세요. 아무도 이 법원에 맞서 싸울 수는 없어요. 반드시 고백을 해야 하니까요. 다음 기회에 고백하도록 하세요. 그런 다음에야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116

[ ] 이런 방식으로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이며, 거기에 변호의 주용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카 당신도 몸소 체험해봐서 알겠지만 법원의 말단 조직이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의무를 망각하고 매수당하는 직원들이 있고, 그로 인해서 법원의 엄격한 보안 상태가 어느 정도 구멍이 뚫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대다수의 변호사들이 비비고 들어가서 매수를 하고 비밀을 캐내는 거지요./실질적인 가치는 고위 관리들과의 신뢰할 만한 연줄에 있습니다. 물론 하급 재판소의 고위 관리들과의 연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렇게 함으로써 당장은 눈에 띄지 않지만 나중엔 재판 진행에 점점 더 분명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125

[ ] 그런 것은 기껏해야 다른 피고인들에게 약간 도움은 될지언정 당사자는 항상 복수만 생각하고 있는 관리들의 특별한 주의를 끌게 되어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의를 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에 거슬려도 그저 가만히 계십시요. 이 거대한 법원 조직은 어느 정도는 항상 떠 있는 상태라는 것,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위치에서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변화시킨다면 발붙일 곳을 잃고 굴러 떨어지고 만다는 것, 한편 그 커다란 조직 자체는 그런 사소한 장애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전체가 연결되어 있습니다-보완을 하고, 더 잘 결속되든가 더 사악하게 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본래대로 있는 것입니다. 129 여러 가지 면에서 관리들은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130

[ ]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들에게 제기된 소송 절차 때문일 수 있습니다. 198 그건 변호 의뢰인이 아니라 변호사의 개였다. 208

[ ] 임무가 끝나려면 시골 사람의 삶이 끝나야 하니까 그는 결국 그 마지막까지 시골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37/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이야기는 어느 누구에게도 문지기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는 역시 법에 종사하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법에 속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인간적인 판단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238/ 모든 걸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그것을 단지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239/당신은 교도소 신부이지요...그러니까 난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요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240

[ ] 그 사람들을 애먹게 하고, 항거하면서 삶의 마지막 현상을 즐기려고 애써 보았자 그것은 결코 영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243 난 항상 스무 개의 손을 가지고 세상에 덤벼들려고 했으며, 더구나 인정할 만한 목적도 없이 그랬던 거야. 그건 옳지 않았지. 244 아무리 확고부동한 논리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고자 하는 사람에겐 저항하지 못한다...카는 두 남자가 바로 자기 눈앞에서 뺨과 뺨을 맞대고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군.˝ 그가 말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치욕만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247


2.

[ ]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지상의 시민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상을 활보할 수 있는 길이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길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역시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천상의 시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지상에서와 유사한 길이의 천상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 지상으로 가려 한다면, 천상의 목걸이가 그를 죄어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비록 이 두 세계가 양극화된 모순 속에 있지만 인간들은 그 두 세계의 통합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느끼고 있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목적과 소유 관계만을 갈망하는 키클롭스적 인간들은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모르게 그 가능성도, 그것에 대한 동경심도 상실하고 말았다. 285

[ ] ‘세인‘으로서의 인간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아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 들에게는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일상에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카프카에 따르면 이런 ‘세인‘에게도 가끔은 꿈과 잠을 통해서 혹은 고독한 명상의 순간이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저 망각된 정신세계나 영혼의 세계가 유령처럼 찾아온다. 286 자신의 글 쓰기는 항상 꿈과 잠, 비몽사몽의 중간 상태에서 혹은 깊은 침잠의 순간에 많은 문학적 착상을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꿈이나 잠 혹은 깊은 명상은 카프카에게 있어 신비적 체험과 성찰을 낳는 순간이며 그의 시적 상상력과 직관능력을 한층 고양시키는 창작적 계기이기도 하다. 287

[ ] 변신된 갑충의 시각에서 보면,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이 그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잠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직장생활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희생적이었으며 비인간적인 것, 폭력적인 것이었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잠자‘는 이중의 시각으로 조망되고 이중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에 카프카 작품의 난해성이 있다. 289

[ ] 사냥꾼 그라투스: 그라쿠스는 세계를 떠돌면서 이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이전의 세계, 즉 정신과 자연, 죽음과 삶, 영혼과 육체가 하나였던 저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두 세계가 붕괴되어져 간 과정을 파편화된 이야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들은 그를 ˝고의적으로˝ 회피한다. 그라쿠스는 처음에 바랐던 영혼의 세계로의 귀의를 스스로 포기한다..그는 지상적인 것에 매달려 있는 ˝세인˝들인 인간들에게 잃어버린 ˝아름다운 세계˝를 전달하려는 중재자로 남기를 원한다....그라쿠스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카프카와 같은 뜻인 까마귀를 의미한다. 290

[ ] 법 앞에서: 한 시골 남자가 법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법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는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법에로의 입장이 후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골 남자는 법에로 입장하기 위해서 값진 물건들을 써가며 법에로 들어가지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문지기가 하는 말은 언제나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시골 남자는 첫 번째 문지기의 무서운 외양과 태도에 질려 내부에 있는 법에 대해 전혀 물으려 하지 않은 채 그의 입장 허락만을 한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죽고 만다. (성담)

[ ] 문지기는 알 수도 없고 도달 할 수도 없는 법을 수호하는 ˝법원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법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실상은 그들 자신도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 형이상학적 종교적으로 이념, 신, 율법, 진리, 존재 등등으로 해석될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절대적인 관료주의 제도나 혹은 전체주의적 체제로, 그리고 사회철학적으로는 ‘권력과 욕망의 상관구조‘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을 전제로 했다고 생각되는 현실적인 제도나 체제에 속한, 즉 구체적인 인간 법제도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293 요제프 K를 대변하는 인물인 시골남자(원래 히브리어로 무지자)의 법에로의 입문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알 수 없는 절대적인 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망각한 채 오직 현상적인 것에만 매달려 있는 세인인 것이다. 294

[ ] 신부 말대로 문지기가 시골 남자를 속인 것이 아니라, 시골 남자가 문지기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제프가 자신의 재판 과정에 대해 묻자 ˝그대의 소송은 하급법원을 전혀 넘지 못할 것˝이라고 신부는 대답하는 것이다. 그 법이 진리이건, 율법이건, 존재의 세계이건, 신의 세계이건 혹은 초자아의 세게이건, 그것은 언제나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법에로 이르는 길은 사람마다 작자 다 다르다. ..카프카에게 있어 진리에로 이르는 길은 언제나 각각의 개인에게만 열려 있고 또 각자의 실존적 선택에 달려 있다. 각 개인의 고유한 삶과 죽음이 있듯이 진리에로의 길 역시 각자 다른 것이다...진리의 세계는 오직 각 개인의 고유한 ‘직접적인 체험과 직관‘에 의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다. 295

[ ] 영원한 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을 포기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그의 잠언이 말해주듯이 저 알 수 없는 법, 저 초법적인 법에로 귀의는 인간 각자의 그 어떤 결단적인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295

볕뉘.

왜 죽이거나 슬며시 잠적하게 했을까. 그래. 약간의 해답. 하지만 삶을 기울여 그 짧은 소설들 사이 행간에 부어야...그리고 그것이 책장에 적셔질 때만 제대로 읽힐 수 있다. 어쩌면 제대로 된 독해는 당신의 삶을 걸 각오가 먼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야만 아주 조금 잠적하지 않거나 죽지 않을 수도 있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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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유대인, 몸

1.

[ ] 프라하의 유대인 작가: 카프카는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의 길을 생계를 위한 직업이나 부차적인 취미가 아닌, 자기 자신의 실존을 중차대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그 자신에게나 독자에게나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진지하고 심각한 일이었고 특히 그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69

[ ]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은 우리를 아주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이라네. 마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마치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쫓겨 멀리 숲으로 추방된 것 같은, 마치 자살과 같은 불행 말일세. 책은 우리 내면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70

[ ] 19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문학은 시민혁명, 산업 혁명, 도시화 시기를 거쳐 자수성가하여 중산층으로 발돋움했고 이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으로 가득 찬 낙관적 부르주아였던 아버지 세대에 대항하여, 아들 세계가 반기를 든 것으로 주로 문학과 예술에 탐닉하면서 유미주의 성향에 빠진 주인공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73

[ ] 카프카는 동부 유대인 극단의 연극에 큰 감명을 받아 [야만인]을 위시한 거의 30편 정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는 그 공연에 대한 기록을 100쪽 넘게 편지와 일기에 남겼고 이 영향은 오래 지속되었다. 80

[ ] 이시디어를 느끼면서 이해하려면 몸을 먼저 평안하게 해야 한다. 이때 이디시어를 전체로 받아들이면 어떠한 통일성을 느끼게 되는 이 통일성은 너무나 크고 강력해서 두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인지와 감동, 통일성을 느끼는 매체로서의 몸을 강조하는 언어관은 카프카의 문학관과도 연결된다. 86
[ ] 서유럽이 외향적으로 흘러 공리주의와 과학 문화를 발달시켰다. 동유럽이 내향적으로 흘러 자기 자신의 영혼을 주시하고 과거에서 새로운 힘을 얻으려는 경향을 갖게 되자 동유럽의 유대인들도 내향적으로 흘러 지성의 등을 자신의 과거에 비춰 보고 거기에서 미래를 내다보려고 했다. 서유럽의 유대인은 서구화된 문명을 산출하고 동유럽의 유대인은 유대인 문화를 산출했다. 87

2.

[ ] 보고: 주인공 원숭이는 인간 사회에도 원숭이 사회에도 완벽하게 소속되지 않는 제3자로서 혹은 혼종적 존재로서 특히 자신이 동화하고자 하는 인간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105

[ ] [동물과 인간에 대하여]에서 하겐벡은 동물의 영혼에 인간적으로 접근하면 야생동물을 폭력적으로 길들이지 않아도 조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야생에서 포획한 동물들을 목적에 더 합당하게 그리고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면 유럽으로 데리고 올 때에나 나중에 유럽의 동물원이나 서커스에서 훈련시킬 때 더 수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09

[ ] 우리에게 동물이 인간보다 더 가깝지요. 그것은 바로 창살입니다. 동물과의 유사성이 인간과의 유사성보다 쉽지요...모두들 자기가 짊어지고 가는 창살 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이 동물에 관해서 그렇게 많이 쓰는 겁니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동경의 표현이지요. 그러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삶이란 인간의 삶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려고 하지 않아요. 인간의 삶은 고달프고 그래서 사람들은 적어도 그것을 환상 속에서 털어 버리려고 하지요. 115

[ ] 카프카에게 예술가들은 대체로 아름다운 가상을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몸 전체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때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던져야 하는 절실한 기예를 구사하기 때문이다.129

3.

[ ] 변신: 잠자는 갑충으로서 방바닥뿐 아니라 벽과 천장에까지 기어다니고 더 나아가 천장에서 일부러 떨어져 보기도 한다. 잠자는 자신의 새로운 몸에 익숙해지면서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고 누이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소파 밑에 드러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한편으로는 기생동물로서의 안락하고 나태한 생활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탄자에 몸을 비벼 대거나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면서 끈적끈적한 흔적을 남기는 갑충의 모습은 잉크로 써서 글을 남기는 작가를 상기시키면서도 자신의 온몸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85

[ ] 인간 언어의 습득과 상실은 진화와 퇴화의 분기점이자 동물 세계와의 경계를 기록한다. 한편으로는 잠자에게 언어의 상실은 인간 세계와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이제까지 세계와의 교류에 있어서 자신의 내면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일상화되고 자동화된 매체로서 작동했던 언어를 버림으로써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외부 세상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자신의 정신과 몸을 느끼고 관찰하게 된 것이다. 몸은 이제 내면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더욱 중요해지는데 더 이상 인간의 이성적 언어가 아닌 새로운 동물의 몸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186

[ ] 생명의 예술: 갑충인 잠자는 글을 쓰거나 사색을 하는 작가가 아니라 온몸으로, 그것도 자신의 체액으로 원시적인 흔적 남기기로 쓰기 행위를 한다...요제피네 역시 주는 성악가이지만 아름다운 가곡을 부르른 것이 아니라 휘파람을 불 뿐이고, 단식예술가에서 마찬가지로 어떤 창조적인 성과나 업적을 보여주는 예술이 아닌, 부정적 행위를 하지 않기, 즉 자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굶기, 먹지 않기일 뿐이다...이는 아름다운 예술이나 창조적인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서커스의 기예, 기술에 가깝다....카프카가 묘사라는 몸의 예술은 당대에 자신의 몸을 사용해 과격하게 표현했던 예술 분파 삶의 예술과는 거리가 있지만 한편으로 목숨을 걸고 죽음에 이르도록 극도로 밀고 나가는 절박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생명의 예술‘이라 볼 수 있다. 188-189

[ ] 잠자는 누이의 음악에 몸을 움직이게 되는데 내적 변신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때 음악은 카프카에게 예술의 개념이 그러하듯 문화적이고 고양된 의미라기보다는 음성적 질료다.....이런 ....자신이 열망하던 미지의 어떤 양식에 이르는 길이 열리는 것 같았다라고 그는 쓰게 된다....단식 예술가에서 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단식하는가라는 물음에 그 이유로 ˝왜냐하면 저는 입맛에 맞는 음식(양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찾아냈다면 저는 정말 결코 세인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을 테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다른 사람처럼 배불리 먹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단식 에술가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양식에 이르는 길을 잠자는 발견한 것이다. 양식의 문제는 [어느 개의 탐구]에서도 다시 이루어진다. 우리의 양식이 대지에서 온다면 대지는 어디에서 양식을 얻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195

[ ] 잠자 역시 다른 단편과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해 갑충으로서 ˝말라서 납작하게˝ 죽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죽는 인물들은 슬픔이나 비탄, 고통에 빠져 죽지 않는다. 주변 세계도 죽는 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애도도 표시를 하지 않는다. 주변 세계도 죽는 자에게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애도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짐승 같은 죽음을 맞으면서도 내적으로는 자신과의 일치 속에서 평온하게 죽는데 예를 들어 단식 예술가는 계속 단식을 하겠다는 굳은 확신에서 행복감에 취해 죽고, 선고에서 게오르크는 ˝부모님, 항상 저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외치고 아버지의 선고대로 물에 빠져 죽는다. 잠자도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해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 보고˝ 자신의 평화로운 생각에 잠겨 죽어 간다. 198 이러한 죽음은 한편으로 법의 심판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다른 한편은 종교적 재판의 색채를 강하게 띤다...이들의 죽음은 동물에게나 사용되는 뒈지다라는 폄어로 표현된다. 보고에서도 원숭이의 동물로서의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뒈진˝ 원숭이라 부르고 있다. 206

볕뉘

0. 마저 읽다. 유대인으로 이력과 유럽 서부유대인과 동부유대인의 삶, 역사들. 다른 단편들과 이어서 설명한다. 일정부분 수긍할 수밖에 없게 된다.

1. 입양된 동양인이 자신의 몸으로 정체를 서구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여성이, 장애인, 노인, 환자가 모든 사회적 약자는 이런 이중, 삼중, 사중의 정체에 시달리게 된다. 정상남자 백인의 유럽인으로 정체와 다른 모든 것은 시달린다. 어느 곳이나 삶의 울타리는 유사하다.

2. 창살에 벗어나는 길. 삶에 대한 질문. 어쩌면 이 삼중의 복선들에서 슬며시 답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삶만 묻고 삶만 배우기 시작할 것. 어쩌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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