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보와 생명의 개체화: 개체는 ˝자신을 구성한 활동성의 변환적 관계이며, 그 활동성의 결과인 동시에 동인˝이다. 120 개체는 형성과정의 결가이다. 그것은 완벽한 축약이며 광대한 군을 다시 낳을 수 있다. 개체의 존재는 이러한 증폭하는 전이의 작용이다. 121 ˝개체의 경계들은 실질적으로 신경계의 경계들이다˝ 물론 반드시 중추신경을 거치지 않는 반사활동이라 해도 자율적 활동이 존재하면 부분적으로 개체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피부의 색소침착, 국지적인 소름돋음, 미생물 침입에 의한 국지적 방어반응...˝국지적 개체성˝이라고 특징짓는다. 122 변태는 존재자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일종의 생식이다. 그것은 증식없는 생식, 유사성 없는 단일성과 자기동일성의 재생산이다. 그것이 일어나는 동안 존재자는 하나의 개체로 남아 있으면서도 다른 것이 된다. 124 극성이 생겨날 때마다, 비대칭성과 방향성과 질서가 나타날 때마다 개체성이 준비된다. 개체화의 조건은 타성적이든 생명적이든, 물질로 하여금 극성화될 수 있게 해주는 퍼텐셜의 존재 안에 있다. 126 정보의 전달은 어떤 수준에서 일정한 에너지의 문턱에 도달하지 못하면 제로값에 상응한다. 물론 이보다 하위의 문턱을 갖는 연결부가 작동할 경우 정보는 그 안에서 ‘전부 아니면 무‘라는 법칙이 작동한다. 이는 수준들 간의 불연속성을 야기하는 양자적 특징을 말한다. 127


[ ] 정보와 개체발생: 개체발생은 항상성을 넘어서는 역동성을 필요로 한다. 시몽동은 개체발생을 설명하기 위해 ‘내적 문제상황‘(또는 문제제기‘)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개체발생은 해답에서 해답으로 완전한 안정성 즉 성체에 이를 때까지 도약하는 항구적인 문제제기˝이다....막 개체화된 존재자는 상반되는 요소들의 짝들의 형태 아래서 정보를 담지하는 체계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짝들은 내적 공명으로부터 응집을 갖게 되는 개체화된 존재자의 일시적 통일성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128 개체발생은 형태의 자기구성적 과정으로서 불균등하게 남아 있는 요소들로부터 구조와 기능들이 체계적으로 통일성을 얻는 과정이다. 긴장의 무화는 죽음에 이를 뿐이고 완전한 균형에 이른 안정적 평형은 개체의 빈약화, 퇴화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체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문제들을 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준안정성의 평형 속에서 보존˝하고 ˝긴장들을 양립가능하게˝하는 것이다. 129 기관들의 대칭이라는 이원성과 발달 방향의 일원성 혹은 통일성 사이의 긴장이다. 시몽동은 이러한 이원성이 유전 기제에서도 나타난다고 본다. 그는 유전 기제를 정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유전적 특징은 미리 결정된 요소가 아니라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불균등화 관계에 있는, 서로 구분되면서도 통합된 두 요소들의 쌍˝이라는 것이다. 시몽동의 생각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균등화 관계를 극복하면서 즉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차원은 ‘의미작용‘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130 지각은 공통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들을 보존하고 그것들을 전체 안에 통합시킨다. 그래서 ˝지각은 두 개의 특수한 것들 사이의 갈등을 이용하여 그것들을 통합하는 더 우월한 체계를 발견한다. 지각적 발견은 환원적 추상이 아니라 통합이고 증폭시키는 작용이다.˝ 131

[ ] 진화는 엄밀히 말해 완성이 아니라 통합이고, 퍼텐션들을 축적하고 구조들과 기능들을 모으면서 자기 자신 위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준안정성의 유지이다.˝ 134 성숙한 개체는 집단적인 것 안에서 ˝지금, 여기를 넘어서는˝ 의미를 구현한다. 136

[ ] 정신적 개체화: 이는 독립적인 개체화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적 개체화의 연장인 동시에 집단적 개체화라는 또 다른 생성과 짝을 맺고 있다...생명은 계속되는 문제상황에 대한 해결로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절대적 완성이 없는 개체화들의 연속이며 정신적 개체화는 그러한 생명적 문제상황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해결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정신적 개체화의 커다란 특징은 집단적 개체화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140 생명적 개체에서 정신적 개체로 전달되는 개체초월성은 구체적으로는 정념적 특징, 즉 ‘정념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막연한 느낌의 차원을 넘어서서 생명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퍼텐셜 정도로 볼 수 있다...정신적 개체화를 ‘내적‘ 개체화라 하고 집단적 개체화를 ‘외적‘ 개체화라고 묘사한다....시몽동에 의하면 정신과 신체는 형상과 질료의 관계(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니고 두 개의 다른 실체(데카르트)도 아니며 평행관계(스피노자)도 아니다. 연속적인 모든 개체화가 그러한 것처럼 ˝정신적인 것은 생명체의 개체화의 지연으로서, 생명적 생성의 최초의 상태의 유형성숙적인 증폭으로 개입한다.˝...˝개체화는 전체나 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양자적 방식으로 갑작스런 도약에 의해 수행된다.˝ 141 정신적 개체화는 하나인 것이 아니라 다수의 또 다른 개체화들의 결합이다...정신의 활동으로 거론되는 감각, 지각, 상상, 추론 등은 질료적 다양성 및 능동적으로 인식하는 주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이해해서는 안 되고 동일한 생명적 개체가 새로운 공리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각각의 정신적 활동은 그만큼의 개체화들이며 정신적 개체화는 이 다양한 개체화의 통합으로 나타난다.....생명체는 항구적인 변화에 대처하는 일정한 구조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정념이 가진 선호와 배제라는 특성에서 유래한다. 캉길렘에 의하면 생명체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역동적 양극성‘에 따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에 따라 각 생명체에 고유한 규범들이 만들어진다. 142


[ ] 지각대상이 수동적 종합의 결과가 아니라 통일성과 역동성을 가진 에너지적 상태...지각이 결국 유기체의 문제라면 전체성으로 파악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144 지각작용이 일어나기 전에 주체와 환경 간에는 긴장과 갈등이 준안정적 퍼텐셜로 존재하며 그 양립불가능성의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지각작용이다. 지각은 ˝양립가능성의 발견˝인 동시에 ˝형태의 발명˝이다....어린아이들의 맹수에 대한 지각은 단순한 기하학적 도식에 가까운 형태들이 아니라 공포와 공감을 야기하는 ‘신체적 도식‘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 준다. 즉 지각에서 중요한 것은 ˝전체적 정향과 극성˝ 그리고 ˝긴장, 퍼텐셜˝과 같은 역동적 내용이다. 145 지각은 단지 고정된 형태의 파악이 아니라 시간적 과정이기도 하다. 145 시몽동은 정보의 질과 양 아래에는 ˝강도로서의 정보˝가 존재한다고 한다. ‘강한 명암의 대조‘나 형태들의 ‘비규칙성‘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생명적 역동성에 의해 방향이 잡힌 주체를 가정한다.˝..이때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신호의 양이나 기하학적 형태들이 아니라 빛과 색, 어둠, 냄새, 열 등 감각적 자극들의 ‘구배‘를 따라 주체에게 느껴지는 강도이다. 147 자극의 강도는 상응하는 정념을 낳고 정념은 지각에 반비례한다. 가령 눈에 들어오는 빛의 강도가 너무 강렬할 경우 명확한 지각을 할 수 없다. 148 강도는 주체와 세계의 관계장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완전히 물리적인 차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두려움, 강렬한 욕망 등으로 인해 지각체계의 양립불가능성과 긴장이 높아질수록 지각의 호소력은 강해진다. 151


[ ] 정념-감동성: 일반적으로 정념성이란 생명체가 명료한 의식을 가진 주체가 되기 전에 막연히 쾌와 불쾌, 호감과 반감 등을 나타내는 감정의 특징이다. 여기서 감정으로 표현된 것은 내면의 동요, 동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점에서 감동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를 상대적으로 정적인 정서와 구분해야 한다. 사실 감정은 어느 정도 의식적인 것인데 정념은 감정 이전에 그것을 형성하는 의식, 무의식적 재료를 이루는 내적 상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시몽동은 특히 정념성에 의식과 무의식의 매개라는 특징을 부여한다....정념성은 의식과 무의식을 매개할 뿐 아니라 주체와 다른 주체들 그리고 주체와 세계를 매개한다... 시몽동은 의식과 무관하게 ˝주체의 행동 능력에 해당하는 무의식의 근본적인 층˝이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생리적 무의식에 가까운 것으로서 자네의 잠재의식이 바로 그러한다. 그 다음 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에 잠재의식의 층이 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정념성이자 감동성이다˝라고 주장한다. 152


[ ] 정념적 의사소통: 소통은 언어적이거나 신체적일 수도 있지만 시몽동에 의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잠재의식들의 소통이다...정념-감동성의 영역이 소통의 기반이라면 죽음이나 영원성의 문제에 대한 표상과 개념규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선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개체로서의 개체가 아니라 정념-감동적 기반을 가지는 변환적 존재자이다. 153 살아있는 개체들은 ˝개체성의 구멍들˝ 즉 ˝상징˝이자 ‘음적 존재‘들이며 이것을 채우는 것이 정념성과 감동성이다. 이 비유는 개체의 자기의식이 상호주관적인 정념-감동성을 재료로 하여 서서히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즉 ˝개체는 단지 자기 자신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 154

[ ] 지각 역시 양립불가능한 강도차를 해결하는 것인데 이 역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때 말하는 행동은 감정과 달리 세계와 관계하는 행동이다. 정념적 문제를 해결하는 감정(행동) 그리고 지각의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은 ‘평행‘ 관계에 있다. 행동과 감정은 ˝양립가능성이라는 우월한 질서의 발견, 공조의 발견, 준안정적인 평형의 보다 상승한 수준에서 일시적인 해결의 발견˝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다른 말로 하면 행동은 지각을 의미화하고 감정은 정념성을 의미화한다. 156 주체는 개체와 달리 정신성이 나타날 때 비로소 구성되며 따라서 집단적인 것과의 통합을 필요로 한다....자기의식을 가진 주체는 개체가 자신 안에 내재하는 전개체적 실재성을 의식할 때 가능하다. 주체가 세계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이 세계는 하나의 방향, 약동을 갖게 된다. 주체가 방향을 갖는 것은 바로 감정에 의해서이다.....감정은 행동의 형태로 세계 속으로 연장된다. 마치 행동이 감정의 형태로 주체 속으로 연장되는 것과 같다.˝ 157


[ ] 감각이 아직도 신체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성질이라면 정념은 이와 혼합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넘어서서 막연한 감정적인 특질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쾌락과 고통이라는 차원을 통과하며 이것이 생명체의 실존을 구성한다. 감각의 양극성은 무수한 ‘미분적 구배‘들을 포함하고 생명체는 이에 대하여 자동반응이 아니라 굴성에 따라 자신의 방향을 정한다. 그것은 감각의 양극단을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미분적 감성의 최대치에 상응하는 중심 위로 모인다. 하나의 중심이 있고 이와 관련하여 각 유형의 실재에 대한 관계가 전개된다..생명체는 구배 속에서 최적의 구역을 찾아 헤맨다. 그것은 종합이 아니라 변환이다. 가장 뜨거운 것과 가장 차가운 것은 중심과 관련하여 대칭적으로 전개된다. 159

[ ] 정념은 단지 느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생리적 상태˝로서 ˝주체의 생성 안에 삽입˝되며 ˝시간적 구조들로 통합된다.˝ 160


[ ] 개체화 이전에 존재하던 신호들은 개체화와 더불어 의미작용으로 전환된다. 긴장은 구조 속에 반영되어 상대적 안정을 찾는다. 과거에 양립불가능했던 시간성과 공간성은 새로운 시공적 체계 속에서 ‘호환‘된다. 공간적 존재는 순서를 갖는 존재가 되고 시간적 존재는 조직화된다. 구조와 발생이 상호전환되는 것이다. 161 개체화된 존재자는 처음에는 하나의 영혼이나 하나의 신체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화되면서, 단계적으로 분할되면서 그와 같이 구성된다. 엄밀히 말해 정신적 개체화는 없고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낳는 생명체의 개별화만 있다. 164


[ ] 심리적 개체성: 신경증은 단지 사회부적응의 문제이기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물리적 영역에서부터 심리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시몽동이 강조하는 것은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인 질서의 공존, 즉 변환적 차원이다...생성과 존재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시몽동은 둘 간의 관계로부터 심리적 개체를 정의한다. 심리적 개체는 ˝변환성을 가진 한 영역의 정합성˝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변환적 실재이고 변환이란 영역을 달리 하면서 구조화하는 생성이다. 구조는 동시적인 것들의 관계이고 생성은 순차적인 것들의 관계이다. 그래서 ˝심리적 영역에서 존재의 가치를 갖는 관계는 동시적인 것과 순차적인 것의 관계이다.˝.166 심리적 개체성의 영역은 스스로를 부양하고 유지하는 ‘자가구성적인 역동성‘이다. ..정신적 개체는 문제에 대한 반성적 자각을 통해 해결을 시도할 때 나타난다. 개체는 소여인 동시에 해결의 요소로서 이중의 역할을 하며˝ 이 이중의 역할에 의해 그는 자기 자신을 문제삼게 된다..심리적 개체는 고유한 공간을 갖지 않고 어떤 ‘양가적‘ 관계에 속해 있다. 그것은 동시성과 순차성을 연결하는 동시에 내재성과 외재성의 교착 지점에 있다. 167 이런 의미에서 심리적 세계는 차라리 ˝개체초월적인 우주˝이다. 168


[ ] 집단적 개체화: 사회는 ˝자신의 현존을 미래와 과거 사이의 상관관계의 형태로 소유˝하는 생성의 한 양태이다....사회는 ˝개체적 행동이 통과해야 하는 일정한 상태들과 역할들의 조직망을 제시˝하며 개인은 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사회에 투사한다. 개인은 사회적 과거 속에서 ‘진정한 기억보다는 이러저러한 행동을 향한 경향과 추진력˝ 그리고 ˝자신의 미래의 역동성과 연합할 수 있는 것˝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한다....사회는 개체들의 단순한 공존이 아니라 개체화된 존재자와 사회적 관계의 복잡한 양태를 창출하는 집단적 개체화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171 심리적 특징으로 사회적 특징을 설명하려는 심리학주의는 개체가 ‘적응성‘이나 ‘문화변용의 능력‘과 같은 ˝개체적 실존을 넘치는 심급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사회학주의는 이러한 전개체적 특징을 사회적 특징으로 간주한다....노동을 정치경제학적인 관계를 통해 즉 사회 안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로 본다. 노동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교환가치‘로 실체화되면 사회적 관계는 외집단으로 고려된 계급들 간의 갈등관계로 환원된다. 계급은 내집단을 구성하는 사회체의 내재성을 반영하지 않는다. 173(인간학주의:관계적 활동의 원리)


[ ] 관계적 활동의 원리: 노동은 상업이나 전쟁이 그러한 것처럼 내집단과 외집단 사이의 연관을 전제한다. 한편으로 각각의 외집단은 서로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는 개체처럼 취급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 각각의 내집단은 원자적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개체적 인격들의 복잡한 착종이다. 174 이미 만들어진 개체적 인격들이 집단 내에서 회복된다는 것이 아니고 개체와 집단이 갈등과 긴장 속에서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스로 안정화된다는 것이다...개체들은 언제나 집단의 개체들이며, 반대로 집단은 언제나 개체들의 집단이다. 양자는 동시적이며 독립적이지 않다. 집단은 개체상호적 실재가 아니라 ˝더 넓은 층위에서의 개체화의 보충˝이다....집단의 실재성은 오로지 그것이 생성임에 기인한다. 모든 개체화하는 생성이 그러하듯이 집단은 ˝구조를 작용으로 작용을 구조로 상호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그리고 관계적 작용이 존재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고려되지 않으면 생각될 수 없다.˝ 175 집단은 개체의 불완전함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관계 활동의 양태이다. 인간의 경우 군집생활과 독립생활이 모두 가능하다. 175 개체들은 마치 퍼텐셜들과 준안정성, 기대와 긴장을 포함하는 체계의 요소들과 같다....개체초월적인 것은 마치 개체에서 개체로 가듯 개체 안을 관통한다.....개체초월성은 적극적으로 집단과 정신의 동시적 개체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177 개체초월성의 힘은 개체적인 것도, 사회적인 것도, 생명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생명적 개체화를 선행하는 퍼텐셜이며 이는 물리적 개체화 이전에 아낙시만드로스의 무규정자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 생명적으로 한정할 수 없다. 178 집단의 노화는 집단의 현재를 유지하고 집단의 신체와 영혼의 결합을 유지하게 해주는 신념, 의견 등이 더 이상 현실적 의미를 산출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179


[ ] 성은 개체초월성을 반영하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개체에 내재하는 특징이다. 그것은 개체화가 이중의 양태로 나타나게 함으로써 개체화를 ‘미결상태‘로 내버려 둔다...성은 존재자로 하여금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완벽한 ‘자기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집단을 향한 운동을 자극한다...시몽동에 의하면 성적 특징은 주체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주체는 언제나 집단과 세계를 향해 있으며 자신 안에 개체화된 상태와 전개체적 하중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심리적 긴장의 균형을 찾는 것은 집단의 다른 주체들 속에 있는 개체초월적 본성을 마주하여 의미작용을 발견하는 것이다. 182

[ ] 극단의 항들과 중간지대, 감정: 영혼과 신체, 개인과 사회 등의 이원성도 마찬가지로 ‘존재자를 구성하는 실재의 모든 스펙트럼˝을 양분하는 ‘가공물‘들이다. 집단적인 것은 이러한 극단적 항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그러한 항들로 분리되기 이전의 실제로부터 개체화되는 생성, ˝스펙트럼으로 전개되는 존재 자체˝이다. 이렇게 존재자를 그 ‘활동의 중심‘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변환적‘ 시각이다. 이 활동은 관계의 활동, 즉 ˝정보와 인과성의 교환의 상호적 체제˝이자 내적 공명에 기초하는 관계맺음의 활동이다. 183 중간지대는 다름 아닌 전개체성의 영역이고 집단적 개체화의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지시한다면 감정이다. 감정은 개인적인 것만도 아니고 사회적인 것만도 아니다..개체 안에 잔존하는 전개체적인 것의 퍼텐셜로부터 이해해야 한다. 183

[ ] 사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를 내포하고 그것을 부양하는 체계˝이다. 188


볕뉘

며칠 전 대전을 오고가는 길에 뒷부분을 읽어내었는데, 마음이 걸려 담는다. 생각보다 밑줄을 많이 그어 시간이 제법 걸렸다. 입추다. 여름이 무르익어 가벼워질테고 가을은 밀도가 높아 내려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미리 성급한 녀석들은 가을바람이라 이름붙이고 제법 홀릴 듯 가을의 전령이 될 것이다. 어깨가 뻐근하고 눈이 침침한 요즘이다.

통일성과 역동성, 긴장과 퍼텐셜을 축으로 그는 생명을 설명해나간다. 뒷 부분에서는 베르그송이 심리적 원자론에 그처 변환과 존재를 미흡하게 본다고 지적한다. 생성의 통합된 관점, 변화에 대한 입체적 조망, 정념과 감정이 차지하는 영역, 진정한 소통이 어디에 맞닿아야 하는지 따로 따로 노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당분간 시몽동 읽기가 이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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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동, 개체화 이론의 이해 - 생성이 존재를 구성한다

[ ] 개체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내재적인 것과 외재적인 것 사이의 능동적 관계이자 교환이다...시몽동은 개체를 역동적 활동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개체는 구성하는 관계의 실재이며 구성된 항의 내재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성하는 개체에 있어서 ˝관계는 존재 가치를 갖는다˝....개체는 엄밀히 말해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 있지도 않으며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존재이다. 왜냐하면 관계는 강도적 작용이자 능동적 중심이기 때문이다. 71

[ ] 결정과 환경은 에너지적 비대칭, 비평형이 유지되는 한 관계맺기를 계속한다. 결정은 ˝성장을 멈출 수는 있지만 완성할 수는 없다.˝ 또한 결정의 속성들은 개체의 생성이 이루어지는 경계에서 나타나며 결코 완전한 평형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씨앗이 극성화된 장을 창조한다면 극성화된 장은 결정층을 형성하고 이렇게 계속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결정의 속성들은 항구적인 기하학적 본질을 갖는다기보다는 변화가능한 위상학적 성질을 갖는다. 엄밀히 말하면 결정의 속성들은 ˝실체적이 아니라 관계적이다.˝ 80 생성은 존재에 대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체인 한에서의 존재자를 구성하는 관계이다. 81

[ ] 결정의 개체화에 대한 연구에서 실체성은 원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에너지적 과정 속에서 일시적 안정성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81 생성이 존재를 구성한다. 81

[ ] 입자의 성질은 측정 조건, 관찰자라는 요인들에 의해 달라진다. 시몽동에 의하면 그것은 입자가 본래적 실체성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입자를 물리적 개체라고 하면 그것은 ˝이러저러한 공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한에서 입자인 것이 아니라, 양자적으로만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 담지자들과 교환하는 한에서 입자이다....시몽동은 연합된 장을 ˝다른 입자들과 구조적이고 에너지적인 관계 속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본다. 이로부터 입자의 불연속성은 단지 관계맺음의 양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87

[ ] 생성하는 존재는 관계맺음으로부터 가능하며 따라서 진정한 인식도 관계이다. 관계는 항들의 연관이 아니라 항들 자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88 진리와 오류는 두 실체처럼 대립라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 상태 속에 내포된 관계와 준안정적 상태 속에 내포된 관계와 같다. 인식은 대상적 실체와 주관적 실체 사이의 연관이 아니라 하나는 대상의 영역에 있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 영역 안에 있는 두 관계들 사이의 관계이다. 89 완전히 우연적인 우발적 만남이 실체를 변용시킬 수 있다. ...결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물리적 개체는 내재성 안에 있지 않고 존재자의 경계로 이루어진다. 이 경계는 바로 관계이다...생성은 존재에 통합된다. 두 입자들 사이의 에너지 교환을 내포하는 관계는 존재의 진정한 교환가능성을 함축한다. 관계는 존재의 가치를 갖는다. 95

[ ] 개체화와 관계는 불가분적이다. 관계의 능력은 존재자의 일부를 이루며 존재자의 정의와 그 경계들의 규정 안에 들어온다. 개체와 그 관계의 활동 사이에 경계는 없다. 관계는 존재자와 동시적이다. 그것은 에너지적이고 공간적인 면에서 존재자의 일부를 이룬다. 관계는 장의 형태로 존재자와 동시에 존재하며 그것이 정의하는 퍼텐셜은 진정한 것이며 형식적인 것이 아니다. 99

[ ] 물리적 개체는 ‘연대기적, 위상학적 집합체 또는 군‘이다. 생명이 물리적 개체처럼 자신의 에너지적 균형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잠재력을 소모하고 안정화되는 대신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계속 새로운 특이성을 받아들여 스스로 증폭하면서 구조화를 지연시키는 것을 일종의 일반화된 유형성숙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생명적 개체화는 물리적 개체화의 유형성숙으로서, 동물적 개체화는 식물적 개체화의 유형성숙으로서, 식물적 개체화는 화학적 합성체들의 유형성숙인 것처럼 나타난다. 106 고등한 동물이라 해도 ˝고유한 개체성은 상당히 제한된 조직화˝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개체의 본성 안에는 ‘그것의 활동의 산물이 아닌 것‘이 상당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리적 무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107

[ ] 생명체는 결정에서 나타나듯이 기존재하는 정보를 전파할 뿐인 공명과는 달리 외적 자극을 받고 그것을 내부에 ‘동화‘하는 특수한 유형의 공명을 나타낸다....생명체가 자극에 자신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그것을 동화하는 활동에는 지각, 운동, 정념이 있다. 시몽동에 의하면 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할 경우, 다양한 정보를 연속적으로 통합하여 저장하는 것이 ‘표상‘(지각)이라면 저장된 에너지를 불연속적으로 분배, 사용하는 것은 (운동적) ‘활동‘이다. 한편 ‘정념성‘은 ˝유기체 속에서 다양한 수준에서 변환자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변환은 물리계의 상전이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정념이 감각자료(정보)를 생명의 특징인 고통과 쾌락과 같은 원초적 감정으로 번역(변환)하는 데서 시몽동은 이를 변환자라고 부르는 듯하다. 108자신의 활동을 경계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의 내부를 가지며 여러 차원의 조직화들 사이에서 통합과 분화를 통해 역동적으로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은 생명체에 고유한 것이다. 109 생명계에서 구조와 성장의 면에서 결정과 유사성을 가진 것은 군이다. 따라서 개체가 아니라 군의 개체화 과정에서 출발하면 개체가 생성되는 과정 및 개체와 군의 관계를 알 수 있다. 110 수정된 알에서 다시 출아에 의해 군체가 나오는데 시몽동은 이렇게 군체와 군체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개체의 역할을 ‘변환적 전파‘라고 명명한다. 죽지 않는 군체들 사이에서 죽을 수 있는 개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몽동은 이를 ˝생명적 존재의 양자 quantum˝라고 표현한다. 이는 불연속적이면서 형태변화를 매개하는 개체의 역할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체는 시간적으로 생명 활동을 전달하는, 전이의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공간적으로는 한 군체 안에 통합되기도 한다. 시몽동은 전자를 본능, 후자를 경향이라 함으로써 둘을 구분한다.본능은 개체의 불연속적 삶(죽음), 경향은 연속적 삶(성장과 통합)과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본능의 변환적, 창조적 특징은 경향의 일상성, 사회에 대한 귀속성과 구분된다. 112 유기체와 사회 그리고 군체는 동일한 전개체적 가능성이 생명의 내외적 조건에 따라 구조를 달리하여 변환적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13


볕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정체되어 있을 때, 문득 시몽동 책이 생각이 났다. 비고츠키 역시 정념을 주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사람들은 정보를 이성적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감정에 의해 취합하게 된다고 한다. 행위나 활동, 계에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벡터와 방향을 갖는 존재, 운동을 부곽하는 면에서는 베르그송과 맥이 닿아 있는 듯 싶기도 하다. 시몽동은 여러 맥락에서 앞서 읽고 있는 비고츠크의 이해에 근사하는 듯하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 고정된 모습으로 종합이 아니라 늘 변화를 잠재하는 존재로서 인식하는 것이 훨씬 실제를 제대로 볼 줄 아는 것이다. 관계라는 추상 역시 뭔가 그려야 할 것이 아니라 생성이라거나 존재 그자체라는 말은 얼마나 명쾌한가.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는 스칼라. 정해진 양, 정해진 것으로 사유하는데 익숙해있다. 그래서 움직이는 것, 방향을 갖는 것, 운동의 사유에 익숙하지 못하다. 결정-입자-생명. 맥락을 잇는 모습이 무척이나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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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비고츠키 - 사람은 스스로만 가르칠 수 있다.

[ ] ‘외적인 것‘은 언어적 사고의 내부에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붕괴시키는 지하 진동처럼 개인의 내적 사고를 흔든다. 혹은 나팔꽃을 지탱하는 봉처럼 어디까지나 세포와 바깥에서 ‘접촉‘하면서 세포의 내적 운동을 불러일으킨다. 18

[ ] 순간순간을 사는 아이 - 완성되어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으로서 인간을 보자는 발상이 깔려 있다. 21

[ ] 역사- 역사는 그가 상정한 다양한 수준의 발생이 층층 켜켜 돌돌 말려 조우하는 바로 현 지점을 의미한다...늘 ‘단절‘과 ‘비약‘을 포함하는 변화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운동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33 발달의 발달은 복수의 역사가 조우하는 양상을 의미한다...계통 발생은 ‘생물학적 발달‘ 혹은 ‘자연적 발달‘과 ‘역사적 발달‘ 혹은 ‘문화적 발달‘로 구분된다. 37 아동의 문명으로의 재생은 보통 그의 유기체의 성숙 과정과 하나의 ‘합금‘을 이루고 있다. 발달의 양면 - 자연적 발달과 문화적 발달 - 은 서로 일치하고 융합한다. 두 가지 변화는 서로 침투해서 본질적으로 아이의 인격의 사회-생물학적 형성이라는 통일적 전체를 형성한다. 39 나 자신이 ‘합금‘의 산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그다음 단계는 이 ‘나의 신체와 사고‘가 얼마나 제도적으로 강제당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될 것이다. 41 비고츠키가 인간 탐구를 위해 가져온 ‘역사‘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합금‘이라는 메타포는 풍경, 도시, 사회, 국가, 대륙 그리고 지구를 포함하였다고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43

[ ] 비고츠키의 도구를 포함하는 마음(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도구를 상정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비고츠키의 마음관이다)은 어디까지나 실재의 외부 혹은 표면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피부를 경계로 닫힌 공간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실재의 도구에 의한 자기 자신의 제어라는 행위의 성질을 빗댄 것이다. 도구는 자연으로 향한 ‘외적 활동의 수단‘이다. 이에 비해 심리적 도구, 즉 ‘기호‘는 ‘인간 자신의 제어를 위한 필수적 수단이다. 51 도구적 행위는 인간 행동의 전 구조를 개조하고 재편성한다. 51 자신의 기억에 믿음이 안 가고 의존할 수 없을 때 만드는 손수건의 매듭, 책을 보다가 어디까지 보았는지를 표시하기 위해 특정한 페이지를 접어놓는 것. 이것들은 다 기억의 도구다. 53 인간 심리의 특징은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과 스스로 만들어 낸 자극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심리적 상황에 스스로 가져온 자극, 즉 만들어 낸 자극, 인위적 수단 자극을 비고츠키는 ‘기호‘라고 불렀다. 54 휴대전화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찍은 일상의 단편을 보내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어쩌면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행위 가능성과 욕구 디자인에 공헌한다고 할 수 있고, 우리의 욕구와 행위 가능성은 도구나 인공물과 함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주체‘가 우리의 머릿속뿐만 아니라 기술=인공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56 도구에 매개된 마음 57

[ ] ‘물‘을 심리학의 분석 단위로 삼아야 한다는 비고츠키의 주장은 무엇보다 개인과 사회(또는 문화)를 깨끗하게 나누는 이항 대립적 이분법의 지양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사회 활동의 산물인 언어, 휴대전화, 컴퓨터, 수학 공식, 자동차 등 문화적 도구가 인간의 정신 활동을 뒷받침하고 매개한다는 논의와 연결된다. 즉 사회 문화 역사적 지평에서 분리된 개인 혹은 개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른바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적인 분리에 대항한 ‘매개‘라는 개념을 통해, 비고츠키는 문화적 도구와 인간의 정신 활동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70 다양한 마음의 세포: 도구적 행위, 미적반응, 말의 의미 혹은 센스, 드라마, 경험(햄릿이란 작품, 경험)66 일반적으로 매개적인 잠재력을 분리해서 언어와 그 밖의 기호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 영역은 매개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행위로부터 빠져나온 (혹은 분리된)기호 시스템을 음미하는 경향이 만연하다. 72

[ ] 심리학의 위기: 설명적 혹은 생리학적 심리학과 기술적 심리학. 전자는 심리학을 다른 자연과학과 똑같은 유형의 과학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바람에 인간에게 고유한 고차적인 심리 기능을 분석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후자는 역으로 다름 아닌 그러한 정신생활의 고차 형태를 문제로 삼고 있긴 하지만, 관념론적이라서 과학적 설명을 수행하지 못한다. 81

[ ] 최근접 발달 영역 혹은 발달의 최근접 영역: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 85 첫번째는 피아제처럼 아이의 교육과정과 발달 과정을 서로 독립되는 것으로 보는 이론군. 두번째는 윌리엄 제임스처럼 발달과 교육은 동일하다고 보는 진영. 그는 발달을 단지 학습의 측적이라고 본다. 이 경우 교육과 발달의 구별조차 없다. 86 영역의 혼종성: ‘혼자서 해답할 수 있는 문제에 의해서 결정되는 실제적인 발달 수준과 ‘아이가 혼자서가 아닌 공동 활동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에 도달하는 수준...여기서는 실제와 도달할 미래의 차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발달의 최근접 영역‘은 발달의 프로세스에 부합하는 ‘시간‘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실제적인 발달 수준은 ‘어제의 발달의 성과‘이고 영역은 ‘동적 상태‘에 있는 ‘아이의 내일‘이고 미래다. 89 영역은 가르치는 자만으로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학습자만으로도 달성되지 않는다. 이 영역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이 영역은 ‘상호행위적 시스템, 거기에는 적어도 혼자서는 제대로 행위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공을 표현하고 있다. 89 비고츠키가 영역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은 학습자와 교수자 사이의 원초적인 비대칭이다. 이 비대칭은 어디까지나 해소되는 일은 없다. 단지 형태를 바꾸어서 복잡하게 될 뿐이다. 94 배우는 자는 자신이 배우는 것의 의미를 적절하게 말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배우는 것의 의미를 적절하게 논할 수 있는 ‘언어‘를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그 영역 안에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비대칭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96 욕구라는 것은 욕구를 채워 줄 제도가 출현한 수에 사후적으로 마치 쭉 이전부터 거기에 (예컨대 개인의 내면 같은)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상한다. 97 욕구는 그것을 채워 줄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아이들에게 배움의 동기를 불러일으키길 바란다면 교사 자신이 배움에의 동기를 활성적인 상태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98 이것이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가 잘 모르는 것을 받았다는 것이 배움의 본의다.....교육의 과정에서 자신이 추구하고 있었던 이상의 것, 추구하고 있었던 이외의 것을 받긴 받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알기 위해 그 후에 긴 시간을 살고 다양한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되었다와 같은 여정의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 교육이다. 100 다른 개인에게 직접 영향을 주거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스스로밖에 가르칠 수 없다. 즉 사람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생득적 반응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경험,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교사다. 101 교육적 프로세스에서 교사는 열차가 자유롭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레일과 같은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레일에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 방향만을 기차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사회적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그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켜 나간다...통상은 온도와 습도를 조적할거나 그 주위에 있는 식물을 이동시키거나 흙에 영양분을 주는 것을 통해, 즉 환경을 적절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식물에게 영향을 주려고 한다. 102

[ ] 과학적 개념이 생활적 개념을 대체하거나 쫒아내는 것이 아니다. 양자는 접촉하는 것이다. 아동의 진짜 개념의 발달을 위해서는 양 개념, 즉 생활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부단한 접촉과 그것을 통한 양 개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113 지식을 외우는 것에 그쳐버리는 것은 일종의 방관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 자라는 뜻의 방관자다. 수의적, 자각적, 반성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4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는 이미지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서, 한 번도 언어화되지 않은 명제가 이 세상에 존재할지도 모른다..외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도 실은 모르는 것이다...자신을 외부에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를 자신 안에 들여 놓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117

[ ] 우리는 ‘어법의 우리‘ 안에 유폐되어 있다. 119 비고츠키는 ‘행위‘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인간(개인)과 환경(사회)을 따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 양자를 하나의 ‘단위‘로 보는 길을 열었다. 123 개성은 사회성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성의 고도의 형식이다. 125 시대 전체에 형성되어 있는 ‘대기압(사회성)‘이라는 우리를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대기압을 하나씩 소거해 나가는 작업을 통해 자기 나름의 유일무이한 심리학을 창출할 수 있었다. 126


볕뉘.

비고츠키를 읽고 있다. 그 곁에는 간혹 바흐친이 나온다. 여러 권을 중복되게 읽는다. 한 여름 읽어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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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퀴어링

1.

[ ] 캐나다 드라마 lost girl 2010-2016/shameless/뮤지컬 시트콤 glee/modern family/orange is the new black/rupaul‘s drag race/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 the ellen degenaeres show 13, 14

[ ] 적어도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여성이나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대신 그 대안으로서 비이분법적인 nonbinary 정체성을 선택하는 경향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14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을 구별할 것을 요청한다. 어떤 이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젠더베리언트라고 설명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젠터를 표현하는 대신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에 따라 스스로를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퀴어링하고 있다는 것이다. 15

[ ] 젠더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다룬 입문서 19 어떤 지점을 ‘보다‘, 이유를 ‘듣다‘와 같은 시각적, 청각적 은유를 피하여 대체로 장애차별적 언어라고 불리는 것, 이원론적 언어 사용에 저항하고, 대립적인 언어에 저항하려고 하였다. 22

[ ] ˝쓸모없는 것의 복잡함 shit‘s complicated˝ : 퀴어링이란 무언가를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며, 반드시 성적인 맥락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논증을 하지 않고 철학을 하는 것은 퀴어한 일이다. 또한 젠더, 섹스, 섹슈얼리티에 대한 뿌리 깊은 전제들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퀴어한 일이다. 그러므로 퀴어는 동성애자(또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 섹스, 섹슈얼리티에 관한 우리의 문화적 규정이 할당된 좁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깨달은 이들을 포함한다. 23

2.

[ ] 고대 그리스의 남색, 아메리카 원주민의 젠더 가로지르기와 같은 현상은 동성애가 역사적, 문화적으로 보편적이라는 점보다는 오히려 성정체성의 범주가 역사적, 문화적으로 특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사례들은 성 정체성의 범주가 아마도 사회적 구성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38

[ ] 양성애, 동성애, 이성애라는 정체성 범주는 여러 사례들에 나타난 사람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중요한 어떤 것을 간과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의로 속이는 모든 경우보다, 단지 더 적합한 범주를 사용할 수 없어서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게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성애자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아마도 훨씬 더 많을 것이다. 40

[ ] 푸코에게 동성애에 대한 동시대 서양의 관념은 모순적이게도 섹슈얼리티 억압과 관련된 시기에 섹슈얼리티 담론들, 특히 의학적 담론들이 정식화되고 확산되면서 출현한 것이었다. 49 데밀리오는 동성애자 정체성이 나타난 원인을 사회 구조의 변화로 보았고 푸코는 의학 담론의 부상으로 보았지만, 그럼에도 데밀리오가 제시한 동성애자 정체성의 등장 시기는 푸코의 제안과 일치한다. 51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한 기대가 게이 남성의 정체성에 대한 기대보다 더 혹은 덜 구속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덜 일관적이고 덜 응집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점은 레즈비언 정체성과 아마도 다른 성 정체성들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수용될 여지가 동시대 서양문화에 있음을 입증한다...그것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그리고 이성애자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다른 용어로 정의하거나 아예 정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거나 둘다이거나 둘 다 아닐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자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구성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58-59

3.

[ ] 인터섹스인 사람들은 생물학이 그들을 어느 하나의 성별 범주로 명확하게 지정하지 못하므로 역시 그 구별을 문제 있는 것으로 만든다...무성애자 asexual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것도 관련 있어 보인다. 무성애자인 사람들은 성적 욕망이 없거나 거의 없다. 범성애자pansexual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LGBTO나 LGBT+를 사용할 때 LGBTQI, LGBTQIA, LGBTQIAP 같은 축약형들이나 이와 비슷한 것들을 사용한다...이처럼 추가와 수정이 계속 필요하다는 사실은 확립된 패러다임을 더 이상 구해낼 수 없음을 암시한다. 69 퀴어이론은 여성과 남성,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같은 이분법적 대조를 피하면서, 여성학뿐 아니라 레즈비언과 게이 연구도 붕괴시킨다. 그럼에도 퀴어 이론은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 부치와 펨의 정체성,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정체성, 트랜스젠더 정체성 그리고 이분법적 체계 안에 편안하거나 불편하게 있는 다른 다양한 정체성의 존재와 양립할 수 있다. 71 요점은 우리 중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퀴어한 편이라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적어도 상징적으로 권력의 균형을 이동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퀴어 이론은 단지 더 많이 포함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퀴어 이론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들과 관계 맺는 데 범주가 유용하거나 심지어는 필수적일 수 있다 해도, 그 어떤 특정한 범주나 범주들의 집합도 그 자체로 필연적이지 않으면 심지어는 가장 깊게 자리 잡은 범주도 수정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할 지속적인 필요성에 대한 것이다. 74

[ ] 머리 색이 짙거나 금발인 사람이 빨간 머리인 사람보다 전 세계적으로 훨씬 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주류과학이 빨간 머리를 더 흔한 색의 머리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자연의 실패로 간주하지 않는다. 86 포스토스털링은 생물학적 개념인 섹스를 두세 개가 아니라 최소한 다섯 개의 범주로 구조화해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86 나는 트랜스섹슈얼을 하나의 계급이나 문제적인 ‘제3의 젠더‘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때 장르는 구조화된 섹슈얼리티와 욕망의 스펙트럼들을 생산적으로 붕괴시킬 가능성을 가졌으나, 그 가능성이 아직 탐색되지 못한 체현된 텍스트들의 집합이다. 109

[ ] 우체부 아저씨 소방관 아저씨를 우편배달부와 소방관 등으로 대체하는 경향과 같이 젠더 특정적 용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용어가 도입되었다. 또한 여성임을 표시하는 용어를 제거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는 등, 노동자의 섹스 또는 젠더 언급을 피하기 위해 많은 직책명이 개정되었다. 남자 간호사나 여자 경찰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섹스와 젠더에 주의를 끄는 것은 이제 어렴풋이라도 모욕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측밖의 일이라는 표현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127

[ ] 젠더가 수행적이란 생각은 헤게모니적 이분법을 유지하는 것이 능동적 과정임을 상기시킨다. 헤게모니적 이분법을 유지하는 것은 적극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개인으로서도 집단으로서도 헤게모니적 이분법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표현의 형식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느다. 이것은 기존 언어를 퀴어링하는 방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동사로 사용되는 퀴어는 헤게모니적 이분법과 관련된 생각, 기대 및 태도의 불일치에서 벗어나기보다는 그러한 불일치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헤게모니적 이분법을 붕괴시키는 것은 비록 아주 조금일지라도, 패러다임을 퀴어화하는 데 기여한다. 136

4.

[ ] 루빈은 ˝사회는 생물학적 섹슈얼리티를 인간 활동의 산물로 변형한 것에 의한, 이러한 변이한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 내에 있는 배치들의 집합˝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섹스-젠더 체계˝를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에가 보여주는 것은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라는 내적으로 연결된 개념들 세 가지에 다 주의를 기울여야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주목받지 못하고 도전받지 못할 편견의 형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예는 기존의 섹스 젠더,섹슈얼리티 체계의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 162 (161도표 루빈의 이중 원 참조)

[ ] 퀴어 이론의 발상과 마찬가지로, 여성 또는 그 어떤 집단을 향한 현재 및 과거의 억압은 궁극적으로 이분법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분법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이와 관련된 이분법 안의 특권층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174

[ ] 연대자의 위험성은 공범자의 위험성과 크게 다르다. 우리가 맞서 투쟁할 때, 해방을 향한 투쟁에 함께 연류될 때, 우리는 공범자들이다. 192 루빈의 원의 껍질은 일탈적이다. 가장자리는 퀴어하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성적으로 일탈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적어도 약간은 퀴어하다. 193

볕뉘

잡으려고 하면 미끌어지는 것이 생명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유형화와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허무한 욕심일 것이다. 주어진 것이 끊임없이 집착하는 관성의 목록화는 흘러가는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일 것 같다. 이분법의 신화를 이렇게 조목조목 부수어 놓았다. 그 관행과 퇴행으로 거스르는 힘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기술해놓았다. [LGBT+] 책의 다양성 만큼이나 그 다양함을 느낄 수 있는 접근법들이 제법 도식적으로 이해를 돕기위해 들어가 있다. 용어의 이력만 살펴도 개략적인 흐름들을 익힐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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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교육학

[ ] 비코츠키가 유아 시기 ˝놀이˝의 의의를 특벼리 강조한 점, 본인이 장애아 교육에 종사한 점 등의 연유로 유아교육과 특수교육에서는 이미 이론적으로 큰 영향을 발휘했다. 5 ‘심리학의 모차르트, 또는 미래로부터 온 사람 6 비고츠키 교육학은 ‘인간 발달‘ 자체에 목적을 두고 논의를 집중한다. 교육학이 ‘인간 발달‘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으며 기존 교육관을 뒤집는 힘을 준다. 9 근접발달영역 창출. 10

[ ] 나중에 아이가 성공하지 못한 움켜쥐기 동작을 전체적인 객관적 상황과 연관 지을 수 있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아이는 이 동작을 가리킴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동작의 기능에 변화가 생겨난다. 이 동작은 대상 지향 동작에서 다른 사람을 목표로 하는 동작으로 변하며, ‘관계를 만드는 수단‘이 된다. 움켜쥐기 동작이 가리킴의 행동으로 변하게 된다. 34

[ ]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말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비고츠키의 발달론일 것이다. 프로이크가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라 하면 비고츠키는 ‘내 밖에 나를 만든 수 많은 내가 있다‘라고 표현된다. 35 ‘개념적 사교력에 입각한 주체적 인간 형성; 40

[ ] ‘민주시민 양성‘ 같은 목표도 사회적 의미는 제시하지만 각 개인으로 귀결되는 인간적 가치를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교육 목표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소양에 집중할 뿐 개개인의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41

[ ] 영유아기에 애착과 신뢰감 형성이 제대로 안 되면 이후 연령에서 분리불안과 의존적 성향이 나타나서 독립적, 자율적인 활동에 큰 어려움이 초래됩니다. 177 어린 아동은 그림을 그린 후 제목을 붙이는데 좀 더 나이를 먹은 아동은 이것이 뒤바뀌어서 제목을 먼저 붙이고 그림을 그린다. 178 놀이는 유아의 발달을 선도하고 발달의 다음 영역을 창출한다. 유아들은 놀이를 통해 자기 규제를 터득하고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놀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난관은 ‘자기중심적 말‘이 발달하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자기 규제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지연능력‘, ‘자발적 주의집중‘이 생기지 않아서 학교의 학습 과정에서 매우 곤란을 겪을 수 있다. 178 사물과 낱말의 의미를 일대일의 대응관계로만 여기다가 사물로부터 낱말 의미를 분리시킬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굉장이 어려운 일인데 바로 놀이를 통해 이런 분리가 일어나 새로운 발달적 전환을 제공해주게 된다. 179 아동에게 놀이는 자발성과 자유의 영역이다. 이런 놀이의 규칙들은 외적인 물리법칙에 복종하는 규칙이 아니라 자기 절제와 자기 규제의 규칙이다. 180 비고츠키는 우리는 가상 놀이를 이차적 상징체ㅔ인 문자언어의 발달에서 주요 공헌자로 본다. 이렇게 구체적 사물로부터 그 의미를 분리해내고 놀이규칙에 종속을 통해 최대한의 즐거움을 얻음으로서 자기 규제력을 획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발달의 다음 시기인 학령기 학습을 위한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된다. 181어른과 상호작용이 축소되며 장시간의 기관 탁아, 티브이, 컴퓨터, 스마트폰 등 비대면적 매체에 대한 과도한 노출,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선행 학습의 유행 등...이런 문제들은 안정적인 정서와 인지 발달을 가로 막는다. 181 부모의 돌봄 권리와 영유아 교육기관의 질 높은 돌봄의 조건을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으면 더 큰 교육의 위기, 발달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182

[ ] 글말은 단지 소리를 종이 위에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직 미성숙한 심리적 과정을 토대로 글말의 교수-학습이 시작되어 글말이 요구하는 심리과정의 특성에 의해 이러한 정신기능들이 글쓰기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184 입말 발달이 어느 정도 되어야 글말 발달이 가능하다...어린이일지다로 글말을 능숙하게 구사하기까지는, 즉 입말 발달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 6-8년 정도 걸린다. 186 유아기 후반은 기억이 지성의 중심이다. 즉 생각은 기억에 의존한다. 어린이에게 생각한 것을 말하라고 요구하면 흔히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187 구체적 시각적 사고가 강하기 때문에 농담이나 비유적 표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188

[ ] 어린이 지성의 주된 토대가 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억‘이었다면 청소년기에 지성의 주된 토대는 사고다. 이는 엄청난 변화다. 이 시기 기억과 사고의 관계가 바뀌게 된다. 기억 의존적 생각에서 생각에 의한 기억으로 변화한다. 자연적 기억은 12세 정도가 최고조라고 한다. (어린이들은 어른에 비해 자기가 본 것, 들은 것을 생생히 재생할 수 있음.) 문화적 발달을 통해 기억 기능에서 질적인 변화가 초래된다. 190 청소년기 발달의 과정에 접어들면 기억과 지성의 관계가 뒤바뀌기 시작한다. 청소년의 기억은 사고에 의존한다. 어린이가 경험적으로 지각한 이미지를 기억하고 기억을 통해 사고를 하는 반면, 개념적 사고와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청소년은 지각한 것을 논리적으로 종합하여 기억한다. 즉 지각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기억하게 된다. 195 비고츠키의 사례 관찰에 따르면, 정신적 병리 현상을 겪는 고등정신기능이 붕괴한 환자는 상상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각에 종속되어 철저히 구체에 속박된 사고를 함으로써 사고 기능에서 상상을 할 수 없다. 개념적 사고와 말이 붕괴된 환자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각에 완벽히 의존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197비고츠키에게 있어서 상상은 특별한 상황과 활동에서만 필요하고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적, 지적 활동 모두에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누구나가 획들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된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상상 역시 기억, 주의, 지각, 의지와 마찬가지로 개념적 생각과 연결된다. 198

[ ] 우리의 지능 가운데 인간 친화 지능과 자기 성찰 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99 비고츠키에게 진정한 저항에는 개념적 사고가 내재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더문화가 자본주의 지배체제를 극복하기 보다는 오히려 재생산하는 데 기역하는 구조적 제약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0 집단적 활동에 대한 청소년의 관심과 흥미는 개념적 사고, 공동의 실천의 과정을 경유하고 이 둘이 결합되어야 사회적 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비고츠키는 본다. 201

볕뉘

‘관계‘란 주제로 읽고 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다. 세상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내 안을 휘감아 나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문제는 실존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뫼비우스 띠나 클라인 병처럼 안과 밖이 나를 감고 돌아 통증을 겪고 나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저작들이 그 양자를 동시에 검토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있다면 관심받지 못하는 변두리 저작들이 ‘마르크스-실존‘, 자기배려, 윤리라는 이름으로 옹알이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저작들로 관심의 결이 움직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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