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학*예산감시학교) 050929

 1700  학군조정 회신문서로 학부모회, 운영위분들이 모여 대책위를 하다. 임시대책위원장의 장황설에 다들 어이없어 하는 표정과 권위적 태도가 내내 걸린다. 독선적 표현과 의견을 청취하지 않는 것이 익숙한 듯, 회의자리임에도 자신의 주장만 퍼부어놓고 이리저리 의견도 좌충우돌하다 입장마저 돌변한다. 갑자기 개그콘서트 생각이 났다. "이거` 저질이구만..." 사람들 많이 만나보았지만 명예욕과 내위주로 세상은 세팅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점철된 사람, 손바닥 뒤짚듯 입장도 원칙도 없는 부류는 접한 적이 거의 없어...황당과 황망을 오가는 느낌이다.

학부모의 이기심엔 다른 지역, 학부모들의 의견은 조금도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내새끼 내동네만 생각하면 되었지? 다른 입장, 다른 여건을 생각하기도 벅찬 것인지? 투쟁의지가 굳건하다. 그렇게 그렇게 하다가 좀더 단단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의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다. 각론을 통해 행정편의주의를 뚫는 돌파구는 생기겠지만, 원론은 동의할 수 없다. 어떤 각론이 나올 수 있는지는 학부모님들 감성 노력에서 파묻혀서나 보일까?  학부모총회에서 안건을 다루기로 하다. 학군조정 및 추진위원회구성으로...

2000 서울 교육위원의 "학교예산"에 대한 강의를 듣다. 생생한 설명과 전*조교사분들의 질의가 쏟아진다. 하지만 답답한 느낌도 교차한다. 많은 질문 속엔 전*조라는 틀만 있지 그것을 넘어 사회나, 약자나 다른 고민이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조합의 권익만 보장되면 되었지? 골치아프게 다른 고민까지 그것으로도 벅찬 것은 아니냐?는 항변을 느끼는 것은 과장된 것일까?

2300 "학교예산감시 학교의 개설 2강", 친구인 전 대*덕사랑주민*장과 주최측인 참* 금국장과 1강에 소홀히 하여 한담을 나누기 하다. 여러 이야길 나누다. 친구의 고민도 근황도 유사함에 놀란다. 여전히 공동체를 희망하고 준비하고, 권력을 얻더라도 바뀌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이 그의 고민의 중심부에 있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시간이 지나 세월에 때를 묻혀 혹시나 변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런 맘도 있었는데 ...다행히 한결같다.  금국장의 자치(교육,경찰), 최근 분권관련 기존정당의 담합 등 우려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분권에 대해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나누다.

 

050928

2300 "처사촌동생(대학생), 안해와 동네 선술집에서 한잔."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기위해 인근 연구소 알바를 하다 하루밤 묶고 간다는 연락이 와 급귀가.  존경하는 큰삼촌의 아들도 장성?하여 여러 이야길 나눌 수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대견해보인다.  택시*조, 집안일 분담, 자식키우는 것 어느 하나 흉볼 수 없는 처*촌의 삶, 쏙 빼닮은 아들과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학교, 공부에 기를 쓰며 연연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간결하고 아니면 아닌 것, 할 수 없으면 할 수 없는대로 자식이 스스로 알아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도록 공부하고 결혼하고, 모든 것을 자식에 목놓아 자신의 삶마저 묻어버리는 ...사회 속의 끈을 놓아버리는 생활이란 끔직하지 않을까? 

한편  손위동서 부부는 관계가 소원하다. 자식도 가지지 않고, 여러 사회관계나 활동이 전무한 상태라 끊임없는 둘 만의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질 못해 안스럽다. 처남과 처남댁 역시 남편바라기, 아이바라기...그러다보면 불신의 고리가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작은 탈출구. 각자의 활동영역을 갖는다. 너무 많은 것은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꼬옥 쥐려고 하면 할수록 물은 손바닥에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것은 아닐까? 자식도  사람도, 

 너무 많은 벽과 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자식이나 내것만 집착하다가 남것이 보이지 않아 내것마저 잃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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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가을산님의 "생명윤리 관련, 어떻게 생각하세요?"

복잡하군요. 역시 가을산님 다운? 신선한 접근법!!!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뼈대만 보아선 잘 모르겠어요.ㅎㅎ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면 더욱 좋았을 걸..ㅎㅎ. 더욱 깊이 들어가실거죠. (다음편을 기대하면서..)

  단순하게 생각해서 인류가 불과 몇백년만에 자기 주변 것에 칼?질을 하다 이제 제 몸까지 손을 댄다. 탐구욕이 과연 그쳐질 것인가? 더구나 자본주의 시스템이란 현실에서 제어를 할 수 있겠느냐? 그럴만한 제어력이 있느냐?

기술의 속도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무모한 도전이 계속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제어가 가능한가? 한번도 기술과 융합한 인문-사회-제도적 시스템은 발현된 적은 없는 것은 아닌가?  기술의 위력을 소화시킬만 제도나 시스템 역시 없는 것은 아닌가?

부국을 위한 경제의 세계화는 되었으나, 정치의 세계화는 그야말로 걸음마 수준인 것처럼, 기술은 자신만의 증식을 위해 부단한 반복을 하지 않을까? 정치나 시스템을 배제하면서, 정치나 시스템은 그것을 안에 포섭할 능력마저 없고, 시도해볼 도리마저 없으므로.

생명윤리 등등 원론엔 동의하지만, 나의 존재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주민이거나 고립되어 경제적 결핍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북에 살거나,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연명할 수 있는 상황이나 시스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조건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GMO...원자력발전, 환경..이라는데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생존수준에 머물르는 시스템에 들어가면 모두 무력화되는 것은 아닌가?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력과 경제력은 한번도 지구적인 불균일한 시스템을 해소하기 위해서 써보거나 시도해본 적도 없는 것은 아닌가? 어떤 재앙과 맞딱뜨려야 다시한번 재고를 해보려 할 것인가? 내나라 속에서 인권과 기본권이지 제3세계를 감안한 인권과 기본권은 있는가? 농산물은 내나라에서 부족분은 다른나에 적기 공급이 가능하지 않으란 법은 없지 않는가?

생존권이란 수평선아래서 어떤 논의도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정치의 세계화와 기본적인 경제력을 분산하지 않으며 논의되는 틀은 어찌보면 논리의 자체완결성이라는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닐지?  기술이라는 것이 모든 낡은 기술을 배제시키는 자본의 시스템이 아니라 낡은 기술이라더라도 기본적인 생존권 확보를 위해 발전시키거나 배분하는 것이 자본주의를 위해서도 좋고,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것은 아닐런지?

저 위에 내달리고 있는 정신나간 기술의 발전이란 테마는 수평선으로 끌어내리고, 생존권이나 비혜택, 반혜택의 수준은 끌어올려 논의를 하는 것이 보다 원론에 치우치지도 않고, 현실을 고려하며 제어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기술과 인문-사회-정치 시스템이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영원한 악순환의 질곡으로 지구를 대상으로 무모한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아닐까? 보다 중요한 원흉은 자본주의라는 비겁한 시스템때문에 인류가 잘 나눌 수도 있으며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논지를 벗어난 마당이 흔적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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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정치론에서 홉스 사회계약론의 수용과 변용", 진태원 논문을 읽다가


(중략)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상상과 정념에 기초하여 전능한 신 야훼에 대한 표상을 만들어내고 자신들의 국가를 야훼의 국가로, 또 자신들을 야훼의 백성으로 간주했지만, 오랫동안 안정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념과 대립하는 이성, 또는 개인적인 능력으로 이해된 이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어리석은 이러한 표상과 믿음이 역설적으로 매우 유익한 결과, 제도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스피노자의 관점에 따르면 "모세가 {...} 우중이 공포 때문이 아니라 신앙심 때문에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국가 안에 종교를 도입했기"때문이다. 곧 사람들의 정념과 상상, 신앙심을 억압하지 않고, 그것들을 국가의 발전에 활용할 수 있었던 모세의 정치적 능력이 히브리 국가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 것이다.

이는 곧 사회계약, 또는 국가의 구성과 보존을 위해서는 홉스식의 인공적인 법적 절차, 또는 고유한 의미의 정치적 계약만으로는 부족하며, 각각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리와 역량을 양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보충되어야 함을 의미한다.(또 하략)


모음..-------홉스는 계약론에서 자연상태와 사회상태, 국가사이에 단층이 있다고 하지만 스피노자는 사회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자연권의 논리가 지배한다한다. 사회상태 안에서도 여전히 갈등, 기만, 증오의 메카니즘이 존재하고, 사람이 유덕하든, 배덕하든, 이성적이든 무지하든 간에 모든 사람을 이끄는 가장 원초적인 규칙은 바로 충동의 법칙이다라는 것이다. 홉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상적인 상태를 가정하여 나온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어 역량을 양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하며, 국가에 대한 견해나 관점마저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의견 및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부당하다는 이유때문이라기 보다는 본성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 금지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한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판단 및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되, 이를 국가 보존에 유용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1. 이상적인 사회, 이상적인 집단, 이성을 빌미로 가공하고 만든다는 발상차체가 무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이성이란 틀에 아니면 짧은 지식으로 삶과 생활을 기획하려는 무모한 의도가 사람을 잘 모르기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신의 자리에 인간을 넣어 인간은 같다라는 근대적 기획, 발상의 전환 만큼이나 사회속의 인간은 그만큼 알기어려운 것일까? 사회 속의 인간의 개념을 또 한번 비트는 발상으로 출발한다면 가공물로 만들어진 제도도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숱한 정치-행정의 구축물도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 출발하지 않고, 선도나 교화라는 주장이나 발상으로 여기는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것은 아닐까?

2. 무신론자인 나는 사실 여러 행태로 인해 종교생활에 매우 부정적이다. 학생때 얕은 지식과 강박적 교화덕에 아직도 사람을 갈라서 인지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의 아름다움보다 늘 강박증으로 연꽃만 아름답다고 연꽃만 심으려는 허황함이 생활의 언저리에 베여있는 것은 아닐까? 논문 몇쪽을 읽다 별별 생각을 다해본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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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9-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 논문이었군요. 이런 뒷북. 즐찾을 해놓고도 이리 관심이 없었다니, 후배가 권해 읽었는데 이런 무관심이라니. ㅎㅎ 트랜스토리아도 봐야겠네요.
 

 

 생각이 그득하여 자꾸 몸은 활자를 밀어낸다. 물과 기름처럼..자꾸 책을 밀어낸다. 개점휴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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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23

2000 아*데미 운영위 가운데 생각이 비집고 나간다. 어쩌면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 사람마다 목적이나 용도가 다를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다시 맘속에 들어온다. 한창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는데, 한켠 준비하는 측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나타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간, 당연시 했던 것, 사람들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여행을 하면서 그것을 삶의 방식이나 태도까지 비추어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지식으로만 활용한다는 사실에 놀란다. 많이 아는 것이 독이 되거나 용도를 바꾸거나 하는,   그 당사자는 가까운 지인이 되거나, 또 다른 측면에서 내가 되거나 앞으로 내가 되거나... ...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안다는 것이 많은 것이 머리에만 닿는다는 것이, 그것이 신경을 타고 온몸에 번지거나, 온몸을 통해 마음에까지 들어서지 않고, 그러한 확율이 백에 아흔아홉도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라다

 

050921

2300 학*위 드*팀 차한잔 모임이 끝나고 정*위원이 맥주 한잔하자고 꼬신다. 인근 허름한 호프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사회 활동과 민노당 활동과 나의 할일에 대해 관통하는 것, 일관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라는 느낌을 받다.- 한국선*은 학연의 그물이 강하고 조합원도 노사의 개념도 희박(총무-경영 모두 조합원), 민*당 활동에도 구애받지 않고...현재의 지역 대응도 내부 노조사를 제대로 짚지 못하고 해고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 정작 당사자들도 내부 운영의 명확한 측면(노조 가입 범위)이 불충분한가 아닌가? 란 생각이 다시들다.-정세를 판단하고 사무*장의 하는 일(보좌관 역할일 수도)이 기능적인 것이어서 논의 와중에 한** 보좌관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는데, 나의 시각과 달리 자꾸 기능적인 탁월함에서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지? ...등등 묘하게 이야기가 엇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마케팅관점을 적용한 민*당 선거전략..등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고 실무력에 한계가 있는 현실에 적절한 의견일 수 있지만, 활동이라는 것이 내가 싫으면 정리하고 그만두고의 문제는 더더구나 아니지 않을까? 자꾸 그의 의도가 나타나 엇나간 것을 아닐까? 비교적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고, 그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음에도 나는 장기적 관점, 태도를 주입하고 있었던 것을 아닐까? 기존 활동가 386 버전은 그에게서 아무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것 같다. 자신을 것을 주입하려하고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것 같고, 함께 하여야 할 어떤 것도 꼬리표를 붙여 멀리하려는 듯한 느낌을 조금씩 받는데... ... 언젠가 이야기할 기회는 되겠지만, 그때 평생해도 어쩌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와 삶에 녹아나지 않고, 사심?을 버리지 않으면 맘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나누게 될까? 그 마음이 섞이게 될까?

 

050920 상근활*가에 대한 생각. 일터란 전쟁터와 떨어진 격전지. 회비 천원의 소중함, 각박함, 살벌함 등에 범벅이 되어 살아가는 생활인을 보다 불쑥 상근활*가에게 시선이 머물면 문득 치열함도 사라지고, 노력의 흔적도 아쉬운 것 같다. 그러다가 그래 빨리가자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맞아라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러다가 안이함. 준비부족. 내가 내돈쓰고 일한다는 마음이 가 있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혼자 마음이 너무 각박한 것은 아닐까? 푸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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