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너만 생각해도
가슴 안이 환해지고

너만 봐도
볼이 화사해져

점점
박힌 실루엣만 봐도

콕콕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9-02-21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화꽃인가요? 벌써 봄이오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아요^^

여울 2019-02-21 23:37   좋아요 0 | URL
네 매화에요. 봄이 성큼 왔네요^^
 

경애의 마음

[ ]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27

[ ]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도 씬도 배우도 아니고 오직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과 상영되는 영화 사이에 이는 그 순간이라는 시간이라는 좀 과격한 논리를 폈고 그걸 ‘불타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64

[ ] 상수는 마침내 괄호 안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이 되고 만다˝라고 문장을 완성했다. 123

[ ] 시작도 진행도 종료도 모두 마음의 일이었는데 그 마음을 흐르게 한 동력은 자가발전이 아니었다는 것,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그것만은 분명했다. 조교와 상수 사이에 있던 위계가 일종의 권력의 위치에너지를 생산해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런 상수의 분석은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이로웠는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150

[ ]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는 사람이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158

[ ] 베이지색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자 상수는 눈물이 어렸는데 사랑이 있다는 느낌이 가져오는 의외의 헛헛함 때문이었다. 사랑이 있다고 하면 대개 차오른다거나 벅찬다거나 하는데 지금 상수는 무언가가 급하게 빠져나가 완연히 달라진 바깥의 온도와 내면의 온도를 느꼈다. 260
[ ] 경애는 사실 호찌민이라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160개도 넘게 있다는 걸 아느냐고 물었다. 263

[ ] 상수는 실체라는 것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이란 이렇게 어떤 형상에 숨을 불어넣어 그의 일부를 갖는 것일까. 그래서 상수는 그동안 그런 일들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그동안 상수가 경애에게서 가져와 하나씩 완성한, 상수의 마음속에서 걷고 말하고 먹고 마시는 경애라는 형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297

[ ] 이별이 분노나 실망감, 적의 같은 단일한 감정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품고 살아가기가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순간순간 전혀 반대의 감정이 몸을 부풀려 마음을 채우기에 아픈 것이었다. 아픈 것을 대체할 다른 말이 없었다. 316

[ ]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

볕뉘.

사랑한다는 무언가 잡히는 일이 아니므로 손바닥을 가지런히 놓아 보듬는 것이라. ‘경애하는 마음‘으로도 읽히고 ‘경애의 마음‘으로도 비추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 ] 대가천 2(은어낚시); 나는 은어를 본다/물의 힘줄 속에 그것들의 길이 있다/물의 힘줄을 은어들이 당겨 강이 탱탱해진다//나는 은어를 본다/강의 힘줄이 내 늑간근에도 느껴진다/그 밖에 중요한 것은 없다//나는 은어를 본다/언어에 기대어서/이건 물론 중요한 게 아니다//누가 강의 힘줄을 풀어놓느냐/강에는 은어가 올라와야 한다/그 밖에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하석, [고령을 그리다]에서

2.

[ ] ‘당연하다‘는 판단에 숨은 차별 감정: 차별 문제에 있어서 ˝이는 차별이 아닌 구별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당연하다‘라는 말을 인습적, 비반성적으로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그러는 것은 당연하다. 여자는 당연히 그래서는 안된다. 중학생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일본인은 당연히 그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모든 논쟁을 별다른 고민 없이 ‘당연하다‘는 말로 귀결시켜서 끝내 버리려는 나태한 ‘당연주의자‘이다./차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원래 그렇다‘, ‘당연하다‘,‘자연스럽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왜냐하면 그들은 분위기만 읽고서 마이너(소수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달을 생각도 없다. 14,15

[ ] 어떤 구별로 인해 실제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은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의식적으로라도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는 제안이다. 장애인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하며, 운좋게 미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운 좋게 명석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이를 엄연히 부채로 받아들여야 한다....성공한 사람도 본인이 겸허한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이들이 겸허한 것은 열성형질을 가진 사람, 일에서 실패한 사람, 인생에서 행복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비굴해지지 않고, 자살하지 않고, 범죄에 물들지 않고 사는 것에 비한다면 무한대로 쉬운 일이다...이들 역시 상대적으로 열악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나 불운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 12, 13

[ ] 공격성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이를 무비판적으로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차별 감정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우리 안에 틀림없이 존재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공격=악의를 일소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온갖 악의와 그 표출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떠올리며 현실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은 악의와 싸우며 그것이 폭주하지 않도록 단단히 제어하는, 이러한 노력 속에서 생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인간의 악의를 천편일률적으로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악의가 있기에 삶이 풍요롭다.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그 삶이 가치를 결정한다. 11

[ ] 어째서 그는 (현재적, 잠재적) 피차별자이고 나는 아닌가? 20; 우리는 이 질문을 걸고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차별 철폐를 향해 매진하는 것도,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포기하는 것도, 모두 아니다. 우리 안에서 꿈틀대는 차별 감정을 비판해야 한다. 차별 감정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비판 정신‘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이론과 실천도 자기비판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무조건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면, 일단 고개를 돌려 외면해도 무방하리라. 20(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장애인이나 여성 등 공인된 피차별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대의 강한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역차별을 단행하기 쉽다.)

[ ] 나는, 평소에 ˝평범하기 싫다.˝ ˝어떻게든 나를 평범함에서 빼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즉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셈이다. 이는 ˝평범한 세계˝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여러 차별과 차별의 징조를 최대한 알아채고, 그것들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바꿔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다.....각자 자기 안에 깃든 ‘자기만족에 빠진 자신‘을,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자신‘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을 경계하는 것이다....문제는, 이른바 ‘낮은 곳‘이 이미 ‘높은 곳‘이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낮은 곳에 있는 자의 복종이 악취를 풍기는 오만이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차별 감정과 진지하게 마주한다는 것은 ‘차별하고 싶은 자신‘의 마음에 계속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을 열어서 파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모두 내던지고 죽고 싶다고 바랄 정도로, 즉 차별로 괴로워하는 사람과 ‘대등한 위치‘에 이를 때까지 자기 안에 숨은 나태함과 눈속임과 냉혹함과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다. 204, 206 나카지마 요시미치, [차별 감정의 철학], 바다출판사 에서

3.

[ ]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사람답게 사는 삶은/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7

[ ] 현대 한국인은 ‘내 것‘ ‘내 새끼‘에 빠져있다. 남의 것을 더 소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서양이 목적 지향적이고 동양이 관계 지향적이라고 했지만, 현대 한국인은 전쟁의 트라우마을 여지껏 앓고 있는 ‘이해관계 지향적‘이라고...잘해줘 봤자 즉각적인 이득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남을 무성의하게 대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12, 13

[ ] ˝참 피곤하게 사네.˝ ˝너 혼자 그런다고 변해?˝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아˝....역설적으로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할까 봐 가장 두려운 듯하다. 41

[ ] 비건은 형용사: 완벽한 비건을 몇 명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다. 일단 비건-친화적인 사회가 되기만 하면, 실천하기가 점점 쉬워지면서 비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건은 내게 정체성이나 명사이기 이전에 형용사이다. ‘비건적‘인 작은 노력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비건은 소수자 운동을 넘어서서 정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54

[ ] 덴마크, 독일, 스웨덴에서는 이미 ‘육류세‘의 도입을 의회에서 검토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국민 건강 때문이다. 가디언지는 이 제도가 5-ㅔ10년 내에 도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wework‘같은 기업은 사내의 모든 공식 식사에서 육류를 금지했으며, 업무를 위한 식대도 육류의 경우엔 환급을 안 해주기도 결정했다. 71 이상, 김한민, [아무튼, 비건] 에서

4.

[ ]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일까요?˝/˝나도 가고 있는 중이에요.˝/˝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요?˝/˝나도 나에게로˝ 0 김숨, [너는 너로 살고 있니]

5.

[ ] 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빛의 옥상에서/서른세개의 날개를 돌려라//오다 가다 오르다 내리다 흐르다 멈추다 녹다 얼다 타오르다 꺼지다 보다 듣다 생각하다 말하다 삼키다 뱉다 잡다 놓다 울다 웃다 주다 받다 묻다 답하다 밀다 당기다 열다 닫다 떠오르다 가라앉다 부르다 사라지다 넘다//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하나의 파도가 밀려가고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니/세상은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니//기다리지만 말고 서른세개의 노를 저어 찾아라/세계의 손끝에서 마악 태어난 당신을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에서

볕뉘.

1. 이하석 시인의 젊을 적 시집이다. 사진 속의 그는 모서리가 남아있다. 천둥의 뿌리를 왜 쓰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이 시 안에 힌트들이 있다. 쉰여섯. 조금은 미숙한 나이. 아니 많이 미숙한 나이. 나에겐 그 나이가 버겁다.

2. 책들을 조금씩보다 놀랍기까지 했다. 어쩌면 한꺼번에 기획을 하듯이 같은 말이, 아니 다른 색의 말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폭포같은 하지만 비수같이...침끝같이 온몸에 박혀버린다.... 참 아픈 어쩌지 못하지만 어째야 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 ] ‘나라면 이 화보에서 이 사람을 이렇게 했을 것 같다‘(생산적 시선): 잡지가 아니어도 좋구, 인스타그래만 봐도 매거진마다 만든 패션 필름들이 있어요. 그럴 보고도 생각할 수 있어. 똑 같은 브랜드인데, 아니면 똑 같은 스타인데 여기는 왜 이렇게 찍고 여기는 왜 다르게 찍었을까? 왜 이 영상은 저 영상보다 더 반응이 좋지? 왜 ㄱ 잡지가 재미있고 ㄴ잡지는 멋있는데 조회수는 ㄷ이 더 높지? 이런 것들을 분석해. 사람들이 보는 시각적 결과물의 대부분은 협업이에요. 그 뒤에서 사람들이 한 일은 잘 보이지 않죠. 에디커를 하고 싶다면 그걸 보고 복기할 줄 알아야 해요. 내 생각을 되감기하듯 계획을 짜. 그걸 일주일 안에 해낼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해. 250. 잡지의 사생활에서

2.

[ ] 스피노자는 데카르트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가톨릭 신자였던 데카르트는 우주의 일반적 목적성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신을 자연과 동일시한다. 신의 자연의 광대한 힘이다. 자연은 스스로 산출되며 그런 자기 산출 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자신 이후에도 라이프니츠가 계승해온 서구 전통 철학의 관점, 즉 여러 다른 세계들 가운데 한 세계를 선택하는, 또는 인간을 위해 세계를 실현하는 창조신의 개념을 선명하게 공격한 것이다. 431

[ ] 목적론은 주관적 경향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적 상상에서 비롯되는 착각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은 신에게서 자신의 절대적 본성의 필연성에 따라, 즉 자기 고유의 내적 법칙에 따라 전개되는 최고 능력을 귀속시키기는커녕, 마치 신이 판사나 왕인 것처럼 인간의 의지와 유사한 의지를 귀속시키는 것이다....이런 내재적인 무지의 상태를 유지하는 쪽이 전체 구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의 판단이 인간의 파악력을 훨씬 능가한다고 확신하였다. 434-435 자연물에 대한 원인의 탐구는 무지에 기초한 자유와 목적 개념에 의거함으로써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자유롭게 욕망하는 목적은 자연물의 인식을 위한 유일한 원천이 된다. 이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하며, 반면 자연물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생각할 뿐이다. 435

[ ] 스피노자의 욕망의 윤리학은 실존적이고 행복주의이다. 욕망의 윤리학은 인식이고 여정이며, 구조이고 지혜이며, 엄격함이고 기쁨이다. 욕망의 완성은 완전한 기쁨이며 극도의 존재 의식이다. 이런 욕망의 여정은 지극히 험준하지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려운 것이다. 445 이상 스피노자 서간집에서

3.

[ ] 시를 쓰려하니: 시를 쓰려하니/기억마다 말끝마다/살았던 뼈들이 부스럭거린다.// 냉수처럼 수런대며/죽음의 뒤꼍들이/바닥의 면목을 드러낸다.//

[ ] 불멸의 노래: 총알 받은 몸이사/콩알처럼 나뒹굴었지// 마침내 비가 올 게야/ 그 젖은 땅에서/콩이 싹트듯// 내가, 우리가 날 거야.// 죽기 전 저항의 노랠 불렀으니/모두 영원이 되고/불멸이 될 거야.// 그래, 그래,/새벽의 어둠이 우릴 피워 올리기 위해/ 마구 수런거리겠지.// 마침내 너끈히 세계의 상공에/ 꽃들 뽑아 올려질 거야.// 이상 이하석 천둥의 뿌리에서

4.

[ ] 경고, 민들레: 지난겨울 매설했다/초록의 톱니를 두른// 밟히고 밟혀 문들어진/문들레 민들레// 잔디밭 가로지르는 발꿈치 뒤로/ 수백 개 해가 뜬다// 째깍, 째깍,/ 조심해라! 밟으면 터진다. 노-란/발목을 날려버리는 대인 지뢰// 하늘에도 피었다/흰 구름 폭발하는 곳 꽃,/ 절름거린다/목발 짚은 봄 서영처, 말뚝에 묶인 피아노

[ ]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에는 예술가의 고독과 심오한 고뇌가 담겨져 있다. 그는 ˝예술가의 고독은 과감하고 낯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지만 또 한편 불균형적이고 금지된 것들을 야기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구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1971년 영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만들었다. 오래된 영화지만 아름답고 탐미적인 영상과 정교한 구성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될 정도이다. 감독은 대작가의 직업을 작곡가로 바꾸었고 어린 딸을 읽고 상심하는 에피소드를 추가했는데 이는 구스타프 말러의 실제 모습이기도 했다. 170 폴 발레리는 ˝아름다움은 사람을 절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아름다움은 마약처럼 중독성을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중독이란 어떤 병리적 상태를 말한다. 말러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과 죽음의 긴장은 그의 음악을 제의적인 모습으로까지 극대화시키고 있다. 172 토마스 만의 단편 [트리스탄]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주인공 클뢰터얀 부인은....작가 슈피넬의 간청에 못 이겨 피아노를 치게 되는데...쇼팽의 야상곡 Op.9 No.2 내림 마장조를 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는 <야상곡>을 한 곡 더 연주했고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곡까지 연주했다.....처음 몇 대목만 치고 나서도 그녀는 확실한 감각을 가지고 그 피아노를 다룰 줄 알았다.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음색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신경질적인 감성을 드러냈지만, 거의 환상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리듬의 변화를 유쾌하게 다룰 줄 알았다. 건반을 치는 솜씨는 단호하고도 섬세했다. 그녀의 손을 거친 선율은 그지없이 달콤한 소리를 냈고, 장식음들은 머뭇거리듯이 우아하게 그녀의 손가락에 휘감겼다. 연주를 하는 동안 얼굴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입술의 윤곽이 훨씬 더 선명해지고 눈가에 패인 그늘도 더 깊어진 듯했다. 174 장시간에 걸친 연주로 남아 잇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린 부인은 결국 허약 증세에 빠져 엄청난 각혈을 하고 죽게 된다. 177 서영처, 지금은 클래식을 들을 시간에서

볕뉘

설. 오고가는 길 짬짜미 읽다. 친구들이 하룻 밤을 묶고 갈 때 권해준 작가나 책친구들을 만나 건넨 이들이 함께 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타깝지만 슬픔이 목에 메이는 독서이기도 한 순간이었다. 두 시인은 우연히 얼굴을 뵙고 인상, 아니 풍기는 아우라가 잔영처럼 목에 차올라 읽게 된 것이다. 그게 잘못인게다. 첫 시구부터 막혀 어쩔 줄 몰랐고, 읽기가 겁이 나 두려움이 몰려와 더 서성거렸다. 아직도 열에 넷은 남아 있다.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것. 감히 엄두에 낼 수 없는 일이다 싶다. 몇 편씩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글은 칼이라는 말. 삶의 행간을 발라낼 수 있다는 두려움.....문득 두려워지는 나날. 어쩌면 칼날 위를 걷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역‘

‘xx운동의 구조와 현황‘이란 주제로 시민을 모시는 포스터가 보인다. 워크숍이란 말이 걸리긴 하였지만, 낚이고 싶다. 아니 싶었다. 조금 일찍 그 학교에 들러 조금 거닐다. 신전같은 그 광장을 지나 장소에 들러보니 발제자와 담당자가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 빙빙 돌아 외부인 출입통제된 인문대학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몇바퀴를 더 돌고 시간이 지나서야 세미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직 준비는 끝나지 않았고 행정실무자가 오고, 코드가 없어 다시 갔다오고서야 발표가 시작되었다.

운동은 없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점점 사라지고 있다가 팩트이다.

서류와 기사, 포스터는 또 어디에 어떻게 쓰일까. 유명했던 교수는 여기 마음살이는 어떨까. 산하연구소가 세 곳이나 만들어지고 더 이름을 얻게되면 어디에 있을까. 산하연구원들의 마음은 어디로 향할까. 아마 아마 여기는 아닐 것이다. 더 드높고 실크하신 곳일 것이다.

십년ㆍ이십년을 지역에 살아도 지역문맹이신 교수님들은 자신의 마음이 가슴 위로만 향하고 있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마음이 가슴보다 아래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하다면, 반짝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 최소한 상처는 받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늘 전기코드가 어디있는지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조차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빨리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역과 평화와 인문을 정녕 바란다면, 지긋하게 연결하여 뿌리내리는데 집중하기 바란다. 그래야 씨마저 말라버릴 운동이란 것이 행여 살아있다면 자극받고 꿈틀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