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와 눈물의 5일간
3. 산발적이고 수동적인 저항
확대 비상계엄의 선포 / 도화선 / 도심지 투쟁 / 두 번째 도화선 / 가두투쟁의 발전 / 시위대와 포로 / 화려한 휴가 / 지하 선전 작업 / 정부측 동향

4. 적극적 공세로의 전환 / 학생시위에서 민중봉기로 / 생존을 위하여 / 싸우다 죽자 / 봉기의 확대 / 광주의 눈물

5. 전면적인 민중항쟁
금남로 전투 / 택시부대의 등장 / 노동청 전투 / 신역 전투와 심야의 투쟁

6. 무장투쟁과 승리의 쟁취
차량시위 / 협상의 결렬 / 금남로 제2차 전투 / 시민군의 등장 / 도청 점령

3. 광주여! 광주여! 광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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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겨우존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비춰지지 않는 시선(作)
    from 木筆 2007-07-29 02:48 
       0. 마지막회, 앞자리만 조금 남았다. 시간을 겨우 맞춰, 막둥이와 셋이다. 좀전 장모님 회갑에 찍은 가족사진을 건네드릴 겸 들른 댁은, 보름달빛에 능소화와 나리꽃은 간절하다. 큰화면에 놀란 막내녀석은 그러길래 "제가 볼 게 아니라구 그랬잖아요"라구 연신 불평을 터뜨리고, 놀라면 귀를 막고 안긴다.  1. <박하사탕>과 <꽃잎>이 겹쳐졌다. <죽음의 시대
 
 
 

 

 큰놈과 딸년은 오늘 아침 집을 나갔다.

 초1막내녀석도 어제 외박을 했다. 주중 내내 "오늘 도서관에 가서 독서카드 만들자"고 보채던 열정은 또래와 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직도 돌아올 줄 모른다.

 서울로 2박3일 친구네로 놀러가는 녀석들, 평소 티격태격하여 선 다짐을 받았다.

"무조건 재미있게 놀아. 그리고 서로 의견이 다르면 다투긴 해도 되는데, 싸우진 말아 알았지"

" 다투는 것하고 싸우는 것이 어떻게 달라요."

"서로 좋아하는 것과 하고싶은 것이 다르면 서로 티격태격할 수 있지,

거기까지 하는 것이 다투는 것이야 알았지."

 

한마디 덧보탠다.

"너희들이 잼나게 놀면, 아빠가 너희들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을 것 같구.

다투면 가끔 생각이 날 것 같구

싸우면 두통이 올 것 같아."

 

버스을 태워보내며, 음료와 먹일 것 조금 챙겨보내며,

챙긴다.

 

아빠가 너희들 가끔 생각나면 뭐라고.. '다투고 있는거야'

싸우면 어떻게 된다구. '두통' 그래 두통이 생기는거야 ㅎㅎ.

재미낳게 놀면, 너희들이 아빠는 안중에도 없다. 그치 정신없이 잘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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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바람이 덥다. 목련잎은 어느 덧, 진초록으로 제자신을 바꾸었다. 이렇게 계절의 한고비도 미리 조짐을 보인다. 불쑥 들어온 윤수종님의 책들로, 그냥 별 것이겠지라고 가벼운 평가의 글들이라고 여기고, 한번  네그리, 라이히-가타리로 맛을 본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팜플렛들이 이전 맘속이나 생각을 스쳐지나간 다른 것들과 중첩이 되면서 마음을 흔든다. 라이히인지 윤수종인지 분간이 가지 않고, 가타리인지... 밀린 관점들에 , 응어리진 관점에 코칭을 받는 느낌이어서 당황스럽다.

1. '이물감'라고 하기엔 잔뿌리를 자꾸 내 마음속으로 내리고, 지금 내것과 비교하게 만든다.

2. <바리데기>로 심정적으로 이어졌던 한반도의 현실을, 미천하기 짝이 없는 아픔의 그물망이 저기 서편 런던 뒷골목까지, 남아공까지 닿은 셈이다. 황구라의 능력으로 인해, 그냥 서성이는 마음, 단편 단편 어쩔 줄 모르는 마음들이 실뿌리를 서로를 향해 내린 셈이다. 한마디로 낚인 셈이다.

3. 한번, 연변에 간 일이 있었다. 만주를 다녀온 뒤, 현실과 문제를 짚은 글을 신경림시인의 시 몇편에서 느낄 수 있었다.(애석하게도 언론에선 한번도 아픔에 대해 이어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작은 자본에 취해 휘청이는 만주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여전히 <예비군>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관광객들이 있었다. 노래방과 한번 무장해제하고 싶어하는 군인정신이 잠복근무 중인 '우리'들이 있었다. 수백만이 죽어가고, 홍수,  비행선 아래로 잠깐 본 하늘 밑의 북녘은 민둥산 그대로 인채. 나무와 숲은 없는......

4. 머리는 아파하지만, 머리는 아직 <이물감>의 경계를 허물어 가서 아파오기 시작하지만, 몸은 아직 경계를 굳건히 하고 있다. 혹 그 일들에 관여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면, 아직도 남은 사대의 마음들은 불쑥 몸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리고 머리에 속삭일 것이다. 아직 아파할 때가 아니라구...

5. 사실 많이 헛갈린다. 윤샘의 <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관점 - 이것만은 접어두고 나머지 것은 음미하기로 한다. 평소의 고민에 진도가 나가는 덧셈은 받아들이기고 하고, 사고의 발화지점은 품기로 한다. 어쩌면 타자를 그려내고 가두고, 상정해버리는 것 만큼...쭉쭉 생각을 밀고 나가다보면, 그 자체에 물음표가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타자'는 없어야하는지도... ...

6. <아픔>을 아픔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언론은 시셋말로 우리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어지는 아픔을 연결시키지 못하게 하는 언론은, 지속적으로 타자를 만들고 그려낸다.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찟긴다. 아픔에 대한 감수성이 그렇게 애절한데도, 자본을 이식받은 그들은 모른다. 그래서 늘 '우리'는 더 불감증인지도 모른다.

7. 황구라란 소설가를 중진, 가벼운 신진보다 좋아하는 이유는, 시대를, 마음을 앞서가는 그의 능력때문이거나, 특출난 감수성때문인지도 모른다. 단 소설가로서... ...그 만한 후배들이 나올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8. 무더운 여름, 마음이 더 아프다. 품어야될 아픔들이 더 많다는 것은 외롭다. 찌는 폭염, 소나기라도 매미울음처럼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진초록 목련잎에 장대비 부딪는 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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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26  "라이히의 사상과 성정치"

0. 웹자보의 옆모습 사진과 대면한 느낌이 다르다.  자보는 세련된 느낌을 주는데, 직접 뵈자 시골분위기, 친한 형,오빠 느낌이 화악~ 풍겨나온다. 잠시 차 한잔할 시간을 가진 뒤, 10여분 늦게 사회자의 3분만 기다려달라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몸으로 강연시작이다. 다시 높은 강당의 테이블을 끌어내리고, 대면하여 강의시작이다. 다소 오붓한 분위기랄까~. 시간이 흐르자 강의도 사람도 붙기 시작한다. 초반 사진도 거부하여, 사무국에선 실루엣만 남긴다.

1. 마지막 기차시간을 지나쳐(아마,01:18 광주행), 완곡히 이야기하자면, 몸-마음을 받쳐 왔지만, 주체측에서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이 마음에 거스르는 것 같다. 허름한 감자탕집에 소주을 기울이며 마무리 겸, 다소 선정성이 강한, 강할, 내용들과 뒷이야기 갈무리가 있다. 그러고 보니, 아주는 늦은 새벽 손님이 우리를 뒤 이어 들어온 것도 한참이나 된다. 새벽을 끌고 온 셈이다. 가벼운 포옹으로 삼국장과 우리는 영화계거장과 심리학계 거장이 비운 자리를 메우고, 작별이다.

2. 총합한 강의가 끝이나고, 질문토의시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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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알라디너 모꼬지?! , 누리꾼의 공간과 한계

 

 인터넷 생각글의 풍요로움에 대한 단상

1. 뺄셈

 - 생각글은 어떻게 풍부해질 수 있는가?

 - 왜 입장이 다른 생각글은 인터넷공간에서 공약수를 쉽게 찾지 못하는가?

 - 생각글이 여물거나, 숙성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 인터넷 공간은  왜, 활자에 집착하게 되나, 상처란 감정에 귀기울이지 못하는가?

 - 상처 댓글은 왜 인터넷공간에서 더 증폭되는가? 처음과 지금의 사이를 제기한 쟁점만으로 바라보려는 구분이 필요한가? 가능한가? 할 수 있는가? 상처난 감정이 회복될 수 있는가?

 - ㄱ,ㄴ,ㄷ,ㄹ이란 사람이 다른 주제로 다른 공간에 만나서 논의를 나누었다면, 논의의 진전이 없었을까?

- 소모하거나, 소모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인터넷 생각글 논쟁의 위험수준과, 그 관계를 풀어나가는 법; 생각이 다져지는 공간이 아니라 얇은 종이와 같아서 밟으면 상처나고 으스러지는 공간, 논지가 함유하고 있는 정서, 감정의 흔적에 대한 이해. 뺄셈보다 의도와 장점을 분리해내는 일. 감정에서 출발한 논의를 애초의 의도와 구분해내는 일

- 논쟁에, 논의에 이겨야한 하는가?

- 권력, 억압만 하는가? 사실인가? 가치중립인가? 권력을 생성될 수 있는데, 일방이라여기는 것은, 미시권력이 인터넷공간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2. 덧셈

-  공간이 소통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할 것

-  쟁점을 명확히 할 것. 발행 생각글의 논지를 단순화할 것. 가치-취향-방식의 보조틀을 꼬투리 삼지 말 것.

-  애초 생각글의 논지에서 얼마나 덧보태어졌는지에 중점을 두어 평가해볼 것.

3. 나눗셈

- 인터넷 공간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생각을 교감하는 일에는 심연의 강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지속적인 지식의 전달에도 불구하고, 감정이나 포인트,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눈동자라는 것이 없기에, 팔짱을 끼거나, 몸을 뒤로 빼는 몸짓이 없기에. 꾸며지거나 덧보태어질 수 있기에 정확한 전달이 어려운 것은 아닐까? 문화적인 역능 부족, 다양성에 대한 논의, 당위성이라는 위장적인 표현은, 현실 공간에서 자기말만 하려고 하는 것, 듣지 않는 문화와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학자가 자신의 논리를 반박하는 일에 집요하게 발화지점에서 논의를 확장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를 침몰시키려 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도 논쟁이 아니라, 상대를 나의 논리에 귀속시키려는 욕망이 앞서 실질적인 진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 얼마나 잘 들을 수 있느냐? 발화지점이 어디냐? 우리의 다른 가치에 대한 수용력, 수용수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수용수준이 성숙되지 않으면, 여러 반찬이나 다른 식성을 몸으로 인정하는 수준에 근사하지 않고서는 논의나 논쟁의 진전으로 인한 상호 변화를 기대한다는 일은 욕심이 되는 것은 아닐까?

- 우리의 문화적 수용성, 수준, 다문화, 다가치에 대한 섞임-융화능력은 어느 수준일까?

4. 곱셈

 - 소통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내에서 소통은 현실의 공간과 달리, '유아기' 수준임을 명심할 것. 새로운 방식, 새로운 나눔틀, 나눔 윤리에 대한 성찰을 같은 수준으로 키워내지 않으면, 생각만큼 열린 공간 확장은 한계가 있음. 오히려 다른 기준, 틀을 키워내면, 그 소통공간의 확장-영역은 다른 속도를 가지고 나아갈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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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논쟁의 발화지점 다시보기.....
    from 木筆 2007-10-09 10:03 
    0. x축을 지금이라두자. y축을 시간이라고 하자. 지금이라는 수평면을 상황이 벌어지는 국면(생각면)이라고 하자. 그리고 a라는 사람의 생각, b라는 사람의 생각이 부딪치거나 발화하는 지점이라고 하자. a라는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지만, 일정한 생각의 방향성을 가지고 왔다고 하자. 굳이 a와 b일 필요도 없고, c와 d로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니 다양한 주제로 다양하게 생각면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1. 사람들은 발화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