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신당 - 고통을 숙성시키지 못함. 중앙집권과 분권. 명사만 있고 동사는 없음. 지역에 대한 고민 지점을 달리하면 해결고리가 보이는 것은 아닐까?. 다르게 함이 없음. 개혁신당의 상납과 동일. 1-2년 더 아파한다고 달라질 일인가? 선거에 연연했던 것은 아닐까?
대운하,자본의 논리 - 민노당의 논리라/일반인들과 차이, 간극은 어디서 만들 수 있을까?
인도, 80년대후반우리,성장이데올로기 - 자본은 공기처럼 익숙한 것일까?
외유에 의한 소수자의 고통체감 - 고통은 인식의 확장에 기여하고 넓게 볼 수 있게, 쿨함의 양면성. 오리엔탈리즘
사회적일자리,도서관-전문성과 자립성-마인드없는 접근은 자생적 소멸 불러.풀없는 풀뿌리
학부모연대,전교조,참교육학부모회의,동네모임-분산,타부문과 연대,연결성? 이해관계자의 학운위점유/밥때, 밥분위기를 소유한다는 것, 문화를 소유한다는 것 그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푸념 한스푼, 응어리 네점, 반가움 두스푼, 쓴소리 0.5t, 자본에승복 1컵,향수 반컵,새순 약간
 
 번개. 퇴근길 상긋한 바람 속에, 여운을 길게드리며 사라지는 산수유꽃같은 바람이 좋아 달린다. 가는 달림이 꼬셔 이런저런 말 건네며 수월하게 잔잔이 번지는 저녁놀 보며, 조금 늦게 장소에 댄다.  진보성향인 분들과 함께, 이런 저런 미약한 수다를 떤다.  미국에 다녀온 분의 소수자 체감발언은 늘 가슴이 아리다. 소수자의 시선이란 고통 속에서 자라고 더 시선이 넓어진다는 사실이. 머리만 소수자지향이고 몸은 한참이나 머뭇거리고, 인식의 장벽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에겐 불편하다. 어쩌면 그 고통과 슬픔의 체감을 통한 다짐만이 그 벽을 넘어서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

엮이지 못하고 증발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마음들만이라도 그릇에 잠시라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일까? 해보고 싶은 것들도 여전히 일상에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관점과 마음들을 모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일상의 꼭지들이 좀더 수렴되고 단단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아침 출근길 잔차 열쇠가 없어 옅지만 상쾌한 햇침을 맞으며 출근이다. 샛강이 고요하다. 왜가리의 그윽선 동선이 눈길을 끈다

8분, 학운위 4. 구 개혁신당3, 그리고 한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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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5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0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말 독서 스케치

<정약용의 형제들 1>, <역관>, 이덕일 편을, 김훈편을 돌려주며 빌렸다.(밥벌이의 지겨움을 보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집에 막 도착하니 우편함에 <황해문화>가 꽂혀있다. 제목을 보다 최장집교수님의 글이 맘이 간다. 처가 기제사가 가며 차에서 본다. 처남이 술고픈 소리를 하지만, 밀린 독서도 있고 피곤한 일주일이라 조신하기로 했다. 제사뒤 탁주로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와 <정약용>편을 들었건만 왜 이리 졸리는지 한페이지가 정지한 채로 연신 머리는 곤두박질을 쳤다. 황급히 수습하니 아침이다. 부연 아침 거실 안쪽 햇살이 향긋함을 많이 품었다. 조금 더 본 다음...또 잠이 들었다. 낮잠. 하루의 반을 잠으로 곤두박질쳤다.

정약용의 집안과 스타일을 좀더 꼼꼼이 볼 수 있다.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과 아귀가 맞는 부분이 많아 전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화자가 아니라 멀리서 보는 정약용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제도권에 있으면서도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 점이 남다르다. 그의 노력 역시 대단한 경지를 넘어선다.  <목민심서>도 읽지 않은 거짓 독서가로 천주교와 유교의 연관성, 남인과 벽파의 맥락도 짚어볼 수 있어 좋았다.

한편, <그리이스의 비극에 대한 편지>도 이어서 읽는 데, 생각은 겹친다. <황해문화>의 최장집교수님의 민주화와 시민에 대한 평가, 지적이 염두에 두어진다. 제도권과 접촉면-접촉공간의 축소의 과정은 민주화의 성과와 반비례하여 나타났다. 운동권 역시 이에 대한 판단도 부족하고 미흡하여, 운동관점에 치중하여 이 영역이 협소해졌다. 대단한 불행이다.  온정주의적 복지와 혜택이 제도권의 할 일이 아니라 접접을 만들고 넓히는 것이 진정한 몫이다. 낭만주의가 가져올 것은 별반 없다. 이 영역에 대한 관심을 재고한다라는 취지의 논문으로 여긴다.

김상봉교수의 <그리이스의 비극>에서 니체와 들뢰즈가 심한 냉대를 당한다. 욕망과 쾌락이란 꼭지 역시, 고통과 슬픔의 코드만큼은 되지 않는 듯 싶다. 그리고 고통과 슬픔이 왜 가지지 않는자에게 더욱 더 비루함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지, 순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과 슬픔의 접선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그 접점을 통한 눈물의 렌즈가 어떻게 세상을 넓게 깊게 볼 수 있게 하는지? 그 고통과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지 소상히 밝히고 있다. 니체와 들뢰즈에 행여 경도되었다고 느끼거나 심취했다고 여기시면 한번 에둘러가도 좋을 듯 싶다.

일요일, 일터 동료 결혼식에 김홍도거리가 생긴다는 괴산에 다녀왔다. 김홍도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도시스럽지 않은 피로연이 볼 만하기도 하지만 무척 아쉽다. 돌아와 마저 책을 읽다가 김영사의 표정있는 역사 시리즈 <역관>을 보았는데, 멀미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성의없이 돈 벌 욕심이 선명이 드러나는 책을..2/3쯤 보다 덮다. 욕심도 알 거리도 더 이상 없는 듯 하다.

 뱀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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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 아* 셈나, 설 후배,참* 오티-뒤풀이, 애벌로 남겨둔다. 움직인만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인다.

  080228-1 OT  기후온난화와 설명

   인사말 겸, 시간이 나 낙서한 도식을 삼아 줄거리만 밋밋하게 이야기하다.  함께 데이터를 모으다 나면, 입장들이 찬반유보-새론사실로 보듬어 질 수 있을까? 기후-식품-유전자-환경호르몬-전염병....자본주의의 바다에서 자란 커다란 나무들의 영양공급원에 대해 함께 나눌 수 있을까? 경제만의 세계화가 정치의 세계화와 무관하고 절연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 토론해볼 수 있을까? 아니면 아주 조금, 따끔거리는 침 한방이라도 될 수 있을까? 움직인 몫이겠다 싶다. 좀더 재미있고 유익하면 좋겠다 싶다

 080228-2 으뜸참***,강차장,이**님과 두런두런 참* 이야길 나누다. 다다익선이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고 보잘 것 없다. 마음을 모으고, 움직임을 모으고, 생각의 향기가 멀리 퍼지면 좋겠다 싶다.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출발. 덧셈은 무엇일까?

 080227 - 2  한시간 정도 김샘과 차 한잔 하고 헤어진다. 사회적 독서에 대한 생각, 그대로 멈춰있음에 대한 돌이킴. 새로운 동선을 만들기 그런 생각들이 비슷하다 싶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마음들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좁은 땅덩어리에 생각들이 마음들이 봄풀처럼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황량하고 매서운 추위지만 따듯한 훈풍이 꿈틀거리는 것은 아닐까~

 080227 - 1  아*, 신임일꾼과 대표단 점심. 문대표님 말씀으로 가진자에 대해 생각을 깊이했고 선순환, 우리의 한계, 동선에 대해 한번 더 돌이키게 된다. 돌아오는 길, 신대표님의 외연에 여전히 놀란다 - 우리란? !

 080226 김훈에 대한 셈나. 이력을 보니 보수적이다. 읽고 나눠보니 정해놓은 선에 충실한 소설가이다. 그 경계를 이야기하니, 탐미적이고 허무주의가 배여있다. 모든 것을 다 요구할 수 없다. 그 만한 흔적으로 한켠으로 만족해야 한다. 정치가가 아니고 이념가도 아니고, 남성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솔직함에 굶주린, 색깔없는 현실에 큰 힘이기도 하다. 황석영이 될 수도 없는 일이다.

 080225 일터, 한참멀다. 생각도 몸도 부서간의 차이는 현존한다. 답답하다. 책 몇권-고민 넣고-글 흔적남기고 곰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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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읽은 책 <현의 노래><빗살무늬토기의 추억><개><간절하게 참 철없이>
읽고 있는 책 <미디어렌즈><그리이스비극에 대한 편지><낙타><바람의 사생활>
읽을 책<이기는 습관><김앤장><코뮨주의선언><경계선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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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자

선순환,0.001%,옳다-그르다,편집증,칭찬

- 아버지로 어머니로 선배로 남성으로 팀장 목사로 가지지 않는 자의 몫보다 가진자의 몫과 동선은 늘 많다. 불편한 것을, 되지 않는 것을, 이미 벌어진 현실을 옳다그르다로 편집해낸다면 가지지 않은 자의 불편은 일상화되고 해결되어갈 기미가 별로 없다. 여전히 옳다와 그르다는 제편을 마음에서부터 만든다. 만들어진 것이 유통되고 거래된다. 출발의 시점이 나눠지기보다는 견해가 들어간 사물로 유통되어 더욱 위험하다. 패거리를 낳기도, 적군과 아군을 낳기도 한다. 맺고 푸는 힘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가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경계 여러가지 가운데 선택 폭을 늘릴 수 있는 정보도 가장 많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 권위가 침범당했다, 내 것이 피해를 받았다고 느끼는 지점을 고정시켜 늘여보면 어떨까 싶다. 권위가 주장한다고 세워지는 것도 아닐테고. 자연스러움에서 출발하는 것일텐데. 판단이 섣부르게 여기에서 연위한다고 하면, 문제풀이도 거기에 따를 것이다. 실추된 권위를 채우기 위해 옳고 그른 것에 날을 세울 것이고, 그 구분에 따라 동선을 취할 것이다. 실제 강박적인 요소를 많이 담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선택의 폭은 극히 제한될 것 같다.  그 동선에 따라 힘이 없는 사람들이 취할 것은 강박적인 요소에서 외화한 방향밖에 없다.

- 진위로 구분짓지 않음은 있는 그대로로 두어 꼼꼼이 안배하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음은, 선택의 여지를 늘 담겨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소통의 가닥은 대부분 힘있는 자에게서 나온다는 사실, 소통이 되지 않는 팔할의 책임은 여전히 사태를 보는 가진자의 몫이다. 사태를 여러갈래 지어, 해볼 수 있는 일들을 여러갈래지어, 여러갈래의 의견을 가공하지 않고 듣는 귀, 행하는 손이 모자르고, 불쑥불쑥 솟는 충동과 기분에 맡긴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단말보다 쓴말로 치렁치렁해 쓴 것만 보게 만들기때문이다. 단말의 흔적이 쌓여 마음이 들뜨고 해보고 싶은 쪽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 스스로 가진 것을 생각해내는 일도 잘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가지지 않는 것을 발라내는 것보다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을 같이 고민할 수 있기에.... 탓이라고 여기거나 옳고그름으로 판단하려는 악마의 사고란 유혹에서 먼저 벗어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소수자

- 소수자의 시선과 마음이 스며들 기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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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아*** 문대표님과 점심자리에서 조금 일찍 대면하여 모교회일로 어려움을 말씀하신다. 고민 언저리, 입에 뱅뱅도는 말이 선순환인데 같은 말씀. 가진자가 결자해지할 수 있음에 생각이 박힌다. 그리고 서울서 잠깐 만난 후배의 말씀엔 소수자가 도드라져 일상을 같이 남긴다. 0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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