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근길, 월담을 하고 있는 장미들을 본다.  버스 위 절규하는 눈물들, 거리의 촛불이 내내 겹친다.  장미한송이, 그리고 촛불 한송이 그리고 희망의 눈물한송이가 담을 넘는다. 희망의 담을 넘는다.

뱀발. 아침 과학관앞 장미 - 주말 대전역 집회사진 몇점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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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끈으로 벽에 붉은 색 고정점을 만든다. 끝단에서 힘을 주어 너울을 만든다. 끝단, 경계부분의 파고가 가장높고 힘이 많이 든다. 그 고정점을 되먹임하여 돌아오는 파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총량은 온전히 사회의 몫이고 가져가야 할 것들이다. 아쉬워해서도 넘쳐서도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것은 아닐까? 나이의 문제도 높낮이의 문제도 아니다. 감내해야할 몫. 되먹임이 장난으로 끝단만 느껴서도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아픔을 녹여내는 일들. 온전한 일상으로 가져가는 일들. 유월의 첫날은 흐리다. 아***로 일*로 참*로 약간 욱신한 몸을 이끌고 자전거로 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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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니의 십년전 회상 (2) (作)

유사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시도가 있기 시작했다. 지방도시인데, 주택을 공동구매하는데 세가구가 한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는 구조이다. 별도의 공간을 가지면서 문화공간, 마을 공동의 사랑방 형태를 꾸미는 것이다. 한 지역은 10 여세대가 이런 시도를 통해 촛불문화제로 촉발한 공동의 공간을 실현한 곳도 생겼다. 세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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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니의 십년전 회상 (1) (作)

이렇게 행정단위의 경직성은 오히려 무기력함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도 한미에프티에이 찬성에 쇠고기만 반대하는 기만적인 통합민주당 역시 국면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식의 균열과 공백을 채워준 것은 여전히 자발적인 누리꾼과 그 인식의 폭을 넓혀가며 만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유연한 행보였다. 조금씩 느리지만 세분화된 공극의 채움은 점점 예민해져갔다. 아마 그것 역시 작은 실타래를 푸는 개사곡들이 아니었나 싶다.

" 아빠가 출근할 때 기름 값 엄마가 시장갈 때 미친 소, 우리가 학교 가면 0교시, 우리들의 수면시간 4시간, 우리는 민주시민 촛불소녀들, 미친 소 민영화 대운하 싫어"  그렇게 촛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고리들은 치솟는 물가와 점점 운신의 폭을 줄이게 되는 현실 속에서 마음길과 생각길들이 조금씩 조금씩 다른 방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논의의 실마리는 곡물값으로 이미 지구한바퀴를 돌아서 왔다. 석유값으로 허리가 중동난 현실은 더욱 암울하지만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을 놓아두기 시작했다. 그해 여름, 빗줄기는 요란했다.

조류독감의 여파로 자영업자들의 반실직상태도 그러하였고, 먹을 거리에 대한 우려는 이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여전히 고용없는 성장과 대기업위주 편들기는 지방의 중소업체들은 물론, 사업의 영역을 넘어서는 대기업의 횡포로 행정은 아예 없는 듯 하였다. 국제시장 상황도 국내시장도 읽지 못하는 지식경제부의 무능력은 이미 대기업의 시장판단이나 대책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이하였다. 

자생적 논의와 먹을 거리 공동구매단은 점점 색다른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이미 국부적으로 시행하고 있던 차량 공동이용도 선을 보이고, 어린이 자전거 도로 확보를 위한 마을 전용자전거도로가 생겼고,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한 주말은 동네에 작은 공간들을 생기게 만들었다. 그해 가을. 동단위의 촛불문화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하고싶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한장에 빼곡이 적어나왔다. 그리고 그 품평은 수준이 높았다. 색다른 제안도 나왔다. 공동기금을 마련하여 학교와 공동으로 [다르고 새롭게 살기]란 주제로 축제가 열렸으면 몇년 뒤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2009년부터 강남 부자들에게 특이한 사건이 기사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은퇴를 앞둔 강남부자들. 양식있는 부자들의 눈에 띄는 행보가 꼬리를 물었다. 지방 군단위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강남 집을 팔고, 군단위나 동단위의 주민센터, 아마 민중의 집과 같은 공동체이면서 사회활동을 겸할 수 있는 형태에 자금을 출연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전북 행진군과 대전 전진동의 한마을을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아토피 제로, 식품첨가물 제로, 전수검사 의무화, 8시간 학습권 보장, 주 8시간이상 문화예술향유권의 실제로 집행되면서 가능성을 보게 된 연유이기도 한 것 같다. 일종의 포트랜치 형태가 아니었다 싶다. 대기업 임원을 하면서 고루하고 힘든 삶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고, 한 마을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몇몇 생각있는 강남부자들의 선택지의 여진은 그 후로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촉진시키기도 한 것 같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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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년, 미니의 십년전 회상 (3) (作)
    from 木筆 2008-06-01 13:12 
    유사하지만 또 다른 형태의 시도가 있기 시작했다. 지방도시인데, 주택을 공동구매하는데 세가구가 한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는 구조이다. 별도의 공간을 가지면서 문화공간, 마을 공동의 사랑방 형태를 꾸미는 것이다. 한 지역은 10 여세대가 이런 시도를 통해 촛불문화제로 촉발한 공동의 공간을 실현한 곳도 생겼다. 세대별...
  2. 2018년, 미니의 십년전 회상 (2.1)
    from 木筆 2008-06-02 13:49 
    미묘한 시점, 6.3 정부의 발표가 늦춰진다. 오히려 대운하 강행이 전면에 부각하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2mb 정권은 민심을 읽지 조차 못했다.  이어지는 성명서와 촛불문화제는 방향의 가닥을 입체적으로 잡기 시작하였다. 모호한 실체없는 실체의 카이스트와 생명연의 통폐합반대 투쟁은 주요한 내부 이권보다  정부출연기관의 공공성, 공익에 대한 부분으로 투쟁방향의 진전이 있었다. 대운하를 정면에서 거부한 김이태연구원의 양심선언에 대한 노조의
 
 
 

2008년 6월. 아마 십년쯤으로 기억이 되돌아가는 것 같다. 아빠손에, 엄마 손에 삼촌과 이모들을 그렇게 자주보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외치던 구호들도 동요들에 대한 기억들.  대전역광장, 오월말미의 신록은 두툼하고 짙었다. 꼭쥔 손, 아빠와 함께 내미는 손은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재미있었다. 거리를 누비며, 따라부르는 송아지송, 미국소는 미친소 너나~ 먹어라. 드셈도  그러했다.  그쯤해서 붙인 아파트 한편에 걸린 쇠고기반대 현수막. 친구들도 부러워했고 자기집에도 걸고 싶어했다.

그 뒤로 몇달간이 추억이 자주 떠오른다. 초딩 2학년.  한차례 파도처럼 불어닥친 촛불문화제, 촛불토론회, 촛불대자보, 삼삼오오대자보단, 삼분발언회의 꼬리가 이어지면 엷은 미소가 흐른다. 지금은 고3. 언젠가부터 시작된 8시간 학습권쟁취하기와 미국이 아니라 유럽따라하기의 물결은 삶을 미묘하게 흔들어놓았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면서 엄마의 마음은 작은 동네의 분위기에 섞여 그 뒤로 다른 기류를 타고 있었다.

그 때 천정부지의 기름값, 곡물값이 팝콘처럼 커졌고, 촛불문화제로 시작한 주부시국토론단의 행보는 놀라웠다. 따로국밥처럼 놀던 인식의 그물. 유전자조작에 미동도 하지 않던 엄마는 광우병사태로 시작한 먹을 거리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치밀해졌다. 제멋대로여사의 씨에스아이드라마에서 시선을 옮겨놓은 것도 아마 그때쯤인 것 같다. 먹을거리 라벨에 대한 관심도가 내 과제물과 준비물, 과외를 챙기던 습관에 버금가게 달라졌다. 무엇을 먹게하고 무엇을 먹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먹게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로 질문이 달라졌던 것 같다.

그해 가을쯤. 주부시국토론단은 내삶에 있어 주요한 결정을 내렸다. 과외를 포함해서 하루 8시간 공부에 매여두지 않기로 작심을 하고, 작은 사회단체와 연결해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같이 다르게, 새롭게 꿈꾸기] 강연은 그 뒤로 작은 파장을 몰고왔다. 물론 나의 과외도 피자파이처럼 몇개가 짤려나갔다. 잠시 텅빈 시간들 때문에 어쩔 줄 몰라했지만 이어지는 기억들은 신선했다. 자전거도 마음대로 탈 수 있었으며, 삼촌과 이모들과 함께한 주말 소풍같은 촛불마당은 늘 새로운 잔치였고, 자극제이자 놀이터였다.

그리고 작은 동네 생협,아파트부녀회, 학교급식소위원회를 중심으로 [먹을거리 공동구매단]이 꾸려졌는데, 매우 행보가 특색이 있었다. 구청, 주민자치센터 단위로 해서 [너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요구가 이어졌다. 그때 2mb정권은 연이은 민영화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악재의 악재를 거듭했다. 물사유화작전은 쇠고기고시와 은근슬쩍 밀어제쳤고, 국면을 타개한다고 하면서 발표한 민영화 발표와 소폭 청와대개각은 더욱 더 촛불을 높이게 만들었다. 절망이 한 95%로 먹구름을 드리울 쯤, 희망의 꼭지를 점점 넓히게 한 것은 오히려 기계사단인 2밀리바이트 예스맨들 덕분은 아닐까 한다. 그들은 마치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았다. 연신 어쩌면 그리 짜고하는 것처럼 악수의 악수를 거듭 두었다. 

기계같은 딴나라당 대구부산권역 시장들은 그 와중에 낙동강운하를 주장하다가 인터넷의 폭탄을 맞았고, 대전시장도 금강운하를 국면타개책으로 주장하다가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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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년, 미니의 십년전 회상 (2) (作)
    from 木筆 2008-06-01 12:59 
    이렇게 행정단위의 경직성은 오히려 무기력함을 보여주었다. 그 와중에도 한미에프티에이 찬성에 쇠고기만 반대하는 기만적인 통합민주당 역시 국면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식의 균열과 공백을 채워준 것은 여전히 자발적인 누리꾼과 그 인식의 폭을 넓혀가며 만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유연한 행보였다. 조금씩 느리지만 세분화된 공극의 채움은 점점 예민해져갔다. 아마 그것 역시 작은 실타래를 푸는 개사곡들이 아니었나 싶다. " 아빠가 출근할 때 기름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