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808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민족주의 - 주어진 것이나 결과로 사고하는 경직성, 그리고 공화주의

1.
[자유주의]는 정작 간섭의 부재[주종이나 예속상태를 없애는 것을 개인에 대한 문제로만 보는]를 이야기 못하고 정의나 평등만 이야기한다. [공동체주의]는 참여가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결정담당자의 공공선의 봉사여부나 역할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민적, 정치적 평등과 도덕적 선에 대해 이야기 할 뿐, 사회-경제-문화적 조건 보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족주의] 역시 자치의 과정에 시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쓸까하는 결과에만 관심이 있다.

2.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민족주의] 모두 주어진 것으로만 사고할 뿐, 또는 결과만 가지고 다룰 뿐, 그것의 바탕이 되는 여러 조건이나 과정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사적이익과 공적이익 역시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존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공공선 역시 자신의이익과 합치하여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3.
일자리도 없이 가난 속에 없이 지내야하는 한 조국은 없다. 자유없이 애국은 불가능하며, 비루투(시민적 덕성)없이 자유가 없고, 시민없이 비루투가 불가능하다.

4.
자유주의 역사와 논의에 대해 2여년에 걸친 세미나와 토론이 있어 왔다. [자유주의]가 지금에 있어 원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그 자체로도 대단히 진보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진보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여긴다. 지식인 사이에도 신념에 가까운 분들이 있는데, 아쉬운 점은 역사적인 시야에 의외로 둔감하지 않은가 한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흐름, 그 논의가 된 발화지점에 대한 고민이나 토론은 없고, 늘 전유하는 결과만을 지금에 대입한다. 그것도 다른 나라의 경험을 지금 여기에 말이다.

5.
진보나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는 만큼, 자유주의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그 황망함에 어이가 없을 것이다. 힘과 자본에 얼마나 애초의 의도와 달리, 지금 신자유주의로만 꽃피게 되었는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강자 독식의 자유만으로 전취되었다고 하면 어떨까? 리버럴만 강조하고 있다면 그 귀에 담을 말만 골라 지금여기에 단발의 타깃으로 대입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자유주의]가 연발의 지형으로 풍부해지지 않으면 당신의 생각은 역시 간섭의 부재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정의와 평등만 연발하는 오류를 낳는다. 그리고 당신의 주장은 시민의 덕성(비루투)를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일자리 없고, 가난할 자유만 강조하는 꼴이 되기 쉽다.

6.
역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를 힐난 하는 당신은 전혀 자유를 모를 수 있다. 어쩌면 더욱 몰 역사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자유주의의 발화점에 대한 고민을 역으로 당신도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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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이 빛나는 밤에/입을 크게 벌리고 자자

 작은 별 몇알 입속엔 별들의 잔치/별들의 꿈을 꾼다   [   1    ] 가운데서
 
   
   
 

 뜨끈뜨끈한  혓바닥으로 네 생의 굴곡을 문질러주마

 한 입 물을 뿜어/ 네 음습한 정신의 똥구멍을 핥아주마  [  2    ] 가운데서 

 
   
   
 

 한가닥 줄을 타고 나는 오른다/허공에 몸 슬쩍 기대가며/ 중심을 돌고 감아/ 멀리 돌아가는 어지럼이/ 내 삶의 여유다   [  3  ] 가운데서

 
   
  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 밥물이 넘쳐 이팝꽃 핍니다  [   4   ] 가운데서
 
   
  한번 딛으며 그 파문이 세상으로 번지는/ 저리도 큰 발자국을 만드는 [  5  ] 가 되고 싶다...... 철모르는 아이들 첨벙대지만 /서서히 탁해지고 좁아드는 세상 / 내발자국이 일그러지랴 /....몸 가볍게 톡톡 피어 오르면 그 뿐      [   5   ] 가운데서
 
   
  저 넝쿨 [ 6 ]는 천개의 혀로 일만의 말을 하는 중이다/목울대를 올라오는 가시돋힌 말들을 몸 휘도록 삼키는 중이다/ 온몸에 꽃범벅 가시 범벅/ 혓바닥이 푸르다  [  6  ] 가운데서  
   
   
  순종과 굴종의 밥그릇을 약처럼 핥으며/ 개같은, 꽃이 피어있다    [   7   ] 가운데서
 
   
  시간은 얼마나 질긴 가죽인가/거리는 얼만큼 큰 뼈다귀인가/  땅의 살맛.../ 물어뜯으리라, 닿는 순간/스쳐지나고 마는 생의 결승점을, 한입에 콱         [  8  ] 가운데서
 
   
  치지직, 식탁위의 도살과 광기는 언제 굽히는가/얼마에 빛나는가/.. 타는 몸, 꿈틀 마음을 뒤집는, 저녁 싯뻘건 숯불       [   9    ]  가운데서  
   
   
  치명의 독은 가장 맑아/독의 이빨에 맺혀 섬짓/떨어지는 말을 봐요   [  10  ] 가운데서  
   

[ 보 기 ]

 

 백미터달리기, 꽂꽂이, 다리미, 장미, 소금쟁이, 별꿈, 입술, 갈비집, 나팔꽃, 꽃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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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8-1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별꿈, 다리미, 나팔꽃, 꽃밥, 소금쟁이, 장미, 꽃꽂이, 백미터달리기, 갈비집, 입술
시적감수성은 없지만 찍어봅니다. ㅎㅎ

여울 2008-08-11 11:43   좋아요 0 | URL
거침없는~~ 감수성!!!! ㅎㅎㅎ. 시인이십니다. 하하
 

내 안의 휴전선 - 이라서, 이기때문에, 이니까의 자기생산.

그래요. 스스로 금을 긋고, 그 밖을 나와 다른 것으로 경계짓는 일들. 그 울타리로 인해 스스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지만, 그 안락함과 편안함은 고스란히 저들을 밀어내거나 뱉거나 해서 생기는 반사이익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쪽의 친숙함이나 친밀함이 경계밖의 소원함이나 불편함의 반사느낌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처럼. 사회의 편안함 총량이 일정하다면 말입니다.(그렇다면 이 불편함들이 다 편안함을 독식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이야기네요.)

오늘도 삶터로 향하며 일용할 휴전선을 긋습니다. 지나치는 노숙자들과 리어카에 잔뜩 박스를 실은 늙은 어르신네들 1), 하청에 하청, 비정규직을 가로지르는 심리적 장벽들. 자주 보고 만나면 익숙해지듯 마음에 낀 때는 이내 불편을 잊어버립니다. 지나치듯 거두어버리는 시선들에 낀 때도 이내 불편을 잊어버립니다. 시간의 켜에 불감은 무감으로 변하고, 세상의 경계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나는 해당사항 없을 것이라 안위합니다. 나만은 나만은 예외라는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냅니다.

그래요. 의식없이 그어버린 선들. 그 선들은 아마 처음은 점선이었을 것입니다. 마음들이 여물지 못해, 그  점선 사이로 아픔이, 안타까움이 들락날락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다보니 핑계가, 안위가, 이라서-이기때문에-이니까의 행렬들이 점점 그 간극을 메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점선이 실선으로 두터워지고 무뎌지고 실선의 장벽이 커져버렸습니다. 실선이란 성안의 나는 저기 성밖의 사람들과 다르다라고 주장하고 싶어지고 싶어지고 말입니다.

그런데, 실선의 장벽이 점점, 그렇게 만든 휴전선이 저쪽으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요? 내안의 휴전선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협착되도록 다가서는 것은 아닌가요? 내 성만이 높고 큰지 알았는데, 좁혀지고 무뎌진 시선은 높아지기만하는 성벽의 밖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알량한 앎으로도, 서푼어치 논쟁한번 하지 않은 이념으로도, 밀리면 끝이라는 정규직으로도, 중산층으로도, 연구원으로도, 여성으로도, 농민으로도,

어떨까요. 실선의 장벽을 서서히 내리고, 또 다른 휴전선이 보일 만큼 시선을 높이면 어떨까요? 내 안의 다른 휴전선들이 보일만큼, 삶의 강팍을 밀어내면 어떨까요? 여유나 아픔을 그 속에 키워보면 어떨까요? 슬픔이 깃들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어떨까요? 그리고 실선의 휴전선들에 구멍 숭숭내어 점선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떨까요? 철조망 걷어버리고, 당신의 아픔과 슬픔이 내왕하고, 정규직의 맹독성을 희석시켜보면 어떨까요? 시대가 산출한다는 평균적인 삶에 물음표를 던져 가고오게 하면 어떨까요?

어떡하죠. 이 사회(야! 한국사회?)는 너무 물밑 연대가 부족하다죠. 마치 강고한 성들을 하나씩 안고 살아서 옆집이 옆사람이 어떻게 아파하는지조차 보이지 않는다죠. 그런데 그렇게 누리고 있는 일상이란 성들의 기초가 바위가 아니라면 어떡하죠? 더 이상 쌓아올릴 것도 없는 마지막이라면 어떡하죠?  끊임없이 내왕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아 쌓아올린 불감의 성, 무감의 성의 기초가 바위가 아니라 바다라면 어떻게 하죠?

정규직의 아성이 결국 제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허물어진다면 어떡하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늘 만나고 섞이고, 강자와 사회적약자가 늘 함께 섞인 바다라면 어떡하죠. 비정규직의 불편함으로 정규직의 편안함이 만들어졌다면 어떡하죠.  당파로 쌓아올린 성이 일상의 바다에 근거없이 올린 것들이라면 어떡하죠.

그래요. 구획짓고, 구분짓고, 나누고, 편가르고 한 일들. 가족이란 바다에 모두 우리 구성원들이죠. 노약자-정규직-비정규직-반정규직-학생-여성-농민-이주노동자---- 여러 색깔 가운데 혹 당신은 한가지만 편애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강한 것에만, 힘들에만 바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시선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나요? 그래요. 저 끝단. 힘도 없고, 빽도 없고, 무지렁이같은 동선. 무심결에 뱉어버린, 발에 툭툭 차이던 깡통같은 것이라고만 하지 맙시다.  휴전선의 경계에서 사격하던 마음을 거두고, 저편이 최소한 동시대를 살아내는 친구로 호명하면 어떨까요? 2) 좀더 힘이 더 있다고 여기면 힘이 없는 편의 시선으로 아파하는 연습을 해보며는 어떨까요? 무감에서 불불불감으로 불불감에서 불감으로... ...

저기 파리처럼보이는 것에서 마음도 눈길도, 아픔도, 슬픔도 섞어 사람같아 보이는 것. 사람이란 존재로 들어오게 하면 어떨까요? 결국 별난 족속있겠어요. 섞이고 아파하지 않으면 슬퍼하지 않으면 휴전선 밖으로 밀려난 것들이 모여 고스란히 우리에게 쓰나미로 몰려오는 것들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휴전선도 만들 수 없는 우리는 수생, 아니 해상생물?인가요? 저기 탑만 올리는 자본의 육상생물 말고?? 어쩌면 우리는 애초에 내 안의 휴전선을 칠만큼 굳센인간들이 아닌지도 몰라요.(굳세다구요. 할 수 있다구요. 그럼 자본에 투항하시든지, 저기 육지로 백기들고....어서...!!). 철망을 거두세요. 거둡시다. 거둘 수 있어요. 아파한다면... ...








뱀발.

아~ 참!! 참터가 여러분들에게 혹시 실선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니겠죠. (허걱~ 휴전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구요. ㅁ. 설마~) 설령 그러시더라도, 호의와 호감 다시 충전해주시구요. 이왕이면 닫힌 실선...조금씩 점선으로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그 점선 사이로 참터의 아픔이나 기쁨이나 열정들이 들낙거리면 좋을텐데. 하하. 입추가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열린 점선 참터와 친하게 사귀어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동선, 몸의 동선이 점선안팎으로 왔다갔다할 것이라고 기대해봅니다. 몸 건강하시구요.


1)

 '저울눈금을 확인한 고물상 주인이 ㎏당 50원 하는 폐지를 부리다 리어카 밑바닥에서 젖은 라면상자 두 개를 발견하고는 이런 일이 벌써 한두 차례 아니라며 남은 이보다 빠지고 없는 이가 더 많은 노인을 다그치자 재생이 가능한 폐지를 주워온 노인네는 요 며칠 궂은 날씨를 탓하여 본다.//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고물상에서는 눈물이 젖어도 폐지가 젖어서는 안 된다.' (박영희, 고물상을 지나다)

2)

겨자씨만한 것.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불씨와 같은 것.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면 중심이 되는 것.
최후의 보루 같은 것. ( 박영희,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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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접습니다
    from 木筆 2010-01-09 13:05 
    1) 김종호씨의 거취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2)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공식 입장 표명 이였습니다. 그리고 곁가지 문제는 3) '알라디너들 사이의 싸움' 이었습니다 - 드팀전/바람구두...외 제가 제일 관심있는 문제는 3)'알라디너 간 민주주의'입니다. 블로거들 사이의 문제- 블로거 인문의 문제, 관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2), 1)의 문제가 우선인 것 같아  미루고 서재를 접습니다. 신밧드님의 마음
 
 
밀밭 2008-08-1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안의 휴전선...철망을 거둬내면 '사람'이 제대로 보이겠죠? 저도 시작해보겠습니다.

여울 2008-08-12 11:10   좋아요 0 | URL
철망앞에서 노래 덧붙입니다. 즐감하세 ㅁ.

밀밭 2008-08-13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악 고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도 둘이나 되네요.^^
 

080806  운전으로 피곤했는지, 잠깐 쪽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저녁 7시다. 아마 한풀 꺾이겠지, 이렇게 더위도 제풀에 사그러드는 것을. 복장과 물한병을 챙겨 자전거로 나선다. 습기가 약간 묻은 바람결과 느티나무 잎새 소리결을 가른다. 밤으로 달려가는 하늘은 점점 짙어지고 걸려있는 달은 점점 밝아온다. 마음 고리 하나 던져 달에 동동 매달리고 싶은 유혹이다. 잔차 7k, 달림 5k 29' 더하니 70' 어제 달림여독이 있는지 마음먹은 것보단 못했다. 습한 더위에 달리고 나니 땀이 오랫만에 흥건하다.



080805 산책하거나 오수를 즐길 즈음. 한번 달리고 싶은 고원의 시원한 바람결과 깊어지는 그늘맛을 본다. 볕과 그늘이 수직선처럼 선명하고 달고 쓰다. 막다른 고랭지 샛길이 나올때까지 오고간다. 그늘도 짙고 바람도 짙어진다. 그나마 이곳에서 달리고 싶은 묵은 달림욕은 해갈이 된 듯하다.  13k  70'

아침 바람이 산산한 맛이 있다. 여름도 막바지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입추다. 시원한 가을을 준비하시길... ... 유쾌-상쾌-상쾌의 그물이 그래도 이 쓰딘 국면은 이겨내지 싶다. 서로 나누고 저금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손내밀고 보듬고, 덧셈을 지향하시길. 늘 잔향은 여유있고 풍족하게.  행동의 선은 선명하여야겠지만, 마음의 호흡은 크고 편안하게.....ㅎㅎ.  1500고지의 야생화 몇 쪽 훔쳐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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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론- 동양고전산책- 서양고전읽기



책읽기가 얕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인문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책속엔 책이 없다. 인문학 교수들에겐 인문을 찾아볼 수 없다. 재야의 그늘에서만 통찰과 고전읽는 방법에 대해서 듣게 된다.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바닥의 책읽기에 대해서 말이다.세상엔 공짜가 없다. 아마 책읽기도 그러할 것이다. 다이제스트도 없고, 요약도 없다. 시간의 함수에 바래고 잊어지고 희미해져 골간마저 건져내기 힘들다. 어쩌면 공짜심보가 그렇게 마음 속에 딴 사람처럼 들어앉아 들어가는 족족 제것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결국 제것이 된 것은 별반 없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그물망도 바래고 툭툭 끊어지기만 해서 별볼일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의 시선으로 저기를 재단하는 습관들. 숱한 논문들. 결국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없이 거짓처럼 거품처럼 부화한 지식들만 부랑하는 지금. 삶도 없고, 함도 없고, 풍선처럼 바람만 잔뜩 든, 현실에 실뿌리하나 내리지 못하는 앎들만 왕왕거리는 지금.

부끄럽고, 답답하고, 마음나눌 곳 없이 흔들거린다. 지난 토욜. 조금씩 읽기 시작한 김영민샘 동무론을 마저 본다. 앞저트로 대나무와 매화의 그림들을 훑다. 커피 한잔 놓고 마주한다. 자아라는 것, 주체라는 것, 인간이라는 것들의 학문 근간이 흔들린다. 머리가 끄덕여지고, 아쉬움. 학문의 자기생산이란 것이 결코 혼자 설 수 없는 자아나 주체나 인간을, 혼자로 놓고 사고한 산물이란 것. 그리고 친구처럼 인문하는 앞선 학자를 불러내세우는 능력에 숙연해진다.

동무는 무엇일까? 서늘함. 욕심없는 의욕. 생각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늘 중동나는 모임의 시공간. 호의와 호감, 고백과 소문에서 별반 진전이 없는 생각시공간들. 모임시공간들

들어가고 나오길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눈물이 비치고, 설움도 함께 울컥한다. 손수건으로 매듭한다. 어디 혼자 엉엉 울고 싶기도 하다. 여러 느낌이 교차한다. 답답함과 시원함. 인문학자들이 이렇게 마음 결 속에 단단히 숨쉬고 있음이 기쁘기도 하다.

뱀발.  밤, 일년 외국으로 다녀올 동네지인의 환송 겸 모임이다. 이래저래 생각이 깊어진다. 태생이 서늘하여 별반 호의나 호감을 온전하게 내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사실 그럴 생각조차 없다. 만나고 약속하고 또 만나고 삶에 대해 수직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얇게 수평만으로 흐르는 것, 기분을 의탁하고, 품고 깊어지는 것 없이 일상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동무의 접선으로 소내하기가 무척 버겁다. 접점이 생기지 조차 않고, 얕은 소문-호의-호감의 덫에 걸려 다른 것을 상상해내고 둘이 품어낼 것 조차 없다. 시도하지도 않는다. 고민은 나로 함몰하고 나-너의 씨앗으로 품어지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일상으로 유랑만 할 뿐이기 때문인가? 아무튼 좀더 깊이 품어보기로 한다. 제법 개념이 어렵다. 단지 앎을 얻고자 한다면, 난해하여 얻은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삶을 한가운데 놓고 생각길을 따라가본다면, 함께 산책을 하다보면 이것저것 수확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렇게 대면할 수 있음이 행운인 것 같다. 

 

꼬리들.

   
 

(말이 필요없는)친구와 (말이 통하지 않는)연인이라면 낯선 타자성의 관계 속에 길을 내는 일(동무)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는체하기'가 아니라 '알면서 모르는 체하기', 무관심한 관심, 차림새가 없는 차림새, 수동적 긴장

사치의 부재가 아니라 부재의 사치, 비움과 나눔으로의 사치, 산책-부사적 사귐의 공간, 체계와 생산적으로 불화하려는 자들. 초인이 아니라 동무. 인문의 목자

부정적-부재적-부사적 연대의 사이길. - 공사의 사이, 가족인간과 회사인간의 사이, 애착과 기능주의의 사이, 애인과 타인의 사이, 좌우의 사이, 형이상학과 니힐리즘의 사이, 기계적 체계와 원자적 개인의 사이.

일상 - 회색 톤의 단조, 벡터가 없는 모노로그의 퇴행, 벡터가 없는 지식, 자기애 나르시즘. 모든 것을 아는체하고 젖먹이처럼 보챈다.

 
   

[ㅁ 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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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8-07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랑한 것만 먹다보면 장운동이 퇴보됩니다.
가끔 딱딱한 것, 쓰거나 매콤한 것도 먹어줘야 혀도 좋고 장도 좋고 몸도 균형을 이루지
않을까 해요. 인문학, 골 아픈 걸 거부하는 소비패턴지향주의에 흠뻑 젖은 현대인들에겐
바위 덩어리 만큼이나 부담가는 책일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지금도 만만한 콩떡이 되지 않지만(영원히!)시간과 정신을 투자한만큼 인식의 지평은 확실히 달라집디다.

여울 2008-08-07 18:03   좋아요 0 | URL
흠뻑 젖은 현대인...여기요!! ... ...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들어오네요. .... 여우님 말씀에 백십프로 공감합니다.

밀밭 2008-08-0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란여우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저도 읽고 싶은 책들인데 혹시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을까요?
슬픔, 아픔, 울음, 삶, 앎, 마음, 배고픔, 열매, 장미(?) 매미(?) 'ㅁ'의 변주 몇 점?

여울 2008-08-07 18:25   좋아요 0 | URL
80점이군요. 마지막 둘. 지구를 [ㅇ]으로 보면 어떨까요! ㅎㅎ. 아~ 장미도 보이는군요. ㅎㅎ

밀밭 2008-08-07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하나 더요. 소음 또는 음미? 아님 말고요...ㅎㅎ 사소한 것에 목숨거는 형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