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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9-1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찝쩍행동이 더 크게 보이는 이유는? ㅎㅎ 여울마당님 낙서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여울 2008-09-16 09:5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온순하고 온화한 낙서임다. 낙서는 여럿이 해야 재미있는데...ㅎㅎ
 



 가을,

 긴의자에 누워 별을 보면

 별은 더욱 깊어지며 또렷해져,

 바람에 찰랑이는 나뭇잎에 부딪치고,

 가끔 이슬처럼 나뭇잎은 별을 글썽이다. 떨어뜨린다. 낙숫물 소리내며

 그렇게 하늘로 떨어진 별빛은 동심원을 그리며 저 가장자리 반달무리쯤에 가서 소멸된다.

뱀발.

1. 퇴근길 , 데모를 하는지 천변은 날파리와 툭툭 헤딩하는 벌레들로 만원이다. 몸이 근질근질할 때까지 쉬어주고 싶다. 늦은 저녁에 과하다싶고, 이것저것 간단한 집안일을 챙기고 집을 나선다. 별빛은 곱고, 의자는 그윽하고 의자에 깊이 눕다. 별은 점점 밝아오고, 친구에 친구를 불러오고...점점 웅성웅성할쯤 느티나무잎들이 눈에 들어온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시선은 늘 평면이 아닌데, 평면에 놓아진 느티나무와 별이 잘 어울린다 싶다.  퇴근출근 자전거 16k.

2. 앞뒤로 번갈아가며 좁혀읽다. 읽다나니 김지하씨가 이 말[기우뚱한 균형]을 저자의 허락없이 몇년간 썼던 모양이다. 이것이 한편 괘씸했다고 하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 김지하씨는 한 칼럼에서 저자에게서 얻어와 쓴다고 밝혔단다. 포월,소내도 같이 말이다. 읽다나니 며칠전 올린 이*선샘과 뒤풀이때 한 생각의 고민이 고스란히 있다. 머쓱하다. 그리고 우석훈님과 박노자님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보았으면 좋겠다. 좋은 논쟁점들을 제공한다.(아래책과 박노자님의 촛불단상에 대한 다른 견해를 참조하고 싶다면)

 2.1 조중동아웃보다 조중동을 계속보면 아이들에게 몇년뒤 대화도 어렵고, 시선이 편중되었다고, 어쩌면 꼴통소리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곁들여서 보지 않으면 계속 집안분위기 험해집니다. 논술도 집안분위기도 좋아지려면 다른신문도 관점도 섞어보세요. 따 당하지 않는 집분위기가 더 좋잖아요라구요...슬로건을 바꿔보면 어떨까?...산문서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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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9-12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별이 동그란 바람떡으로 보이네요. 나뭇잎 따서 싸먹으면 좋겠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역시 난? ㅋㅋ 명절 잘 보내세요.

여울 2008-09-16 09:55   좋아요 0 | URL
바람떡!!...송편 많이 드셨나요? ㅎㅎ. 몹시 떡 생각이 간절하셨던 것은 아닌지. 하하. 덕분에 명절 막히지 않고 잘 보냈습니다. ㅎㅎ
 


1.

언어가 다르다면, 소통이 다르다면, 계급이나 계층의 말과 표현이 다르다면1), 모든 언어가 가진자의 언어와 시녀의 언어로 포획되어 있다면

2.

소통의 출구. (정보-통지-이해) 2), 이해가 되지 않는 한 소통은 없다. 다른 삶, 다른 언어, 다른 소통의 경로가 있다면, 고급언어로 희화화된 말만이 난무하고, 그들의, 우리의 삶의 언어와 한번도 섞이지 않는 현실.(소통이 된 적이 없다고 보여줄 수 있는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그 문법이 아래까지 스며들 수 없다고 이 역시 증명할 수 있는가? 소통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그 가운데

3.

날 것의 말과 언어를 사문화된 지식의 언어로 두드리고 때려 비명만 전쟁소식처럼 전달될 뿐, 소통은 되지 않는다. 쪽방의 삶, 비정규직의 삶(얼마나 더 돈을 선망하고, 더 자신의 존재가 싫고 하찮고.....표현하는 정보 소통의 채널하나 없는 상황에,  운동-활동단체가 대변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거꾸로 되먹임되지 않는 현실. 운동이 아니라 외침이나 성명에 그치고 마는 현실은 아닌가?), 아내폭력...소수자. 그 날것의 세계를 지금의 세계와 접목시키거나 드러나게 하거나 전염되게 하는 문제는 순화된 언어로 관조하는 활동으로, 지켜보고 대변하는 시선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노숙자의 삶이 현실의 왜곡, 문제점을 찢고 새로운 언어와 논리로 현실을 가를 수 있다는 점은 설문이나 취조나 연구로서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 늘 연구하고 취조하고,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호흡과 그들만의 비틀기가 자극되고 삶이 발효되어 바뀌어질 수 있다면... ...

4.

조폭의 세계 역시 폭력의 일상만 잇는 것이 아니라 거친 언어와 순치되지 않은 날 것의 시선이 잠들어 있기 마련. 먹고싸고누고생각하는 일상, 자본의 결을 저미는 삶과 언어가 있기마련. 그 대면의 접촉면이 표현의 창끝이 교도소로 향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열에 아홉은 다른 결, 다른 언어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 드러날 수는 없는 것인지?

5.

반정규직, 비정규직. 늘 원망하고 벗어나고 싶은 일상. 도대체 생각하고 싶지 않는 현실의 존재감. 늘 존재를 타넘는 일상. 생각조차하기 싫은 현실들. 그 연대의 고리는 어디서, 어떻게 자랄 수 있는 것일까?

6.

과정이 패턴이 각인된다면, 흐름의 힘들을 서로 기억하고 박자를 맞출 수 있다면, 그 흐름의 언어들이 세상의 구할을 넘나들고 넘실거리게 하는 현실이라면, 단 일할의 순화된, 사문화된 언어가, 이 흐름의 언어들을 거세하고 마취하고 있다면, 마취의 언어로 온통 미디어를 도배하고 있다면, 세상의 구할의 움직임을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서로 만나고 있지 못하다면.

7.

다른 언어, 세상의 쓴 맛은 언어를 만들고, 그 언어도 상식의 호흡으로 방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늘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9회말 역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3)

8.

2030 자본주의에 평균적으로 감염된 서울 4년제 대학 및 졸업자 정상 남성의 삶언어로 세팅된 사회에 다른 삶의언어가 자랄 곳이 없다. 그러니 소통이란 것이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식민지처럼 의식은 감염된 언어를 늘 구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소수자.이주노동자.장애인. 다른 삶의 언어는 지금의 언어에 이식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언어로 재단하고 바라보고 처분하고 폐기하고 대변한다고 한다. 삶언어를 만드는 일. 삶언어의 소통고리를 만드는 일. 상식의 호흡으로 아픔이 전달되는 사회. 통역이 필요한 사회. 삶언어가 통역되는 사회. 통역관이 필요한 사회. 다른 삶이 상식의 호흡으로 통역되고 전달되는 세상. 감염된 언어의 결을 뚫고 다른 삶의 언어가 쟁쟁이 울리는 사회. 자본주의에 평균적으로 사육된 2030 남성의 사고언어가 아니라.( 아무런 삶도 없는 고시패스한 친구들이 깨닫는 것 하나 없고 아는 것 허투루 써서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삶이없는 해석과 지시는 무덤같다. 세상에 유리상자를 씌우는 일말고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1) 부르디외

2) 니클라스루만이 말하는 소통의 3요소 

 3) 로쟈: 개혁과 혁명의 차이

 

 

 

뱀발.

어제 일터일로 서울 출장이다. 버스안에서 책을 펼쳐보다, 각주)로 모임에서 사람들 생각에서 얻은 것을 단 것을 보았다. 내식인 줄 알았더니 벌써 2004년의 그의 일이다. 심취하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일터 일로 이야기나누고 나누고 술 한잔하며 나누다가 배여있는 욕심들을 몇시간이 지난 뒤에 발견한다.  버스로 내려오는 길. 이 생각이 스친다. 그러다 집에 잠이 든 새벽, 생각이 되새김 되어진다. 그런데 아침 생각하려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남기고 싶은데 기억할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되새김된다. 그나마 짬짬이 흔적을 남기는 워드패드가 살려낸다. 여물지 못한 생각꼬리들 그냥 둔다. 하나하나 이어나갈 용기가 나지 않고 두렵다. 주)를 다니 더 그렇다.  자전거 출근 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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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160쪽

- 학대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어요. 신체적 학대, 즉 폭력이 대표적이고. 성적 학대, 감정적 학대. 그리고....방치.... 방치가 있죠. 말하자면 배고플 때 밥을 안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할 때 갈아주지 않고, 안아주어야 할 때 전혀 신체적 접촉을 해주지 않는.....그리고 감정적인 학대.....말하자면 싸늘하게 대하는 거, 사랑을 주지 않는 거.....다  학대예요.... 170쪽

-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크로포트킨

-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248쪽

 뱀발. 

아침 햇살이 따갑다.  어제 10시가 채 되지 않아 잠을 청하였는데, 일어난 것이 8시다. 일터에 잠깐 들러 동료와 자전거로 퇴근하고, 오늘 아침 뻐꾸기로 천변 마*톤을 참여하려고 일찍 청한 잠이 외려 깊어졌다. 달림을 많이 빼먹어 절반을 가지도 않았는데 힘이 들어, 중동을 내어 징검다리를 건너 건너편으로 걷다 달리다를 반복한다. 유니와 목욕탕을 다녀오고, 허기를 채우고 오수를 잠깐 청하고 한켠에 있던 이 책을 접어든다. 마음을 헤집고 들어와 보다, 마지막 30여쪽 식상해지는 피로감으로 말미 작가의 후기를 보고 접다. 접힌 꼭지를 남긴다.

080906 잔차 8k 080907 잔차 8k, 달림-걷기 16k.  이 모든 것이 책의 그물보에 걸린다. 그물보 안이 밤송이처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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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몰라, 난 몰라, 그대로 있게 내버려 두란 말이야.
    from 木筆 2009-08-19 16:41 
          - 아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는 거는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것보다 더 나빠. 중요한 건 깨닫는 거야.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가 있다면 깨닫기 위해 아픔이 필요하다는 거야. 160쪽 &
 
 
ㅠ.ㅠ 2008-09-0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밤송이같은 얘기만 남기셨군요. 책내용을 잠시 훑어보다 어느 한 대목에서 숨이 멎는줄 알았습니다. 감정의 사치를 누리고 있던 일요일 끝자락을 잔인하게 뭉개놓으셨어요. 참 나.빠.요.

여울 2008-09-09 11:10   좋아요 0 | URL
미안쿤요. 저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

2008-09-10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쓸데없는 생각꼬리들

1. 성명서를 다르게 쓰고, 지금과 다르게 하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념의 굳은살을 넘어서는 일들은 무엇일까? 문화의 힘이란 무엇일까? 단단하게 굳은 근육들을 풀어 유연성을 발휘하게 하려면? 어떻게 타고 넘으면 재미있을까? 부담도 느끼지 않고 아닌 듯, 그런 듯 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문화라는 속살은 어떤 것일까? 혹 문화에는 끓는 점이 없는 것일까? 우회하는 듯하지만 우회하지 않으면서 차곡차곡 온도를 높이는 것도 문화의 뜨거운 속성은 아닐까? 단단하게 굳은 굳은 살과 경직된 근육에 유연성을 회복하는 일들, 유연성 경쟁이라도 벌일 수는 없는 것일까? 문화의 힘이 유유히 이념의 얼음판을 녹이고 보듬을 수 있을까?

2. 문화의 힘이 그러하다면 예술의 힘은 어떠한 것일까? 그것도 바람처럼, 안개처럼 부유하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의 막힌 퇴로를 뚫어주면서 그것도 채곡채곡 온도를 높여주는 것일까? 섬처럼 일상의 동선에 겉도는 것이 아니라 모임의 결 사이로 스며들거나 배이는 것은 아닐까? 아니 배여야 되는 것은 아닐까? 뜨겁게 데워지거나 펄펄 끓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3. 문화의 막힌퇴로와 예술의 켜로 재워지는 일상은 깊은 맛이 우러날까? 그 맛이 듬뿍 배인 이념의 굳은 살은 유연해질까? 단단하게 담처럼 뭉친 이념의 경직성은 유연성을 회복해, 오히려 외피가 문화의 혼과 예술의 말을 닮을 수 있을까? 080905  오전

세미나 뒤풀이 가운데



4. 샘이 건넨다. 제도권 안이 있고 그 현실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경직성을 비껴나는 것들은 없을까?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나 있을까? 제도곁이나 제도밖의 사고, 상상력에 멈춰섰던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중학교,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현실. 그 순간에 멈춰서보자. 제도의 틀에 정지하고, 그 순간에서 그 상황을 여러 겹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제도가 추구하는 것 같는 것 달라지는 것.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엄밀히 살펴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 겹들을 물을 발라 더 겹겹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제도안에 대해 고민을 공유하거나 현실을 주부들의 입장에서 나눠본 적이 있는가? 설명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가? 이*선 샘의 발제에 이어 문제의식이 깊이 다가선다.   080905 저녁 축시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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