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의 분열증, 우울, 막막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F4든 신파든 지금의 우울함을 기댈 곳이 없어 이중적 해소를 하는 것. 분열증이 고착화될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닌가? 좌절감-열패감의 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기력함과 더불어 극단적 근육과 살의 만남. 그것에 대한 일회적 해소의 습관화는 아닐까?

2. 보수, 수구만 무능력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똑같이 무능력하다. IMF란 기회가 있었으나 우리는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고, 앞으로 지자체와 국회의원선거로 이어지는 국면은 여전히 대동단결론의 빠질 확율이 크다.

3. 집단무의식은 부족사회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의 맥락과 더불어 집단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면, 식민지 근대화 100년의 식민지성은 뿌리깊게 우리사이를 흐르고 있을지 모른다. 혼자만으로만 아득바득하거나, 남들이 어떠하든 푸고 마시고 즐기고 하는 습속이나 태반의 무관심이 일상화되는 일들이 그 증상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닌 것일까?

4. 지난 20년, 50년의 열망과 절망은 누구든지 알고 있다. 집단지성의 화려함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성찰과 집단반성은 도대체 하려고도 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불구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만들었던 상황에 대해, 빠졌던 도그마를 벗어나려는 시도. 우리의 반복되는 집단무기력(혼자 세상을 거머쥐려는 것이 아니라)에 대해 동전의 양면처럼 진지해져야 한다. 불과 6개월을 주기로 반복되는 조-울에 대해 나눠야 한다.

5. 제대로 된 반성과 공감이 없다면 더 이상 준거집단으로 가능성도, 활동의 운동의 주체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지 모른다. 더 이상 새로운 지평을 함께 고민하려고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운동과 활동에 있어 자기고백이 따르는 반성과 공감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정치가 권력을 얻어내거나 차지해서 제도를 바꿔내는 것이라면, 운동과 활동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평과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면서 생산해내는 것은 아닐까? 그런면에서 정치와 활동은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며 경제와 개인으로 귀결하는 종교와도 다른 것일 것이다.

6. 우리들의 삶.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경계에 대해, 지평에 대해 나눌 시간이 많지 않다. 도덕으로 활동이나 운동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윤리와 사유, 삶의 공간을 삶과 행위, 고민의 울타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또 다른 몫은 아닐까?

7. 상황이 만들어내는 간극은 여전히 저기-여기사이를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 서로 딱딱하기만한 우리가 서로 기댈 수 있을까?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우리의 태도, 문화, 주체의 영역은 넓어지고 유연해질 수 있을까? 저 멀리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까운 여기서, 기대고 고민의 경계를 섞는다면, 아주 작지만 서로 만들 수 있다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막힌 것을 아주 작지만 뿌듯하게 푸는 것은 아닐까? 위기라는 말은 옘비도 쓰지만 현재의 시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기회는 아닐까? 신파에 젖지 않는다면 서로에 기댈 수 있다면... 생각시공간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 마음으로 공유할 기회에 조금 여유를 내어준다면... ...
 

뱀발.  

1. 참* 총회에 ㅅ대표님이 작은강연을 해주셨다. 그 메모를(의견이 가필된 곳이 있다.) 거칠게 남겨본다.(곡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다.) 뒤풀이자리에서 전적인 공감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현재의 역할이 너무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 줄기에 대해서 논제가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상황과 속도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위험하고 어렵다. 어쩌면 우리도 늘 그 속도에 휩쓸려가기에 늘 그 모양이거나 그 나물에 그밥은 아니었던가. 표면만 분칠한 얼굴만 살짝 반성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숙한 치부에 대해 울림이 커지지 않으면, 또 역시 불과 일년이 지나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거나, 주체라고 주장하는 그룹이 사분오열되어 소멸될지도 모를 일이다. 절박함의 깊이와 넓이, 그 많지 않은 기회. 렌즈를 들이대고 느린 동작의 분석, 그토록 많은 빠름을 지나친 습속을 보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삶이 안주거리가 된다면, 고민에 삶을 가져와 섞을 수 있다면, 각개격파의 개인 이념만이 아니라 다른 우수마발을 가져와 녹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운명은 아주 작은 미소를 지을지 모르겠다. 운명은 늘 노력하고 고민한 자들에게 확율이 높다는 마키아밸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우리는 바닥까지 열심히 함께 고민이라도 해본 적이 있던가? 나 역시... ... 하지만 언제든지 너의 고민을 받거나 빨려들어가 태도는 되어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너-나의 고민...

2. 제목이 오해를 살 것 같다. 집단공감이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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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28 산책삼아 미술관을 들르다. 이응로미술관은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고, 시립미술관에서 무료로 대전미술대전이 열리고 있다. 기대하지 않고 보다가 그래도 맘에 드는 작품들 흔적을 남겨본다. 고암 대나무를 보는 분들이 그냥 대나무라고 하여 때아닌 설명을 해드렸다. 그제서야  아하 그렇구나라구 한다. 산수화 몇점도 괜찮아 흔적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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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01 봄날, 맑고 쾌적하여 산책에 나선다. 며칠 간의 무리 덕분에 편안한 산보로 갈음한다. 샛길. 산길 조용히 음미하며 걷는데, 영춘화 생각이 난다. 벌써 때가 지났을 터인데 말이다. 새순이 곱고, 생강나무는 벌써 말을 걸고 있는 것이 다르다 싶다. 걸음을 옮겨 가다보니 봄맞이 꽃도 화사하고, 만개해 있는 영춘화는 따사로운 벽을 노랑으로 한가득 메우고 있다.(그림)  가족들을 불러 화사한 노랑을 열람시키지만, 다른 화사함에 관심들이 잔뜩 있는 듯. 야생화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 법이라구 봄맞이꽃에게 말을 걸어본다. 아이들은 늘 봄이어서 시큰둥할터이지만... 



어제오늘 걸리는 생각들이 있다. 조금 확대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주말이 더 바빠진 객을 보는 가족들에게 주말의 헤어짐이 어색하다. 심리적 문턱이 생기고 낮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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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을 맞는 꽃
    from 木筆 2009-03-03 13:39 
    지난 일요일 꽃이 궁금하여 갔더니 만개를 하였다. 햇수로 네해, 다섯해쯤 되는 모양이다. 이름도 헛갈렸는데, 봄을 맞는 꽃 영춘화 꽃그늘 아래는 야생화 봄맞이꽃이 함께 피었다. 붉은 자주색 꽃순사이로 번지는 노랑이 곱다. 지난 길 열차편에 흔적이 아쉬워 다시 남긴다. 벽에 길게 드리운 꽃가지가 예쁜데, 아직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 같다. 화학연구원정문과 엘지연구원 사이 담장이다.
 
 
 


[워낭소리]를 본다. 말미 피곤함이나 취기로 머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마음을 준비하세요"란 말이 마음 속을 파고 든다.

마음.마음.마음

참* 총회가 지났다. 우린 마음이란 것이 내가 소유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란 것이 내마음 속에 중앙집중으로 자리잡게하거나 오도가도 못하게 꽁꽁 얼려둔 것은 아닐까? 내마음은 나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늘 모임이란 것을 규정하고, 바라보는 시각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 그 3차원적 시각. 원근법적 선입견은 없는 것일까? 마음이라는 것이 나의 사유재산이므로 남들은 모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혼자는 똑똑한데, 여전히 우리는 유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라는 것이 고체일까? 액체일까? 마음은 사유재산이 아니라 이미 말하기 이전 서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유라고 집착하는 것때문에 늘 아는 것보다 조금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의 사유의 장벽을 걷어내면 조금은 흐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기울기를 두며 서서히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모임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그리고 이념도 활동도 부문에 대한 선입견과 3차원적 시각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한점 주거나, 모임의 온도도 조금도 올릴 수 없는 박제화된 시각은 아닐까?

모임.모임.모임

마음을 나눈다. 네 마음에도 뿌리를 두어 심는다. 모임을 관조하는 선입견을 거두고, 나의 울타리를 넘어선 마음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달팽이가 이슬도 풀잎도 온몸으로 느끼듯 서서히 시선을 낮추고 기면서 바닥에 업드려 세상을 온전히 느낀다. 위에서 내려보지 않고 아래에서 쳐다보지 않고 몸으로 끈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둔다. 이슬도 풀잎도, 꽃잎도, 수술도 암술도 향도. 그리고 그 마음을 나눈다. 이슬에 묻히고, 풀잎에 묻히고, 꽃잎에 묻힌다. 그렇게 마음의 잔뿌리를 내린다. 마음이 가고, 마음들이 섞이고, 마음들이 발효하고 마음들이 타넘고, 가슴이 가고, 몸이 모임을 끌며 간다.

마음의 분권이 존재하는가? 연애를 하면 마음이 늘 거기에 매여있다. 몸과 가슴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늘 그 주위를 배회한다.  모임에 온도가 있을까? 모임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마음을 온전히 준 적이 있는가? 가슴만 뜨거워 쉬이 달아오르고 식지는 않았는가? 저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떻게 마음나눌 길 몰라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임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 미력을 보태고 있는가? 아주 작은 고민이라도 섞고 있는가? 마음길이 섞이지 못해, 불타는 열정만, 나의 이념을 섞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가? 여전히 모임이 생물이 아니라 도구적이고 기능적, 명예의 도구로 마음 한구석에 그림자처럼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잠시라도 눈길주지 않으면 바람에 흔들리지나 않을까?하는 염려는 없는 것일까?
 




마음과 모임을 뜯어본 적이 있다. 장난삼아 나눠보았다. [ㅁ ㅏ ㅇ ㅡ ㅁ ]을 3차원 공간에 세워두면 마음과 모임이 같다. 다르지 않다. 그 사이를 뛰어다닐 수 있었다. [ㅁ]을 타넘기도 하고 [ㅏ]를 보듬기도 하고,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나-너가 바라보는 시선. 먹은 마음. 그것이 어떤 곳을 바라보고 향하든 상관은 없는 것은 아닐까? 그 바라보는 시선. 느낌. 하고싶은 것들을 울타리에 터두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마음을 놓고 풀어버리고 내 소유, 내 감당의 몫이 아니라 서로 마음들끼리 섞이고 녹이고 , 썪히고, 고약한 냄새가 나더라도 그대로 두어 거름으로 쓰이고, 괜찮은 마음들은 충분히 삭혀 홍탁처럼 맛을 내보기도 하고..... 너의 마음의 바벨탑처럼 쌓인 그 마음 한점을 이 공간이 툭 던져놓으면 어떨까 싶다. 맑은 호수 위에 마음 볍씨 하나. 토옥~

내 마음 한점도 기댈 곳을 찾는다. 나-너의 마음 한점도 기댈 곳을 찾는다. 혼자마음들은 너무 외롭다. 혼자마음은 온전히 설 수 없다. 그래서 기댄다.

[워낭소리]가 떠나 보내고 접는 마음이라면, 이렇게 모임을 위해 마음을 시작하는 초입으로 들어섰으면 좋겠다. "마음을 준비하세요" 아프고 쓰린 마음들이 새롭게 시작하고 출발하는 마음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행동도 표현도 욕망도 속일 수 있지만 마음은 속일 수 없다. 그 애틋한 마음은 흐른다고 여긴다. 절박한 마음도 그런 장벽일랑 다 거둘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모인다고 여긴다. 모임을 따듯하게 하는  그 한점의 온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나의 사유의 울타리를 넘었으므로 너로 향하는 그리움으로 피었으므로, 나를 너를 그토록 조종했던 이념의 강박, 당위의 집중에서 풀려났으므로, 그 마음은 스스로 꽃피울 수 있으므로...너의 마음으로 내가 행복해질 수 있으므로 나눠서 함께 기쁠 수 있으므로.... 

뱀발. 

전주, 이번주 중량감있는 모임으로 부산하다. 뒤풀이 자리, 환송을 핑계로 나눴던 마음들이 섞인다. 기억이 아른거릴 정도이지만 ,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성찰이나 집단반성...집단공감의 실타래가 풀릴 듯한 기미가 느껴지는 모임자리였다. 새벽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고 나눌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온기에 눈물이 받쳐올라왔다. 어젠 아*** 총회준비위. 따듯한 온기. 고민의 결이 깊어져 내내 따듯하고 마음이 놓인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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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9-03-0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가수 최백호가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고 노랠 불렀다지요.=3=3=3

여울 2009-03-02 17:39   좋아요 0 | URL
잃은 마음 찾고 싶어요. 얄밉네요...ㅁ. ㅎㅎ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천천히/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라/목련꽃 그림자가 한번쯤 내 얼굴을 더듬을 때/목련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봄 내내 나는 목련꽃을 쓸 수도/말할 수도 없이/그저 꽃 다음에 올 것들에 대해/막막히 생각해보는데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어디로 가고/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검게 져내리는가 

 

뱀발. 1. 어제 난을 보러가잔 말에 솔깃하여 가보니, 인동초가 한겨울을 견뎌냈고, 한두촉 가져오자는 소리인줄 알았더니  가져온 것이 열촉이 넘는다. 후회도 되고 잔생각이 난다. 더구나 옮겨온 난뿌리 통증도 걱정되고 새로 견뎌낼 생각에 몸이 편치 않다. 바람이 심히 불고 나들이하기에는 추운 날이지만 화분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니다가 목포역 앞 찜해둔 곳에 손수가서 란 집을 여러채 구해오다.  퇴근길  일손이 없어 난을 캐러다니는 분들이 많다는 소리도 같이 들린다.  090225 란석을 사서  옮겨온 란을 5채에 모셔두다. 그래도 볼만하다.

2. 아침. 산책을 나선다. 은비단결처럼 잔잔하고 서서히 비치는 햇살의 여운은 옅붉어온다. 4k  잠시 시 한편을 다시 읽고 남긴다. 목련꽃은 어디로 가고 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 검게 져내리는가? 목련꽃은 어디로 가고...마음에 남긴다. 화사한 꽃은 마음에 남기고...벌써 그 봄이 왔다. 

3. 선물준 *영님 감사. 선물 챙겨준 *돈님 감사. 목련에 기대어를 읽어준 서시인님도 감사. 그러고보니 환송회 자리였네. 벌써 아득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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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봄의 내림길에서
    from 木筆 2010-04-13 16:58 
    원주, 서울을 다녀오다. 정지선을 넘은 색들. 끊임없이 펄펄 끓는다. 돌아와 목련이 궁금하여 자주구름터를 마실다녀온다.  이제는 이름을 붙일만한 녀석들이 반갑다. 밤은 녀석들이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인지 사진으로 잡아내기 어렵다. 안타까운 실루엣과 애타는 마음만 앗아온다. 한차례 비가 짙으면 이내 나무 연꽃의 애처로움만 볼 수밖에 없다. 가기 전에, 상처입기 전에 보려면 어서 서둘러야 한다. 소문나기 전에... ...
 
 
 



앎의 기울기라고 할까요? 하고싶은 것의 다름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관점이 다를 경우, 하고자하는 바가 다를 경우, 하는 일의 속도가 다를 경우 피치못하는 것이 차이죠. 혼자 하는 일이거나 함께 하는 일이거나 그 차이를 줄여가는 일이, 하고자하는 바에 맞춰 한걸음 내딛는 일. 더디기도 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어찌 해야할지? 해도 해도 천천히 더딘 걸음만 디딜 뿐 쉽지않은 나날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음~. 제가 피하고 싶은 것은 윽박이나 힘에 자발적인 복종, 단기적 결과물 따위입니다. 간접적 폭력의 산물에서 한발짝 떨어지면서 그 결과물을 함께 나눠가고 싶어서 입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시대죠. 차이와 다름을 이야기하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패턴이나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어쩌면 별반 달라질 것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구호와 유행, 패션으로 그칠 확율도 크지요. 어쩌면 무엇이 되기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달라진다는 것, 차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들이 그 되기의 습관화일지도 모릅니다.

??. 이것 역시 힘든 일이죠. 일과 습관화는 벌써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르잖아요. 선입견의 벽이 무섭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과 [습관]이 별반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 같네요.

그래요. 어쨌든 이어가봅니다. 관점이 다르면 그 관점 사이로 차이가 보입니다. 그 다름을 눈여겨보거나 고민하게 되면 현실을 훨씬 풍요롭게 볼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삐죽빼죽하거나 뭉클몽클할 겁니다. 그런데 가끔 일상을 돌아보면 섣부른 앎. 힘의 서열. 해내야하는 강박이 합쳐져서 웅덩이의 기울기를 지나치게 가파르게 보고 그 부족한 것을 채워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보의 독점을 빌미로 시혜하거나 일방적으로 주거나 지시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앎의 주인과 노예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지식. 많이 안다는 것을 핑계로 다른 것까지 누리거나 소유하려는 습관이 배여있는 것은 아닐까요?

!! 푸념을 해봅니다. 돌아보면 늘 그러했으니까요. 제 모습이기도 하구요. 그래요. 조금 다르게 본 것을 가지고, 조금 축적된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그 그물에 걸려있는 다른 사람을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요. 이런 짓은 자본이 제일 잘하죠. 이익. 한줌을 이익을 뇌에 넣고, 거기에 알량한 앎과 힘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삶을 조종하는 짓 말입니다. 이야기가 샛길로 접어드는군요.

차이. 다름. 앎의 축적. 그로 인한 기울기. 앎으로 조종되는 것 말고 삶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해보죠. 앎과 삶. 부등호를 어디에 쳐야죠. 앎. 삶. 삶쪽으로 부등호를 넣어보겠습니다. 삶이 훨씬 풍요롭고 다기하죠. 삶을 사람으로 대신 넣어볼까요. 앎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죠. 머리속의 앎보다 삶으로 겪어내는 사람은 앎가지고 재단을 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죠. 느낌도 아픔도 슬픔도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요. 터무니없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터무니없이 저질렀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려 합니다. 차이도 보이고 관점도 생기고, 다양성도 존중한다고 합시다. 그 사이에 불쑥 생겨나 새로운 앎들이 돌아다닌다고 합시다. 그 앎으로 사람을 이리저리 몰리게 하고 몰아갈 수 있겠죠. 그래야만 한다거나 하면된다 하자거나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몸의 현수막을 걸고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생각해야할 것은 나만 우리만 많이 알고 있을 확율이 큽니다. 대부분 몸에 배인 앎이 아니고 삶이 배인 앎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앎의 기울기만 있을 뿐입니다.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멈춰서는 지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래요. 몸의 기울기. 삶의 기울기. 처지의 기울기. 느낌의 기울기. 다른 기울기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이들의 시선. 노약자의 시선들이 머물지 않습니다. 알량한 앎이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진화하기 위해선 좀더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뭔가 다르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하게하는 방법이 서로 아름다울 수 없을까요? 김우창교수님 표현을 빌려 심미적인 방법이라고 합시다. 내가 나-너가 하고 싶은 것을 다른 나-너, 우리가 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다른 나-너의 입에서 우리가 하고싶던 말이 나오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도 모르냐란, 그러니까 안돼라는  이것만을 제발 알아라는 것 말고 다른 것 말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 말입니다.

##. 시간의 여유로움이 있어야 할까요? 속도를 의식하면서 할 수 있을까요? 다른 것-처지,느낌,건강,여건...-에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할 수 있을까요? 가는 길목에 즈려밟을 꽃송이를 하나, 둘, 셋 손에 닿을 수 있게 나혼자가 아니라 나-너가 할 수 있을까요? 그 배려를 할 수 있을까요?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우리는 할 수 있을까요?

양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수 있을까요? 다른 것에 예민하고 궁금해할 수 있을까요? 다른 몸짓이나 아픔에 기울기를 낮출 수 있을까요? 그 아픔이 향하고자 하는 그곳의 이쪽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도 나도 모르는 사이. 그녀도 나도 모르는 사이. 그(그녀)도 나-너도 모르는 사이. 선입견의 장벽을 두지말고, 낯설게 하지 말고 이슬에 옷깃젖듯이. 궁금의 먹이 한지에 스며들듯이. 궁금이 앎을 넘어서 다가오도록. 달팽이가 몸을 끄을듯이. 마음보다 몸이 선행하도록. 혼자가 아니라 서로. 서로의 몸으로. 일을 치뤘다가 아니라 기쁨을 공유했다거나 뿌듯했다거나 즐거웠다거나로 진화할 수는 없을까? 다가서는 다가서는 다른 길은, 다른 공간은, 다른 연습을 해볼 수 없는 것일까? 생각고개를 넘는 연습을. 애인이름을 빼곡이 공책에 적듯 그럴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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