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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기심이 생기게 하라

어떻게 글을 쓰나? 누구를 대상으로 쓸 것인가? 10살인가? 7살? 성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 중학교 3학년 수준에 맞춘다고 한다. 리처드 도킨스 등 외국의 유명한 저술가들도 읽는 대상을 중학교 3학년 수준으로 정하여 글을 쓴다. 반면 국내 과학 교수님들은 미국의 시스템과 달리 일반인을 대상으로 글을 쓰거나 저술할 때 이런 기준을 반영하는 문화가 되어있지 않기에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저는 초등학교의 겨우 고학년은 6학년(4-6년)에 맞추고 중학년은 3학년, 저학년 1학년으로 맞추는데 저학년일수록 눈높이에 맞춰 글쓰기가 힘들다. 저학년으로 내려갈수록 글쓰는 시간이 2-3배정도 더 걸린다. 교수님들은 이 수준에 맞추기가 정말 힘든 것 같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술기준으로 대상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으며(가능성),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고(필요성),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가(현실성)?인데 실제 조카들에게 읽히면서 확인해야 한다.  미국은 전미교육교사협의회는 그런 참고할 기준이 있다. 우리나라에 좋은 과학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전문인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미국에서 한 예로 복식사의 경우 출판시스템이 전문책이 아오고 이에 근거한 도감이 출판되고 어린이 책들로 이어진다. 시스템이 중요한데 우리의 경우 전문화가 부족하다. 역사책이나 과학책들의 그림들로 책을 만드는데 대부분의 저자들이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식으로 되어있는 것이 우리의 현재 수준인 것 같다. ( 미국국가연구위원회가 펴낸 국가과학교육기준, 교육과학사 , 2000)

미국에서 경험한 것인데 초등학교 1학년에는 의인화된 동물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점을 확인시켜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6,7세 어린이가 알고 넘어가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 실제 교실에 토끼나 애완동물들이 있다.) 미국은 사대, 교대가 있어 우리처럼 선생님의 기준이 전문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선생님이 될 기준이 엄격한 것은 아니나 아이들 교육에 있어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2. 호기심을 풀어주라!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인가? 0.3%, 1%를 영재로 보는데 영재들의 특징은 스스로 호기심이 있다. 호기심이 있는 아이는 책들을 찾아서 보게 되므로 그리 신경쓸 필요가 없다. 정작 필요한 것은 관심없는 아이가 우연히 그 책을 봤는데 또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면 금상첨화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과학적인 사실을 알기쉽게 하는 것이 좋다 하는데 저술할 때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위에 재미있게 해야 한다. 과학자들의 이면에 있는 날조된 신화나 역사, 뒷이야기를 해준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어독본 6권(1933-35) 4차개정판에는 뉴튼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전에는 없었는데 사과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온다. 실제 뉴튼은 84세에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실제 그 나이에 회상하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런 날조된 신화말고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은 없고 마지막 법칙만 가르쳐주는 것이 문제가 된다. 과학은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므로 법칙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려줘야 한다. 책 한권을 저술하기 위해 많은 독서를 해야만 한다. 한권쓰기 위해 100권을 조사하고 읽고 써야 한다. (우주이야기), 우리 몸 이야기는 학교 선행학습의 일환인 교과연계로 책편집방향이 틀어져서 그런 과정들이 생략되어 재미가 없게 되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직접적인 경험을 쓰는 것이다. 발제문에서 쓴 것처럼 정보보다는 경험이 한수 위다. 경험을 쓴 것이 화산이야기인데 출판사에서는 출판해도 팔리지 않는다고 했고, 아이들은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도 아이들도 내지말라는 것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원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아무도 화산을 보고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 화산 옆에서 살면서 실제 탐사 과정이 있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오히려 편집자보다 독자들을 믿었다. 그 책이 살아남는 이유(7-8년) 해가 갈수록 독자가 늘고 있으며 독자들이 울릉도같은 여행지에 갈 때도 가져가는 책이 되었다. 결국 그것을 지탱해주는 힘은 정보보다 경험인 것이 주효한 것 같다.

3. 감동이 있어야 호기심이 생긴다.

우리은하 너희은하라는 부분이 국정교과서에 실려 있다. 우리은하our gallaxy의 이웃은하가 안드로메다 은하이고, 수백개가 모여 은하단이 따로 모여있다. 우주가 처음생길 때 회전하고 있는 상태인데 우리은하는 점점 안드로메다 은하와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다가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은하들 사이 중력과 만유인력때문에 비껴가면서 커지게 된다. 이렇게 커진 은하는 식인은하로 되면서 거대은하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앞부분에 기술하였다. 또한 은하는 서로 합쳐질 때 가스가 생기면서 그 가스로 인해 새별이 생긴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 만나 별들과 달리 싸우고 다툰다. 우리가 우주를 닮는다라는 부분에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고, 그런 이유로 교과서에 실린 것 같다. 시간이란 개념도 지구에서는 실시간이 가능하지만 우주에서는 태양도 8분전의 빛이다. 우주는 동시대의 것을 볼 수 없고 시간이 섞여있는 상태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정보로 심금을 울리는 방법을 생각해야 되는 것 같다.

[코스모스]나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 - 코스모스란 책들이 감명깊었다고 하는데 실재로 그 정보는 압축하면 몇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슴을 울리게 하는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남다른 영향력을 갖는 것 같다.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의 경우는 과학자의 저작이 아니다. 천문학자가 한 이야기를 쫓아다니면서 적는데, 제발 일을 시켜달라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천문학자가 천문학 이야기를 쓰면 어렵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도 기자가 쓴 책이다. 이 저자 빌브라이슨의 영국 여행기를 볼만하다.  과학저술가는 기자와 달리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더라보다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리처드 도킨슨의 경우 자신의 관점이 확실하여 반대의견이 있더라도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


미국의 훌륭한 SF 작가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 정점 아래 과학저술가가 많기 때문이다. 그 구조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문학하는 사람들 중에 그 저술을 감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들로 추천할만한 과학책도 많지 않으며 저술가도 드물다.

 

4. 재미와 감동은 동격이다.


재미와 감동이 동격이다. 책을 봤을 때 재미가 있어야 남는다. 내 책을 보고 행동변화가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재미가 있어 버리지 않을 정도면 된다. 그것이 저술하는 목표이기도 한다. 글이 재미없으면 그림이라도 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너무 앞서면 안된다. 열보가 아니라 반보만 앞서야 한다. 남들과 똑같으면 진부하고 반보앞선 것으로 편집자나 출판사를 설득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열정을 쏟아부은 책들이 잘 되는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독자를 믿고 파악하고 앞서서 나가고 편집자를 꼬득여서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인 것 같다.

* 번역 - 외국에서 가져온 책(외국여행할 때 구입한 책)을 에이전시와 계약하고 번역을 시작한다. 이후에도 번역이 100권정도 들어온 것 같다. 번역이 작가의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소연) 오히려 저술보다 번역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배경과 시기, 캐릭터에 대한 파악이 되고 그 사람투로 쓸 수 있다. 원본과 운율을 맞추는 문제들도 있어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101124 참터 -(콕!)--------------------------------

 뱀발. 이지유샘 말씀을 들으며 여러가지 느낌들이 불쑥불쑥 생겨난다. 개인적인 습관이나 모임이나 활동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하고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 여러 방법이나 풀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이 불쑥 들어왔다. 재미있고 설레이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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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1-2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똥별 아줌마 이 지유 님, 대전에 사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창비 어린이에 실린 내용인가요? 아니면 직접 강의하신 내용인지요. 아무튼 유용한 정보, 잘 읽고 별찜 해놓고 갑니다.

여울 2010-11-26 09:17   좋아요 0 | URL
2004년판에 별도로 실린 글이 있구요. 위의 내용은 직접 들으면서 정리한 것입니다. 한번 저자님을 같이 뵐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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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혁명]은 생각할꺼리를 고맙게도 남긴다. 제법 친절한 책이다. 프레시안에 연재된 기사들과 책소개, 생각거리를 함께 엮다. 두 젊은 친구의 남다른 노력이 엿보인다. 푸드마일리지에 대한 고민을 쉽게 상하는 채소류는 30km, 그렇지 않은 부분은 300km로 하자는 제안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논란이 더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석유를 싣고 오는 식품들이 아니라 로컬푸드를 지향하더라도 빈부, 공급시스템, 소비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기때문이다. 논란이 되어 서로 고민의 강도를 더하는 것이 기준보다 더욱 가치있는 일이기때문이다. 그런 것으로 걱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지만 요원하지는 않길 바라며 좋은 책의 앞부분의 느낌을 담는다.

[빌린책/산책/버린책]의 꼭지들이 의미있어 몇 꼭지를 보다. 시오노나나미의 남자 고르는? 법이란 책과 또 다른 꼭지에서 연애를 하더라도 남녀의 조건차이를 말하며 여성이 얼마나 열악하고, 사회의 구조가 남성편인지 신랄하게 드러내 보이도록 한다.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의 마이클 록의 강연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광란병(란은 화란의 란이다.)이라 모두를 열며 디자이너, 디자인이라는 것이 네덜란드에 공공성과 뿌리깊음에 감탄하지만, 이것 역시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편승해 의미도 없고, 부질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한다. "우리의 식단이 지난 유행의 섭취와 되새김질로 제한되면, 우리도 광우병 걸린 소와 비슷한 운명에 처할 위험이 커진다." 라고 자본의 그물에 포섭만 될뿐 맥도널드화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성찰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첫눈 콕. 공공디자인의 천박함은 미국만이 아니라, 국내의 논의도 쫓아가는 일들만 있는 것 같다. 디자인 비평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표면만 집착할 수 있는 것이 기본적인 한계는 아닌가 싶다. 전위적인 행동이나 반영이 감안된다면 광의의 예술적 접근이기도 하겠지만 디자인 선진국? 네덜란드의 변화와 수준에 대한 지적이 내부적으로 얼마나 논의되는지 모르겠다.

[사랑의 역사] 첫장을 기사와 궁정사회의 변화를 확대경으로 들여본다. 성직자, 기사의 우정(성교를 하는 동성애가 아니다.)이 주된 스토리이고 이성애를 간접적으로 다룬다. 귀부인과 기사의 궁정 로맨스를 다룬 경계점 부근 말이다. 이성애가 스토리의 주된 묘사로 궁정문학 이전의 상황을 다룬다. 우정의 강도와 헌신에 대한 묘사와 결혼이나 이성애는 그 하위 개념으로 다루는 장면들을 열거하고 있다.


[재현이란 무엇인가] 저자들의 말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설명들이 술술 읽히지만 정작 책을 처음 들었을때 그 선입견, 왜 하필이면 이리 어려운 제목을 붙였지라도 되묻게 된다. 건망이다. 몇꼭지를 읽다보니 환원론로 읽힌다. 논리로 하나로 수렴하려는 욕망이 그르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로 들린다. 다른 꼭지들과 겹치는 대목이 많다. 노신의 [헛 허허허]의 아이 돌잔치에 다들 법관이되고 연예인이 될 것이라고 격려를 하지만 아이는 죽습니다라고 사실을 말한 이는 흠씬 매를 맞는다. 독화살을 맞은 이는 화살을 빼야함에도 도대체 이화살은 어디로부터 날라온 것이며, 어떤 재질이며 어떤 독인지 알고싶어하는 욕망이 비교된다. 아이는 죽는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것이 어쩌면 할 수 있는 최선인지 모른다. 또 이유를 달면 재현과 환원의 그물로 잡입시키지 않는 것이 현실을 대면하여 낫게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허나 대부분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시오노 나나미가 지적한 인텔리들만 변방에서 시체를 물어뜯고 있다.

[우리말의 모든 것] 읽다보면 어디쯤이라고 생각날뿐 숭숭 숭숭 기억을 빠져나간다. 기억도 촘촘하지 못해 이렇게 몇번을 체질을 해야 조금씩 남겠다 싶다. 생활의 언어체질로 몸에 조금은 붙일 수 있을까? 겉잠과 속잠, 동물들처럼 불편하게 자는 노루잠,괭이잠, 풋잠, 선잠, 수잠,여읜잠, 칼잠, 개잠 그리고 불안때문에 설친 사로잠 의 저쪽편엔 속잠, 온잠, 통잠, 옷입은대로 마구자는 등걸잠...깨었다가 다시 드는 그루잠, 두벌잠...그리고 잠버릇이 고약해 빙빙돌면서 자는 등걸잠...어느 것이 온전히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제는 심메마니에게 붙은 말들을 잠깐 살펴보았다. 그들의 삶에 붙어있는 말들은 말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보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말들이 곱고 좋다. 산, 바람, 물.....을  온전히 담은 말들은 아닐까 싶다. 사로잠이나 그루잠 주무시지 말고 온잠이 늘 함께하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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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달은 휘영청 밝고 돌아가는 산길은 은은하다. 오랜만의 전화에 저녁 겸 아*** 속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만남과 관계짓는다는 얘기엔 속마음이 서려있다. 아이키우는 일도 속마음이 어떻게 읽히느냐가 관건이다. 내려다보는 시선 속엔 마음이 없다. 눈높이를 맞추거나 눈높이의 떨림이 없다. 그렇게 만나 설레임의 시선으로 뭉쳐지지 않는다. 늘 내려다보이고 내려다보이기에 읽히는 이는 만남과 관계의 대상이 아니다.

직접 만나려하지 않고 대상화하려는 순간,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전공이나 전문분야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언어의 공통분모가 있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직접 시민이나 주민을 만나는 순간 언어는 달라진다. 정보를 주려는 순간, 주민이나 시민은 무지한 인간들이 되고 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언어를 반성하기보다는 상대의 수준을 탓한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별반 장점이 아니다. 더구나 전문가라고 해서 우쭐한다면, 그것이 은연중에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무시를 동시에 과시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가끔씩 접하는 전문가, 어른, 부모의 시선이 이것을 닮았다. 그래서 그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 끊임없이, 은연중에 억누른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레이지 않는다. 새로운 만남이 없다. 서로 가지고 있는 것을 녹일 수가 없다. 그 시선들 속의 그림자엔 늘 무시가 잠복해있다. 표현이 문제가 아니다. 속마음과 태도가 문제다.

3차원의 시선, 관전의 시선, 관조의 시선은 삶의 시선이 아니다. 정작 설레이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2차원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난 너의 뒷모습과 만나고 있다가 어느새 당신의 얼굴을 대면하고 있다. 3차원처럼 시선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깨동무의 시선, 눈높이의 시선....언제나 난 당신을 만나 설레일 준비가 되어있다. 

뱀발. ㅅㅁㅅ.ㄱ-ㄱ예비부부,ㄱㄱㄷ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참* 강연에 대한 지적도, 불*강좌에 있었던 최근소식도, 이**샘 이야기, 삼국장의 교육받은 이야기, 그리고 늘 민주주의도 관계가 밍밍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도 보태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ㅆ ㅇ 만들어진 관계속에서 다시 관계를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내려다보고 구상하려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어쩌다 주절주절하다보니 사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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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0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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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21

1. 

[절제의 사회]에서 일리히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다룬다. 일리히의 표현은 무척 난해한 모양이다. 번역하기가 어렵고, 언어도 만들어서 하는 것이 많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그를 공동체주의라고 하거나 산업화를 반대하여 논지를 전개하기에 사회주의라고 쉽게 단정짓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낳은 많은 도구를 쉽게 부정하는 것도 아니라 한다. 따로 음미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그는 섣부리게 어떻게 해야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확신하는 순간, 그르쳐지는 것이 너무도 많다. 대안을 주창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한다. 현실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어쩌면 쳐다볼 수도 없지만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이 비로소 시작임을 말하는 것 같다.

2. 

우리말의 모든 것, [도사리와 말모이]를 본다. 잠의 종류, 비의 종류, 술이 얼큰하고 취하는 단계별... ... 리듬과 느낌의 함축되어 살리고 싶은 말들. 언어를 보면 가슴이 뛰기도 한다. 너무 문장에 낯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갖게하는 말이라면 그 리듬에 그 말이 너무 곱고 이쁠 수 있다. 정확한 뜻은 모르더라도 그렇게 살리고 싶은 언어들이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별반 쓸모없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 긴 시간을 살아있고 역으로 자연을 살려내는 말들, 자연이 붙어있는 말에 어찌 가슴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꼭지를 왔다갔다하면서 저자의 애정에 혀를 내두른다. 이젠 나의 몫이지 않을까? 머리로 들어온 말들이 가슴으로 몸으로, 손과 발로, 너에게로 번졌으면 좋겠다 싶다. 맛술에만 관심이 가니 젯밥에만 마음이 가는 것 같다.

3. 

[주체란 무엇인가]에서 이정우님은 무위인이란 표현을 쓴다. 글자그대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位위와 無무를 단계를 나눠 이해해야 한다.
[사랑의 역사] 왜 이성애를 문제삼지 않는가? 이성애는 동성애의 역사보다 깊지 않다. 그러고보면 성과 섹스가 젠더에서 발라내어 나온 것이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랑이란 것을 그렇게 이성애와 발라내어 나온 동성애로만 한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사랑은 그렇게 성애의 범주에만 머물거나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 흑과 백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진화만큼 다양한 것이라면, 사랑은 성애에 포획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역자는 말미 이 논의를 바탕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마지막 싯구처럼 사랑은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사랑의 지혜, 철학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한 것 같다. 

4. 

[책을 읽을 권리][빌린 ...책] 로쟈와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보며 지난 흔적을 정리해본다. 장정일은 책에서 60세에 독서일기 스무권을 출판하려고 했는데, 이번호에서 이름을 바꾸었다. 빌린 책, 빌려본책으로 표제도 독서일기가 아니므로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려고 한단다. 중간 관심있는 꼭지를 살펴본다. 책에 따라 다르지만 천천히 읽기, 가슴이 고동치는 소리와 함께 독서의 감미로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단다. 도서관에서 빌린 다음 책을 확인한 뒤 자신의 곁에 두는 방법은 염두에만 두고 있었는데 한번 해봐야겠다 싶다. 몇몇 꼭지를 들여다보니 마르케스의 잠자는 미녀를 다룬 소설과 일본 소설을 번갈아 다루면서 노년이란 십년 단위로 자신을 다루지만 90이란 나이도 이제 석쇠를 뒤집어 한켠을 더 익혀야 하는 시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섹스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그 노인은 그제서야 확인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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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슐러 르귄의 글쓰기 항해술은 작가이지만, 콜론을 어디찍어야 하는지 의외로 모르는 이를 대상으로 한다. 그렇게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준 것을 책으로 낸 것이라 한다. 산문에 리듬이 왜 있어야 하는가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수유너머의 방법처럼 아끼고 아낀 글들을 툭툭 잘라 절반으로 만드는 과제를 주고 있다. 그래야만 난파를 당하지 않고 글쓰는 이들이 독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외면하는 글쓰기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빼앗긴자들]의 주인공들이 나눈 대사와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류학자와 작가 사이에 태어난 르귄은 아직도 너무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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