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발.  연휴, 근래 마실도 산책도 적어 생각도 생각길도 좁아지고, 여유마저 투정을 부리는 듯하여 몸을 챙겨줍니다. 오랜만의 몸호흡이라 졸음이란 놈이 불쑥 다가서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니 몸도 마음도 예전 기억을 많이 찾아가는 듯합니다.  몸을 사랑하는 일이 여유와 생각이란 정원이랑 맞물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쁨을 핑계로 너무 나돌아 다녔나봅니다. 건너 마을에 다녀와 공동주택 한켠에 있는 조각을 담아옵니다.  

제목이 뭘까요?  그래요 '꿈마중'입니다. 나무에 구름도 새도 반짝거립니다. 아이의 환한 미소가 입에도 몸에도 번져있군요. 110205 7k 70'  110206 3k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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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세화 칼럼] 삼성 노동자 박종태씨의 투쟁:http://bit.ly/ffqsd0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불가능의 도래'라는 말과 일터에서 '주체성'이란 말이 걸립니다. 박종태님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조직은 불가능을 늘 염두에 두어야 바뀝니다.

#2. 

국책연구원 직원 무단 방송출연 대법서도 “직위해제 사유 안돼”:http://bit.ly/hgiLAZ 표현의 자유와 조직의 건강성, 법적제재의 유연성을 생각해보게 만드네요. 생각과 표현까지 물리력으로 막는 것은 아닌지 싶군요.

#3. 

환경신문 ‘그린 키즈’ 낸 아이들 ‘청개구리’라고 반대만? 아니죠!:http://bit.ly/dIFvy7 머리만 적시고 마는 교육이 아니라, 손발이 바지런하여 몸에 배이는 교육이 절실한 듯 싶어요. 참여모임소식이란 더 반갑군요. 겉맛에서 속맛으로... 

뱀발. 연휴라 뉴스가 뜸했는데,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의 변혁 소식과 기획기사가 많습니다. 미국의 입김이 너무 강하고, 유럽 등 다른 나라의 발언과 여론이 궁금해집니다. MB정부의 목소리도 듣고 싶군요. 이러한 일을 홍세화님은 '불가능의 도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현실로 도래한 것이지요. 이 이야기에 삼성노동자 박종태님의 투쟁과 삼성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주체인데, 일터나 사회에서도 주체로 일어나는 움직임이 필요하고, 그것이 불가능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다라고 읽어도 될까요.  

지역 청개구리기자의 소식을 보탭니다. 어린이라고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요. 어른보다 더 깊이 있고 기사도 잘쓴다는 점에서 똑같은 주체입니다. 서로 손잡고 관심의 폭을 같이, 깊이 넓혀가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함께 북아프리카의 사회변혁과 우려까지 보태 맥락에 관심을 가져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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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조금 + ]

 

 

 

뱀발. 일찍 설준비를 마치고, 짬을 내어 몸을 달래준다. 따듯한 날씨에 잔설이 스르르 녹다. 발밑이 촉촉하다.  0202  8k 70'+ 6k 60'  0203 7k 70' 별빛 밝은 곳은 공사중인데 재두루미 한녀석이 바위턱에 앉아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 속을 응시하고 있다. 헌데  병아리만한 새끼오리는 머리를 연신 물속을 조아리며 잔물결을 남기며  그 앞을 왔다갔다 한다.  좀 먼 발치에서 까치녀석은 이 둘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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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인력과 운명

세개의 사과라고 하자.(네개를 말했지만 말이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퓨리에의 사과이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물체와 물체 사이에 중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력이 있음을 발견하자 자연의 운동을 연결짓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퓨리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열정적 인력이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사람과 사람사이의 열정적 인력이 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천원하는 사과가 만원에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천원이면 되는 것이 왜 만원에 팔릴까? 이것이 합당한 일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한쪽에서 굶어죽는다. 사회는 물질적 운동과 달리 다른 운동법칙이 존재한다. 유기적 운동과 동물적 운동과 달리 최소한 먹고 살아야할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먹고 살기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규모가 필요하지 않다. 한명이라도 죽는다면 사회적 운동 법칙에 맞지 않는 것이다. 열정적 인력으로 움직이는 사람과 사람사이는 단 한명도 죽이지 않는 먹고살 궁리를 갖고 태어난다. 먹고살 궁리는 천원짜리는 만원에 팔고 사는데 있지 않다. 백명이든 천명이든 그 단위를 갖고서든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게 해내면 다른 곳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열정적 인력과 사람의 운명은 한 덩어리다. 이것이 퓨리에의 사과이다. 하나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이론과 설명은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물질적운동, 유기적 운동, 동물적 운동, 사회적 운동과 일반적 운명에 관한 이론의 요지이다. 

 
생각필터

뱀발. 잠의 끝자락에 앞의 단어가 선명해지는 것이다. 새겨둔 말이 꿈틀거린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니라 열정적 인력이다. 사회가 움직이는 법칙과 운명을 한데 묶은 이론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한가지로 묶어 사유한 사람은 없다. 사람과 사람사이는 열정적 인력이 중력처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중력은 물체가 떨어지듯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열정적인력이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사회가 있는 이상 단 한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는 이론이 있다면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그것을 방기하는 이론은 법칙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지난 25세기의 모든 학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경제, 철학, 예술...모두를 말이다. 2년뒤면 그가 이렇게 사회에 대해 천명한지 200년이 지난 시점이다. 그의 책은 달랑 한권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그 책은 사랑과 살림살이와 ....꿈결이 생각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일텐데. 이름 잘 붙였다고 생각한다. 밥-일-꿈이다. [밥-일-꿈]이 한묶음으로 가지를 칠 수 있다. 그제서야 야생의 사회가 아니라 이제 막 사회인으로 걸음걸이를 하는 것이라고, 겨우 사회의 운동법칙을 구현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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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구 - 묵은 책을 집어들다. 알맞는 달림이었다고 여겼는데 졸음이 몇번 가시게 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에 홍세화님의 글이 인상에 남는다. 프랑스의 공부 하는 진보와 우리의 현실을 빗대어 공부하지 않는 진보라는 표현이다. 분석보다는 통찰이 필요한 시점에 있어, 말콤 글래드웰의 논픽션에 대한 연구력과 관심, 그 이전에 바탕을 둔 사랑은 무서워 보인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지적하는 것이나, 위축과 당황의 차이와 사례, 정상논리하의 챌린저호의 폭발사고는 복잡한 상황에서 사고개연성을 덧붙여준다. 나*호의 발사실패와도 겹치게 된다. 통찰에 대한 논픽션은 정황에 맞춰 쓰는 칼럼의 수준을 벗어나 보인다. 끊임없이 파고 헤치고 연관짓는 연구와 깊이가 느껴진다. 

2. 깊이 - 우리의 교육과 삶의 태반은 깊이가 없다. 스스로 그러하며, 하물며 진보는 책도 연구도 하지 않는다. 이런 소설같은 논픽션과 통찰의 근거를 마련해주는 연구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몇주 전에 만난 사회학과 교수님은 후학을 만들어 놓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신다. 전국적인 사안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는 데 대해 더욱 답답함을 느낀다고 하신다. 대부분의 교육이 반짝 머리만 담그고 마는 시스템이다. 가슴을 적시고 손과 발로 뛰어 깊이를 절감할 수 있는 노력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늘 사안이 없다. 머리만 잠깐 행구고 환기시키는 찰라만 있을 뿐, 깊이가 없다. 더 이상 연구하지 않는다. 빌려쓰기만 할 뿐이어서 남의 것일뿐 내것이 드물다. 나라도 지역도, 너도, 나도... ... 깊이 좋아하는 사랑이 너무 매마른 것은 아닐까? 

3. 이웃 - 개인적인 재능이 미치는 영향이 과대평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의 사례에서 보듯 미식축구 선수 발굴이든, 인재를 뽑는 방식이나 투자에도 조건과 시스템이 고려되지 않는 선택은 빛이 바랜다고 적는다.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는 말은 이제 무식한 말이 되었다. 나 옆엔 너가 붙어 있다. 나-너의 인식이나 적용이 인식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듯 싶다. 그리고 복잡계나 네트워크의 이론을 연계시켜, 이웃의 이웃의 연동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것이 최신 연구의 결과라 말하고 있다. 나만 발라내는 경영이나 인식이 보잘 것 없다는 점, 그 신화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는 것이 공통된 지금여기 인문의 요청상황인 듯 싶다. 시스템과 이웃의 이웃이 변하는 고리를 통찰해내고, 같이함께(가치함께) 움직이는 연습을 만들어 내는 것도 책들이 답을 청하는 실천인 듯 싶다. 

 

뱀발. 물론 옆의 책이 썩 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 주고 받는 과정과 통합적인  얼개를 볼 수 있다. 그 근거를 연구의 결과로 보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함께 모임(씨앗)에 적용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재료로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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