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다녀오다. 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거리의 공백도 없이 피고지는 꽃들이 한결같다. 진달래꽃들이 유난스럽게 짙고 붉다. 여기저기 산줄기와 산등성를 가리지 않고 수줍음을 경쟁하듯 피어있다.

몸은 모임으로 붉고 지쳐있다. 돌아오는 길 궁금증을 참지 못해 일터부근 인적 드문 벚꽃길을 들렀더니 오르막끝이다. 마지막이 아쉬워 가벼운 차림으로 봄마실을 나선다. 목련한잎, 산벚꽃을 따서 매만져 날린다.  중간중간 학교길은 상춘객으로 들떠있고 옷차림새도 여름으로 향한다.

팝콘처럼 펑펑 터진 꽃들은 매화부터 철쭉까지 한모둠이다. 이렇게 봄은 얇은 막처럼 얇다. 한주 반짝하다 비누거품처럼 터지면 여름이다. 세상의 경계가 이렇게 얇으면 좋으련만 온난의 위험이 겹쳐 불안하기만 하다. 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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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한마지기, 고등어 한손 그리고 난초 한촉(酌)

목련이 익어 유성처럼 툭툭 떨어질 듯 싶다. 맑스의 자본론 제1장을 읽는다.  

20아마포=1저고리 

를 놓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이 얘기도 저 얘기도 한참을 이야기한다. 가치형태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는 듯이, 산은 이야기하지 않고 여기저기 나무들 꽃들에 대한 수다다. 그러다가 개인적인 생각을 툭툭, 정작하고 싶은 이야기는 압축을 해놔서 몇번이고 되돌이켜 읽지 않으면 빗나갈 정도로 해놓았다 싶다. 작은 고개에서 풍경을 보고 쉴 즈음에 다가 톡톡 서문에서 봤던 얘기를 슬쩍 건들여놓는다 싶다.

등호 =는 산술의 등식이 아니었다. 물신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게 하는 다양할 것을 권면하는 장치는 아닌가? 이전의 경제학자들이 보지 못하거나 뒷심이 부족해 결코 보지 못했던 추상적 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뒷풀이엔 젊은 친구와 *보*당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첫강의보다는 나았다는 평으로 시작한다. 마지기가 수확기준이라는 이야기, 고등어한손처럼 도량형의 통일이 어쩌면 이렇게 몸말이나 느낌이 살아있는 말들을 죽이고 있다. 표준어와 사투리처럼 획일화의 문제점들에 대해 콕콕 짚어본다. 청년 맑스의 행간을 보며, 뭔가 통찰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에둘러 보이기도 하고, 이렇게 고전을 보는 재미는 요약본과 해설서의 번역과는 남다르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고전의 생명력이란 늘 전후시대적 맥락이 이해되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잠깐 나오지만 그는 [좋은 삶]을 이야기했다. 그 이후에 번진 자유, 평등, 박애를 나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앞집 형과 같은 이가 맥주한잔하며 [좋은 삶]에 대해 이야기는 표준어나 도량형이 통일된 회색톤이 아니었을 것이다. 들으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발이 꿈적거리는 몸말이지 않았을까? 가끔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멋진 선배, 친구, 연인을 제대로 사귄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고전이야기를 보탠다. 그 점에서 맑스는 글감으로 보건데, 가슴이 따듯하고 두루두루 살필 줄 아는 친구이자 하고픈 말이 많은 친구는 아닐까?

한친구와 교육와 교양의 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진보는 가분수다. 머리만 큰. 당장만 관심이 있다. 헌데 시간의 길이에 바래지 않을 수 있을까? 바래지 않으려면 방법은 없을까? 책읽는 인문학모임을 내심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닐까? 현안이 산적해있는데... ... 시간을 길게 잡으면 다들 문화, 교양,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에 쫓기고 머리의 의욕이 가슴도, 손발도 감당하지 못하는 체계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거나 감당하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당원이나, 단체의 회원을 그저 소비자처럼 개인으로 환원시켜 보는 것에도 한가지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서사적인 나, 이웃의 이웃, 이웃의 3승처럼 연결되어 있는 그물속의 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입을 시켜야 하는 개인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가? 머리말만 겹쳐는 것이 아니라 몸이 겹치고 겹쳐, 한 일곱번쯤 겹쳐야 친구의친구에게 진심이 동심원처럼 퍼지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렇다면 이념이나 하고자하는 정치적 판단을 주입시켜서 당장을 끌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관심을 둬야하는 것은 당원이 회원이 끌고 가는 아우라를 함께 봐야하는 것은 아닐까?

함께 느껴야 하는 가슴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이념과 정치적 양식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면에서 진보는 순수한 것이 아니라 순진하기 그지 없는 것은 아닐까?

제발 가입해주세요라고 애원하는 것보다, 친구의친구의 아우라속에 몸의 겹침이 일곱번 있는 것과 어느 쪽이 회원가입율이나 당원 가입률이 높을까? 해보기나 한 것일까? 그런면에서는 다단계나 보험의 집요함은 벌써 과학과 철학을 몸으로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만 관심이 있어서 그렇지만... ...
 

[ 강독 조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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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적에 목숨 거는 대학
    from 파란여우의 뻥 Magazine 2011-04-14 15:06 
     올해들어 카이스트에서 네 명의 대학생이 자살을 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자가 죽는 것이 미안해서 교수도 죽었다. 카이스트는 영재들이 모인 학교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방식을 ‘미국식 명문대’ 로 지향하는 카이스트의 ‘강제된 경쟁’ 방식은 공감이 안된다. 미국대학이 세계대학의 롤모델로 이상적인 대상인가? 한국풍토에 맞는 방식이란 정녕 없단 것인가? 그렇다면 미국식 경쟁위주 교육이 대세라는 말인데 학문의 탐구가..
 
 
 

 뱀발.  

1. 새로운 삶, 새로운 길, 새로운 관계....와 종언. 역사는 끝났는가? 아마 개인주의자의 역사는 끝이 났다. 발명을 시기하고, 새로운 인물을 시기하고, 새로운 인물이 이 세상을 구원해낼 것이라고 하고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발명을 해내고,  모의를 하구,  먼저 이론을 발표하고...그것들이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서로 가져가고 싶어 안달할 수 없는 것일까?


2. 많은 연구자들이 바디우도 좋고, 지젝도 좋고, 들뢰즈도 좋고 화이트헤드도 좋고 그렇게 연구를 이어나가곤 하는데, 개인적으론 김영민님을 학자들이 너도나도 서로 연구하고 싶어 안달했으면 좋겠다.  

3. 언저리의 사유와 인문의 힘, 그가 몸을 끄을면서 옮기는 꿰미를 보면서, 그래 담을 넘어봐야지, 삶의 담을 너머... ...삐죽 다른 길이 있겠지 싶다.  홀로주의자의 시대는 가고 어떻게라도 다른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식인축에도 들지못하는 시대가 성큼 왔으면 좋겠다.  

4. 주말 바쁜 틈으로 한켠에 있던 책을 조금조금 살금살금 보고 느끼다.  

5. 생산양식에 따라 생산관계가 결정된다? 삶의양식으로 삶의 관계가 결정된다면...어떻게 다른 삶들을 살아갈까가 회자되었으면 싶다. 머리로만 움직이는 진보가 아니라 손발이 함께 움직이는 진보의 삶을 따라하고 싶을 것이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길, 새로운 삶, 새로운 삶들로.....사리사욕을 채우는 인문이 아니라 배워남주는 인문이 시도해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 강독 조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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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가 익다. 강의시간에 발라낸 민주주의와 시장이 바구니에 가득하다. 지난 이삼년전의 삶이 불쑥 들어와 복기를 해본다. 개인의 자유도, 민주주의도 겉돌아 툭툭 떨어진다. 간도 배이지 않아 털린 민주주의가 외롭다. 혼자도 없다. 시장을 기름처럼 뱉어낸 습관들, 권력을 무의식중에 밀어낸 습속들 그러다보니 심리적 아나키스트일뿐 현실은 없다.

시장 한바구니에서 가치만 건져내려니 현실감이 없다. 이해의 바다에 한걸음도 다가서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며 보는 백색 옷차림은 너무 맑고 곱기만 하다. 장터에서 물건 한점을 팔아야 하는데 악다구니도 장사속도 없다.

나는옳다나는옳다나는올다란 자중심성곁엔 너가없다 애초에 너는 없는듯 나는옳다나는옳다나는올다라는 자의식엔 저기 외로운 이의 차가운 손길을 덥혀줄 길이 없다. 몸의 겹침이나 문화란 아교를 의식하지 않고서는 내가치가 나를 넘어서기 힘들다. 같이 가치를 품어 저기 차가운 손길을 만질 실험이란 나의 단체의 테두리에 그은 실선을 점선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점선들사이로 손을 꼭잡고 아교처럼 나온 문화와 고민의 연대가 자라나서야 그대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한걸음 한걸음.

해볼 수 있는 것에 우리를 담그는 실험이란 가벼운 것부터 센 것까지 모두 다이다. 해볼 수 있는 역량이나 경험이란 것이 이렇게 먼산 바라보듯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의 수도 헤아리지 않고, 경우도 없고, 나의 단체, 나의 할일만 무진장이니 어찌해야 되는 것일까
?   

 

뱀발.  1. 바쁜 일정 속에도 시장과 민주주의를 넘나드는 강의가 짙다. 그렇게 곡절을 담은 듯 싶다.  방** 컨셉의 비가 추적추적 내려 봄도 뜨뜻미지근하다. 들어가시는 걸음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지난 일들이나 젊은 친구들의 뜨거움이 걸린다. 장샘의 지난 경험을 한쪽 시식하고, 폭압의 상황에서 운신의 폭을 갖지 못한 정파의 그림자를 돌아본다. 그 그림자에 걸려 넘어지는 지금을 본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로 난 길이 민주주의인가? 민주주의의 길을 가본 적이 있는 것일까? 뱉어내고 밀쳐내기에 정신이 없는 지금의 순진무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도와 실험,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꺼리들도 나눠보고 듣는다.  

2. 동*미가 합류되어 [울기에 좀 애매한]의 잔영을 본다. 진도가 불쑥불쑥, 만화평론까지 이야기 만찬이 벌어진 듯하다. 하지만 발언의 향연에만 관심을 둔 이들, 막내의 말고픔까지 막아버렸나보다. 제발 말 좀하게 해주세요. 말할 기회를 달라구요. 아무리 좋아도 민주주의는 챙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겉넘어본다. 
 

3. 시장*민주주의원리의 중첩에 의한 활동들에 대한 고민이 한 꼭지 다뤄진다. 그리고 구청장이나 제도권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지나친 방관적 태도, 교육감의 약진과 사례들, 심도깊은 생각들의 전선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들이 간간히 토해져 나오다. 

4. 연일 더 하는 피곤의 더깨가 그래도 목련 소식으로 덜어진다 싶다. 님 소식, 님의 실루엣으로도.....어쩌며 골목길을 휘이 돌아 쭈욱 내려가는 내리막...그리고 저기 보이는 오르막도....내려가는 속도감 속에 챙길 것들이 많을 것 같다. 너에게 손벌여 나에게 고민을 기대 그에게 몸을 빌려 눈덩이처럼 오르막을 차고 올랐으면 싶다. 부쩍 챙길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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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밤, 돌아오는 차장가로 목련이 점점, 별빛보다 달빛보다 밝게 박혀있다. 달님도 별님도 생각조차 못하는 밤. 저 꽃 한점 한점. 님들의 고민처럼 삶처럼 저 혼자는 힘겨워 기대고 싶어 피우는 것이라 우기다. 꽃들이 차장가로 나무와 나무를 겹쳐겹쳐 피우다. 눈물이 나도록 곱다. 마치 청명한 가을 하늘에 눈이 매워 눈물이 나듯 너를 보면 눈가가 시큰거린다.       ㅇ 

                                                                                                                      O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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