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라인게임을 포함한 SNS는 관계를 확장시키는데 기여를 하나, 관계의 확장은 아니다. 구심력을 발휘해 네트워크 상 앎이 몰려다니는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만큼의 농도를 갖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갖는 기능에 방점이 찍혀야지 현실을 새롭게 만든다는 찬사를 보낼 만큼은 아니다. 정말 사회적네트워크에 관심이 있다면 역으로 일상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것이지 사람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경계가 넓어진 것이지 아직 현실에서 관계의 도구로 자란 적이 없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양적인 기능 정도로 머리에 넣는 것이 외려 이 도구를 통해 질적인 관계를 형성하기엔 편하다. 찬사와 환호로 만드는 것은 역시 몸의 영역이자 몸의 문제이다. 현실은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만 X-레이처럼 드러나있다. 110606

2. 젊은 여성 중국공산당원을 만났다. 2008년에 토지를 사고 팔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농지는 몇몇 대호란 기업농에게 팔렸다. 농촌의 한마을은 이땅의 60-70년을 고스란히 닮는다. 조금 더 다가서니 여전히 문화혁명도, 소수민족의 아픔도, 지방정부의 역능도, 자본주의의 거친호흡도 고스란히 섞여있다. 110603

3. 노사모, 개혁정당 활동을 했던 외지인들. 지역에서 그들의 활동이 왜 자라지 못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우연한 자리. 장미는 짙은 밤에도 밝고, 조르바댄스와 존레논의 oh my love는 생각들 사이를 변주한다. 모대학의 위계로 이루어진 권위주의에 짓눌렸다 한다. 그들에겐 이곳에서 그토록 정치적이었던 이들인데 그 활동과 연고나된 정치적 삶은 엷다.
 
1106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찔레와 장미의 잎은 비슷하나 다르다. 잎이 겹쳐나면서 마지막 잎의 크기로 구별된다. 찔레 잎은 모두 비슷하나 장미는 꽃잎처럼 크다.  오동나무가 있는 산책로를 발견했는데, 오동나무의 꽃은 귀한 듯싶다. 종모양으로 분홍을 길게내리는데 오동잎처럼 포근하다. 부처님 오시는날쯤 핀다는 불두화는 꽃그림자가 두껍게 드리워져있다. 양귀비와 작약은 저무는 태양에 드리운 그림자가 좋다. 창포꽃이 핀 것을 보니 단오가 다가오고, 이름모르던 산딸나무꽃을 배운다. 여기저기 산책의 흔적과 각기다른 나무-하늘의 실루엣을 남긴다. 

2. 모임으로 바쁘다. 고민들이 무릇익어 삶을 그만두는이에게 진보는 무엇인가? 진보는 돈에 물려 삶을 그만두는 이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존재인가? 돈에 물린다면 한번 더 삶을 생각하거나 기회의 고리로서 진보가 다가선 것은 무엇일까? 돈에 물린 것이 당신의 목숨을 담보할 만큼 죄가 아니라구. 그 삶의 휴전선에서, 삶의 사막에서, 삶의 중독에서 당신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만들 줄 아는 것이 진보라구. 진보가 삶의 방학과 삶의 오아시스, 그리고 삶의 꿈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라구. 그래서 벤야민이 말했던 정의나 자유, 평등은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것 대신에 태도나 삶을 내놓아야 한다. 막다른 골목,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다시 한번 살 수 있게 만드는 곳이 진보의 삶들이 놓여있는 곳이라구. 그들이 그 그늘에서 사유만하더라도 자살의 칼날보다 물론 돈의 횡포와 구조를 바꿀 수 있게 다시한번 사는 삶이되도록 해야 한다고...진보는 유아기를 벗어나야 한다.  

3. 2의 생각들은 며칠 나눈다. 진보와 민노당이 합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와 비정치, 철학을 고기맛처럼 차이를 감별하지 못한다. 락의 정신을 가져야하는데, 공동체정신을 갖는 블루스, 그리고 개인을 짙게드리운 재즈라는 것은 또다시 오목한 그릇에 모아져야 한다. 활동이란, 운동이란 제도안-곁-밖의 긴장과 시야를 갖는 것이며,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인지하는 것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제도안의 정치가 맞다면 링안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조그마한 합이나 자율권을 인정해야 한다. 또다시 원칙이란 밖의 원리를 들이댄다면 그게 애들이나 하는 짓인 것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링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곁과 밖과 안이 合과 덧셈으로 충만할 삶의 연대를 만드는 일이다.  

4. 사람의 그릇이란 확인이 가능하다. 사상과 생각의 그릇. 그것을 구분해내는 것이 정치를 현실로 가져오는 처음이 된다. 고기맛을 구별하듯, 무지개의 색을 구별해내듯, 그 사람의 사상의 지도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함께 살 수 있음을 미리 볼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사상가라면 너무 인물이 없어서이지...그럴 만한 인물들이 있다면 투명하게 들여보는 것이 또 다른 손실을 줄이는 일이다. 

5. 벼랑에 서있는 이들, 마음으로 다시 품고, 삶들의 연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뱀발. 생각의 언저리, 일상의 언저리가 횡설한다. 더위만큼 아픔이 점점 짙다. 짙어 안개같은 세상이다. 길은 잃은 이들이 여기저기다. 이십년이 넘어 일년선배들을 만나다. 삶은 삶들은 무엇을 뱉어내는가? 다시 한번 멋지게 살아보는게 늦은 것인가? 시작이다. 설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봄의  썰물과  여름의

밀물이  섞이는  계절

입니다   마음의 그물

에 잡히는  날이 많아

나무그늘도  꽃비늘도

비도 벗삼아 노닙니다.

연인삼아 품습니다. 

                          오

월의 어이없는 아픔들

도...

 

 

2.

 

찔레꽃향과 아카시아

향이 절반쯤 섞인 곳

을 나비가  가로지릅

니다.   님의  향기를

떠올리며   올려보다  

 

뚝뚝 떨어지는 꽃을

반깁니다.    

             님입니다.


 

뱀발. 문자 친구들에게 보낸 마음들. 받는 이보다 보내는 이가 더 설렌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불쑥 지루한 시간들을 비껴서는 일이기도 하다. 만우절 문자가 제일 짜릿하기도 하지만서두.  남성 2-5사이 여성 10-15사이...묵묵한 이도 있고 더 세밀하게 답문자를 보내는이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러셀은 이성과 충동으로 구분한다. 이성은 충동보다 행동을 하게 하는데 약하다고 한다. 충동은 목적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와 맹목적 충동으로 나눈다. 충동 가운데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욕구보다 맹목적 충동이라고 한다. 행위를 이끄는 충동은 파괴적인 충동과 생명력을 갖게 하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파괴적인 충동이 전쟁과 같은 행위로 이어진다면 생명력을 갖게하는 충동은 과학,예술,문학으로 낳는 본능이라고 한다.

일상의 수많은 행동을 낳는 것은 이성의 힘보다 오히려 충동의 힘이 대부분이며 중요한 것은 그 충동을 긍정적인 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제도도 그러하다. 인류는 아직까지 충동의 힘을 이끌어내는데 미숙하다. 경제조직의 본질이 이윤을 추구하는 의도를 갖기에 성원의 창조적 충동을 본질적으로 살릴 수 없는 공동체이다. 

 

뱀발. 1916년 전쟁의 와중에 강연한 내용들을 모은 글이다. 행복사회 재건의 원칙이 원제라고 한다. 첫장이 이 강연과 글을 쓰게 한 동기인데, 어쩌면 행동경제학의 원류인 듯도 싶지만, 이성과 의도보다 충동이 본능적이고 행위나 행동을 따르게 한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그의 논리가 쉽고도 명쾌한 듯 싶은데, 모임이나 공동체가 합이 되기위한 방편도 사람에 대한 인식론과 존재론이 바뀐다면 이 이후의 서술도 바뀌어야 될 듯싶다. 충동적인 존재다. 바뀌고 변화한다라고 하면 의도나 조직의 목적과는 달리 운영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민주주의가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관점을 달리하면 또 다른 틈이 보이기 시작할 것 같다. 

이렇게 틈들을 좀더 가슴으로 가져가 숙성을 시켜보면 어떨까? 모임이나 조직의 성과, 공동체는 어떤 방향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빌린 그림도서 몇권을 들척이다 꼭 봐야지 하며 든 것이 한시가 넘었다. 덕분에 지각인데 아무래도 책때문이 아니라 달님으로 인한 듯 싶다. 

충동이 해소가 되지 않을 경우, 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며, 몸의 격한 자극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 긍정적 충동이 해소되지 못한 그늘은 또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i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달이 구름에 가려있고, 주말이라 거리에 가로등도 숨죽여 있다. 연구단지 RRR코스를 한바퀴 순회하려했지만, 불빛이 없어 공원 우레탄로를 천천히 음미하며 걷다 달리다를 되풀이 한다. 땀이 살며시 스며들 무렵 연단 주로의 나뭇잎들이 궁금해져 마저 다녀오다.  그리고 벌써 붉은 장미가 담장 어깨쯤에서 갸우뚱하고 있다. 빗줄기가 그친 다음날 산산한 바람결이 좋다. 6.5k 60' 

2. 클래식강좌를 참관한다. 강좌도 막바지 몇강의 건너뛴지라 생소하기도 하다. 샘이 밀린 강의를 다시 상기시켜줘서 흐름을 잡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이곡 저곡 감상하는 것이 더 좋다. 연주자나 지휘자의 모습은 늘 느낌이 응축되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같은 표정도 옆모습도, 뒷모습도 닮아있다. 가슴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기차 차창가로 이어지는 풍경의 변주,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를 들으며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듣는 법도 함께 했다. 모임의 지난 기억들, 분명 제 각기 화자는 다른 연주를 했고, 느낌의 공유일지, 머리의 공유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을 열어둔다면 지난 모임이나 삶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고픈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을 그저 통과하는 소음이라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 연주하고 싶은 선율의 하나로 듣는 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훨씬 나은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고싶은 것만 보려하는 의도를 조금이라도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3. 일터일 한꼭지를 마치고 돌아온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다시 끼울 수 있겠지. 아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