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문제는 물론 만성적인 고질적 빈곤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속적인 박탈과 갑작스런 궁핍은 불평등의 성질-과 인과적 영향-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 분배와 함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널리 그리고 정당하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나라는 민주정치가 부재한 가운데, 위기 상황에서 모두가 공정한 정치적 관심을 보장받지 못했다. 특히 이 나라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보충적인 보호를 위한 빠른 반응 체계도 마련하지 않았다. '평등과 함께한 성장'이라는 예전 경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불평등과 거침없는 궁핍의 사태는 나타날 수 있다." 277

 

 

기근과 기타재난 - 기근의 발생 현장에 농산물이 남아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잊기 쉬운 것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그물망처럼 출렁이는 상황에서 원론적인 대응은 기근을 해결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아마티아 센은 기근은 대부분 가난한 이에게 먼저 덮치므로 이들에게 고용의 형태나 소득을 올려주는 방향만 잡더라고 역사상이나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기근의 참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사회문화적인 양태로 그 나라는 야당의 존재이나 정보에 대한 공개여부만으로도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결국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문화자본이 불현듯 닥친 기근같은 참사를 줄이고 해결하는 기본적인 사항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북한의 경우도 야당의 존재부재나 정보의 통제로 인한 문제점 노출,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정보의 통제와 민주주의의 후퇴가 사회적 약자의 기근이나 재난에 지극히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뱀발. 서구학자들의 말이라면 꾸벅거리다 못해 굽신거리는 이들은 벌써 1999년에 지적한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거꾸로 살리겠다고 한 것이 국민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누리던 군사문화의 향수와 무지와 몽매를 즐기고 싶던 것은 아니었는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 기본적인 정보, 언로의 소통과 표현의 자유가 안전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한다. 사회의 음지에 대한 세세한 통계 역시 필요하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다시 찾은 10년이 이렇게도 처참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인가? 정치꾼들은 제발 이 책의 한국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라도 읽어보고 시정과 국정에 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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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중국의 버스44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례를 들면서 벗이 물음을 건네온다.  뭔가 마음을 건네야 할 것 같아 흔적을 남겨본다.

 


 

 

선거로 합종연횡만 해서 당선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바닥, 발판을 건들일 수 있을까 뭔가 흐름을 만들어 보고 벡터의씨앗이라도 만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  '새누리지지자에게 왜 말을 걸어야 하는가', '새누리지지자를 왜 존중해야 하는가' '왜 그들의 맘을 흔들려고 해야 하는가' '새누리지지자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새누리지지자들과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새누리지지자들과 이것만을 정리해내야 합니다'


5. 28 한청년이 버스를 기다린다 - (7일전) 작년 대선 48.5%로부터 거슬러 올라와야 한다. 야권?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율이라고 하자.  압축적 민주화의 양면을 거치고 있는 지금, 진보?가 대안의 삶을 살지 않아 정치의 불신은 극대화되어 있다. 새누리지지자는 야당이든 정치인이라고는 다 믿을 수 없다. 덧붙여 온갖 단일화버전은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 새정치도 그러하다. 새누리지지의 지역연고와 집단적 투표형태를 막을 수 없다. 우리가 남이가란 문화적 유대는 투표쏠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차별화된다고 따지지 마라. 논리와 합리의 문제는 너머 서있다.


우리 대부분은 분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 종합적이어서 논리만 밝히는 이들의 습속으로는 새누리지지자의 정서적 역치를 넘을 수 없다. '진보는 개인적이고 논리적이고 말빨만 끝내준다'에 갇혀있다. 새누리지지자와 2백만원 미만 소득자에게 넘길 수 있는 정서적이거나 감동의 벽은 없다. 삶에 허덕이고 치일수록 합리적이고 개인적이고 위계도 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용납하지 못한다.  누가 정치해도 다 똑같았다. 더 불안해한다. 있는 놈들의 협박과 공갈이 더 짜릿하다. 마음에 남는 말은 욕설 비슷한 자극만이다. 감정상의 응집력이 세다.

 

5. 29 - 강도가 버스를 세운다. - ( 6일전) 야당에 대해  .... 야당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반대에 대한 급부로 지지를 얻고 있을 뿐 감동도 마음을 울려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의 무능과 내부 민주주의도, 실험 시도 등 상황을 뚫고가는 노력도 없는 정치무임승차자이다. 되어도 문제다. 지역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똑 같은 레퍼토리, 똑 같은 자극, 장기비전을 물어봐라. 밑그림도 없다. 어떻게 당신의 지역을 만들고 싶은지 추궁해봐라. 공약이라고는 빈한하기 그지없다. 당신 삶과 당신 자식들을 맡길만큼 가슴에 뛰는 공약이라도 있는가. 당선시 향후 일정과 행보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호혜와 평등을 실험하는 제안, 제언을 받아들을 것을 약속하며, 시정의 파트너와 정책의 동반자로 사회단체연대체를 구성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단체연대체는 정당별로 정책위원 1인이상이 참여하는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 선거가 끝난 뒤 소수정당의 정책제언이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의회의 의정을 보고받고 공유하며 의정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연결망을 구성하고 정례화하여 시민의 아이디어가 수렴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새누리당의 경우 독주와 독선, 중앙집중화되어 있으므로 노동, 사회적 약자, 교육, 지역에 대해 정책참여 할당을 하며 3당이상 합의한 정책은 심의, 의결과정에 넣고 참관할 수 있도록 한다.

 

5.30 - 강도가 승객을 협박해 돈을 강탈한다. - 5일전(4.16으로부터 44일이 되는 날)에 선거자로서 소수정당에게 비례대표로 선거 본연의 취지를 살리자. 정당명부 비례제도를 알려 선별투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룰자체를 바꾸지 않는 거대당의 분위기에서 조금 더 다른 투표성향을 볼 수 있는 지표이지 않을까?  '비례대표에겐 다른 선택을' '비례대표는 지금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물려줘야' '비례는 녹색, 정의, 진보라는 가치에게 투자를'

 

5.31 - 강도가 버스에 내리며 여성운전자를 겁탈한다 -(4일전)에 우리는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겁에 질려 쳐다보기만 한다. 엄청난 세금을 고스란히 내며, 수도세 전기세, 휴대폰 요금에 절절매는 우리는 뭉텅뭉텅 살을 배어 물고 가는 세금에겐 끽소리도 하지 못한다. 음식값 천원과 서비스에는 핏대를 세우며 불만을 제기하지만 강도같은 큰도둑에겐 겂에 질려 꿈적도 하지 못한다. 얼굴을 연신 맞으며 빼앗긴 지폐를 보고도 아무말도 할 수 없다. 누구에게 외쳐야 하는가. 강도겁탈자 돈뜯어내고 담는 자에게 우리를 고스란히 넘겨줘야 하는가

 

6.1 6.2   D-3, D=2  김기춘은 선거 며칠 남겨두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돈도뺏고 온갖 추악한 짓을 한다. 눈으로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투표만 한다고 투표란 블랙홀에 빠져버린다고 우리는 의무를 다한 것일까. 여전히 무늬만 바뀌고 자본의 수장들이 두는 장기판에 졸만 바뀌었을뿐인데...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누리지지자들의 심금은 울리지 못하겠지만 동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가만 있는 것이 나은 것이라고 오히려 도와준다고...그렇다면 당선되면 무엇이 달라지는데....2년에 한번 대리해서, 차 펑크라도 떼워주는 보험이라도 선거가 되어본 적이 있는 것이냐구. 허구헌날 거리에 나가 촛불하고 데모해도 꿈적도 하지않고 입과 몸을 막는 것이 이 세상인데... ....

 

6.3 선거전날 4.16 49재....

 

6.4

선거하고 인증샷 이것이 과연 최선일까. 우리는 왜 선거를 일년 가운데 하루만으로 투자를 해야하는가. 당신의 답답함. 당신의 노동의 가치를 이 나라가 실현해주는가 당신의 정치인이 당신 삶을 헤아려주는가 정치는 카페에 커피시키듯, 식당에 음식과 서비스를 확인하듯 당신이 직접 헤아리지 않는 순간, 우리를 떠나 날아가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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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또 다른 내부 여행지 속의 잡담 - 기획과 선거, 그리고 정치 대한 감수성
    from 木筆 2014-06-02 11:42 
    1. 꿈 - 약속장소에 돌아가신 분이 양복차림으로 나왔다. 너무 반가워 인사를 하는데 또 다른 이가 왔다. 자리 같이 해도 되냐는 고인에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같이 계시라고 얘기를 나누고 반가움에 안았다. 2. 회원제안벙개 - 6.4선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최선인지 얘기를 나눈다. 패널토론을 진행하다보면 질문을 들으려는 후보와 하고싶은 말만 하는 후보로 나누어진다.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후보의 생리와 행동차이가 있다. 20
 
 
 

 

1. 나스메 소세키는 런던 유럽생활을 2년반동안 했다. 창문으로 꽉 막힌 런던의 건축물은 끊임없이 남들이 그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의심을 들게했다. 툇마루도 바람도 없는 이질적인 시공간은 늘 그를 불안에 떨게했다. 바다에 어린시절을 보낸 친구가 도시에 와서 이유도 모르고 시름시름 파김치가 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몸이 앓고 있는 것은 따듯한 바람일 수도 햇살일 수도, 아니면 품에 그리던 바다에 대한 갈증을 채우지 못하는 우울일지 모른다고 한 친구가 말한다. 일본인에게 서양의 관문은 그렇게 낯설뿐만 아니라 병적이다. 도대체 맞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서양의 것을 몸으로 뱉어내기도 하는 그가 서구의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주장했다. 어쩌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툇마루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치유되는 과정으로 도련님이란 작품을 써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는 아니지만 어정쩡한 돌출의 인물인 주인공들에게 파편적으로 그 주의를 입혔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다 졌다. 그리고 옛 일본의 향수인 기요를 그리워하며 작품을 끝내고 있기도 하다.

 

 

 

 

 

 

 

 

 

 

 

 

 

 

 

2. 불편


우리는 소비와 음식맛의 분류와 구분에 지나치게 익숙해있는지도 모른다. 요구와 욕망은 맞아떨어지고, 또 다른 도락의 유토피아는 가까이 있고 주문할 수 있다. 과노동과 과응대에 허덕이는 우리의 일상은 언제 어디든지 부릴 노예가 준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아직도 식당문화가 익숙하지 않다. 무엇을 더 시킨다는 것에 종업원의 불편에 대한 앙금이 있기때문이다.  작년 KTX열차의 한 여승객은 열차직원을 두고 서비스는 물론 고객에 대한 기본 응대가 어쩌느니 하면서 한시간 내내 통째로 전세낸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힘들면 힘들다고 악소리를 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것이 맞다. 그 고객을 보면서  어디서 뺨맞고 어디와서 화낸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았다. 화가 나더라도 표정과 속내는 절대보이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차근차근 매뉴얼에 나오는대로 고객응대를 하라는, 그 감정노동의 양과 질은 일상에서 또 다른 출구를 찾는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는 있긴 있는 것 같다. 맛의 유토피아가 있는 맛집에서는 온갖 불편을 감수하지만, 외식과 회식에서는 무릎을 꿇고 복장을 단정히 하면 솔의 톤으로 고객의 눈빛을 보고 어쩌구 감정의 호사를 누리려는 무의식이 내장되어 버린다.

 

3. 좀더 불편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터에서  과노동과 과응대에 덜 시달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노동과 응대에 덜 주눅들어 돌아왔으면 한다.  그러다보면 그러다보면 가족 공간은 그렇게 쌓인 긴장을 자식을 위한다는 스트레스해소가 반쯤 섞여있는 밥상머리 교육도 줄어들지는 않을까 싶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다 같이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정치가 경제를 왜곡시키지 말고 굵직굵직한 물꼬만 트게 만들더라도 이런 변태같은 일과 증상이 현저히 줄 수 있다.

 

4. 신은 죽고, 신에 의탁해 생긴 유토피아는 신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그 사라져버린 시공간에 낭만적 사랑이라는 은신처를 제공한다. 상품을 모시고 로망을 내장하고 아무도 없는 둘만의 유토피아를 갈구하게 한다. 사랑은 불편하지 않다. 계급적인 제약과 어떤 힘든 노역도 어떤 핍박도 낭만적인 유토피아란 찰나의 환상은 현실의 고단을  지워버린다. 자본주의의 진화와 도피처의 제공은 점점 교묘해지고 양가의 모습으로 자라난다.  이름도 색깔도 끝이없는 명품의 행렬, 향수, 양주, 포도주, 다이아몬드, 여행... ...

 

5. 이 모든 불편한 생각을 한계효용으로 치환해서 이야기하면  위의 얘기를 다 지워버릴 수 있다. 모든 것은 휘발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더 좋은 곳, 좋은 것에 더 호사를 누린다는데 무슨 말이라구.  나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너를 건네고 있는 중이다.  내뿜는 매연으로 도로는 점점 혼탁해지고, 짜증과 과도한 요구로 강물은 점점 먹을 수 없게 되고, 여유하나 없는 일상은 폭염지수가 점점 더 올라가 비지땀이 비질비질나는 지경에 다다른다. 여기저기 짜증도 곤란함도 끓기  직전은 아닌가? 

 

6. 불손

 

금전에 대한 감수성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교사인 집은 부부교사를 비교하고 부부교사인 집은 의사를 비교하고, 의사인 집안은 사업을 하는 집을 비교하고...하루하루가 부족한 것 투성인 것은 아닐까...돈을 많이 모은 사업주는 죽어서도 가지고 가지 못할 정도로 쌓아두기만 하는 비참의 순환고리때문에 허걱거리는 것은 아닌가? 교사인 집안, 공무원, 군인들을 보는 시민들은 그들의 정년과 연금을 본다. 우리 강남 사람은 옆집 앞집 윗집의 살림살이만 보인다.  그렇게 집값,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팍팍해 푸어의 우리집 살림만 커보일 뿐, 비정규직과 계약직, 그날벌어 그날을 사는 이들의 금전에 대한 헤아림도 감수성도 없다. 10만원 100만원에 대한 일상과 삶의 다른 강도와 충격을 헤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불문율이 이렇게 심한 사회가 있을까? 아마 지금여기의 불평등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이 이렇게 우리가 서로 보듬으려는 공유문화자본이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똑 같은 모듬끼리 300만원되는 과외를 시키지 못하면, 100만원 되는 과외, 30만원되는 과외라도 시키지 않으면 영원히 추락하듯 삶은 인질처럼 저당잡혀있다.  낮은 곳에 임하지 않더라도 차상위계층이나 소득분위...우리의 살림살이와 금전관계에 대한 실감을 회복하기만 해도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아파할 수 있을지 모른다.

 

7. 금전과 살림살이에 대한 헤아림과 나눔, 그 시도조차 없는 어색함, 생까기를 비롯해서 그 습속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게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스메 소세키의 작품들 사이에는 금전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나의 개인주의] 말미 추천도서 가운데 하나는 작품들 사이 금전에 대해 다룬 부분들을 모아서 따로 분석, 비평을 해둔 것이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명예가 있다고 해서 돈도 따라 절로 들어온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다. 러셀도 책을 출간해서 간신히 풀칠해서 사는 경우도 허다했고, 작가들의 생활도 빈궁하기 이를 데 없기도 하다. 자본주의 속, 금전에 대한 사고와 개방, 논의의 감금의 상자에서 꺼내야 그래도 일상의 민주주의를 조금이라도 현실감있게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볕뉘.

 

-1. 도련님과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들, 나스메 소세키의 책으로 동아시아 세미나가 이어진다. 나스메 소세키는 작품 속의 빨간셔츠처럼 서구가 합리적으로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싫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서구의 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고자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수반하는 의무 사항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 세째 자기의 금력을 나타내려 한다면 거기에 수반하는 책임을 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 이 세가지 사항으로 귀착됩니다. 64 [나의 개인주의]

 

여기에 비한다면 지금여기의 위세가들은 권력도, 명예도, 돈도 모두 움켜쥐려하는 말종의 인간들의 군상만 남겨둔 것 같다. 귀족으로서 품위도 가져오지 못했고, 명예말고 돈을 가지려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권력을 얻으려는 것은 하물며 말할 필요도 없다.  식민지 하수인 근성만 뭍어 있는 것은 아닐까?

 

-2.  한 선배는 최저임금으로 일하고 있는 곳 얘기를 건넨다.  시간을 늘려야만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식품공장 노동일로 늦게 와 말을 나눈다. 세상과 편안한 일상들과 낯설은 이물감들이 마음에 남는다.  자리를 옮기며 서비스 얘기며 다음날 후원달리기에 다녀온 뒤 전날의 일들을 더 나눈다.

 

-3.  오고가는 길, 책을 한보따리 들고 짬짬이 보고 생각한다. 떨어져 있는 아쉬움만 아니라 현실 속에 감각과 감정으로 부여잡고 밀고 나갈 수 없음이 밟힌다. 이렇게라도 마음의 언저리라도 건드리는 수밖에... ...

 

-4. 위의 흔적엔 다른 벗들의 경험담이 조금씩 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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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비에 장미꽃잎도 떨어져 쌓인다. 습기를 알맞게 머금은 새벽 숲길과 산책길, 어제보다 조금씩 다른 꽃들이 들어서며 오월은 저문다. 새벽 텃밭과 꽃밭에 어머니들 수다와 맘 길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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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란 달콤한 사탕을 빨다

 

 

1.

 

정몽준지지자를 발견하다. 박원순은 왜 싫은게 아니다. 주는게 없이 미운거다. 반값 대학교 무상급식 그냥 싫다.고 솔직해서 고마웠다. 40대후반 50대초반. 그냥 좋거나 싫다. 우리 정치의 수준이 목에 걸려 숨이 막힌다. 합리적 보수의 수준이 여기다. 아니 양심적인 새누리지지자 여기까지인가. 무상급식도 세금 돌려막기라고 ᆞᆞ 세월호로 바뀌지 않는다. 속내까지 ᆞᆞ ᆞ 박원순 고맙다 잘해라. 투표로 지지자를 바꿀 수 없다. 투표라도 하지 않으면 고맙겠다. 참 정치가 멀리있다는 생각이 든다. 참 정치가 할 일이 많겠다싶다.

 

 

2.


새누리지지자 나쁜사람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새정치지지자 좋은사람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통진당지지자 나쁜사람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정의당지지자 좋은사람 아닙니다 다른 사람 입니다.

노동당지지자 나쁜사람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사회당지지자 좋은사람 아닙니다 다른 사람 입니다.

다르다는 것이 좋은 겁니다.

좋다 나쁘다로 가르는 것보다 다르다라고 나누는 것이 더 좋은 겁니다.

내편이 되주어서 좋은게 아니라 다른게 좋습니다.               당분간은.

 

 

3.


문득 스스로 눈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다 남 좋은 일은 아닐까 싶습니다. 유럽의 시선, 미국의 눈, 중국의 관점도 좋지만 기대는 순간 편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껴야 되는 것은 아닌가. 혹시 우리는 빌려서 쓰기만 한 것은 아닐까 앎도 사상도 정책도 살아가는 것도...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여기에 있는데 어떻게 서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 당신은 동양인인가요? 서양인인가요? 명사형인가요? 동사형인가요? 아니면 부사형!!? 당신 정신의 고국은 어딘가요?  식민지를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어떤 숫자를 좋아하시나요? 3? 7? 저는 "0"을 좋아합니다. 옮겨옵니다  http://blog.naver.com/ilsnkb/20192053918(EBS 다큐프라임 동과서 요약)

 

 

 

 

 

 

 

 

 

 

 

뱀발. 자꾸 불편하게 하네요.  3의 링크를 보시면서 훑어 주시면 좋겠어요.  벌써 금요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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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2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때문에 동양은 남과 비교하면서 힘들어 하고, 서양은 자기정체성때문에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결점으로 인한 고통을 보완한다는 것이 다른 결점으로 인한 고통을 불러오죠.

여울 2014-05-23 12:33   좋아요 0 | URL
동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도 다르다죠. 보편복지라는 유럽 스타일이 여기에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자유주의가 발 붙일 수 있을까? 무엇일까 정치도 정책도 다 다를텐데...우리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식민과 생존의 그늘이 언제까지 얼마나 질기게 우리 발목을 잡을까 궁금합니다. 권력자들이 어설프게 한국식이라 불러 장점마저 배우지 않으려는 행태는 경멸하지만...우리를 이해하는 코드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를 설득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듯 싶어요. 푸념입니다. ㅎㅎ

마립간 2014-05-23 12:47   좋아요 0 | URL
동서양의 사고방식에 추가로 말씀드리면 ; 동양은 충성에, 서양은 정직에 기본 가치를 둔다고 합니다. (실천은 별개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불의한 사람보다 내부고발자를 더 싫어합니다. 충성과 정직에 관한 느낌도 EBS 다큐프라임의 동서양의 사고 차이로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보편적 복지 ; 저는 꽤 오랜동안 유럽의 보편적 복지에 대해 동경해 왔는데, 그의 사회에서도 도덕의 기준으로 보면, 약점이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 단위로 폐쇄적인 것이죠. 전세계적, 전인류적까지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족단위의 자아가 형성되었다면, 그들은 국가/민족 단위의 자아가 형성되어 보편적 복지가 제도를 자리잡았다고 봅니다.

여울 2014-05-23 13:52   좋아요 0 | URL
내부고발자 보호란 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가 이렇게 힘든지 이해가 될 듯 합니다. ㅎㅎ 감사요.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이 우리 내부에 가동되려고 하면 역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에 대해 이런 관점으로 사유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영란법 - 부패자에 대한 엄벌시스템도 흐리멍텅해지는데...하물며 내부고발자 보호를 제도가 받쳐주더라도 문화적인 저항은 끈질기고 오래가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합니다만, 서양철학이란 것이 결국의 '나'란 개인을 기준으로 발달한 철학이고 학문이어서 '너'라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학문도 개념하나를 두고 모든 것을 맞추어서 포용성도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하구요.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은 없다'라고 했지만 서구철학이 지금도 지나치게 합리성만 추구해서 오히려 별반 볼 것이 없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유용성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는 개념을 복수로 두는 추세가 있긴하지만... 루쉰은 서구이론 표방자들을 왔다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생각추스르는 기본으로 사유저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님의 코멘트대로 우리나라도 가족단위이긴 하지만 식민압축근대화를 겪으면서 오히려 '눈에 보이는 관계중심 자아'만 발달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구의 '나'란 개념, '개인'을 극단적으로 밀고가는 자유주의에 대한 학습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자리서지 못한 자아'만 발달해서 '너'라는 사유도 개념도 없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북유럽의 복지를 동경해마지 않지만, 시장경제를 버릴 수도 없기에 좀더 다른 스타일과 스케일들을 정치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의 복지시스템이 제도에 이식된다고 자리잡고 살아남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것 같구요. 세금을 걷어서 유럽처럼 하면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우리사회가 기본적으로 형평과 공평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서 현실화되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곳에 제도를 심을 경우 가정을 해서 여러각도로 시뮬레이션 해봐야 될 것인데..너무 제도만능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해방되고 이식된 헌법이라는 것도 제 기능을 하는 것인지? 무늬만 헌법은 아닌 것인지? 헌법정신은 있기나 한 것인지?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구요. 일본에서 헌법이란 제도를 베껴왔을 때 논란이 여전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정치란 무엇일까라는 생각를 다시해보게 됩니다. 중산층에게 더 좋은 세상을이란 전제가 맞는 것인가? 평균이상만 생각하는 것이 정치일까? 삶의 언저리에서 열외의 안밖을 드나드는 이들을 위한 시스템이 정치는 아닐까? 한 사람이라도 덜 죽게 만드는 것이 정치는 아닐까? 그럴려면 ....어떻게....하는 것이 나을까 회의합니다.

이것도 역시 푸념 둘입니다. 많은 앎, 깨달음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덧글 환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5-2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근대적 개인을 파헤친 명저들을 다시 정독하고 있습니다.압축성장,압축근대화라는 용어가 많이 쓰입니다만 역시 인권이란 개념 밑바탕의 근대적 개인이란 개념은 그런 식으로 단시간 내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유교사상에도 민주적 근대적 요소가 있다고 강조하는 지식인도 있지만 글쎄요...고학력 사회라고는 하지만 대학물 먹었다는 사람들도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점을 모르는 정도니 아직은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울 2014-05-26 12:3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 여전히 현실과 곁은 암울합니다. 저도 그러하지만 타인의 권리와 책임과 의무를 교과서 안에서만 배우고 외웠지 국영수에 몰빵해서 체화가 없는 나라에는 노동도 없고, 노동자도 없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라는 것이 가슴과 몸으로 피어나는 것이란 것은 자칭 엘리트라고 하는 이들의 천박함에 혀를 끌끌찰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과 명예와 돈을 모조리 가지려하는 욕심보만 가득찬 이들이 세상을 설치는 것은 아닐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똑같은 시스템은 여전히 바뀌는 것이 없네요. 삶도 생각도 권리도, 의무도 다른 길을 걷는 연습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압축이 풀리는 방법이나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조금씩 서로 나누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서로 느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월이 많이 깊었습니다. 올해는 시대의 우울이 조금은 가시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