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내부 여행지 속의 잡담 - 좋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 수 있는가

 

1

 

저기가 아니라 여기가 더 가깝다면 여기의 실패에 천착해봐야 한다.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 더 가능성이 있다하자. 그렇다면 내려오는 글이나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서 내려는 목소리나 몸짓을 살펴야 한다. DJ이 아니라 YS이 더 흔적이 있다하자. 그렇다면 아쉽거나 안타깝거나 하려고 했던 것들을 손꼽아봐야 한다. 실패를 보듬어보려 한다면 아직 식지 않았다는 증거다. 징글징글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을까? 세상이 나로 도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나만의 공간에 다른 것을 꿰어차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이해하지 못할 무엇이 있다고 체념할 수 있는가? 적어도 걱정이 된다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인가?

 

 

2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불쑥 유아라고 하거나 어른이 아니라고 하니당황스럽다. 끼리끼리만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깍두기를 두어야 한다고 하니 알듯 말듯하다. 서울의 몸짓, 머리짓이 궁금한데 이곳의 몸짓을 살펴보라고 한다. 조직이 정체되어 있다고 한다. 조직의 야당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얼굴조차 보기 싫은데 또 그 진상을 봐야한단 말인가. 단체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을 떠나서 다른 쓴소리를 듣고 들어야 한다고 하니 머리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가 손으로 꼽는 사람들. 그래도 지금의 우리는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줌밖에 안된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소리인가 모르겠다.

 

 

3

 

이념이 있고 노선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생각과 판단을 빌려야 한다. 뭐가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여기로 생각하라 한다. 하나 하나 다르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또 노선의 꼬리로 묶고, 이념의 잣대로 해석한다. 그 해석을 빌려온다. 빌린 해석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나는 움직였던 것, 움직인 것을 기억해낼 수 없다. 필요하지 않다. 여기 이 자리 나의 여집합, 그들의 생각과 인식이 궁금하지 않다. 할 일이 허다한데 왜 그 몫까지 감내하려하는가 부질없다. 너의 이력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맥락을 다 안다. 너의 스타일도 패턴도 한결같았기에 다른 생각도 다른 되새김도 궁금하지 않다. 일만 그르치게 될 것이다.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올라갔던 존재감을 외면하기 싫다. 무엇을 도모하려던 의도가 놓쳤던 것들도 살필 여유가 없다. 지금 여기의 맥락과 틈새, 그리고 다른 시선의 겹침은 있어본 적이 없다. 잘못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런지 구체적으로 말하라. 뜬구름같은 말들, 말의 성찬이 궁금하지 않다. 제대로 짚어달라.

 

 

4

 

제도안에 있다. 운동인지 활동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활동가의 삶도 전망도 없다. 어찌 살아야하는가 우리의 경로는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정당활동을 한다. 제도안인지 제도밖의 활동인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활동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정당의 영역밖의 일이 허다하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 할 일들을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활동들에 거칠은 시선들이 있다는 가정하에 새롭게 다르게 여럿이 그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 제도안이 흔들거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은지 어떻게 제도안-곁-밖의 활동을 섞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5

 

지금 여기의 문화적인 근력은 있는가?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모둠, 조직, 단체의 쓴소리를 공유할 일들이 직, 간접적으로 있는가? 지금 여기만의 문제를 찾으려하는가? 균열낼 수 있는 사안들을 품고 있는가? 다른 조직의 이견을 받아들여 색다르게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가? 활동가의 삶을 책임지려고 하는가, 다양한 흐름을 읽어내고 나누고 있는가? 제도화로 이루어지는 한계를 생각하고 있는가, 제도밖의 활동의 한계를 짚어내고 있는가 제도안밖을 넘나들어야 하는 부분을 확인하고 그 정보에 대한 교류와 감을 잡고 있는가?

 

 

6

 

지역이 답인가? 지역의 사람들이 느끼는 문제는 무엇인가? 나의 모둠과 조직이 갖는 한계,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인지 절감하는가? 형식적인 결합, 물리적인 양의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인 결합, 결합의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볼 것이 있는가? 여기만의 쟁점과 사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가? 작은 문제라도 볼 수 있고, 따질 수 있는 깊이는 있는가?

 

 

7

 

본디 나는 없다. 자아라는 것은 너로부터 생성되는 것이다. 나를 위주로 유지해온 활동과 사고를 흔들어벌어야 한다. H의 존재감이 I와 겨루어서 회자되고 표시된다는 것, L당과 J당의 활동이 T당과 견줘서 비교되고, a라는 단체의 활동이 B라는 단체의 활동으로 비유되는 자중심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 단체들의 활동들이 서로 연결되고 질적인 모색이 겹치고 제도로 뻗고 주민사이로 스며들어야 한다. 제도 안과 곁, 밖으로 서로 뻗어나가는 것, 그래서 달라진 사유와 실천으로 되먹임되어야 한다. 그 다른 색깔,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서로에게 번져야 한다.

 

 

8

 

지역은 지역만큼의 달란트가 있다. 지역의 현실이라는 바닥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른 지역의 사유와 모색은 지금여기의 고민과 과제로 녹여내야 한다. 똑 같이 수입하여 대행만 하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다. 여기의 사람들, 여기의 삶들, 여기의 관계들, 여기의 흐름들을 포착해내고 또 다른 방법으로 시험하고 실험하는 일들, 여기가 영점, 지금이 원점이라는 자각은 늘 늦지 않는다.

 


 

 

무엇인가 써야한다 무엇인가 써야한다
생각이 마르기 전에
어제 치민 울컥이 식지 않기전에

 

무엇을 써야한다. 무엇을 써야한다
들어올렸던 긴장감을
그간 삭혔던 애틋이 싸늘해지기 전에

 

무엇을 내야한다. 무엇을 내야한다
마음의 화살이 안으로 가 아니라
마음이 꿈틀, 몸밖으로 피도록

 


 

 

볕뉘.

 

1. 기다려주지 않는다.  늘 관조의 마력은 놓친다. 삶의 허덕거림 속에 벌써 지난 일은 없다. 아픔의 그림자만 아쉬워 되뇌이지만 아무것도 거스를 길이 없다. 무엇이라도 하면서 몸의 언어가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더 완급을 조절해주는지도 ..... 늘 안타깝다. 마음도 밀리는 것이... ...

 

2. 늦밤 지인과 만나 가을 바람에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와 빈화면에 담아둔 흔적을 옮긴다.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마음은 싸늘하게 식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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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긴 연휴에 미리 준비해둔 책들로 허기를 메운다. 리차드세넷의 글들에 대한 깊이를 느끼고 싶기도 하다. 있던 책들과 구입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읽다.  그의 삶의 통해 얘기하고 싶던 것이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다가온다. 큰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68혁명과 조지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의 한 장면, 매카시즘의 광풍들 왜 바뀌지 않는가? 왜 바뀌어야 하는가?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의 책 속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이 나온다. 사회사상에 관한 책이 스토리와 주변 인물들의 소식이 무척 궁금해지게 만든다. 말미 구체적으로 남은 그물같은 것이 출렁거린다.  ....욕망자본론은 가타리의 저자의 삶이 궁금해서 읽는데, 신혼이 느껴지는 다소 닭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의식과 하고싶은 말들은 잘 전달된 것 같다. 반복되는 내용이라 겹치기도 하지만... ...고병권샘의 철학자와 하녀도 읽다. 투고한 내용이라 조금 신선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루쉰의 향기와 천착하는 부분은 잘 드러내고 있다 싶다. 가을이 많이 익어버렸다. 오고 가는 길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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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전략이 좌/우파의 공리계를 넘어선 관계망의 성숙을 추구하는 경제 전략이라는 점에서 욕망가치가 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에서 난타나는 욕망의 자본화와 자본의 욕망화라는 색다른 국면을 욕망가치의 측면에서 정리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기본소득’, ‘발전’, ‘사회적 경제라는 최근의 쟁점을 욕망가치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물론 인문학 연구자로서 실증적인 연구 방법론과 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도 느꼈다. 특히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출간 소식이 연구에 자극이 되었다. 7

 

예술가들과 활동가, 직장인, 생협 조합원 등과 함께 3개의 인문학 모임을 운영하면서 자극받았다. 9

 

우리의 관계가 갖는 배치의 변화와, 관계의 발효와 성숙이 세상을 재창조해 낼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발견했다. “속도를 내지 않아도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따듯해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어요. 우리의 인격, 가치, 존엄성을 버리지 않고, 대안적인 가치와 값어치를 분리시켜 보지 않는 삶은 가능하다.” 20

 

/우파의 프레임이 파시즘의 토대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잉여와 같은 찌꺼기와 잔여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 세기 동안 무의식, 욕망, 사랑의 획기적인 변화는 가능할까? 예기치 못하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도처에서 일어나는 분자 혁명의 연쇄 반응이 가능할까? 32

 

사람들 간의 관계 역시도 음향, 색채, 향기, 표정, 몸짓 등의 비기표적 기호 작용에 따라 성숙하고 발효된다. 그래서 대면적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타리의 흐름으로서 도표라는 개념이 개념상으로는 무척 어렵지만, 현실에 놓고 생각해 보면 공동체에서 이미 내게하는 기호 작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62

 

욕망노동은 아이들이 문자와 색채, 음향, 몸짓, 언표 등의 기호를 습득하는 학습노동 여성의 돌봄과 가사노동, 장애인의 재활과 이동을 위한 정사화노동, 정신질환자가 상담자를 만나서 자신에 대해서 분석하게 되는 분석노동,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서 TV를 보며 쉬는 시청각노동등을 망라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욕망노동은 이미 가치화되어 있는 영역이며, 실존의 좌표를 획득하고 있다. 79

 

가타리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가 집단의 분열 생성에는 세 가지 요소가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흐름으로서의 도표적 과정들’, 분석을 통해서 창조적 개입과 이행의 구성요소를 만드는 분석장치들무언의 춤을 추듯 발언할 수 있는 공동체적 관계망인 집합적 언표 행위 배치들이 그것이다. , 공동체적 관계망의 성숙, 분석가로서의 혁명 집단, 언어적 매체와 연단을 가진 집단으로 설명할 수 있다. 레닌에 대한 가타리의 분석은 주체적 생산이라는 섬광과 같은 분열의 순간을 분석한 것이다. 91

 

공공 영역, 사적 영역과 더불어 공동체 영역도 있다는 점을 경제에서 빼놓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공동체 경제는 자율과 자치, 자립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래서 이러한 공동체 경제 영역이 시장과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 많은 활동가들이 주목했을지 모른다 99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요새는 노동자들도 돌봄노동자라고 규정된다. 그렇지만 돌봄은 공동체를 자기 생산하는 활동이지, 타자 생산하는 노동이라 보고 싶지 않다. 사실 돌봄노동자들도 돈만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보람과 사랑 등에 따라 실천한다. “공동체적 관계망이 성숙되고 발효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잘 답해주는 것이 바로 돌봄이다. 111

 

관계망 창발의 산물로 생태적 지혜가 있다. 생태적 지혜는 아카데미처럼 관계 외부에서 관조자, 관찰자로서 관계망 외부에 진리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내부에서 사랑과 욕망의 흐름으 통해 성립된 지혜이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진리와 공동체의 생태적 지혜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113

 

생태적 지혜는 관계망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생각과 상유의 경로를 색다르게 구축한다. 관계망은 마음이나 사유의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환상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에 따라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관계와 배치가 생각이며 마음이다.” 115

 

일반지성이라는 색다른 문제제기를 던지는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은 문제의식과 연구 계획,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120

 

노동하지 않지만 특이한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노동자가 아닌 소수자나 민중은 사회와 공동체에 보이지 않는 기여를 많이 한다. 특이한 욕망의 흐름이 공동체의 관계 성좌를 복잡화하여 생태적 지혜를 형성하고 또한 그것이 집단지성의 발전에 도움을 주어 결국 첨단기술사회의 기계류의 혁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34

 

기계에게 전기를 주듯, 소수자의 욕망에 기본소득을“ 138

 

후대의 사상가들은 칼 폴라니 사상은 삼분할로 이루어져 있다 한다. 국가는 재분배로서의 모아서 나누어주는 것이며, 시장은 시장으로서의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이고, 공동체는 증여로서의 선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섹터가 원다이어그램으로 겹치고 교직하면서 균형을 이룬 구도를 그려낼 수 있다. 세 영역 모두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작동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이루는 것이다. 187

 

들뢰즈와 가타리는 접속을 욕망하는 생산으로, 이접을 코드의 등록으로, 연접을 욕망의 소비로 배치한다. 쉽게 얘기해서 욕망을 생산하는 공동체, 생태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며(접속), 차별과 선별을 거쳐 (이접), 정체가 분명한 것만 소비한다는 것(연접)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차이에서 차별로 만든 메커니즘이다. 215

 

기존의 발전 노선은 대부분 자생성의 신화에 기반하고 있다. ,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관계망이 성숙하고 발효되고 그 외부에서 지식인이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지식의 외부 개입과 달리, 지혜는 관계 내부에서 발효된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주의, 자생성이라는 신화가 아니라, 관계망 창발을 만들 정도로 내부의 사랑과 욕망의 흐름에 대한 미시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외부 지식인의 개입과 모델화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이 미지의 관계망을 만들어가면서 서로를 뻔하게 보는 의미화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238

 

욕망과 사랑은 같아 보이지만 개체적인 경향을 갖는 욕망연결망의 경향을 갖는 사랑으로 구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욕망은 차이를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소승불교와 같이 자신의 실존을 규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은 사랑과 일치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처첨 한 번의 순간에서 섬과과 같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욕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240

 

환상의 소비는 환상의 분비물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직접 관계 내부로 들어가서 사랑과 욕망의 부드러움과 상냥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계 외부에서 달콤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로 풀어야 할 것을 소비로 푸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상의 경제는 특이한 욕망을 포섭하여 상업화함으로써 상품 소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무의식으로 향하게 만들어준다. 268

 

펠릭스 가카리가 세가지 생태학에서 언급했던 보이지 않는 윤리와 미학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공동체에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수다스러움이나 선물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미지 영상의 수다스러움은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과 관조를 유도한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실존을 강건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279

 

수다는 여성적인 색깔을 갖고 우리 삶의 미세한 부분에서 나오는 스토리들을 재잘거리게 만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한 청년이 거리를 지나면서 새들처럼 재잘거리면서 대화하는 한 무리의 소녀들 사이에서 한 여성을 사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새의 지저귐과 같은 집단에 대한 연모였다는 점이 드러난다. 가타리는 그것을 기계적 무의식에서 꽃피는 아가씨들의 성운이라고 말한다. 관계 성좌에서 수다와 재잘거림은 관계망을 성숙시키고 발효시키는 것이다. 282

 

홉스는 분리되고 고립된 시민 개인은 조각난 환상밖에 갖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리바이어던과 같은 초월적 권력이 통합된 환상인 구조 환상으로 나아가게끔 한다고 말한다. 환상의 통합력에 호소하는 국가 권력이 아닌, 사랑과 욕망에 의해서 하나된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 284

 

거시 정치에 환상을 가지면서 모든 삶이 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구조 환상에 사로잡히면 삶과 생활의 모든 영역이 정치적 게임에 의해서 장악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미시 정치와 분자적 운동이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타리가 주장한 욕망의 미시 정치는 거시 정치와 환상의 찌꺼기가 아니라 사랑과 욕망을 통해서 세상을 재창조하는 생활 정치를 의미한다. 285

 

코드의 잉여가치라는 개념에서 보면 사회적 경제 부문은 자본에 의해서 공동체가 색다른 착취를 당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양적 착취 단계에서 질적 착취 단계로 이행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모든 영역이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고 사랑과 욕망의 자율성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연출된다. 비관, 우울, 좌절의 주체성이나 냉소, , 뻔하게 보는 모습 등이 오버랩된다...그들은 대부분 공동체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단지 일 개인으로 사회와 대면하는 모습도 많이 발견된다. 296

 

사실 마을, 협동조합, 공동체,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등의 회계 지표는 발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통용되던 회계 담론으로는 사실상 설명할 수 없는 관계와 흐름의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자본주의적인 영역에 대한 자본의 접근이다 자본의 조성에 있어서 회계는 지나치게 일면적이다. 사실상 코드의 잉여가치에서 코드는 수정되고 변경되는 것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이 갖고 있는 회계 담론에 대한 영구적인 혁명이 이후 내포적 발전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10

 

자본이 공동체의 욕망을 동원하고 욕망 속에서 색다른 가치 질서를 탐색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다양한 욕망도 자본으로 형성되어 공동체의 자기 생산의 일부를 시장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두 경향의 차이는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인 것을 통해서 구분하자라는 본질론적인 방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양가적인 흐름은 태생, 본질, 원형이라는 것으로 분석될 수 없는 흐름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315

 

1972년 뜨거운 가을 이탈리아 총파업과 관련되어 있던 이탈리아 노동자 자율주의가 주장하는 자율성의 논의는 바로 동물들의 야성성을 보호하는 것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왜냐하면 야성성이 바로 자율성이며, 자본주의의 외부가 상실된 현 시점에서 야생동물 보호와 같은 영역은 인간의 자율성의 보호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25

 

소수자의 욕망가치와 노동자의 노동가치가 서로 만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정치적 파트너십의 형성이 바로 적녹연정이라는 개념의 구도로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두 입장이 공회전하고 텅 비게 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대부분의 노동자 운동의 태도는 자신들이 다채로운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노동가치설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328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는 분명 동일한 삶의 방식을 반복하는 유형의 시스템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똑같은 삶이 이식되어 있어서 마트, 백화점, 호텔, 편의점 등 낯익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면 자본이 머무르지 않는 자본주의 문명의 외부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게토화되기 마련이다.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의 내부는 달콤하고 졸음이 오는 영토의 상태이고, 사람들이 부드러운 예속 속에서 길들어져 있는 상태에 빠져든다. 학교마다 심리 치료가 동원되어 학교 곳곳에서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려 할 것이고, 가정 생활마다 tv가 설치되어 가족 드라마를 통해서 가족의 재생산을 도모할 것이다. 이러한 부드러운 예속은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의 내부에 머무르면서 외부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예속의 새로운 기법이다. 이것을 펠릭스 가타리는 부드러운 예속과 강경한 탄압이 한 쌍을 이룬다고 한다. 332

 

푸코의 생명정치라는 개념에 의하면, 통제 사회는 체제 내부는 잘 살고 자기계발을 하도록 독려하지만 이로부터 배제된 외부는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 둔다는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334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도시형 마을이라고 불리는 관계망은 낯선 익명의 사람들로 조성되어 있는 도시의 관계망에서 일정한 경계를 만들어내고 그 내부의 부드러운 현실을 조성하는 실험이다. 도시 구역의 마을은 국지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여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될 도시 주민들의 돌봄과 살림의 관계망으로 변모할 수 있다. 또한 농촌에서도 전통적인 성장주의 세대를 넘어선 젊고 색다른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점차 마을의 관계망을 조성하기 시작하고 있다. 335

 

소수자를 포함한 풀뿌리 관계망의 관계 성좌는 특이한 것을 생산할 수 있는 판과 구도를 조성한다. 이 속에서 소수자를 향한 사랑과 욕망이 색다른 반복(=기계)을 만들 수 있는 잠재성의 영토를 조성한다. 따라서 기계에 전기를 주듯 소수자의 욕망가치에 소득을 주는 것은 매우 다연한 일이다. 이를 통해서 비노동 영역에 있는 소수자에 대한 욕망가치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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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선생은 학생과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자 하며, 종종 최선의 방식은 더 빨리라든가 저런!” “나쁘지 않군같은 단순한 말을 건네는 것임을 깨닫는다. 문제는 학생과 선생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시적인 언어를 찾아 조금이라도 진저할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음악적 재능을 개발하는 것은 비서가 속기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서는 어린 친구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준 반면, 젊은 의사는 그들이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하는지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57

 

애덤 스미스는 유명한 구절에서 동정심이란 종종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오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혼동이야말로 무엇이 상호 존중의 톱니바퀴에 윤활유가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실마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오해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상호 동일시와 동정심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오류를 통해 우리는 협력을 가로막는 차이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68

 

존중의 제로섬 게임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 흑인들에 대한 존중을 부정하는 게임 70

 

두 사람에게 인성은 한 개인이 만인이 공유하는 사회적 악기’-음악 텍스트들에 해당하는 사회적 동류어는 법률, 의식, 언론, 종교적 신념의 규범, 정치적 교의 등이다-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뜻한다. 76 예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삶에서 상호성은 표현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상호성은 연기되고 연주되어야만 85

 

적어도 능력에 대한 시험이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준엄한 예언자는 아닌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재능의 불평등은 존중의 실천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제한된 요인에 불과할 수 있다. 능력과 존중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친절한 견해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인성에 대한 지각을 형성하는 능력이라는 현상 자체를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112

 

시기심의 유혹에 대항하여 루소는 자기애와 숙련, 어떤 일을 그 자체를 위해 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자기 존중의 미덕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루소는 유혹의 역학이 자기 존중의 그것보다 더욱 강력하다는 이유로 이해 비관주의의 어조로 글을 끝맺고 있다. 타인들은 너무 진지하게 다뤄진 반면 자기 자신은 충분히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이다. 126

 

모든 일상 생활의 관행 속에서 능력주의는 유대에 대한 위협을 상징하며 잠재적인 승자와 패자 모두 이를 느낀다. 사회적 유동성은 사회적 대가를 수반하는 것이다. 132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가 상기시켜주듯이, 노동에 두어지는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 여가에 대한 노동의 우월성,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비생산적인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 모두는 19세기에 사회 전체를, 빈자뿐만 아니라 부자들까지도 사로잡았던 가치이다. 자유주의에서는 노동하는 성인을 존중했던 것이다. 145

 

이해의 평등, 투명한 평등과는 달리, 자율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함을 뜻하는 것으로서 불투명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자율성이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의 자율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거장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자율성의 부여는 상호적인 것이어야 한다. 161

 

자유주의적 주장이 갖는 활기의 어떤 측면은 인간의 특성에 관한 종종 순진하고 일차원적인 가정으로 인해 약화되었다. 자유주의의 전통은 사적 영역에서 배운 인성의 교훈을 어떻게 공적 영역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진정한 심리학적 무게를 갖도록 정치학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165

 

우리가 보아온 자율은 단지 하나의 행동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쪽이 상대방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관계 역시 필요하다. 상대방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관계에 지속성과 평등을 제공한다. 자율성은 연결과 낯설음, 친밀감과 비개인성을 동시에 가정하는 것이다. 225

 

경직된 관료제에 관한 빅 브라더식의 설명은 이러한 맹목성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 경제의 경우에 그러하듯이 복지에서도 관료적 피라미드는 자본주의 사회 내부의 질서를 향한 모색으로서 생겨났다. 이 카르텔을 추진한 것은 권력이지만, 음식과 주거, 의료 보호의 부족은 복지 국가의 질서를 향한 모색을 추진했다. 226

 

평평하고 짧은 관료제 역시 중앙 처리 장치를 갖고 있다. 소수의 관리자들이 결정을 내리고 직무를 설정하고 결과를 판정하는 등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디스크 위의 여러 요소들은 신속하게 다시 정리되고 프로그램될 수 있다. 정보 혁명은 전체 조직을 즉각 판독할 수 있는 힘을 중앙 처리 장치에 부여했다. 234

 

유연한 조직은 미세하게 등급이 매겨지는 불평등 대신에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더 날카로운 구별을 가능케 한다. 유연한 조직은 효율적인 지휘권이 상층부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관료적 피라미드보다 더욱 전체주의적인 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다. 235

 

경쟁에 대한 두려움, 파산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패배에 대한 두려움 등이 모두 강력한 동인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직원들에게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줄 것인가? 우리 스스로 그러한 두려움을 느낄 때만이 직원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 240

 

평평하고 짧은 노동 형태는 노동자들 사이 우애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가령 사회 분석가 로버트 퍼트넘은 미국인들의 우정 관계에서 동료 노동자는 10퍼센트 이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싶을 때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 사람 가운데 동료 노동자라고 답한 응답자는 절반 이하였다. 동료애의 약화는 6개월 내지 8개월 마다 순환되는 팀 체제의 경우처럼 특히 노동자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일자리가 낳은 필연적인 사회적 결과이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를 알 필요가 업슨것이다. 241

 

파리와 마찬가지로 시카고에서도 훌륭한 거리 선도 활동을 통해 마약 중독은 아니더라도 범죄로부터 손을 떼도록 하는 데는 계획된 서사가 필요하다. 외부인의 눈에 시카고 지역 프로젝트는 아주 관료적인 것으로 비치는데, 그 이유는 이 오랜 교정 과정에 의사들의 지원과 법률 부조, 범죄자 자신을 위한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가정을 위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활동하면서 형식적인 관료주의를 삼가는 도움을 가정한다는 것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릇 진지한 보살핌이란 유연성의 시간 틀을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245

 

자원 봉사는 낯선 사람들을 한데 결속시키거나 사회의 복잡성에 대처하기에는 허약한 치유책이다. 자원 봉사에는 동정심의 건축학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 즉 자기가 아는 개인과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전혀 모르는 개인과도 동일시하는 것에까지 이르는 점진적인 운동-가 빠져 있다. 자율성의 필요 조건 역시 빠져 있다. 어떤 사회적 관계에서 서로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254

 

유용한 노동의 숙련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러한 종류의 돌봄을 동정심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는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에 호소하지 않는다. 유용한 노동의 숙련 기술적 차원은 선행에는 반드시 자기 희생이 수반된다고 믿는 오류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기능한다. 반대로 유용성은 구체적인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는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으며, 이는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제공한다. 257

 

친구가 병에 걸리거나 연애에 실패하거나 경제적인 파탄을 맞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해주는 조언은 약병을 나눠주는 공작 부인과 비슷하다.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언제나 이와 동일한 차별과 포섭이라는 연극이 벌어진다. 265

 

식당에서 계산서가 나오면 누군가가 각자 음식과 술을 얼마만큼 먹었는지를 계산해서 각자가 얼마를 부담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 순간 저녁 식사의 즐거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오히려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돈을 낼 때, 즉 공연한 법석을 떨지 않고 일행 가운데 가난한 사람을 감춰줄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친구로서 행동하게 된다. 273

 

경제적 교환은 짧은 거래이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제도적 형태들은 특히 단기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의례적 교환, 특히 이와 같이 비대칭적인 경우의 교환은 보다 지속적인 관계를 창출한다. 호혜적인 발화 행위는 옷으로 자여진 실과 같은 것이 된다. 모스가 프랑스에서 상상한 복지 국가는 부르디외가 북아프리카 고지대에서 연구한 의례들처럼 모호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진행되는, 완결될 수 없는 사회적 기획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277

 

의례적인 교환은 상호 존중을 구축한다. - 트로브리안드 제도에서건, 프랑스 농촌의 대저태게서건, 음악가들 사이에서건, 아니면 도시 빈민가의 거리에서건 말이다. 표현적인 교환이 갖는 이러한 힘은 너무나도 심대해서 완전히 반대쪽 방향으로 돌려질 수도 있다. 불평등이 좋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가난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표현적인 존중의 기술은 모든 표현적인 행위가 그러하듯이 정의나 진실, 선을 함축하지는 않는다...상호 존중의 기술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준다. 교환은 사람들을 외부지향적으로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인성의 발달에 필요한 자세이다. 284

 

사람은 가지고 있던 것을 갑자기 내려놓음으로써 다시 자극을 얻게 된다 진부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거장인 마티스의 경우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활동을 표현하는 상식적인 방식은 자기 시험이다. 이 경우데도 역시 표현은 단순한 동시에 복잡하다. 저항에 맞선다는 점에서는 단순하지만 시험을 계획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하지 않다. ‘소유의 포기라는 표현은 어떤 습관을 버리는 것, 그러면서도 외부 세계에 의해 패배한 인간이 아니라 적극적인 인간으로서 새롭고 어려운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탐험하는 것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300

 

나는 이해의 조건뿐만 아니라 인성의 조건까지도, 즉 종교에 담긴 것과 같은 공유된 상징에 대한 새로운 관계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새로운 관계까지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외부로 전환하는 행위를 선택했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지려면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일어나야 한다. ‘외부로의 전환은 죄수가 교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수에게 단순하게 다른 보다 나은 일련의 사회적 실천을 처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302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집단들은 예기치 않은 쾌락인 호기심이나 생각지 않은 고통의 교훈을 예시하는 개인 인성의 변화에 의존함으로써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상은 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존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표현적인 실행이야말로 집단적인 이미지의 힘을, 사회와 우리 자신에 대한 지각을 마비시키는 암묵적인 지식의 힘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309

 

큰아버지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의 시대의 조직된 좌파가 동지들 사이의 상호 존중을 가로막고 있음을 알아냈다. 큰아버지가 급진적인 동시에 인도적인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본능적인 감정 덕분이었다. 316

 

어떤 특정한 측면에서 보면, 큰아버지가 겪은 혼란과 브로드스키가 당한 고통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직접적인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의식에 관한 구상과 관련이 있다. 인류학자 프랭크 핸더슨 스튜어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서구에서 명예는 보통 계급 체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계급은 의식을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즉 자신보다 위나 아래에 있는 사람을 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공식화에서도 위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각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 대한 의식보다 먼저 온다. 즉 불평등이 우애보다 앞선다. 혁명의 과제는 우애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319

 

계급적 명예에 대한 주장은 억압받는 집단들이 그렇게 하기 위한, 자신들의 집단적인 자아 관념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계급 의식은 마르크주으에서 고유하게 호전적인 성격을 갖고 잇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실제로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계급 투쟁 없이는 계급 의식이란 있을 수 없다. 계급의 적과 친구들은 파업이나 거리에서의 폭력적인 전투 와중에 진정한 색깔을 드러내게 된다. 세계 속에서 어느 개인의 실제 위치는 전투를 통해서 보다 분명하게 규정될 것이다. 319

 

계급 의식에 관한 적대적인 모델은 보로로족이 직면했던 것과 똑같은 문제, 즉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가 마비되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암묵적인 가정과 행동을 보다 탐험적인 타인과의 관계로 양도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혁명적인 의지를 꺾을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욕구의 모호함, 자아의 혼란, 자신과는 다른 타인들에게 의지하는 것 이 정치학에는 이와 같은 인성의 속성들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다. 이런 속성들 또한 저항의 의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320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일종의 정신 분열증이 요구되었는바, 타인들에 대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동시에 동지들에게는 관대하고 서로를 의식하는 행동이 그것이다. 스페인에서 큰아버지는 개인이 정치적인 정신 분열증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오웰이 카탈류냐찬가에서 말한 이야기에서 한 사람의 입장이다. ‘유대를 위해서는 어쨌든 무정부주의자들과 평범한 농민들이, 심지어 견해가 다른 사제와 적군의 보병들까지도 인간적으로 연결되어야 했던 것이다. 320

 

고정된 관료제의 해체가 사람들 간에 보다 강력한 사회적 연결을 증진시키기를 기대했다. 우리의 믿음은 즉흥 연주에, 즉 클래식 음악보다는 재즈를 닮은 사회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 결국 드러난 것처럼, 사교 재즈가 보다 많은 사교성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326

 

현대의 세 가지 존중의 규범 ( 성공하라, 스스로를 돌보라, 타인을 도우라 )을 퇴색시키는 불평등을 고려함에 있어 사회적인 해결책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잠재적인 재능에 특권을 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실제 업적을 존경함으로써, 성인의 의존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보살핌의 조건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퇴색을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다. 327

 

자율은 이해의 평등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타인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타인들의 자율성이라는 사실은 자기 자신의 자율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자율성의 부여는 약자나 외부자를 존엄한 존재로 만든다. 타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인성도 강화된다. 329

 

기능에 토대를 둔 자기 존중만으로는 상호 존중을 낳을 수 없다는 점이다. 사회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불평등의 해악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상호 존중을 낳을 수 없다. 사회에서 그리고 특히 복지국가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강자들이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해 존중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음악과 같은 공연 예술은 상호 존중의 표현적 실천에서 협력적인 요소들을 드러내준다. 분할이라는 완고한 사실은 여전히 사회의 문제로 남는다.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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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 신자유주의적 노동에 의해 공격받는 인간성

 

경영 컨설팅의 권위자인 제임스 참피는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하는 것은 역사상 유례없이 소비자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견해에 의하면 시장은 너무나 역동적이어서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도록 용납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베넷 해리슨은  이 같은 변화욕의 원천은 급속한 이익 실현을 바라는 이른바 '조급한 자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15년 동안 미국과 영국 증권거래소에서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60퍼센트나 줄었다. 시장은 급속한 이익 실현이 급속한 변화가 만들어내는 최상의 결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27


리코는 내가 대학 교수를 일생의 천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자 그는 약간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컨설턴트로서 숙련된 팀 플레이어인 그는 불확실성과 모험을 도전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유연한 근무 태도는 아버지나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역할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지속적 인간 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다. 직장에서의 인간 관계 단절, 이웃들의 의도적 건망증, 자식들의 방과 후 길거리 배회 등의 현상은 그가 강조하는 영속적인 가치의 개념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코는 덫에 걸려버린 셈이다. 35


확실히 그는 성인이 된 이후 과거를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경험이 별로 없다. 예컨대 그가 이사를 할 때마다 새 이웃과 동료들은 마치 그가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대해줬고, 따라서 그의 과거는 자연스럽게 망각 속에 묻혔다. 그가 말하는 문화적 보수주의는 과거를 답습하자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끼는 일관성을 유지하자는 것뿐이다.  35


리코는 지금까지 냉혹한 생존 경쟁 과정에서 잘 처신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슘페터적 인간으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리코에게 변화는 표류를 의미할 뿐이다. 리코는 자식들이 윤리적로나 정서적으로 표류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직장 상사들에게처럼 자식들에게도 평생 교훈이 될 편지 한 장 써줄 수 없다. 그가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교훈은 자신의 사리 판단과 마찬가지로 시간 제한이 있을 없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윤리적 교훈이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39

 

일상 - 구자본주의의 문제점


아담 스미스 국부론에서 - 분업이 더욱 진전되면 노동자 채용은 거의 대부분 몇 가지 매우 단순한 작업으로 국한되게 된다. 몇 가지 단순 작업을 하는데 인생을 소모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우둔하고 무식해진다. 48 리코의 도덕적 중심은 단호한 의지력에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자발적인 동정심의 분출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 낙오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겁쟁이와 상습적 거짓말쟁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처럼 사람을 걷잡을 수 없는 감정 상태로 몰아넣어 의지력의 둑을 넘어서게 된다고 생각했다. 동정심의 분출은 사람을 정상적인 도덕심의 경계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이다. 동정심과 관련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일상적인 것이 없다. 스미스가 이 같은 감정 분출의 윤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은 당시 동시대인 중에서는 드문 탁견이었다. 49

 

유연성 - 새롭게 구조 조정되는 시간


데이비드 흄도 인간본성론에서 "내가 이른 바 '나 자신' 속으로 아주 가깝게 접근해 들어가면 언제나 열기나 냉기, 빛이나 그늘, 사랑이나 미움, 고통이나 기쁨 등 특정한 감각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감각은 자아를 때로는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구부러지게 하는 외부 세계의 자극에서 비롯된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 이론은 이 같은 외부의 변화하는 자극을 기초로 한 것이다. 61


신자유주의라는 상표(자유주의적이라는 용어는 국가의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종종 앵글로-아메리칸 모델에 적용되고, 반면에 '국가 자본주의'는 라인 강 모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71


앵글로-아메리칸 체제에서는 정치적 제한이 부의 불평등을 제한할 정도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완전 고용을 이루게 했고, 반면에 라인 강 체제를 적용한 국가들에서 일반 근로자들에게 보다 유리한 복지 제도를 마련하느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 사회가 어떤 이득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반대로 어떤 불리함을 견뎌내야 하는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체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체제는 시장과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게 하는 근원적 힘을 지칭하는 말이다. 73


해리슨은 이러한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관계의 네트워크를 일컬어 '중앙 집중이 없는 힘의 결집'이라 부른다. 이러한 힘의 결집으로 조직의 위아래를 네트워크 내 여러 부분과 연결하여 재조직하는 힘이 부여된다. 이 경우 기업체 조직 내의 다양한 부서들마다 수익 목표나 생산 계획을 설정해주는 것으로 그 조종이 시작되고, 조직의 각 부서들에 적합한 업종이 지정되고 나면 각 부서들은 그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유연한 구조의 이상을 실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75


조직체와 개인의 시간이 과거의 철창에서 해방되었으나, 위에서 아래로의 새로운 통제와 감독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유연한 시간은 새로운 힘을 지닌 시간이 되었다. 유연성은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는 아니다. 80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는 능력과 분열을 받아들이는 자신감, 이것이 다보스의 신자유주의에 진짜 정통한 인물들에게서 나타난 두 가지의 인간성의 특성이다. 물론 그것들은 자발성을 고무시키는 특징이긴 하지만, 그러한 자발성이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반드시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발성을 고무시키는 그러한 인간성은 유연한 체제 내의 하위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자기 파괴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다. 85

 

이해 불가능성 - 현대적 형태의 노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


유럽인들은 경제적인 면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지만, 미국인들은 종족이나 민족성을 위주로 객관적인 사회적 지위를 측정한다. ..당시 인터뷰한 제빵사들은 의사나 변호사, 교수 그리고 그 외 특권층 백인 등 엘리트들이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의 독립적인 미국인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소위 게으로고 복지 혜택에만 의존하는 흑인들을 훨씬 더 동정하는 데 격분하고 있었다. 이러한 격분은 상류층과 하류층 모두에게로 향한 적개심이었다. 인종적인 적개심 때문에 불명료하기는 했지만 하여튼 계급 의식으로 발전할 가능성마저 무산되었다. 88


계급에 관한 옛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으로 본다면, 근로자들이 이러한 기능의 상실로 인해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고, 너무나 놀랍도록 변화된 작업장의 환경에 분개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설명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관리직을 맡아 힘겹게 애쓰고 있는 흑인 점장 로드니 에버치였다. 94
빌 게이츠가 특정한 상품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신세대는 특정한 노동에 무관심하다. 즉 자신의 직업에 대한 정체성은 미약하다. 일에 대한 애착심의 결핍은 심리적 혼돈과 짝을 이루게 마련이다. 여러 언어에 능통하고 유연한 인력일수록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보다 더 분명히 인식한다. 97


보스턴 제과점에서 내가 접한 직업에 대한 애착심의 결여와 심리적 혼란은 유연한 작업장에서 컴퓨터라는 특수한 자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저항이나 어려움이 정신적 자극의 중요한 원천이고, 또 우리가 뭔가를 애타게 알려고 투쟁할 때 더 잘 알게 된다는 점은, 보스턴 제과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흥미거리가 아니었다. 이러한 진리는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 제과점이 생산 과정에서는 어려움과 유연함이 반대입장이다...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했고, 따라서 직업 의식도 희미했다. 102


과거에는 사람들을 몇 개의 사회적 계급으로 분류했는데, 현대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보다 유동적이라고 본다. '유동성'은 적응성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련의 연상작용을 거치면, 유동성에는 용이함이 함축되며, 유동적인 행동에는 장애물이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것이든 사용하기 쉽도록 만들어지면, 내가 묘사한 노동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용자는 연약해진다. 스스로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일에 대한 연계나 열정은 피상적인 것이 된다....지금 중요한 것은 결속력을 대신해서 등장한 유연성, 유동성과 표면성의 연계다. 그래서 글로벌 상품 광고의 번지르르한 겉모습이나 단순한 메시지들은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것들이고, 사용자 편의 지향적이다. 그러나 표면과 심층을 똑같이 절반씩 나누면 사용하기 쉬우면서도 한눈에 파악될 수 있을 정도로 심오한 논리를 숨기지 않는 유연한 생산 과정이 눈에 띌 것이다...모든 사람이 같은 얼음판 위에 서 있을 때, 한 사람만 규약을 위반해도, 그 얼음 표면은 전부 부서질 것이다....일에 대한 불투명한 표면성은 다보스 회의장의 열성적인 참여와 대조적이다. 유연한 체제에서라도 사회와 자기 자신을 리스크의 감행이라는 특별한 행동을 통해 '이해'하려고 시도할 수 없다. 103-104

 

리스크 - 혼란과 침체를 불러오는 리스크


로즈와 같은 중년층이 어떤 새로운 일을 위해 모험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녀가 서 있는 곳에 대한 불확실성은 그녀가 살아온 경험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어, 결국 그녀의 정신력을 좀먹는다. 그녀가 트라우트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순간 '변화', '기회', '새로운' 등의 말들이 허공에 울렸다. 모험을 감행하려는 그녀의 의도가 의외엿고 그 광고 회사 역시 의외로 유동적이고 피상적이었지만, 그녀의 실패는 유연한 세계 속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일반적인 사례다. 111


모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성향은 더 이상 벤처 자본가나 특별히 모험을 즐기는 개인만의 특성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모험이란 누구나가 매일매일 짊어져야 할 필수적인 것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의 진보적 사회 구조에서 사회적 부를 생산하는 데는 사회의 모험적 생산이 수반되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규모가 감축된 회사에서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바업의 저자는 소박하게 근로자를 정원사로 비유하고, 일이란 마치 식물을 기르듯 계속 분갈이를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유연한 체계의 불안정성은 근로자들로 하여금 '분갈이', 즉 일에 대해 모험을 감행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112


하여튼 그 회사 사람들은 기억력이 부족하거든요. 제가 전에 말했듯이 당신은 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매일 자신을 입증해야 직성이 풀리나봐요.. 계속적으로 모험에 노출되면 우리는 자칫 스스로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파괴해버릴 수 있습니다. 중간적 가치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없습니다. 118


유연한 자본주의에서 불확실성이라는 구조적 구멍들 쪽으로 이동할 때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유는 '애매 모호한 횡적 이동' '뒤늦게 후회하는 손해' '예측할 수 없는 수입의 변화' 등 때문이다. 당사자는 느슨한 네트워크 속에서 종적으로 (밑에서 위로) 이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횡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120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힘이 모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부추기며, 제도의 무질서화 경향, 유연한 생산 체계 등 물질적 현실이 사람들을 스스로 바다로 나아가 항해하게 만든다. 가만히 있다가는 낙오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출발을 결정한 것이 이미 성취다. 변화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험 감행에 관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현재 상태에서의 이탈, 즉 변화를 처음 결심할 때 사기가 고조된다고 한다. 124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시험하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의 과거 경험이 중요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두려워한 것이다. 137

 

노동 윤리 - 변화되어온 노동 윤리


권위 없는 권한을 통한 게임은 참으로 새로운 인간성 유형을 낳는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유형의 사람 대신에 아이러니한 사람이 출현한다.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아이러니에 대해, "자기 자신을 수식하는 용어가 자주 변하고 최종적으로 선택한 용어는 우연적인 것이거나 망가지기 쉬운 것이며, 따라서 그들 자신도 우연적이고 망가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스스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라고 적고 있다. 자신을 아이러니하다고 보는 관점은 권위와 책임 의식의 기준이 없이 유연하게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이다. 168


팀워크 내에 포함된 권력 관계들, 즉 권위의 주장 없이 집행되는 권한은 세속적 금욕주의를 강조한 과거 노동 윤리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던 자기 책임의 윤리들과도 거리가 멀다. 만족을 얻으려 하지 않고 고된 노동을 통해 자아를 증거하는 고전적 노동 윤리는 자신의 취향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팀워크는 그 자신의 허구들과 공동체의 위장술을 사용하여 더 강력한 주장을 펼 수 있다......팀워크라는 새로운 집단 정신은 그 체제의 고용인들과의 진실한 계약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조정자'와 '작업 관리자'를 만들어낸다.,,삶의 역사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속에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예측해봄으로써 부분적이나마 명확해지리라 본다. 169-170

 

실패 - 실패에 대처하는 법


자기 자신이 어떤 행동의 대상이 되고, 자신이 그 행동에 적용되는 영역이며,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이고 동시에 행동하는 주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을까?'...그들이 취한 행동은 서로의 실패담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제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각자의 실패를 털어놓음으로써, 이른바 실패에 관한 터부를 깨고 표면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이 대화로 터부를 깨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0..고통을 제거하는 일이 체념고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듯싶다. 체념한다는 것은 객관적 현실으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196 서로 실패에 대해 토론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일관성있는 자아 감각과 시간 개념을 찾아내는 방법을 발견한 프로그래머들이야말로 월터 리프먼이 감탄했던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다. 보다 넓은 공동체 의식, 그리고 더 풍부한 감각의 인간성이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점차 늘어만 가고 있는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197

 

우리, 그 위험한 대명사 - 표류하는 삶을 구조하는 수단


신자유주의의 영역 밖에서 그 작용을 통제하려는 노력은 하나의 다른 합리성을 지녀야만 한다. 즉 그 기업이 지역 공동체에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체의 손익 계산보다는 시민의 이해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반드시 짚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외적인 행동 기준을 부과하면 종종 내적 개혁이 시작된다. 글로벌 망의 세계는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 외부 공동체의 책임 있는 행동 표준이 그 기업체에 대해 '여기,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당장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염두에 두도록 한다. 200


장소는 지리적이며 정치적 목적을 지닌 위치다. 지역 공동체는 장소의 사회적 개인적 반경을 환기시킨다. 장소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대명사를 붙여 사용할 때, 하나의 공동체를 뜻하게 된다. 이런 식의 표현은 지역적 애착심은 아닐지라도 애착심을 요구한다. 한 국가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날마다 실천을 통하여 믿음과 가치를 함께 구현할 수 있을 때,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 루소는 정치 행위들이 이러한 일상의 생활 의식들에 얼마나 깊이 기초를 두고 잇고, 정치가 공동체의 '우리'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를 이해한 최초의 근대 사상가다. 현대 자본주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장소의 가치를 강화하고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작업장에서 탐사한 모든 감정적 조건들이 그런 욕망을 자극한다. 이 모든 조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깊이 있고 전념할 만한 다른 것을 찾도록 강요한다. 200


책임감과 인간성의 자아-유지에 관한 레비나스의 생각은 다시 철학자 폴 리쾨르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나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된다."....유연한 자본주의에서 확산되는 무관심은 더 개인적이다...212-213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는 "우리 자아는 그 자신을 소유하지 못한다. 자아란 오히려 생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자아는 시간의 사건들과 역사의 조각들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아 의식은 역사적 삶으 폐쇄 회로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의 깜빡거림일 뿐이다."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에서으 인간성의 문제를 보여준다. 역사는 있되, 어려움을 공유한 이야기는 없고 함께 한 운명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성은 점차 파괴되어간다. '누가 날 필요로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4

 

산악 도시 다보스이 도로에 늘어선 리무진들과 경찰의 행렬을 뚫고 회의장을 드나들면서, 나는 이러한 체제는 적어도 그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감성에 대한 지배력만큼은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의 가족들이 겪어온 쓰라리고 변화 무쌍한 과거를 통해서 깨달은 사실은, 변화는 땅에서, 집단적인 봉기를 통해서라기보다는 개인들 사이에서 심리적 필요에 의해 말로 터져 나오리라는 것이다...그 정치적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아는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자신으 정통성을 오래 보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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