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적 유토피아


 

고전적 유토피아 개혁안의 대부분이, 산업 기구는 사회주의나 길드주의나 협동조합 하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거기에 결여된 것은 전체의 이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 인식이었다.  245


설령 과거에 산업주의가 이록한 것에 대한 각 당파의 태도를 건전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그들의 행동과 사회상 전반에 대한 태도는 거의 무관심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임금, 정치적 통제, 생산물의 분배 등에서 일정한 개선이 있어야 했음에도 그러한 개선의 실현은 어떤 명확한 형태로도 반영되지 않았다. '대중 교육', '기성제도의 개혁', '혁명의 실현'을 향한 운동이 일상화되면, 그 뒤에는 풍요로운 평화 시의 들뜬 혁명 슬로건 하에서 애매한 동료 의식만 남았을 뿐이었다. 246


당파적 운동이 다양한 구체적 성과를 낳은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령 소비자협동조합도 영국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물리적 중압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경감시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운동들의 결함은 분배의 방법을 변화시키면서도 당대 사회체제의 핵심을 변화시키지 못한 점에 있다. 나아가 이러한 당파적 유토피아의 대부분은 명확하고 일관된 가치 체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코크타운이나 컨트리하우스와 같은 강력한 집단적 유토피아와 대립한 즉시 붕괴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중산계급-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외와 컨트리하우스-에 흡수되면서 마비되었다. 영국에서도 더욱 세분화된 집단 속에서 거의 같은 정도의 현상을 볼 수 있다. 노동당으로부터도, 당시 각지의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지도자는 조직을 이탈했다. 247


그 결과 개혁운동은 윌터 웨일이 참으로 그럴듯하게 '지친 급진파'라고 부른, 그다지 흥미롭지 못한 문제로 됐다. 실제로 대도시의 개혁 운동은 유명무실하게 됐다. 그곳 사람들은 집요하게도 추상적인 개혁 계획이나 그 실현이 가까이 왔다는 실감을 전혀 갖지못한 운동에 계속 매달려 왔다. 247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당은 혁명적인 의지를 갖는다는 데서 구별되지만, 심리적인 연출의 면에서는 풍요로운 식사를 특별한 선전 문구로 삼은 공화당과 다르지 않았고, 진보당과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당시 진보당은 강력한 도덕적 신념을 수반한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을 실현하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리라고 믿었고 이와 동시에 사회혁명가들은 진보된 온건 노선으로 변했다. 248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당파적 유토피아는 하나의 물신주의다. 물신주의란 부분을 전체로 바꾸고, 대상 전체에서 느껴야 할 정서적 내용을 모두 하나의 부분에 주입하는 것을 뜻한다. 어떤 남자가 어느 숙녀의 손수건이나 양말대님을 물신적인 것이라고 한다. 나는 사회주의와 금주운동과 제한선거의 철폐를 위한 운동과 같은 추상적인 '주의 주장'이 당파의 경우 물신적인 것이라고 본다...사회 속의 인간 활동 전체를 대상으로 삼기보다도 금주만을 문제로 삼거나 기계와 토지의 소유권에 집중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치명적이다. 249


무엇보다도 그들의 근본적인 오류는, 그들의 문제를 정치와 경제라는 부문에만 집중하였지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한 문제로 보지 않았다고 하는 점에 있다. 다른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활동이나 제한만을 수정하는 것은, 그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장애를 회피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250


어떤 의미에서 기관차는 그것을 만든 인간보다도 완벽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회체제의 경우에는 그곳에 참가하는 인간보다 완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기관차는 기관사와 독립한 존재고, 설령 기관사가 기계 조작 이외의 점에서 불완전하다고 해도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체제는 그것이 만들어진 것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52


개혁가들의 계획은 사실 그 자체가 허약한 날림이었으나 그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존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인간, 사실을 자유자재로 분석하고 종합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춘 인간, 동료와 협력하고 화합할 수 있는 치밀하고 정확한 사고방식을 익힌 인간, 개혁을 요구하는 여러 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비판할 수 있는 인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비올라 패짓의 말처럼 "인류의 개선을 목표로 한 사고와 직관의 대부분은 그 목적의 달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유효하지 못한 이유는 객관성과 자기 억제를 결여했기 때문"이었다. 253


중요한 책을 읽고서 그 저자를 만나거나, 중요한 사회운동에 동의하고 그 지도자를 만난 경우, 그 인물의 개별적 특성에서 비롯하는 불쾌감, 편견, 접근하기 어려운 성격을 그의 이론에 대한 공감과 제대로 연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254 대규모 공동 사업의 성공 여부는 핵심적 문제와는 무관한 인간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숨어 있는 악의를 감안하지 않고 그것을 정화하고자 하지 않는 재건 계획은 , 사회질서라는 그릇을 변화시키지 않고 인간을 신의 은총 속에 살게 하고자 한 낡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피상적인 것이다. 눈이나 몸이 부자유한 사람, 병자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죽기 전에 신의 나라에 이르게 하기 위해 치료했던 저 고대 선동가들의 이야기 속에는 배울 점이 있다. 254


역할의 경우에도 인간이면 누구나 주역이 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애나 재판, 모험과 경쟁과 성공이라는, 그 역할 자체는 그들의 의식 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의 가치는 인간적인 가치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치란 상공업에 의해 정당한 것으로 여겨진 가치, 즉 능률과 적정 임금 등의 것이었다. 여하튼 이러한 것들이 노력의 직접적 대상이고, 인간적인 가치 등은 설령 그것이 배경 속에 희미하게 떠있다고 해도 그것은 언제나 멀고 불확실한 미래에 실현할 과제에 불과했다. 256


미국 남부의 일부 백인 집단은,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진위를 따지지도 않고 그 흑인 남성에게 목펵을 가한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잔인한 측면을 부각한다. 인간은 본래 생각이 아니라 행동하는 쪽이 먼저다. 왜냐하면 심리학자가 말하듯이 생각은 억제된 행동이고, 태어나면서 억제란 우리와 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한 분노에 몸을 맡겨 장애를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그  장애로부터 후퇴하여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우회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 것인가 하는 어려운 선택에 부딪힐 때, 우리의 본능적 충동은 전자를 따르게 된다. 259


당파성에 따르는 두 번째 결함은 공동체를 수직적으로 분할하고, 인간 생활 속의 수평적 연대와 충성심에 대립하는 가공의 적대감과 동족 의식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존 어빈의 희곡에 나오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대신에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기병대와 인디언, 사회주의자와 자본가, 금주법 지지자와 반대자를 대치해도 결과는 유감스럽게 마찬가지다. 복잡하게 얽힌 인간의 생활은 사실 그러한 범주를 넘는 여러가지 관계로 성립된다. 그러나 당파의 인간은 유토피아 사상과 대조적으로 이러한 사회 일반의 관계를 경시하고, 사회를 '주의'에 봉사하게 하며, 사회관계를 무시하여 '운동'에 몸을 바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당파주의의 가장 큰 죄악이다. 관계를 경시하는 최초의 방법은 국가주의의 주장자들에 의해 이용돼 왔다.  261

 

정의로운 사람 위에나 부정의한 사람 위에나 비는 내린다. 나아가 우리가 재배한 작물, 우리가 세운 집, 우리가 부설한 도로, 우리가 생각한 많은 사상은 지구와 그곳에 자라는 열매를 계승한 인류의 일원인 우리에게 속한다. 이러한 공동 유산에 동등하게 참가하는 것을 이돌라가 다르다고 하여 배제함은 어리석은 짓이다. 263

 

 

볕뉘.

 

1 자주가는 카페에는 몸이 조금 불편한 이들이 일을 돕는다. 이제는  또박또박 말을 건네는 그들이 정겹다. 퇴근 무렵 간간이 아직 닫지 못한 전시회의 흔적도 덤으로 볼 수 있기도 하고 몸마실하기에도 좋아 찾게 된다. 시끄러운 손님들이 없어 오늘은 마음 편하다.  당파적 유토피아 이전의 꼭지가 컨트리하우스와 코크타운이었다. 사유재산이고 의도하지 않은 바가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선의는 꼭 선의를 낳을 수 있을까?

 

2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1922년, 그의 나이 27-8세. 책장을 덮다가 발견했다. 세상을 살면서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리라. 수많은 거인과 거장의 그림자 사이에 거닐고, 그들의 어깨에 올라 다시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숱한 한점 한점, 먼지같은 흔적들이 모여 때로는 폭풍같은 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열려있어야 한다. 세상은 덧셈의 의도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는 뺄셈을 응시하고, 확인하고 사회의 한 걸음을 딛기위해 부려먹을 재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눗셈과 뺄셈, 숱한 거인들의 아집이 오히려 파멸의 구렁텅이로 넣어버렸다는 점을 다시 응시해야 한다고 한다.

 

3 그의 문제의식은 확연하다. 인류는 전체를 보지 못했다.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와 시스템, 학문 등등 인류의 재산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쓰인다는 딜레마이다. 혁명과 개혁을 원하지만 원하는 가치에만 경도되어 전체적으로 출렁이는 유기적인 그물로 보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위해, 인간의 자장으로, 인간의 호흡으로 어루만져져야 하는 것들이 사람의 결을 빠져나가 거꾸로 사람을 거역하는 칼끝을 겨누고 있다는 점, 그 연원과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문학에서 과학이 빠져나가고, 예술이 삶에서 빠져나가고, 기술이 문학과 예술에서 빠져나가 버렸다고 한다.

 

4 '지친 급진파'로 넘쳐나는 거리가 여기일까? 어쩌면 우리는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의 현실을 목도하고 증명받은 셈이다. 자신이 원하는 진리만 가져가려고 하면 지식을 구하고 탐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선의가 팔할은 악의로 번지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면, 우리는 악의가 낳는 패턴과 습속에 그만큼 노력을 기울이고 배워야할지 모른다. 악의가 낳았던 선의의 결과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도 허약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보자면 군데군데 튀는 표현들이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음미하며 되새겨본다.

 

5  시월 말미다. 하늘은 '어제하루'만큼의 습기가 더 빠져나가 '이틀'만큼 더 푸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궁금하던 차, 점심에 콕 찍다. 아직 은행나무는 아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입문入門

 

 

 

"아~ 녀석!!은 오늘도 하루를 또 넘겨주었군!

고맙게도 하루씩이나!"

 

 

시간이란 그릇 안
계란 노른자와 흰자가
원심분리기에 빙빙돌 듯
감정의 즙이 가장자리로 흐르고 있는 것을 눈치채다

 

 

 

팽팽한 시간의 그릇에
물과 기름이
유화되듯 뒤섞이리라는 것을 안다
뭔가 다른 일상과 다른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거울 속에 빠져나갈 출구가 있었고
빠져나가고 있는 나의 뒤통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걸 말이다


 

 

 

이대로는 아닐 것이라는 것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 달라진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을

삶의 격이라는 프리즘으로
지난 사건들이 되새겨지면
남루하기 그지 없는
이해할 수 없던 '나'의 行格들이
간추려지는 것이다.

왜 분리되거나 자리잡지 못해
배회한 것인지도 
이대로 머물 수 없다는 일
이대로 머물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의 재능

 

서구 사회는 살인, 절도, 강간에 대한 고대의 터부와 결별하였기에, 오늘날 '재미 삼아' 다른 사람을 멋대로 폭행하는 데 대한 아무런 내적 자제심이 없는 비행 청소년들, 그리고 역시 의심할 나위 없이 '재미 삼아' 수학의 게임 이론을 실천하여 수천만의 인간 말살을 유유히 계획할 수 있는 비행 어른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문명은 현재 알려진 어떤 터부가 지배하는 사회보다도 훨씬 원시적이며, 훨씬 더 비 이성적인 상태로 뒷걸음질하고 있다. 유효한 터부가 없기 때문이다  122


의례언어를 통한 효과적인 표현과 의사 전달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던 것처럼, 터부도덕적 훈련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이 둘이 없었다면, 인류의 발달 과정은, 수많은 강력한 통치자나 국가가 정신병적 폭거나 생명을 억압하는 타락 후에 망한 것처럼, 이미 예전에 끝났을지도 모른다. 122


언어에는 논리적 실증주의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특질들이 있다. 막연함, 불확정성, 애매함, 정서적 덧칠, 보이지 않는 것이나 확인할 수 없는 일에 관여하기 등, 이른 바 언어의 '주관성'이다. 그런데 이런 특질들이야말로 애초부터 언어는 생생한 인간의 경험을 감싸 안는 도구이지, 정의 가능한 형해화된 관념들을 접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가르킨다. 풍부한 음성 표현이 절제된 지적 대화보다 훨씬 세월이 앞섰음에 틀림없다. 128


언어는 의식으로 향한 정신의 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무의식으로 향하는 지하실의 문을 약간 닫아 지하 세계의 유령과 악마들이 점점 더 바람 잘 통하고 밝아진 위층 방들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였다. 이런 거대한 내적 변용을 무시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변용이 가져온 근본적 변화를 도구 제작 덕분으로 돌린 것은,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오류였다. 130


많은 미개 언어들이 문법적 복잡성와 형이상학적 치밀함을 보여준다. 그 자체가, 있는 그대로의 경험적 자료를 가시적 비가시적 현실의 쌍방에 폭넓게 연관시켜주는 풍부하게 유형화된 지적 총체로 전환하려는 화자들의 엄청난 관심을 증언한다. 이 방대한 상징 구조는 음성에 의해 구축되고 전승되었다. 그것은 추상, 연상, 기억, 인식, 회상의 위업이었으며, 처음에는 정력적인 집단적 노력이 필요했음이 틀림없다. 이 노력은 쓰기가 발명된 훨씬 후에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계속되었으며, 지금도 모든 살아있는 언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139


인류의 언어는 인간 두뇌의 가늠할 수 없는 잠재력에 걸맞는 무한한 잠재력으로 충만하였다. 언어가 여기에 이르자,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의 살아있는 일부가 되었다. 145


인류의 최초의 말들은 엄밀한 표준화가 없었다면, 또 주술적 정확성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글쓰기가 발명되기 훨씬 전에 바람 속에 흩어져 아무 흔적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언어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훼손되거나 토막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마도 주문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단어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이 필요했을 것이다. 언어의 형성 단계에서 그런 강제적 질서는 필수였다. 언어는 생기면서부터 당연히 '신성하여' 범할 수 없었다. 153


공자는 가장 위대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도덕가의 한 사람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당대의 사회질서를 견고한 토대 위에 확립하고자 왜 두 가지 수단에 의존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하나는 고대 의례의 부활이며, 다른 하나는 언어의 명료화였다. 이들은 사회적 협력과 통제를 위한 두 개의 가장 오랜 수단이었으며, 향후 인간화를 진전시키는 모든 발전의 기초였다. 154


원시 인류는 언어를 정확한 서술과 기록을 위하여 그리고 마침내는 규제되고 조직된 사고를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훨씬 전에, 공들여 은유를 연마함으로써 언어 예술을 우선 유희적으로 또 연극적으로 발달시켰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 전환의 특징을 말하기 위해 무심코 사용한 그 단어들 -씨앗, 개화, 운반, 도구, 암반 - 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은유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정보를 전달하는 비교적 흔한 말들에까지 배어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160


신화와 은유를 거부하는 것은 똑같이 중대한 왜곡을 낳는다. 언어 원초의 은유라는 '질병'의 싹이 조금이나마 끼어드는 것을 막으려고 인류의 경험을 아무런 생명력 없는 도구로 해부하려는 노력은, 병소를 적출하던 외과의사가 초조한 나머지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다른 기관을 제거해 버리는 식의 위험성을 안겨준다. 거칠 것 없는 은유적 시어가 컴퓨터의 비자연적 언어에 완전히 자리를 내준다면, 인간의 창조성에 필수적인 것이 과학에서조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161


발견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


화이트헤드의 관찰에 따르면, "역사적 전통은 물리적 환경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전승된다." 물론 환경이 통일적이며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조건에서는 물질적 축적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물질적 축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을지라도 상당하였을 것이다. - 초기 인류가 의례와 언어에 그처럼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던 여건  185


무엇이든 얻고자 하는 사회의 기초는 풍요한 사회의 기초보다 앞서 놓였던 듯하다. 186
인간은 원래 잡식성이다. 순수한 채집자, 순수한 사냥꾼, 순수한 고기잡이를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초기 인류는 결코 한 가지 식량원이나 한 가지 생활양식에 전념하지 않았다. 187


언어와 의례와 마찬가지로, 몸치장은 인간다움, 인간의 의미, 인간의 목적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다른 모든 행위와 노동은 헛된 일이었을 것이다. 192


활과 화살은 자연의 어떤 것과도 비슷하지 않으며, -1의 제곱근 개념처럼 생소하고도 독특한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이 무기는 물적 형태로 변형된 순수한 추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원시 기술의 세 가지 주된 원천인 나무, 돌, 동물 내장을 이용하였다. 196


사나운 남성적 기질을 과도하게 발휘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융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남성 무의식의 여성적 요소를 확대시켰을지도 모른다. 구석기 예술에서 이른바 어머니 여신은, 수렵자들이 일에서 살상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그것을 성의 향락과 보호의 정에 점점 더 관심을 쏟게 함으로써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본능적 시도의 표현일 수도 있다. - 조직적인 동물 살상에 대한 의식변환  202


춤과 노래, 언어가 의례에서 독립된 것이라면, 그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래 모든 예술은 신성하였다. 인간이 미적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는 것은, 오직 신성한 힘과 교섭하기 위한 것이다. 춤과 의례, 그림을 그리는 움직임이 어우러진 동작에서 우리는 여러 동굴 벽에 그어진 마카로니 같은 불가사의한 선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추상적인 그림들은 의례 몸짓들의 부산물이었을지 모른다. 204


살인적 잔혹성과 극도의 미적 세련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중국에서부터 아즈텍 멕시코까지, 네로의 로마에서 메디치가의 피렌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리 자신의 시대를 잊지 않는다면 나치의 학살 수용소 입구에 아름답게 심어진 화단의 전시에까지, 기나긴 일련의 역사적 사례들에서 알 수 있다. 208


동물 사육과 식물 재배 전단계


혁명이라면 과거의 방식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 방식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업혁명은 일어난 적이 없다. 고고학자들은 오크스 에임스가 영장류시대에서부터의 식용식물에 관한 부단한 지식의 '전승시대'라 일컬은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하여 중석기 단계에서 식용식물, 특히 일년초를 체계적으로 재배하기 전까지 식량 채집 집단이 중요시했던 열대 과실과 견과류 수목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개량하게 되었다. 에임스는 이 기나긴 서곡이 지닌 의미를 강조하였다. ...고고학자와 인류학자가 생각해온 이상으로 기나긴 농업의 시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222


문화에서 변화의 증거만 찾고자 한다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인 지속의 증거를 놓칠 것이다. 문화는 많은 특징이 사라지기도 하고 확인할 수 없게 되기도 하지만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거의 없는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225 문화의 총체에서는 영속적 형질과 잔존체가, 아무리 숨어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훨씬 큰 영역을 차지하며 더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은 둘 다 똑같은 자연의 한 단면이다. 239

 

텃밭, 집, 어머니


위대한 어머니 신화에서 남성은 별 중요치 않는 연인이나 부속물로서, 결코 대등한 짝은 아닌 존재로 표상된다. 동물 사육화/식물 재배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승리라는 이런 다른 측면을 잊는다면, 전체 이야기를 미화하고 왜곡하게 될 것이다. 256


인류가 지금까지 키웠고 보호했으며 아끼고 사랑하기까지 했던 동물을 그처럼 냉혹하게 죽이는 것, 그들에 대한 연민을 억제하는 것은 인신 공희와 함께 동물 사육이 지닌 추한 단면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 단계 인류 발달에서 나쁜 선례가 되었다. 왜냐하면 로렌츠의 토끼와 비둘기 연구가 보여주듯이, 길들여진 인간의 야만성과 가학성은 번번이 어떤 육식동물보다도 심하기 때문이다. 대량 고문과 몰살을 저지른 히틀러의 악마적 공범자들은 '선량한 가정적인 사람'으로 알려졌다. 262


우리가 지난 3세기 동안의 기계화 속도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동물 사육/식물 재배화는 초기 단계에는 느리기는 했지만, 실상은 모험적 적응과 쓸모 있는 돌발사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먹거리, 과일의 크기와 품질 향상, 실을 잣고 베를 짜는 데 유용한 새로운 섬유, 통증을 완화하고 상처를 치료하며 피로를 이기는 새로운 약초, 이 모든 것을 새롭게 발견할 때마다, 최신형 자동차나 로켓 모델보다 더 순수한 이유로 기쁨과 놀라움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264


19세기 이전에 신석기 시대보다 발명이 많았던 시대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선택되거나 교배된, 혹은 많은 수확을 올린 새로운 식물들은 모두 새로운 발명이었기 때문이다. 265


신석기 문화와 더불어 생긴 제도들도 그 어느 기술적 발명 못지않게 문명에 기여하였다. 조상의 생활방식과 지혜를 존경하였기에 글로는 담아낼 수 없던 수많은 관습과 의례를 보존하였다. 여기에는 생명을 키우는 것, 공동 재화의 공유, 미래에 대한 대비, 사회질서 유지, 자기훈련과 자기 통제 확립, 지역 집단의 보전이나 번영 유지에 필요한 모든 과업에 대한 아낌없는 협력 등, 도덕의 기본 원리가 포함되었다. 271


마을은 불탄 자리에서 돋아나는 잡초처럼 폐허에서 일어났다. 이 사회적, 기술적 성공에는 두 가지 비밀이 있다. 공동체의 성원은 누구나 문화유산을 가까이하였고, 대개는 그 모든 부분에 정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권위의 질서, 어떠한 우월성의 위계 서열도 없었다. 연령이라는 자연적 질서만이 예외였다. 전문화의 정도가 아주 낮았고 기술과 일을 쉽게 바꿀 수 있었기에 마을 문화에는 융통성과 여유가 있었다. 이것은 동물 사육/식물 재배라는 최초의 거대한 실험이 이루어진 후 생긴 보수주의를 상쇄하였다. 도공이나 대장장이처럼 그런 공동체에서 필요한 부분이 되었던 전문가들조차 수확기에 부르면 곧장 공동 작업에 참여해야 했다. 272


신석기시대 농업에서 처음으로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여 누구나 똑같이 다양하며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즐거울 수 있는 정해진 일을 가짐으로써, 주로 채집을 하던 경제에서 가능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복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이 일상적 일들은 '현실 원리'와 '쾌락 원리'를 통일하여, 한쪽이 다른 한 쪽의 조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 생활과 내부 생활을 조화시켜 인력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지도 않았거니와, 다른 것들을 희생시키면서 한 가지 기능들만 과도하게 강조하지도 않았다. 농경민들은 안전도 확보하고 즐거움도 얻기 위하여 곡물을 얻는 데 꼭 필요한 이상의 일을 하였다. 273


오늘날 신경증 환자에게 정상적 활동과 정신적 안정을 회복시키기 위한 작업 요법으로 뜨개질, 모형만들기, 목공일, 그릇 빚기 등 신석기시대의 주요 예술을 이용하는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이런 조형 작업의 반복적 성격은 불안정한 인성 탓에 어쩔 줄 모르는 충동을 통제하도록 도와주며, 결과적으로 건설적 일상을 따르는 데서 오는 기분 좋은 보상을 제공한다. 아마도 이것이 신석기 문화의 작지 않은 공헌이리라. 그것은 인간에게 성이나 부모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일의 중요성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망각하여 위난에 빠진다. 277


원동력으로서 왕


이 모든 기술적 진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간과되어 온 더 중요한 동력이 있었다. 곧,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존재의 모든 차원을 변화시킨 새로운 종류의 사회조직의 힘이었다. 그런 변화는 작고 현실에 밀착된 초기 신석기시대 규모의 공동체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선사시대의 가설적 재구축을 시도하면서 내가 보여주려는 것은, 모든 기술적 진보는 그 이전과 이후의 필연적인 심리적, 사회적 변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즉, 의례의 정서적 교감과 엄격한 단련, 관념적 언어 소통의 시작, 터부와 엄격한 관습을 단련하여 모든 행위의 도덕적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집단 협력을 확보한다는 변환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314


고든 차일드는 이런 거대한 힘의 폭발과 자신만만한 인간 지배를 주로 쟁기와 전차 같은 발명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사실, 곧 피라미드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인 기술적 과시가 실은 끌, 톱, 망치, 밧줄 같은 작고 간소하며 기계적으로 원시적인 도구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기자의 피라미드까지 수 마일이나 수송된 거대한 돌들은 나무 썰매로 운반된 다음, 바퀴나 도르레, 권양기, 기중기, 심지어 동물의 힘조차 빌리지 않고 오로지 기계화된 인간의 힘만으로 제자리에 들어 올려졌다.  321


동물 사육화/식물 재배화를 가능하게 했던 꼼꼼한 관찰, 밀착된 관계와는 종류가 다른 새로운 과학이 나타났다. 새로운 과학의 기초는 셈하고, 측정하며, 정확하게 기록한다는 추상적, 비인격적 질서였다. 일찍이 이런 속성들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피라미드 같은 원숙한 기념 건조물은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날을 헤아리고, 음력 달과 양력 해를 관측하고, 나일 강의 수위 상승과 범람 시기를 정하는 이 모든 일은 사제 계급이 할 일이었다. 이 새로운 권력과 질서는 이집트 최초의 태양력 확립에 의해 효과적으로 상징화되었다. 328


"너희들 말 대신에 내 말이 운명을 결정하게 하라. 내가 한 것은 변경할 수 없으리라. 내가 말한 명령은 취소할 수도 바꿀 수도 없으리라." 이 말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말들은 새로운 집단 기구가 만들어지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다.  335


왕권이 이윽고 어느 정도 인간화, 도덕화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로 마을 공동체들의 완강한 저항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 같은 생활 관습과 양식의 많은 부분이 촌민들의 이주와 함께 새로운 도시 속으로 퍼졌다. 우리는 민주적 기술과 권위주의적 기술 간의 투쟁이, 안으로는 역사내내 진행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40


비교적 온건한 함무라비 법전조차 고문을 한다든지 영구적으로 불구의 몸을 만들어 처벌하는 제도를 인정하였다. 그런 관행은 철기시대 이전 고대의 소규모 사회 공동체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가학적 방법은 교육에도 적용되었는데, 그 흔적은 지금에 와서야 겨우 제거되고 있다. 348

 

뱀발.  이른 잠, 한밤 중에 일어나 책마실을 다녀오다.  그는 총괄적인 조망, 아니 그 시공간안에서 전체를 보면서 날 것의 생동감있는 시선을 요구한다. 시체나 주검을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서 미치는 힘의 자장을 그대로 볼 것을 바란다. 칼 폴라니가 경제를 설명하면서 썼던 'embeded' 사회에 함침되어 있는 모습대로 봐야한다. 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을 발라내어 상품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기술 역시 사회에 배태되어 있는 것, 사회 조직원리가 기계나 기술의 원리로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문제 인식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도구의 관점에서 보고있는 상식이 심각히 왜곡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신석기시대를 농업혁명이 아니라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동물사육/식물재배화의 기나긴 조정시대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그의 언어, 몸짓, 의례, 예술의 기원에 대한 탐색은 마치 잠비스타 비코가 설명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인간 세상은 수학과 물리학으로 파악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는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의 역사를 탐색하는 것으로 진리가 발견된다고 한 말이 또렷이 드러난다.

 

그가 말하는 통찰은 인류가 외적형성만큼 내적형성의 영역을 넓혔고 넓히고 있다는 자각을 들게 만든다. 평행우주와 마음을 읽어내는 과학의 속도만큼 내면의 이드와 초자아, 무의식의 발견도 그 만한 속도로 우리의 영역을 넓혀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단지 그가 말하고 주장하는 것은 신석기 시대가 19세기 이후 발명을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발명을 해왔으며 그 기술들이라는 것이 사회안에 숨쉬고 호흡하는 손에 잡을 수 있던 것들이고, 지금도 언제든지 숨쉬고 우리 몸에 각인된 유전자 같은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동물을 사육하는 과정이나 식물의 종을 토양과 기후에 맞게 개조하는 순간순간 사회, 마을 사람은 같이 호흡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한다.

 

 

식물이 성장할 때 특정한 성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량원소가 필요하듯이 인류는 너무 극단적인 상황만을 가정하고 기술을 개발해왔는데, 그 땅 속을 자라고 있는 뿌리의 영양분까지 고려하는 내면탐색은 너무도 없었다는 안타까움으로 그의 기술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키워왔듯이 증오나 집단학살의 잔인성의 영역도 같은 크기로 자라게 했다는 이중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양측면을 조망하지 못하면 인류가 도착적이거나 극단적 파멸의 경험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피라미드라는 거대기계는 사회라는 조직, 수직적인 위계, 신을 재현하는 왕이라는 사회조직의 출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위적인 조직, 사회의 출현이 권위적인 기술을 낳고, 심지어 19세기 이후 사회에서 발라져 나온 기술, 거대기계는 인간성도, 자연과 호응하지도 못하면서 통제불가능한 잔인성과 파멸의 징조까지 보여준다고 한다. 날이 희윰해져 오늘을 챙기려 두시간 남짓 새벽잠을 청했다. 친구들이 꿈 속에 자주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참터 - 몇 꼭지가 눈에 띤다.  도심 열섬 현상과 대안 모색 바람길에 대한 예비시험, 실측 데이터, 하수종말처리장 악취문제에 대해서 독일 사례, 타지역 수림대조성 보기, 지역별 악취실측 데이터 등등 학생들이 만든 자료와 데이터들이 무척 꼼꼼하고 좋다 싶다. 기술은 마치 짐승과 같아서 잘부리고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권위적이기도 하고, 민주적이기도 하고...기술만 불쑥 떨어져 나온 것 같지만 지역 주민과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전한다. 악취와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 기술들이 결합해서 기대이상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 사례가 다른 문제가 있는 곳에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으니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큰 일을 한 것이라고 격려한다. 년수로 6번째 이제서야 시간을 내어 참가하니 그래도 듬직하다 싶다. 고생하시는 멘토님의 자극과 격려 속에 그래도 학생들이 서로 좋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것 같다. 2년전 참여한 대학생 멘토도 그 때는 힘들고 귀찮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기억에서 제일 많이 남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2. 공주대학에서 충남-세종-대전 역사 축제가 있었다. 동학 120주년 기념이었다. 역사동아리와 활동 등이 인상적이었고 교류가 샘날 정도로 좋다. 전에 가본 우금티 고개를 다시 갔다. "농민들이 이 고개를 넘어 공주에 가려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농성하러 갔다. 말이 하고싶어서 우리는 이런 나라를 원한다고 시위하고 싶어서 목숨을 담보로 고개를 넘고자 했다."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 교수님은 아이들의 솔깃한 마음을 뚫고 말한다. 뒷모습에 어리는 강단있는 모습과 목소리 떨림, 아이들의 눈빛이 그 억새와 바람이 참 좋았다. 까르르 까르르 억새밭에서 셀카봉으로 사진 찍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여운이 짙다.  벗의 부부와 막걸리 한잔에 마음을 더 담다가 헤어졌다. 말과 말 사이 마음 속에 눈물이 마른 흙에서처럼 스몄다.

 

 

3. 지역은 원자력 문제로 몸살이다. 집값, 위험, 대안이 겹쳐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데이터와 사례들이 없는 사이를 뚫고 이해관계는 자란다. 이해가 몰려다니게 되면 사실까지 덮힐 수도 있다. 생협과 정당활동 사이, 제도 밖에서 할 일, 제도 안에서 할 일, 나누고 챙겨야 할 일, 시간의 자장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구분되지 않으면 이해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저녁 모임의 많은 부분이 이 이야기였다. 결론이 쉽지 않겠지만 토론회로 조금은 시야를 확보하면서 가면 어떨까 싶었다.

 

 

 

 

4. 곰나루터를 거닐고 싶었지만 공주보에 갇힌 강물은 저수지처럼 고여서 흐르지 못한다. 하늘 속엔 경비행기 소리가 뿌옇다. 속절없이 가을은 깊기만 하다. 남겨두고 오는 곳이 내려오는 마음을 따라오지 못한다. 허하다. 공허 사이에  새긴 단어가 박힌다. 아리다.

 

 

 

 

 

 

 

 

 

 

볕뉘. 외모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모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한 예로 오드리햅번의 삶, 그리고 말풍선의 말이 남는다.  "인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이다." 라고 ... ... 돌아보면 볼 수록 부끄럽다. 좀더 잘할 것을....늘 덧붙는 후회지만.... 어느 덧 시월도 말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