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



더위는
내리고

조금씩
쌓이는데

눈길을
연신
연신잡는

너에게
분수같은
꽃이라고

분수사이를
깔깔거리며
지나는

아이웃음같은
꽃이라

섞인 여름에
너는
환한
물보라물보라

- 나도 사람들 눈에 눈물을 돌게 만드는 재주가 생겼나보다. 아픔을 참는 만큼 시오소오처럼 눈물은 솟는다. 모임도 여름으로 성큼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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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5-05-11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참 예쁘죠!!
 

사막여우의 글에서 옮김 (아래http://sarantoya12.tistory.com/)

 


 

『현대사상』2015년 2월호에 실린 논문 한편을 번역했다. '반지성주의와 마주하다'는 부제의 이번 호에서 날로 우익화하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글을 번역할까 하다가 신자유주의와 푸코의 논의를 연결짓는 다음의 논의가 조금 더 '지금'의 고민에 맞닿을 수 있겠다 싶었다. 

 

연구자는 앞선 학자와 그의 이론을 끊임없이 현재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것이 학문을 시대 속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며, 연구자 본인을 사회화하는 방식이다. 다음의 글은 연구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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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주체는 두렵지 않다: 푸코와 신자유주의, 반지성주의

 

하코다 테츠(箱田徹, 사회사상사)

 

 

“경영자를 비롯하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활기에 찬 일본의 부활’을 위해 신진대사의 촉진과 이노베이션(innovation)에 맞서는 ‘도전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국가는 이를 서포트함으로써 ‘세계에 으뜸가는 비즈니스 환경’을 정비한다.” -수상관저-

 

“그러나 우리는 복지국가가 끝났다고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않는다. 복지국가란 정신과병원이기도 하며, 장애자시설이기도 하며, 형무소이기도 하며, 가부장제적이고 식민주의적이고 이성애주의적인 학교이기도 하다.” -베아트리스 프레시아도(Beatriz Preciado)

 

“이제 인턴도 누구나 거쳐 가는 과정이 되었다. 주변에 휩쓸려갈 뿐.”

 

  작년 10월말, 비상근[시간강사]으로 담당했던 ‘글로벌커리어’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어떤 학생이 이렇게 발언한 것에 대해 학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의견을 말하며 강의실은 열띤 토론의 장이 되었다. 인턴 설명회나 면접 때문에 수업에 나올 수 없다고 연락하거나 수업 도중에 빠지겠다고 하는 등 취업활동의 홍보가 개시된 후 3개월 정도는 취업활동과 수업이 겹치는 것을 기업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개별 기업의 무책임으로 떠넘기려는 것은 아니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일본사회 전체에서 보면 혜택 받은 환경에서 성장했고, 버블기의 신세대였던 학생들의 깜짝 놀랄 에피소드와 비교해서도 그 조급함과 절실함이 지금에서야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취직한다 해도 결코 평안 무사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유일한 바람은 자신의 현재 능력과 미래의 커리어뿐이다. 그런 생각이 이상할 것 없는 학생들로서는 사람이 노동을 통해 얻는 것은 자금이 아니라 자신의 자본주식에 합당한 소득이라는 인격자본이라는 견해가 설득력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처드 홉스테터(Richard Hofstadter, 1916~70, 미국의 정치학자)가 『아메리카의 반지성주의』에서 언급한 인텔리전스(능력)와 인털렉트(지성)의 잘 알려진 대비에 따르면, 사물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지성인이 되기보다 정보수집과 문제해결에 뛰어난 능력자가 되어 스스로의 인격자본 가운데 지금부터라도 가능한 부분을 고도화하는 것이 첩경이다. 이제 국가는 ‘세계에 으뜸가는 비즈니스 환경’을 정비해가며 그에 ‘편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학생은 능력자를 목표로 하는 혹독함과 그럼에도 장래를 보중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는 것 같다. 한편, 격주로 강의에 출석하는 게스트 강사는 비판적인 사고를 단련하고 필요한 기술을 익히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능력과 지성의 관계는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학생과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야말로 반지성주의적인 움직임을 극복할 어떤 계기가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푸코의 아메리카 신자유주의의 통치론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신자유주의자 푸코

 

  작년 12월말 푸코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인터뷰가 있다. 벨기에의 사회학자 다니엘 자모라의 「푸코를 비판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프랑스어 잡지인 『밸러스트』의 웹사이트에 게재된 시점에서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아메리카의 좌익잡지 『자코뱅』사이트에 영역되어 게재되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12월 11일자 워싱턴포스트지의 웹사이트에서 국제정치학자인 다이엘 드레즈너(Daniel Drezner)가 다루었던 것도 한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타이틀은 아이러니하게도 「푸코가 리버타리안(libertarian 자유방임주의자)의 최고의 친구인 이유」이다. 아카데미즘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쇠퇴 후 등장한 이가 푸코이며,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런데 자모라에 따르면, 푸코는 좌익이 끊임없이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사상에 호의적이었다. 드레즈너는 자모라의 인터뷰를 길게 인용한 후 보수파에게 혐오하지 말고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푸코의 저작은 ‘마르크스보다 다루기 쉬우며 경제학적으로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푸코의 사상을 베이스로 하는 학자는 구래의 마르크스주의학자보다 훨씬 신자유주의와 친화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레스너의 반지성주의적인 태도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지만, 정치적인 좌우를 불문하고 드레즈너와 자모라가 말하는 것과 같이 푸코가 신자유주의에 호의적이었다는 논의는 비록 소수이지만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특히 1978~79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생명정치의 탄생』은 그 후반부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상세하게 언급하면서 주목받았다. 푸코를 좌익아카데미즘의 대명사로 간주하는 사람들이라면, 푸코로부터 하이에크, 프리드만, 베커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 자체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것도 몇 번이나 논의되었다는 것은 푸코에게 그러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아닐까? 자모라의 비판을 살펴보자.

 

  자모라는 ‘푸코는 생전에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상투적인 이미지와 결별하고 싶었다’고 하며, 『생명정치의 탄생』뿐만 아니라 푸코의 생전 인터뷰 등을 보면, 푸코는 자유주의 경제사상에 강하게 경도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곳[자유주의 경제사상]에서 자신의 눈으로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제기하는 좌익세력보다도 규범적이지도 권위적이지도 않는 통치성의 형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방증으로 드는 것은, 구통일사회당과 내셔널센터의 CFDT(프랑스민주주의노동동맹, 당시 총재는 에드몽 메르(Edmond Maire))라는 68년 5월에도 활약했던 두 세력이 1970년대 중반 사회당으로 합류하여 당 내외에서 ‘제2의 좌익’ 노선을 걸으며 푸코에 근접해갔다는 것이다. 이 세력은 사회당과 공산당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중심형의 사회주의 노선(‘제1좌익’)에 대항하여 ‘자주관리’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푸코는 1981년 이후 CFDT와 폴란드의 ‘연대’지원과 협력관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68년 5월’ 이후의 좌익주의 운동과 비판적인 사조의 고양은 70년대 중반 이후 운동의 퇴조와 신철학파의 등장과 함께 변모했으며, 1981년 미테랑 정권이 성립된 이후 좌익의 리버럴화(중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체적인 맥락과 푸코의 지적인 변천이 일치한다는 것이 자모라의 주장의 기본구도이다.

 

  한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푸코의 조수이기도 했던 영국의 연구자 콜린 고든은 사회민주주의에 신자유주의적인 전략이 일부 도입되었다는 의미에서 푸코가 블레어(영국의 노동당 출신의 수상)적인 제3의 길을 앞서 제기했다고 말했다. 자모라는 이를 인용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푸코가 좌익 속에서 프리드만파의 텍스트를 처음부터 착실하게 읽어갔다는 것을 평가하면서 푸코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은 당시 프랑스 사회보장제도개혁과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의 마이너스소득세에 대한 관심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와 동시에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운동의 세력을 거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국가통제의 수단이었던 복지국가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을 복수의 사상가의 이름을 들어 비판하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 자모라는 최초의 인터뷰에 대한 반향을 받아 작성한 텍스트에서, 복지국가가 전환점에 있다는 진단 그 자체는 드문 것이 아닌데 푸코는 복지국가를 넘어서 사회주의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파괴에 적극적으로 공헌했다’고 말한다. 푸코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둘러싼 개인의 건강이나 보건에 관한 욕구가 보편적인 형태로 채워질 수 없으며, 건강의 ‘권리’라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표하는 한편, 그 욕구의 확장에는 제동장치를 걸 수 없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건강보건을 소비와 선택의 문제로 파악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편승하는 것이며 사회적 자유주의나 제3의 길이라는 현대사민주의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반면 현재의 좌익이 요구하는 것은 사회보장제도나 복지국가를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옹호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공평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 자모라의 결론이다.

 

 

  2. 전간기(戰間期)에 등장하는 세 개의 통치성-복지국가, 전체주의국가, 신자유주의국가

 

  푸코는 서방선진국의 통치의 양태의 변용과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두 개의 논점을 ‘안전성’(security)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리하고자 했다. 자모라는 어쩐지 여기서 망설이는 것 같다. 확실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축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푸코는 특정의 제도적인 틀을 제시하지 않았다. 푸코의 신자유주의론에 대한 불만과 비판, 그리고 의외의 평가의 대부분은 이러한 태도에 기인한다. 푸코가 1970년대 말 복지국가의 현황에 내린 비판을 당시의 이론적 지형에 위치지어보자.

 

  20세기 후반 유럽에 등장한 국가의 통치의 존재방식은 세 가지라고 푸코는 말한다. 전체주의국가와 복지국가, 그리고 신자유주의국가가 그것이다. 푸코가 말한 ‘전체주의국가’란 19세기 이후 시대를 특징하는 존재로서 정당과 그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는 국가를 가리킨다. 1977년의 통일사회당의 주간신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는 다른 곳에서 상세하게 논의한 ‘전체주의국가’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한다.

 

  “국가의 사명이란 전체주의가 되는 것, 즉 모든 것을 적확하게 제어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엄밀한 의미에서 전체주의국가라는 것은 정당, 국가장치, 제도에 기초한 시스템, 이데올로기가 하나가 되어 위에서 아래로 균열과 틈새, 일탈이 거의 없이 제어되는 국가를 말하는 것이겠죠. / 온갖 제어장치가 단 하나의 피라미드로 구성되어, 다양한 이데올로기, 언설, 행위를 하나의 바위덩어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푸코는 이러한 타입의 국가는 과거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체주의는 꽤 오랜 기간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의 어느 타입의 명확한 체제를 가리켜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부활을 목도하지 않습니다.” 이 인터뷰는 바더마인호프그룹(Baader Meinhof Gruppe, 독일적군파)의 변호사 크라우스 크로와상의 서독일로의 강제송환문제를 둘러싸고 행해진 것인데, 그의 전체주의국가에 대한 비판은 이 인터뷰의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는 주장은 ‘파시즘’으로 몰리기 쉬운 의회 밖 좌익의 현상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서이다.

 

  국가권력이 연속적 및 항상적으로 진화해간다는 인식은 ‘국가혐오’ 즉 국가권력의 비대화에 대해 좌익과 보수파가 다른 형태로 품는 경계심의 하나의 타입이다. 이 감각은 각각의 국가와 제도 혹은 통치성의 종별성(種別性)을 상실시킬 수 있으며 사회보장과 강제수용소를 동일시하는 것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푸코는 말한다. 한편, 현상의 종별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된 것이 ‘안전성’이다.

 

  “국가와 주민 사이의 관계는 현재, 본질적으로는 소위 ‘안전성의 계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략] 일찍이 이 관계는 영토계약으로서, 국경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주요한 기능이었습니다. / 오늘날 국경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국가가 주민에게 계약으로 제시하는 것은 ‘당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올 수 있는 모든 사고, 손해,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국가를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위하는 것에서 불확실한 사상(事象)에 대한 안전성의 제공에까지 국가와 주민의 관계는 변화한다. 경계할 수밖에 없는 대상은 국가 밖에 있지 않고 국가의 내측이 있다. 테러리즘이 문제시되는 것은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주민의 안전성(치안)을 의도적으로 혼란시킬 뿐만 아니라 개인을 보호해야 하는 제도와 개인 사이의 안정의 관계 자체를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통치라는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통치하는 측과 통치당하는 측의 관계변화로 파악된다. 국가의 주요한 역할은 군비와 대외전쟁을 통해 외국으로부터 자국을 지키며 주민의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에서 국내에 개인과 사회에 일어날만한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사회보장(소셜 세큐리티)이 이 두 가지의 통치성을 잇는 열쇠이다. 광의의 사회보장정책을 국가레벨에서 실현하는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연결하는 어떤 종류의 사회계약이며,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 1941년 영국에서 창설한 <사회보험 및 관련사업에 관한 각 부처의 연락위원회>의 위원장인 베버리지가 1942년에 제출한 보고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1942년에 제출한 이 보고서는 ‘전쟁계약’으로도 볼 수 있다고 푸코는 말한다.

 

  “그러한 사회계약에서 [제 국가는]—전쟁을 행하는 것, 따라서 살해하러 가는 것을 요구받는 사람들에 대해—어떤 타입의 경제조직, 사회조직에 의한 다양한 안전성(고용보장, 질병이나 예상치 못한 사태의 보장, 연금보험)을 제공하는 계약이었다. 전쟁이 요청되는 그 때에 보장계약이 행해졌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전쟁에서 죽을 가능성을 조건으로 내걸고 그것과 맞바꿔 사회보장의 수급자격을 얻는다는 구도는 ‘총력전체제와 더불어 복지국가 혹은 사회국가가 성립했다’는 논의선상에서 보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푸코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전쟁과 통치, 통치자와 피치자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다음의 두 지점이 동시에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복지국가에 의한 주민의 배제와 포섭(혹은 생명정치)이 그 당시의 전환점이었다는 것, 또 하나는 전체주의국가와 복지국가에 대한 반응 혹은 비판으로서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통치의 존재방식이 나타났다는 것. 이 두 지점에서 우익의 국가혐오를 설명해낼 수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사상이나 정책이념은 케인즈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반대, 바꿔 말하면 집산주의와 계획주의라는 의미에서의 국가의 경제개입에 반대하는 입장 하에서 전간기(戰間期)에 형성되었던 제 조류이며, 전후 앵글로색슨형의 신자유주의와 대륙유럽형의 신자유주의로 갈린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필자의 『フーコーの戦争—<統治する主体の誕生>』(2013年)의 3장 참조) 여기서는 후자의 지점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명정치의 탄생』의 1979년 3월 7일의 강의에서 프랑스의 복지국가체제가 1970년대에는 모두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진단 하에 당시 보수정권에서 마이너스소득세가 검토되기에 이른 경위를 상세하게 다룬다. 확실히 푸코는 마이너스소득세라는 구상 속에서 ‘전쟁계약’에 기초한 완전고용형 복지국가와 국민연대의 모델을 방기함과 더불어 절대적 빈곤개념의 도입과 비규율적인 지원의 메커니즘을 간파했다. 그런데 자모라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분석의 동기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사상적 접근이 아니라 국내경제가 전환점을 맞이한 프랑스에 있어서 사회정책의 개혁동향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실제로 69년 이후 경제의 추락과 73년의 석유파동을 거쳐 74년에 성립된 지스카르 데스탱 정권하에서 시작된 움직임을, 푸코는 ‘현재 문제인 것은 포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하나가 짊어져야 할 전체’로서 묘사하고 있다.

 

  푸코는 1970년대의 프랑스는 이중의 의미에서 안전성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한편에서는 치안의 의미에서 안전성(테러리즘, 범죄, 형벌 등)의 문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보장이라는 의미에서의 안전성의 문제이다. 사회보장을 둘러싼 문제는 사람들의 최저한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전후(戰後)부흥기의 과제가 끝나고 욕구가 복수화ㆍ개별화하는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 있다. 83년 출간된 서적에  실린 CFDT 간부와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이러한 욕구를 둘러싼 배제와 포섭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사례를 상세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푸코에게 사회보장에 늘 따라다니는 이 문제는 사람들의 자율에 대한 갈구와 관련된다.

 

  “의심 없는 적극적인 요구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현실의 자율을 보장하면서 자기 자신과 환경 사이의 더욱 풍부하고 많고 다양하며 유연한 관계에 길을 열어줄 보장에 대한 요구입니다.”

 

  존재로부터의 자율 혹은 독립이라는 표현이 사회정책의 논의에서 인용될 때에는 확실히 양의성을 띤다. 그 위에서 푸코는 제도 그 자체가 수요의 증대에 견디지 못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환자들 중 일부는 보험적용제외라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도를 바꿀 때에 당사자 본인의 참가와 분권화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계획을 본인이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호의적으로 말하면, 사회적인 안전성의 동요에 대해 무언가의 형태로 당사자의 결정권을 확대하여 쓰기 쉽도록 하는 것 외에는 방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편 치안(안전성)에 관해서 푸코는 1977년의 앞서 인용했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전한 사회—현재는 ‘안전’이라는 표현이 곧잘 사용된다—란 특정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의 위험성을 인정한 하에서 그 존재를 허용하는 ‘약삭빠르고 교활한’ 성격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 의미에서 안전한 사회는 전면적인 억압을 기정사실화하는 전체주의사회와는 타입이 다르다. 그러나 반면 이 사회는 치안이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사람들에게 부담을 요구한다. 그 내용은 ‘파시즘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것, 그리고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을 과제로 삼아야하지 않는가라고 푸코는 말한다. 이 ‘무엇인지’가 신자유주의형 통치와 관련된다는 것이 최근 몇 년간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3. 생산하는 주체의 생산-인적자본론의 인간학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복지국가와 전체주의국가라는 두 가지에 대항하는 통치성으로서 파악했다. 양자와의 관계에서 말하면, 이것은 통치하지 않는 통치, 통치에 대항하는 통치로 말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생명정치의 탄생』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인간학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2014년 3월에 영면한 인적자본론의 주요이론가 게리 베커(Gary Becker)는 2012년 5월 근무지인 시카고 대학에서 푸코의 강의록 편집자의 한 사람이었던 법학자 베르나르 아르쿠르의 사회로 푸코의 조수이자 강의록편찬자인 프랑소와 에발도와 토론했다. 이 귀중한 자리에서 베커는 인적자본론에 관한 푸코의 논의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바는 거의 없다’고 말하며 푸코의 논의가 중요한 포인트를 적확하게 집어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푸코 자신은 베커의 논의를 요약하면서 한 논점에 대해 두 가지를 부가했다. 노동하는 개인이 경제 분석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그 개인이 생산하는 주체가 되는 것. 당연히 베커 본인은 이 점이 신경 쓰였다.

 

 

  “푸코는 ‘게리 베커는 소비를 둘러싼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도 흥미로운 일이고요.(웃음)”

 

  푸코와 베커 이 두 사람이 관심을 가진 것은 인적자본론에서 개인의 모든 활동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 즉 생산으로서 파악된다는 점이다. 물론 인적자본이라는 사고방식 그 자체는 고전파 경제학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1950년대의 아메리카에 주류파 노동경제학을 혁신하는 존재로서 등장한 인적자본론은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제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개별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점이 크게 다르다.

 

  인적자본론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서 자금을 취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발적인 존재와 떼어지지 않는 인적자본의 소유자이며, 그 자본주식에 의해 프로로서 소득을 취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노동자관은 경제학에 있어서 인간상의 큰 전환을 수반한다. 자유주의경제학이 모델로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인)의 개인을 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교환ㆍ거래를 수행하는 ‘상인’에 빗댄다면, 신자유주의경제학에서는 그와 동일한 경제인을 ‘기업’으로 다룬다. 이 경제인은 자본을 이용하여 소득을 산출한다. 노동자는 같은 일을 한다 해도, 지역과 년대에 따라 수입이 다르다. 이 보편적인 사실이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적자본의 구성이 다르다는 관점에서 잘 설명된다는 것이 인적자본론의 주장이다. 베커는 이 자발적인 관점을 ‘인간중심의 경제학’이라고 부르는데, 맥락적으로는 기업형 경제인의 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온갖 주체를 ‘생산하는 주체’로 바꾸는 조작을 포함한다. 이것이 베커의 소비이론을 흥미롭게 다뤘던 푸코의 관점이다. 푸코는 베커 자신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비하는 인간은 소비하는 한에서 생산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무엇인가를 생산할까요? 그가 생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만족에 다름 아닙니다. 또 소비를 기업 활동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기업 활동으로서의 소비에 의해, 개인은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어떤 자본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자발적인 만족으로 간주되는 무엇인가를 생산합니다.”

 

  혹은 개인은 ‘투자가’가 된다. 부모가 양육에 할애하는 시간은 아이의 인적자본의 충실을 기하기 위한 투자이며 이주는 지위나 보수의 개선을 위한 투자로 이해된다. 이 의미에서 인적자본론의 세계에서는 노동자나 소비자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계급이나 착취도 없다. 마이크로한 레벨에서 보면, 인적자본의 개량을 위해 투자가 행해지며 그 인적자본을 활용하여 소득을 산출하는 생산자=기업으로서의 개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 정책레벨에서는 그러한 개인=기업가가 갖는 인적자본에의 충실한 투자만이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나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라는 원칙이 제시된다.

 

  이와 같이 인적자본론의 주장을 견실하게 파고드는 푸코의 흥미는 정치적이며 인간학적인 것이다. 실천적인 측면에 강한 경제사상에서 기업으로서의 개인, 생산하는 주체라는 인식론적인 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확실히 인적자본론이 의도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을 경제 분석의 중심으로 조직하는 것, 개개의 노동자에 의한 노동을 합리적인 경제활동으로 파악하는 것을 중심적인 과제로 삼는 것이다. 푸코는 인적자본론과 고전파경제학,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노동을 둘러싼 입장차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가능한 것, 그것은 결코 현실의 자본주의가 노동의 현실을 추상화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이른바 현실주의적 비판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경제학의 언설에서 노동자를 추상화하는 방식에 대해 이론적 비판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라고 신자유주의자는 말합니다. 경제학자가 노동을 이 정도로 추상적으로 다뤄왔던 것은 [중략] 고전파경제학자가 경제학의 대상을 자본, 투자, 기계, 생산물 등에서 이뤄지는 프로세스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여기서 말하는 노동의 현실의 추상화란 노동이 균일한 시간이라는 요소로 전환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자본주의가 노동의 리얼리티를 그와 같은 것으로 ‘현실적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고전파경제학이론이 그와 같은 추상화의 조작을 ‘이론적으로’ 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마르크스형의 자본주의 비판과는 반대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시각을 바꾸는 것이 된다. 따라서 노동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내며 그것을 자본주의 중심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생각이며, 그것이 인간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통한다고 푸코는 이해한다. 신자유주의자는 로빈스에 의한 경제학에 관한 중요한 정의—경제학이란 목적과 선택적 용도를 구비하는, 희소수단과의 관계방식으로서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다—를 ‘이용’했다고 푸코가 말한 것은 이 의미에서일 것이다.

 

  나아가 생산하는 주체의 생산, 기업=주체로서의 경제인이라는 도식은 단순한 이념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푸코는 생각했다. 인적자본론의 정치적인 요소와 함의는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그것을 빼버리면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한 정치적 함의의 심각함과 밀도 혹은 그것이 불러오는 위협의 요인이 지금 이야기하는 프로세스의 수준에서 행하는 분석과 프로그램의 유효성 그 자체에 어느 만큼이나 차지하는가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현상의 분석이 활용하는 인간상이 사회현상 일반의 분석으로 확대됨으로써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과의 관계를 역전하고 경제적인 것이 다시금 우위에 서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다뤄야한다는 것이 푸코의 주장이다. 달리 말하면, 앞서 논한 매크로한 레벨에서의 안전성의 통치와 마이크로한 레벨에서의 생산하는 주체에 대한 인간학이 맞물리는 것에서 신자유주의형 통치가 성립한다. 이 점이 바로 푸코가 새로운 통치의 존재방식으로서 신자유주의에, 그리고 그 퍼스펙티브에 기반한 논의의 토대가 되는 인적자본론의 인간상에 강한 관심을 보여준 근거이다.

 

  그런데 온갖 통치실천은 그 무엇의 ‘진리’와의 관계에서 행해진다고 푸코는 생각했다. 신자유주의형 통치에서 진리란 ‘시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치가 자유방임이라는 접근을 통해 존중해야하는 지표가 아니다. ‘통치의 자기제한의 원리가 아니라 통치에 대항하기 위한 원리’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란 국가에 의한 통치가 언제라도 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면서 그것을 감시하며 법적으로 제어하는 구조임과 동시에 그 기준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4. 통치의 분열[失調]과 도전하는 주체

 

  생활면에서 국가에 의한 보호의 전망이 흔들리는 한편, 항상 교활하며 때때로 폭력적인 수단에 의해 사회는 통치된다. 푸코가 논한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관한 안전성(치안, 안전, 사회보장)의 위기의 시대에는 이러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푸코는 그러한 위기에의 응답으로서 부담의 거부라는 전략을 제시한다. 앞서 들었던 77년의 인터뷰에서 ‘권력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해명하는 것이란 안전성(치안, 안전)의 대가로서 짊어질 새로운 속박을 거부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새로운 이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인가’ 라는 어느 질문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안전성의 시스템에서 거리를 두고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사실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편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통치전략을 거부하고 부질없는 요구에는 따르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이 통치당하는 측의 하나의 전략이라는 것이 푸코적인 논의이다. 국가에 의한 통치=통솔에 대해 이끌리는 방향과 그 존재방식에 변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 의한 통치가 이제 와서 국민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당당하게 인정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접근이 여전히 유효할까? 서두에 인용했던 『일본재흥전략』개정 2014—미래에의 도전의 한 구절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경영자를 비롯하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활기에 찬 일본의 부활’을 위해 신진대사의 촉진과 이노베이션(innovation)에 맞서는 ‘도전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국가는 이를 서포트함으로써 ‘세계에 으뜸가는 비즈니스 환경’을 정비한다.”

 

  물론 여기서는 시장경쟁을 성립시키기 위한 환경의 정비가 통치의 역할이라는 신자유주의 통치의 기본적인 이념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제 제도적인 틀을 준비하기에는 글렀다는 체념도 보이는 것 같다. 표제의 ‘도전’이라는 단어에 관해서도 일본경제전체가 안고 있는 과제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과제를 동격으로 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도전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마치 일본경제부활의 열쇠인양 묘사되고 있다.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잠재적인 주역인 기업가와 고도인재가 되는 이들은 한줌에 불과하다. 그와 같은 ‘도전’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호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원의 윤리조차 될 수 없다. 푸코에 의하면, 시장이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 시장외의 제도=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신자유주의형 통치에 특징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위의 텍스트에서 통치하는 측이 어떻게 환경을 정비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푸코가 태어난 시대보다도 통치의 위기가 심화된 속에서 자모라와 같은 푸코 비판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개혁과 재정(財政)소멸에 의해 복지국가의 기반 그 자체가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이때에 푸코와 같은 신자유주의론이 그것을 후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본고에서 검토한 안전성과 인적자본에 관한 논의가 말해주는 것처럼, 푸코에게 현재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위기이며 전환기임을 확인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푸코의 논의로 말하면 통치에 의한 통솔이 혼란스러울 때야말로 통치당하는 측에서는 자율을 요구할 가능성, 자신을 스스로 다양하게 이끌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서두에서 인용했던 페미니스트 베아트리스 프레시아도(Beatriz Preciado)의 텍스트 ‘우리들은 <혁명>을 말한다’의 한 구절에 대해 자모라는 인터뷰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좌익의 전형으로 비판하지만, 프레시아도는 오히려 복지국가의 기능부전이라는 상황을 푸코가 말한 의미에서의 ‘위기’로 포착하며 거기에서 새로운 공동성과 조직화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다.

 

  서두에서 소개한 논의로 다시 돌아가 보자.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개발도상국에서 저널리즘과 UN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게스트 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행해진 그룹발표에서 어떤 그룹은 일의 리스크가 무서운 것인가라는 논점을 제출했다. 리스크란 가능성의 진폭이기 때문에 결과가 부정적이라 해도 독창적인 관점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논의로 발전했다. 토론이 끝난 후의 감상문에는, 정세[政情]가 불안한 곳에서 일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 재미있다고 생각했지 두렵지는 않았다는 소감이 많았다. 그러한 ‘재미’에는 사물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두 가지의 다른 ‘도전하는’ 주체가 동거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도전’에 잘 들어맞는 인텔리전스(능력)의 강화로 나아가는 것. ‘도전’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고 “능력을 넘어서는” 인털렉트(지성)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나 후자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통치의 틀이 벗겨지는 시대에서 미래가 두려워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감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볕뉘. 논문에서 주체를 도전하는 주체로 명명한다. 그리고 두렵지 않다라고 이어서 제목을 달았다. 소시민을 움직을 움직이는 것은 후회와 자책이다. 이는 두려움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가, 사업가로서 주체설정은 내면화되어 있고, 실패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아래 주체로 각인되고 있다 한다. 이를 위해서 비판적인 사유를 하는 '지성'과 '능력'이란 더 많은 정보를 흡수시키는 지식은 구분된다.  도전하는 주체에게, 확율상 500명에 한두명이 실현될 수 있는 도전하는 주체로, 나는 사업가란 인식을 누구든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냉엄한 현실과 지성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증상은 '반지성주의'로 나타난다.

 

실패는 우리의 잘못도, 사회의 잘못도 아니다. 능력이 부치거나 능력이 없는 나의 문제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 나는 사고도 나고, 나이도 먹고, 병도 걸리게 된다. 언젠가는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연결된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현실 인식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함정은 거기다.  당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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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한 것일까 하지만 여기 잡혀있다. 뿌리까지 밝혀내는 흥미는 소진해버렸고, 인간이 아니라 거기에 욕망을 대입해서 너덜해진지도 오래되었다. 하지만 낡은 흔적에 '뿌리까지'와 '사람의 무늬'가 아직까지 이팝꽃이나 아카시아 향처럼 어른거려 혼몽하다. 가끔 지렛대같은 사람사이의 관계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그렇게 가라앉은 지점을 절묘하게 맞춰 들썩 추임을하는지. 그래서 안개같지만 사람들이 내미는 향기와 뿌리까지 악착같이 못하는 스스로를 채근하기도 한다. 사랑을 너머서는 것이 흥미라고 한다. 흥미는 있는 것인지 급진적이기나 한 것인지 되물어 본다. 과거를 지금여기로 끝까지 물어삼키는 삶-삶들만이 답이 아닐런지. 이렇게 고루한 생각도 해본다 찔레꽃이 피기전에 ᆞ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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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르트르 말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맑스주의의 현실, 나의 지평 내에 존재하는 노동자대중의 육중한 현존, 바꾸어 말해서 맑스주의를 살고 실천하며 원거리에서 소시민 지식인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견인력을 행사하는 거대하고 어둠침침한 집단의 현존이었다.” -원거리 견인력 250

 

 

 

싸르트르는 자기 세대에 대해 우리는 사적유물론만이 현실에 대한 유일한 구체적 접근임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맑스주의는 역사의 객관적 차원을 바깥에서부터 이해하는 방식이며, 실존주의는 주관적 개인적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방법 탐구는 상반된 것들을 화해시키는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두가지 완전히 다른 존재론적 현상이 일련의 공통된 등식을 공유할 수 있고 단일한 언어적 술어적 체계로 표현될 수 있는 일종의 통일장 이론의 형태를 취한다. 251

 

발레리의 구체적 작품을 하나의 추상적 관념과 결부해서 그것으로 번역해내는데, 이는 곧 소시민의 개념인바, 실제 이런 사고양식과 동시대에 속하는 독일식 정신사의 그 어떤 개념에 못지않게 플라톤적이고 초시간적인 개념이다. 발레리를 실제 소시민, 즉 일정한 역사시기에 나타난 특정 형태의 소시민과 결부시키는 일은 사실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터인데, 발레리 자신과 같은 다수의 개인적 구체적 실존들을 의미있게 다루지 않고서는 그 사회계급을 파악할 수 없으며, 이것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싸르트르는 이런 추상관념의 지적결합을 진정한 체험적 결합으로 대체하려 하며, 사회적 개인적 생활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시간의 중복이나 지체 및 상이한 시간도식들의 동시적 공존과 접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문제를 다시 역사 속으로 던져넣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관겸과 인간실존의 관계를 역동적 관계로 대체한다. 이는 즉 기투이며, 과거에 의해 결정되기보다 미래를 향해 투사되는 역할의 자유로운 창출로서, 계급관계 및 귀속의 문제다. 259-260

 

역사의 의미는 총체화에 있다고 한다면, 역사의 의미는 있는 것이라기보다 되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변증법적 방식에 입각해, 우리는 인류가 상호 무관계한 집단과 부족으로 생활했던 선사시대에는 실상 역사에 어떤 단일한 의미도 없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세계가 하나로 되어가고 있으며 특정 지역의 사건이 전혀 다른 나라와 사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존재와도 관련되고 영향을 끼치는 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의 삶이 단일한 기투로서 단일한 의미를 지니고 단일한 총체화 과정을 구성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떠할지를 막연하게나마 실감하게 된다. 278

 

존재와 무의 문맥에서 볼 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시대와 주위 세계 전체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 내가 직면한 전쟁은 단지 내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내면화하고 그것에 반응해야 하며, 어떤 반응에 의해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지 않을 자유가 없다는 의미에서만이라도 나의전쟁이다. 282

 

싸르트르는 힘의 반목적성 내지 실천적 타성태란 두가지 부정의 도식이 가져오는 결과는 인간이 외부세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손과 팔을 도구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대상에 작용하기 위해 자신을 대상화하며 타성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타성화한다. 따라서 인간이 소외되고 비인간화될 궁극적 가능성은 애초에 인간이 물질에 대해 취하는 이러한 최초의 기본 관계 구조 속에서 주어진다. 283

 

우리는 결코 단둘이 될 수 없다. 모든 만남은 항상 좀 성급하게 사회라 지칭되는 것을 배경으로 하거나, 적어도 다른 일군의 인간관계를 배경으로 해서 발생한다. 이런 점에서 한쌍이라는 개념, 그리고 3개념에 대한 저항은 이 세계가 텅 빈 공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진정한 고독이나 사생활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스스로 믿으려 함으로써 우리 주위에 공간을 마련하려는 방편이다. 싸르트르 체계에서 타인의 역할은 일시적으로 사물에 의해서도 충족될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표면상 고립된 두사람에게 부재하거나 잠재적인 제3자로 기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물들인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신혼여행 중인 부부는 모텔에 단둘이 있지만, 다른 모든 미국 중산층사회와 함께 있는 셈이다. 289

 

이와같이 3자관계가 우선한다는 생각은 갖가지 풍부한 시사점과 가능성을 지니는 것 같다. 우선 이 개념은 인간의 삶이 그 구조 자체에서 개인주의적이라기보다 집합적이라는 사상에 존재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또 이것은 3자 관계의 기초 위에 구축된 완전히 새로운 심리학 체계의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양자관계의 개념이 정적 순환적임에 비해 3자관계 개념은 동적이다. 이것은 개인 간의 경험이 집단경험에 선행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비판과 존재와무의 책으로 시도한 분석과 같은 개인주의적 차원을 즉시 넘어 고독한 개인이 집단행동과 집단단위를 창출해 그의 존재론적 사회경제적 약점을 극복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실어준다. 291

 

산업문명에 특유한 대부분의 행동을 수행할 때, 나는 혼자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을 따름이며, 이것은 외적이기보다 내적 동일성인데, 나는 자신을 타인 내지 타자로 만들며, 나의 행동양식을 타인의 행동양식이라 생각되는 것에 의도적으로 맞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존재양식이 지니는 존재론적 아이러니는 내가 나자신과 나의 행동을 외부 타인의 존재에 맞추고 있는 동안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타자란 없으며 무한퇴영과 사방으로의 무한도주만 있을 따름이다. 각자는 스스로에게 타자인 그만큼 타자들과 동일하다.”고 싸르트르는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수열성은 거대한 착각이며, 개인의 고독으로부터 여론이나 그냥 그들이라 간주되는 가상의 존재로 투사된 일종의 집단환각이다. 그러나 여론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개인을 수열체 속에 통합하는 것은 여론에 대한 믿음과 그 효과일 뿐이다. 295

 

싸르트르는 우리에게 관료조직이 다시 게릴라집단으로 변신할 수 없으며, 경화된 집단은 쇄신될 수 없고, 다만 새로운 집단형성의 충격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 뿐이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320

 

개인적 인간관계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집단행동의 실패에 대한 싸르트르의 기술도 경험적 측면이 아니라 존재론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싸르트르가 존재와 무라는 책에서 사랑하고자 하는 기투는 존재론적 실패라고 말할 때, 이것은 사랑이라는 실제 체험이 실제로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사랑 그 자체란 스스로 정한 존재론적 기능, 즉 어떤 궁극적 충만함을 가져오거나 다른 말로 해서 시간 자체의 궁극적 종말을 달성하는 기능을 실현하는 데서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따라서 집단 차원에서 존재론적 실패설은 시간 경과, 집단과 상황의 계속적 변화, 세대 계승 등을 강조한다. 이 설은 본질적으로 윤리적 기능을 지니는바, 곧 존재의 윤리라는 환상을 불식하고 우리를 시간 속의 삶과 화해시키려고 노력한다...우리는 대부분 본능적으로 유토피아를 역사가 정지하는 지점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판이란 책의 실존적 요소는 이를 엄격히 불식하려 한다. 323

 

중산계급의 존재환상이 취하는 형태란 바로 후회와 가책, 또는 아마 후회보다 훨씬 더, 후회와 가책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는 두갈래 길로 나아간다. 가책은 과거와 과거의 행동으로부터 나를 떼어놓는 반면, 가책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앞으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어떤 결정적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이런 두려움의 복합심리는 사용가능성 개념에서 적극적 형태로 나타난다. 다가올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을 자유롭게 열어두려 애쓰는 나머지, 나는 미래의 필요에 대비해 현재의 낭비를 두려워하며 수전노처럼 현재를 저장한다. 자아에 대한 이런 완강한 집착과, 이른바 개성으로 알려진, 중산계급적인 내면의 사생활권과 행동여지를 포기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싸르트르의 작품에 낯익다. 326

 

자아의 죽음을 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아를 특별히 변호하기를 포기하는 일을 포함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새로운 심리적 익명성과 비개인성을 획득함으로써 처음으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며 최초로 자신의 입장을 모든 타인으로 구성되며, 어떤 타인과 마찬가지 가치를 지니되 누구보다 낫지 않은 한 전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330

 

세대 간에 이어지는 중산계급 유산의 본질적 부분은 그들이 행한 과거의 폭력, 즉 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행한 폭력이라는 사실이며, 우리는 바로 이것을 앞의 한 절에서 혈통적 죄라고 불렀다. 이것은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변증법적 개념이다. 1848년 세대는 노동자들을 학살했는데, 노동자들은 그 기억을 자기 자식들에게 전하며, 새로운 세대의 공장주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사전에 작정한, 퉁명스럽고 불신적이며 분노에 가득 찬 노동자계급을 대면해야 한다. 이처럼 한번 저지른 행위는 세계 자체의 구조에 편입되어 한편으로는 억압적 입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의혹으로 그 자취를 남기며, 그들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 상황으로 제2, 3의 세대에게 돌아온다. 334

 

내가 근본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결코 그런 결정에 대한 나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정을 회피하는 것은 일부가 해결되거나 일부가 문제가 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동의를 뜻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단일한 상황과 문제에 반응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은 여러 세대에 걸친 계급투쟁의 연속성 때문이다. 337

 

소외란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자신에게 행하도록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 340

 

순수 인간적인 작인보다 경제적인 작인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왜곡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개인적 행위자나 개별 계급으로부터 자유와 유효성을 박할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행위가 역사에서 취하는 기본적인 구체적 형식, 즉 계급간의 투쟁을 추상화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 속에서 인간행위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가 간과하는 것도 바로 이것, 즉 인간행위가 작용하는 대상인 타인과 타 계층이다. 342

 

싸르트르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물화된 관계의 복합체를 인간행위와 인간관계라는 최초의기본적 현실의 측면에서 다시 진술하려고 결심했다. 이는 맑스주의 모형이 역이다. 346

 

안에서 바라본 나와 바깥으로부터 나의 객관적 존재에 대해 내려진 판단 사이의 거리는 타인을 통한 소외’, 즉 타자와의 기본 투쟁의 모든 형태를 특징짓는데, 우리는 그러한 투쟁에 항상 연루되어 있으며, 나는 항상 그것에 책임이 있고, 내가 그냥 존재한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것에 죄가 있다....본 적도 없는 낯선 먼 이방인의 시선은 나의 삶이 영위되는 맥락인 수많은 계급적 집단적 투쟁 중의 하나를 형성하는 만큼, 그 판단으로 나를 엄밀히 에워싼다. 이제 서두에 언급한 바 있는 노동자의 원격 작용평가할 수 있는 좀더 나은 위치에 도달했다. 어떤 구체적 역사적 접촉도 발생하기 전에 단순히 그들이 실존한다는 사실만으로 노동자들이 행사하는, 거의 중력같은 영향력은 본질적으로 바로 시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53

 

역사란 내가 깨어나려 애쓰는 악몽이다.” 그러나 먼저 악몽의 넓이와 세기를 헤아려보지 않고서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 354

 

 

볕뉘. 싸르트르의 책 변증법적 이성의 비판은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부분은 500페이지가 넘어서 드러낸다고 하다. "구체의 차원과 역사 자체의 장"을 말이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앞에서 지쳐 떨어져나간다고 한다. 끝까지 들여다보면  싸르트르이 진면목을 느낄 수 있고, 이 책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사실 실존주의를 그저 따로 떨어진 것으로만 느꼈지 맑스주의를 품에 안거나 안긴 모습은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고 일러준 이도 없다.  많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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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적 대립이 현재 통용되는 더 낯익은 소외 개념과 상당히 겹친다는 점이니, 추상적인 것이나 소외된 것이나 분명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다.다만 왜 서구 사상가들이 대체로 소외 개념을 더 좋아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소외 개념은 명백히 타락하고 퇴락한 현실의 진단을 허용하되, 인간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는 상태를 상상하는, 상응하는 노력을 정신에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외는 따라서 소극적이고 비판적인 개념으로, 유토피아의 계기를 은연중 배제한다. 반면 추상이라는 술어는 반명제의 구조를 갖기 때문에 사고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성의 관념을 보존, 발전시킬 수밖에 없게 만든다. 202

 

우리는 예술에서 구체성이 갖는 두가지 기본 특징을 강조해야 한다. 첫째로, 구체성이 획득된 상황이란 우리가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순수히 인간적 견지에서, 즉 개인적 인간경험과 개인적 인간행위의 견지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다. 둘째로, 그러한 작품은 삶과 경험을 하나의 총체성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작품의 모든 사건과 모든 부분적 사실 요소들은 한 총체적 과정의 일부로 즉각적으로 파악된다. 207

 

루카치는 인간의자유의 가장 기본적인 이미지를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소설가 자신에게서 본다고 할 수 있다. 소설가는 실패담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성공하며, 실로 소설가의 창작이야말로 주인공이 헛되이 추구할 뿐인 물질과 정신의 그 순간적 화해를 가르킨다. 소설가의 창조활동은 신이 사라진 시대의 소극적 신비주의. 소설은 따라서 윤리적 의미를 갖는다. 인간 삶의 궁극적인 윤리적 목표는 유토피아, 즉 의미와 삶이 다시금 불가분해지고 인간과 세계가 하나되는 세계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언어는 추상적인데, 유토피아는 관념이 아니라 비전이다. 따라서 모든 유토피아적 활동의 실험장은 추상적 사고가 아니라 구체적인 서사 자체며, 위대한 소설가는 바로 자신의 문체와 줄거리의 형식적 구성 속에서 유토피아의 문제들의 구체적 실례를 제공한다. 반면 유토피아 철학자는 다만 창백하고 추상적인 꿈, 실체가 결여된 소원충족을 제공할 뿐이다. 211-212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의 제목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인데, 사실 이 책은 정치적이기보다 인식론적이며, 새로운 맑스주의 인식론의 기초를 전문적인 방식으로 확립하고자 씌어진 책이다. 루카치의 계급의식이란 그러므로 경험적 심리적 현상이나 혹은 사회학에서 탐구하는 그 집단적 표현물이 아니라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에 속하는 귀속성 자체가 정신의 외부현실 파악능력에 가하는 선험적 한계 내지 이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구의 이데올로기 비판과는 처음부터 구별된다. 이데올로기 개념은 이미 신비화(현혹)를 함축하며, 일종의 부유하는 심리학적 세계관, 정의상 이미 외부세계 자체와는 무관한 일종의 주관적 그림이라는 발상을 담기 때문이다.....루카치가 적절한 프롤레타리아 인식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이른바 부르주아 철학을 진지하게 취급한 덕분이었다. 루카치는 거짓된 것은 고전적인 중산계급 철학의 내용보다 그 형식이라고 보았다. 220-221

 

맑스의 중산계급 경제이론 비판이 그렇듯, 역사와 계급의식의 루카치도 중산계급 철학의 한계를 바로 총체성의 범주를 감당할 능력이나 의지의 결여에서 찾는다. 이것은 외재적 판단기준만이 아니라 고전철학자들 자신도 관심을 기울인 딜레마였으니, 맑스 이전의 독일철학은 개별적 주체 내지 인식자의 보편성(칸트의 선험적 자아나 헤겔의 절대정신의 개념에서 비로소 추상적인 형태로 제기된 보편성)이라는 문제를 중심에 두었다. 루카치의 독창성은 이 추상적인 철학적 문제를 바로 사회현실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구체적 위치에 되돌려놓은 점, 그리고 인식론 차원의 보편성과 개별 사유자의 계급귀속성이 갖는 관계라는 문제를 제기한 점에 있다. 223

 

루카치가 보기에는 칸트 체계가 그 기념비가 되는 고전철학의 딜레마는 세계에 대한 어떤 태도에서 비롯한 것인데, 이 태도란 철학에 선행하는 훨씬 더 근본적인 것으로,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적 성격을 띤다. 다시 말해 이 딜레마는 우리와 외부대상의 관계를 (그리고 결국 이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정태적이고 관조적으로 이해하려는 중산계급의 성향에서 비롯한다. 마치 우리가 바깥세계의 사물과 갖는 원초적 관계가 만들고 사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시간이 정지된 한순간, 사고로는 결국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사이에 두고 꼼짝 않고 응시하는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물자체의 딜레마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나 거짓문제인 셈이며, 중산계급적 인식의 특권적 계기인 이 애초부터 고정된 상황의 일종의 왜곡된 반영인 셈이다. 224

 

바깥세계를 정태적이고 관조적인 방식으로 아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불가능한데,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자가 바깥세계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며, 이를 직관할 여유 내지 여가가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가 바깥세계의 요소를 사고의 대상으로 설정하기도 전에 자신을 하나의 대상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니, 노동자 자신 속의 이 원초적 소외가 다른 무엇보다도 선행한다. 그러나 노동자 위치의 강점은 바로 이 끔직한 소외에 있다. 그의 최초의 운동은 작업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대상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지식, 즉 자기의식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자기의식은 애당초 대상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에, 바깥세계의 상품적 성격에 대해 중산계급의 객관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참된 지식을 가져다준다.그의 의식은 상품 자체의 자기의식, 바꿔 말하면 상품의 생산과 교환에 입각한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의식 내지 의식화다.” 225

 

호의적인 현대이론가들에 비해 루카치가 우월한 점은 변별적이며 철저히 비교적인 사유양식에 있다. 그는 현대적 현상 내부에 위치하면서 그 근본적 가치들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이 현상을 오직 그것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사람과는 다르다. 그는 그것을 규정짓고, 하나의 역사적 계기로서 그것의 경계를 확정하여 그것이 아닌 것들과 구분지을 수 있다. 238

 

루카치의 작업은 서사와 총체성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이런 근본적으로 경험적인 관찰들에 하나의 이론틀을 제공해준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다름 아닌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전문가의 견해를 재확인해주는데, 하이데거는 맑스주의를 단지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존재론으로, 그리고 우리와 존재 자체의 관계를 회복하는 근원적 양식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제 하나의 사회적 역사적 실체로 파악된 이런 존재로의 열림에 대해 형식적 기호이자 구체적 표현이 되는 것은 바로 서사. 245

 

 

볕뉘.

 

  루카치와 벤야민편을 읽다보니, 국내에서 미학이나 복제로서 예술 등으로 소개되어 진면목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고 한다. 미학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맑스를 다시 읽으며, 사회 역사적 변증법을 살려내고 현실에 기반한 인식론의 확장과 역사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였다 점이 정작 회자되고 논의되어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 자료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의 4장 사물화부분을 읽게 되었다. 사뭇 책소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원문의 놀라움이 그대로 전이되는 듯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인식론이자 현실을 재고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접혀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대위하는 순간 폭발적으로 살아날 핵심인식이 아닌가 한다. 부디 편견과 오독 왜곡에서 벗어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함께 맛보기를 바란다. 현실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없다보니 이론의 씨앗도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싶다. 번갈아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다시 한번 느끼게 되지만 제임슨의 책 제목이 맑스주의와 형식이다. 왜 형식, 역사화하는 것이 중요한지, 변증법과 자신의 문체, 전체성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다음편 싸르트르가 더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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