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레히트의 ‘k씨의 이야기‘ – 소피스트 철학자에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입니다. ! 그 한마디에 귀가 먹을 정도의 박수가 쏟아진다. 거기서 k씨는 의문을 가진다. 혹시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덧붙였는데 박수 소리에 묻혀, 이후 이천 년 동안 다음 말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48

2. 정신과 관련된 정서들로부터 따라 나오는 모든 능동적 작용을 나는 마음의 강인함과 연결지으며, 마음의 강인함은 굳건함과 관대함으로 구별한다. 왜냐하면 나는 굳건함을, 각각의 ㅅㅏ람이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ㅎㅏ는 노력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편 관대함의 경우는, 각각의 사람이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우정의 마음으로 다른 모든 ㅅㅏ람들을 돕고 그들과 우정으로 결합하고자 ㅎㅏ는 노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ㄴㅏ는 오직 행위자 ㅈㅏ신의 유용함을 목표로 ㅎㅏ는 작용은 굳건함과 연결시키고, 다른 이들의 유용함도 목표로 ㅎㅏ는 작용은 관대함과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절제심, 침착함, 위급 상황에서의 평정심 등은 굳건함의 종류들이다. 하지만 겸손함이나 ㄴㅓ그러움은 관대함의 일종이다/이런 정리들로부터 명백해지는 것은, 우리가 외부 원인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휘둘린다는 점이며, 마치 반대 방향에서 부는 바람들에 파도가 일렁이듯이, 우리는 출구도 모른 ㅊㅐ, 운명도 모른 채 동요한다는 점이다. 51

3. 실로 많은 오류들은, 오직 우리가 이름을 실재에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날 뿐이다 / 그들의 정신 속만 살펴본다면, 그들은 확실히 실수를 범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수를 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종이 위에 쓰인 숫자와 같은 숫자를 그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62

4.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자주 생생해진다. 왜냐하면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것을 촉발할 수 있는 더 많은 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71

5. 오직 자유로운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72

6. 작가의 역할은 상황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독자가 더 이상 그 상황을 피해 갈 수 없게. 72

7. 소비주의는 모든 질문하는 행위를 소비해 버린다. 과거는 쓸모없는 것이 된다. 83

8.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바리케이트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순간을 지킥 위해서다/서사는 순간을 지울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들릴 때, 선적인 시간의 흐름은 멈추고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는 의미 없는 것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역사의 목적은, 시간을 탐색하고 정복하는 일에서 모두가 형제 혹은 동료가 되기 위해 시간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85-88

9.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며,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 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누군가 읽은 이야기의 혈류가 그 누군가가 ㅅㅏㄹ아온 이야기의 혈류와 만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되고 있는, 혹은 앞으로 ㄱㅖ속되어 갈 어떤 모습에 보태진다. 90

10. 가난한 자들은 온갖 종류의 계략을 꾸미지만 가장하지는 않는다. 부자들은 보통 죽을 때까지 가장만 한다. 그들에게 가장 흔한 가장이 성공이다/오늘날의 희망은 손에서 손으로,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은밀하게 전해지는 무엇이다/모든 것은, 그것이 얼마나 완전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이 실존하기 시작했던 때 지니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힘을 가지고 항상 실존 속에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이 점에서 동일하다. 93,94

11. 인간 정신이 어떤 외부 물체를 현존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한, 곧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한, 인간 신체는 외부 물체의 본성을 함축하는 방식으로 변용된다. 97

12. 이성의 본성에는 어떤 영원의 관점에서 실재들을 지각하는 일이 속한다. 104

13. 길거리 시장의 정반대다. 그곳에서 핵심은 흥정이다. 길거리 시장에서는, 모두가 최선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창고형 슈퍼마켓에서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도둑놈으로 여겨진다/직원들의 권리에 대한 도둑질, 농산물업계, 전 지구적인 식품 유통업계와 연결된 그 회사의 도둑질, 한때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쥐고 있던 주도권,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변종과 종자, 비료, 기를 가축들 등에 대한 결정권을 뺏어 간 것. 한 때 이런 것은 지역 내에서 현실에 맞춰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오늘날은 거대 기없이 생산자를 공급하고, 생산될 게 무엇인지 지시한다. 전 지구적인 농업이 미리 계획되고 이ㅆ는데, 목적은 자연 전체를 상품으로 ㅂㅏ꾸는 것이다. 110

14.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기쁨에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에서 생겨나는 욕망보다 더 강하다. 111

15. 목적인에 관한 교의는 자연을 완전히 전도시킨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의는, 실제로는 원인인 것과 결과로 간주하고 결과인 것을 원인으로 간주하여, 본성상 첫번째로 오는 것을 가장 나중에 오는 것으로 만들고, 또한 최상의 것이며 가장 완전한 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13

16. 만약 인간에게 있는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등하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정신이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아니라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 그 정신은 혼동되고 단편적인 인식만을 갖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 117,118

17. 사고하는 실체와 연장되는 실체는, 때로는 이 속성에 의해 인식되고 때로는 다른 속성에 의해 인식되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다/드로잉을 하는 연장되는 무엇의 외곽선 - 연장되는 무엇 또한 하나의 구성요소임을 종이 위에, 드로잉의 표면에 보여 주는 것이다./드로잉의 선은 초조하고 팽팽하다...드로잉을 그리는 ㅅㅏ람은 끊임없이 연장되는 것 안에 홀로 있습니다/물체들은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것이지, 실체의 관계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게 아니다. 119-122

18. 우리는 보통, 우리가 있는 곳에서 이백 피트 이상 떨어져 있는, 또는 우리가 판명하게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모든 ㄷㅐ상을, 우리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모든 대상을, 우리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상상한다...그것들 모두가 ㅁㅏ치 시간의 한 계기에 놓여있는 것처럼 간주한다. 137

19. 모든 것을 신의 무관심한 어떤 의지에 종속시키고, 모든 것은 그의 만족에 달려 있다고 제시하는 의견이, 신은 모든 것을 선의 계기에서 실행한다고 보는 관점보다는 진리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20. 나는 습관적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혼란을 마주함으로써 종종 어떤 분명함을 얻기도 하죠/지성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는 필연적인 것 ㅇㅣ외에는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으며, 참된 것 이외에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신체의 유동적인 부분이 외부 물체에 의해 신체의 무른 부분에 대해 표시를 남기도록 규정될 때, 유동적인 부분은 무른 부분의 표면을 변화시키며, 말하자면 자신을 자극하는 외부 물체의 무른 부분 위에 남기게 된다...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것을 ㅈㅣ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신체가 좀 ㄷㅓ 많은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정신은 그 신체가 다른 신체들과 더 많은 것을 공통으로 지니면 지닐수록 더 많은 것들을 적합하게 지각할 수 있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145,147,148

21. 우중은, 원인으로서의 돈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얻는 기쁨이 아니고서는 어떤 다른 ㄱㅣ쁨도 거의 상상하지 못해 신체에 인색하게 되는데 그 만큼 자신의 재물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기 ㄸㅐ문이다. 151

22. 스피노자는 세 가지 형태의 지식에 대해 서술했다. 첫째, 소문과 인상에만 근거하여, 전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 멋대로의 지식. 둘째, 적절한 개념을 활용하며 사물의 성질에 집중하는 지식. 그리고 셋째,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는, 그리하여 신에게 이르는 지식. 153

23. 드로잉을 할 때, 나는 종종 순간적으로 신체의 생리현상과 비슷한 어떤 일에 가다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드로잉이라는 행위 혹은 드로잉을 하려는 ㅁㅏ음은 어떤 원형, 논리적 추론에 앞서 있는 어떤 것에 닿아 있다./드로잉를 할 때 나는, 하늘 길을 찾아가는 새나, 쫓기는 와중에 은신처를 찾아가는 산토끼, 혹은 알 낳을 곳을 알고 있는 물고기, 빛을 향해 자라는 나무, 자신들만의 방을 짓는 벌 들에게 조금 ㄷㅓ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드로잉은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본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을, 그리고 자기 ㅈㅏ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다/모든 드로잉은 각자의 존재 ㅇㅣ유를 가지고, 독창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매번 드로잉을 ㅅㅣ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모든 자발적인(주문받은 것과 구분되는) 드로잉은 비슷한 ㅅㅏㅇ상력의 작동을 거쳐 ‘이륙‘해야 하고, 그 상상력의 힘으로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155-157

볕뉘.

0. 존 버거, 스피노자, 존 버거의 스피노자. 드로잉을 했다는 스피노자의 그림은 발견할 수 없다. 스피노자 안으로 스며들어 존 버거가 드로잉을 말한다.

1. 그의 말인지, 스피노자의 마음인지 행간을 헤아릴 길이 없어 그냥 옮겨 적어본다. 어찌되었든 스피노자로 가는 길목, 드로잉으로 가는 길목 한껏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글과 그림이다.

2. 프리지어 꽃과 꽃병, 한 송이에 그 열쇠를 담고 싶다. 꽃말이 아마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던가....

3. 드로잉과 이 멋진 책을 선물하고 싶다. 꽃 봄이네요.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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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단지 세상의 숨겨진 정보가 아니라 사유능력을 가진 인간들의 상호주관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적잖은 근대철학가들이 강조하였다. 이와 더불어 학문의 모델은 세상의 숨겨진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정보로 전달한다는 정보이론 모델에서 사람들의 소통의 결과물이라는 소통이론의 모델로 옮아갔다. 011

베르그송과 영 –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이란 결코 양적으로 나타내거나 공간화할 수 없다. 현대 모든 물질문명은 공간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지닌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생명의 본질이란 공간화해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 마치 영이 표현한 ‘윙윙대는 소리‘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순수한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 271

건축 과정에서 도면으로 수향화할 수 없는 불규칙한 곡면의 형태는 배제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직선과 사선, 원이나 타원의 호와 같은 규칙적인 선만 시공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건축물의 형태는 획일화되고 만다. 272

베르그송은 각각의 한 점에서 운동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운동이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이 아닌 하나의 시간적인 사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적인 사건, 즉 시간은 전적으로 공간과는 다른 것이며 결코 공간적 좌표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공간화될 수 없으며 계량화할 수없는 순수한 시간을 일컬어 ‘순수지속‘이라고 부른다. 공간적으로 계량화될 수 없으므로 이 순수지속으로서의 시간은 오로지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될 뿐이다./사랑하는 연인을 ㄱㅣ다리는 십분과 고된 작업 뒤 갖는 꿀맛같은 10분간 휴식은 같은 십분이 아니다./현실의 운동, 나아가 운동하는 생명체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순수지속‘이다. 274,275

베르그송이 말하는 이미지는 ‘감각적 재료‘에 가깝다/자동차라는 물질은 그것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을 종합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물질이 이미지들의 총합으로 ㅇㅣ루어져 있다는 것은 유물론적 견해에 잘 부합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ㅇㅣ미지라는 것은 인간의 감각에 의해서 파악되는 주관적인 측면을 지닐 수밖에 없다/자동차라는 물질을 ㅇㅣ루는 ㅇㅣ미지를 인간의 감각과 무관하게 그것에 앞서서 존재하는 ㅈㅏ립적인 물질로 이해할 수 없다. 이미지의 총합으로서의 물질이라는 베르그송의 견해는 유물론적이면서도 관념론적인 특성을 지닌다./베르그송은 사물이 지닌 무수히 많은 이미지 중 일부(짠맛, 흰 결정체, 물에 녹는 성질 등)를 종합하여 만들어진 통합적인 이미지(소금)를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부른다/비결정성의 ㅈㅣ대 – 우리가 알고 있는 소금ㅇㅣ라는 사물은 무한히 많은 이미지를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비결정성의 지대‘이다/지각 – 그는 신체라는 이미지가 지각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특권을 ㄱㅏ졌다고 간주한다. 인간의 신체와 사물이 마주했을 때 사물은 신체라는 이미지를 변경하지 못하지만 신체는 사물의 이미지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의 지각활동에는 그 밑바닥에 프레임을 짜는, 보다 근원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그거ㅅ은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는 심층적인 영역에서의 정서적 차원이다. 베르그송은 이를 ‘정념 affection’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지각은 바로 정념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77-281

볕뉘

0. 책상 한켠에 반년은 족히 묵혀두고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손을 내밀면 들어올릴 수 있는 거리의 책. 새벽에 잠이 깨어나서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하버마스, 알튀세르, 베르그송을 우선 살펴본다.(곁에 두고 짬날 때보면 좋을 책이다. 많이 탐독하지 않은 듯싶다)

1. 한편의 예술작품과 대유하여 설명하는데 요점을 공감하게 하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현대사상가들의 맥락도 잘 짚어주고 있는 것 같다.

2. 베르그송이 늘 가물가물하였고, 다시 읽고싶은 충동에서 배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말미는 역시 스피노자를 함께 읽기를 요청하는 듯하다.

3. 어제는 겨우 산진달래 잔가지 몇송이를 구할 수 있었다. 산등성이까지 올라갈 수도 없고 우회하며 산책하는 길섶 한켠에 말이다. 개나리는 만개했고 벚꽃도 꽃망울이 올라오고, 산수유는 피었고, 진달래만 피면 사무실이 봄빛으로 화사하겠다. 이번 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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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자유주의가 사회, 문화, 신경체제에 가한 영구적 손상과 인간적 존엄을 짓밟는 노동 착취의 비참함을 직시하자 98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지만, 말춤이나 광고를 쳐다보는 일에는 순순히 투항한다. 57

미디어비만 – 인터넷 블랙마켓에 전시된 터무니상조회의 작품 ‘미디어 아귀와 천사들‘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인쇄하여 옷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미디어에 둘러쌓여 비만이 된 인간을 표현하였다. 59

오늘날의 포르노는 타인의 기쁨과 아픔을 나의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감수성의 무능력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결핍되거나 말소될 수밖에 없는 언어의 빈자리가 외설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이는 성만이 아니라 음식, 불안한 노동의 회로, 텔레비전 뉴스와 반려동물, 정치인 연설물, 폭력적인 정보환경 모두를 포함한다. 64

게이미피케이션 –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재미있는 요소를 부여하여 게임처럼 만드는 것을 말한다./확률형 아이템 때문에 현대 게임은 퇴보하고 있다. 과정의 서사를 확률로 압축하고 결과만을 제공한다. 경쟁의 과정이 주는 재미는 사라지고, 남보다 높은 레벨로 올라서는 권력 구조의 쾌감만 남았다. 속도의 경제, 결과 중심의 세계관이 게임을 파친코로 만들었다.(게임비평가 이경혁)/현대의 비디오 게임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을 내면화하는 훈육 장치로 비디오 게임이 동원되고 있다. 그 흐름을 ‘게임이 된 전쟁, 전쟁이 된 노동, 노동이 된 게임‘이라는 악순환의 구조로 정리한다.(신현우) 73, 75

신현우는 ㄱㅔ이미피케이션 사회에 대응할 방법으로 게임 ㄱㅣ술에 대한 항구적인 재발명을 통해 자본화된 지각-인지-육체의 변화가 ㅇㅣ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이라는 ㄱㅣ계에 내재한 전쟁, 자본의 ㄱㅣ술 코드를 재설계해서 사회를 재발명하자는 ㅂㅣ전이다.(미학적 ㄱㅔ임-Paper, Please/Journey/Monument Valley/The Stanley Parable) 77

게임중독자의 문제점은 생활습관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숭앙하는 체제 순응자와 게임 중독자는 쌍생아처럼 닮았다. 79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경향은 무지와 무책임, 무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이는 마치 성직자 도움 없이는 성경을 읽지 못했던 중세의 문맹자들 신세와 비슷하다. 2010년대는 디지털 중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90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수익 모델에 철저히 구속되어 있다. 93

오늘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버튼으로 이뤄진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일뿐, 유기적 다양체인 기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버튼 너머의 세계에서 자기 언어로 생각을 적어나가는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것은 버튼 위에 짓눌린 시간을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8

볕뉘.

0. 기술비평이 전무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이 늘 있어 왔는데, 모처럼 이에 해당하는 알맞은 책이 있어 반가웠다.

1. 적정기술이나 기계비평은 다소 익숙한 편이라 디지털 비평가인 임태훈교수의 글을 읽어보았다. 정보와 접근방법에 있어 깊이를 요하는 부분들이 있어 신선했다. 이 글로 디지털 비평에 대한 여러 책들을 만나보고픈 느낌도 든다.

2. 책방 소개 도서 - 오른쪽은 이영준교수의 독립출판물은 예전에 구입해서 읽었는데 날카롭고 좋았다.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도 새겨보면 좋을 것 같고, 임태훈교수의 책도 관심이 많이 간다. 궁금증이 갈증으로 이어졌으면 싶은데 봄이다. 딱딱하지 않은지 싶다. 대안 게임이라고 하는 2010년판 걸작게임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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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거리 한가운데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둥글게/더 둥글게/파문이 번졌을 테니까/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에 당신은
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2.

거울 저편의 겨울 2

새벽에/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어떤 꿈은 양심처럼/무슨 숙제처럼/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빛을/던진다면
빛은/공 같은 걸까
어디로 팔을 뻗어/어떻게 던질까
얼마나 멀게, 또는 가깝게
숙제를 풀지 못하고 몇 해가 갔다/때로/두 손으로 간신히 그러쥐어 모은/빛의 공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따뜻했는지도 모르지만/차갑거나/투명했는지도 모르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거나/하얗게 증발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거울 저편의 정오로 문득 들어와/거울 밖 검푸른 자정을 기억하듯/그 꿈을 기억한다

3.

그날 우이동에는/진눈깨비가 내렸고/영혼의 동지인 나의 육체는/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캄캄한 불빛의 집)
아아 첫새벽/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늘 거기 눈뜬 슬픔,/슬픔에 바친다 내/생생한 혈관을, 고동 소리를 (‘첫새벽’)
그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회상’)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 거야. (‘서시’)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어떻게 해야 하는지/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괜찮아/왜 그래, 가 아니/괜찮아/이제 괜찮아 (‘괜찮아’)

4.

저녁의 소묘 5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두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투명한 칼집들을 그렸다
(살아 있으므로)/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볕뉘.

0. 저녁, 새벽, 거울, 겨울, 살얼음, 죽음, 심장, 피, 눈, 눈물, 영혼, 불꽃, 빛 - 단어를 그러모아 본다. 주루룩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린다. 다시 거꾸로 뒤집어본다. 한송이 한 송이 함박눈처럼 살얼음위에 내려앉는다. 빛이 반짝였다. 사르르 녹았다. 달항아리에 부었다. 봄꽃가지를 넣었다. 매화같은 눈물이 피었다. 얼어붙어 볼 수 있는 슬픔이 아니라 나뭇가지 혈관을 타고 올라 피어나는 희망의 파편들... ...

1. 잊힐까 싶었고, 아쉬웠고, 밑줄그은 곳들이 새록새록 올라와 남긴다. 고통으로 빛의 지문을 찍는 작가라는 표현. 맞는 말일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 뿐이야. 빛은 빛은 무엇일까 공만은 아닐거야. 빛은 숙제. 그래 아직 숙제. 시가 남긴 질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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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0. 산문시인 파리의 우울에 끌려 미술비평가이자 현대시를 연 시인인 보들레르를 읽는다. 34살차이나는 두번째 부인에게서 난 보들레르 6살때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한 아버지를 여위었다. 부친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고 물쓰듯이 돈을 뿌리고 다녔던 보들레르는 재산을 압류당하다시피하고 매달 조금씩 받아썼다. 그렇다고 그 버릇이 바뀐 것을 아니었다. 삶과 일상을 늘 위태로운 지경으로 모는 그는 그 경계를 늘 글과 작품으로 단련시킨다. 시대의 우울을 고스란히 품고 작품으로 추출해낸다. 그 책 속의 책 가운데 하나가 말라르메였다. 말라르메의 시집. 평생 극히 적은 시를 쓴 그는 작품을 낳기 위해 끊임없이 삶을 채근한다. 그리고 조금씩 읽다가 늘 주시당하던 그 책 글렌굴드 피아노 솔로를 보게된다. 그리고 다시 보들레를를 그 책 안에서 만났다.

1. 예술을 위한 예술. 그 예술에는 예술만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치열한 삶 아니 괴팍스럽기까지한 원칙과 철칙. 어쩌면 시대가 말하지 못하는 멜랑콜리를 그대로 안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을 지켜주는 것은 사유와 삶, 고독이었다. 능히 즐기는 고독. 밤새워 자신과 작품과 부단히 씨름하는 나날의 연속인 듯싶다. 보들레르는 젊을 때 걸린 성병으로 말년 자주 의식을 잃기도 하고 아팠다. 그 날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원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엄중했다. 그를 읽으면서 이시가와 타쿠보쿠가 겹쳤다. 드나들던 유곽. 빚에 대해 빚처럼 생각하지 않던 삶의 방식. 타쿠보쿠는 시에 자신의 성찰과 내면의 부끄러움을 거침없이 넣었다. 삶의 부끄러움을 넣을 줄 알던 시인. 그것이 그의 단명한 목숨이 아니라 사회적 삶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마흔여섯에 유명을 달리한 보들레르 역시 날선 자학과 귀족주의가 번갈아 감돈다.

2. 음악은 쉽지 않다. 결국 만나는 길이 음악이라고 하지만, 글렌굴드 피아노 연주를 듣거나 읽으면서 기괴하면서 이해할 수 있기도 한 것 같다. 연주자가 연주를 하지 않고 몇달 동안 몇 주 동안 서성거린다. 기껏 연습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두번. 될 수 있으면 피아노란 사물과 거리를 둔다. 사물이 아니라 건반의 느낌과 발성상태까지, 그날의 습도까지 감지할 것 같은 연주자. 단 한번인 피아노의 음내림을 기원하는 무당같은 연주자. 시간이 아니라 한음 한음 공간을 만든다는 연주자.

3. 어떻게 하다가 이런 볼 것 같지 않은 책의 숲길로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한번 괄호를 다시 한번 치면서 읽고 싶다. 음악 대신에, 유행 대신에...또 다른 무엇. 사유의 갱부들... ...예술가의 낯설고 날선 일상들로 사유의 폭을 찢어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번 달은 이 들 사이에서 더 앓게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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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들레르

2. 말라르메

그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꽃을 보았다면 너는 그저 그런 꽃 한 송이를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네가 정말로 무심한 상태에서 그 꽃을 보았다면 너는 우주의 한 얼굴을, 지극히 작은 얼굴이지만, 본 것이다. 말라르메에게서 낡고 우연한 관념들을 차례로 부정하고 색조와 선율로 하나된 인상이 되려는 이 시어의 지평선에 순수 관념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시구를 파들어” 간다는 것은 마음 속에 이 투명한 거울을 마련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한 시인에게서 그의 언어의 고행은 바로 그의 실존의 고행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32

얼음에 갇힌 백조가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노력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명철하게 알면서도 순백의 얼음에 능동적으로 자신을 붙박을 때도 38

책의 개념은 그의 시쓰기 속으로 들어와 내적 비평의 기능을 했으며, 사물과 생각과 말의 관계에 대한 성찰의 틀을 마련했다. 41

말라르메의 [최신유행]이란 8호까지의 잡지는 치밀하고 난해한 말라르메의 시와 반짝이는 작은 장식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아름답고도 무의미한 유행의 세계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고, 19세기 이후 현대의 패션 산업이 어떻게 예술화의 길을 밟았으며, 모던파의 예술이 어떻게 현대의 유행에서 영감을 받았는가를 기술하는 가운데 이 잡지를 그 중요한 단계에 위치시키고 있다./”사물이 아니라, 사물에서 산출되는 효과를” 그리려 했던 말라르메의 시법이 다른 방법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42

외국어 속에 마법으로 묶여 있는 저 순수 언어를 자기 언어를 통해 풀어내고, 작품 속에 갇혀 있는 저 순수 언어를 작품의 재창조를 통해 해방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번역가의 과제”라는 벤야민의 말이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44

3. 글렌굴드

굴드의 고독은 찢김이 아니고 스스로 아무는 상처였다. 풍요로운 은신처, 모아들이는 장소, 그는 묵상을 했던 것이다. 릴케처럼 그도 “나는 과실 속의 씨처럼 일 속에 있습니다.”fㅏ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늘 혼자서 보냈다. 그건 내가 비사교적이기 때문이 아니고,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작업하기 위해 머리를 쓰기 바란다면 자아 규제 – 바로 사회로부터 자신을 절단시키는 한 방식 – 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을 산출하고자 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사회 생활면에서 다소 뒤떨어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37

연주회는 음악을 현재형으로 만들려고 ㅎㅏ지만, 사실은 청중을 그들이 듣는 것에서 멀어지도록 한다고 굴드는 믿었다. 연주회에서 연주를 할 때, 그는 음반이나 텔레비전 연주와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ㅅㅏ람들이 가장 생생하고 가장 직접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스튜디오 안에서 이루어지는 빛나는 아름다움의 탐구의 죽은 그림자라는 듯이. 절단, 동시 녹음, 반복 녹음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보들레르라면 ‘화장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으리라. 보다 노골적으로 굴드는 상궤를 벗어난 아름다움, 임상실험, 해부를 원했다. 48

그의 부재는 보다 강렬한 현전이라 할 수 있다. 굴드는 청중을 원했으며, 더 많은 ㅅㅏ람들이 열정적으로 그에게 올 수 있도록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았다. 59
자신의 생각들과 함께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어렵지 않게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고 그의 공격을 살짝 피해 갈 수 있는 능력, 이런 것들이 우정의 본질이 아닌가?/굴드는 사람들과의 의사 소통을 거부했지만, 그가 거부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시대‘라는 명목으로 팔아먹은 이 텅 빈 말, 비의사 소통이었다. 그의 고독은 고독 속에 있는 각자를 만나려는 수단이었다. 굴드는 우리에게 우정을 증명해 주었다. 65

이 예술가의 이같은 별난 행동들을 기인의 전설로 치부해버리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나는 반대로 이 육신의 병, 이 공포가 음악가에게 기계의 작동에 ㄷㅐ한 극도의 예민함과 섬세한 조음감각, 그리고 그의 세련된 연주를 가능케했다고 믿는다. 72

굴드에게 있어 음악은 일종의 ‘아래‘에 대한 사랑이다. 음향은 아래로부터, 피아노에서 오는 것이지, 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손가락은 단지 이 음향을 해방시키기 위해 있다는 생각. 아무리 낮게 내려가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84/음향이 밖에서 전달되어 오지 않고, 마치 악기의 내부로부터 추출되는 것 같다. 85
그는 ‘아름다움‘을 접합과 절단, 합성과 분해, 외과적인 미의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술은 정보를 재생해 내는 도구가 아니고, 예술적 의미에서 정보를 조작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스튜디오는 그에게 피아노와 똑같은 악기였다. 89

그가 무대를 떠난 것은, 연주홀이 음악을 듣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아니라는 확신에서였다. 그곳엔 형상들이 현존하며, 따라서 고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연주회는 부도덕했다/악마의 간계. “예술가는 위험에 처한 존재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90

굴드는 놀라운 방식으로 시간을 얽히게 하고, 도취 상태에서 기다림을 따라 잡는다/연주회에 대해 굴드가 가장 꺼렸던 점이 어찌 보면 시간성이다. 그는 연주회 시간을 혐오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연주자가 움직이는, 방향지어지고 역전 불가능한 시간. 95, 96

더 잘 연주하기 위해 거리를 둘 것. 이것이 굴드의 미학이다./듣기보다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 자신의 몸의 지체를 분리시키고, 자신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음악가의 시도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시도이다. 그렇지만 굴드는 적극적으로 주장했다./굴드의 미학은 발견을 돕는 미학이다. 본능적으로 연주가들은 제거하기보다는 첨가하는데, 그의 미학은 제거하는 편을 택한다. 99, 101

굴드가 남긴 것은 무게가 없는 거대한 것, 느끼기보다는 명명하기 더 어려운 것, 가까이 다가갈수록 잡히지 않는 무엇이다.(미는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것, 우리를 그 영향력 속에 가두어두는 것이다.)/아름다움은 견딜 수 없고 냉혹하다. 그것은 무자비하게 우리의 눈길을 후려치고, 귀를 유혹하고, 대기중인 우리의 말들을 낚아챈다. 104, 105

그는 음악을 따고, 들어올리고, 아니면 공중에서 낚아채는 듯했다. 언제나 밖에서, 뒤로 물러서며 끝없이 한계를 넓혀 가는 어떤 공간 속에 있듯이 그는 음악 속에 있었다...친숙해지면 음악이 꺼져 ㅂㅓ리고 만다...무서운 것이 잊혀지고 나면 아름다움은 부재한다./우리의 원래 모습보다 한 발 앞선 곳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아주 스타카토적이고 점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이 secco식의 연주를 통해 탁월한 밀도와 놀라운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106, 107, 108

굴드는 피아노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본다. “네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지 내가 알려면 너는 아주 분명한 분석적인 ㄱㅐ념을 가지고 내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더없이 추잡한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피아노는 대답하지 않고 질문한다. “이것이 정말 네가 바라는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그 너머로 나아가도록 다그친다. 굴드는 피아노의 이같은 점을 좋아했다. 그의 방해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113

굴드는 유채색을 싫어했으며, 화려한 빛깔의 방에서는 일을 할 수도, 분명한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회색과 암청색을 간신히 견뎌낼 수 있을 정도였다./그는 상상의 음질을 원했으며, 존재하지 않는 음을 찾곤 했다. 잃어버린 음이 아니라, 부재하는 음을/”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이 된다”는 바그너가 ㅍㅏ르지팔의 기본 미학으로 삼았던 원칙이었다. 굴드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갱도를 파는 광부, 혹은 ㄱㅏ장자리를 둥글게 다듬는 조각가가 생각난다. 울림을 지닌 재료를 가지고 하는 작업. 다시 시작하거나 회복이 불가능한 작업/음악의 촉각적 공간적 개념을 공유한다. 즉 색채가 입체감을 인지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굴드가 음악에서 과육을 제거하기 바라는 것은 색채와 무관한 자체의 구조, 그 골조의 아름다움을 환한 빛 속에서 보기 위해서이다. 122, 123,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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