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리와 색

가을밤은 맑고 깊어서 방 안에 연못 물 얇아지는 소리가 다 들어앉는다.(가을밤)
마른 연못에 물이 들어차고 연못에 벚나무와 느티나무의 검은 가지와 잎과 흐린 하늘 몇 쪽과 빗방울들이 만드는 둥근 징소리의 무늬들 가득하다/비 오는 날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소리의 거처)
고요하다와 쟁쟁하다/소리에도 빛과 어둠이 있다는 걸, 그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물소리는 몸의 실핏줄을 통과해 다른 음색과 리듬으로 미묘하게 바뀐다(물소리에 관한 소고)
토마토의 속이 붉은 속이 미세하게/나뭇잎처럼 흘러내린다/차가운 심장이 파랗게 엎드리고 있는/토마코는 싱싱하다/푸른 씨를 가득 물고 조용히 뛰고 있다....///우듬지의 나뭇잎들이 꺾일 듯 휘어진다/수만 결의 바람이 뒤집히며 일제히 파닥인다/비스듬히 썰린 채 흘러내리는 과육들,/토마토는 부드럽게 상한다(오후의 세계)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 탐구가 게을러지면 다시 아팠다/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어도 새로운 다른 초록이 나오는//눈을 감고 색의 채도나 명도가 아닌 초록의 극세한 소리로 분별해야 한다는 것(초록을 말하다)
보라빛 꽃들, 삶의 바깥으로 한번 슬쩍 나가보라고 권하는 보랏빛 꽃들이 사방 천지에 가득한 한여름 숲(여름 숲)
모든 상처는 왜 내상이 되고 마는 걸까 붉은색과 검은색의 심연이 죽음이거나 비애인 것은 얼룩 때문이다//커다란 얼룩 때문에 내 몸은 천천히 어두워지고 있다/나도 한때 다른 색의 상처를 가졌던 적이 있다 (얼룩)
오랜 격정으로 숲이 대낮에도 어둠을 불러들이곤 했다는 걸 당신은 알지 못하리라//어둠으로 회오리치는 붉은 숲은,(어두워지는 숲)
그들의 이마를 어루만지니 열꽃이 살며시 번졌습니다.//저 고요한 분홍이, 숲의 물소리를 낮추고 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 분홍빛 아래서 당신은 또 한나절 나를 견뎠겠습니다.(분홍을 기리다)

2.

(천장을 바라보는 자는)내가 보았던 것은 하늘의 우물이라고 말할 수밖에//천장을 보며 보냈던 시간들은 우물이 말라가는 시간과 같아

3. 몸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초록을 말하다)
내 몸속 세포의 흐름이 저 물소리의 우주적 운율과 다르지 않아 또 몸에 귀 기울여야겠구나/이젠 몸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있겠나 묻지 않는다(물소리에 관한 소고)
이 시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랜 철학적 물음에 마침내 해답을 얻는다//이곳의 원인은 저곳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은 하루가 지나자 낡아버리고//어딘가 다른 곳에서 나에 대한 참고 문헌이 완성디고 있다는 느낌이//몸에 대한 편견 없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는 물음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어딘가 다른 곳에서)
너에게 너무 가까이도 멀리도 가지 않으려고/헛되이 나는, 이 먼 곳까지 왔다(헛되이 나는)
저렇게 많은 풍경이 너를 거쳤다/저렇게 많은 풍경의 독이/네 몸에 중금속처럼 쌓여 있다(풍경의 해부)
몸과 마음이 모퉁이를 세게 돌다 부딪쳐 머리가 깨어지는 사고가 난 자리를 잘 살펴보세요/오늘도 포근하고 단정한 잠자리와 슬픔이 소량 필요합니다(송과선, 잠)
수식득격, 란이 아닌 사람의 어떤 마음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을까 야윌수록 높아지고 깊어지는 무엇이 있을까격//걷고 또 걷고 누르고 누르면 독필이 된다 (야위다)
욕망을 삶의 방식으로 치환하고/공을 색의 방식으로 변환한다/맹목의 감각으로 퇴화되어가는/신성함이다/늘 반목하는 눈이다(맹목의 감각)

4. 그리고 꽃과 흑백

인간은 반복되는 존재다, 라고 말해도 겸손을 위장할 수 있을까 어느 생에선가 내가 살아낸 적 있는 삶을 당신이 지금 왜 똑같이 살아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가장 무서운 형벌은 반복을 반복하는 것 (흑백)
매화초우도, 탐매행....

볕뉘.

0. 이렇게 밑줄들을 옮긴 뒤, 신형철작가의 논문수준의 해설을 본다. 꽃을 탐하는 나로서는 동지를 만난 듯 기쁘기도 하지만, 세세한 결 속의 음과 색을 헤아리는 경지까지 가지는 못했다. 시를 함께나누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숲으로 한발짝 옮기게 해주는 시집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지 않아 꽃도 풍경도 들어오지 않기도 하겠지만, 비단 나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꽃 봄을 꼭 볼 수 있는 나날이 몇 해나 될 것이란 말인가.

1.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니체보다 스피노자에 가깝게 귀기울여 본다. 영혼과 정신, 신체를 나누는 것에 극명하게 반대했던 렌즈 제조공 스피노자. 영혼과 몸을 데카르트가 분리한 연유로 과학을 얻고 무수한 사실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마음과 영혼의 거처를 편안히 하는 몸, 삶은 여전히 그 거처를 잃고 반복될 뿐이다.

2. 기쁨과 슬픔, 기쁨으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으로 생겨나는 욕망보다 훨씬 강하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일하다면 삶은 훨씬 풍부했을 것이라고도...목적인은 원인과 결과를 혼돈하여 제대로 된 삶, 기쁨조차 누릴줄 모른다고 한다.

3. 초록의 새로운 색과 소리를 찾는 기쁨은 어디로 연유하는 것일까. 아픔으로 시작하거나 외로움으로 나아가거나 적요로 출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고통만이 아니라 어떤 숭고함이나 작열하는 흰빛으로 문득 다가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침묵으로 확장되거나 연장되는 신체의 배치가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정신은 이렇게 신체로 이어지는 여러갈래 길이다. 그 깊이는 늘 만나면서 큰 울림들을 만들어낸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기쁨은 그렇게 연유하는 것이다.

4. 길. 길은 어쩌면 물위에 난 수많은 길들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길들. 길은 어디에나 있다. 길은 어디에도 있다. 안의 길과 밖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높아지고 깊어진다. 야위워간다.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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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레히트의 ‘k씨의 이야기‘ – 소피스트 철학자에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입니다. ! 그 한마디에 귀가 먹을 정도의 박수가 쏟아진다. 거기서 k씨는 의문을 가진다. 혹시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덧붙였는데 박수 소리에 묻혀, 이후 이천 년 동안 다음 말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48

2. 정신과 관련된 정서들로부터 따라 나오는 모든 능동적 작용을 나는 마음의 강인함과 연결지으며, 마음의 강인함은 굳건함과 관대함으로 구별한다. 왜냐하면 나는 굳건함을, 각각의 ㅅㅏ람이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ㅎㅏ는 노력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편 관대함의 경우는, 각각의 사람이 오직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우정의 마음으로 다른 모든 ㅅㅏ람들을 돕고 그들과 우정으로 결합하고자 ㅎㅏ는 노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ㄴㅏ는 오직 행위자 ㅈㅏ신의 유용함을 목표로 ㅎㅏ는 작용은 굳건함과 연결시키고, 다른 이들의 유용함도 목표로 ㅎㅏ는 작용은 관대함과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절제심, 침착함, 위급 상황에서의 평정심 등은 굳건함의 종류들이다. 하지만 겸손함이나 ㄴㅓ그러움은 관대함의 일종이다/이런 정리들로부터 명백해지는 것은, 우리가 외부 원인들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휘둘린다는 점이며, 마치 반대 방향에서 부는 바람들에 파도가 일렁이듯이, 우리는 출구도 모른 ㅊㅐ, 운명도 모른 채 동요한다는 점이다. 51

3. 실로 많은 오류들은, 오직 우리가 이름을 실재에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날 뿐이다 / 그들의 정신 속만 살펴본다면, 그들은 확실히 실수를 범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수를 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종이 위에 쓰인 숫자와 같은 숫자를 그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62

4.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 이미지는 더 자주 생생해진다. 왜냐하면 어떤 이미지가 더 많은 다른 이미지들과 결합될수록, 그것을 촉발할 수 있는 더 많은 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71

5. 오직 자유로운 인간들만이 진정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72

6. 작가의 역할은 상황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독자가 더 이상 그 상황을 피해 갈 수 없게. 72

7. 소비주의는 모든 질문하는 행위를 소비해 버린다. 과거는 쓸모없는 것이 된다. 83

8. 누군가 저항을 하는 것(바리케이트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인간 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순간을 지킥 위해서다/서사는 순간을 지울 수 없는 무엇으로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들릴 때, 선적인 시간의 흐름은 멈추고 ‘사소한‘이라는 형용사는 의미 없는 것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역사의 목적은, 시간을 탐색하고 정복하는 일에서 모두가 형제 혹은 동료가 되기 위해 시간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85-88

9. 어떤 이야기에 감명을 받거나 울림을 얻으며, 그 이야기는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가 되는, 혹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낳고, 이 일부가, 그게 작은 것이든 광대한 것이든 상관없이, 말하자면 그 이야기의 후예 혹은 후계자가 된다./누군가 읽은 이야기의 혈류가 그 누군가가 ㅅㅏㄹ아온 이야기의 혈류와 만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되고 있는, 혹은 앞으로 ㄱㅖ속되어 갈 어떤 모습에 보태진다. 90

10. 가난한 자들은 온갖 종류의 계략을 꾸미지만 가장하지는 않는다. 부자들은 보통 죽을 때까지 가장만 한다. 그들에게 가장 흔한 가장이 성공이다/오늘날의 희망은 손에서 손으로,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은밀하게 전해지는 무엇이다/모든 것은, 그것이 얼마나 완전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것이 실존하기 시작했던 때 지니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힘을 가지고 항상 실존 속에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이 점에서 동일하다. 93,94

11. 인간 정신이 어떤 외부 물체를 현존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한, 곧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한, 인간 신체는 외부 물체의 본성을 함축하는 방식으로 변용된다. 97

12. 이성의 본성에는 어떤 영원의 관점에서 실재들을 지각하는 일이 속한다. 104

13. 길거리 시장의 정반대다. 그곳에서 핵심은 흥정이다. 길거리 시장에서는, 모두가 최선의 거래를 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창고형 슈퍼마켓에서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도둑놈으로 여겨진다/직원들의 권리에 대한 도둑질, 농산물업계, 전 지구적인 식품 유통업계와 연결된 그 회사의 도둑질, 한때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쥐고 있던 주도권,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 변종과 종자, 비료, 기를 가축들 등에 대한 결정권을 뺏어 간 것. 한 때 이런 것은 지역 내에서 현실에 맞춰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오늘날은 거대 기없이 생산자를 공급하고, 생산될 게 무엇인지 지시한다. 전 지구적인 농업이 미리 계획되고 이ㅆ는데, 목적은 자연 전체를 상품으로 ㅂㅏ꾸는 것이다. 110

14.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기쁨에서 생겨나는 욕망이 슬픔에서 생겨나는 욕망보다 더 강하다. 111

15. 목적인에 관한 교의는 자연을 완전히 전도시킨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의는, 실제로는 원인인 것과 결과로 간주하고 결과인 것을 원인으로 간주하여, 본성상 첫번째로 오는 것을 가장 나중에 오는 것으로 만들고, 또한 최상의 것이며 가장 완전한 것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13

16. 만약 인간에게 있는 침묵할 수 있는 역량이 말할 수 있는 역량과 동등하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은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정신이 내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아니라 외적으로 규정되는 경우, 그 정신은 혼동되고 단편적인 인식만을 갖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둔다 117,118

17. 사고하는 실체와 연장되는 실체는, 때로는 이 속성에 의해 인식되고 때로는 다른 속성에 의해 인식되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다/드로잉을 하는 연장되는 무엇의 외곽선 - 연장되는 무엇 또한 하나의 구성요소임을 종이 위에, 드로잉의 표면에 보여 주는 것이다./드로잉의 선은 초조하고 팽팽하다...드로잉을 그리는 ㅅㅏ람은 끊임없이 연장되는 것 안에 홀로 있습니다/물체들은 운동과 정지, 빠름과 느림의 관계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것이지, 실체의 관계에 따라 서로 구분되는 게 아니다. 119-122

18. 우리는 보통, 우리가 있는 곳에서 이백 피트 이상 떨어져 있는, 또는 우리가 판명하게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모든 ㄷㅐ상을, 우리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모든 대상을, 우리로부터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상상한다...그것들 모두가 ㅁㅏ치 시간의 한 계기에 놓여있는 것처럼 간주한다. 137

19. 모든 것을 신의 무관심한 어떤 의지에 종속시키고, 모든 것은 그의 만족에 달려 있다고 제시하는 의견이, 신은 모든 것을 선의 계기에서 실행한다고 보는 관점보다는 진리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20. 나는 습관적으로 혼란에 빠집니다. 혼란을 마주함으로써 종종 어떤 분명함을 얻기도 하죠/지성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우리는 필연적인 것 ㅇㅣ외에는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으며, 참된 것 이외에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신체의 유동적인 부분이 외부 물체에 의해 신체의 무른 부분에 대해 표시를 남기도록 규정될 때, 유동적인 부분은 무른 부분의 표면을 변화시키며, 말하자면 자신을 자극하는 외부 물체의 무른 부분 위에 남기게 된다... 인간 정신은 매우 많은 것을 ㅈㅣ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신체가 좀 ㄷㅓ 많은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정신은 그 신체가 다른 신체들과 더 많은 것을 공통으로 지니면 지닐수록 더 많은 것들을 적합하게 지각할 수 있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145,147,148

21. 우중은, 원인으로서의 돈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얻는 기쁨이 아니고서는 어떤 다른 ㄱㅣ쁨도 거의 상상하지 못해 신체에 인색하게 되는데 그 만큼 자신의 재물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기 ㄸㅐ문이다. 151

22. 스피노자는 세 가지 형태의 지식에 대해 서술했다. 첫째, 소문과 인상에만 근거하여, 전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제 멋대로의 지식. 둘째, 적절한 개념을 활용하며 사물의 성질에 집중하는 지식. 그리고 셋째,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는, 그리하여 신에게 이르는 지식. 153

23. 드로잉을 할 때, 나는 종종 순간적으로 신체의 생리현상과 비슷한 어떤 일에 가다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드로잉이라는 행위 혹은 드로잉을 하려는 ㅁㅏ음은 어떤 원형, 논리적 추론에 앞서 있는 어떤 것에 닿아 있다./드로잉를 할 때 나는, 하늘 길을 찾아가는 새나, 쫓기는 와중에 은신처를 찾아가는 산토끼, 혹은 알 낳을 곳을 알고 있는 물고기, 빛을 향해 자라는 나무, 자신들만의 방을 짓는 벌 들에게 조금 ㄷㅓ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드로잉은 무언가를 꼼꼼히 살피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는 본능적인 충동은, 무언가를 찾으려는 욕구, 점을 찍으려는 욕구, 사물들을, 그리고 자기 ㅈㅏ신을 어딘가에 위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나온다/모든 드로잉은 각자의 존재 ㅇㅣ유를 가지고, 독창적인 것이 되기를 희망한다. 매번 드로잉을 ㅅㅣ작할 때마다, 우리는 그때만의 서로 다른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모든 자발적인(주문받은 것과 구분되는) 드로잉은 비슷한 ㅅㅏㅇ상력의 작동을 거쳐 ‘이륙‘해야 하고, 그 상상력의 힘으로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 155-157

볕뉘.

0. 존 버거, 스피노자, 존 버거의 스피노자. 드로잉을 했다는 스피노자의 그림은 발견할 수 없다. 스피노자 안으로 스며들어 존 버거가 드로잉을 말한다.

1. 그의 말인지, 스피노자의 마음인지 행간을 헤아릴 길이 없어 그냥 옮겨 적어본다. 어찌되었든 스피노자로 가는 길목, 드로잉으로 가는 길목 한껏 기대에 부풀게 만드는 글과 그림이다.

2. 프리지어 꽃과 꽃병, 한 송이에 그 열쇠를 담고 싶다. 꽃말이 아마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던가....

3. 드로잉과 이 멋진 책을 선물하고 싶다. 꽃 봄이네요.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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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단지 세상의 숨겨진 정보가 아니라 사유능력을 가진 인간들의 상호주관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적잖은 근대철학가들이 강조하였다. 이와 더불어 학문의 모델은 세상의 숨겨진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정보로 전달한다는 정보이론 모델에서 사람들의 소통의 결과물이라는 소통이론의 모델로 옮아갔다. 011

베르그송과 영 –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이란 결코 양적으로 나타내거나 공간화할 수 없다. 현대 모든 물질문명은 공간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지닌 본질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생명의 본질이란 공간화해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 마치 영이 표현한 ‘윙윙대는 소리‘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순수한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 271

건축 과정에서 도면으로 수향화할 수 없는 불규칙한 곡면의 형태는 배제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직선과 사선, 원이나 타원의 호와 같은 규칙적인 선만 시공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건축물의 형태는 획일화되고 만다. 272

베르그송은 각각의 한 점에서 운동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 운동이 단순히 공간적인 이동이 아닌 하나의 시간적인 사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적인 사건, 즉 시간은 전적으로 공간과는 다른 것이며 결코 공간적 좌표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공간화될 수 없으며 계량화할 수없는 순수한 시간을 일컬어 ‘순수지속‘이라고 부른다. 공간적으로 계량화될 수 없으므로 이 순수지속으로서의 시간은 오로지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될 뿐이다./사랑하는 연인을 ㄱㅣ다리는 십분과 고된 작업 뒤 갖는 꿀맛같은 10분간 휴식은 같은 십분이 아니다./현실의 운동, 나아가 운동하는 생명체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순수지속‘이다. 274,275

베르그송이 말하는 이미지는 ‘감각적 재료‘에 가깝다/자동차라는 물질은 그것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을 종합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물질이 이미지들의 총합으로 ㅇㅣ루어져 있다는 것은 유물론적 견해에 잘 부합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ㅇㅣ미지라는 것은 인간의 감각에 의해서 파악되는 주관적인 측면을 지닐 수밖에 없다/자동차라는 물질을 ㅇㅣ루는 ㅇㅣ미지를 인간의 감각과 무관하게 그것에 앞서서 존재하는 ㅈㅏ립적인 물질로 이해할 수 없다. 이미지의 총합으로서의 물질이라는 베르그송의 견해는 유물론적이면서도 관념론적인 특성을 지닌다./베르그송은 사물이 지닌 무수히 많은 이미지 중 일부(짠맛, 흰 결정체, 물에 녹는 성질 등)를 종합하여 만들어진 통합적인 이미지(소금)를 ‘표상representation’이라고 부른다/비결정성의 ㅈㅣ대 – 우리가 알고 있는 소금ㅇㅣ라는 사물은 무한히 많은 이미지를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비결정성의 지대‘이다/지각 – 그는 신체라는 이미지가 지각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특권을 ㄱㅏ졌다고 간주한다. 인간의 신체와 사물이 마주했을 때 사물은 신체라는 이미지를 변경하지 못하지만 신체는 사물의 이미지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의 지각활동에는 그 밑바닥에 프레임을 짜는, 보다 근원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그거ㅅ은 우리 몸에서 이루어지는 심층적인 영역에서의 정서적 차원이다. 베르그송은 이를 ‘정념 affection’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지각은 바로 정념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77-281

볕뉘

0. 책상 한켠에 반년은 족히 묵혀두고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손을 내밀면 들어올릴 수 있는 거리의 책. 새벽에 잠이 깨어나서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하버마스, 알튀세르, 베르그송을 우선 살펴본다.(곁에 두고 짬날 때보면 좋을 책이다. 많이 탐독하지 않은 듯싶다)

1. 한편의 예술작품과 대유하여 설명하는데 요점을 공감하게 하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현대사상가들의 맥락도 잘 짚어주고 있는 것 같다.

2. 베르그송이 늘 가물가물하였고, 다시 읽고싶은 충동에서 배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말미는 역시 스피노자를 함께 읽기를 요청하는 듯하다.

3. 어제는 겨우 산진달래 잔가지 몇송이를 구할 수 있었다. 산등성이까지 올라갈 수도 없고 우회하며 산책하는 길섶 한켠에 말이다. 개나리는 만개했고 벚꽃도 꽃망울이 올라오고, 산수유는 피었고, 진달래만 피면 사무실이 봄빛으로 화사하겠다. 이번 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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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신자유주의가 사회, 문화, 신경체제에 가한 영구적 손상과 인간적 존엄을 짓밟는 노동 착취의 비참함을 직시하자 98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에는 좀처럼 시간을 할애하지 않지만, 말춤이나 광고를 쳐다보는 일에는 순순히 투항한다. 57

미디어비만 – 인터넷 블랙마켓에 전시된 터무니상조회의 작품 ‘미디어 아귀와 천사들‘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인쇄하여 옷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미디어에 둘러쌓여 비만이 된 인간을 표현하였다. 59

오늘날의 포르노는 타인의 기쁨과 아픔을 나의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감수성의 무능력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결핍되거나 말소될 수밖에 없는 언어의 빈자리가 외설적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이는 성만이 아니라 음식, 불안한 노동의 회로, 텔레비전 뉴스와 반려동물, 정치인 연설물, 폭력적인 정보환경 모두를 포함한다. 64

게이미피케이션 – 게임이 아닌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재미있는 요소를 부여하여 게임처럼 만드는 것을 말한다./확률형 아이템 때문에 현대 게임은 퇴보하고 있다. 과정의 서사를 확률로 압축하고 결과만을 제공한다. 경쟁의 과정이 주는 재미는 사라지고, 남보다 높은 레벨로 올라서는 권력 구조의 쾌감만 남았다. 속도의 경제, 결과 중심의 세계관이 게임을 파친코로 만들었다.(게임비평가 이경혁)/현대의 비디오 게임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무한 경쟁을 내면화하는 훈육 장치로 비디오 게임이 동원되고 있다. 그 흐름을 ‘게임이 된 전쟁, 전쟁이 된 노동, 노동이 된 게임‘이라는 악순환의 구조로 정리한다.(신현우) 73, 75

신현우는 ㄱㅔ이미피케이션 사회에 대응할 방법으로 게임 ㄱㅣ술에 대한 항구적인 재발명을 통해 자본화된 지각-인지-육체의 변화가 ㅇㅣ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이라는 ㄱㅣ계에 내재한 전쟁, 자본의 ㄱㅣ술 코드를 재설계해서 사회를 재발명하자는 ㅂㅣ전이다.(미학적 ㄱㅔ임-Paper, Please/Journey/Monument Valley/The Stanley Parable) 77

게임중독자의 문제점은 생활습관이 아니라 게임의 룰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숭앙하는 체제 순응자와 게임 중독자는 쌍생아처럼 닮았다. 79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경향은 무지와 무책임, 무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이는 마치 성직자 도움 없이는 성경을 읽지 못했던 중세의 문맹자들 신세와 비슷하다. 2010년대는 디지털 중세기로 기억될 것이다. 90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디지털 신자유주의의 수익 모델에 철저히 구속되어 있다. 93

오늘날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버튼으로 이뤄진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일뿐, 유기적 다양체인 기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버튼 너머의 세계에서 자기 언어로 생각을 적어나가는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것은 버튼 위에 짓눌린 시간을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8

볕뉘.

0. 기술비평이 전무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이 늘 있어 왔는데, 모처럼 이에 해당하는 알맞은 책이 있어 반가웠다.

1. 적정기술이나 기계비평은 다소 익숙한 편이라 디지털 비평가인 임태훈교수의 글을 읽어보았다. 정보와 접근방법에 있어 깊이를 요하는 부분들이 있어 신선했다. 이 글로 디지털 비평에 대한 여러 책들을 만나보고픈 느낌도 든다.

2. 책방 소개 도서 - 오른쪽은 이영준교수의 독립출판물은 예전에 구입해서 읽었는데 날카롭고 좋았다.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도 새겨보면 좋을 것 같고, 임태훈교수의 책도 관심이 많이 간다. 궁금증이 갈증으로 이어졌으면 싶은데 봄이다. 딱딱하지 않은지 싶다. 대안 게임이라고 하는 2010년판 걸작게임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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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거리 한가운데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선 채로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모르겠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는지/거리 거리, 골목 골목으로 흘러갔는지/누군가 내 몸을 두드렸다면 놀랐을 거야/누군가 귀 기울였다면 놀랐을 거야/검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깊은 물소리가 울렸을 테니까/둥글게/더 둥글게/파문이 번졌을 테니까/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알 수 없었어, 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니
거리 한가운데에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영원히 죽었어, 내 가슴에 당신은
거리 한가운데서 혼자 걷고 있을 때였지/그렇게 다시 깨어났어, 내 가슴에서 생명은

2.

거울 저편의 겨울 2

새벽에/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어떤 꿈은 양심처럼/무슨 숙제처럼/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빛을/던진다면
빛은/공 같은 걸까
어디로 팔을 뻗어/어떻게 던질까
얼마나 멀게, 또는 가깝게
숙제를 풀지 못하고 몇 해가 갔다/때로/두 손으로 간신히 그러쥐어 모은/빛의 공을 들여다보았다
그건 따뜻했는지도 모르지만/차갑거나/투명했는지도 모르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거나/하얗게 증발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거울 저편의 정오로 문득 들어와/거울 밖 검푸른 자정을 기억하듯/그 꿈을 기억한다

3.

그날 우이동에는/진눈깨비가 내렸고/영혼의 동지인 나의 육체는/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캄캄한 불빛의 집)
아아 첫새벽/밤새 씻기워 이제야 얼어붙은/늘 거기 눈뜬 슬픔,/슬픔에 바친다 내/생생한 혈관을, 고동 소리를 (‘첫새벽’)
그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회상’)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나에게 말을 붙이고/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내가 마음에 들었니,라고 묻는다면/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오래 있을 거야. (‘서시’)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어떻게 해야 하는지/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괜찮아/왜 그래, 가 아니/괜찮아/이제 괜찮아 (‘괜찮아’)

4.

저녁의 소묘 5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두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투명한 칼집들을 그렸다
(살아 있으므로)/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볕뉘.

0. 저녁, 새벽, 거울, 겨울, 살얼음, 죽음, 심장, 피, 눈, 눈물, 영혼, 불꽃, 빛 - 단어를 그러모아 본다. 주루룩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린다. 다시 거꾸로 뒤집어본다. 한송이 한 송이 함박눈처럼 살얼음위에 내려앉는다. 빛이 반짝였다. 사르르 녹았다. 달항아리에 부었다. 봄꽃가지를 넣었다. 매화같은 눈물이 피었다. 얼어붙어 볼 수 있는 슬픔이 아니라 나뭇가지 혈관을 타고 올라 피어나는 희망의 파편들... ...

1. 잊힐까 싶었고, 아쉬웠고, 밑줄그은 곳들이 새록새록 올라와 남긴다. 고통으로 빛의 지문을 찍는 작가라는 표현. 맞는 말일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 뿐이야. 빛은 빛은 무엇일까 공만은 아닐거야. 빛은 숙제. 그래 아직 숙제. 시가 남긴 질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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